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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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존파 사건은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으로, 가난과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범행 동기로 내세운 지존파 조직원들이 저질렀다. 김기환을 두목으로 한 이들은 부유층을 상대로 납치 및 강도 행각을 벌였으며, 1994년 검거 당시 6명의 조직원이 5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하고, 모방 범죄를 유발하는 등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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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사건 | |
---|---|
기본 정보 | |
![]() | |
조직 이름 | 지존파 |
로마자 표기 | Jijonpa |
한자 표기 | 至尊派 |
원래 조직명 | 마스칸 |
결성 시기 | 1993년 |
결성 장소 | 대한민국 |
활동 기간 | 1993년 – 1994년 |
조직 규모 | 8명 |
창립자 | 김기환 |
범죄 활동 | |
주요 범죄 | 살인 강도 납치 식인 강간 |
사건 정보 | |
발생 기간 | 1993년 4월 ~ 1994년 9월 |
관련자 | 두목 김기환 |
사망자 수 | 5명 |
검거 및 사형 집행 | 1994년 9월 21일에 검거, 6명 사형 집행 |
2. 조직 결성 배경
지존파는 두목 김기환을 비롯하여 대부분 조직원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낮은 교육 수준으로 인해 주로 노동 현장에서 일했으며, 이러한 배경이 조직 결성의 바탕이 되었다. 김기환은 초등학교 시절 우수한 성적을 보였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범죄에 가담하게 되었다.
2. 1. 결성 과정
두목 김기환은 초등학교 6년 내내 우등상을 받았고 반장을 하기도 했지만, 집안 형편으로 인해 범죄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존파 조직원들은 대부분 성장 환경과 교육 수준이 낮았고, 노동 현장을 전전하다가 살인 계획을 세워 의기투합하였다.[21]1993년 4월, 이들은 야타족과 오렌지족, 부유층을 매우 증오하여 이들을 대상으로 살인을 계획하였다고 한다. 김기환은 학교 후배 강동은(22세)과 교도소 동기 문상록(23세) 등을 포섭하여 살인조직을 결성하고, 조직을 그리스어로 야망을 뜻하는 "마스칸"이라고 붙였다(정작 그리스어에는 마스칸이라는 단어가 없고, 아랍어 مسكن(마스컨, 집 또는 거주지를 뜻함)을 착각한 듯하다).[21] 훗날 유명해진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을 검거한 고병천 수사과장이 조직원들과 합의 하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21]
1993년 4월 당시 이들의 강령은 아래와 같다.[21]
-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 각자 10억씩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 배반자는 처형한다.
-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1993년 여름, 김기환은 포커 게임에서 문상록과 김현양을 만났다. 김기환이 부유층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자, 나머지 두 명도 동의했다. 그날 저녁, 그들은 조직을 결성하고 교리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그 후 몇 주 동안,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접근하여 합류하도록 설득했다. 강동운과 백병옥(모두 강도 전과자), 강문섭과 송봉운을 조직에 가입시켰다.
김기환은 7명의 모든 구성원에게 자금을 모으도록 요청했다. 그들은 이 자금으로 차량 2대, 무전기, 다이너마이트, 그리고 소총 6정, 기관단총 1정, 권총 1정, 공기총 1정, 군용 칼, 등산용 칼, 전기 충격기 등 17개의 무기를 구입했다. 또한 작은 소각 시설을 마련하고 지하에 감옥 3개를 추가했다.[2] 그들의 계획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납치 및 갈취를 통해 10억 원(125만달러)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들의 훈련에는 지리산 등반과 캠핑이 포함되었다.[3] 경험이 풍부한 구성원들은 다이너마이트 취급 및 납치 실행에 대한 자세한 교육을 제공했다.[2]
2. 2. 범행 동기
지존파 조직원들은 대부분 성장 환경과 교육 수준이 낮았고, 노동 현장을 전전하다가 살인 계획을 세워 의기투합하였다. 두목 김기환은 초등학교 6년 내내 우등상을 받았고 반장을 하기도 했지만, 집안 형편으로 인해 범죄의 길을 걷게 되었다.[5]1993년 4월 이들의 진술에 의하면 이들은 오래전부터 야타족과 오렌지족, 부유층을 매우 증오하였고, 마침내 야타족과 오렌지족, 부유층들을 대상으로 살인을 계획하였다고 한다. 김기환이 학교 후배 강동은과 교도소 동기 문상록 등을 포섭하여 살인조직을 결성하게 되고 이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그리스어로 야망을 뜻하는 "마스칸"이라고 붙였다고 한다(정작 그리스어에는 마스칸이라는 단어가 없다. 아마도 아랍어로 집, 거주지를 뜻하는 مسكن 마스컨을 착각한듯하다).[21] 훗날 유명해진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을 검거한 고병천 수사과장이 조직원들과 합의 하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6][7][8][9][10]
1993년 4월 당시 이들의 강령은 아래와 같다.[21][3]
-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 각자 10억씩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 배반자는 처형한다.
