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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문법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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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젊은이 문법학파는 1870년대 후반에 활동한 언어학 연구 집단으로, 언어학을 역사과학으로 정의하고 실증주의적 연구 방법을 통해 언어 변화의 규칙성을 탐구했다. 이들은 언어 연구에서 음운 변화를 주요 대상으로 삼았으며, '음운 규칙에는 예외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언어 변화의 원인을 음운 법칙과 유추에서 찾았다. 주요 학자로는 아우구스트 레스킨, 헬만 파울 등이 있으며, 이들의 연구는 언어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언어의 체계성을 간과하고 개별적인 음성 분석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며, 구조주의 언어학의 등장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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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문법학파
기본 정보
융그라마티커 학파 계통도
융그라마티커 학파 계통도
분야언어학
활동 시기19세기 후반
주요 활동 지역라이프치히
주요 인물카를 베르너
헤르만 오스트호프
아우구스트 레스키엔
베르톨트 델브뤽
헤르만 파울
빌헬름 브라네스
에두아르트 지버스
카를 브루크만
요하네스 슈미트
사상적 배경
주요 개념음운 법칙의 예외 없음
유추
심리주의
영향구조주의 언어학
영향 받은 학문다윈주의
학문적 영향
영향 준 학문구조주의 언어학
생성 언어학
영향 받은 인물페르디낭 드 소쉬르
참고 문헌
참고 도서August Leskien, Die Declination im Slavisch-Litauischen und Germanischen (1876)
Hermann Osthoff, Karl Brugman, Morphologische Untersuchungen auf dem Gebiete der indogermanischen Sprachen (1878)
Hermann Paul, Prinzipien der Sprachgeschichte (1880)
Karl Verner, Eine Ausnahme der ersten Lautverschiebung (1877)
관련 항목
관련 항목비교언어학
역사언어학

2. 특징

젊은이 문법학파의 연구 방법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역사과학으로서의 언어학: 언어학은 역사과학으로 정의되며,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접근보다는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언어 자료를 통한 경험적 연구를 중시한다.
  • 형태 중심의 연구: 의미의 객관적 연구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관찰 가능한 형태, 특히 소리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 개인적 언어 사용 중시: 언어를 독자적인 유기체로 보는 관점을 거부하고, 직접 관찰 가능한 개인적 언어 사용(이디오렉트)을 연구의 유일한 토대로 보았다.
  • 음운 변화의 법칙성: 음성 변화를 물리적인 법칙과 같은 것으로 보고, 예외 없이 적용되는 필연적이고 인과적인 법칙을 찾으려 했다. 베르너의 법칙그림의 법칙에 대한 예외를 해결하여 이 가설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었다.
  • 음운 수준의 자율성: 언어에서 가장 관찰 가능한 측면인 음운 수준을 가장 중요한 기술 수준으로 간주하고, 구문론 및 의미론으로부터의 음운 수준의 절대적 자율성을 가정하였다.
  • 역사주의: 언어 연구의 주요 목표는 언어의 역사적 변화를 기술하는 것이다.
  • 유추: 음운 법칙의 불가침성 전제가 실패하면, 타당한 경우 유추를 설명으로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예외는 관련 형태에 대한 (규칙적인) 적응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젊은이 문법학파의 방법과 목표는 연구 대상을 이디오렉트로 제한하고, 표면 현상(음운 수준)의 기술에만 국한되며, 역사적 언어를 과대평가하고 현대 언어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3. 연구 대상

젊은이 문법학파의 연구 대상은 언어 변화의 원인을 규명하고 인구어 공통 조어를 재구하는 데 집중되었다.[1] 이들은 언어 변화의 원인을 음운 법칙과 유추에서 찾았다.[1] 베르너의 법칙으로 그림의 법칙의 예외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겉으로 불규칙해 보이는 음운 변화도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1] 이들은 음운 변화를 음성 생리학적 측면에서 이해되는, 인간의 의지가 없는 무의식적 과정이자 기계적인 법칙으로 간주하여 '음운 규칙에는 예외가 없다'는 견해를 가졌다.[1] 그래서 음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는 차용을 제외하고 심리적 현상인 유추만을 인정했다.[1]

인구어 공통 조어 재구에서, 이들은 현재 언어에 대한 관찰과 역사적 자료 분석을 통해 음운 변화 규칙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공통 조어를 재구하고자 했다.[1] 이는 고대 언어 연구에 중점을 두었던 이전 시기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1] 음운 법칙의 규칙성과 무예외성에 대한 믿음은 비교 방법을 엄밀하게 다듬고 음운 변화 연구에 큰 진전을 가져왔다.[1] 오늘날 역사 비교 언어학 연구의 밑바탕이 되는 인구 제어에 대한 많은 지식은 이들에 의해 축적되었다.[1]

