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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 조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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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커티스 조지프는 NHL에서 활약한 캐나다 출신 아이스하키 골텐더이다.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에드먼턴 오일러스,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피닉스 카이오티스, 캘거리 플레임스 등에서 뛰었으며, NHL 올스타전에 세 번 선정되었다. 2000년에는 킹 클랜시 메모리얼 트로피를 수상했고, 2002년 동계 올림픽에서 캐나다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5년 세인트루이스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25년에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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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 조지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3년의 조지프
출생일1967년 4월 29일 (세)
출생지케직, 온타리오주, 캐나다
신장5피트 11인치
체중190파운드
포지션골텐더
잡는 손왼손
드래프트지명되지 않음
선수 생활 시작1989년
선수 생활 종료2009년
클럽 경력
소속팀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에드먼턴 오일러스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피닉스 카이오티스
캘거리 플레임스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캐나다
메달 기록
남자 아이스하키올림픽 금메달 (2002 솔트레이크시티)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은메달 (1996 오스트리아)
아이스하키 월드컵 은메달 (1996 캐나다)
슈펭글러컵 금메달 (2007)

2. 어린 시절

커티스 조지프는 온타리오주 케직에서 10대 미혼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3] 친모는 조지프를 낳은 병원의 간호사에게 그를 입양 보냈고, 이후 조지프는 양부모의 성을 따라 커티스 조지프로 성장했다.[4]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 입단하기 전까지 "먼로"라는 성씨를 사용했으며,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의 계약을 마치고 양부모의 성인 조지프를 쓰기 시작했다.[5]

어린 시절 대부분을 온타리오 주 이스트귈림버리에서 보냈으며, 여러 지역 아이스하키 팀에서 뛰며 실력을 키웠다.[6][7] 전미 대학 체육 협회(NCAA) 리그에서 뛰기도 했다.[8]

3. 선수 경력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재학 시절에는 대학 소속 아이스하키팀인 위스콘신 배저스에서 뛰었다. 조지프는 배저스의 선수로서 21경기에 참가하여 21승을 기록하였으며, 서부 대학 하키 협회 리그(WCHA)에서 활동했고, WCHA 올 컨퍼런스 팀에 선정되었다.[10] 이후 조지프는 대학을 졸업하고 NHL 신인 드래프트에는 지명되지 않고 자유 계약 신분으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계약을 맺었다.

1989년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입단 계약을 맺은 조지프는 1989-90 시즌부터 NHL에 뛰기 시작했으며, 입단 첫 시즌에는 15경기에 출전했다. 1990-91 시즌 종료 후에는 뉴저지 데블스에서 브렌던 셔너헌이 이적해 왔고, 블루스는 셔너헌 영입 대가로 뉴저지에 조지프와 로드 브랭다무르를 데블스로 영입시키려 했으나 데블스는 스콧 스티븐스의 영입을 원했고, 조지프도 블루스에 남는 것을 원했기에 1991년 9월에 결국 스티븐스와 브랭다무르가 데블스에 입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조지프는 1995년까지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 남았으며, 1992-93 시즌에는 시카고 블랙호크스와의 클레런스 캠벨 콘퍼런스(현재의 서부 콘퍼런스) 경기에서 대활약하는 등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의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이후 2라운드인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와의 경기에서도 활약하여 해당 시즌 클레런스 캠벨 콘퍼런스에서 7경기에 출전했다. 이 시즌에는 에드 벨포어톰 버라소와 함께 베지나 트로피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 신인 시절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골대 앞에서 조지프


1995년 조지프는 1996년 NHL 드래프트에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게 지명받은 마티 리스너를 에드먼턴 오일러스에게 양보하는 건으로 마이크 그리어와 트레이드되어 에드먼턴 오일러스로 이적했다. 에드먼턴 오일러스에서 뛰는 동안 에드먼턴의 MVP 선수에게 주는 제인 펠드먼 트로피를 2번 받았다. 조지프는 1997년 플레이오프 상대인 댈러스 스타스와 1998년 플레이오프 상대인 콜로라도 애벌랜치와의 경기에서 에드먼턴 오일러스의 골문을 지켰다.

오일러스는 기존의 빌 란포드와 계약을 맺고 계약하지 않은 조셉과 함께 훈련 캠프를 시작했다. 에드먼턴은 조셉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그의 권리를 트레이드하는 데 실패하여 조셉은 1995-96 시즌을 팀 없이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IHL의 라스베이거스 썬더와 계약을 맺고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NHL에 자신이 그곳에 있어야 함을 상기시켰다. 오일러스는 조셉을 보스턴 브루인스로 트레이드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결국 조셉과 계약을 맺고 란포드를 보스턴으로 트레이드했다. 에드먼턴에서 조셉은 두 개의 Zane Feldman 트로피(팀 MVP)와 한 개의 가장 인기 있는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1997년과 1998년에 각각 댈러스 스타스콜로라도 애벌랜치를 상대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승리하도록 오일러스를 이끌었는데, 이는 1992년 이후 그들의 첫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였다.