-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이들이 밝힌 범행 목적은 빈부격차와 부자들에 대한 증오였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첫 번째 피해자는 23세 은행원이었는데, 집도 가난했고, 아버지 병 치료를 위해 어린 나이에 공장을 다니는 불쌍한 여성이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납치되어 살해된 이종원은 야간업소 밴드 마스터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경기도 성남에서 납치되어 살해된 소OO 부부는 울산 온산공단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했으며, 빚을 내어 인수한 공장 문제로 인해 회사를 살리려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한편, 김현양은 검거된 후 (부자에 대한 살인을)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가는 게 한이 된다고 하였다.
김기환은 7명의 모든 구성원에게 자금을 모으도록 요청했다. 그들은 이 자금으로 차량 2대, 무전기, 다이너마이트, 그리고 소총 6정, 기관단총 1정, 권총 1정, 공기총 1정, 군용 칼, 등산용 칼, 전기 충격기 등 17개의 무기를 구입했다. 또한 작은 소각 시설을 마련하고 지하에 감옥 3개를 추가했다.[2] 그들의 계획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납치 및 갈취를 통해 125만달러을 모으는 것이었다.
3. 범행 과정
지존파는 1993년 4월부터 1994년 9월까지 연쇄 살인을 저지른 범죄 조직이다. 이들은 "돈 있고 빽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계획했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서민들을 희생시켰다.
1993년 4월, 김기환을 두목으로 하여 강동은, 김현양, 강문섭, 문상록, 백병옥, 송봉우가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마스칸"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결성했다.[6] 이들은 현대백화점 고객 명단을 입수하고, 범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 막노동을 했다. 7월에는 살인 연습을 위해 여성을 납치, 살해하고 암매장했으며, 8월에는 조직을 이탈한 조직원을 살해했다.
1994년 5월, 김기환의 고향집에 아지트를 만들고 살인 및 시체 소각 시설을 갖추었다.[22] 6월에 김기환이 다른 사건으로 수감되자, 강동은을 중심으로 범행이 계속되었다. 9월에는 드라이브를 하던 연인과 성묘를 다녀오던 부부를 납치하여 살해하고, 돈을 빼앗았다. 이 과정에서 납치된 여성에게 살인을 강요하고, 시신에서 인육을 도려내는 등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후 김현양이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 실수로 부상을 입고 병원에 간 사이, 납치되었던 여성이 탈출하여 경찰에 신고하면서 지존파의 범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17]
3. 1. 초기 범행 (1993년)
1993년 4월, 두목 김기환(당시 25세)은 학교 후배 강동은(20세), 김현양(21세), 강문섭(19세), 문상록(22세), 백병옥(19세), 송봉우(18세)와 함께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의 포커판에서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행동으로 옮기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마스칸'(그리스어로 '야망'이라는 뜻. 훗날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지존파'라는 이름을 붙임)이라는 범죄집단을 조직하고, "돈 있고 빽 있는 자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는 행동강령을 세워 10억 원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서울 강남의 현대백화점 고객 명단을 입수하여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11] 1993년 5월부터 11월까지는 범행 도구와 아지트를 마련하기 위해 대전 둔산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자금을 모았다.1993년 7월, 이들은 살인 연습을 위해 충청남도 논산(현 계룡시) 두계역(현 계룡역) 부근 다리 밑에서 혼자 걷던 23세 여성 최미자 양을 납치하여 차례로 강간하고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3][12]
1993년 8월,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조직을 이탈한 송봉우를 살해하고 암매장했다.[2][13] 송봉우는 조직의 자금 300만원을 가지고 도주했다가 시흥의 친척집에서 붙잡혀 살해당했다.[2]
3. 2. 본격적인 범행 (1994년)
1994년 5월, 두목 김기환은 고향 집인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지하실에 아지트를 만들고 창살 감옥과 시체 소각 시설을 설치했다.[22]1994년 6월 17일, 김기환은 전라남도 영광군 고향 선배의 조카인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강간하여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3] 이후 지존파 일당은 강동은을 부두목으로 삼고, 김기환에게 감방에서 모든 범죄 지시를 받으며 본격적인 범행을 시작했다.
