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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자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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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나다 자유당은 1867년 캐나다 건국과 함께 결성된 정당으로, 19세기부터 캐나다 정치에서 주요 역할을 해왔다. 알렉산더 매켄지, 윌프리드 로리에,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피에르 트뤼도 등 여러 총리를 배출했으며, 보수당과 번갈아 가며 집권했다. 자유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 사회 정의, 다문화주의 등을 옹호하며, 중도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20세기에는 킹과 트뤼도 시대를 거치며 캐나다의 주권 강화, 이중 언어 정책, 다문화주의를 추진했다. 21세기에는 쥐스탱 트뤼도가 당 대표를 맡아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집권했으며, 소수 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현재 캐나다 8개 주와 1개 준주에 자유당이 존재하며, 연방 자유당과 정치적, 조직적으로 연계된 주 정당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주 정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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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자유당 - [정당]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캐나다 자유당
로고
약칭LPC, PLC
설립일1867년 7월 1일
회원수300,000명
회원수 기준년도2014년
본부콘스티튜션 스퀘어
350 Albert Street
스위트 920
오타와, 온타리오주
K1P 6M8
국제 제휴자유주의 인터내셔널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창립자조지 브라운 (캐나다 정치인)
국가캐나다
모국어 이름Parti libéral du Canada
당수쥐스탱 트뤼도
하원 원내대표카리나 굴드
합병 정당프랑스어: 파르티 루즈(캐나다 동부)
클리어 그리츠(캐나다 서부)
청년 조직캐나다 젊은 자유주의자들
공식 색상빨간색
정치적 성향
이념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
정치적 위치중도
중도좌파
의회 의석
상원0석
하원158석
하원 의석 현황158/338
상원 의석 현황0/105

2. 역사

19세기 전반부터 결성되었던 여러 정당들이 1867년 캐나다 건국(영국 자치령)과 함께 자유당으로 출범한 것이 기원이다. 1873년부터 1878년까지 알렉산더 매켄지가 처음으로 자유당 정부를 구성했다. 1896년 윌프리드 로리에 정권 출범 이후 여러 차례 구 캐나다 보수당(후에 진보보수당으로 개편)과 번갈아가며 정권을 담당했는데, 자유당이 정권을 잡은 기간이 더 길었다.

자유당은 보수당에 비해 영국보다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극단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중도적인 입장을 유지하여 이념과 지역에 관계없이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학자들과 정치 전문가들은 최근 우세 정당의 붕괴로 여겨지는 현상을 설명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상황을 제시하기 위해 정치적 재편 모델을 사용해 왔다. 최근 학문적 연구에 따르면, 연방 차원에서 캐나다에는 1867년 캐나다 연방 창설 이후로 각기 고유한 사회적 지지 기반, 후원 관계, 지도력 스타일 및 선거 전략을 가진 네 가지의 정당 체제가 있었다. 스티브 패튼은 캐나다 정치사에서 네 가지 정당 체제를 다음과 같이 확인한다.[126]


  • 첫 번째 정당 체제는 연방 창설 이전 식민지 정치에서 등장하여 1896년부터 1911년까지 전성기를 맞이했고, 1917년 징병 위기까지 지속되었다. 이 체제는 자유당과 보수당이라는 두 개의 가장 큰 정당이 운영하는 지역적 후원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 두 번째 체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등장하여 1935년부터 1957년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며, 지역주의를 특징으로 하였고, 진보당, 사회신용당, 협동연방과 같은 여러 반체제 정당의 출현을 보았다.
  • 세 번째 체제는 1963년에 등장하여 1968년부터 1983년까지 전성기를 맞이했고, 그 이후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두 개의 가장 큰 정당은 강력한 제3당인 신민주당(CCF의 후계 정당)의 도전을 받았다. 이 시대의 선거 운동은 전자 매체 때문에 범국가적인 규모가 되었고, 지도력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 이 시대의 주요 정책은 케인스주의 경제학이었다.
  • 네 번째 정당 체제는 개혁당, 퀘벡 블록, 그리고 캐나다 동맹진보보수당의 합병과 함께 등장했다. 대부분의 정당은 1인 1표 지도자 선출 방식으로 전환했고, 선거 자금법이 2004년에 개정되었다. 네 번째 정당 체제는 케인스주의 정책을 대체로 버렸지만 복지 국가를 유지하는 시장 지향적 정책을 특징으로 한다.


스티븐 클락슨(2005)은 자유당이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모든 정당 체제를 지배해 온 방식을 보여준다. 로리 하의 "고객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시작하여 매켄지 킹 하의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의 "브로커리지"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1950년대에는 1990년대까지 지속된 "범캐나다 시스템"이 등장했다. 클락슨이 정당 체제를 "분열시킨" 선거 "대지진"으로 분류한 1993년 선거는 다양한 집단이 지역 문제와 우려 사항을 지지하면서 4당 체제 내에서 지역 정치의 출현을 보였다. 클락슨은 최초-선거구-선출 방식에 내재된 고유한 편향이 주로 자유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결론짓는다.[127]

1867년 조지 브라운(George Brown)에 의해 창당되었다. 1873년 알렉산더 매켄지(Alexander Mackenzie)가 총리가 된 이후로 대부분의 기간을 여당으로 활동해왔다.

'''창당과 초기 역사 (19세기)'''

자유당은 19세기 중반 개혁당에서 유래했으며, 책임 내각제를 영국령 북아메리카 전역에 주장했다.[27] 여기에는 조지 브라운, 알렉산더 맥켄지, 로버트 볼드윈, 윌리엄 라이온 맥켄지와 상캐나다의 순수 그릿당, 노바스코샤의 조셉 하우, 그리고 하캐나다의 파트리오트와 루즈/Parti rouge프랑스어(대표 인물로는 루이-조셉 파피노가 있음) 등이 포함된다. 순수 그릿당과 루즈/Parti rouge프랑스어는 때때로 캐나다 주 의회에서 1854년부터 통합된 블록으로 기능했지만, 영어권과 프랑스계 캐나다인 의원을 모두 포함하는 통합된 자유당은 1867년까지 결성되지 않았다.[27]

1867년 캐나다 연방(Canadian Confederation) 당시, 자유당은 존 A. 맥도널드 경이 이끈 보수당 연합에 밀려 주변부로 밀려났다.[27] 알렉산더 매켄지는 1873년에 자유당의 공식 대표가 되었고, 태평양 스캔들(Pacific Scandal)로 인해 맥도널드 정부가 사임한 후 1873년에 처음으로 자유당을 집권으로 이끌었다. 이후 매켄지는 1874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4년 동안 총리를 역임했다. 자유당 정부는 비밀투표(secret ballot) 도입, 선거일 하루로 제한, 캐나다 대법원, 캐나다 왕립 군사 대학, 감사원(Auditor General of Canada) 설립 등 여러 개혁을 이루었지만, 1878년 선거에서 맥도널드에게 정권을 내주었다.[27]

초창기 자유당은 대륙주의(continentalism)를 지지하고 제국주의(imperialism)에 반대하는 정당이었다. 또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보수당에 대한 적대감이 커짐에 따라 퀘벡 주민들의 열망과도 관련을 맺게 되었다. 보수당은 루이 리엘의 처형[28]과 1917년 징병 위기, 특히 퀘벡 주 이외의 주에서 프랑스어 학교에 대한 반대(Manitoba Schools Question)에서 보수당 정부의 역할 때문에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지지를 잃었다.

