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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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직지사는 신라 418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황악산에 위치하며, 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사명대사가 출가한 곳으로, 국보 제208호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를 비롯한 다수의 국보 및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불교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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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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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직지사 |
원어 이름 | 직지사 (直指寺) |
위치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북암길 95 () |
종교 | 불교 |
종파 | 조계종 |
창건자 | 아도 (묵호자) |
창건 연도 | 418년 (신라 눌지왕 2년, 고구려 장수왕 6년) |
본존 |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
산 이름 | 황악산 |
사격 | 조계종 제8교구 본사 |
별칭 | 한의 국 33관음 성지 20번째 사찰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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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2. 역사
직지사는 신라 訥祇王 2년(418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1] 삼국유사는 아도를 한국에 불교를 전파한 세 명의 승려 중 한 명으로 기록하고 있다.[2] 절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아도가 도리사에서 황악산을 가리키며 좋은 절터라 말한 데서, 다른 하나는 936년 능여 국사가 중건 당시 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땅과 재료를 잰 데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직지사가 위치한 황악산은 오행의 중앙에 해당하는 노란색을 상징하며, 한국 중앙부근에 위치하여 고대부터 중요한 사찰로 여겨졌다. 비로봉에서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경치를 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645년 자장율사에 의한 중건(구전)과 930년 천목국사에 의한 중건(기록)이 있었다. 930년 중건 당시에는 대장당이 건립되고 금색으로 쓴 불교 대장경 사본이 봉안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정종의 태실이 황악산 봉우리에 봉안되어 왕실 태실을 지키는 사찰이 되었다. 현재는 조계종 제8교구 본사로 경상북도 북서부 백두대간에 있는 54개의 말사를 관할한다.
조선 태종(1407년)과 세종(1424년)의 불교 탄압으로 폐사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된 후 광해군 2년(1610년)에 재건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고 활약한 유정국사가 직지사에서 출가하였다. 유정은 13세에 직지사 근처로 이주하여 수학하던 중, 15세에 어머니,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신묵국사의 지도하에 승려가 되었다. 18세에 승과 장원을 하고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으며, 32세에는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묘향산 보현사로 갔다가 금강산 유점사에 있던 중 임진왜란을 맞아 승병을 이끌었다. 유정의 출가와 관련된 일화가 전해지는데, 신묵국사가 꿈에서 천왕문 옆 은행나무에 금룡이 감겨 있는 것을 보고 깨어나 보니 그 나무 아래 돌 위에서 잠자던 소년이 바로 유정이었다는 것이다. 1800년 화재로 은행나무는 소실되었지만 천왕문 옆의 돌은 남아 있다.
2. 1. 창건 설화
직지사는 418년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인도에서 기원한 불교는 4세기 후반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었는데,[1] 삼국유사에 따르면 아도는 한국에 불교를 전파한 세 명의 승려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 불교를 전파한 인도 출신의 말난타, 고구려에 불교를 전파한 중국 승려 순도와 함께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인물로 아도가 언급된다.[2] 아도는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초기 승려 중 한 명으로, 직지사 창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직지사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직지(直指)'는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키다'라는 뜻으로, 하나는 아도가 선산의 도리사에서 황악산을 가리키며 좋은 절터임을 말했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936년 능여 국사가 절을 중건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땅과 건축 자재를 직접 재었다는 이야기이다.
직지사가 위치한 황악산은 오행에서 노란색, 즉 중앙을 상징한다. 직지사는 한국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세 도의 경치를 볼 수 있는 비로봉이 있는 황악산에 자리 잡고 있어 한국의 중심 사찰로 여겨졌다. 이는 직지사가 한국 불교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조선시대 태종과 세종의 불교탄압에도 불구하고, 1610년(광해군 2년) 임진왜란 이후 재건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조선시대 탄압에도 불구하고 존속했다는 사실은 직지사의 중요성과 위상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는 한국 불교의 끈질긴 생명력과 민중들의 불교에 대한 깊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 2. 중건과 조선 시대
직지사는 신라 시대에 두 차례의 중건을 거쳤다. 첫 번째는 645년 자장율사[1]에 의한 것으로 구전되며, 두 번째는 930년 천목국사에 의해 이루어졌다.[2] 『대동금석서』에 실린 "직지사 대장당기"에 따르면, 930년 대장당 건립과 함께 금색으로 쓴 불교 대장경 사본이 봉안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정종의 태실이 직지사 북쪽 황악산 봉우리에 봉안되면서 왕실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이 되었다. 현재 직지사는 조계종 제8교구 본사로서 경상북도 북서부 백두대간에 위치한 54개의 말사를 관할하고 있다. 태종과 세종 때 불교 탄압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1610년(광해군 2년)에 재건되었다. 조선시대 태종(1407년)과 세종(1424년) 때 불교 탄압으로 폐사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광해군 때 재건되었다는 기록을 통해 꾸준히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2. 3. 사명대사와 직지사
직지사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출가 본사이다. 경남 밀양 출생인 사명대사는 13세 때 직지사 앞 유촌마을로 이사했다. 황희 정승의 현손 황여헌 선생 문하에서 공부하기 위해서였지만, 1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잃자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18세에 봉은사에서 치러진 승과에서 장원으로 합격하고,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다. 32세에는 스승인 서산대사의 뒤를 이어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곧바로 묘향산 보현사로 스승을 따라 갔다가 금강산 유점사에 머물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임진왜란 발발 후, 사명대사는 서산의 사발통문을 접하자마자 의승병을 조직하여 승병장으로서 활약하였다.사명대사가 처음 직지사로 들어오던 날의 일화와 관련된 유적이 현재까지도 직지사에 남아 있다. 천왕문 옆 반듯한 바윗돌이 바로 그것인데, 신묵대사가 참선을 하던 도중 잠에 들었을 때 꿈에 천왕문 옆 은행나무에 황룡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깨어나 달려갔더니, 그 은행나무 아래 깎아놓은 것 같은 돌판 위에 한 소년이 잠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신묵대사는 그 소년을 거두어 제자로 삼았는데, 그 소년이 바로 훗날의 사명대사이다. 은행나무는 1800년 만세루 화재 때 불타 없어졌지만, 천왕문 앞 돌은 아직도 남아 있다. 조선시대 태종(朝鮮太宗)에 의한 1407년(태종 7년)의 불교탄압 당시, 존속을 허락받은 88개 사찰에 직지사의 이름은 없었고, 세종(朝鮮世宗)에 의한 1424년(세종 6년)의 불교탄압 당시에도 존속을 허락받은 36개 사찰에 직지사의 이름은 없어 폐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불교#조선시대의 불교탄압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광해군(光海君) 시대인 1610년(광해군 2년)에 재건되었다.
