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유럽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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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도유럽어족은 알바니아어, 아르메니아어, 이탈리아어파, 인도이란어파, 켈트어파, 게르만어파, 발트-슬라브어파, 그리스어파 등 8개의 어파로 구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언어 집단이다. 이 언어들은 공통 조상어인 인도유럽조어에서 기원했으며, 기원전 4000년경 흑해 북부 스텝 지역에서 시작되어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인도유럽어족의 연구는 16세기부터 시작되어 18세기 말 윌리엄 존스에 의해 체계화되었으며,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특징을 보인다. 특히 켄툼어와 사템어로 구분되는 음운 체계, 명사, 동사의 복잡한 굴절, SOV, SVO 등 다양한 어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도유럽어족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영향을 미쳤으며, 언어학뿐만 아니라 고고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와 연관되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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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유럽어족 - 알바니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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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유럽어족 | |
---|---|
지도 | |
언어 정보 | |
이름 | 인도유럽어족 |
다른 이름 | 인구어족 |
계통 | 세계의 주요 어족 중 하나 |
사용 지역 | 아시아와 유럽에서 기원했으나 현재 전 세계에 분포 |
조어 | 인도히타이트어(?) 원시 인도유럽어 |
ISO 639-2 | ine |
ISO 639-5 | ine |
Glottolog | indo1319 |
Glottolog 명칭 | 인도유럽어 |
하위 어족 | |
주요 분파 | 알바니아어파? (알바니아어, 메사피아어 ) 아나톨리아어파 아르메니아어 발트슬라브어파 켈트어파 게르만어파 그리스프리지아어파? (그리스어파, 프리지아어 ) 인도이란어파 이탈리아어파 토하라어파 |
미분류 또는 불확실한 어족 | 다키아어 엘림어 일리리아어 (알바니아어파?) 리부르니아어 루시타니아어 파이오니아어 트라키아어 |
참고 | 는 해당 어족이 사멸했음을 나타냄}} |
분포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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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례 | |
설명 | 점선/줄무늬 지역은 다중 언어 사용이 일반적인 지역을 나타냄 (지도 확대 시 더 잘 보임). |
참고 자료 |
2. 연구사
인도유럽어족 연구는 16세기 유럽인들이 인도 아대륙을 방문하면서 인도아리아어군, 이란어군, 유럽 언어 간의 유사성을 인지하며 시작되었다.
1583년 예수회 선교사 토머스 스티븐스는 고아에서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136] 인도 언어와 그리스어, 라틴어의 유사성을 언급했다. 1585년 피렌체 상인 필리포 사세티는 산스크리트어와 이탈리아어 간 'devaḥ/dio'(신), 'sarpaḥ/serpe'(뱀) 등 유사 단어를 기록했다.[136] 그러나 이들의 관찰은 학문적 탐구로 이어지지 않았다.[136]
1647년 네덜란드 학자 마르쿠스 주에리우스 판 복스호른은 유럽과 아시아 일부 언어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이들이 '스키타이어'라는 공통 조어에서 기원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137] 그의 가설에는 네덜란드어, 알바니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독일어가 포함되었고, 이후 슬라브어파, 켈트어파, 발트어파가 추가되었으나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1665-1666년 오스만 튀르크 여행가 에블리야 첼레비는 빈에서 독일어와 페르시아어 단어 간 유사성을 기록했다. 1760년대 후반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 가스통 쾨르두는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그리스어 동사 굴절을 비교하며 연관성을 제안했다. 미하일 로모노소프는 슬라브어파, 발트어파, 이란어군, 핀란드어, 중국어, 코에코에어 등 다양한 언어군을 비교,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졌다고 주장했다.[138]
1786년 영국 언어학자 윌리엄 존스는 벵골 아시아 협회 강연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의 유사성을 언급하며 이들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공통 근원"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139] 고트어, 켈트어, 페르시아어를 추가하며[139] 이 공통 조어를 '공통 근원'이라 칭했지만 명명하지는 않았다.
1813년 영국의 토머스 영은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142][143] 북인도와 서유럽에 걸친 분포를 고려해 명명했다. '인도게르만어족'(Indo-Germanic영어)은 분포 지역 최남단과 최북단의 언어 갈래(인도어군, 게르만어파) 이름을 딴 동의어로, 1810년 콩라드 말트브룅 저작에서 프랑스어 'indo-germanique프랑스어'로 처음 등장했다. 대부분 '인도유럽어족'보다 덜 쓰이나, 독일어 'indogermanischde'는 표준 용어이다.
2. 1. 어족 개념의 발견과 연구 발전
프란츠 보프는 1816년에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게르만어와 비교한 산스크리트어의 동사 굴절 체계에 관하여》[144]라는 책을 출간했고, 1833년부터 1852년까지 《비교 문법》을 집필하여 인도유럽어학의 출발을 알렸다. 인도유럽어족 비교언어학의 고전기는 여기서부터 1861년 아우구스트 슐라이허의 《개론(Compendiumde)》을 거쳐 1880년대 카를 브루크만의 《개요(Grundrißde)》로 이어진다.게오르크 쿠르치우스는 언어학과 문헌학의 협조를 요구했다. 그의 제자들인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젊은이 문법학파는 1870년대 이후 음운론의 실증적 연구를 발표했다. 이들의 “음운 법칙에 예외 없음” 주장은 카를 브루크만을 통해 대표되었으나, 쿠르치우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요하네스 슈미트 등의 비판을 받았다.[75][76]
- -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1878년 라이프치히 대학교 유학 중 청년 문법 학파와 교류하며, 『인도유럽어족에 있어서 모음의 원시적 체계에 관한 각서』를 제출, 인도유럽어 모음 체계와 교체를 통합 설명하는 획기적 학설을 제시했다.[77] 이는 음성적으로 불분명한 “소낭적 기능음”을 세우는 이론적 가설이었으나,[63] 실증을 중시하는 청년 문법 학파와 충돌했다.
1870년대 전후, 독일 낭만주의 융성과 함께 독일에서 윌리엄 존스의 지적을 받은 연구가 활발해졌다.[78][79]
브루크만의 젊은이 문법학파적 관점에 따른 인도유럽어학 재평가와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후두음 이론은 “근대적” 인도유럽어학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1927년 예지 쿠리워비치는 히타이트어 자음 ḫ의 존재를 밝혀냈고, 1956년 저작 《인도유럽어의 모음교체》에서 인도유럽어족 형태론과 모음교체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145] 이는 소쉬르가 1879년 제안한 ‘공명계수’(coefficients sonantiques프랑스어)의 존재를 입증했다.
19세기 말 타림 분지 문서들이 해독되어 토하라어로 명명되었고, 인도유럽어족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세기에는 소아시아 히타이트어가 연구되어 인도유럽어족에 포함되거나 연관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80] 예르지 쿠릴로비치는 히타이트어 후두음이 소쉬르의 소리나는 자음에 대응함을 지적, 후두음 이론이 성립되었다.[81]
인도유럽어 연구 초기부터 다른 어족과의 연결 시도가 있었으나 논란이 많다.[52] 우랄알타이어족, 폰티크어족, 노스트라틱어족, 유라시아어족 등이 제안되었다.[52]
2. 1. 1. 윌리엄 존스와 초기 연구자들
16세기에 인도 아대륙을 찾아간 유럽인들은 인도아리아어군 및 이란어군 언어와 유럽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을 알아차렸다. 1583년, 영국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콘칸어 학자였던 토머스 스티븐스는 고아에서 활동하던 중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136] 인도의 언어들과 그리스어 및 라틴어의 유사성에 관해 말했다.1540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인도를 방문한 상인인 필리포 사세티도 비슷한 관찰을 했다. 1585년에 그는 산스크리트어와 이탈리아어에 유사한 단어들이 있다고 기록했다. 그런 단어들의 예로는 devaḥ/dio “신”, sarpaḥ/serpe “뱀”, sapta/sette “일곱”, aṣṭa/otto “여덟”, nava/nove “아홉” 따위가 있었다.[136] 그러나 스티븐스나 사세티의 관찰은 보다 깊은 학문적 탐구로 이어지지 못했다.[136]
1647년 네덜란드의 학자 마르쿠스 주에리우스 판 복스호른은 아시아와 유럽의 몇몇 언어들이 서로 유사함을 지적했으며 이 언어들이 ‘스키타이어’라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나왔다는 이론을 세웠다.[137] 그의 가설에는 네덜란드어, 알바니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독일어가 포함돼 있었으며 나중에는 여기에 슬라브어파, 켈트어파, 발트어파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판 복스호른의 가설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며 추가적인 연구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스만 튀르크의 여행가 에블리야 첼레비는 1665 ~ 1666년에 외교 임무를 띠고 빈에 파견되었을 때 독일어와 페르시아어 단어 사이의 유사성을 기록했다. 프랑스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인도학자인 가스통 쾨르두를 비슷한 여러 사람도 비슷한 관찰을 했다. 쾨르두는 1760년대 후반에 산스크리트어·라틴어·그리스어의 동사 굴절을 꼼꼼하게 비교하여 이 언어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미하일 로모노소프는 슬라브어파, 발트어파(‘쿠를란트어’), 이란어군(‘메디아어’), 핀란드어, 중국어, ‘호텐토트어’(코에코에어) 등 서로 다른 언어군을 비교하였으며, 서로 연관된 언어들은(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고대에 공통의 조상들로부터 서로 갈라졌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138]
이 가설은 1786년 영국의 언어학자 윌리엄 존스가 그의 시대에 알려져 있던 가장 오래된 언어인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사이의 놀랄 만한 유사성에 관해 강의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그는 여기에 잠정적으로 고트어, 켈트어, 페르시아어를 덧붙였다.[139] 그의 분류에는 잘못 포함된 언어와 잘못 빠트린 언어도 몇몇 있기는 했다.[140] 존스는 1786년 벵골 아시아 협회의 강의에서 오래된 조상 언어의 존재를 추측하며 후대의 연구를 예지하듯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데, 이는 언어학에서 가장 유명한 인용구 중 하나이다. 그는 이 조상 언어를 “공통의 근원”이라 불렀지만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언어학자인 토머스 영은 1813년에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고, 하나의 발상지에서 나온 단일 민족이 이웃 민족들을 잇달아 침략하여 자기네 언어를 전파했으리라는 가정을 내놓는다.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이름은 어족이 분포하는 지역의 동쪽과 서쪽 끝인 북인도와 서유럽에서 따온 것이다.[142][143] 같은 뜻으로 ‘'''인도·게르만어족'''’(Indo-Germanic영어, Idg. 또는 IdG.)이라는 용어도 쓰이는데, 사용 지역의 최남단과 최북단에 분포하는 갈래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용어는 1810년 콩라드 말트브룅의 저작에서 프랑스어(indo-germanique프랑스어)로 처음 등장한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인도게르만어족’은 ‘인도유럽어족’에 비해 구식이거나 덜 흔하게 쓰이는 용어가 되었지만 독일어에서는 여전히 ‘indogermanischde’가 표준 용어이다.