1994년 9월 8일 새벽 3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카페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이선영(가명, 27세 여성)은 카페 밴드 마스터인 애인 이00(36세 남성)의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로 드라이브를 갔다가 지존파의 아지트로 납치되었다. 지존파 일당은 이들을 심문하고 이선영을 차례로 성폭행했다. 조사 결과 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9일 이00을 살해하고 10일 전라북도 장수군에 시체를 유기하여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김현양은 이선영을 살려주려고 했지만, 문상록이 반대하여 둘은 멱살을 잡고 싸웠다.
1994년 9월 13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삼정기계(주) 사장 소OO (42세)-박OO 부부가 성묘 후 귀가하던 중 지존파에게 납치되었다. 소OO 부부는 협박당해 1억 원을 빼앗겼다. 9월 15일, 이선영은 지존파의 협박을 받아 소OO에게 강제로 공기총을 쏘아 살해했다. 부인 박OO는 칼과 도끼로 살해당했다. 김현양은 박OO의 시체에서 인육을 도려내어 먹었다. 지존파는 소씨 부부의 시체를 소각했다.
1994년 9월 15일, 김현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가 실수로 폭발이 일어나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이선영과 동행했다. 김현양은 치료를 받는 동안 이선영에게 핸드폰과 치료비로 가져간 50만원을 맡겼다. 이선영은 김현양이 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에서 뛰쳐나와 택시를 타고 달아났다. 택시기사는 이선영의 상태를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이선영은 폭력배들에게 쫓기고 있다고 대답했다. 택시기사는 "영광에 있는 폭력배는 자신이 다 안다"고 말했다. 이선영은 택시기사도 지존파와 한패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근처 포도밭에 내려달라고 했다. 이선영은 포도밭 주인에게 부탁하여 렌터카를 타고 대전으로 갔다. 범인들이 다시 쫓아올지 몰라 대전에서 택시로 바꿔 타고 서울에 가서 서울서초경찰서에 신고했다.
3. 3. 검거 및 처벌
1994년 9월 15일, 김현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 실수로 폭발을 일으켜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이선영과 동행했다. 김현양은 치료를 받는 동안 이선영에게 핸드폰과 치료비 50만 원을 맡겼다. 이선영은 이 틈을 타 병원에서 탈출, 택시를 타고 도주했다.[2] 이선영은 택시기사에게 폭력배들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했지만, 택시기사가 영광의 폭력배들을 다 안다고 하자 불안감을 느껴 포도밭에 내려달라고 했다. 포도밭 주인의 도움으로 렌터카를 타고 대전으로 간 후, 다시 택시로 갈아타고 서울 서울서초경찰서에 신고했다.[3]경찰은 처음에는 이선영의 진술을 믿지 않았으나, 실종된 부부에 대한 언급을 듣고 수사에 착수했다. 1994년 9월 17일, 강동은의 애인 이경숙을 조직원으로 보충했다.[3] 경찰은 소씨의 휴대폰을 추적하여 영광군에서 발견, 이선영의 진술과 일치함을 확인했다. 9월 19일, 강동은이 트럭을 타고 자신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잠복 중이던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경찰은 강동은이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는 거짓말로 다른 조직원들을 유인하여 체포했다.[3]
1994년 9월 21일, 서울서초경찰서는 전국적인 납치, 살해, 사체 소각 및 암매장으로 5명을 살해한 지존파 일당 6명을 검거했다.[19] 이들은 범행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자신들의 살인을 정당화했다.[18]
1994년 10월 31일, 재판 결과 이경숙을 제외한 김기환(27세), 강동은(24세), 김현양(24세), 강문섭(22세), 문상록(25세), 백병옥(21세) 6명 전원에게 살인, 강도, 사체유기죄 등으로 사형이 선고되었다.[4][20]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되었고, 1995년 11월 2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20] 이경숙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1998년 석방되었다.