윌프리드 로리에가 당수가 된 후 자유당은 현대적인 정당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로리에는 자유당을 신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함으로써 보수당이 프랑스계 캐나다를 소외시킨 것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강력한 퀘벡 로마 가톨릭 교회를 불쾌하게 했던 당의 반교권주의(anti-clericalism) 평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영어권 캐나다에서는 자유당의 상호 호혜(Reciprocity) 지지가 농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고, 성장하는 프레리 주에서 당의 지지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29]

로리에는 1896년 선거에서 자유당을 승리로 이끌어 (최초의 프랑코폰 총리가 됨) 서부 캐나다 정착을 위한 이민을 증가시킨 정부를 이끌었다. 로리에 정부는 노스웨스트 준주에서 서스캐처원주와 앨버타주를 신설하고 캐나다 산업 발전을 촉진했다.[29]

'''20세기: 매켄지 킹과 자유당의 전성시대'''

윌리엄 라이온 매켄지 킹(William Lyon Mackenzie King)은 1919년 전국 당 대표 대회에서 윌프리드 로리에의 후계자로 선출되었다.[30] 1921년 연방 총선에서 자유당이 집권하였으나, 신생 전국 당 조직은 정실에 의해 주도되는 강력한 장관들과 지역 당 조직에 의해 빛을 잃었다.[30]

1930년 연방 총선에서 자유당은 패배하였고, 보하르누아 스캔들로 인해 의회파와 선거 자금 조달 사이의 거리가 필요하게 되었다.[30] 그 결과, 1932년에 중앙 조정 기구인 전국 자유당 연맹이 빈센트 매시(Vincent Massey)를 초대 회장으로 하여 설립되었다.[30] 자유당이 다시 집권하면서, 전국 조직은 침체되었으나, 1943년 매켄지 킹은 2차 세계 대전 종전을 예상하고 전후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당 강령을 승인하기 위해 연맹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31] 1948년까지 전국 대회가 열리지 않았고, 자유당은 1950년대 이전에 1893년, 1919년, 1948년 세 차례의 전국 대회만 개최했다.[32]

윌리엄 라이온 매켄지 킹(William Lyon Mackenzie King), 캐나다 총리 (1921년–1926년, 1926년–1930년, 1935년–1948년)


로리에와 매켄지 킹 정부 하에서 자유당은 캐나다의 주권과 영국 연방 내에서의 더 큰 독립을 증진시켰다. 1920년대 제국 회의에서 캐나다 자유당 정부는 영국과 자치령이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앞장섰고, '제국 의회' 제안에 반대했다. 1926년 킹-빙 사건 이후 자유당은 캐나다 총독이 더 이상 영국 정부의 권고에 따라 임명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제국 회의의 결정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 법령에 공식화되었다.

자유당은 캐나다가 자체 외교 및 국방 정책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증진시켰다. 1905년 로리에는 외교부를 설립했고, 1909년에는 총독 앨버트 그레이 4세(Albert Grey, 4th Earl Grey)에게 외교부 장관을 내각에 처음으로 임명할 것을 권고했다. 매켄지 킹은 1926년 줄리안 빙 제1대 비미 백작(Julian Byng, 1st Viscount Byng of Vimy) 총독이 빈센트 매시(Vincent Massey)를 첫 번째 캐나다 대사(Washington)로 임명할 것을 권고했는데, 이는 자유당 정부가 영국이 아닌 미국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자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과 직후, 자유당은 '진보적인 사회 정책'의 옹호자가 되었다.[34] 킹은 여론의 압력에 굴복하여 월별 지급금인 어머니 수당(mother's allowance)을 도입했고, J. S. 우즈워스의 요구로 노령 연금을 도입했다.

루이 생 로랑(Louis St. Laurent) 캐나다 총리 (1948~1957)


루이 생 로랑(Louis St. Laurent)은 1948년 자유당 대표와 수상으로 킹의 뒤를 이었다. 1949년과 1953년 연방 선거에서 생 로랑은 자유당을 이끌고 두 차례나 대승을 거두었다. 그는 뉴펀들랜드의 캐나다 연방 가입을 감독하고, 주에 대한 재정균형 지원금을 설립했으며, 연금과 건강 보험 개선을 통해 사회 개혁을 계속 추진했다. 1956년 캐나다는 수에즈 위기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한국 전쟁의 유엔군에 기여했다. 생 로랑 수상 시대에 캐나다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고 전시 부채도 상환되었다. 그러나 파이프라인 논쟁(Pipeline Debate)으로 자유당은 몰락했다. 앨버타에서 캐나다 중부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한 법안 통과 시도는 하원에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1957년 존 디펜베이커(John Diefenbaker)의 진보보수당이 소수 정부를 수립하자 생 로랑은 수상직과 자유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35]

레스터 B. 피어슨(Lester B. Pearson)은 1958년 당 대표 선출대회에서 자유당 대표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1958년 연방 선거에서 대패하였다.[36] 피어슨은 1962년 선거에서 디펜베이커를 소수 정부로 몰아넣었고, 1963년 선거에서 자유당을 승리로 이끌어 소수 정부를 구성했다. 피어슨은 5년간 수상으로 재직하면서 1965년 두 번째 선거에서 승리했다. 피어슨 정부는 의료보험, 새로운 이민법, 캐나다 연금 계획, 캐나다 학자금 대출, 캐나다 지원 계획(Canada Assistance Plan), 그리고 메이플 리프를 캐나다의 국기로 채택했다.[38]