2. 1. 2. 학문 체계의 확립
16세기에 인도 아대륙을 찾아간 유럽인들은 인도아리아어군 및 이란어군 언어와 유럽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을 알아차렸다. 1583년, 영국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콘칸어 학자였던 토머스 스티븐스는 고아에서 활동하던 중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136] 인도의 언어들과 그리스어 및 라틴어의 유사성에 관해 말했다.1540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인도를 방문한 상인인 필리포 사세티도 비슷한 관찰을 했다. 1585년에 그는 산스크리트어와 이탈리아어에 유사한 단어들이 있다고 기록했다. 그런 단어들의 예로는 devaḥ/dio “신”, sarpaḥ/serpe “뱀”, sapta/sette “일곱”, aṣṭa/otto “여덟”, nava/nove “아홉” 따위가 있었다.[136] 그러나 스티븐스나 사세티의 관찰은 보다 깊은 학문적 탐구로 이어지지 못했다.[136]
1647년 네덜란드의 학자 마르쿠스 주에리우스 판 복스호른은 아시아와 유럽의 몇몇 언어들이 서로 유사함을 지적했으며 이 언어들이 ‘스키타이어’라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나왔다는 이론을 세웠다.[137] 그의 가설에는 네덜란드어, 알바니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독일어가 포함돼 있었으며 나중에는 여기에 슬라브어파, 켈트어파, 발트어파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판 복스호른의 가설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며 추가적인 연구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스만 튀르크의 여행가 에블리야 첼레비는 1665 ~ 1666년에 외교 임무를 띠고 빈에 파견되었을 때 독일어와 페르시아어 단어 사이의 유사성을 기록했다. 프랑스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인도학자인 가스통 쾨르두를 비롯한 여러 사람도 비슷한 관찰을 했다. 쾨르두는 1760년대 후반에 산스크리트어·라틴어·그리스어의 동사 굴절을 꼼꼼하게 비교하여 이 언어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미하일 로모노소프는 슬라브어파, 발트어파(‘쿠를란트어’), 이란어군(‘메디아어’), 핀란드어, 중국어, ‘호텐토트어’(코에코에어) 등 서로 다른 언어군을 비교하였으며, 서로 연관된 언어들은(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고대에 공통의 조상들로부터 서로 갈라졌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138]
이 가설은 1786년 영국의 언어학자 윌리엄 존스가 그의 시대에 알려져 있던 가장 오래된 언어인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사이의 놀랄 만한 유사성에 관해 강의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그는 여기에 잠정적으로 고트어, 켈트어, 페르시아어를 덧붙였다.[139] 그의 분류에는 잘못 포함된 언어와 잘못 빠트린 언어도 몇몇 있기는 했다.[140] 존스는 1786년 벵골 아시아 협회의 강의에서 오래된 조상 언어의 존재를 추측하며 후대의 연구를 예지하듯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데, 이는 언어학에서 가장 유명한 인용구 중 하나이다. 그는 이 조상 언어를 “공통의 근원”이라 불렀지만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언어학자인 토머스 영은 1813년에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고, 하나의 발상지에서 나온 단일 민족이 이웃 민족들을 잇달아 침략하여 자기네 언어를 전파했으리라는 가정을 내놓는다.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이름은 어족이 분포하는 지역의 동쪽과 서쪽 끝인 북인도와 서유럽에서 따온 것이다.[142][143] 같은 뜻으로 ‘'''인도·게르만어족'''’(Indo-Germanic영어)이라는 용어도 쓰이는데, 사용 지역의 최남단과 최북단에 분포하는 갈래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용어는 1810년 콩라드 말트브룅의 저작에서 프랑스어(indo-germanique프랑스어)로 처음 등장한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인도게르만어족’은 ‘인도유럽어족’에 비해 구식이거나 덜 흔하게 쓰이는 용어가 되었지만 독일어에서는 여전히 ‘indogermanischde’가 표준 용어이다.
프란츠 보프는 1816년에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게르만어와 비교한 산스크리트어의 동사 굴절 체계에 관하여》[144]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고 1833년부터 1852년까지 《비교 문법》을 집필했다. 이는 학문 분야로서 인도유럽어학의 출발을 알렸다. 인도유럽어족 비교언어학의 고전기는 여기서부터 1861년 아우구스트 슐라이허의 《개론(Compendiumde)》을 거쳐 1880년대에 출판된 카를 브루크만의 《개요(Grundrißde)》로 이어진다. “근대적” 인도유럽어학의 시작은 브루크만의 젊은이 문법학파적 관점에 따른 인도유럽어학 분야의 재평가와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후두음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1927년에 히타이트어 자음 ḫ의 존재를 밝혀낸 예지 쿠리워비치의 1956년 저작 《인도유럽어의 모음교체》 이후, 캘버트 왓킨스, 요헴 쉰들러, 헬무트 릭스 등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학자들은 인도유럽어족의 형태론과 모음교체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145] 쿠리워비치의 발견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1879년에 인도유럽어에서 나타나는 모음 길이 변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공명계수’(coefficients sonantiques프랑스어)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언어 간에 계통적인 관계가 있다는 생각과 그에 기반한 비교 연구는 인도유럽어족이 다른 어족에 앞선 것이며, 인도유럽어족 연구사와 비교언어학 연구사는 그 시작에서 겹쳐 있다.[64][65] 따라서 인도유럽어족 연구에서 발견된 개념은 다른 어족 또는 넓게 언어학 연구에 응용되었다.
게오르크 쿠르치우스는 분화되어 있던 언어학과 문헌학의 협조를 요구했다. 쿠르치우스의 제자 세대에 해당하며, 문제 의식을 계승한 라이프치히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학자들은 1870년대 이후 음운론의 실증적인 연구를 발표하여 젊은이 문법학파라고 불렸다. 청년 문법 학파의 실증을 중시하는 주장은 “음운 법칙에 예외 없음”으로 대표되며, 대표자인 카를 브루크만의 주장은 쿠르치우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요하네스 슈미트등의 비판을 받아 논쟁은 격화되었다.[75][76]
- -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유학하여 청년 문법 학파와 교류가 있었던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1878년에 제출한 논문 『인도유럽어족에 있어서 모음의 원시적 체계에 관한 각서』(프랑스어: Mémoire sur le système primitif des voyelles dans les langues indo-européennes)는 인도유럽어의 모음 체계와 모음 교체를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획기적인 학설이었다.[77] 모음 교체를 설명하기 위해 음성적으로 정체불명의 “소낭적 기능음”을 세우는 이론적 가설이었지만,[63] 실증을 중시하는 청년 문법 학파가 숭배하는 원리와 충돌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1870년대 전후를 통해, 존스의 지적을 받은 연구는 독일 낭만주의의 융성과 더불어 독일에서 활발해졌다.[78][79]
2. 1. 3. 사어 연구를 통한 어족의 확대
16세기 유럽인들이 인도 아대륙을 방문하면서 인도아리아어군, 이란어군, 유럽의 언어 사이의 유사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583년 영국의 예수회 선교사 토마스 스테픈스는 인도 언어와 그리스어, 라틴어 사이의 유사성을 언급한 편지를 썼다.[4] 1585년에는 피렌체 상인 필리포 사세티가 산스크리트어와 이탈리아어 사이의 단어 유사성을 기록했다.[4] 그러나 이들의 관찰은 학문적 연구로 이어지지 않았다.[4]1647년 네덜란드 언어학자 마르쿠스 추에리우스 반 폭스호른은 특정 아시아 및 유럽 언어들이 스키타이어라는 공통 조어에서 유래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4] 그는 네덜란드어, 알바니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독일어를 포함시켰고, 나중에 슬라브어군, 켈트어군, 발트어군을 추가했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665년 오스만 튀르크 여행가 에블리야 첼레비는 독일어와 페르시아어 단어 사이의 유사점을 언급했다.[4]
1760년대 후반, 가스통-로랑 꾸르두는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그리스어의 활용을 비교하여 이들 언어 간의 관계를 제안했다.[4] 미하일 로모노소프는 슬라브어, 발트어, 이란어, 핀란드어, 중국어, 코이코이어 등 여러 언어군을 비교하여 관련 언어들이 고대에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리되었음을 지적했다.[4]
1786년 윌리엄 존스 경은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의 유사성에 대해 강의하며, 고트어, 켈트어, 페르시아어를 추가했다.[5] 그는 이 언어들이 공통 조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7]
1813년 토마스 영은 '인도유럽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8][9] 1810년 콘라드 말테-브륀은 '인도게르만어'라는 동의어를 제시했다.[8][9]
프란츠 보프는 1816년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게르만어의 활용 체계를 비교하는 책을 썼고, 1833~1852년에는 ''비교 문법''을 저술하여 인도유럽어 연구의 시작을 알렸다.[10] 아우구스트 슐라이허의 ''Compendium''(1861), 칼 브뤼그만의 ''Grundriss''(1880년대)를 거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후두음 이론 발전으로 "현대" 인도유럽어 연구가 시작되었다.
예르지 쿠릴로비치는 1956년 ''인도유럽어의 음운 변화''에서 형태론과 음운 교체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11] 그는 1927년 히타이트 자음 ḫ의 존재를 지적했고,[11] 이는 소쉬르의 ''coefficients sonantiques'' 존재를 뒷받침하여 후두음 이론으로 이어졌다.