1997–98 시즌이 되자 자유 계약 신분으로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로 이적했다.[11] 토론토로서의 첫 경기는 직전 소속팀이었던 에드먼턴과의 경기이었으며, 에드먼턴의 슛아웃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팬의 인기를 얻었다.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운영진 측은 조지프가 웬들 클라크와 더그 길모어의 뒤를 이어 토론토의 스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지프는 토론토에서 30번 이상의 승리를 거두며 1999년2000년에 베지나 트로피 수상 후보 2위에 올랐고,[11] 또 1999년에 레스터 B. 피어슨상 최종 후보에, 2000년에는 킹 클랜시 메모리얼 트로피를 받았다. 조지프는 토론토의 주요 골리 중 한사람이었으나 1999년에는 도미니크 하셰크에게 밀렸고, 2000년에는 올라프 쾰치크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다. 당시 수상자 발표 때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의 팬들은 "쿠조, 쿠조!(Cujo, Cujo!)"라고 외치며 조지프를 응원하기도 했다. 조지프는 1999년과 2002년에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를 동부 콘퍼런스 결승에 진출하는 데에 기여했으며,[11] 2000년 4월에는 뉴저지 데블스와의 경기에서는 슛을 다수 막아내어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11]

조지프와 토론토와의 계약 만료가 임박하였고, 토론토의 감독 팻 퀸은 조지프의 계약 연장에 대해 꺼리기 시작하자 2001-02 시즌에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 시기에 조지프와 퀸의 관계가 악화된 이유가 2002년 동계 올림픽 당시 캐나다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퀸이 조지프를 한 경기에만 출전시키고 나머지 경기 모두 벤치에 있게 한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기도 했다. 당시 조지프는 스웨덴에게 2-5로 패한 경기에만 출전했고 퀸은 조지프 대신 마르탱 브로되르를 주전 골리로 채용했다. 디트로이트는 조지프의 이적에 대해 대대적으로 광고했으며, 이에 대한 토론토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였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조지프를 영입한 후에는 스탠리 컵 우승에 멀어져만 갔다. 조지프는 레드윙스의 팬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2002-03 시즌에 디비전 타이틀 획득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2003 플레이오프 첫 상대인 마이티 덕스 오브 애너하임에게 패하였다. 2003-2004 시즌에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백업 골리 도미니크 하셰크가 이적을 하자 조지프의 백업 골리로 매니 레거시를 영입했다. 그러나 조지프는 8백만 미국 달러에 마이너팀인 그랜드래피즈 그리핀스로 이적하여 팀을 떠났다. 이후 오타와 세너터스로 이적해 있던 하셰크가 사타구니 부상에서 회복한 후에 다시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조지프의 역할을 수행했다. 조지프 대신 하셰크가 골리가 된 디트로이트는 2005-06 시즌에 6번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른 후에 캘거리 플레임스를 꺾고 스탠리 컵을 들어올리는 데에 성공하였다.

2002년 스탠리 컵에서 도미니크 하섹과 함께 우승을 차지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2002-03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영입한 커티스 조지프를 포함, 대체로 변화가 없는 상태로 시즌을 시작했다. 디트로이트는 은퇴하는 스코티 보먼을 대신해 데이브 루이스를 코치로 영입했고, 은퇴한 도미니크 하섹을 대체하기 위해 조지프와 3년, 2,4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조지프는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2002-03 시즌 후반기에 컨디션을 되찾아 팀을 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공격력이 저조했던 디트로이트는 2003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컨퍼런스 챔피언이 된 마이티 덕스 오브 애너하임에 4경기 만에 패배했다. 디트로이트 팬들과 언론은 2003년 콘 스마이트 트로피 수상자인 장-세바스티앙 지거에게 밀린 조지프에게 실망감을 드러냈다.

2003년 오프 시즌 동안, 도미니크 하섹은 은퇴를 번복할 의사를 밝혔다. 하섹이 경쟁 팀과 계약할 것을 우려한 디트로이트 단장 켄 홀랜드는 조지프를 트레이드할 의도로 하섹과 계약했지만, 조지프의 거액 계약과 오프 시즌 수술로 인해 조지프를 트레이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디트로이트는 두 명의 주전 골키퍼에게 연간 800만 달러를 지불하며 2003-04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마이너 리그에서 잠시 활약한 후, 조지프는 하섹이 사타구니 부상으로 결장하는 동안 레드윙스 라인업에 복귀했다. 레드윙스의 계획은 하섹이 라인업에 복귀할 때까지 조지프를 출전시켜 다른 팀에 그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2월에 하섹은 시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고, 이로 인해 조지프의 레드윙스 로스터 내 입지가 다시 굳어졌다.

