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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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신 신앙은 후지와라노 도키히라의 음모로 다자이후로 좌천되어 사망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신격화한 것이다. 미치자네 사후 역병, 가뭄, 낙뢰 등의 재앙이 발생하자 조정은 그의 원령을 두려워하여 덴만다이지자이텐진으로 모셨다. 세이료덴 낙뢰 사건 이후 미치자네의 원령은 뇌신과 결부되었고, 교토 기타노에 기타노 텐만구를 건립하여 재앙을 진정시키려 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미치자네는 이후 자비, 학문, 예능의 신으로 숭배받았으며, 전국 각지에 텐만구, 텐만 신사 등 텐진을 모시는 신사가 약 1만 개 존재한다. 천신 신앙과 관련된 요소로는 숫자 25, 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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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신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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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 신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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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신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
종류 | 신토 |
기원 | 헤이안 시대 |
중심지 | 기타노 텐만구 (교토부 교토시) |
영향 받은 종교 | 불교, 음양도 |
신앙 대상 | |
신격화된 인물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천신) |
속성 | 학문, 재앙 방지, 기예 향상 |
역사 | |
기원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죽음 이후, 재앙이 잇따르자 그의 원령을 달래기 위해 시작 |
발전 | 가마쿠라 시대 이후, 무사 계급과 서민층으로 확산 |
현대 | 학문의 신으로서 일본 전역에서 숭배 |
신앙의 형태 | |
신사 | 덴만구, 덴진샤 등에서 제사 |
의례 | 합격 기원, 학업 성취 기원, 재앙 방지 기원 |
관련 문화 | 매화 (미치자네가 사랑한 꽃), 소 (미치자네와 관련된 동물) |
주요 신사 | |
일본 3대 덴진 | 기타노 텐만구 (교토부 교토시) 다자이후 텐만구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호후 텐만구 (야마구치현 호후시) |
그 외 | 유시마 텐만구 (도쿄도 분쿄구) 오사카 텐만구 (오사카부 오사카시) 나가오카 텐만구 (교토부 나가오카쿄시) |
관련 인물 | |
주요 인물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
특징 | |
신불습합 | 불교와 습합되어 신앙 형태가 다양화 |
음양도 영향 | 재앙 방지 신앙과 결합 |
학문 장려 | 에도 시대 이후, 데라코야 등 교육 기관에서 장려 |
2. 역사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후지와라노 도키히라의 모함으로 인해 고위 관직을 박탈당하고 다자이후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실의 속에 사망했다. 그의 사후, 수도 교토를 중심으로 역병 유행, 가뭄 지속, 다이고 천황 황자들의 잇따른 병사 등 재앙이 발생했으며, 결정적으로 궁궐의 세이료덴에 벼락이 떨어져 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사건(세이료덴 낙뢰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러한 재앙들을 미치자네의 원령(怨靈)이 일으킨 것이라 여겨 두려워한 조정은 미치자네의 죄를 사면하고 관위를 높여주었다. 특히 세이료덴 낙뢰 사건 이후 미치자네의 원령은 뇌신(雷神)과 동일시되었고, 조정은 그의 원한을 달래기 위해 교토의 기타노 텐만구와 미치자네가 사망한 다자이후의 다자이후 텐만구 등을 건립하여 그를 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고령 신앙 참조). 초기에는 '텐만다이지자이텐진'(天満大自在天神) 등으로 불리며 무서운 원령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나[3],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의 성격이 변화했다.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는 자비와 정직, 억울함을 풀어주는 신, 또는 와카와 같은 예능의 신으로 여겨졌고[4], 무역상들에게는 해상 안전을 지켜주는 신으로[5], 무사들에게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원하는 신으로 숭배받았다. 에도 시대 이후에는 미치자네가 생전에 뛰어난 학자였던 점이 부각되어 학문의 신으로서 널리 신앙되었으며, 근대에는 천황에 대한 충신으로서의 면모가 강조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미치자네를 모시는 텐만구 신앙은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2. 1. 억울한 죽음과 원령
후지와라노 도키히라의 음모로 인해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대신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다자이후로 좌천되어 실의 속에서 사망했다.미치자네가 사망한 직후, 그의 신하였던 아지사케 야스유키는 미치자네를 '''덴만다이지자이텐진'''(天満大自在天神)이라는 신격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그 후 교토에는 역병이 유행하고 가뭄이 지속되었으며, 다이고 천황의 황자들이 잇따라 병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정적으로 궁중의 세이료덴에 벼락이 떨어져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세이료덴 낙뢰 사건)이 일어나자, 조정은 이러한 재앙들이 미치자네의 원령(怨靈)이 일으킨 것이라 두려워하게 되었다. 결국 조정은 미치자네의 죄를 사면하고 그의 관위를 추증했다.