19세기 말 이후 타림 분지에서 발견된 문서들이 해독되어 토하라어로 명명되었고, 이는 인도유럽어족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세기에는 소아시아의 히타이트어가 연구되어 인도유럽어족에 포함되거나 연관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80] 예르지 쿠릴로비치는 히타이트어의 후두음이 소쉬르의 소리나는 자음에 대응한다는 것을 지적하여 후두음 이론이 성립되었다.[81]
인도유럽어 연구 초기부터 인도유럽어족을 다른 어족과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논란의 여지가 많다.[52] 인도유럽어족과 다른 어족을 연결하는 제안에는 우랄알타이어족, 폰티크어족, 노스트라틱어족, 유라시아어족 등이 있다.[52]
2. 2. 원향 문제
인도유럽어족의 원향(原鄕) 문제는 인도유럽어족의 기원과 확산 과정을 밝히는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이 문제는 언어학, 고고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활발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인도유럽조어(PIE)는 여러 음운 규칙에 따라 다양한 자손 언어들로 분화되었다. 인도유럽조어는 15개의 파열음 음소를 가진 복잡한 소리 체계를 가졌던 것으로 재구되며, 무성음·유성음·유기유성음의 3중 발성 대립과 연구개음을 3계열로 구분하는 특징을 지녔다.
인도유럽조어가 어떻게 분화되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는 영어이다. 영어는 그림의 법칙에 따라 모든 파열음 음소의 발음이 변하고, 어중이나 어말의 자음에도 다양한 변화가 생기는 등 다른 켄툼어와 마찬가지로 파열음이 15개에서 12개로 줄었다.
인도유럽조어의 후손 언어들은 기본 연구개음 계열을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켄툼어와 사템어로 구분된다.
- 사템어(인도이란어파, 발트슬라브어파, 알바니아어, 아르메니아어)는 “기본 연구개음”과 양순연구개음을 기본 연구개음으로 합쳤고, 이 소리들은 이차적으로 전설모음(e i ē ī) 앞에서 구개음화되기도 한다. “경구개음” 계열은 구개음화되어 주로 치찰음으로 반영된다.
- 켄툼어(게르만어파, 이탈리아어파, 켈트어파, 그리스어파, 아나톨리아어파, 토하라어)는 “경구개음”과 “기본 연구개음”을 기본 연구개음으로 합쳤다. 양순연구개음은 그대로 두었으며, 나중에 평범한 순음이나 연구개음으로 바꾸기도 했다.
인도유럽조어의 무성·유성·유성유기 파열음 간 3중 대립은 언어유형론적으로 매우 특이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무성 유기 파열음 계열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성 유기 파열음이 존재한다는 점이 그렇다. 이처럼 PIE의 불안정한 3중 대립을 그대로 유지한 어파는 없으며 저마다 다양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 인도아리아어군은 세 계열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무성 유기음이라는 네 번째 계열을 만들어냈다.
- 이란어군도 같은 단계를 거친 듯하며, 그 후에 유기 파열음을 마찰음으로 바꾸었다.
- 그리스어파는 유성 유기음을 무성 유기음으로 바꾸었다.
- 이탈리아어파도 같은 단계를 거친 듯하나, 유성 유기음을 무성 마찰음으로 반영한다. 특히 f의 경우가 그렇다(라틴어에서는 유성 파열음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 켈트어파, 발트슬라브어파, 아나톨리아어파, 알바니아어는 유성 유기음을 유성음 계열로 합쳤다.
- 게르만어파와 아르메니아어는 세 계열 모두를 연쇄 변화로 바꾸었다. (예컨대 게르만어파는 그림의 법칙에 따라 bh b p를 b p f로 바꾸었다.)
그 밖에 자음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들은 다음과 같다.
- 사템어에 나타난 루키 법칙: r, u, k, i 앞에서 s는 가 되었다.
- 켈트조어에서 모음 앞 p의 탈락.
- 그리스조어에서 모음 앞 s는 h가 되었고, 이후에 모음 사이에서 h가 탈락했다.
- 게르만조어에서 나타난 베르너의 법칙.
- 그리스조어와 인도이란조어에서 독립적으로 나타난 그라스만의 법칙(유기음 이화 법칙).
아래의 표에는 재구에 중요하게 쓰이는 후손 언어들에 인도유럽조어 자음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대강 나타내었다.
PIE | Skr. | OCS | Lith. | 그리스어 | 라틴어 | OIr. | 고트어 | 영어 | 예시 | |||||
---|---|---|---|---|---|---|---|---|---|---|---|---|---|---|
PIE | 영어 | Skr. | 고대 그리스어 | 라틴어 | Lith. 등 | |||||||||
; H | colspan="4"| | ; | ; | ; | *pṓds ~ *ped- | foot | pád- | poús (podós) | pēs (pedis) | pãdas | ||||
; H | colspan="4"| | ; | ; | ; | *tréyes | three | tráyas | treĩs | trēs | trỹs | ||||
rowspan="2"| | rowspan="2"| | ; | ; | ; | *ḱm̥tóm | hund(red) | śatám | he-katón | centum | šimtas | ||||
; E ; | ; | rowspan="3"| | *kreuh₂ | |||||||||||
rowspan=2| | ; | ; | ; | ; | *kʷid, kʷod | what | kím | tí | quid, quod | kas, kad | ||||
*kʷekʷlom | wheel | cakrá- | kúklos | kãklas | ||||||||||
; H | colspan="4"| | ; | colspan="2"| | |||||||||||
; H | colspan="4"| | ; | colspan="2"| | *déḱm̥(t) | ten, | |||||||||
; | colspan="2" rowspan="2"| | ; | rowspan="2"| | ; | *ǵénu, *ǵnéu- | OE cnēo | ||||||||
; | ; | rowspan="2"| | *yugóm | yoke | yugám | zugón | iugum | jùngas | ||||||
; | ; | ; | *gʷīw- | quick | ||||||||||
; | colspan="2"| | ; | '-; | ; | ; | *bʰerō | bear "carry" | bhar- | phérō | ferō | OCS berǫ | |||
; | colspan="2"| | ; | '-; | ; | ; | *dʰwer-, dʰur- | door | dhvā́raḥ | thurā́ | forēs | dùrys | |||
; | ; | ; | ; | ; | ; | *ǵʰans- | goose, | |||||||
; | ; | rowspan="3"| | ||||||||||||
rowspan=2| | ; | '-; | ; | ; | *sneigʷʰ- | snow | sneha- | nípha | nivis | sniẽgas | ||||
*gʷʰerm- | ??warm | gharmáḥ | thermós | formus | Latv. gar̂me | |||||||||
rowspan="2"| | colspan="3"| | '-; | ; | ; | ; | ; | *septḿ̥ | seven | saptá | heptá | septem | septynì | ||
ruki- | ruki- | ruki- | *h₂eusōs | |||||||||||
colspan="5"| | ; | colspan="2"| | *mūs | mouse | mū́ṣ- | mũs | mūs | OCS myšĭ | ||||||
- | - | - | - | - | - | *ḱm̥tóm | hund(red) | śatám | (he)katón | centum | OPrus simtan | |||
; | colspan="6"| | *nokʷt- | night | nákt- | núkt- | noct- | naktis | |||||||
(방언 ) | colspan="7"| | *leuk- | light | rócate | leukós | lūx | laũkas | |||||||
colspan="8"| | *h₁reudʰ- | red | rudhirá- | eruthrós | ruber | raũdas | ||||||||
colspan="2"| | / | ; | *yugóm | yoke | yugám | zugón | iugum | jùngas | ||||||
; | colspan="2"| | *h₂weh₁n̥to- | wind | vā́taḥ | áenta | ventus | vėtra | |||||||
PIE | Skr. | OCS | Lith. | 고대 그리스어 | 라틴어 | OIr. | 고트어 | 영어 |
:참고:
- '''C'''- 어두
- -'''C'''- 모음과 모음 사이
- -'''C''' 어말
- `-'''C'''- 비강세 모음 뒤 (베르너의 법칙)
- -'''C'''-(rl) 모음과 모음 사이, 또는 모음과 사이 (어느 순서로든)
- '''C'''T (PIE) 파열음() 앞
- '''C'''T− (PIE) 장애음(, 등등; ) 앞
- '''C'''(T) 장애음(, etc.; ) 앞 또는 뒤
- '''C'''H 후두음 앞
- '''C'''E (PIE) 전설모음() 앞
- '''C'''E' 이차적(PIE 이후) 전설모음 앞.
- '''C'''e 앞
- '''C'''(u) (PIE) 앞 또는 뒤 (보콜로스 법칙).
- '''C'''(O) (PIE) 앞 또는 뒤 (보콜로스 법칙).
- '''C'''n− 뒤
- '''C'''R 공명음() 뒤
- '''C'''(R) 공명음() 앞 또는 뒤
- '''C'''(r),l,u− 앞 또는 뒤
- '''C'''ruki− 뒤 (루키 법칙)
- '''C'''..Ch 뒤 음절의 유기음 앞(그라스만의 법칙)
- '''C'''E..Ch (PIE) 전설모음() 앞, 또는 뒤 음절의 유기음 앞(그라스만의 법칙)
- '''C'''(u)..Ch (PIE) 앞 또는 뒤, 또는 뒤 음절의 유기음 앞(그라스만의 법칙)
인도유럽어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초기부터 언어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세기에는 인도유럽조어의 어휘를 비교하여 원향을 추정하는 방법이 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아돌프 피크테(Adolphe Pictet)는 산스크리트어가 가장 오래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오해하여 고대 박트리아 지역을 원향으로 제시했다. 테오도르 벤파이(Theodor Benfay)는 사자를 가리키는 단어의 공통 어원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사자의 서식지를 배제하고 유럽을 원향으로 제시했다.
20세기에 들어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언어학적 방법 외에도 집단의 이동, 경작, 가축, 도구의 발전을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방법이 가능해졌다. 1950년대 마리야 짐부타스(Marija Gimbutas)는 쿠르간 가설을 제안하여 흑해 북부 스텝 지역의 쿠르간 문화를 인도유럽어족의 기원으로 보았다.