디트로이트는 프레지던츠 트로피에서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고, 매니 레가세를 주전 골키퍼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 진출했다. 레가세는 첫 두 경기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지만, 3, 4차전에서 부진했다. 조지프는 5차전에서 맹활약하며 2연승을 거두고 디트로이트가 내슈빌 프레데터스를 6경기 만에 꺾는 데 기여했다. 레드윙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이 된 캘거리 플레임스에게 6경기 만에 패했다. 조지프는 2004년 플레이오프에서 통계적으로 최고의 골키퍼였다.

2005년 조지프는 1년 계약으로 피닉스 카이오티스로 이적했다.[12] 2005년 10월 28일, NHL 통산 400번째 승리를 거두었다.[12] 2006년 3월 28일에는 통산 424번째 승리를 기록하며 토니 에스포지토를 넘어 NHL 역대 승리 순위 6위로 올라섰다.[12] 2006년 여름, 조지프는 1년 계약으로 피닉스에 복귀하여 한 시즌을 더 보냈다. 코요테스에서 뛰는 동안, 조지프는 다섯 개의 다른 팀(세인트루이스, 에드먼턴, 토론토, 디트로이트, 피닉스)에서 정규 시즌 30승 이상을 기록한 최초의 골키퍼가 되었다. 조지프는 이 다섯 팀에서 최소 50번의 정규 시즌 승리를 기록했다.[12]

2008년 1월 14일 조지프는 연봉 150만 달러의 조건 캘거리 플레임스와의 1년 계약을 맺었다.[13] 같은 해 3월 1일 조지프는 피닉스 카이오티스를 상대로 3-1로 승리하는 자신의 448번째 경기에 출전하여 테리 소척을 제치고 NHL 최다 출전 골텐더 4위에 올랐다. 이후 4월 13일에 산호세 샤크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경기에 출전하여 미카 키프루소프를 누르고 NHL 최다 출전 골텐더 3위에 올랐다. 이 경기에서 캘거리 플레임스는 0-3으로 뒤쳐지다가 4-3 역전승을 이뤄냈으며, 조지프는 선수 경력 최초로 NHL 플레이오프 경기 승리를 맛봤다.

2008년 7월 1일, 조지프는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와 1년 70만 달러 계약을 맺으며 친정팀으로 복귀했다.[14] 조지프는 주로 백업 골텐더로 활동하며 21경기에 출전했다. 2008년 12월 30일, 애틀랜타 스래셔스와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4-3으로 승리하며 통산 450번째 승리를 기록했다.[14] 2009년 4월 8일에는 검프 워슬리와 함께 NHL 골키퍼 최다 패배 기록(352패)과 타이를 이루었다.[14] 이 기록은 이후 마르탱 브로되르가 경신했고, 조지프는 통산 397패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14] 조지프의 352패는 이후 로베르토 루옹고에게도 추월당했고, 루옹고는 392패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14]

3. 1. 대학 시절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재학 시절에는 대학 소속 아이스하키팀인 위스콘신 배저스에서 뛰었다. 조지프는 배저스의 선수로서 21경기에 참가하여 21승을 기록하였으며, 서부 대학 하키 협회 리그(WCHA)에서 활동했고, WCHA 올 컨퍼런스 팀에 선정되었다.[10] 이후 조지프는 대학을 졸업하고 NHL 신인 드래프트에는 지명되지 않고 자유 계약 신분으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계약을 맺었다.

3. 2. 프로 경력

1989년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입단 계약을 맺으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지만, 자유 계약 신분으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계약했다. 1989-90 시즌부터 NHL에 뛰기 시작했으며, 입단 첫 시즌에는 15경기에 출전했다. 1990-91 시즌 종료 후에는 뉴저지 데블스에서 브렌던 셔너헌이 이적해 왔고, 블루스는 셔너헌 영입 대가로 뉴저지에 조지프와 로드 브랭다무르를 데블스로 영입시키려 했으나 데블스는 스콧 스티븐스의 영입을 원했고, 조지프도 블루스에 남는 것을 원했기에 1991년 9월에 결국 스티븐스와 브랭다무르가 데블스에 입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조지프는 1995년까지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 남았으며, 1992-93 시즌에는 시카고 블랙호크스와의 클레런스 캠벨 콘퍼런스(현재의 서부 콘퍼런스) 경기에서 대활약하는 등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의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이후 2라운드인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와의 경기에서도 활약하여 해당 시즌 클레런스 캠벨 콘퍼런스에서 7경기에 출전했다. 이 시즌에는 에드 벨포어톰 버라소와 함께 베지나 트로피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95년 조지프는 1996년 NHL 드래프트에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게 지명받은 마티 리스너를 에드먼턴 오일러스에게 양보하는 건으로 마이크 그리어와 트레이드되어 에드먼턴 오일러스로 이적했다. 에드먼턴 오일러스에서 뛰는 동안 에드먼턴의 MVP 선수에게 주는 제인 펠드먼 트로피를 2번 받았다. 조지프는 1997년 플레이오프 상대인 댈러스 스타스와 1998년 플레이오프 상대인 콜로라도 애벌랜치와의 경기에서 에드먼턴 오일러스의 골문을 지켰다.

