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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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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라오의 저주는 고대 이집트 무덤에 새겨진 저주로, 무덤을 훼손하는 자에게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한 저주는 고왕국 시대의 개인 묘에서 처음 나타났으며, 이후 시대에는 더욱 강력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19세기 이전에는 상형 문자가 해독되지 않아 미라와 무덤 유물을 다루는 것과 관련된 불운으로 여겨졌으나, 투탕카멘 무덤 발굴 이후 저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카나본 백작의 사망과 관련된 언론 보도로 인해, 저주에 대한 믿음이 널리 퍼졌지만, 과학적인 반론과 회의론도 제기되었다. 파라오의 저주는 영화, 소설, 만화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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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저주
일반 정보
이름파라오의 저주
설명파라오의 무덤을 침범한 자에게 재앙이 따른다는 믿음
기원
배경19세기 고고학 발굴 붐
관련 인물하워드 카터
투탕카멘
사례
투탕카멘의 저주투탕카멘의 무덤 발굴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망 사건들
카나본 경투탕카멘 무덤 발굴 후 사망한 인물, 저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킴
과학적 분석
설명곰팡이 및 세균 감염
유해 물질 노출
단순한 우연의 일치
대중 문화
영화미이라
소설다양한 소설에서 저주를 소재로 활용
비판적 시각
설명미디어의 과장 및 허구적인 이야기
같이 보기
관련 주제저주
민속
미신
투탕카멘
카나본 경

2. 고대 이집트의 무덤 저주

고대 이집트 시대, 특히 고왕국 시대의 개인 무덤에서는 저주문이 드물게 발견된다. 이러한 저주는 무덤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새겨졌으며, 기록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흔하지 않다.[1]

2. 1. 저주문의 내용과 특징

묘와 관련된 저주는 기록하는 것 자체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심지어 위험했기 때문에 극히 드물다.[1] 저주는 고왕국 시대의 개인 묘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3]

안크티피 (제9~10왕조)의 묘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가 적혀 있다.

> "이 관에... 악하거나 사악한 짓을 하는 통치자는... 헤멘 ([지역 신])이 그가 제공하는 어떤 재물도 받아들이지 않게 하고, 그의 상속자가 상속받지 못하게 하라."

켄티카 이케케히 (제6왕조)[4]의 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 "나의 이 묘에 들어오는 모든 자... 부정한 자...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 종말이 올 것이다... 나는 새처럼 그의 목을 잡을 것이다... 나는 나의 공포를 그에게 던질 것이다."[1]

고왕국 시대 이후의 저주는 덜 흔하지만 더 심각하며, 때로는 토트의 분노나 세크메트의 파멸을 언급하기도 한다.[3] 자히 하와스는 저주의 한 예를 인용한다.

> "파라오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이 묘의 봉인을 깨는 자는 의사가 진단할 수 없는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5]

3. 현대의 저주 관련 기록

상형 문자는 19세기 초까지 해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기 이전의 저주 관련 기록은 주로 미라와 무덤의 다른 유물을 다루는 것과 관련된 불운으로 인식되었다.[1] 미라가 죽음에서 부활한다는 개념은 제인 C. 라우던이 쓴 초기 과학 소설과 공포를 결합한 작품인 ''미라!: 또는 22세기의 이야기''(1827)에서 개발되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도미닉 몬세라트가 1869년 소설 ''피라미드에서 길을 잃다, 또는 미라의 저주''에서 완전한 형태의 "미라 저주" 플롯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1990년대 후반에 그가 재발견한 잊혀진 미라 소설이다.[7] 그러나 S. J. 울프, 로버트 싱어만, 재스민 데이가 그 이후에 발견한 두 이야기 – ''미라의 영혼''(익명, 1862)과 ''3천 년 후''(제인 G. 오스틴, 1868) – 는 여성 미라가 자신의 남성 침해자에 대한 마법의 복수를 하는 유사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재스민 데이는 무덤의 훼손과 강간 사이의 유추에 기초하여 저주에 대한 현대 유럽 개념이 훼손에 기초하며, 초기 저주 소설을 여성 작가가 쓴 초기 페미니스트 서사로 해석한다고 주장한다.