3. 문화재
직지사는 여러 중요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국보 제208호인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보물 제11-2호인 사인비구 제작 동종 - 문경김룡사동종, 보물 제319호인 김천 직지사 석조약사여래좌상, 보물 제606호와 제607호인 도천사지 동서삼층석탑, 도천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670호인 직지사 대웅전 삼존불탱화, 보물 제1141호인 예천 한천사 금동 자물쇠 및 쇠북, 보물 제1186호인 전 구미 강락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1241호인 예념미타도량참법 권6~10, 보물 제1303호인 백지금니금강 및 보문발원, 보물 제1306호인 묘법연화경 (보물 제1306호), 보물 제1330호인 예천용문사팔상탱, 보물 제1576호인 김천 직지사 대웅전, 보물 제2026호인 김천 직지사 괘불도, 그리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6호인 직지사석조나한좌상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6호인 직지사석조나한좌상은 조선시대 작품으로, 나한의 온화하고 서정적인 표정과 섬세한 조각 기법이 돋보인다. 사찰 경내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조각품과 건축물이 남아 있으며, 이들은 조선시대 불교 미술과 건축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많은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소실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재 직지사는 이러한 문화재 보존과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관리에 힘쓰고 있으며, 체계적인 조사와 복원 작업을 통해 더 많은 문화재가 세상에 드러나고 제대로 보존되기를 기대한다.
3. 1. 국보 및 보물
직지사는 국보 및 보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국보 제208호인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이다. 이 사리기는 신라시대의 유물로,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과 아름다운 장식이 특징이다. 정교한 조각과 화려한 문양은 당시 신라 불교의 번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국보 및 보물이 직지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들 유물은 한국 불교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다음 표는 직지사의 주요 국보 및 보물을 정리한 것이다.문화재명 | 지정번호 | 시대 | 지정일 | 특징 |
---|---|---|---|---|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 국보 제208호 | 신라 | 1963년 1월 21일 |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과 아름다운 장식이 특징. 정교한 조각과 화려한 문양이 당시 신라 불교의 번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 | ||||
| | | (추가 내용) |
(추가 국보 및 보물 목록은 원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아 작성할 수 없습니다. 원본 소스를 제공해주시면 추가 정보를 바탕으로 위키텍스트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3. 2. 기타 문화재
직지사에는 국보 제31호인 직지사 대웅전을 비롯해 여러 문화재가 있지만, 그 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6호인 직지사석조나한좌상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불상은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나한의 온화하고 서정적인 표정과 섬세한 조각 기법이 돋보인다. 이외에도 사찰 경내에는 다양한 조각품과 건축물들이 남아 있으며, 이들은 조선시대 불교 미술과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훼손되었거나 소실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 직지사는 이러한 문화재들을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관리에 힘쓰고 있다. 향후 체계적인 조사와 복원 작업을 통해 더 많은 문화재들이 세상에 드러나고 제대로 보존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4. 관광
직지사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방문객들에게 한국 불교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3] 이를 통해 직지사는 단순한 사찰을 넘어, 불교 문화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종합적인 관광 명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4. 1. 템플스테이
직지사에서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방문객들에게 불교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3] 참선, 염불, 사찰음식 체험 등 다양한 불교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전통 불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프로그램 내용은 시기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직지사 홈페이지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5. 기타
직지사의 전경 사진을 첨부합니다.
5. 1. 갤러리
참조
[1]
웹사이트
Arts of Korea | Explore & Learn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http://www.metmuseum[...]
[2]
서적
Malananta bring Buddhism to Baekje
Samguk Yusa
[3]
웹사이트
Jikjisa Temple stay program
http://eng.templesta[...]
2016-01-24
[4]
웹사이트
韓の国三十三観音聖地のホームページ
http://www.korea33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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