오일러스는 기존의 빌 란포드와 계약을 맺고 계약하지 않은 조셉과 함께 훈련 캠프를 시작했다. 에드먼턴은 조셉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그의 권리를 트레이드하는 데 실패하여 조셉은 1995-96 시즌을 팀 없이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IHL의 라스베이거스 썬더와 계약을 맺고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NHL에 자신이 그곳에 있어야 함을 상기시켰다. 오일러스는 조셉을 보스턴 브루인스로 트레이드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결국 조셉과 계약을 맺고 란포드를 보스턴으로 트레이드했다. 에드먼턴에서 조셉은 두 개의 Zane Feldman 트로피(팀 MVP)와 한 개의 가장 인기 있는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1997년과 1998년에 각각 댈러스 스타스콜로라도 애벌랜치를 상대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승리하도록 오일러스를 이끌었는데, 이는 1992년 이후 그들의 첫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였다.

1997–98 시즌이 되자 자유 계약 신분으로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로 이적했다.[11] 토론토로서의 첫 경기는 직전 소속팀이었던 에드먼턴과의 경기이었으며, 에드먼턴의 슛아웃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팬의 인기를 얻었다.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운영진 측은 조지프가 웬들 클라크와 더그 길모어의 뒤를 이어 토론토의 스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지프는 토론토에서 30번 이상의 승리를 거두며 1999년2000년에 베지나 트로피 수상 후보 2위에 올랐고,[11] 또 1999년에 레스터 B. 피어슨상 최종 후보에, 2000년에는 킹 클랜시 메모리얼 트로피를 받았다. 조지프는 토론토의 주요 골리 중 한사람이었으나 1999년에는 도미니크 하셰크에게 밀렸고, 2000년에는 올라프 쾰치크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다. 당시 수상자 발표 때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의 팬들은 "쿠조, 쿠조!(Cujo, Cujo!)"라고 외치며 조지프를 응원하기도 했다. 조지프는 1999년과 2002년에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를 동부 콘퍼런스 결승에 진출하는 데에 기여했으며,[11] 2000년 4월에는 뉴저지 데블스와의 경기에서는 슛을 다수 막아내어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11]

조지프와 토론토와의 계약 만료가 임박하였고, 토론토의 감독 팻 퀸은 조지프의 계약 연장에 대해 꺼리기 시작하자 2001-02 시즌에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 시기에 조지프와 퀸의 관계가 악화된 이유가 2002년 동계 올림픽 당시 캐나다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퀸이 조지프를 한 경기에만 출전시키고 나머지 경기 모두 벤치에 있게 한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기도 했다. 당시 조지프는 스웨덴에게 2-5로 패한 경기에만 출전했고 퀸은 조지프 대신 마르탱 브로되르를 주전 골리로 채용했다. 디트로이트는 조지프의 이적에 대해 대대적으로 광고했으며, 이에 대한 토론토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였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조지프를 영입한 후에는 스탠리 컵 우승에 멀어져만 갔다. 조지프는 레드윙스의 팬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2002-03 시즌에 디비전 타이틀 획득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2003 플레이오프 첫 상대인 마이티 덕스 오브 애너하임에게 패하였다. 2003-2004 시즌에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백업 골리 도미니크 하셰크가 이적을 하자 조지프의 백업 골리로 매니 레거시를 영입했다. 그러나 조지프는 8백만 미국 달러에 마이너팀인 그랜드래피즈 그리핀스로 이적하여 팀을 떠났다. 이후 오타와 세너터스로 이적해 있던 하셰크가 사타구니 부상에서 회복한 후에 다시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조지프의 역할을 수행했다. 조지프 대신 하셰크가 골리가 된 디트로이트는 2005-06 시즌에 6번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른 후에 캘거리 플레임스를 꺾고 스탠리 컵을 들어올리는 데에 성공하였다.

2002년 스탠리 컵에서 도미니크 하섹과 함께 우승을 차지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2002-03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영입한 커티스 조지프를 포함, 대체로 변화가 없는 상태로 시즌을 시작했다. 디트로이트는 은퇴하는 스코티 보먼을 대신해 데이브 루이스를 코치로 영입했고, 은퇴한 도미니크 하섹을 대체하기 위해 조지프와 3년, 2,4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조지프는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2002-03 시즌 후반기에 컨디션을 되찾아 팀을 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공격력이 저조했던 디트로이트는 2003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컨퍼런스 챔피언이 된 마이티 덕스 오브 애너하임에 4경기 만에 패배했다. 디트로이트 팬들과 언론은 2003년 콘 스마이트 트로피 수상자인 장-세바스티앙 지거에게 밀린 조지프에게 실망감을 드러냈다.