3. 1. 루이 페니셰르의 기록

상형 문자는 19세기 초까지 해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기 이전의 저주에 대한 보고는 단순히 미라와 무덤의 다른 유물을 다루는 것과 관련된 불운으로 인식되었다. 1699년 루이 페니셰르는 폴란드인 여행자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미라 두 구를 구입한 후 미라를 화물칸에 싣고 해상 여행을 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여행자는 두 유령의 환영이 반복되는 것에 놀랐고, 폭풍우는 미라를 배 밖으로 던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1]

3. 2. 자히 하와스의 경험

자히 하와스는 젊은 고고학자 시절 콤 아부 빌로에서 발굴 작업을 하면서 그리스-로마 유적지에서 여러 유물을 운반해야 했다. 그는 그날 사촌이 죽었고, 1주년에는 삼촌이, 3주년에는 이모가 죽었다고 회상한다. 몇 년 후, 기자의 피라미드 건축가들의 무덤을 발굴하다가 다음과 같은 저주문을 발견했다. "이 무덤에 들어가 이 무덤에 해를 끼치고 파괴하는 모든 사람은 물속에서는 악어가, 육지에서는 뱀이 그들을 덮치게 하라. 물속에서는 하마가, 육지에서는 전갈이 그들을 덮치게 하라."[5] 하와스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미라를 건드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후 바하리야 오아시스에서 박물관으로 어린이 미라 두 구를 옮기는 일에 관여했고, 꿈속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렸다고 보고했다. 그는 아버지의 미라가 박물관에서 아이들과 재회할 때까지 이러한 현상이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한다.[6]

4. 투탕카멘 무덤 발굴과 저주 논란

투탕카멘의 보물실 입구를 지키던 아누비스 조각상


'파라오의 저주'에 대한 믿음은 하워드 카터 팀의 몇몇 구성원과 무덤을 방문한 다른 저명한 인사들이 그 직후 사망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카터 팀은 1922년 투탕카멘(KV62)의 무덤을 발굴하여 이집트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저명한 이집트학자 제임스 헨리 브리스티드는 무덤이 처음 열린 직후 카터와 함께 작업했다. 그는 카터가 심부름꾼을 집으로 보냈을 때, 심부름꾼이 "희미하고 거의 사람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심부름꾼이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집트 왕권을 상징하는 코브라가 새장 안에 있었고, 카터의 카나리아는 그 입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이는 저주에 대한 지역 소문을 부채질했다. 아서 웨이걸은 이것이 왕의 무덤이 파괴된 바로 그날, 왕의 머리에 적을 치기 위해 착용했던 것과 동일한 왕실 코브라(우라에우스)가 카터의 집에 침입한 것으로 해석되었다고 보도했다.[8] 이 사건은 1922년 12월 22일 ''뉴욕 타임스''에 보도되었다.[9]

미신적인 베니토 무솔리니는 한때 이집트 미라를 선물로 받았으나, 키지 궁전에서 즉시 제거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10]

1925년, 인류학자 헨리 필드는 브리스티드와 함께 무덤을 방문하여 카터의 친절함과 다정함을 회상했다. 그는 또한 카터의 친구 브루스 잉그램 경에게 주어진 문진이 "내 몸을 움직이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라. 그에게 불, 물, 전염병이 닥칠 것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스카라브 팔찌로 장식된 미라 손으로 구성되었다고 보고했다. 선물을 받은 직후 잉그램 경의 집은 불에 탔고, 재건축 후에는 홍수가 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분묘에 쌓여 있던 가스가 묘를 열었을 때 흡입되어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아서 코난 도일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는데, 왕의 분묘를 훼손하는 묘 도굴을 벌하기 위해 치사성 곰팡이와 같은 것이 의도적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다. 그러나 현재 고대 이집트 분묘의 공기를 조사한 결과, 유독 가스나 곰팡이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2021년 수에즈 운하 봉쇄 사고 당시에는 대이집트 박물관으로 미라를 이송하는 이벤트를 기획한 것에 대한 앙화가 아니냐는 설도 제기되었으나, 이송 이벤트가 무사히 끝나면서 잠잠해졌다.

4. 1. 카나본 경의 죽음과 언론 보도

카나본 백작은 발굴 자금을 지원했는데, 모기에게 물린 후 면도 중 실수로 물린 부위를 베어 감염되었고, 패혈증으로 이어져 사망했다.[3] 카나본 백작이 사망하기 2주 전, 마리 코렐리는 ''뉴욕 월드'' 잡지에 밀봉된 무덤을 침입하면 "끔찍한 벌"이 따를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게재했다.[3] 언론은 이를 '파라오의 저주'와 연결 지어 보도했지만, 왕의 무덤에서 저주가 발견되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었다.[3]

투탕카멘 무덤 개봉 6주 후 카나본 백작의 사망으로 언론에 많은 저주 이야기가 실렸다.