'''피에르 트뤼도 시대: 이중 언어 정책과 다문화주의'''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 총리는 약 15년 간(1968~1979, 1980~1984) 집권하며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목표로 진보적인 사회 정책을 추진했다.[39] 그는 자유당이 "급진적 중도"를 고수한다고 밝혔다.[40][41]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Pierre Elliott Trudeau), 캐나다 총리 (1968~1979, 1980~1984)


트뤼도 정권은 공식 이중언어주의를 장려하고 프랑스어와 영어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공식 언어법''을 통과시켰다.[27] 이는 퀘벡의 연방 내 지위를 공고히 하고 독립 요구를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자유당은 이 정책을 통해 영어권과 프랑스어권 캐나다인이 함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캐나다인들이 언어를 잃지 않고 어느 지역으로든 이동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공식 이중언어주의는 퀘벡을 제외한 지역에서 프랑스어의 쇠퇴를 막고, 모든 연방 정부 서비스가 전국적으로 두 언어로 제공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42]

또한 트뤼도 자유당은 국가 다문화주의를 지지하여,[43] 이민자들이 자신의 문화를 버리지 않고 캐나다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하였다.[44] 이는 1923년 중국 이민법[45] 및 세인트 루이스호 사건[46]과 같은 차별 정책을 낳았던 전쟁 이전의 인종 차별적 태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thumb|트뤼도 시대의 워드마크와 로고]]

트뤼도 시대의 가장 큰 영향은 헌법 반환과 ''캐나다 권리와 자유 헌장''의 제정이다.[47][48] 자유당은 중앙 정부의 강력한 개념을 지지했고, 퀘벡 분리주의 및 퀘벡 민족주의에 맞섰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주권주의자들에게 결집의 구호가 되었고, 많은 프랑코폰 퀘벡 주민들을 소외시켰다.

트뤼도 시대의 재정적 유산으로는, 그의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순 연방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6%에서 46%로 거의 두 배나 증가했다는 점이 있다.[49]

1971년에는 "다문화주의 선언"에 따라 공용어의 영어와 프랑스어 이중 언어화 정책을 추진하여 다문화 국가 캐나다의 원형을 만들었다.

'''1980년대 이후: 시련과 재기'''

피에르 엘리오트 트뤼도 총리가 1984년 사임하면서 자유당의 인기는 하락했고, 같은 해 치러진 총선에서 진보보수당에 크게 패하며 정권을 넘겨주었다.[50][51] 1984년 총선에서 자유당은 하원 의석이 40석으로 줄어드는, 당시 연방 정부 여당으로서는 최악의 패배를 기록했다.[51]

1984년 자유당 로고


트뤼도 사임 이후 장 크레티앵 등은 트뤼도의 연방주의 개념을 고수했으나, 존 터너 등은 샬럿타운 협정을 지지했다. 터너는 당 대표 선출 대회에서 크레티앵을 누르고 당 대표 및 총리가 되었으나, 수많은 낙하산 인사와 퀘벡에서의 낮은 인기로 어려움을 겪었다.[50]

1988년 총선에서 자유당은 캐나다-미국 자유무역협정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보수당은 다수 정부를 유지하고 협정을 체결했다. 그럼에도 자유당은 83석을 얻으며 재기에 성공했다.[27] 1990년 장 크레티앵(Jean Chrétien)은 당 대표 선거에서 폴 마틴(Paul Martin)을 꺾고 당 대표가 되었다.[52]

1993년 선거에서 자유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상품 및 서비스 세(GST)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적색 서적을 발표하며 선거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자유당은 177석을 얻는 압승을 거두며 정권을 되찾았다.[27] 이는 자유당 역사상 세 번째로 좋은 성적이었다. 이후 1997년과 2000년에서도 승리하며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다졌다.

장 크레티앵(Jean Chrétien)], 캐나다 총리 (1993~2003)


크레티앵 정부는 연방 예산 균형을 위해 사회 프로그램 예산을 삭감하고,[53] 1995년 퀘벡 독립 투표 이후에는 명확성 법률(Clarity Act)을 통과시켰다.[54] 또한 동성 결혼을 지지하고,[55][56]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를 비범죄화했으며,[57] 교토 의정서를 비준했다.[58] 이라크 침공에는 반대하여 미국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59][60] 국내 여론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61] 크레티앵은 정당 기부금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62]

자유당 로고, 1992~2004


2004년, 크레티앵 정권의 공적 보조금 스캔들[145]로 지지율이 급락했고, 총선에서 제1당을 유지했으나 과반수를 잃었다. 2006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보수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2008년 총선에서도 의석이 감소했다.

2011년 총선에서는 34석을 얻는 데 그쳐 신민주당에 이어 원내 제3당으로 추락했다.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당 대표는 사임하고, 밥 레이(Bob Rae)가 임시 당수를 맡았다.[146] 2013년,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가 당 대표로 선출된 후[147] 자유당 지지율은 상승하여 보수당을 넘어섰다.[148][149]

2015년 캐나다 총선에서 자유당은 184석을 획득하여 단독 과반수로 정권을 탈환했다.[150] 그러나 2019년과 2021년 총선에서는 과반수를 유지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제1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151]

'''21세기: 쥐스탱 트뤼도와 자유당의 현재'''

2013년 대표 경선에서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 전 총리의 아들인 쥐스탱 트뤼도가 선출되었다.[102] 쥐스탱 트뤼도가 이끄는 캐나다 자유당은 2015년 총선 전 하원 의석이 36석에 불과했으나, 총선에서 184석을 획득하는 대승을 거두어 과반 의석을 확보하였으며, 이에 따라 쥐스탱 트뤼도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10년 만에 다시 여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108][109][110]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 캐나다 총리 (2015년–현재)


2015년 선거의 승리로 자유당은 이전 총선에서 3위를 차지한 정당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한 첫번째 정당이 되었다.[108] 샹탈 에베르(Chantal Hébert)는 이 결과를 "역사책에 기록될 자유당의 귀환"이라고 평가했으며,[111] 블룸버그(Bloomberg)의 조시 윙그로브(Josh Wingrove)와 테오필로스 아르기티스(Theophilos Argitis) 역시 "캐나다 역사상 가장 큰 정치적 부활"이라고 묘사했다.[112] 내셔널 포스트(National Post)의 스펜서 매케이(Spencer McKay)는 "아마도 우리는 캐나다의 '자연스러운 여당'의 부활을 목격했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113]