1987년 콜린 렌프루(Colin Renfrew)는 아나톨리아 가설을 제시하여 아나톨리아 반도를 원향으로 보았다. 2003년 러셀 그레이(Russell D. Gray)와 퀸틴 애트킨슨(Quentin Atkinson)은 계산 생물학 기법을 사용하여 아나톨리아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는 쿠르간 가설이 중심적인 학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아나톨리아 가설을 비롯한 다른 가설들도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2. 2. 1. 언어학적 탐구
베다 산스크리트어(기원전 1500년경~500년)는 그 출처 문서가 모두 구전으로 이루어졌고, 최초로 기록되기 전까지 약 2,000년 동안 구전 전승(샤카 학파)을 통해 전해져 내려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가장 오래된 문서들은 모두 시가 형태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것은 리그베다(기원전 1500년경)이다.고대 그리스어(기원전 750년경~400년)의 경우 미케네 그리스어(기원전 1450년경)가 가장 오래된 기록된 형태이지만, 자료의 제한, 제한된 주제, 그리고 매우 모호한 문자 체계 때문에 그 가치가 떨어진다. 두 개의 호메로스 서사시(''일리아스''와 ''오디세이'', 기원전 750년경)로 시작하여 광범위하게 기록된 고대 그리스어가 더 중요하다.
히타이트어(기원전 1700년경~1200년)는 모든 인도유럽어 중 가장 일찍 기록된 언어이며, 나머지 언어들과 분리된 아나톨리아어파의 초기 분리로 인해 다른 언어들과 매우 다르다. 이 언어는 다른 언어들에서 단편적으로만 발견되거나 전혀 발견되지 않는 매우 고대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언어는 문자 체계의 모호함과 결합하여 유용성을 다소 저해하는 많은 초기 음운론적 및 문법적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주요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 라틴어: 고전 시대(기원전 200년경 – 서기 100년)의 방대한 시가와 산문 자료와 기원전 6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제한적인 오래된 자료에서 증명된다.
- 고트어(가장 고대의 잘 기록된 게르만어파, 서기 350년경)와 다른 고대 게르만어들의 결합된 증거: 가장 중요한 것은 고대 영어(800년경–1000년), 고대 고지 독일어(750년경–1000년)와 고대 노르드어(서기 1100년경–1300년, 서기 2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제한적인 초기 자료)이다.
- 고대 아베스타어(기원전 1700년경–1200년)과 아베스타어(기원전 900년경). 자료는 부족하지만, 매우 고대의 특성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다.
- 현대 리투아니아어: 고대 리투아니아어(1500년경–1700년)의 제한적인 기록과 함께.
- 고대 교회 슬라브어(900년경–1000년).
증명이 부족하여 가치가 낮은 다른 부차적인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 루위어, 리키아어, 리디아어 및 기타 아나톨리아어파(기원전 1400년경–400년).
- 오스칸어, 움브리아어 및 기타 고대 이탈리아 언어(기원전 600년경–200년).
- 고대 페르시아어(기원전 500년경).
- 고대 프로이센어(1350년경–1600년); 리투아니아어보다 더 고대의 언어이다.
광범위한 음운 변화와 비교적 제한적인 증명으로 인해 가치가 낮은 다른 부차적인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 고대 아일랜드어(서기 700년경–850년).
- 토카리아어(서기 500년경–800년): 원시 언어에서 큰 음성 변화와 합병을 겪었고, 거의 완전히 개편된 굴절 체계를 가지고 있다.
- 고전 아르메니아어(서기 400년경–1000년).
- 알바니아어(1450년경–현재).
인도유럽어족 또는 그 화자 집단의 원향에 대해서는 오늘날 쿠르간 가설이 중심적인 학설이지만, 이에 이르기까지 논쟁의 역사가 있다. 언어학적 탐구가 주를 이루던 시대에는 인도유럽어족의 어휘를 비교하여 인도유럽조어의 어휘를 제시하고, 그 특징으로부터 지역을 특정하려는 방법이 취해졌다. 고고학의 발달에 따라 이러한 방법 외에도 집단의 이동이나 경작, 가축, 도구의 발전을 실증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원향(原鄕) 문제에 관한 체계적인 저술을 처음으로 발표한 사람은 아돌프 피크테(Adolphe Pictet)였다. 당시 연구 초기 단계였고, 인도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크테는 산스크리트어가 모든 면에서 오래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이처럼 아시아를 이상화하는 편향된 시각은 19세기 전반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하며, 피크테는 원향으로 고대 박트리아에 해당하는 암다리아 강 중류 지역을 상정하여 동방설(아시아설)의 시초가 되었다.[82]
아시아설을 비판하고 유럽설을 도입한 초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산스크리트어 전문가인 테오도르 벤파이가 있다. 벤파이는 인도유럽어족에서 사자(혹은 대형 육식동물)를 가리키는 단어가 각각 독립적이며 공통 어원을 상정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사자의 서식지를 배제했지만, 억지스러운 면이 있어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다.[83] 현대에는 유럽이 사자의 서식지였을 가능성과 인도유럽 조어 어휘에 사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 양쪽 모두에서 비판을 받는 형태가 되어, 성립하지 않는 논의로 간주되고 있다.
2. 2. 2. 정치적 이용
인도와 이란 등 아시아의 언어와 유럽의 언어가 공통 조상을 가진다는 개념은, 특히 그 화자들에게는 선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학문적인 탐구와 명확히 구별하기 어려운 면이 있으면서도, 어떤 종류의 사상에 기반한 주장을 불러일으키고, 또 자주 정치적으로 이용된다.[63]그 전형적인 예로 아리아인 학설이 있다. 아리아인은 『리그베다』와 『아베스타』의 저자들의 자칭에서 유래하며, 인도-이란어파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말로서, 원래의 범위를 넘어서는 의미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사교계에는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63]
『리그베다』를 번역한 맥스 뮬러는 인도에 진입한 산스크리트어 화자들을, 그들의 자칭에서 "고귀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아리아인"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뮬러의 주장에는 근거가 부족하여 후년에 철회되었지만, 문명의 조상이라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에 의해 언어학적 질문에서 유럽 문명의 기원에 대한 질문으로 변질되는 서막이 열렸다고 여겨진다.[86] 뮬러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예로 꼽히는 프랑스 작가 아르튀르 르 몽 드 고비노의 『인종 불평등론』(1853-1855년)은 인류를 흑색·황색·백색으로 크게 나누고, 백색 인종에 속한다는 "아리아인"의 문명성을 찬양했다.[86] 매디슨 그랜트의 『위대한 인종의 소멸』(1916년)에서는 영국계 또는 독일계 미국인이라는 의미에서 "아리아인"을 사용하여 유대인은 물론 폴란드, 체코, 이탈리아계 이민자와의 혼혈을 경고했다.[63] 이러한 유럽과 미국 사상의 흐름 속에서 고비노의 아리아 인종 우월주의가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의 『19세기의 기초』(1899년)와 신비주의 사상가 헬레나 P. 블라바츠키에 의해 계승되었다. 체임벌린의 인종 우월주의와 블라바츠키의 신지학에는 거리가 있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수용됨에 따라 결합되어 아리아 인종 우월주의를 신지학으로 해석하는 사상이 탄생했다. 이 사상은 나치즘의 원류 중 하나가 되어 "아리아=게르만 인종"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86]
1990년대 이후, 힌두 민족주의의 산스크리트어를 칭송하는 담론 속에서 인도 기원설이 주장되고 있다. 나가타에 따르면, 맥스 뮬러 이후의 "아리아인 침입설"의 문제점은 짐 셰퍼, 레이먼드 올친, 아스코 파르폴라 등에 의해 학문적으로 비판받아 왔을 뿐만 아니라, 뮬러 직후부터 힌두 개혁가들에 의해 종교적 해석에 기반한 비판도 받아왔다. 이러한 것을 받아들여, 데이비드 플로리와 나바라트나 라자라암 이후의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저서에서 반 아리아인 침입설과 함께 "인도유럽 조어=산스크리트어, 인도 기원"론을 전개하고 있다. 나가타는 발단이 된 라자라암의 주장을 분석하여, 학문적인 비판에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짓고 있다.