셜록 홈즈의 작가이자 심령주의자였던 아서 코난 도일 경은 카나본 백작의 죽음이 투탕카멘의 사제들이 만든 "정령" 때문이라고 주장하여 언론의 관심을 더욱 부추겼다.[11]

1920년대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의 묘를 발굴하여 미라를 꺼낸 카나번 경과 발굴에 관련된 몇몇 사람, 그리고 그 가족들이 발굴 작업 직후 잇따라 급사한 사건에서 이러한 전설이 생겨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묘의 개봉에 참여한 사람 중 실제로 급사한 사람은 카나번 경뿐이며, 그 카나번 경도 발굴 전에 턱수염을 깎다가 실수로 모기에 물린 자국을 상처 입어 열병에 감염되고 폐렴을 합병한 것이 사인으로 확인되었다.

코난 도일도 신문에서 카나번 경의 죽음의 원인에 대한 견해를 표명했다


투탕카멘 묘 발굴에 직접 관여한 사람 중 1년 이내에 사망한 사람은 카나번 경뿐이다. 저주의 진상에 대해서는 하워드 카터와 독점 계약을 맺은 더 타임스에 대항한 다른 신문사가 발굴 관계자가 사망할 때마다 "왕가의 저주"라고 보도한 것이 원인이다.[27]

4. 2. 과학적 반론과 회의론

여러 연구와 학술 자료는 카나본 백작의 죽음과 투탕카멘 무덤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린다.[13] 독성 곰팡이 노출이 그의 죽음에 기여했다는 이론도 반박한다.[13] 보고서에 따르면 카나본 백작은 무덤에 여러 번 들어간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며,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13] 카나본 백작의 사인은 "[안면] 단독"(피부 및 그 아래 연조직의 연쇄상구균 감염)에 겹쳐 발생한 폐렴"으로 보고되었다.[13] 폐렴은 다발성 장기 부전을 초래한 점진적인 침습성 감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합병증 중 하나로 여겨졌다.[13]

무덤 발굴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장수했다는 사실은 '저주'의 실체를 의심하게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무덤과 석관이 열렸을 때 참석한 58명 중 12년 안에 8명만 사망했고, 나머지는 모두 살아 있었다.[16] 여기에는 1939년 64세의 나이로 림프종으로 사망한 하워드 카터도 포함된다.[16][17] 레이디 에블린 허버트(카나본 백작의 딸)는 무덤 발견 후 처음으로 무덤에 들어간 사람들 중 한 명으로, 57년을 더 살다가 1980년에 사망했다.[18] 미국 고고학자 J.O. 키나만은 그 사건이 있은 지 39년 후인 1961년에 사망했다.[19]

하워드 카터는 저주에 대한 믿음을 '터무니없는 소리'로 일축했다.[14] 그는 "이집트학자의 정서는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과 경외심이며... 어리석은 미신과는 완전히 반대된다"고 강조했다.[14]

5. 투탕카멘의 저주와 관련된 죽음 (대중적 인식)

1922년 11월 29일 투탕카멘 무덤이 개봉된 후, 발굴 자금을 지원한 카나본 백작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죽음이 파라오의 저주와 관련이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8] 카나본 백작은 모기에 물린 후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3]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은 카나본 백작의 죽음이 투탕카멘의 사제들이 만든 "정령" 때문이라고 주장하여 이러한 믿음을 더욱 부추겼다.[11]

무덤 개봉 후 사망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이름사망 날짜사인기타
카나본 백작1923년 4월 5일모기 물림으로 인한 패혈증발굴 자금 지원, 무덤 개봉 후 4개월 7일 뒤 사망.[22][23]
조지 제이 굴드 1세1923년 5월 16일열병무덤 방문 후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사망.[24]
A. C. 메이스1928년 4월흉막염과 폐렴카터의 발굴팀 구성원
리처드 베델 대위1929년 11월 15일질식사(의심)카터의 비서[25]



그러나 이러한 죽음들이 실제로 저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무덤 발굴에 참여하거나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이 장수했으며, 하워드 카터 자신도 1939년에 64세의 나이로 림프종으로 사망했다.[16][17]

6. 대중문화 속 파라오의 저주

'파라오의 저주'는 영화, 소설, 만화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흥미로운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유니버설미이라 (1932), 미이라의 손 (1940)등 과 같은 공포 영화 시리즈에서는 무덤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예언하는 저주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다.

