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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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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안왕후는 고려 공민왕 시대에 태어나 조선 정종의 왕비가 된 인물이다. 경주 김씨 가문 출신으로, 1398년 남편 정종이 세자가 되면서 세자빈이 되었고, 정종 즉위 후 왕비가 되었다. 1400년 정종이 태종에게 양위한 후 순덕왕대비가 되었으며, 1412년에 사망하여 후릉에 안장되었다. 사후 정안왕후의 시호를 받았으며, 숙종 때 온명장의 존호가 추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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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왕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위조선의 왕세자빈
재위1398년 8월 26일 ~ 1398년 9월 5일 (음력)
전임자현빈 심씨 (삼한국대부인)
후임자세자빈 민씨 (원경왕후)
작위2조선 정종의 왕비
재위21398년 9월 5일 ~ 1400년 11월 13일 (음력)
전임자2신덕왕후 강씨
후임자2원경왕후 민씨
작위3조선의 왕대비
재위31400년 11월 13일 ~ 1412년 6월 25일 (음력)
전임자3최초의 왕대비
후임자3후덕왕대비 민씨 (원경왕후)
별칭덕빈, 덕비, 순덕왕대비, 안정왕후
존호순덕(順德)
휘호온명장의(溫明莊懿)
시호정안(定安)
배우자정종
자녀없음
아버지월성부원군 김천서
어머니삼한국대부인 담양 이씨
출생일1355년 1월 30일 (양력)
출생지고려
사망일1412년 8월 11일 (양력)
사망지조선 한성부 인덕궁
능묘후릉(厚陵) 황해북도 개풍군 흥교면
가문경주 김씨
왕후 정보
왕후 즉위홍무 31년 9월 5일 ~ 건문 2년 11월 13일 (1398년 10월 14일 ~ 1400년 11월 28일)
별칭온명장의정안왕후 (諡號)
왕족 정보
로마자 표기Jeong-an Wanghu Gimssi

2. 생애

정안왕후는 1355년 음력 1월 9일(1월 22일) 월성부원군 김천서와 그의 부인 담양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3] 아버지 김천서는 훗날 문하좌시중에 추증되었다.[3] 이성계의 둘째 아들인 이방과와 혼인했으나,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남편 영안군(이방과)이 세자가 되면서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덕빈'''으로 불렸다.[3] 같은 해 영안군이 정종으로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어 '''덕비'''로 불렸다.[3] 2년 뒤인 1400년, 정종이 동생 정안군(이방원)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면서 '''순덕왕대비'''(順德王大妃)의 존호를 받았다. 정종은 왕비의 권유로 이방원에게 양위하였다.

1412년 음력 6월 25일(8월 2일) 58세로 세상을 떠났으며,[3] 능은 개성특별시 개풍군 영정리에 있는 후릉이다. 정종 사후 합장되어 쌍릉으로 조성되었다.[3] 1681년(숙종 7년) 온명장의(溫明莊懿)라는 존호가 추상되었다.[3]

2. 1. 출생과 가계

정안왕후는 1355년(고려 공민왕 4년) 1월 30일 아버지 김천서와 어머니 삼한국대부인 담양 이씨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4] [5] 정안왕후는 두 명의 오빠와 다섯 명의 여동생 및 남동생이 있었다.

정안왕후는 신라 왕조의 경주 김씨 후손이다. 신종 재위 기간 동안 정안왕후의 할아버지 김봉모(金鳳毛, ?~1209)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정평(靖平)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김봉모는 이후 김씨 가문의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를 세웠다.

정안왕후는 6대조를 통해 경순왕과 낙랑공주의 12대손이며, 그들의 둘째 아들 김은열의 후손이다. 또한 정순왕후와도 먼 친척 관계인데, 김은열의 손자인 김정구(金正矩, 973~1057)를 공통 조상으로 한다.

정안왕후는 증조모를 통해 원경왕후와 4촌 간이며, 민영모를 조상으로 공유하여, 결과적으로 결혼을 통해 형수와 시누이 관계가 되었다.

정안왕후가 이성계와 한씨 부인의 둘째 아들인 이방과와 결혼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정안왕후 가계
본가 경주 김씨(慶州 金氏)
왕가 전주 이씨(全州 李氏)


2. 2. 왕실 생활

1398년 남편 영안군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3] 같은 해 영안군이 임금으로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1400년 남편 정종이 동생 정안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자 '''순덕왕대비'''(順德王大妃)의 존호를 받았다.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남편 방과가 세자가 되면서 '''덕빈'''으로 불렸다. 한 달 후 태조의 양위로 정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어 '''덕비'''로 불렸다.[3] 정종은 장래의 불안감을 느껴 왕비는 왕에게 이방원에게 양위할 것을 권했고 실행했다. 1400년 이방원이 왕위에 올랐고, 정안왕후는 왕대비가 되어 '''순덕왕대비'''라는 존호를 받았다.

2. 3. 사망

1412년 음력 6월 25일(8월 2일) 58세로 사망하였다.[3] 능은 개성특별시 개풍군 영정리에 있는 후릉으로, 후에 남편 정종도 이곳에 묻혀 쌍릉으로 조성되었다.[3] 후릉은 현재 황해북도에 속해있다. 정종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승하한 지 270년 뒤인 1681년(숙종 7년)에 온명장의(溫明莊懿)라는 존호가 추상되었다.[3]

3. 가족 관계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참조

[1] 문서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4일 을유 1번째기사
[2] 문서 광해군일기 18권, 광해 1년 7월 7일 병술 1번째기사
[3] 문서 세종실록 7권, 세종 2년 1월 3일 임인 4번째기사
[4] 문서 윤번의 딸
[5] 문서 유인수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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