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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마데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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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를로 마데르노는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로, 초기 바로크 양식 발전에 기여했다. 대리석 채석장 경험을 바탕으로 로마에서 활동하며, 산타 수산나 성당 정면을 설계하며 명성을 얻었다. 교황 바오로 5세의 후원을 받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되어 미켈란젤로의 설계를 수정, 정면을 완성했으나 돔의 시야를 가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과 산탄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 등에서 활동했으며, 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 퀴리날레 궁전, 바르베리니 궁전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1629년 사망하여 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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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마데르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카를로 마데르노의 익명 초상화
카를로 마데르노의 익명 초상화
출생 이름(제공된 정보 없음)
출생1556년
출생지카폴라고, 스위스 연방
사망1629년 1월 31일
사망지로마, 교황령
국적이탈리아
분야건축
활동 시기바로크
주요 작품산탄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

2. 생애

카를로 마데르노는 스위스 티치노주 카폴라고 출신의 바로크 시대 건축가이다.[6] 젊은 시절 대리석 채석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각 기술을 익혔으며, 1588년 로마로 이주하여 삼촌인 도메니코 폰타나 밑에서 건축 경력을 시작했다.[6]

그의 첫 단독 작업은 1596년 시작된 산타 수산나 성당의 정면부 건설(1597년~1603년)이었으며, 이는 바로크 양식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작업으로 평가받는다.[6] 이 작업을 계기로 교황 바오로 5세의 주목을 받아 1603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되었다.[6][2] 그는 미켈란젤로의 기존 계획을 수정하여 대성당의 네이브(본당)를 확장하고 새로운 정면을 설계하는 임무를 맡았다.[2]

마데르노의 작업 대부분은 기존 건물을 개조하는 것이었으나,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1608년~1620년)은 그가 처음부터 설계하고 완공까지 감독한 거의 유일한 건물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산탄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에서는 정면과 설계를 담당했으며, 이 돔은 로마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판테온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돔이다.[3] 이 외에도 퀴리날레 궁전,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궁, 바르베리니 궁전, 마테이 궁전 등 다수의 궁전 설계와 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을 비롯한 여러 교회 및 예배당 설계에 참여했다.[2][6][4][3] 또한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 성모 마리아 기념 기둥의 토대를 설계하기도 했다.[5]

마데르노는 1629년 1월 31일 로마에서 73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6] 그의 유해는 자신이 건축에 참여했던 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에 안장되었다.[3]

2. 1. 초기 활동 (로마 이주 ~ 산타 수산나 성당)

스위스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티치노 주 카폴라고(Capolago)에서 태어났다. 초기에는 대리석 채석장에서 일했으며, 1588년 로마로 이주하여 네 명의 형제들과 함께 삼촌인 도메니코 폰타나를 도왔다. 대리석 채취 경험을 통해 익힌 조각 기술은 훗날 그가 건축가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첫 번째 단독 작업은 1596년에 시작하여 1597년부터 1603년까지 진행된 산타 수산나 성당의 정면부 개수였다. 이 정면은 일 제수 성당의 정면과 더불어 매너리즘 양식에서 벗어나 바로크 양식 시대를 연 최초의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기둥과 벽기둥의 역동적인 리듬감, 돌출된 중앙부와 집중된 장식 등이 특징이며, 이는 구조에 복잡성을 더한다. 전체적으로 엄격한 고전주의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생동감과 위트가 느껴지는 설계를 보여준다.

2. 2.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1603년 ~ )

산타 수산나 성당의 정면부 설계에 관심을 가진 교황 바오로 5세는 1603년 마데르노를 성 베드로 대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했다. 마데르노는 미켈란젤로가 계획했던 대성당의 평면 설계를 수정하고, 네이브(본당)를 확장하며 호화로운 정면부를 추가하는 임무를 맡았다. 1612년에 완성된 정면부는 중앙 문 위에 아름답게 장식된 발코니를 갖추고 있어, 이곳에서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대성당 앞부분의 확장은 기존 미켈란젤로의 그리스 십자형 계획을 라틴 십자형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로 인해 성 베드로 광장에서 대성당의 돔을 제대로 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대성당 가까이에 있는 대로가 근대에 건설되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마데르노는 다른 건물들을 설계할 때와 달리, 성 베드로 대성당 설계에서는 제약이 많아 자신의 의도대로 자유롭게 작업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2. 3. 기타 주요 작품 활동

마데르노가 처음부터 설계하고 건설까지 지휘한 유일한 건물은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1608년~1620년)이다. 하지만 이 성당은 내부에 있는 베르니니의 유명한 조각 작품 성 테레사의 환희가 있는 코르나로 예배당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으며, 성당의 정면 역시 마데르노의 설계가 아니다.