6. 1. 주요 작품


  • 유니버설 공포 영화 미이라 (1932), 미이라의 손 (1940) 및 후속작들은 무덤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예언하는 저주에 대한 언급을 포함한다.
  • 파라오의 저주 (1957년 영화)
  • 미라의 무덤의 저주 (1964년 영화)
  • 투탕카멘 왕의 무덤의 저주 (1980년 영화)
  • 왕가의 문장
  • 애거서 크리스티의 단편 소설 이집트 분묘의 저주
  • 루팡 3세 (TV 제2 시리즈) 에피소드 7 "투탕카멘 3천 년의 저주"
  • 사이보그 009 파라오 바이러스 편 - 저주의 정체는 투탕카멘의 사인으로도 알려진 고대 바이러스였다고 한다.

7. 2021년 수에즈 운하 봉쇄와 저주?

2021년 수에즈 운하 봉쇄 사고 당시, 대이집트 박물관으로 미라를 이송하는 행사를 기획한 것에 대한 앙화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27] 그러나 이송 행사는 무사히 마무리되면서 이러한 주장은 곧 잠잠해졌다.[27]

참조

[1] 서적
[2] 서적 The Boy Behind the Mask Oneword 2007
[3] 서적 Ancient Egypt Oxford University Press US 2003
[4] 간행물 The Mastaba of Khentika Called Ikhekhi https://archive.org/[...] 2022-01-12
[5] 서적 Valley of the Golden Mummies American University Press in Cairo Press 2000
[6] 웹사이트 Al-Ahram Weekly {{!}} Heritage {{!}} Dig days: A born archeologist https://web.archive.[...] 2018-03-17
[7] 서적 Consuming Ancient Egypt University College, London. Institute of Archaeology, Routledge Cavendish 2003
[8] 서적 The Face of Tutankhamun Faber & Faber 1992
[9] 뉴스 Times Man Views Splendors of the Tomb of Tutankhamen https://timesmachine[...] The New York Times 2009-05-12
[10] 서적 Inside Europe https://archive.org/[...] Harper & Brothers
[11] 서적
[12] 서적 In the Valley of the Kings – Howard Carter and the Mystery of King Tutankhamun's Tomb Ballantine Books 2009
[13] 간행물 The death of Lord Carnarvon https://www.thelance[...] The Lancet 2021-06-09
[14] 서적
[15] 서적 Excavation journal, May 1926. http://www.griffith.[...] The [[Griffith Institute]], Oxford
[16] 서적 Skeptical – a Handbook of Pseudoscience and the Paranormal Imagecraft, Canberra 1989
[17] 웹사이트 Egypt: The Mummy Curse of Tutankhamun http://www.touregypt[...] 2018-03-17
[18] 서적 Tutankhamun, Egypt's Most Famous Pharaoh https://archive.org/[...] Pocket Essentials 2007
[19] 뉴스 Death Claims Noted Biblical Archaeologist https://news.google.[...] Lodi News-Sentinel 2014-05-09
[20] 웹사이트 Tutankhamun: Secrets of the Tomb https://decider.com/[...] Channel 4 2023-06-01
[21] 간행물 The death of Lord Carnarvon https://www.thelance[...] Elsevier Ltd. 2021-09-18
[22] 뉴스 Why we love mummies https://web.archive.[...] 2008-08-12
[23] 뉴스 Carnarvon Is Dead of an Insect's Bite at Pharaoh's Tomb. Blood Poisoning and Ensuing Pneumonia Conquer Tut-ankh-Amen Discoverer in Egypt. https://www.nytimes.[...] 2008-08-12
[24] 뉴스 George J. Gould Dies in Villa in France. https://www.nytimes.[...] 2008-05-23
[25] 뉴스 Curse of Tutankhamun may have been work of Satanist killer https://www.telegrap[...] 2017-08-22
[26] 뉴스 Howard Carter, 66, Egyptologist, Dies. https://www.nytimes.[...] 2008-03-28
[27] 서적 [[ザ・マミー/呪われた砂漠の王女]] 映画パンフレット 東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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