2019년 연방 총선에서 트뤼도의 자유당은 하원에서 20석을 잃었지만(총 177석에서 157석),[114][115] 여전히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여 트뤼도가 소수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114] 1979년 이후 처음으로 전국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정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트뤼도가 이끄는 자유당은 33.1%의 득표율을 얻은 반면, 앤드류 시어(Andrew Scheer)가 이끄는 보수당은 34.4%를 얻었다.[116][117] 또한 1867년 존 A. 맥도널드(John A. Macdonald)의 보수당(34.8% 득표율) 이후 처음으로 35% 미만의 전국 득표율을 얻은 정부가 집권했다.[118]

2021년 연방 총선에서 트뤼도와 자유당은 160석을 얻어 3번째 임기를 확보했고, 그의 두 번째 소수 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다시 전국 득표율에서 보수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119] 자유당은 32.6%의 득표율을 얻었는데, 이는 캐나다 역사상 집권 여당이 얻은 전국 득표율 중 가장 낮은 수치이다.[120]

2022년 3월, 트뤼도의 자유당은 신민주당과 신뢰 공급 협정을 체결했다.[121] 2024년 9월, 자그미트 싱(Jagmeet Singh)은 신뢰 공급 협정을 종료한다고 발표했으며, 신민주당 관계자들은 "협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122][123] 일 년 내내 자유당은 지지율 하락과 보궐선거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겪었는데, 토론토의 토론토 세인트폴과 몬트리올의 라살 에마르 베르뒱과 같은 안전 의석에서 패배한 것을 포함한다.[124] 이러한 패배 이후 몇 달 동안 트뤼도의 리더십에 대한 내부적 좌절과 불만에 대한 언론 보도가 빈번하게 나왔다. 이것은 여러 의원이 트뤼도의 사퇴를 촉구한 의원총회에서 정점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트뤼도는 이 회의에서 당이 "강하고 단결되어 있다"고 말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다.[125]

2. 1. 창당과 초기 역사 (19세기)

자유당은 19세기 중반 개혁당에서 유래했으며, 책임 내각제를 영국령 북아메리카 전역에 주장했다.[27] 여기에는 조지 브라운, 알렉산더 맥켄지, 로버트 볼드윈, 윌리엄 라이온 맥켄지와 상캐나다의 순수 그릿당, 노바스코샤의 조셉 하우, 그리고 하캐나다의 파트리오트와 루즈(대표 인물로는 루이-조셉 파피노가 있음) 등이 포함된다. 순수 그릿당과 는 때때로 캐나다 주 의회에서 1854년부터 통합된 블록으로 기능했지만, 영어권과 프랑스계 캐나다인 의원을 모두 포함하는 통합된 자유당은 1867년까지 결성되지 않았다.[27]

1867년 캐나다 연방(Canadian Confederation) 당시, 자유당은 존 A. 맥도널드 경이 이끈 보수당 연합에 밀려 주변부로 밀려났다.[27] 알렉산더 매켄지는 1873년에 자유당의 공식 대표가 되었고, 태평양 스캔들(Pacific Scandal)로 인해 맥도널드 정부가 사임한 후 1873년에 처음으로 자유당을 집권으로 이끌었다. 이후 매켄지는 1874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4년 동안 총리를 역임했다. 자유당 정부는 비밀투표(secret ballot) 도입, 선거일 하루로 제한, 캐나다 대법원, 캐나다 왕립 군사 대학, 감사원(Auditor General of Canada) 설립 등 여러 개혁을 이루었지만, 1878년 선거에서 맥도널드에게 정권을 내주었다.[27]

초창기 자유당은 대륙주의(continentalism)를 지지하고 제국주의(imperialism)에 반대하는 정당이었다. 또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보수당에 대한 적대감이 커짐에 따라 퀘벡 주민들의 열망과도 관련을 맺게 되었다. 보수당은 루이 리엘의 처형[28]과 1917년 징병 위기, 특히 퀘벡 주 이외의 주에서 프랑스어 학교에 대한 반대(Manitoba Schools Question)에서 보수당 정부의 역할 때문에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지지를 잃었다.

윌프리드 로리에가 당수가 된 후 자유당은 현대적인 정당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로리에는 자유당을 신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함으로써 보수당이 프랑스계 캐나다를 소외시킨 것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강력한 퀘벡 로마 가톨릭 교회를 불쾌하게 했던 당의 반교권주의(anti-clericalism) 평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영어권 캐나다에서는 자유당의 상호 호혜(Reciprocity) 지지가 농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고, 성장하는 프레리 주에서 당의 지지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29]

로리에는 1896년 선거에서 자유당을 승리로 이끌어 (최초의 프랑코폰 총리가 됨) 서부 캐나다 정착을 위한 이민을 증가시킨 정부를 이끌었다. 로리에 정부는 노스웨스트 준주에서 서스캐처원주와 앨버타주를 신설하고 캐나다 산업 발전을 촉진했다.[29]

2. 2. 20세기: 매켄지 킹과 자유당의 전성시대

윌리엄 라이온 매켄지 킹(William Lyon Mackenzie King)은 1919년 전국 당 대표 대회에서 윌프리드 로리에의 후계자로 선출되었다.[30] 1921년 연방 총선에서 자유당이 집권하였으나, 신생 전국 당 조직은 정실에 의해 주도되는 강력한 장관들과 지역 당 조직에 의해 빛을 잃었다.[30]

1930년 연방 총선에서 자유당은 패배하였고, 보하르누아 스캔들로 인해 의회파와 선거 자금 조달 사이의 거리가 필요하게 되었다.[30] 그 결과, 1932년에 중앙 조정 기구인 전국 자유당 연맹이 빈센트 매시(Vincent Massey)를 초대 회장으로 하여 설립되었다.[30] 자유당이 다시 집권하면서, 전국 조직은 침체되었으나, 1943년 매켄지 킹은 2차 세계 대전 종전을 예상하고 전후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당 강령을 승인하기 위해 연맹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31] 1948년까지 전국 대회가 열리지 않았고, 자유당은 1950년대 이전에 1893년, 1919년, 1948년 세 차례의 전국 대회만 개최했다.[32]

로리에와 매켄지 킹 정부 하에서 자유당은 캐나다의 주권과 영국 연방 내에서의 더 큰 독립을 증진시켰다. 1920년대 제국 회의에서 캐나다 자유당 정부는 영국과 자치령이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앞장섰고, '제국 의회' 제안에 반대했다. 1926년 킹-빙 사건 이후 자유당은 캐나다 총독이 더 이상 영국 정부의 권고에 따라 임명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제국 회의의 결정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 법령에 공식화되었다.