젊은이 문법학파는 정밀한 방법론과 구체적인 언어 사실에 대한 지식 축적에 기여했다.[1] 또한, 인구어족 분화의 최종 단계인 현존 방언에 처음으로 진지한 관심을 보인 학자들이며, 방언학과 음성학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것 역시 그들의 영향이다.[1]

신음운학파 가설에 따르면, 통시적 음운 변화는 환경이 충족되는 모든 단어에 예외 없이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베르너의 법칙그림의 법칙에 대한 명백한 예외를 해결했기 때문에 신음운학파 가설의 유명한 예시이다. 신음운학파 가설은 과학적 방법에 따른 반증 가능성 원리를 따르려는 최초의 음운 변화 가설이었다.

후속 연구자들은 어휘 확산(음운 변화가 처음에는 몇몇 단어에만 영향을 미치고 점차 다른 단어로 확산되는 현상)과 음운 변화가 문법적 조건을 따를 수 있다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 가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신음운학파가 일반 언어학에 기여한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 언어 연구의 대상은 언어 체계가 아니라 이디오렉트, 즉 개인에게 국한된 언어이며, 따라서 직접 관찰 가능하다.
  • 음운 수준의 자율성: 언어에서 가장 관찰 가능한 측면이기 때문에 음운 수준은 가장 중요한 기술 수준으로 간주되며, 구문론 및 의미론으로부터의 음운 수준의 절대적 자율성이 가정된다.
  • 역사주의: 언어 연구의 주요 목표는 언어의 역사적 변화를 기술하는 것이다.
  • 유추: 음운 법칙의 불가침성 전제가 실패하면, 타당한 경우 유추를 설명으로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예외는 관련 형태에 대한 (규칙적인) 적응으로 이해된다.

4. 주요 학자

이름출생-사망 연도주요 활동
오토 베하겔1854–1936
빌헬름 브라우네1850–1926
칼 브루크만1849–1919
베르톨트 델브뤼크1842–1922
아우구스트 레스키엔1840–1916
아돌프 노렌1854–1925
헤르만 오스토프1847–1909
헤르만 파울1846–1921
에두아르트 지퍼스1850–1932



다음 학자들도 젊은 문법학파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 카를 베르너 (Karl Verner) (1846-1896)
  • 프리드리히 클루게 (Friedrich Kluge) (1856-1926)


또한, 페르디낭 드 소쉬르도 같은 시기에 라이프치히에 유학하여 그 강한 영향을 받았다.

5. 활동

이들은 언어 변화의 원인을 음운 법칙과 유추에서 찾았다. 베르너의 법칙에 의해 그림의 법칙의 예외 현상을 규칙적인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 이들은 겉으로 불규칙하게 보이는 음운 변화도 충분한 자료와 정확한 방법론을 적용하면 그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음운 변화의 법칙이 음성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이해되는, 인간의 의지가 결여된 무의식적 과정이며 기계적인 법칙으로 간주되어 '음운 규칙에는 예외가 없다'라는 견해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음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로 차용을 제외하고는 심리적인 현상인 유추 하나만을 인정하였다.

인구어 공통조어 재구에서 그들은 현 단계의 언어에 대한 관찰과 그 언어들의 역사적 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그 안에서 나타나는 음운 변화의 규칙들을 정확히 찾아내고 그렇게 찾아진 음운 법칙의 토대 위에서 공통 조어를 재구하고자 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이런 그들의 태도는 언어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라는 점에서는 그 이전 시기의 연구자들과 동일하나, 그 접근 방법에서 현재의 언어보다 고대의 언어들에 대한 연구에 중점을 두어 공통 조어를 재구하려 하였던 이전 시기의 연구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음운 법칙의 규칙성과 무예외성에 대한 믿음은 이들의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쳐서 비교 방법을 엄밀히 다듬게 하고 음운 변화 연구에 큰 진전을 가져오게 했다. 오늘날의 역사 비교 언어학 연구의 밑바탕이 되는 인구제어에 대한 수많은 구체적인 지식의 축적은 바로 이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젊은이 문법학파가 그들의 연구에서 보여준 정밀한 방법론과 구체적인 언어 사실에 대한 지식의 축적은 젊은이 문법학파가 언어학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으로 평가된다. 또한 그들은 인구어족 분화의 최종 단계인 현존 방언에 처음으로 진지한 관심을 보인 학자들이기도 하다. 방언학과 음성학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것 역시 그들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젊은 문법학파는 1876년에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인물업적
오스트호프(Osthoff)인도유럽 원어의 r̥art 설정.
브루크만(Bruchmann)인도유럽 원어의 비음 자음 설정.
레스킨(Leskien)“음운 법칙에 예외 없음” 주장.
지펠스(Sievers)음성 생리학 저술 출판.