산탄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의 정면


마데르노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산탄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 역시 전적으로 그의 작품은 아니다. 이 성당의 전체 설계는 테아티노회를 위해 주세페 프란체스코 그리말디와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1540년에 시작되었다. 마데르노는 1608년 설계를 시작하여 정면과 건설을 맡았고, 이 돔은 로마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성당 내부는 예수회 양식의 전형적인 라틴 십자 평면을 따르며, 넓은 네이브 양옆에는 아일(측랑) 없이 아치형 입구 너머로 예배당들이 자리한다. 크로싱에는 중앙 제단이 있고, 높은 창이 있는 드럼 위에 마데르노가 설계한 돔(조반니 란프랑코가 1621년~1625년에 프레스코화를 그림)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건설은 1621년부터 1625년까지 이루어졌으나, 마데르노가 사망했을 때는 정면부가 절반만 지어진 상태였다. 이후 카를로 폰타나가 마데르노의 설계를 이어받아 완성하였다. 이 정면부는 일 제수 성당에서 확립된 양식을 따르면서도, 프리즈와 코니스의 다양한 면을 활용하여 동적인 효과와 깊이감을 더하고, 윤곽과 그림자를 통한 명암 대비(키아로스쿠로) 효과를 극대화하며, 유사한 요소들을 긴장감 있는 리듬으로 재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그 외 마데르노의 주요 작품 활동은 다음과 같다.

작품명종류건축 연도 (마데르노 참여)비고
제수 에 마리아 성당 (Gesù e Maria)성당
산 자코모 델리 인쿠라빌리 성당 (San Giacomo degli Incurabili)성당
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 (San Giovanni dei Fiorentini)성당마데르노 자신의 묘가 있음.
퀴리날레 궁전궁전일부 설계 참여.
카스텔 간돌포 교황궁궁전교황의 여름 별장 설계 참여.
바르베리니 궁전궁전1628년–1633년교황 우르바노 8세 의뢰. 이후 베르니니, 보로미니가 개수하여 마데르노의 설계는 상당 부분 변경됨.
마테이 궁전 (Palazzo Mattei)궁전1598년–1616년마데르노의 궁전 설계 특징이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 평가받음.
성 라우렌치오 예배당예배당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내 위치.
카펠라 카에타니 (Cappella Caetani)예배당산타 푸덴치아나 성당 내 위치.



또한 마데르노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기념 기둥의 기초를 설계했는데, 이는 이후 여러 가톨릭 국가에서 유사한 기념 기둥을 세우는 데 모델이 되었다.

2. 4. 성모 마리아 기념 기둥

마데르노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기념 기둥의 기초 부분을 설계하였다. 이 설계는 이후 여러 가톨릭 국가에서 유사한 기념 기둥을 세울 때 모델이 되었다.

2. 5. 말년

마데르노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산탄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은 전적으로 그의 설계는 아니다. 이 성당은 원래 테아티노회를 위해 주세페 프란체스코 그리말디와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1540년에 설계한 건물이었다. 마데르노는 이 건물의 정면과 돔 설계를 맡았는데, 이 돔은 로마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돔 아래 크로싱 부분에는 중앙 제단이 있으며, 높은 창이 있는 드럼부 위의 돔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돔 내부에는 조반니 란프랑코가 1621년부터 1625년까지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마데르노의 초기 설계는 1608년에 이루어졌고, 건물 건설은 1621년에서 1625년 사이에 진행되었다. 그가 사망했을 때 정면은 절반만 지어진 상태였으며, 이후 카를로 폰타나가 마데르노의 원래 구상을 이어받아 완성했다. 이 정면은 일 제수 성당에서 정립된 표준적인 법칙에 동적인 효과와 깊이감을 더하고, 명암대비(키아로스쿠로)를 극대화한 점이 특징이다.[1][2]

마데르노는 후기에도 여러 건축 작업에 참여했다. 기존 건축물을 개조하는 작업이 많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설계하고 완공까지 관리한 유일한 건물은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1608년~1620년)이다. 하지만 이 성당은 내부에 있는 베르니니의 유명한 작품 성 테레사의 법열 때문에 마데르노의 건축 자체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경향이 있으며, 성당의 정면 역시 마데르노의 설계가 아니다.[1][2]

그 외 마데르노가 설계하거나 참여한 주요 건축물은 다음과 같다.

구분작품명비고
제수 에 마리아 성당 | 로마 소재[1]
산 자코모 델리 인쿠라빌리 성당 | 로마 소재[1]
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 | 로마 소재, 마데르노 자신의 묘가 이곳에 있다.[1][2]
퀴리날레 궁전 | 로마 소재[1][2]
카스텔 간돌포 교황궁 | 교황의 여름 별장[1][2]
바르베리니 궁전 | 교황 우르바노 8세를 위해 1628년 착공, 1633년 완공. 이후 베르니니와 보로미니가 개조하여 마데르노의 원래 설계는 많이 변경되었다.[1][2]
마테이 궁전 | 1598년-1616년. 마데르노의 궁전 설계 특징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1][2]
성 라우렌치오 예배당 |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내[1][2]
카펠라 카에타니 | 산타 푸덴치아나 성당 내[1][2]
성모 마리아 기념 기둥 토대 |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 이후 여러 가톨릭 국가에서 세워진 성모 마리아 기념 기둥의 모델이 되었다.[1][2]


3. 주요 작품

카를로 마데르노는 바로크 시대 초기에 활동하며 로마의 건축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건축가이다. 그는 스위스 티치노주 카폴라고 출신으로, 삼촌 도메니코 폰타나 밑에서 일하기 위해 로마로 이주하여 건축 경력을 시작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초기 바로크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산타 수산나 성당의 정면 개수(1597년-1603년)가 있으며, 이 성공으로 교황 바오로 5세에게 인정받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주임 설계자로 임명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설계를 라틴 십자형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정면을 설계하는 중요한 작업을 수행했다.

