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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국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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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퀘벡 국경일(Fête nationale)은 퀘벡에서 6월 24일에 기념하는 법정 공휴일로, 세례자 요한 축일(생장-밥티스트의 날)을 기원으로 한다. 1834년 뤼제르 뒤베르네의 주도로 애국적인 분위기를 띠며 시작되었으며, 이후 퀘벡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행사로 발전했다. 조용한 혁명 이후 퀘벡 분리주의와 관련된 정치적 성격을 갖게 되었으며, 2017년에는 퍼레이드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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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국경일
개요
이름생장바티스트 데이
프랑스어 이름페트 드 라 생장바티스트, 라 생장, 페트 나시오날 뒤 케베크
영어 이름St John the Baptist Day
다른 이름라 생장, 페트 나시오날, 국가 공휴일
기념 대상퀘벡인, 프랑스계 캐나다인, 프랑스계 미국인/프랑스계 캐나다계 미국인
종류국경일
긴 종류역사적, 문화, 국가적, 종교적
날짜
날짜6월 24일
빈도매년
기념 행사
기념 행사퍼레이드
모닥불
불꽃놀이
축제
음주
음악 콘서트
깃발 흔들기
애국 연설
콘테스트
추가 정보
관련 법률국가 공휴일에 관한 법률
관련 기사캐나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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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축제 가이드
관련 웹사이트퀘벡 국경일
이미지
퀘벡 국경일
생장바티스트 퍼레이드, 몬트리올, 2006년 6월 24일

2. 기원

세례자 요한 축일은 프랑스 앙시앵 레짐 시대부터 여러 국가에서 종교적인 축제일로 기념되었으며, 이러한 전통은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캐나다로 전해졌다. 이후 1908년 교황 비오 10세는 세례자 요한을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했고, 1925년에는 6월 24일이 퀘벡 주의 공휴일로 지정되었다.[16]

2. 1. 세례자 요한 축일

세례자 요한 또는 하지 축제는 프랑스 앙시앵 레짐 시대에 매우 인기 있는 행사였으며, 여러 국가에서 종교적인 축제일로 기념되고 있다.[9] 이 전통은 최초의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과 함께 캐나다에 상륙했다. 북미에서 생장-밥티스트 축하 행사에 대한 최초 언급은 16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미래의 아카디아로 가는 도중에 뉴펀들랜드 해안에 정박한 정착민들이 6월 23일에 휴식을 취했을 때였다.[9] 예수회 관계자에 따르면 축하 행사에 대한 두 번째 언급은 1636년 6월 23일 저녁에 세인트로렌스 강 유역에서 모닥불과 다섯 발의 대포를 쏘면서 열렸다.

로어 캐나다에서 세례자 요한 탄생 축하는 1834년 신문 ''라 미네르브''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뤼제르 뒤베르네의 주도로 애국적인 분위기를 띠게 되었으며, 뒤베르네는 나중에 생장-밥티스트 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 1834년 봄, 뒤베르네와 다른 ''애국자''들은 몬트리올에서 아일랜드계 디아스포라의 축제인 최초의 성 패트릭의 날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이를 통해 그와 다른 사람들은 모든 ''캐나다인''과 그들의 친구들을 위해 비슷한 것을 조직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10]

그해 6월 24일, 조르주 에티엔 카르티에의 "''오 캐나다! 몽 페이, 메 자무르''"는 몬트리올의 변호사 존 맥도넬의 정원에서 약 60명의 프랑스어 사용자와 영어를 사용하는 퀘벡인이 모인 대규모 애국 연회에서 처음 불렸다.[11] 이 노래의 ''캐나다''는 오늘날의 남부 퀘벡인 로어 캐나다를 가리킨다. 건배는 ''파트리 파트리오트'', 미국, 아일랜드, 92개의 결의안으로 이어졌다.[12]

이틀 후, ''라 미네르브''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캐나다인''의 단결을 굳건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축일은 결실을 맺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매년 국경일로 기념될 것이며 가장 행복한 결과를 낳는 데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13] 이 축하는 1835년, 1836년, 1837년에 다시 열렸다.