현실적인 역사관에 맞지 않는 정치적 이용의 예는 또 있으며, 앤서니는 예로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 여신 운동, 러시아의 민족주의·네오파가니즘을 들고 있다.[63]
2. 2. 3. 관련 학문 분야의 확대
인도유럽어족 또는 그 화자 집단의 원향에 대해서는 오늘날 쿠르간 가설이 중심적인 학설이지만, 이에 이르기까지 논쟁의 역사가 있다. 언어학적 탐구가 주를 이루던 시대에는 인도유럽어족의 어휘를 비교하여 인도유럽조어의 어휘를 제시하고, 그 특징으로부터 지역을 특정하려는 방법이 취해졌다. 고고학의 발달에 따라 이러한 방법 외에도 집단의 이동이나 경작, 가축, 도구의 발전을 실증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원향 문제에 관한 체계적인 저술을 처음으로 발표한 사람은 아돌프 피크테(Adolphe Pictet)였다. 풍간(風間)에 따르면, 당시는 연구의 초기 단계였고 인도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크테는 산스크리트어가 모든 면에서 오래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이처럼 아시아를 이상화하는 편향된 시각은 피크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슐레겔 등 19세기 전반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피크테는 원향으로 고대 박트리아에 해당하는 암다리아 강 중류 지역을 상정하여 동방설(아시아설)의 시초가 되었다.[82]
아시아설을 비판하고 유럽설을 도입한 초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산스크리트어 전문가인 테오도르 벤파이가 있다. 벤파이는 인도유럽어족에서 사자(혹은 대형 육식동물)를 가리키는 단어가 각각 독립적이며 공통 어원을 상정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사자의 서식지를 배제했지만, 억지스러운 면이 있어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다.[83] 현대에는 유럽이 사자의 서식지였을 가능성[84]과 인도유럽 조어 어휘에 사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 양쪽 모두에서 비판을 받는 형태가 되어, 성립하지 않는 논의로 간주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선사 시대를 다루는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언어학뿐 아니라 고고학의 관점에서도 연구되기 시작했다. 고고학을 응용한 초기 연구로는 구스타프 코시나(Gustaf Kossinna)의 1902년 연구가 있다.[87]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원향이 독일에 있다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나치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원향 문제가 금기시되었다.[88][89]
원향 문제가 고고학 연구 분야로 부활한 것은 1950년대 마리야 짐부타스(Marija Gimbutas)가 제안한 쿠르간 가설부터라고 여겨진다. 흑해 북부 스텝 지역 기원전 4000년 이후 청동기 시대 문화를, 해당 지역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봉토분(墳丘墓)의 이름을 따서 쿠르간 문화라고 부른다. 쿠르간 가설에 따르면, 흑해 북부 스텝 유목민이 인도유럽 조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말을 가축화하고 기원전 3600년~2300년경 쿠르간 문화(그중 야므나야 문화)와 함께 인도유럽 조어를 퍼뜨렸다. 짐 마로리(J. P. Mallory)와 데이비드 앤서니(David W. Anthony)가 이에 동조했으며, 앤서니는 스텝 지역에서의 말 가축화와 승마의 기원을 보여줌으로써 가설을 강화하려 했다.[63]
1987년 영국의 콜린 렌프루가 아나톨리아 가설을 제시했다. 인도유럽 조어족의 고향은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으며, 중앙 그리스에 최초의 농경 경제를 일으킨 후 기원전 6500년 이후 확산되었다는, 농경 경제를 중심으로 한 제안이었다. 고대 그리스어가 히타이트어보다 산스크리트어와 훨씬 유사하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당시 사회에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인도유럽 조어에 말과 관련된 어휘가 재구성됨으로써 반박되는 등, 렌프루의 주장은 기존 언어학의 입장에서는 특히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63]
생물학자 러셀 그레이(Russell D. Gray)와 퀸틴 애트킨슨(Quentin Atkinson)은 2003년 계산 생물학 기법을 사용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언어 연대학을 개량하여 통계적으로 단어의 유사성을 분석한 결과, 인도유럽 조어가 각 언어로 분기된 시기는 기원전 6000년 이전이라고 제시하며 아나톨리아 가설을 지지했다.[63]
앤서니는 90년대 이후 고고학을 바탕으로 한 연구를 2007년 저서 『말, 바퀴, 언어』에 발표했다. 폰투스-카스피해 스텝을 원향으로 설정하여 인도유럽어의 확산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쿠르간 가설을 수정·보강하여 아나톨리아 가설에 대한 반론을 시도했다.[91][92]
언어학자 앤드류 개럿(Andrew Garrett (linguist)) 등은 2013년 이후 연구에서, 분석 조건을 바꾸어 수행하면 분기 시기가 그레이 등이 제시한 시기보다 늦게 추정된다며 그레이 등이 설정한 전제를 비판했다. Balter에 따르면, 그레이 등은 개럿 등의 연구를 계승한 분석에 착수하여 다시 아나톨리아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63]
렌프루는 1994년 사망한 짐부타스를 기념하는 2017년 강연에서, 자신의 주장과의 공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마리야의 쿠르간 가설은 훌륭하게 입증되었다”라고 말하며 쿠르간 가설을 인정했다.[93] 렌프루의 업적을 기리는 2018년 기사에서는 언어 연대학 이외의 관점에서는 아나톨리아 가설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94]
2. 2. 4. 쿠르간 가설과 아나톨리아 가설
인도유럽어족의 원향(原鄕)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쿠르간 가설과 아나톨리아 가설이 가장 대표적이다.쿠르간 가설은 1950년대 마리야 짐부타스(Marija Gimbutas)가 제안한 것으로, 흑해 북부 스텝 지역의 쿠르간 문화(봉토분(墳丘墓) 문화)를 인도유럽어족의 기원으로 본다. 짐부타스는 기원전 4000년 이후 청동기 시대의 쿠르간 문화, 그 중에서도 얌나야 문화(Yamnaya culture)를 사용하던 유목민들이 인도유럽조어(祖語)를 사용했으며, 이들이 말을 가축화하고 기원전 3600년~2300년경에 인도유럽조어를 퍼뜨렸다고 주장했다. 짐 마로리(J. P. Mallory)와 데이비드 앤서니(David W. Anthony)는 이 가설을 지지했으며, 특히 앤서니는 스텝 지역에서 말 가축화와 승마의 기원을 밝혀내 가설을 뒷받침하려 했다.[63]
1987년에는 영국의 콜린 렌프루(Colin Renfrew)가 아나톨리아 가설(Anatolian hypothesis)을 제시했다. 이 가설은 인도유럽어족의 고향이 아나톨리아 반도이며, 기원전 6500년 이후 중앙 그리스에 최초의 농경 경제를 일으킨 후 확산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고대 그리스어가 히타이트어보다 산스크리트어와 훨씬 유사하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하고, 당시 사회에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인도유럽조어에 말과 관련된 어휘가 재구성되면서 반박되었다.[90] 이러한 이유로 렌프루의 주장은 언어학계에서 회의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졌다.[63]
2003년, 생물학자 러셀 그레이(Russell D. Gray)와 퀸틴 애트킨슨(Quentin Atkinson)은 계산 생물학 기법을 활용한 연구를 통해 인도유럽조어가 각 언어로 분기된 시기가 기원전 6000년 이전이라고 주장하며 아나톨리아 가설을 지지했다.[63] 그러나 언어학자 앤드류 개럿(Andrew Garrett (linguist)) 등은 분석 조건을 변경하면 분기 시기가 더 늦게 추정된다며 그레이 등의 전제를 비판했다.
데이비드 앤서니는 2007년 저서 『말, 바퀴, 언어(馬・車輪・言語)』에서 폰투스-카스피해 스텝(Ponto-Caspian Steppe)을 원향으로 설정하고 인도유럽어의 확산 과정을 제시하며 쿠르간 가설을 보강하여 아나톨리아 가설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91][92]
콜린 렌프루는 2017년 강연에서 자신의 주장과 쿠르간 가설이 공존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도, "마리야의 쿠르간 가설은 훌륭하게 입증되었다"라며 쿠르간 가설을 인정했다.[93]
3. 어파
오늘날 인도유럽어족 언어는 전 세계 32억 명이 모어로 사용하며,[182] 이는 모든 어족 가운데 가장 큰 숫자이다. 모어 화자 수가 가장 많은 20개 언어 중 10개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스페인어, 영어, 힌두스탄어, 포르투갈어, 벵골어, 러시아어, 펀자브어, 독일어, 프랑스어, 마라티어가 대표적이며, 이들의 모어 화자 수만 합쳐도 17억 명에 이른다.[183] 또한 세계적으로 수억 명이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인도유럽어를 배우며, 영어를 제2언어로 배우는 사람만 해도 대략 6억[184]에서 10억[185]에 달한다.
인도유럽어족이 이토록 널리 쓰이게 된 배경에는 선사 시대 인도유럽인의 이주와 인도아리아족, 이란족, 켈트족, 그리스인, 로마인, 게르만족, 슬라브족 등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인도유럽 문화 확산이 있다. 이들 언어는 근동 일부, 북아시아, 동아시아를 제외한 유라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했고, 기존 언어들을 대체했다. 단, 중동과 북아프리카 대부분은 셈어파 언어가, 캅카스에서는 캅카스 제어가 지배적이다. 유럽과 우랄산맥 지역에서는 헝가리어,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 등 우랄어족 언어와 고립어인 바스크어가 남아있다.
인도유럽어족의 주요 어파는 다음과 같다.