젊은 문법학파의 주장 중 “음운 법칙에 예외 없음”이 잘 알려져 있다. 법칙적인 음운 대응에 대해서는 젊은 문법학파 이전부터 중요시되었지만, 기존에는 어떤 음이 같은 음에 대응할 때 소수의 예외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젊은 문법학파는 예외로 보이는 음운 변화는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역사적 변화의 재구성에 대한 신뢰성이 크게 증가했다.

파울 브라우네(Paul Braune)와 지펠스는 1874년에 학술지 『독일어 독일문학사 연구』(일명 파울 브라우네지)를 발행했다.[3]

브루크만과 오스트호프는 1878년에 학술지 『인도게르만어 영역에서의 형태론 연구』를 발행했다.[4] 이 학술지 제1호의 브루크만의 서문에서 “젊은 문법학파”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브루크만 등은 1892년에 학술지 『인도게르만어 연구』를 발행했다.[5]

델브뤼크(Delbrück)와 브루크만의 공저인 『인도게르만어 비교 문법 개론』(전5부, 1886-1900)[6]는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까지 포함하는 비교 문법의 금자탑적인 작품이었다(브루크만은 이 책의 개정판을 1897-1916년에 출판했지만, 전권 완성 전에 사망했다).

젊은 문법학파의 이론적 저술로는 파울의 대작 『언어사 원리』(1880)가 있다.[7]

6. "젊은 문법학파" 명칭

카를 브룩만이 오스트호프와 함께 발행한 잡지 창간호(1878)의 서문에서 '젊은 문법학파'라는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알려지게 되었다. 브룩만에 따르면, 원래는 Friedrich Zarncke|프리드리히 차른케de농담으로 사용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2]

이 용어는 젊은 독일 등 다른 운동의 명칭을 본떠 만들어진 것이지만, 구성원들이 20~30대로 젊다는 데에도 그 유래가 있다. 한편 비판자들로부터는 '젊은이들'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2]

7. 한계 및 비판

젊은이 문법학파의 연구 방법은 몇 가지 한계와 비판을 받았다.

첫째, 언어를 하나의 완전한 체계로 파악하지 않고 개별적인 음성과 형태의 역사에만 치중하여, 체계적인 접근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8]

둘째, 언어의 내용이나 정신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형태와 물리적인 측면에만 집중하여 인간을 언어 연구에서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9]

셋째, 음운 법칙의 무예외성을 주장했지만, 이에 대한 논쟁과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음운 법칙을 자연 법칙처럼 필연적인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한 이견이 있었고, 음운 법칙을 가설적인 원리로 보거나 사회적인 측면을 통해 이해하려는 경향도 나타났다.[10]

넷째, 통시적인 연구에 집중하여 공시적인 연구 성과가 부족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신음운학파 가설은 통시적 음운 변화가 예외 없이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지만, 후속 연구자들은 어휘 확산과 같이 음운 변화가 점진적으로 확산된다는 점과 문법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비판했다.

젊은이 문법학파는 언어 연구 대상을 개인에게 국한된 언어인 이디오렉트로 제한하고, 표면 현상(음운 수준)의 기술에만 국한되었으며, 역사적 언어를 과대평가하고 현대 언어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11][12]

젊은이 문법학파에 대한 비판은 기존 학자들로부터도 제기되었다. 게오르크 쿠르치우스(Georg Curtius)는 음운 법칙은 중시했지만 "예외가 없다"는 주장에 반대했고, 요하네스 슈미트(Johannes Schmidt)는 파동설을 주장하며 비판했다. 후고 슈하르트(Hugo Schuchardt)는 음운 변화가 기계적·맹목적으로 일어난다는 주장에 반대했으며, 쥘 지리옹(Jules Gilliéron)은 불규칙적인 음운 변화의 존재를 강조했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젊은이 문법학파의 연구가 개별 음운의 통시적 변화에 치우쳐 체계로서의 언어 연구가 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8. 극복

젊은이 문법학파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 언어를 하나의 완전한 체계로 파악하지 않고, 언어의 형태적 요소들에 대한 개별적 분석에 치우쳤다.
  • 언어의 내용이나 정신적인 측면을 형태 및 물리적인 측면과 분리하여 사고했기 때문에, 언어 연구에서 인간을 제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 음운법칙의 무예외성이 끊임없이 논쟁 및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 통시적인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어 공시적인 연구에서의 성과가 두드러지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언어의 내용이나 정신적인 면과의 관계를 등한시했던 점에 대해 심리학이나 정신사적인 부문에서 극복을 시도하였으며, 음운규칙의 무예외성은 방언학의 연구 결과에 의해 도전을 받았다. 통시적인 면에 치우쳤던 점은 드 소쉬르에 의해 문제 제기를 받게 되며, 결국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대에 언어 연구의 중심이 공시적인 연구로 옮겨가게 된다.