2003년 오프 시즌 동안, 도미니크 하섹은 은퇴를 번복할 의사를 밝혔다. 하섹이 경쟁 팀과 계약할 것을 우려한 디트로이트 단장 켄 홀랜드는 조지프를 트레이드할 의도로 하섹과 계약했지만, 조지프의 거액 계약과 오프 시즌 수술로 인해 조지프를 트레이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디트로이트는 두 명의 주전 골키퍼에게 연간 800만 달러를 지불하며 2003-04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마이너 리그에서 잠시 활약한 후, 조지프는 하섹이 사타구니 부상으로 결장하는 동안 레드윙스 라인업에 복귀했다. 레드윙스의 계획은 하섹이 라인업에 복귀할 때까지 조지프를 출전시켜 다른 팀에 그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2월에 하섹은 시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고, 이로 인해 조지프의 레드윙스 로스터 내 입지가 다시 굳어졌다.

디트로이트는 프레지던츠 트로피에서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고, 매니 레가세를 주전 골키퍼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 진출했다. 레가세는 첫 두 경기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지만, 3, 4차전에서 부진했다. 조지프는 5차전에서 맹활약하며 2연승을 거두고 디트로이트가 내슈빌 프레데터스를 6경기 만에 꺾는 데 기여했다. 레드윙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이 된 캘거리 플레임스에게 6경기 만에 패했다. 조지프는 2004년 플레이오프에서 통계적으로 최고의 골키퍼였다.

2005년 조지프는 1년 계약으로 피닉스 카이오티스로 이적했다.[12] 2005년 10월 28일, NHL 통산 400번째 승리를 거두었다.[12] 2006년 3월 28일에는 통산 424번째 승리를 기록하며 토니 에스포지토를 넘어 NHL 역대 승리 순위 6위로 올라섰다.[12] 2006년 여름, 조지프는 1년 계약으로 피닉스에 복귀하여 한 시즌을 더 보냈다. 코요테스에서 뛰는 동안, 조지프는 다섯 개의 다른 팀(세인트루이스, 에드먼턴, 토론토, 디트로이트, 피닉스)에서 정규 시즌 30승 이상을 기록한 최초의 골키퍼가 되었다. 조지프는 이 다섯 팀에서 최소 50번의 정규 시즌 승리를 기록했다.[12]

2008년 1월 14일 조지프는 연봉 150만 달러의 조건 캘거리 플레임스와의 1년 계약을 맺었다.[13] 같은 해 3월 1일 조지프는 피닉스 카이오티스를 상대로 3-1로 승리하는 자신의 448번째 경기에 출전하여 테리 소척을 제치고 NHL 최다 출전 골텐더 4위에 올랐다. 이후 4월 13일에 산호세 샤크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경기에 출전하여 미카 키프루소프를 누르고 NHL 최다 출전 골텐더 3위에 올랐다. 이 경기에서 캘거리 플레임스는 0-3으로 뒤쳐지다가 4-3 역전승을 이뤄냈으며, 조지프는 선수 경력 최초로 NHL 플레이오프 경기 승리를 맛봤다.

2008년 7월 1일, 조지프는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와 1년 70만 달러 계약을 맺으며 친정팀으로 복귀했다.[14] 조지프는 주로 백업 골텐더로 활동하며 21경기에 출전했다. 2008년 12월 30일, 애틀랜타 스래셔스와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4-3으로 승리하며 통산 450번째 승리를 기록했다.[14] 2009년 4월 8일에는 검프 워슬리와 함께 NHL 골키퍼 최다 패배 기록(352패)과 타이를 이루었다.[14] 이 기록은 이후 마르탱 브로되르가 경신했고, 조지프는 통산 397패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14] 조지프의 352패는 이후 로베르토 루옹고에게도 추월당했고, 루옹고는 392패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14]

3. 2. 1.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1989-1995)

1989년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입단 계약을 맺은 조지프는 1989-90 시즌부터 NHL에 뛰기 시작했으며, 입단 첫 시즌에는 15경기에 출전했다. 1990-91 시즌 종료 후에는 뉴저지 데블스에서 브렌던 셔너헌이 이적해 왔고, 블루스는 셔너헌 영입 대가로 뉴저지에 조지프와 로드 브랭다무르를 데블스로 영입시키려 했으나 데블스는 스콧 스티븐스의 영입을 원했고, 조지프도 블루스에 남는 것을 원했기에 1991년 9월에 결국 스티븐스와 브랭다무르가 데블스에 입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조지프는 1995년까지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 남았으며, 1992-93 시즌에는 시카고 블랙호크스와의 클레런스 캠벨 콘퍼런스(현재의 서부 콘퍼런스) 경기에서 대활약하는 등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의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이후 2라운드인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와의 경기에서도 활약하여 해당 시즌 클레런스 캠벨 콘퍼런스에서 7경기에 출전했다. 이 시즌에는 에드 벨포어톰 버라소와 함께 베지나 트로피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3. 2. 2. 에드먼턴 오일러스 (1995-1998)

1995년 조지프는 1996년 NHL 드래프트에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게 지명받은 마티 리스너를 에드먼턴 오일러스에게 양보하는 건으로 마이크 그리어와 트레이드되어 에드먼턴 오일러스로 이적했다. 에드먼턴 오일러스에서 뛰는 동안 에드먼턴의 MVP 선수에게 주는 제인 펠드먼 트로피를 2번 받았다. 조지프는 1997년 플레이오프 상대인 댈러스 스타스와 1998년 플레이오프 상대인 콜로라도 애벌랜치와의 경기에서 에드먼턴 오일러스의 골문을 지켰다.