자유당은 캐나다가 자체 외교 및 국방 정책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증진시켰다. 1905년 로리에는 외교부를 설립했고, 1909년에는 총독 앨버트 그레이 4세(Albert Grey, 4th Earl Grey)에게 외교부 장관을 내각에 처음으로 임명할 것을 권고했다. 매켄지 킹은 1926년 줄리안 빙 제1대 비미 백작(Julian Byng, 1st Viscount Byng of Vimy) 총독이 빈센트 매시(Vincent Massey)를 첫 번째 캐나다 대사(Washington)로 임명할 것을 권고했는데, 이는 자유당 정부가 영국이 아닌 미국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자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과 직후, 자유당은 '진보적인 사회 정책'의 옹호자가 되었다.[34] 킹은 여론의 압력에 굴복하여 월별 지급금인 어머니 수당(mother's allowance)을 도입했고, J. S. 우즈워스의 요구로 노령 연금을 도입했다.

루이 생 로랑(Louis St. Laurent)은 1948년 자유당 대표와 수상으로 킹의 뒤를 이었다. 1949년과 1953년 연방 선거에서 생 로랑은 자유당을 이끌고 두 차례나 대승을 거두었다. 그는 뉴펀들랜드의 캐나다 연방 가입을 감독하고, 주에 대한 재정균형 지원금을 설립했으며, 연금과 건강 보험 개선을 통해 사회 개혁을 계속 추진했다. 1956년 캐나다는 수에즈 위기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한국 전쟁의 유엔군에 기여했다. 생 로랑 수상 시대에 캐나다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고 전시 부채도 상환되었다. 그러나 파이프라인 논쟁(Pipeline Debate)으로 자유당은 몰락했다. 앨버타에서 캐나다 중부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한 법안 통과 시도는 하원에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1957년 존 디펜베이커(John Diefenbaker)의 진보보수당이 소수 정부를 수립하자 생 로랑은 수상직과 자유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35]

레스터 B. 피어슨(Lester B. Pearson)은 1958년 당 대표 선출대회에서 자유당 대표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1958년 연방 선거에서 대패하였다.[36] 피어슨은 1962년 선거에서 디펜베이커를 소수 정부로 몰아넣었고, 1963년 선거에서 자유당을 승리로 이끌어 소수 정부를 구성했다. 피어슨은 5년간 수상으로 재직하면서 1965년 두 번째 선거에서 승리했다. 피어슨 정부는 의료보험, 새로운 이민법, 캐나다 연금 계획, 캐나다 학자금 대출, 캐나다 지원 계획(Canada Assistance Plan), 그리고 메이플 리프를 캐나다의 국기로 채택했다.[38]

2. 3. 피에르 트뤼도 시대: 이중 언어 정책과 다문화주의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 총리는 약 15년 간(1968~1979, 1980~1984) 집권하며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목표로 진보적인 사회 정책을 추진했다.[39] 그는 자유당이 "급진적 중도"를 고수한다고 밝혔다.[40][41]

트뤼도 정권은 공식 이중언어주의를 장려하고 프랑스어와 영어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공식 언어법''을 통과시켰다.[27] 이는 퀘벡의 연방 내 지위를 공고히 하고 독립 요구를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자유당은 이 정책을 통해 영어권과 프랑스어권 캐나다인이 함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캐나다인들이 언어를 잃지 않고 어느 지역으로든 이동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공식 이중언어주의는 퀘벡을 제외한 지역에서 프랑스어의 쇠퇴를 막고, 모든 연방 정부 서비스가 전국적으로 두 언어로 제공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42]

또한 트뤼도 자유당은 국가 다문화주의를 지지하여,[43] 이민자들이 자신의 문화를 버리지 않고 캐나다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하였다.[44] 이는 1923년 중국 이민법[45] 및 세인트 루이스호 사건[46]과 같은 차별 정책을 낳았던 전쟁 이전의 인종 차별적 태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thumb|트뤼도 시대의 워드마크와 로고]]

트뤼도 시대의 가장 큰 영향은 헌법 반환과 ''캐나다 권리와 자유 헌장''의 제정이다.[47][48] 자유당은 중앙 정부의 강력한 개념을 지지했고, 퀘벡 분리주의 및 퀘벡 민족주의에 맞섰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주권주의자들에게 결집의 구호가 되었고, 많은 프랑코폰 퀘벡 주민들을 소외시켰다.

트뤼도 시대의 재정적 유산으로는, 그의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순 연방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6%에서 46%로 거의 두 배나 증가했다는 점이 있다.[49]

1971년에는 "다문화주의 선언"에 따라 공용어의 영어와 프랑스어 이중 언어화 정책을 추진하여 다문화 국가 캐나다의 원형을 만들었다.

2. 4. 1980년대 이후: 시련과 재기

피에르 엘리오트 트뤼도 총리가 1984년 사임하면서 자유당의 인기는 하락했고, 같은 해 치러진 총선에서 진보보수당에 크게 패하며 정권을 넘겨주었다.[50][51] 1984년 총선에서 자유당은 하원 의석이 40석으로 줄어드는, 당시 연방 정부 여당으로서는 최악의 패배를 기록했다.[51]

트뤼도 사임 이후 장 크레티앵 등은 트뤼도의 연방주의 개념을 고수했으나, 존 터너 등은 샬럿타운 협정을 지지했다. 터너는 당 대표 선출 대회에서 크레티앵을 누르고 당 대표 및 총리가 되었으나, 수많은 낙하산 인사와 퀘벡에서의 낮은 인기로 어려움을 겪었다.[50]

1988년 총선에서 자유당은 캐나다-미국 자유무역협정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보수당은 다수 정부를 유지하고 협정을 체결했다. 그럼에도 자유당은 83석을 얻으며 재기에 성공했다.[27] 1990년 장 크레티앵(Jean Chrétien)은 당 대표 선거에서 폴 마틴(Paul Martin)을 꺾고 당 대표가 되었다.[52]

1993년 선거에서 자유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상품 및 서비스 세(GST)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적색 서적을 발표하며 선거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자유당은 177석을 얻는 압승을 거두며 정권을 되찾았다.[27] 이는 자유당 역사상 세 번째로 좋은 성적이었다. 이후 1997년과 2000년에서도 승리하며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다졌다.

크레티앵 정부는 연방 예산 균형을 위해 사회 프로그램 예산을 삭감하고,[53] 1995년 퀘벡 독립 투표 이후에는 명확성 법률(Clarity Act)을 통과시켰다.[54] 또한 동성 결혼을 지지하고,[55][56]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를 비범죄화했으며,[57] 교토 의정서를 비준했다.[58] 이라크 침공에는 반대하여 미국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59][60] 국내 여론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61] 크레티앵은 정당 기부금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62]

2004년, 크레티앵 정권의 공적 보조금 스캔들[145]로 지지율이 급락했고, 총선에서 제1당을 유지했으나 과반수를 잃었다. 2006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보수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2008년 총선에서도 의석이 감소했다.