젊은이 문법학파 내부에서도 이러한 한계에 대한 극복의 시도가 있었다. 헤르만 파울의 ''Prinzipien der Sprachgeschite''(언어사 원리)를 살펴보면 공시적 방법(기술언어학)과 통시적 방법(역사언어학)의 근본적 차이를 인식하고, 언어학에서 지나치게 역사성을 강조하는 점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언어학을 역사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사회과학 및 문화과학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한계에 대한 적극적인 극복은 역시 그 후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몫으로 돌려진다.

9. 평가 및 의의

젊은이 문법학파가 언어학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은 그들의 연구에서 보여준 정밀한 방법론과 구체적인 언어 사실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다. 또한 이들은 인도유럽어족 분화의 최종 단계인 현존 방언에 처음으로 진지한 관심을 보인 학자들이기도 하다. 방언학음성학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것 역시 그들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1]

신음운학파 가설에 따르면, 통시적 음운 변화는 그 환경이 충족되는 모든 단어에 예외 없이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베르너의 법칙그림의 법칙에 대한 명백한 예외를 해결했기 때문에 신음운학파 가설의 유명한 예시이다. 신음운학파 가설은 과학적 방법에 따른 반증 가능성 원리를 따르려는 최초의 음운 변화 가설이었다.[2]

후속 연구자들은 이 가설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첫째, 어휘 확산(음운 변화가 처음에는 몇몇 단어에만 영향을 미치고 점차 다른 단어로 확산되는 현상)의 지지자들은 어떤 단어가 다른 단어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둘째, 어떤 이들은 음운 변화가 문법적 조건을 따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 없음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도전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많은 연구자들은 신음운학파의 교리를 계속 고수하고 있다.[2]

신음운학파가 일반 언어학에 기여한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2]


  • 언어 연구의 대상은 언어 체계가 아니라 이디오렉트, 즉 개인에게 국한된 언어이며, 따라서 직접 관찰 가능하다.
  • 음운 수준의 자율성: 언어에서 가장 관찰 가능한 측면이기 때문에 음운 수준은 가장 중요한 기술 수준으로 간주되며, 구문론 및 의미론으로부터의 음운 수준의 절대적 자율성이 가정된다.
  • 역사주의: 언어 연구의 주요 목표는 언어의 역사적 변화를 기술하는 것이다.
  • 유추: 음운 법칙의 불가침성 전제가 실패하면, 타당한 경우 유추를 설명으로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예외는 관련 형태에 대한 (규칙적인) 적응으로 이해된다.


주요 신음운학파 언어학자는 다음과 같다.[2]

이름출생년도사망년도
오토 베하겔18541936
빌헬름 브라우네18501926
칼 브루크만18491919
베르톨트 델브뤼크18421922
아우구스트 레스키엔18401916
아돌프 노렌18541925
헤르만 오스토프18471909
헤르만 파울18461921
에두아르트 지퍼스18501932



그들의 시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음운학파의 방법과 목표는 연구 대상을 이디오렉트로 제한하고, 표면 현상(음운 수준)의 기술에만 국한되며, 역사적 언어를 과대평가하고 현대 언어를 무시한 점에 대해 비판받았다.[2]

참조

[1] 논문 Methodology in Linguistic Subgrouping https://www.cambrid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3-12-12
[2] 서적 (제목 없음) 1978-00-00
[3] 서적 Beiträge zur Geschichte der deutschen Sprache und Literatur http://www.degruyter[...] 1874-00-00
[4] 서적 Morphologische Untersuchungen auf dem Gebiete der indogermanischen Sprachen https://archive.org/[...] 1878-00-00
[5] 서적 Indogermanische Forschungen https://archive.org/[...] 1892-00-00
[6] 서적 Grundriss der vergleichenden Grammatik der indogermanischen Sprachen Karl J. Trübner 1886-1900
[7] 서적 Prinzipien der Sprachgeschichte http://gutenberg.spi[...] Max Niemeyer 1920-00-00
[8] 서적 (제목 없음) 1992-00-00
[9] 서적 (제목 없음) 1978-00-00
[10] 서적 (제목 없음) 1978-00-00
[11] 서적 (제목 없음) 1992-00-00
[12] 서적 (제목 없음) 197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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