지존파 일당의 사형 집행은 숙군 쿠데타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의 형사 소추가 진행되던 시기와 겹쳐, 전두환, 노태우 등 주모자들이 사형을 받지 않는데 빈민 출신인 지존파 일당이 처형되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 때문에 김영삼 대통령은 사형 집행을 동결했다.
4. 조직원
이름 | 나이 | 비고 |
---|---|---|
김기환 | 26세 | 두목. 중학교 1학년 자퇴. 바둑 아마 1단. 전 여자친구 조카 강간 혐의로 5년형 선고.[2] |
문상록 | 23세 | 전과 3범.[3] |
김현양 | 22세 | [3] |
강동운 | 21세 | 특수절도 혐의로 전과 2범.[3] |
백병옥 | 20세 | 특수강도 혐의로 전과 2범.[3] |
강문섭 | 20세 | [3] |
송봉운 | 18세 | [2] |
이경숙 | 23세 | 강동운의 여자친구. 강동운이 빚을 갚아줌.[3] |
김기환은 부산과 서울에서 신발 공장, 합판 공장, 건설 현장 등에서 육체 노동을 했다. 다른 남성 조직원들도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했다.[3] 김기환이 범죄를 결심한 계기는 대입 부정 사건 뉴스 보도였다.[2]
5. 사건의 사회적 영향
지존파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다음과 같은 사회적 영향을 낳았다.
- 범죄 대상 선정 방식: 지존파는 현대백화점의 우수 고객 명단을 활용하여 범행 대상자를 선정했다. 이로 인해 백화점 고객 정보 관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3]
- 모방 범죄: 지존파 사건 이후, 이들을 모방한 '막가파'라는 범죄 조직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1996년 10월 29일에 경찰에 체포되었다.[3]
- 사회적 불평등 문제: 지존파는 빈부 격차와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범행 동기로 내세웠지만, 실제 피해자는 일반 서민이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 사형 집행 논란: 지존파 일당에게 사형이 집행된 1995년 11월 2일은 숙군 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소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전두환, 노태우 등 주요 책임자들은 사형을 받지 않는데 빈민 출신인 지존파 일당이 처형되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비판은 김영삼 대통령이 사형 집행을 동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6. 평가 및 비판
국가기록원은 지존파 일당 검거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인질이었던 이모씨의 탈출과 제보가 결정적이었다.[21] 1994년 6월, 두목 김기환이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경찰서를 폭파하려다 일당 김현양이 손을 다쳤다. 이들은 이모씨에게 김현양을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게 했고, 이 틈을 타 이모씨는 도주하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모씨가 가져온 범인들의 휴대폰과 메시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아지트 위치를 확인, 일당 6명을 검거했다.
지존파는 대부분 성장 환경과 교육 수준이 낮아 노동 현장을 전전하며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키웠다. 리더 A는 초등학교 시절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지만, 중학생 때 가족 병환으로 자퇴 후 일을 시작하며 도박에 빠졌다.[5] 이들은 조직을 그리스어로 야망을 뜻하는 "마스칸"이라 명명했으나,[6] 검거 후 수사 조직이 "지존파"라는 명칭을 붙였다.[7][8] 이 명칭은 당시 유행하던 무협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7][9][10]
1994년 9월 20일, 경찰은 지존파 일당 6명을 구금했고,[18] 다음 날 21일에 체포했다.[19] 1995년 11월 2일, 6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6. 1. 부정적 평가
지존파 일당은 체포될 때까지 반성하지 않고, 살인 이유를 불평등한 사회 모순이라며 사회에 책임을 돌리고 자신들의 가치 전도 현상을 정당화하려 했다.[21] 두목 김기환은 사형 선고를 받고 "전두환,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는 왜 유죄냐"라며 궤변을 늘어놓았다.[23]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2006년 8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지존파, 온보현, 유영철 등 연쇄살인범들의 배경에는 뒤틀린 심리 상태, 성장 과정의 문제, 사회적 불만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24] 표 교수는 이들이 자신들의 실패와 좌절을 사회 탓으로 돌리면서, 사회가 부패했으니 범죄를 저질러 썩은 사회를 단죄하려 했다는 식의 공통적인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24]
범행 목적은 빈부 격차와 부유층에 대한 증오였지만, 실제 피해자는 부유층이 아니라 일반 서민이었다. 지존파 사건은 김영삼 정부의 사형 집행 동결에 영향을 주었는데, 숙군 쿠데타와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소추가 진행되던 시기에 빈민 출신인 지존파 일당이 처형되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참조
[1]
웹사이트
ko:“살인마 지존파 원래 조직명은 마스칸”
http://news.joins.co[...]