2011년 총선에서는 34석을 얻는 데 그쳐 신민주당에 이어 원내 제3당으로 추락했다.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당 대표는 사임하고, 밥 레이(Bob Rae)가 임시 당수를 맡았다.[146] 2013년,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가 당 대표로 선출된 후[147] 자유당 지지율은 상승하여 보수당을 넘어섰다.[148][149]

2015년 캐나다 총선에서 자유당은 184석을 획득하여 단독 과반수로 정권을 탈환했다.[150] 그러나 2019년과 2021년 총선에서는 과반수를 유지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제1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151]

학자들은 정치적 재편 모델을 통해 캐나다 정당 체제를 분석해왔다. 스티브 패튼은 캐나다 정치사에 네 가지 정당 체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126] 스티븐 클락슨은 자유당이 각 정당 체제에서 서로 다른 전략을 통해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해왔다고 분석한다.[127]

2. 5. 21세기: 쥐스탱 트뤼도와 자유당의 현재

2013년 대표 경선에서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 전 총리의 아들인 쥐스탱 트뤼도가 선출되었다.[102] 쥐스탱 트뤼도가 이끄는 캐나다 자유당은 2015년 총선 전 하원 의석이 36석에 불과했으나, 총선에서 184석을 획득하는 대승을 거두어 과반 의석을 확보하였으며, 이에 따라 쥐스탱 트뤼도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10년 만에 다시 여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108][109][110]

2015년 선거의 승리로 자유당은 이전 총선에서 3위를 차지한 정당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한 첫번째 정당이 되었다.[108] 샹탈 에베르(Chantal Hébert)는 이 결과를 "역사책에 기록될 자유당의 귀환"이라고 평가했으며,[111] 블룸버그(Bloomberg)의 조시 윙그로브(Josh Wingrove)와 테오필로스 아르기티스(Theophilos Argitis) 역시 "캐나다 역사상 가장 큰 정치적 부활"이라고 묘사했다.[112] 내셔널 포스트(National Post)의 스펜서 매케이(Spencer McKay)는 "아마도 우리는 캐나다의 '자연스러운 여당'의 부활을 목격했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113]

2019년 연방 총선에서 트뤼도의 자유당은 하원에서 20석을 잃었지만(총 177석에서 157석),[114][115] 여전히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여 트뤼도가 소수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114] 1979년 이후 처음으로 전국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정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트뤼도가 이끄는 자유당은 33.1%의 득표율을 얻은 반면, 앤드류 시어(Andrew Scheer)가 이끄는 보수당은 34.4%를 얻었다.[116][117] 또한 1867년 존 A. 맥도널드(John A. Macdonald)의 보수당(34.8% 득표율) 이후 처음으로 35% 미만의 전국 득표율을 얻은 정부가 집권했다.[118]

2021년 연방 총선에서 트뤼도와 자유당은 160석을 얻어 3번째 임기를 확보했고, 그의 두 번째 소수 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다시 전국 득표율에서 보수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119] 자유당은 32.6%의 득표율을 얻었는데, 이는 캐나다 역사상 집권 여당이 얻은 전국 득표율 중 가장 낮은 수치이다.[120]

2022년 3월, 트뤼도의 자유당은 신민주당과 신뢰 공급 협정을 체결했다.[121] 2024년 9월, 자그미트 싱(Jagmeet Singh)은 신뢰 공급 협정을 종료한다고 발표했으며, 신민주당 관계자들은 "협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122][123] 일 년 내내 자유당은 지지율 하락과 보궐선거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겪었는데, 토론토의 토론토 세인트폴과 몬트리올의 라살 에마르 베르뒱과 같은 안전 의석에서 패배한 것을 포함한다.[124] 이러한 패배 이후 몇 달 동안 트뤼도의 리더십에 대한 내부적 좌절과 불만에 대한 언론 보도가 빈번하게 나왔다. 이것은 여러 의원이 트뤼도의 사퇴를 촉구한 의원총회에서 정점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트뤼도는 이 회의에서 당이 "강하고 단결되어 있다"고 말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다.[125]

3. 이념 및 정책

이 당의 원칙은 자유주의 이론가들이 정의한 자유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개인의 자유, 책임, 인간 존엄성, 정의로운 사회, 정치적 자유, 종교적 자유, 국가 통합, 기회의 평등, 문화 다양성, 이중 언어 사용, 그리고 다자주의를 포함한다.[128][129] 20세기 초부터 자유당은 정치 스펙트럼의 우익과 좌익 양쪽 모두의 다양한 "큰 텐트" 정책을 지지해왔다.[14]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정부를 구성했을 때, 이 당은 균형 예산을 지지했고, 사회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을 줄이거나 주들에게 위임함으로써 1995년에 연방 예산에서 재정 적자를 완전히 없앴으며, 당의 유명한 레드 북에서 상품 및 서비스 세를 대체할 것을 약속했다.[130] 또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캐나다 보수당과 달리, 자유당은 자유주의 인터내셔널에 속해 있지만 중도좌파 정당으로 여겨진다. 근대 캐나다에서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확립과 소득 재분배 기능 강화 등의 사회적 정의, 두 언어 국가 및 유색인종 이민 수용에 대표되는 다문화주의 등을 실현하는 등 좌파적인 정책을 추진해 왔다. 또한, 외교 면에서도 미국 추종형이 아니며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등 우방국인 미국에 대해서도 다른 입장을 보이는 등 1960년대부터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견지해 왔다. 또한, 당내에도 우파와 좌파의 차이가 있으며 포괄적인 정당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좌파 정당인 신민주당보다는 중도에 가깝다.

'''2021년 자유당 주요 정책'''

2021년 캐나다 연방 선거에서 자유당은 각 장에 "성별 및 다양성 영향 요약"을 포함한 플랫폼을 발표했으며,[131] 팬데믹, 주택, 의료, 경제, 기후변화, 화해를 포함한 6가지 주요 항목을 제시했다.[132][133]

자유당은 2021년 플랫폼에서 다음과 같은 주요 정책들을 제시했다.