특히 세이료덴 낙뢰 사건을 계기로 미치자네의 원령은 뇌신(雷神)과 동일시되었다. 원래 교토의 기타노 지역에는 헤이안쿄의 북서쪽, 즉 천문(天門) 방향을 수호하는 지주신(地主神)인 화뢰신(火雷神)[3]이 모셔져 있었다. 조정은 미치자네의 원령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기타노 텐만구를 건립했다(고령 신앙 참조). 미치자네가 사망한 다자이후 지역에는 다이고 천황의 칙명에 따라 후지와라노 나카히라가 건립한 안락사 묘(후일의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그를 모셨다. 또한, 949년에는 나니와쿄의 북서쪽을 진압한다고 여겨진 대장군사 앞에 하룻밤 사이에 일곱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칙명에 의해 오사카 텐만구가 건립되기도 했다. 987년에는 조정으로부터 "기타노 텐만구 텐진"이라는 칙호가 내려졌다. 이 시기 미치자네는 텐만다이지자이텐진, 일본 태정위덕천 등으로 불리며 무서운 원령으로서 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2. 2. 천신 신앙의 시작
후지와라노 도키히라의 모함으로 인해 대신 자리에서 쫓겨나 다자이후로 좌천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그곳에서 실의에 빠져 사망했다.미치자네가 죽은 직후, 그의 신하였던 아지사케 야스유키는 미치자네를 '''덴만다이지자이텐진'''(天満大自在天神)이라는 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그 후 교토에서는 역병이 유행하고 가뭄이 계속되었으며, 다이고 천황의 아들들이 연이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결정적으로 궁궐의 세이료덴에 벼락이 떨어져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세이료덴 낙뢰 사건)까지 일어났다. 조정의 관리들은 이러한 재앙들이 미치자네의 원령이 일으키는 앙갚음이라고 두려워했고, 결국 미치자네의 죄를 사면하고 그의 관직을 복권시켰다.
세이료덴 낙뢰 사건 이후 미치자네의 원령은 뇌신과 동일시되었다. 원래 교토 북서쪽의 기타노 땅에는 헤이안쿄의 천문(북서 방향)을 지키는 카즈치노카미라는 지주신[3]이 모셔져 있었는데, 조정은 이곳에 기타노 텐만구를 세워 미치자네 원령의 노여움을 달래고자 했다(고령 신앙 참조). 미치자네가 사망한 다자이후에는 다이고 천황의 명령으로 후지와라노 나카히라가 세운 안락사 묘가 있었는데, 이곳은 후에 다자이후 텐만구가 되어 미치자네를 모시는 주요 신사가 되었다. 또한 949년에는 나니와쿄(현재의 오사카) 북서쪽을 지키던 대장군사 앞에 하룻밤 사이에 7그루의 소나무가 자라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천황의 명으로 오사카 텐만구가 세워졌다. 987년에는 조정으로부터 "기타노 텐만구 텐진"이라는 칭호가 내려졌다. 이처럼 초기에는 텐만다이지자이텐진, 일본 태정위덕천 등으로 불리며 무서운 원령으로 여겨졌다.
2. 3. 신앙의 변화와 확산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미치자네는 원령으로서의 두려움보다는 다른 측면에서 숭배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려진 『텐진 연기』에 따르면, 미치자네는 자비의 신, 정직의 신, 억울함을 풀어주는 신으로 여겨졌으며, 와카·렌가 등 예능의 신, 현세의 장수와 내세의 극락 왕생으로 인도하는 신으로도 숭배받았다.[4] 또한 무역상들에게는 바다에서의 안전을 지켜주는 해난 방지 신으로[5], 황족 외에도 역대 막부나 센고쿠 다이묘 같은 무장들에게는 적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며 나라를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받았다.에도 시대에 들어서는 미치자네가 생전에 뛰어난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점이 부각되면서, 데라코야 등을 중심으로 학문의 신으로서 널리 숭배받게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기 위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충신으로서의 면모가 교과서 등을 통해 부각되기도 하였다.
원래 교토 기타노 지역의 지주신이었던 카즈치노카미는 하늘에서 내려온 뇌신이자 농경신으로 여겨졌는데, 미치자네의 원령이 뇌신과 결부되면서 각지의 유사한 텐진 신앙 역시 미치자네와 동일시되었다. 기타노 텐만구와 다자이후 텐만구로부터 신을 나누어 모시는 분사(分祀, 분령)도 활발히 이루어져, 텐진(미치자네)을 모시는 신사는 텐만구, 텐만 신사, 텐진 신사, 스가와라 신사, 기타노 텐진사, 기타노 신사 등의 이름으로 규슈와 서일본을 중심으로 약 1만 개(오카다 소지 등에 따르면 3953개)가 있으며 분사의 수는 제3위에 해당한다.