로어 캐나다 반란 동안의 반란 운동의 패배와 그 뒤를 이은 군사적 탄압으로 인해 이 날은 수년 동안 기념되지 않았다.[10]

드라포 카리용 사크레쾨르: 1902년 창작부터 1948년까지 생장-밥티스트 날에 사람들이 흔들었던 카리용 깃발. 현재의 퀘벡 기는 이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며 1948년에 채택되었다.


1834년, 뒤베르네는 그 해에 생장-밥티스트를 기념하기 위해 자선 단체인 생장-밥티스트 협회를 설립했다. 이 협회는 사회적, 도덕적 발전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1849년에 인가를 받았다.

이 축하 행사는 가톨릭 교회의 지원을 받았으며 당시에는 주로 종교적이었다. 세례자 요한 축일의 전통적인 관습인 모닥불은 기독교 이전 시대의 하지 축제로 거슬러 올라가며 밤에도 여전히 불을 지폈다.[14] 또한 최초의 생장-밥티스트 퍼레이드가 조직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요한 전통이 되었다. 상징적인 부유물의 행렬은 1874년에 도입되었다.[15]

1880년 6월 24일, 생장-밥티스트 협회는 북미 전역의 모든 프랑스어 사용 공동체를 소집했다. 이 행사는 최초의 프랑스계 캐나다인 전국 회의(''콩그레 나시오날 데 카나디앵 프랑세'')였다. 이 자리에서 퀘벡 시의 시민들은 퀘벡 고등 법원 판사인 아돌프 바질 루티에의 시를 바탕으로 한 칼릭사 라발레의 "''오 캐나다''"를 처음 들었다. 이 노래는 생장-밥티스트 협회의 의뢰를 받았다. 그것은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수년 동안 널리 알려진 노래가 되지는 않았다. 영어 가사는 나중에 캐나다 왕실 방문을 위해 1901년에 쓰여졌다. 1980년에 "오 캐나다"는 캐나다의 공식 국가가 되었다.

1908년, 교황 비오 10세세례자 요한을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수호 성인으로 지정했다. 1914년부터 1923년까지 퍼레이드는 열리지 않았다. 1925년, 뤼제르 뒤베르네의 몬트리올 연회 91년 후, 6월 24일은 퀘벡에서 주 차원의 공휴일이 되었다.[16]

3. 민족주의적 성격의 발전

생 장 바티스트의 날 전날 배틀필드 공원에서 열린 무료 공개 콘서트


조용한 혁명 시기와 그 직후, 생장 바티스트의 날(현 퀘벡 국경일)은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축제와 관련된 종교적 상징은 퀘벡 분리주의의 정치적 이상으로 대체되었다.

1964년, 캐나다 총독 조르주 바니에는 항상 단결과 이중 문화를 장려했지만, 생장 바티스트의 날에 몬트리올에서 퀘벡 주권 운동 지지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시위대는 "바니에 벤두"(바니에 매국노), "바니에 푸 드 라 렌"(바니에, 여왕의 광대)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22]

1968년, 피에르 트뤼도 신임 총리가 총선 전날 참석한 가운데 생장 바티스트의 날에 폭동이 일어났다. 선동가들은 트뤼도 총리에게 병을 던졌으나, 트뤼도는 피하거나 관람석을 떠나지 않고 자신이 퀘벡인이며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면은 텔레비전에 방송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았다. 트뤼도의 반항은 다음 날 캐나다 자유당이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23]

1969년 몬트리올 퍼레이드 중에는 프랑스어 방송 SRC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영화 제작자들이 민족주의적이고 빈정거리는 발언을 한 후 방송에서 하차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폭동이 발생하고 생장 바티스트의 상징이 파괴되면서 퍼레이드가 중단되었고, 이듬해에는 열리지 않았다.[23]

2009년에는 퀘벡 밴드 레이크 오브 스튜와 블러드샷 빌이 멤버들이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앵글로폰(영어 사용자) 퀘벡인으로 구성되어 몬트리올에서 열린 지역 축제인 ''L'Autre St-Jean''("또 다른 생장") 프로그램에 추가되었다가 취소되는 사건이 있었다.[24][25][26] 이들이 영어로 노래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불만이 제기되었고, 생장 바티스트 협회 회장 마리오 보리유는 퀘벡주의 공용어가 프랑스어임을 언급하며 공연 취소를 옹호했다. 그러나 앵글로폰과 프랑코폰 커뮤니티 모두의 분노 이후, 두 밴드는 다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27]