- 알바니아어(Albanian)
- 아나톨리아어군(Anatolian languages)
- 아르메니아어(Armenian)
- 발토-슬라브어군(Balto-Slavic)
- 슬라브어파(Slavic)
- 발트어파(Baltic)
- 켈트어파(Celtic)
- 게르만어파(Germanic)
- 그리스어파(Hellenic)
- 인도이란어군(Indo-Iranian)
- 인도아리아어군(Indo-Aryan)
- 이란어군
- 누리스타니어군
- 이탈리아어파(Italic)
- 토하라어군(Tocharian)
이 외에도 여러 멸종된 언어와 알려지지 않은 언어 및 언어 그룹이 존재했거나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트어파와 슬라브어파는 발트슬라브어파로 묶기도 한다. 프리기아어 포함 여부에 따라 10개 또는 12개 어파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1. 아나톨리아어파
아나톨리아어파는 인도유럽조어 또는 그 원형에 해당하는 언어에서 파생된 최초의 언어 그룹으로 여겨진다. 히타이트 제국의 공용어였던 히타이트어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어파에 속하는 언어는 모두 사어가 되어 역사적 자료에만 남아 있다.아나톨리아조어에서 히타이트어, 루위어, 팔라어로 분화되었고, 이 세 가지가 큰 줄기를 이룬다고 생각된다.[103] 대부분은 아카드어에서 계승한 설형문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상형문자 루위어와 그리스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알파벳을 사용하는 루키아어가 알려져 있다. 다이조·요시다는 루위어를 설형문자 루위어와 상형문자 루위어로 분류하고, 루키아어, Milyan language|밀리안어영어, 루디아어를 추가하여 7개를 확정적인 아나톨리아어파로 꼽고 있다.[100] 이에 따르면, 루키아어와 밀리안어는 루위어와 가깝고, 파생된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히타이트어와 팔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코카서스어와 연관된 핫티어 사용자가 살았던 아나톨리아 중부에 침입하여, 기원전 1650~1600년경에 히타이트 제국이 핫티족의 독립 왕국을 정복했다.[103] 히타이트어와 팔라어에는 핫티어, 히타이트어에는 또한 훌리어, 아카드어에서 유래한 차용어가 보인다.[101] 반면, 루위어에는 핫티어에서 차용한 것은 보이지 않고 "정체불명의 비인도유럽어"에서 차용한 것이 보이며, 핫티어의 중심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103]
시제가 현재와 과거밖에 없고, 성이 남성과 중성밖에 없으며, 후두음의 존재 등 다른 오래된 인도유럽어와 공통되지 않는 특징을 가짐으로써 초기 인도유럽어 연구에 기여했다. 히타이트어는 재구성된 인도유럽조어와 크게 다르며, 인도유럽조어의 더 이전 단계에서 분화되었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인도유럽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인도-히타이트어 가설도 제시되고 있다.[103] 마쓰모토는 히타이트어를 특별 대우하여 기존의 이해를 유지하려는 것보다, 그것이 보여주는 사실을 받아들여 비교 문법의 방법론을 재편하는 움직임이 우세하다고 하고 있다.[63]
3. 2. 토하라어파
토하라어(토카라어, 토하라어라고도 불림)는 중앙아시아 타림 분지 북쪽 가장자리 지역에서 8세기까지 사용되었다.3. 3. 그리스어파
헬레네어파라고도 불린다. 인도유럽어족의 한 어파로, 그리스어가 이에 속한다.3. 4. 알바니아어파
알바니아어는 인도유럽어족 내에서 독립적인 어파를 이룬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는 것이 밝혀진 후, 일리리아어, 트라키아어, 다키아어, 베네토어, 에트루리아어 등 고대 발칸 반도 언어들과의 관계가 연구되었다. 많은 연구자들이 알바니아어가 일리리아어에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63]
슈쿠빈 강을 경계로 북부의 게그 방언과 남부의 토스크 방언으로 크게 나뉜다. 알바니아 공화국과 인접한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북서부, 몬테네그로 남동부에서도 게그 방언이 사용된다.[63] 이탈리아의 알바니아계 이주민이 사용하는 알바레시어, 그리스의 알바니아계 이주민이 사용하는 아르바니티카어는 알바니아어에서 파생되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15세기로, 1462년 라틴 문자로 작성된 세례 의식 관련 문서이다. 16세기 중반부터 게그 방언 문헌이, 이어서 토스크 방언과 알바레시어로 기록된 문헌이 남아 있다. 초기 문헌에서는 방언 차이가 크지 않았으나,[63] 15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의 지배로 영토와 종교가 분열되면서 방언 차이가 커졌다.[63] 이에 따라 아랍 문자나 그리스 문자가 사용되기도 했다. 1908년 회의에서 알바니아어 라틴 문자가 제정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63]
19세기 이후, 엘바산(게그 방언에 가까운 토스크 방언 지역) 방언을 기반으로 표준어를 정비하려는 제안이 있었고, 1952년과 1972년 회의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안이 채택되었다. 알바니아 국외에서도 문어로는 이 표준어를 따르고 있다.[104][105]
명사는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로 나뉘며, 제한적으로 중성 명사도 존재한다. 단수와 복수 각각 주격, 소유격, 여격, 대격, 탈격의 5가지 격을 가진다. 정관사가 없는 명사는 주격과 대격이 일치하고, 소유격, 여격, 탈격도 일치한다. 형용사는 격변화를 하지 않으며, 성과 수에 따라 변하는 유형과 변하지 않는 유형이 있다. 변하는 유형도 성 또는 수 중 하나에만 대응하는 경우가 많고, 4가지 유형으로 변하는 것은 대부분 불규칙 형용사이다. 능동태를 기본으로 많은 동사가 중동·수동태를 가진다. 법에는 직설법, 접속법, 조건법, 희구법, 감탄법, 명령법이 있으며 시제, 태와의 관계는 복잡하다.[63]
알바니아어는 발칸 언어 연합의 일원으로 여겨진다. 계통적 관계와는 별개로, 언어 접촉에 의한 수렴 현상으로 인해 광범위한 문법적 공통점이 나타난다. 특히 루마니아어와 유사한 점이 많다. 수사에는 슬라브어의 영향이 보이며, 15~16세기 튀르키예어와 그리스어의 영향도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63]
3. 5. 켈트어파
원켈트어cel에서 유래되었으며, 기원전 6세기 이후로 기록이 남아 있다. 레폰티아어 비문은 기원전 6세기 초, 켈티베리아어는 기원전 2세기, 초기 아일랜드 오감 문자 비문은 4세기 또는 5세기, 고대 웨일스어의 초기 비문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29] 현대 켈트어에는 웨일스어, 콘월어, 브르타뉴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아일랜드어 및 맨섬어가 있다.인도유럽어족 내에서 켈트어파는 켄툼어군에 속하며, 이탈리아어파와 유사점이 많다. 기원전 1000년대에는 중부 유럽에 널리 분포했지만, 현재는 브르타뉴 지방, 아일랜드섬과 브리튼섬의 웨일스 지방, 스코틀랜드 지방 등에만 남아 있다. 최근에는 맨섬어와 콘월어가 부활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 게일어는 스코틀랜드의 공문서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켈트어파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분류 | 언어 |
---|---|
게일어 (Q 켈트어라고도 함) | |
브리튼어군 (P 켈트어라고도 함) | |
대륙 켈트어 |
3. 6. 이탈리아어파
오스크-움브리아어군과 라틴-파리스키어군으로 분류되는 고대 이탈리아어파에는 오스크어, 움브리아어, 라틴어, 파리스키어가 있다.[109] 기원전 2천년기 말 무렵 북쪽에서 이탈리아 반도로 진입하여 기원전 1000년경 남하하여 라티움에 정착했다.[106] 기원전 10세기 이탈리아 반도에는 오스크어, 움브리아어, 그리스어 외에 에트루리아어, 베네토어가 지역에 따라 분포하고 있었다.[63][107][108]라틴어는 로마 건국 무렵에는 이미 라티움에 정착해 있었다. 라틴인의 여러 언어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로마의 확장과 함께 세력을 키워 오스크-움브리아어와 파리스키어뿐만 아니라 켈트어와 이베리아어를 대체하며 광범위한 분포에 이르렀다.[63] 라틴어의 가장 오래된 문헌은 기원전 6세기 말경이며,[63] 특히 로마의 라틴어는 기원전 5세기에 기록되어 있다.[63]

- 오스크-움브리아어군 - 로마 제국 이전에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 존재했다. 오스크어♰, 움브리아어♰ 등
- 라틴-파리스키어군
- *파리스키어♰
- *라틴어
- *로망스어족 - 속라틴어에서 파생된 여러 언어
- **동라틴어군 - 명사의 복수형을 만들 때 모음을 바꾸는 언어들. 이탈리아어, 코르시카어, 루마니아어, 레토로망스어군(로망슈어, 프리울리어, 돌로미테어), 달마티아어♰ 등
- **서라틴어군 - 명사의 복수형을 만들 때 어미에 "-s"를 붙이는 언어들. 프랑스어, 사르데냐어, 아오스타어, 왈롱어, 크레올어, 오크어, 카탈루냐어, 아스투리아스어, 아라곤어, 스페인어(카스티야어), 포르투갈어, 갈리시아어, 리구리아어
문학 작품이 탄생하기 전, 즉 기원전 3세기 후반까지의 라틴어는 고대 라틴어라고 불리며, 비문과 고전기 작가들의 인용으로 알려져 있다.[63] 고전 라틴어는 광의로는 기원전 3세기 말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협의로는 특히 기원전 1세기의 라틴어 문어를 가리킨다. 협의의 고전 라틴어는 라틴 문학의 황금기에 해당한다. 산문은 키케로의 웅변론을 시작으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 건국사』 등, 운문에서는 루크레티우스,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 등이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고전 라틴어는 후대에도 모범으로 여겨지고 있다.[63]
라틴 문학이 쇠퇴하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의 라틴어를 후기 라틴어라고 한다. 3세기 이후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라틴어는 가톨릭 교회와 결합했다. 따라서 후기 라틴어 시대는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번역 성경이 이루어지는 등 교회 라틴어가 성행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문어와 구어가 분리되어 가고, 대략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600년경까지의 구어를 속라틴어라고 한다. 서로마 제국은 5세기에 붕괴되었고, 속라틴어 집단은 분열되었다. 속라틴어의 문헌 자료는 제한적이지만, 프로부스의 용례집,[110]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에 나오는 "트리말키오의 연회"에 나오는 대화, 400년경 수녀의 글, 수많은 비문[63] 등이 남아 있다. 또한 후기 라틴어에 특징적인 혼입이 보인다.[111]
각지에 퍼진 속라틴어는 각 지역의 기층 언어의 영향을 받아 변화했다(이탈리아의 오스크어와 에트루리아어, 스페인어에 대한 이베리아어, 프랑스어에 대한 켈트어, 루마니아어에 대한 다키아어 등).[112] 루마니아어에 대한 슬라브어, 스페인어·포르투갈어·카탈루냐어에 대한 아랍어와 같은 지배를 통한 영향이 생긴 것 외에, 프랑크족과의 접촉은 서쪽 집단, 특히 프랑스어에 큰 영향을 주었다.[113] 타 언어의 영향과 함께 각 지역에서도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로망스어족의 문헌이 나타나는 9세기에는 이미 통일성을 잃고 있었다.[114]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는 속라틴어적인 문어를 우려하여 카롤링거 르네상스에 의해 고전적인 라틴어의 부흥을 도모했지만 철저하지 못했고, 중세 라틴어가 성립했다. 중세 라틴어는 고전적인 지식 계급의 공통어로 기능했다.[63][115]
라틴어에는 5가지 격 변화 형태가 있었고 제2, 3, 4격 명사에 중성이 있었지만, 로망스어에서는 격 변화가 2가지가 되어 남성/여성에 대응하고 있다.[116] 어느 로망스어도 단수와 복수의 구별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망스어의 복수 표지는 -s이지만, 중기 프랑스어에서 발음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프랑스어에서는 관사 등으로 표현된다.[117] 현대 로망스어에서는 루마니아어를 제외하고 격 체계는 소멸했다. 루마니아어는 주격, 목적격, 소유격, 여격, 호격의 5격 체계를 이룬다.[118] 라틴어는 4종류의 활용 형태로 나뉘었지만, 로망스어에서는 E가 융합하여 활용 형태를 줄였다. 생산성에 편차가 생겨, A, I, E 순으로 예가 많다. 몇몇 언어에서는 E의 용례가 적어 불규칙 동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119] 라틴어의 직설법, 접속법, 명령법으로 이루어지는 3가지 법은 로망스어에서 유지되고 있다. 사용법이 각 언어에 따라 다르지만, 몇몇 로망스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시상으로는 미완료 과거(반과거), 단순 과거, 복합 과거, 미래 및 조건법이 있다.[120] 현대 로망스어에서는 주어-동사가 자주 나타나는 기본적인 어순이며, 어긋나는 것은 도치로 간주된다.[121]
그리스 알파벳을 참고하여 라틴 알파벳이 성립되었지만, 그리스 알파벳에는 없는 Q와 F가 있는 것으로부터 에트루리아 문자가 중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성립 후에 그리스어의 전사를 위해 Y와 Z가 추가되었다. 에트루리아어의 음운 체계에는 k와 g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문자도 통합되어 있었고, 라틴어에서도 C를 양쪽 소리에 사용했지만, C를 기반으로 G가 만들어졌다.[122] 로망스어는 모두 라틴 알파벳을 사용한다.