3. 발상지
기타노 텐만구와 다자이후 텐만구는 각각 독립적으로 창건되었으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부터 신령을 나누어 받은(권청)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타노 텐만구는 "총본사", 다자이후 텐만구는 "총본궁"이라고 칭하며, 두 곳 모두 "천신 신앙 발상지"라고 불린다. 또한, 호후 텐만구나 요키 텐만 신사 등 가장 오래된 신앙 발상지를 자처하는 곳도 여러 곳 있다.
다만, "일본 3대 천신" 등으로 칭할 경우에는, 다자이후 텐만구를 제외하고 기타노 텐만구를 포함하는 예가 있다[6]。
4. 각지의 천신 신앙
일본 각지에는 지역별 특색을 가진 천신 신앙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호쿠리쿠에서는 집안의 번영과 자녀의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독특한 풍습이 있으며, 특히 마에다씨와의 깊은 관련성을 보인다. 그 외에도 히로시마현 북부에서는 아이의 첫 명절과 관련된 풍습이, 도쿄도 이타바시구에서는 역병 퇴치와 관련된 오랜 유래를 가진 천신 신앙이 각각 이어져 오고 있다.
4. 1. 호쿠리쿠 지방
후쿠이현과 도야마현에서는 장남이 태어나면 그 이후 처음 맞는 정월에 도코노마에 천신상(나무 조각상이나 족자)을 장식하는 풍습이 있다. 후쿠이현의 일부 지역에서는 1월 25일에 가자미(도미)를 바치기도 한다. 이 족자 등은 보통 어머니 쪽 친가에서 보내준다.
이러한 풍습의 유래에 대해서는, 막부 말기 교육에 열성적이었던 후쿠이번 번주 마쓰다이라 슈가쿠가 영지 내 백성들에게 천신 그림을 장식하도록 권장했고, 이를 도야마의 약장수들이 퍼뜨렸다는 설이 있다. 또한, 도야마번이나 가가번(현재의 이시카와현) 등 마에다씨가 다스리던 다른 지역이나 인접 지역에서도 비슷한 풍습이 있었다. 가나자와시에서는 쇼와 30년대(1955년~1964년)까지 정월에 천신과 여러 종류의 목상을 장식하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
가가번 등을 다스린 마에다씨는 스스로 스가와라씨의 후손이라고 칭했으며, 그 영향으로 영지 내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덴진샤(天神社)나 덴만궁(天満宮)이 매우 많다. 마에다 가문의 가문 문장이 천신의 신문(神紋)과 같은 매화 문양(우메바치)인 것도 선조가 스가와라씨이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덧붙여 마에다 가문의 가문 문장은 '검 우메바치'(剣梅鉢) 또는 '가가 우메바치'(加賀梅鉢)라고 불린다.
4. 2. 기타 지역
- '''히로시마현 북부'''
: 아이의 첫 명절에 천신상 등의 인형을 보내는 풍습이 있다. 미요시 인형 참조.
: 간토에서 가장 오래된 천신 신앙이 전해지는 곳이다. 우메키(매화나무)의 영험한 힘으로 역병이 물러가자, 이를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면서 천신 신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5. 천신 신앙과 관련된 요소
천신(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신앙에는 숫자 25와 소(牛)와 관련된 독특한 믿음과 풍습이 전해 내려온다. 이는 미치자네의 생애 및 전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5. 1. 숫자 25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주 제신으로 모시는 신사에서는 그의 생일(6월 25일)과 기일(2월 25일)이 모두 25일이기 때문에 매월 25일을 엔니치(縁日, 인연이 있는 날)로 삼는 경우가 많다. 에도 시대에도 매월 25일은 천신(덴진)의 엔니치였으며, 특히 구력 1월 25일을 하지메 텐진(初天神, 첫 천신), 12월 25일을 오시마이 텐진(終天神, 마지막 천신)이라고 부르며 많은 사람들이 참배했다. 이러한 풍습은 신력으로 바뀐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스가코세이세키 25배(菅公聖蹟二十五拝), 라쿠요 덴만구 25사 순배(洛陽天満宮二十五社順拝), 에도 25 덴진(江戸二十五天神)과 같이 특정 25개의 천신 관련 신사를 순례하는 풍습도 존재한다.5. 2. 소(牛)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와 소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미치자네와 소에 얽힌 여러 전승이 전해지는데, 예를 들어 "미치자네가 태어난 해가 소띠(축년)이다", "미치자네가 다자이후로 좌천될 때 소가 울면서 배웅했다", "미치자네는 소를 타고 다자이후로 갔다", "미치자네는 소를 아꼈고 소도 그를 잘 따랐다", "소가 자객으로부터 미치자네를 구했다", "미치자네의 묘소(다자이후텐만구) 자리를 소가 정했다" 등이 있다.이러한 이야기들 때문에 소는 텐만구에서 신의 사자(神使)로 여겨지며, 경내에는 보통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의 동상인 와우상(臥牛像)이 놓여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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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神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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曽根田天満宮境内説明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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