그러나 정부 규정에 따르면 생장 프로그램은 프랑스어로 진행되어야 한다.[28][29] 이후 축제는 더욱 포용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으며, 다양한 언어로 노래하는 단체들을 포함시켰다.[30][31][32]

2017년에는 축제 국경일 퍼레이드에서 백인 공연자가 퀘벡 찬가를 부르고 베이지색 옷을 입은 흑인 청소년들이 밀고 나가는 모습이 인종차별적이고 노예 제도를 상징한다는 논란이 있었다.[33][34]

3. 1. 뤼제 뒤베르네와 생장 밥티스트 협회

로어 캐나다에서 세례자 요한 탄생 축하는 1834년 신문 ''라 미네르브''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뤼제르 뒤베르네의 주도로 애국적인 분위기를 띠게 되었으며, 뒤베르네는 나중에 생장-밥티스트 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10] 1834년 봄, 뒤베르네와 다른 '애국자'들은 몬트리올에서 아일랜드계 디아스포라의 축제인 최초의 성 패트릭의 날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이를 통해 그와 다른 사람들은 모든 ''캐나다인''과 그들의 친구들을 위해 비슷한 것을 조직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10]

그해 6월 24일, 조지-에티엔 카르티에의 "''오 캐나다! 몽 페이, 메 자무르''"는 몬트리올의 변호사 존 맥도넬의 정원에서 약 60명의 프랑스어 사용자와 영어를 사용하는 퀘벡인이 모인 대규모 애국 연회에서 처음 불렸다.[11] 이 노래의 ''캐나다''는 오늘날의 남부 퀘벡인 로어 캐나다를 가리킨다. 건배는 ''파트리 파트리오트'', 미국, 아일랜드, 92개의 결의안으로 이어졌다.[12]

이틀 후, ''라 미네르브''는 "''캐나다인''의 단결을 굳건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축일은 결실을 맺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매년 국경일로 기념될 것이며 가장 행복한 결과를 낳는 데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13] 이 축하는 1835년, 1836년, 1837년에 다시 열렸다.

로어 캐나다 반란 동안의 반란 운동의 패배와 그 뒤를 이은 군사적 탄압으로 인해 이 날은 수년 동안 기념되지 않았다.[10]

1834년, 뒤베르네는 그 해에 생장-밥티스트를 기념하기 위해 자선 단체인 생장-밥티스트 협회를 설립했다. 이 협회는 사회적, 도덕적 발전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1849년에 인가를 받았다.

3. 2. 오, 캐나다!

로어 캐나다에서 세례자 요한 탄생 축하는 1834년 신문 ''라 미네르브''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뤼제르 뒤베르네의 주도로 애국적인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10] 1834년 6월 24일, 조지-에티엔 카르티에의 "오 캐나다! 몽 페이, 메 자무르"는 몬트리올에서 열린 대규모 연회에서 처음 불렸다.[11] 이 노래의 ''캐나다''는 오늘날의 남부 퀘벡인 로어 캐나다를 가리킨다. 건배는 ''파트리 파트리오트'', 미국, 아일랜드, 92개의 결의안으로 이어졌다.[12] ''라 미네르브''는 이 축일이 매년 국경일로 기념될 것이라고 보도했다.[13]

이 축하는 1835년, 1836년, 1837년에 다시 열렸으나, 로어 캐나다 반란의 패배와 군사적 탄압으로 인해 수년 동안 기념되지 않았다.[10]

1880년, 생장-밥티스트 협회는 북미 전역의 프랑스어 사용 공동체를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칼릭사 라발레가 작곡하고 아돌프-바질 루티에가 작사한 "오 캐나다"가 처음으로 불려졌다. 이 노래는 생장-밥티스트 협회의 의뢰를 받았지만 수년 동안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16] 1901년에 영어 가사가 쓰였고, 1980년에 "오 캐나다"는 캐나다의 공식 국가가 되었다.