오일러스는 기존의 빌 란포드와 계약을 맺고 계약하지 않은 조셉과 함께 훈련 캠프를 시작했다. 에드먼턴은 조셉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그의 권리를 트레이드하는 데 실패하여 조셉은 1995-96 시즌을 팀 없이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IHL의 라스베이거스 썬더와 계약을 맺고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NHL에 자신이 그곳에 있어야 함을 상기시켰다. 오일러스는 조셉을 보스턴 브루인스로 트레이드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결국 조셉과 계약을 맺고 란포드를 보스턴으로 트레이드했다. 에드먼턴에서 조셉은 두 개의 Zane Feldman 트로피(팀 MVP)와 한 개의 가장 인기 있는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1997년과 1998년에 각각 댈러스 스타스콜로라도 애벌랜치를 상대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승리하도록 오일러스를 이끌었는데, 이는 1992년 이후 그들의 첫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였다.

3. 2. 3.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1998-2002)

1997–98 시즌이 되자 자유 계약 신분으로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로 이적했다.[11] 토론토로서의 첫 경기는 직전 소속팀이었던 에드먼턴과의 경기이었으며, 에드먼턴의 슛아웃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팬의 인기를 얻었다.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운영진 측은 조지프가 웬들 클라크와 더그 길모어의 뒤를 이어 토론토의 스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지프는 토론토에서 30번 이상의 승리를 거두며 1999년2000년에 베지나 트로피 수상 후보 2위에 올랐고,[11] 또 1999년에 레스터 B. 피어슨상 최종 후보에, 2000년에는 킹 클랜시 메모리얼 트로피를 받았다. 조지프는 토론토의 주요 골리 중 한사람이었으나 1999년에는 도미니크 하셰크에게 밀렸고, 2000년에는 올라프 쾰치크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다. 당시 수상자 발표 때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의 팬들은 "쿠조, 쿠조!(Cujo, Cujo!)"라고 외치며 조지프를 응원하기도 했다. 조지프는 1999년과 2002년에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를 동부 콘퍼런스 결승에 진출하는 데에 기여했으며,[11] 2000년 4월에는 뉴저지 데블스와의 경기에서는 슛을 다수 막아내어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11]

조지프와 토론토와의 계약 만료가 임박하였고, 토론토의 감독 팻 퀸은 조지프의 계약 연장에 대해 꺼리기 시작하자 2001-02 시즌에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 시기에 조지프와 퀸의 관계가 악화된 이유가 2002년 동계 올림픽 당시 캐나다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퀸이 조지프를 한 경기에만 출전시키고 나머지 경기 모두 벤치에 있게 한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기도 했다. 당시 조지프는 스웨덴에게 2-5로 패한 경기에만 출전했고 퀸은 조지프 대신 마르탱 브로되르를 주전 골리로 채용했다. 디트로이트는 조지프의 이적에 대해 대대적으로 광고했으며, 이에 대한 토론토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였다.

3. 2. 4.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2002-2004)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조지프를 영입한 후에는 스탠리 컵 우승에 멀어져만 갔다. 조지프는 레드윙스의 팬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2002-03 시즌에 디비전 타이틀 획득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2003 플레이오프 첫 상대인 마이티 덕스 오브 애너하임에게 패하였다. 2003-2004 시즌에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백업 골리 도미니크 하셰크가 이적을 하자 조지프의 백업 골리로 매니 레거시를 영입했다. 그러나 조지프는 8백만 미국 달러에 마이너팀인 그랜드래피즈 그리핀스로 이적하여 팀을 떠났다. 이후 오타와 세너터스로 이적해 있던 하셰크가 사타구니 부상에서 회복한 후에 다시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조지프의 역할을 수행했다. 조지프 대신 하셰크가 골리가 된 디트로이트는 2005-06 시즌에 6번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른 후에 캘거리 플레임스를 꺾고 스탠리 컵을 들어올리는 데에 성공하였다.

2002년 스탠리 컵에서 도미니크 하섹과 함께 우승을 차지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2002-03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영입한 커티스 조지프를 포함, 대체로 변화가 없는 상태로 시즌을 시작했다. 디트로이트는 은퇴하는 스코티 보먼을 대신해 데이브 루이스를 코치로 영입했고, 은퇴한 도미니크 하섹을 대체하기 위해 조지프와 3년, 2,4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조지프는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2002-03 시즌 후반기에 컨디션을 되찾아 팀을 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공격력이 저조했던 디트로이트는 2003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컨퍼런스 챔피언이 된 마이티 덕스 오브 애너하임에 4경기 만에 패배했다. 디트로이트 팬들과 언론은 2003년 콘 스마이트 트로피 수상자인 장-세바스티앙 지거에게 밀린 조지프에게 실망감을 드러냈다.