이 외에도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1608년-1620년)은 그가 처음부터 설계와 건설을 모두 담당한 거의 유일한 건축물이며, 산탄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의 정면과 돔 설계는 그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한 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자신의 묘가 있는 곳), 퀴리날레 궁전,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별장, 바르베리니 궁전, 마테이 궁전 등 다수의 교회와 궁전 설계에 참여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 성모 마리아 기념 기둥의 토대 설계 역시 그의 작업이다. 그의 작품들은 종교 건축과 세속 건축 양 분야에 걸쳐 있으며, 로마의 도시 경관 형성에 기여했다.

3. 1. 종교 건축

마데르노의 최초 단독 프로젝트는 1596년에 시작된 오래된 산타 수산나 성당의 정면 개수 작업(1597년-1603년)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감 넘치는 원숙한 설계를 선보였다. 이 정면은 예수 성당과 더불어 매너리즘 양식에서 벗어난 초기 바로크 양식 정면 설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기둥과 벽기둥의 역동적인 리듬감, 중앙부 돌출과 장식 집중을 통해 구조에 복잡성을 더했으며, 엄격함 속에서도 위트를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다.

산타 수산나 성당 정면은 교황 바오로 5세의 주목을 받아, 1607년 마데르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주임 설계자로 임명되었다. 그의 주요 과제는 미켈란젤로가 계획했던 그리스 십자형 설계를 라틴 십자형으로 변경하고, 본당과 정면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1612년에 완성된 정면은 중앙 문 위에 화려하게 장식된 발코니를 갖추어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축복을 내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본당이 길어지면서 광장에서 중앙 돔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만, 이 설계 과정에서 마데르노가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데르노가 처음부터 설계하고 건설까지 지휘한 유일한 건축물은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1608년-1620년)이다. 하지만 이 성당 내부에 베르니니의 유명한 조각 작품 "성 테레사의 환희"가 있어 마데르노의 건축 자체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정면 또한 마데르노의 설계가 아니다.

마데르노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Sant'Andrea della Valle|산탄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ita 역시 전체가 그의 설계는 아니다. 그는 정면 설계와 돔 건설을 담당했지만, 성당의 전체적인 기본 설계는 자코모 델라 포르타 등이 1540년에 테아티노회를 위해 구상한 것이었다. 마데르노는 1608년에 설계를 시작했고, 건설은 1621년부터 1625년까지 진행되었다. 그가 사망했을 당시 정면은 미완성 상태였으며, 이후 카를로 폰타나가 작업을 이어받아 완성했다. 이 정면은 예수 성당에서 델라 포르타가 확립한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띠 모양의 장식과 코니스 면에 변화를 주어 깊이감을 더하고, 반쯤 벽에 묻힌 기둥이 만드는 그림자를 통해 윤곽을 강조하는 키아로스쿠로(명암 대비) 효과를 증대시켜 더욱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마데르노는 로마의 여러 교회를 설계했다. 그중 San Giovanni dei Fiorentini|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ita에는 마데르노 자신의 묘가 있다. 또한 기존 교회 내부에 새로운 예배당을 설계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의 성 로렌초 예배당과 산타 푸덴치아나 성당의 카에타니 예배당이 있다.

마데르노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기념 기둥의 토대를 설계하기도 했다. 이 기둥은 이후 여러 가톨릭 국가에서 유사한 기념 기둥을 세우는 데 모델이 되었다.

3. 2. 세속 건축

마데르노는 교회 건축 외에도 여러 세속 건축물의 설계에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퀴리날레 궁전, 카스텔 간돌포에 있는 교황의 궁전(별장) 등이 있다. 또한 바르베리니 가문 출신 교황 우르바노 8세가 건설한 바르베리니 궁전의 초기 설계도 담당했다. 그러나 바르베리니 궁전은 이후 베르니니보로미니가 대대적으로 개수하면서 마데르노의 설계는 상당 부분 변경되었다. 마데르노의 팔라초 설계 양식을 비교적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는 1598년부터 1616년 사이에 지어진 마테이 궁전이 있다.

참조

[1] 백과사전 Carlo Maderno http://www.britannic[...] 2011-06-18
[2] 간행물 Carlo Maderna." The Catholic Encyclopedia http://www.newadvent[...] Robert Appleton Company, New York 1910-11-30
[3] 서적 Guide Rionali di Roma 1975
[4] 서적 Carlo Maderno and Roman Architecture, 1580-1630 1971
[5] 서적 Il Divoto Pellegrino Guidato, ed Istruito nella Visita delle quattro Basiliche di Roma, per il Giubileo dell'Anno Santo 1750 https://books.google[...] Stamperia del Characas, presso San Marco al Corso, Rome 1749
[6] 웹사이트 This Day in History: January 31 https://www.ital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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