  • 주간 열차, 국내선 항공편, 크루즈선 및 기타 연방 규제 선박의 여행객에게 COVID-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131]
  • 의료 시스템 대기자 명단을 없애기 위해 이미 약속된 40억 달러에 더해 6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131]
  • 2025~26년까지 140만 채의 신규 주택을 건설, 보존 또는 재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투자를 제공했다.[131]
  • "진실, 정의, 치유" 이니셔티브를 통해 기숙학교의 유산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에 향후 5년간 20억 달러를 지출할 자금을 배정했다.[132]
  • 취임 100일 이내에 모든 사람을 위한 동성애 전환 치료 관행을 없애는 법안을 재도입했다.[131]
  • 2050년까지 넷제로 배출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다.[131]
  • 흑인 캐나다인 정의 전략을 포함한 새롭게 개정된 반차별 전략의 일환으로 2022년까지 증오 범죄 대응 국가 행동 계획을 발표했다.[131]
  • 아프가니스탄 난민 4만 명 수용 약정 수치를 업데이트했다.[131]
  • 최고 소득 구간에 해당하는 소득을 버는 모든 사람이 매년 최소 15%(4만 9천 달러 미만을 버는 사람들이 내는 세율)를 납부하도록 하는 최저 세율 규칙을 만들어 과도한 공제 및 크레딧 사용을 통해 인위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방지했다.[131]
  • 장기 성장에 대한 정부에 독립적인 자문을 제공하기 위해 상설 경제 자문 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는 성별 균형을 이루고 캐나다의 다양성을 반영할 것이다.[131]
  • 익스프레스 엔트리 포인트 시스템을 통해 임시 외국인 근로자와 전 해외 유학생의 영주권 취득 경로를 확대하기 위해 경제 이민 프로그램을 개혁했다.[131]
  • 관할 지역 전역에서 권총을 금지하는 지방이나 준주에 10억 달러 이상의 최소 금액을 지원했다.[131]

3. 1. 2021년 자유당 주요 정책

2021년 캐나다 연방 선거에서 자유당은 각 장에 "성별 및 다양성 영향 요약"을 포함한 플랫폼을 발표했으며,[131] 팬데믹, 주택, 의료, 경제, 기후변화, 화해를 포함한 6가지 주요 항목을 제시했다.[132][133]

자유당은 2021년 플랫폼에서 다음과 같은 주요 정책들을 제시했다.

  • 주간 열차, 국내선 항공편, 크루즈선 및 기타 연방 규제 선박의 여행객에게 COVID-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131]
  • 의료 시스템 대기자 명단을 없애기 위해 이미 약속된 40억 달러에 더해 6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131]
  • 2025~26년까지 140만 채의 신규 주택을 건설, 보존 또는 재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투자를 제공했다.[131]
  • "진실, 정의, 치유" 이니셔티브를 통해 기숙학교의 유산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에 향후 5년간 20억 달러를 지출할 자금을 배정했다.[132]
  • 취임 100일 이내에 모든 사람을 위한 동성애 전환 치료 관행을 없애는 법안을 재도입했다.[131]
  • 2050년까지 넷제로 배출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다.[131]
  • 흑인 캐나다인 정의 전략을 포함한 새롭게 개정된 반차별 전략의 일환으로 2022년까지 증오 범죄 대응 국가 행동 계획을 발표했다.[131]
  • 아프가니스탄 난민 4만 명 수용 약정 수치를 업데이트했다.[131]
  • 최고 소득 구간에 해당하는 소득을 버는 모든 사람이 매년 최소 15%(4만 9천 달러 미만을 버는 사람들이 내는 세율)를 납부하도록 하는 최저 세율 규칙을 만들어 과도한 공제 및 크레딧 사용을 통해 인위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방지했다.[131]
  • 장기 성장에 대한 정부에 독립적인 자문을 제공하기 위해 상설 경제 자문 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는 성별 균형을 이루고 캐나다의 다양성을 반영할 것이다.[131]
  • 익스프레스 엔트리 포인트 시스템을 통해 임시 외국인 근로자와 전 해외 유학생의 영주권 취득 경로를 확대하기 위해 경제 이민 프로그램을 개혁했다.[131]
  • 관할 지역 전역에서 권총을 금지하는 지방이나 준주에 10억 달러 이상의 최소 금액을 지원했다.[131]


캐나다 보수당과 달리, 자유당은 자유주의 인터내셔널에 속해 있지만 중도좌파 정당으로 여겨진다. 근대 캐나다에서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확립과 소득 재분배 기능 강화 등의 사회적 정의, 두 언어 국가 및 유색인종 이민 수용에 대표되는 다문화주의 등을 실현하는 등 좌파적인 정책을 추진해 왔다. 또한, 외교 면에서도 미국 추종형이 아니며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등 우방국인 미국에 대해서도 다른 입장을 보이는 등 1960년대부터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견지해 왔다. 또한, 당내에도 우파와 좌파의 차이가 있으며 포괄적인 정당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좌파 정당인 신민주당보다는 중도에 가깝다.

4. 역대 당수

캐나다 자유당의 역대 당수는 다음과 같다.

초상화이름임기 시작임기 종료비고
60px
조지 브라운1867년1867년비공식 (연방 자유당의 전신인 클리어 그릿츠의 지도자)
60px
에드워드 블레이크1869년1870년비공식
60px
알렉산더 맥켄지1873년 3월 6일1880년 4월 27일제2대 총리 (제1대 자유당 총리)
에드워드 블레이크1880년 5월 4일1887년 6월 2일
윌프리드 로리에1887년 6월 23일1919년 2월 17일제7대 총리
60px다니엘 던컨 맥켄지1919년 2월 17일1919년 8월 7일임시 지도자
윌리엄 라이언 맥켄지 킹1919년 8월 7일1948년 8월 7일제10대 총리
|60px]] ||루이 생로랑 || 1948년 8월 7일 || 1958년 1월 16일 || 제12대 총리
|60px]] || 레스터 B. 피어슨 || 1958년 1월 16일 || 1968년 4월 6일 || 제14대 총리
피에르 트뤼도1968년 4월 6일1984년 6월 16일제15대 총리
|60px]] || 존 터너 || 1984년 6월 16일 || 1990년 6월 23일 || 제17대 총리
장 크레티앵1990년 6월 23일2003년 11월 14일제20대 총리
폴 마틴2003년 11월 14일2006년 3월 19일제21대 총리
|60px]]|| 빌 그레이엄 || 2006년 3월 19일 || 2006년 12월 2일 || 임시 지도자
|60px]] || 스테판 디옹 || 2006년 12월 2일 || 2008년 12월 10일 ||
|60px]] || 마이클 이그내티에프 || 2008년 12월 10일 || 2011년 5월 25일 || 2009년 5월 2일까지 임시 지도자
|60px]] || 밥 레이 || 2011년 5월 25일 || 2013년 4월 14일 || 임시 지도자
|60px]] || 저스틴 트뤼도 || 2013년 4월 14일 || 현직 || 제23대 총리



지금까지 자유당 대표 중 총리가 된 적이 없는 사람은 일곱 명이며, 그중 세 명은 임시 대표였다.