4. 퀘벡 국경일 (Fête nationale)

불꽃놀이가 국회의사당 위로 펼쳐지는 모습, 퀘벡 시의 생 쟝-밥티스트 축제 전야


퀘벡에서 6월 24일(성 요한 축일) 또는 퀘벡 국경일은 "노동 기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급 법정 공휴일이다.[4][5][6] 1977년 부총독 위그 라푸앵트는 총리 르네 레베스크의 권고에 따라 추밀원 명령을 통해 6월 24일을 퀘벡 국경일로 선포했다.

이듬해 국경일 조직 위원회(Comité organisateur de la fête nationale프랑스어)가 결성되었다. 위원회는 처음에는 축제 조직을 '퀘벡 대중 축제 협회'에 위탁했고, 1984년 SSJB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여 주권주의 단체인 ''퀘벡인 및 퀘벡인 민족 운동''(MNQ)에 위탁했다.[17][18][19]

4. 1. 조용한 혁명과 퀘벡 주권 운동

조용한 혁명 동안과 그 직후, 생-장-바티스트의 날(퀘벡 국경일)은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축제와 관련된 종교적 상징은 퀘벡 분리주의의 정치적 이상으로 대체되었다.[2]

캐나다 총독 조르주 바니에는 항상 단결과 이중 문화를 장려했지만, 1964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생-장-바티스트의 날에 퀘벡 주권 운동 지지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은 "바니에 벤두"("바니에 매국노")와 "바니에 푸 드 라 렌"("바니에, 여왕의 광대")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22]

4년 후, 피에르 트뤼도 신임 총리가 총선 전날 참석한 가운데 생-장-바티스트의 날에 폭동이 일어났다. 한 무리의 선동가들이 트뤼도 총리에게 병을 던졌지만, 트뤼도는 몸을 숨기거나 관람석을 떠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이 퀘벡인이며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면은 텔레비전에 방송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았다. 트뤼도의 반항은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다음 날 캐나다 자유당이 압도적인 다수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1969년 몬트리올 퍼레이드 중 프랑스어 방송 SRC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영화 제작자 베르나르 고슬랭과 피에르 페로는 민족주의적이고 빈정거리는 발언을 한 후 방송에서 하차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폭동이 발생했고 생-장-바티스트의 상징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퍼레이드가 중단되었고, 이듬해에는 열리지 않았다.[23]

2009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지역 축제인 ''L'Autre St-Jean''("또 다른 생-장")에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앵글로폰 퀘벡인으로 구성된 밴드들이 추가되었다.[24][25][26] 그들이 영어로 노래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러 불만이 제기되었고, 밴드들은 축제에서 제외되었다. 생-장-바티스트 협회 회장 마리오 보리유는 퀘벡주의 공용어가 프랑스어라고 언급하며 이들의 공연을 취소한 결정을 옹호했다. 그러나 앵글로폰과 프랑코폰 커뮤니티 모두의 분노 이후, 두 밴드는 다시 참여하게 되었고,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27]

그러나 정부 규정에 따르면 생-장 프로그램은 프랑스어로 진행되어야 한다.[28][29]

이 축제는 더욱 포용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해 왔으며, 2008년 축제에서는 "세계 최초의 원주민 알곤킨어 래퍼"인 사미안이 몬트리올 축제에서 노래했다.[30][31][32]

2017년에는 백인 공연자가 인기 있는 퀘벡 찬가를 부르고 베이지색 옷을 입은 몇몇 흑인 청소년들이 밀고 나가는 모습이 담긴 축제 국경일 퍼레이드에 논란이 있었다. 구경꾼들은 이 광경을 인종차별적이고 노예 제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33][34]

4. 2. 포용성 확대 노력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이 날은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나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퀘벡인에게 휴일이 되었다. 퀘벡인 및 퀘벡인 민족 운동의 조치로 축하 행사는 점차 세속화되었으며, 6월 23일과 24일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축제가 공휴일 전날 밤에 열린다.[2]

시민 축제의 종교적 의미는 사라졌지만, 이 날은 여전히 대중적으로 ''라 생 쟝-밥티스트'' 또는 간단히 ''라 생 쟝''(특히 기업에서)으로 불리며, 교회에서도 기념된다.

2010년과 2011년, 프랑코-온타리오 출신 신민당 국회의원 클로드 그라벨은 생 쟝-밥티스트 축일을 캐나다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는 의원 발의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20][21]

5. 논란

조용한 혁명 전후, 생장바티스트의 날은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 축제의 종교적 상징은 퀘벡 분리주의 운동의 정치적 이상으로 대체되었다.