3. 7. 게르만어파
켄툼어군. 유럽 중북부가 원향이다. 게르만 민족 대이동을 거쳐 로망스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북게르만어군(노르드어, 북유럽어) - 고대 노르드어♰
- 동스칸디나비아어군과 서스칸디나비아어군으로 나누는 분류법[123]
- 덴마크어, 스웨덴어
- 노르웨이어, 아이슬란드어, 페로어
- 대륙 북게르만어와 도서 북게르만어로 나누는 분류법[124]
- 대륙 북게르만어 - 덴마크어, 스웨덴어, 노르웨이어(부크몰, 니노슈크)
- 도서 북게르만어 - 아이슬란드어, 페로어, 노른어♰
- 서게르만어군
- 독일어군
- 저지 독일어 - 네덜란드어(플랑드르어),아프리칸스어
- 고지 독일어 - 표준 독일어, 룩셈부르크어
- 앵글로-프리지아어 - 영어(잉글랜드어), 스코틀랜드어, 프리지아어
- 동게르만어군 - 고트어♰, ♰, ♰ 등
게르만족의 원향은 스칸디나비아반도 남부와 북독일의 엘베 강 하류 지역 일대라고 생각된다. 민족 이동에 의해 기원전 1000년경에는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었고, 4~5세기의 게르만 민족 대이동을 정점으로 1500년 이상 지속되었다. 게르만어족에는 자세히 알 수 없는 원인도유럽어 어휘가 유입되어 게르만 원어의 기초 어휘 3분의 1이 비인도유럽어 유래라고 생각된다. 기원전 500년경의 게르만족은 서쪽은 현재의 네덜란드어권, 동쪽은 비스와 강까지의 저지대 평야 지대, 북쪽은 스웨덴 중부와 노르웨이 남부에 이르렀다. 남쪽과 서쪽에서 켈트어, 동쪽에서 발트어, 북쪽에서 발트-핀우그리아어와 접해 상호 차용이 이루어졌다. 남부 지역의 켈트족이나 일리리아족을 몰아낸 게르만족은 기원전후에 로마 제국의 국경인 흑해 연안에 도달했다. 기원전후에 게르만어의 명확한 분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되며, 당시 게르만족과 게르만어는 북쪽, 동쪽, 엘베 강, 베저-라인 강, 북해의 5개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동게르만어는 고트어로 이어지며, 4세기에 만들어진 그리스어 성서의 고트어 번역은 게르만어 중 가장 오래된 체계적인 문헌으로 사본이 남아 있다. 언셜체 대문자를 중심으로 라틴 문자와 고트 문자가 사용되었다. 고트족은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으로 분열하여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에 왕국을 건설했으며, 동고트족이 크리미아에 도달하는 등 크게 확장되었다.
북게르만어는 북유럽에 위치하며 노르드어가 성립되었다. 게르만어의 단편적인 가장 오래된 자료로서 룬 문자로 새겨진 룬 비문이 남아 있다. 음가와 문자가 정확하게 대응하고 있어 실용적인 문자였다고 생각된다. 룬 문자는 고대 게르만어권 전체에 퍼졌지만, 10세기 말 이후의 기독교 수용과 함께 라틴 문자로 대체되었다. 8세기까지 스칸디나비아에 머물렀던 북게르만족은 9세기부터 11세기의 바이킹 시대에 원정을 반복했다. 데인족은 두 번에 걸쳐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영어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동쪽에서는 스웨덴 바이킹을 중심으로 핀란드·에스토니아로 진출하여 더 남동쪽으로 진출하여 노브고로드 공국과 키예프 공국을 건설했다. 바이킹 시대 말기에는 서노르드어와 동노르드어의 분기가 현저해졌다.
북해 게르만어는 앵글로색슨족을 중심으로 하는 그룹이 브리튼 섬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5세기 중반 이후에 대륙 북해 연안의 여러 부족의 접촉으로 성립되었다고 생각된다. 앵글로색슨족은 600년경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라틴 문자를 사용한 종교 관련 고대 영어 문헌은 700년경에 나타난다. 프리지아어는 16세기 이후 사용되지 않았다. 작센어는 고지 독일어권에 끌려가 저지 독일어의 저작센어로 취급된다. 고대 영어는 전형적인 북해 게르만어였지만, 데인족과 노르웨이 바이킹에 의한 노르드어와의 접촉과 노르만 정복에 의한 프랑스어와의 접촉에 의해 형태의 단순화가 일어나, 굴절이 적은 분석적인 언어가 되었다.[63]
엘베 강과 베저-라인 강 그룹은 내륙 게르만어로 묶이며, 주요 고대어로 고대 고지 독일어와 고대 네덜란드어가 있다. 특히 베저-라인 강 게르만어의 고대 프랑켄 방언을 사용하는 프랑켄족은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세력을 확대하여 6세기의 정복을 시작으로 알레만니족, 바이에른족, 작센족을 정복하여 예속시켰다. 8세기에 프랑크 왕국의 독일어 사용자에게 기독교가 퍼지고, 9세기에는 『타티아누스』와 의 『복음서』 등 기독교 문학이 번성했다. 고대 네덜란드어의 체계적인 문헌은 10세기 초의 바테헨도크 시편에 나타난다. 현대 표준 독일어는 엘베 강 게르만어에 유래하는 상부 독일어, 베저-라인 강 게르만어에 유래하는 중부 독일어, 위의 북해 게르만어에 유래하는 저지 독일어를 통합하여 성립되었다. 표준 네덜란드어는 베저-라인 강 게르만어에 유래하는 저지 프랑켄 방언을 모체로 하여 북해 게르만어에 유래하는 네덜란드어 저지 작센 방언을 통합하여 성립되었다.
게르만 원어는 여격이 탈격과 소유격의 역할을 담당하는 6격 체계였다. 그 후 주격이 호격을, 여격이 조격을 흡수하여 4격 체계에 가까워졌다. 문법성을 잃은 것은 영어와 아프리칸스어, 덴마크어 유틀란트 방언에 한정되어 있으며, 다른 게르만어에는 존재한다. 이중수는 게르만 원어에서 쇠퇴하고 있었고, 고트어가 제한적으로 남아 있지만 다른 고대어에서는 복수에 포함되었다. 현대어에서는 북프리지아어 방언에서 볼 수 있지만, 구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북게르만어와 네덜란드어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통성(공성)"에 합류하여 중성과 함께 이성 체계가 되고 있다. 게르만 원어 시점에서 아오리스트 어간이 폐기되어 어형 변화는 강변화와 약변화로 수렴되었다. 측면에 대응하는 어형 변화는 없고, 조동사에 의한 우회 표현으로 표현한다. 서게르만어에서는 현재 완료형이 과거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며, 과거형을 사용하지 않는 언어도 있다. 접속법이 직설법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현재형이 미래의 일도 나타낸다. 독일어나 네덜란드어에서 부차적으로 SOV 순의 어형이 사용되지만, SVO 순이 일반적이다.
3. 8. 발트슬라브어파
발트슬라브어파는 대부분의 인도유럽어 학자들이[20] 계통 발생 단위를 형성한다고 믿는 어파이다. 반면, 소수의 학자들은 오랜 언어 접촉으로 인해 유사성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발트슬라브어파는 다음과 같이 세분화 된다.- 슬라브어파(원슬라브어에서 유래): 9세기 이후 기록이 남아 있으며, 가장 초기의 텍스트는 고대 교회 슬라브어이다. 슬라브어파에는 불가리아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실레시아어, 카슈브어, 마케도니아어, 세르보크로아트어(보스니아어, 크로아티아어, 몬테네그로어, 세르비아어), 소르브어, 슬로베니아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루신어가 포함된다.
- 발트어파: 14세기 이후 기록이 남아 있지만, 원인도유럽어의 많은 고대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살아남은 언어로는 리투아니아어와 라트비아어가 있다.
발트어파와 슬라브어파는 동유럽에 분포하며, 게르만어파, 로망스어파에 비해 언어적 혁신이 적어 보수적이라고 여겨진다.[20]
다음 표는 영어 동사 ‘bear’의 어원인 인도유럽조어 동사 어근 *bʰer- ‘나르다, 지니다’의 모음어간 직설법 현재시제 굴절형이 고대와 현대의 발트슬라브어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보여준다.