  • 당 의장
  • * 쉴라 콥스 1991–1993
  • *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2006–2008
  • * 랄프 구달 2010–2015
  • * 빈센트 매시 1932–1935
  • * 노먼 플랫 램버트/Norman Platt Lambert영어 1936–1941
  • * 공석 1941–1943
  • * 노먼 알렉산더 맥러티/Norman Alexander McLarty영어 1943 (권한대행)
  • * 위샤트 맥리 로버트슨/Wishart McLea Robertson영어 1943–1945
  • * 제임스 고든 포고/James Gordon Fogo영어 1946–1952
  • * 던컨 케네스 맥태비쉬/Duncan Kenneth MacTavish영어 1952–1958
  • * 브루스 매튜스/Bruce Matthews영어 (캐나다 육군 장교) 1958–1961
  • * 존 조셉 코놀리/John Joseph Connolly영어 1961–1964
  • * 존 랭 니콜/John Lang Nichol영어 1964–1968
  • * 리처드 스탠버리/Richard Stanbury영어 1968–1973
  • * 길다스 몰가트/Gildas Molgat영어 1973–1976
  • * 앨러스데어 그레이엄/Alasdair Graham영어 1976–1980
  • * 노먼 맥리오드/Norman MacLeod영어 (캐나다 사업가) 1980–1982
  • * 아이오나 캄파뇰로/Iona Campagnolo영어 1982–1986
  • * J. J. 미셸 로베르/J. J. Michel Robert영어 1986–1990
  • * 돈 존스턴/Don Johnston영어 1990–1994
  • * 댄 헤이스/Dan Hays영어 1994–1998
  • * 스티븐 르드루/Stephen LeDrew영어 1998–2003
  • * 마이클 아이젠가/Michael Eizenga영어 2003–2006
  • * 마리 풀랭/Marie Charette-Poulin영어 2006–2008
  • * 더그 퍼거슨/Doug Ferguson영어 (캐나다 정치인) 2008–2009
  • * 알프레드 앱스/Alfred Apps영어 2009–2012
  • * 마이크 크롤리/Mike Crawley영어 2012–2014
  • * 안나 가이니/Anna Gainey영어 2014–2018
  • * 수잔 코완/Suzanne Cowan영어 2018–2023
  • * 사치트 메흐라/Sachit Mehra영어 2023–현재

5. 역대 총선 결과

선거지도자득표수%의석수+/–순위정부
1867년조지 브라운60,81822.70}} 62 2위
1872년에드워드 블레이크110,55634.70}} 33 2위
1874년알렉산더 맥켄지128,45539.50}} 34 1위
1878년180,07433.10}} 66 2위
1882년에드워드 블레이크160,54731.10}} 10 2위
1887년312,73643.10}} 7 2위
1891년윌프리드 로리에350,51245.20}} 10 2위
1896년401,42541.40}} 27 1위
1900년477,75850.30}} 11 1위
1904년521,04150.90}} 9 1위
1908년570,31148.90}} 4 1위
1911년596,87145.82}} 48 2위
1917년729,75638.80}} 3 2위
1921년맥켄지 킹1,285,99841.15}} 36 1위
1925년1,252,68439.74}} 18 2위
1926년1,397,03142.90}} 16 1위
1930년1,716,79845.50}} 27 2위
1935년1,967,83944.68}} 84 1위
1940년2,365,97951.32}} 6 1위
1945년2,086,54539.78}} 61 1위
1949년루이 생로랑2,874,81349.15}} 73 1위
1953년2,731,63348.43}} 22 1위
1957년2,702,57340.50}} 64 2위
1958년레스터 피어슨2,432,95333.40}} 67 2위
1962년2,846,58936.97}} 51 2위
1963년3,276,99641.48}} 29 1위
1965년3,099,52140.18}} 3 1위
1968년피에르 트뤼도3,686,80145.37}} 23 1위
1972년3,717,80438.42}} 46 1위
1974년4,102,85343.15}} 32 1위
1979년4,595,31940.11}} 27 2위
1980년4,855,42544.34}} 33 1위
1984년존 터너3,516,48628.02}} 107 2위
1988년4,205,07231.92}} 43 2위
1993년장 크레티앵5,647,95241.24}} 94 1위
1997년4,994,27738.46}} 22 1위
2000년5,252,03140.85}} 17 1위
2004년폴 마틴4,982,22036.73}} 37 1위
2006년4,479,41530.23}} 32 2위
2008년스테판 디옹3,633,18526.26}} 26 2위
2011년마이클 이그나티에프2,783,17518.91}} 43 3위
2015년저스틴 트뤼도6,928,05539.47}} 150 1위
2019년6,018,72833.12}} 27 1위
2021년5,556,62932.62}} 3 1위



캐나다 자유당의 역대 총선 결과는 위 표와 같다.

6. 주별 정당

캐나다의 8개 주와 1개의 준주에는 주 의회에 자유당이 있다. 누나부트 준주와 노스웨스트 준주는 당 중심의 선거 및 통치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합의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를 운영한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는 명칭과 이념이 변화한 BC 유나이티드(BC United)가 있었고, 서스캐처원주에도 명칭이 바뀐 서스캐처원 진보당(Saskatchewan Progress Party)이 있었다.

유콘(Yukon Liberal Party), 앨버타(Alberta Liberal Party), 매니토바(Manitoba Liberal Party), 온타리오(Ontario Liberal Party), 퀘벡(Quebec Liberal Party)에는 각각 연방 자유당과 이념적으로 일치할 수 있지만 완전히 별개의 독립된 정당으로 운영되는 자유당이 있다. 이들은 한때 연계되었던 적이 있다. 이러한 주 자유당들은 별도의 정책, 재정, 회원, 지역구 협회, 집행부, 당 대회 및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뉴브런즈윅(New Brunswick Liberal Association), 뉴펀들랜드 래브라도(Liberal Party of Newfoundland and Labrador), 노바스코샤(Nova Scotia Liberal Party),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Prince Edward Island Liberal Party) 주 자유당은 각각 연방 자유당과 정치적,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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