1964년, 캐나다 총독 조르주 바니에는 몬트리올에서 퀘벡 주권 운동 지지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시위대는 "바니에 벤두(Vanier vendu, 바니에 매국노)"와 "바니에 푸 드 라 렌(Vanier fou de la reine, 바니에, 여왕의 광대)"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22]

1969년 몬트리올 퍼레이드 중, 프랑스어 방송 SRC 텔레비전에서 영화 제작자 베르나르 고슬랭과 피에르 페로가 민족주의적이고 냉소적인 발언을 한 후 방송 하차를 요구받았다. 이 사건으로 폭동이 발생하여 생장바티스트 관련 상징물이 파괴되었고, 퍼레이드는 중단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열리지 않았다.[23]

2009년에는 퀘벡 밴드 레이크 오브 스튜와 블러드샷 빌의 멤버들이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앵글로폰 퀘벡인이라는 이유로 ''L'Autre St-Jean''("또 다른 생-장")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었다가, 앵글로폰과 프랑코폰 커뮤니티의 반발로 다시 참여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2017년에는 축제 퍼레이드에서 백인 공연자가 퀘벡 찬가를 부르고 흑인 청소년들이 밀고 나가는 모습이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33][34]

5. 1. 1968년 몬트리올 폭동

조용한 혁명 전후, 생장바티스트의 날은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 축제의 종교적 상징은 퀘벡 분리주의 운동의 정치적 이상으로 대체되었다.

1964년, 캐나다 총독 조르주 바니에는 몬트리올에서 퀘벡 주권 운동 지지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시위대는 "바니에 벤두(Vanier vendu, 바니에 매국노)"와 "바니에 푸 드 라 렌(Vanier fou de la reine, 바니에, 여왕의 광대)"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22]

1968년, 피에르 트뤼도 신임 총리가 총선 전날 참석한 가운데 퀘벡 국경일 기념 행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시위대는 트뤼도 총리에게 병을 던졌으나, 트뤼도는 피신하거나 자리를 뜨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이 퀘벡인이며 위협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장면은 라디오-캐나다 텔레비전과 CBC 저녁 뉴스에 방송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를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았고, 트뤼도의 강경한 태도는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다음 날 캐나다 자유당의 압승에 기여했다.

1969년 몬트리올 퍼레이드 중, 프랑스어 방송 SRC 텔레비전에서 영화 제작자 베르나르 고슬랭과 피에르 페로가 민족주의적이고 냉소적인 발언을 한 후 방송 하차를 요구받았다. 이 사건으로 폭동이 발생하여 생장바티스트 관련 상징물이 파괴되었고, 퍼레이드는 중단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열리지 않았다.[23]

5. 2. 인종 차별 논란

조용한 혁명 동안과 그 직후, 생-장-바티스트의 날(퀘벡 국경일)은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축제와 관련된 종교적 상징은 퀘벡 분리주의의 정치적 이상으로 대체되었다.

캐나다 총독 조르주 바니에는 총독으로서 항상 단결과 이중 문화를 장려했지만, 1964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생-장-바티스트의 날에 퀘벡 주권 운동 지지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은 "''바니에 벤두''"("바니에 매국노")와 "''바니에 푸 드 라 렌''" ("바니에, 여왕의 광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22]

4년 후, 피에르 트뤼도 신임 총리가 총선 전날 참석한 가운데 생-장-바티스트의 날에 폭동이 일어났다. 한 무리의 선동가들이 트뤼도 총리를 환영하지 않기 위해 그에게 병을 던졌다. 트뤼도는 몸을 숨기거나 관람석을 떠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이 퀘벡인이며 술에 취한 폭도들에게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면은 라디오-캐나다 텔레비전과 CBC의 저녁 뉴스에 방송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공개적인 용기라고 보았고, 총리의 반항적인 태도는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다음 날 캐나다 자유당이 압도적인 다수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1969년 몬트리올 퍼레이드 중 프랑스어 방송 SRC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영화 제작자 베르나르 고슬랭과 피에르 페로는 민족주의적이고 빈정거리는 발언을 한 후 방송에서 하차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들은 한때 자랑부 장관과 제비의 고위 위원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23] 폭동이 발생했고 생-장-바티스트의 상징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퍼레이드가 중단되었고, 이듬해에는 열리지 않았다.