발트슬라브어파 | ||
---|---|---|
발트어파 | 슬라브어파 | |
고대어 대표 | 고대 프로이센어 | OCS |
나 (1인칭 단수) | *bera | berǫ |
너 (2인칭 단수) | *bera | bereši |
그 (3인칭 단수) | *bera | beretъ |
우리 둘 (1인칭 쌍수) | berevě | |
너희 둘 (2인칭 쌍수) | bereta | |
그들 둘 (3인칭 쌍수) | berete | |
우리 (1인칭 복수) | *beramai | beremъ |
너희 (2인칭 복수) | *beratei | berete |
그들 (3인칭 복수) | *bera | berǫtъ |
현대어 대표 | 리투아니아어 | 체코어 |
나 (1인칭 단수) | beriu | beru |
너 (2인칭 단수) | beri | bereš |
그 (3인칭 단수) | beria | bere |
우리 둘 (1인칭 쌍수) | beriava | |
너희 둘 (2인칭 쌍수) | beriata | |
그들 둘 (3인칭 쌍수) | beria | |
우리 (1인칭 복수) | beriame | berem(e) |
너희 (2인칭 복수) | beriate | berete |
그들 (3인칭 복수) | beria | berou |
3. 9. 인도이란어파
인도이란어군은 기원전 1400년경으로 추정되며, 원인도이란어(기원전 3천년 후반으로 추정)에서 유래했다. 인도유럽어족의 여러 하위 어파 중 인도이란어파는 사템어군에 속하며, 서아시아와 남아시아에 걸쳐 분포한다. 인도어파와 이란어파는 발견된 가장 오래된 언어들끼리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유사하여 함께 취급된다.- 인도아리아어군: 기원전 1400년경 히타이트어 텍스트에서 아나톨리아에서 증명되며, 인도아리아어의 흔적을 보여준다.[22][23] 기원전 3세기에는 프라크리트 형태의 비문(아소카의 칙령)으로 나타난다. 리그베다는 약 기원전 2천년기 중반의 구전 전통을 통해 온전한 기록을 보존한 것으로 추정되는 베다 산스크리트어 형태이다. 북인도, 동부 파키스탄 및 방글라데시의 광범위한 현대 언어를 포함하며, 여기에는 힌두스타니어(힌디어, 우르두어), 벵골어, 오디아어, 아삼어, 펀자브어, 카슈미르어, 구자라트어, 마라티어, 신드어 및 네팔어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의 싱할라어와 몰디브 및 미니코이의 디베히어가 포함된다.
- 이란어군: 기원전 1000년경 아베스타어 형태로 증명된다. 기원전 520년의 고대 페르시아어 형태의 비문(베히스툰 비문)이 있다. 페르시아어, 파슈토어, 쿠르드어, 발로치어, 루리어 및 오세티아어가 포함된다.
- 누리스타니어군: 캄카타-바리어, 바시-바리, 아스쿠누어, 와이갈리어, 트레가미어 및 제미아키어가 포함된다. 힌두쿠시 산맥 산중에 분포하며, 예전에는 카피르어파[125]라고 불렸다. 단, 별개의 어파로 취급하는 설도 있다.
인도유럽어족의 분류는 일반적으로 12어파 정도로 표현되지만, 그 경우 다르드어파와 카피르어파를 포함하지 않는다.
3. 10. 아르메니아어파
아르메니아어는 인도유럽어족의 한 어파로, 아르메니아어 단독으로 하나의 어파를 이룬다. 5세기 초에 아르메니아 문자가 고안되어 기록되기 시작했다.[126] 현대 구어는 동아르메니아어와 서아르메니아어로 나뉜다. 동아르메니아어는 아르메니아 공화국을 포함한 구 소련 지역에서 사용되고, 서아르메니아어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사용한다.[126]
아르메니아어는 이란어군으로부터 많은 어휘를 차용하여 과거에는 이란계 언어로 여겨지기도 했다.[126] 이란어군뿐만 아니라 튀르크어족과 코카서스어족으로부터도 어휘를 차용하는 등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5세기 초, 당시 아르메니아어의 음소에 대응하는 아르메니아 문자가 고안되었다. 이는 그리스와 시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아르메니아어로 성서를 기록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리스 문자를 주요 모델로 했지만, 자형은 크게 다르다. 11세기 무렵부터 문어와 구어의 음성 차이가 두드러지기 시작하여, 음과 문자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시대인 1922년과 1940년에 표기법 개혁이 실시되어 동아르메니아어에서는 문자와 음의 대응 관계가 단순해졌다.[126]
아르메니아어는 동사의 경우, 소망법이 접속법에 합류하여 직설법, 명령법, 접속법의 세 가지 법이 있다. 세 가지 시제가 있으며, 미완료 과거와 미완료 미래가 특이한 발달을 보인다. 고대 아르메니아어에서 아오리스트와 완료형이 융합하여 현대 아르메니아어의 완료(단순 과거와 미완료 과거)가 생겨난 결과, 두 시제의 기능과 어간이 포함되게 되었다. 명사·형용사는 주격, 여격, 속격, 조격, 탈격, 처격으로 격변화한다. 문법적인 성은 없으며, 인칭 대명사에도 성의 구별이 없다. 일반적으로 동사가 문두에 오는 경우는 없고, 정동사 후치를 원칙으로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어를 앞에 두는 일정한 자유도가 있다.
형태와 통사론에서는 인도유럽조어에 유래하는 요소가 우세하다. 한편 기록 이전 시대에 악센트가 끝에서 두 번째 음절에 고정된 것이 모음의 약화와 최종 음절의 소실을 가져왔으며, 음운·어구 구조는 독특하다.
전통적으로 굴절어로 분류된다. 오래된 인도유럽어와 비교하면 모음의 장단의 구별, 문법적 성, 쌍수가 없어졌다. 또한 굴절의 형태가 일정화되고, 격의 융합 현상이 보이며, 동사의 서법·시제 체계가 크게 단순화되는 등 다양한 단순화가 일어났다. 현대 아르메니아어는 교착어적인 면이 강해졌다.[126]
언어학자 앙투안 메예는 아르메니아어의 기수사가 크게 변화하면서도 인도유럽 조어에 유래하는 것이라고 증명하였다.
4. 특징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은 인도유럽조어라는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으며, 각 언어는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오면서 '공통적 혁신'이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변화를 겪었다. 예를 들어 게르만어파는 게르만조어에서 일어난 혁신을 통해 정의된다.
나무 모형은 한 어족의 계통적 역사를 나타내는 방식 중 하나로, 후손 언어들이 서로 갈라진 후 더 이상 접촉하지 않는 경우에 적합하다. 반면, 후손 언어들이 계속 접촉하는 경우에는 물결 모형이 더 정확하다.[160] 인도유럽어족의 하위 집단을 설정할 때, 대부분 나무 모형을 가정했지만,[161] 물결 모형을 사용한 접근도 오래전부터 있었다.[162][163]
인도유럽어족 언어에서 오래전에 일어난 많은 변화는 언어 접촉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파 언어들이 공유하는 특징은 지역적 특징일 가능성이 있으며, 서게르만어군 언어들의 장모음 체계에서 보이는 유사한 교체 현상은 조어 단계의 혁신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늦게 발생했다. 게르만어파와 발트슬라브어파가 공유하는 특징들 역시 공통 조어에서 물려받은 특징이라기보다는 지역적 특징일 가능성이 크다. 발칸 언어 지역에 속한 언어들은 서로 다른 어파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지역적 수렴을 겪었다.
도널드 린지와 탠디 워노의 언어 진화 모형에 따르면 초기 인도유럽어족은 서로 다른 갈래끼리 접촉이 제한적이었고, 게르만어파만이 초기에 이웃들로부터 몇몇 특징을 받아들였다.[164] 이탈리아켈트어파, 그리스아르메니아어파 등 최상위 갈래가 존재한다는 가설이 있지만, 모두 논란의 대상이다.[165] 인도히타이트 가설에 따르면 인도유럽어족은 아나톨리아어파와 나머지 모든 인도유럽어족 언어로 나뉜다. 그러나 이 가설은 아나톨리아어파에서 나온 증거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부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도유럽조어(PIE)는 비교 재구를 통해 추측한 인도유럽어족의 조상 언어로, 굴절어였다. 인도유럽조어는 단어들 사이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굴절 형태소를 사용했으며, 6,000년 전 또는 8,000년 전에 분화와 확산이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기원지에 대한 가설로는 쿠르간 가설과 아나톨리아 가설이 있다.
인도유럽조어는 분화 초기 다양한 어형 변화를 지닌 언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 언어는 복잡한 어형 변화를 단순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 수: 인도유럽조어에는 단수와 복수 외에 짝을 이루는 것을 나타내는 “이중수”가 있었지만, 후대에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사라졌다.
- 성: 인도유럽조어에는 남성, 여성, 중성의 세 가지 문법적 성 구분이 있었지만, 일부 언어에서는 변화하거나 사라졌다.
- 격: 인도유럽조어는 여덟 가지 문법적 격을 구분했지만, 후대에는 격의 종류가 줄어들거나 사라진 경우가 많다.
인도유럽조어는 주어-목적어-동사 어순(SOV형)이 우세했지만, 이후 다양한 어순을 가진 언어들이 등장했다.
4. 1. 음운론
인도유럽어족의 음운 체계는 인도유럽조어에서 기원하며, 여러 딸 언어들로 분화되면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인도유럽어족은 켄툼어와 사템어로 크게 나뉜다. 켄툼(kentum)과 사템(satem)은 라틴어와 아베스타어에서 "백"을 의미하는 단어로, 모두 인도유럽조어 [95]에서 유래했다. 켄툼어에는 아나톨리아어파, 토카라어파, 그리스어파, 게르만어파, 켈트어파, 이탈리아어파가 속하고, 사템어에는 인도이란어파, 발트슬라브어파, 아르메니아어파, 알바니아어파가 속한다.[62]
게르만어파에서는 그림의 법칙과 베르너의 법칙에 따라 자음 변화가 일어났다.
- 그림의 법칙:
- 1. 인도유럽조어의 무성 파열음은 게르만조어의 무성 마찰음이 된다.
- 2. 인도유럽조어의 유성 파열음은 게르만조어의 무성 파열음이 된다.
- 3. 인도유럽조어의 유성 유기 파열음은 게르만조어의 무성 파열음이 된다.
- 베르너의 법칙:
- 그림의 법칙에서 생긴 무성 마찰음이, 바로 앞에 악센트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유성음이 된다.
- 그림의 법칙이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무성 마찰음 s에도 적용되었다.
인도이란어파와 그리스어파에서는 그라스만의 법칙이 독립적으로 일어났다.
- 그라스만의 법칙: 유기음이 연속될 때, 앞의 자음이 무기화되는 법칙.
인도이란어파, 슬라브어파, 리투아니아어에서는 루키 음운 법칙을 볼 수 있다.[160]
- 루키 음운 법칙: i, u, r, k 뒤에 있는 s가 š로 변화하는 현상.
발트어파는 다음과 같이 나뉜다.
4. 1. 1. 자음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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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고지 독일어 g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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