2003년 오프 시즌 동안, 도미니크 하섹은 은퇴를 번복할 의사를 밝혔다. 하섹이 경쟁 팀과 계약할 것을 우려한 디트로이트 단장 켄 홀랜드는 조지프를 트레이드할 의도로 하섹과 계약했지만, 조지프의 거액 계약과 오프 시즌 수술로 인해 조지프를 트레이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디트로이트는 두 명의 주전 골키퍼에게 연간 800만 달러를 지불하며 2003-04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마이너 리그에서 잠시 활약한 후, 조지프는 하섹이 사타구니 부상으로 결장하는 동안 레드윙스 라인업에 복귀했다. 레드윙스의 계획은 하섹이 라인업에 복귀할 때까지 조지프를 출전시켜 다른 팀에 그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2월에 하섹은 시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고, 이로 인해 조지프의 레드윙스 로스터 내 입지가 다시 굳어졌다.

디트로이트는 프레지던츠 트로피에서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고, 매니 레가세를 주전 골키퍼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 진출했다. 레가세는 첫 두 경기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지만, 3, 4차전에서 부진했다. 조지프는 5차전에서 맹활약하며 2연승을 거두고 디트로이트가 내슈빌 프레데터스를 6경기 만에 꺾는 데 기여했다. 레드윙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이 된 캘거리 플레임스에게 6경기 만에 패했다. 조지프는 2004년 플레이오프에서 통계적으로 최고의 골키퍼였다.

3. 2. 5. 피닉스 카이오티스 (2005-2007)

2005년 조지프는 1년 계약으로 피닉스 카이오티스로 이적했다.[12] 2005년 10월 28일, NHL 통산 400번째 승리를 거두었다.[12] 2006년 3월 28일에는 통산 424번째 승리를 기록하며 토니 에스포지토를 넘어 NHL 역대 승리 순위 6위로 올라섰다.[12] 2006년 여름, 조지프는 1년 계약으로 피닉스에 복귀하여 한 시즌을 더 보냈다. 코요테스에서 뛰는 동안, 조지프는 다섯 개의 다른 팀(세인트루이스, 에드먼턴, 토론토, 디트로이트, 피닉스)에서 정규 시즌 30승 이상을 기록한 최초의 골키퍼가 되었다. 조지프는 이 다섯 팀에서 최소 50번의 정규 시즌 승리를 기록했다.[12]

3. 2. 6. 캘거리 플레임스 (2008)

2008년 1월 14일 조지프는 연봉 150만 달러의 조건 캘거리 플레임스와의 1년 계약을 맺었다.[13] 같은 해 3월 1일 조지프는 피닉스 카이오티스를 상대로 3-1로 승리하는 자신의 448번째 경기에 출전하여 테리 소척을 제치고 NHL 최다 출전 골텐더 4위에 올랐다. 이후 4월 13일에 산호세 샤크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경기에 출전하여 미카 키프루소프를 누르고 NHL 최다 출전 골텐더 3위에 올랐다. 이 경기에서 캘거리 플레임스는 0-3으로 뒤쳐지다가 4-3 역전승을 이뤄냈으며, 조지프는 선수 경력 최초로 NHL 플레이오프 경기 승리를 맛봤다.

3. 2. 7.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복귀 (2008-2009)

2008년 7월 1일, 조지프는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와 1년 70만 달러 계약을 맺으며 친정팀으로 복귀했다.[14] 조지프는 주로 백업 골텐더로 활동하며 21경기에 출전했다. 2008년 12월 30일, 애틀랜타 스래셔스와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4-3으로 승리하며 통산 450번째 승리를 기록했다.[14] 2009년 4월 8일에는 검프 워슬리와 함께 NHL 골키퍼 최다 패배 기록(352패)과 타이를 이루었다.[14] 이 기록은 이후 마르탱 브로되르가 경신했고, 조지프는 통산 397패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14] 조지프의 352패는 이후 로베르토 루옹고에게도 추월당했고, 루옹고는 392패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14]

4. 국가대표팀 경력

1996년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를 통해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주전 골리로 참여하여 8경기에 출전하였다. 캐나다는 체코에게 결승전에서 패하여 은메달을 받았다.[17] 이후 같은 해 여름에 아이스하키 월드컵에 참가하였으며, 7경기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받았다.[17] 2002년에는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였으며, 첫 경기인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대량 실점을 하여 감독인 팻 퀸에 의해 백업 골리인 마르탱 브로되르가 주전으로 뛰게 되었다.[17]