2009년 6월, 퀘벡 밴드 레이크 오브 스튜와 블러드샷 빌은 멤버들이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앵글로폰 퀘벡인으로 구성되어 몬트리올에서 열린 지역 축제인 ''L'Autre St-Jean''("또 다른 생-장") 프로그램에 추가되었다.[24][25][26] 그들이 영어로 노래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러 불만이 제기되었고, 나중에 음악가들은 축제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생-장-바티스트 협회 회장 마리오 보리유는 퀘벡주의 공용어가 프랑스어라고 언급하며 이 음악가들의 공연을 취소하기로 한 결정을 옹호했다. 그러나 앵글로폰과 프랑코폰 커뮤니티 모두의 대중적 분노 이후, 이 두 밴드는 밴드가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다는 점이 명확해지면서 프로그램에 다시 참여하게 되었다.[27]

그러나 정부 규정에 따르면 생-장 프로그램은 프랑스어로 진행되어야 한다(비록 마사 웨인라이트와 패트릭 왓슨과 같은 국제적으로나 전국적으로 유명한 앵글로폰 아티스트에 의해서도).[28][29]

이 축제는 더욱 포용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시도해 왔으며, 단체들이 크리올어로 노래하고 2008년 축제에서는 "세계 최초의 원주민 알곤킨어 래퍼"인 사미안이 몬트리올 축제에서 노래했다.[30][31][32]

몬트리올 지하철은 생-장-바티스트의 날 역과 열차의 정보 화면에 표시되는 모토를 통해 축제의 포용적인 성격을 상징하려고 한다. ''Bonne Saint-Jean-Baptiste à tous et à toutes avec surtout ce sentiment de se sentir membre à part entière de cette communauté québécoise diverse et fière!'' (영어: "모두에게 행복한 생-장-바티스트를, 특히 다양하고 자랑스러운 퀘벡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2017년에는 백인 공연자가 인기 있는 퀘벡 찬가를 부르고 베이지색 옷을 입은 몇몇 흑인 청소년들이 밀고 나가는 모습이 담긴 축제 국경일 퍼레이드에 논란이 있었다. 구경꾼들은 이 광경을 인종차별적이고 노예 제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33][3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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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뉴스 A guide to Montreals festivities, 2018 https://montrealga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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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웹사이트 Fete nationale 'isn't what it once was' http://www.therecord[...] Therecord.com 201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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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웹사이트 Canadian Parliament http://www.parl.gc.c[...] 201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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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서적 Rideau Hall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23] 웹사이트 Security Alert http://montreal.abou[...] Montreal.about.com 2009-03-13
[24] 웹사이트 L'autre St-Jean http://www.lautrestj[...] Lautrestjean.org 2013-05-22
[25] 웹사이트 L'autre Saint-Jean ! – BANGBANG http://bangbangblog.[...] Bangbangblog.com 2013-05-22
[26] 웹사이트 Blogues du journal Voir – Voir – http://www.voir.ca/b[...] Voir.ca 2013-05-22
[27] 웹사이트 Fête nationale won't be the celebration the Parti Québécois imagined: Hébert https://www.thestar.[...] 2011-06-24
[28] 웹사이트 Mouvement national des Québécoises et Québécois http://www.newswire.[...] Newswire.ca 2009-06-16
[29] 웹사이트 Competing national holidays https://montrealgaze[...] 2013-06-24
[30] 웹사이트 World news http://www.guardianw[...] 2010-06-15
[31] 웹사이트 Anglo musicians ousted from St. Jean celebration http://www.montrealg[...] Montreal Gazette 2009-06-15
[32] 웹사이트 English bands back Montreal Jean Baptiste festivities https://theprovince.[...]
[33] 웹사이트 Video of Quebec history float goes viral amid allegations of racism http://www.cbc.ca/ne[...]
[34] 뉴스 Controverse au défilé de la Fête nationale: un hasard qui choque - Audrey Ruel-Manseau - Montréal http://www.lapresse.[...] 2017-06-24
[35] 웹사이트 ケベック州の祝日 http://www.gouv.q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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