2009-07-12
[2]
웹사이트
The Chijon Family: Korean Cannibal C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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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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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riminal Case Ep.4] Murder Plant - Korea's Crime Organization 'Jijonpa' Real Story"
https://www.youtube.[...]
YouTube
2018-10-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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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살인사건
https://web.archive.[...]
2014-11-29
[5]
문서
韓国で中学校が無償で完全義務教育になったのは2004年のことで、当時はまだ中学校は義務教育ではなかった。
[6]
문서
ただしギリシャ語にそのような単語は存在しない(「野心」はフィロドキシア(φιλοδοξία)である)。アラビア語で「家・宿舎」をマスカン(مسكن)と言い、何らかの勘違いでこれと混同したものと思われる。
[7]
웹사이트
至尊派を捕えた警察「至尊派は私がつけた名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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ノーカットニュース
2007-10-19
[8]
문서
韓国の警察では、犯罪組織の管理のために「○○派」のような独自の命名を組織の自称とは別に名付ける場合がある。
[9]
문서
当時マスコミが「香港映画の「至尊無上(邦題:[[カジノ・レイダース]])」から名付けた」と憶測を交えて報道したため、香港映画のファンであった人々までが謂れなき批判を受けた。
[10]
문서
ただし、グループ内でリーダーのことを「至尊」と呼んでいたことも理由の一つと思われる。
[11]
문서
金銭目当てで顧客名簿をメンバーに売り渡した従業員は後に検挙されている。
[12]
문서
当時警察は容疑者の特定もその動機の解明もできず、事件の解決はメンバー逮捕後の自白まで待つこととなった。
[13]
웹사이트
韓国の連鎖殺人⑥「もっと殺せないのが悔しい」猟奇的殺人集団、至尊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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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0-07-24
[14]
문서
この時点では、警察はまだAが既に殺人を犯していることを把握していなかった。
[15]
문서
このため、当初警察はこの件を飲酒運転事故として取り扱っていた。
[16]
문서
後の取り調べで、Cは遺体の一部を焼いて食べたことを供述している。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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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が収監されている刑務所を襲撃してAを救出する計画を立てており、その演習中に事故を起こした。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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警察、猟奇連続殺人犯6人検挙
https://imnews.imbc.[...]
MBCニュースデスク
1994-09-2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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工場経営者の男を空気銃で殺害することを強いられたXについては、不可抗力であったとして不起訴とされた。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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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刑を免れたGは、検挙の2日前にグループに参加したばかりで、メンバー内で唯一殺人に関わっていなかった。
[21]
뉴스
메이파 잡은 경찰 “메이파는 내가 지어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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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노컷 뉴스
2007-12-19
[22]
뉴스
한국의 연쇄살인 ⑥ "더 못 죽인 게 한이다" 엽기적 살인 집단, 메이파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10-07-2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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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후 - MBC LIFE : 희대의 살인마 메이파
https://www.youtube.[...]
[24]
뉴스
"[커버스토리]표창원 경찰대 교수 인터뷰"
http://weekly.khan.c[...]
2006-08-22
[25]
뉴스
"[방송] 드라마 `작별` 식칼난동등 상식이하 폭력장면."
http://news.chol.com[...]
한겨레신문
2015-06-30
[26]
뉴스
TV 폭력성 갈수록 심각
http://news.chol.com[...]
제민일보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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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 조직 '지존파' 검거한 강력반장 고병천 씨 별세
‘지존파’ 검거한 베테랑 형사 고병천씨 별세…향년 7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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