이후 2007년 12월에 클럽 간 대회인 슈펭글러컵에 캐나다 국가대표팀이 유일하게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하였으며, 조지프도 대회에 참가하였으나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17] 캐나다는 결승에서 러시아 콘티넨탈 하키 리그(KHL)의 클럽인 살라바트 율라예프 우파를 꺾고 우승했다.[17]

조지프는 캐나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1996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1996년 월드컵 오브 하키, 2002년 동계 올림픽, 2007년 스펭글러 컵을 포함한 여러 국제 대회에서 팀을 위해 활약했다.[17]

연도대회출장시간실점셧아웃평균자책점선방률
1996캐나다WC84091221.94.916
1996캐나다WCH75204681812.31.908
2002캐나다OLY101060505.00.800
시니어 통산169373532.24


5. 은퇴 이후

6. 수상 및 영예

커티스 조지프는 "쿠조"라는 별칭으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에드먼턴 오일러스,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피닉스 카이오티스, 캘거리 플레임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NHL 올스타전에 3회(1994, 1999, 2000) 선정되었고, 1999-2000 시즌에는 헌신적이며 주목할 만한 사회 활동을 한 선수에게 수여하는 킹 클랜시 메모리얼 트로피를 받았다. 2002년 동계 올림픽캐나다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연도
대학
WCHA 1차 팀1988–89[20]
AHCA 서부 2차 팀 올아메리카1988–89[21]
NHL
NHL 올스타전1994, 1999, 2000
킹 클랜시 기념 트로피2000



2015년 세인트루이스 스포츠 명예의 전당, 2025년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7. 개인적인 삶

커티스 조셉은 두 번 결혼하여 7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두 번째 아내와 함께 키우는 조카도 있다. 조셉은 이전에 낸시와 결혼했었다. 두 사람은 2009년에 이혼하기 전까지 4명의 자녀를 두었다.[18] 2012년에는 스테파니 글래슨과 재혼하였고, 2014년에 딸을 낳았다. 커티스 조셉은 두 번째 아내를 통해 의붓딸도 한 명 두고 있다.[18]

그의 자서전인 ''쿠조: 빙판 위와 밖에서의 내 삶의 숨겨진 이야기''는 2018년에 출간되었다.

조셉은 짐 로버츠 및 웨인 바비치와 함께 2025년 1월에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예정이다.[19]

참조

[1] 웹사이트 Sportsnet signings http://www.sportsnet[...] 2008-07-01
[2] 웹사이트 Once again, 'Cujo' is in command http://www.nhl.com/c[...] NHL 2006-04-03
[3] 웹사이트 Curtis Joseph Hockey Stats and Profile http://www.hockeydb.[...] hockeyDB.com 2007-11-15
[4] 서적 Cujo: The Untold Story of My Life on and off the Ice Triumph Books 2018
[5] 뉴스 The Man Called Cujo http://www.encyclope[...] The Sporting News 2007-12-31
[6] 웹사이트 Curtis Joseph Stats https://www.hockey-r[...] Sports Reference, LLC 2019-02-04
[7] 웹사이트 Curtis Joseph https://www.tsn.ca/n[...] TSN 2017-12-06
[8] 웹사이트 Curtis Joseph—Biography http://www.legendsof[...] Hockey Hall of Fame 2008-01-04
[9] 웹사이트 Curtis Joseph http://www.hockeygoa[...] hockeygoalies.org 2008-01-04
[10] 간행물 Curtis Joseph http://www.legendsof[...] Legends of Hockey 2010-12-01
[11] 웹사이트 CBC Sports - Story https://www.cbc.ca/s[...]
[12] 웹사이트 Curtis Joseph belongs in the Hockey Hall of Fame {{!}} Offside https://dailyhive.co[...] 2019-12-18
[13] 웹사이트 Flames agree to one-year deal with CuJo http://www.sportsnet[...] Sportsnet.ca 2012-06-16
[14] 웹사이트 NHL Goalies ‑ All-Time Losses Leaders http://www.quanthock[...]
[15] 웹사이트 Report: Maple Leafs will not bring Joseph back https://www.tsn.ca/n[...] Tsn.ca 2012-06-16
[16] 웹사이트 Canes Add Joseph as Goaltending Consultant http://hurricanes.nh[...] Carolina Hurricanes 2016-08-26
[17] 웹사이트 Canada wins 2007 Spengler Cup http://tsn.ca/canadi[...] TSN 2008-01-04
[18] 뉴스 Neglected as a child, Curtis Joseph was driven to succeed in NHL nets https://www.cbc.ca/s[...] Canadian Press 2018-10-24
[19] 웹사이트 Blues name 2025 Hall of Fame class | St. Louis Blues https://www.nhl.com/[...] 2024-10-23
[20] 뉴스 WCHA All-Teams http://www.augenblic[...] College Hockey Historical Archives 2013-05-19
[21] 뉴스 Men's Ice Hockey Award Winners http://fs.ncaa.org/D[...] NCAA.org 201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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