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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옥녀봉 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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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남 옥녀봉 토성은 해남읍 남연리와 삼산면 창리의 경계에 있는 옥녀봉 정상에 위치한 토축산성이다. 삼국시대 또는 마한 시대로 추정되는 고대 산성으로, 옥녀봉 정상에서 시작하여 성뫼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포곡식 산성이다. 석심토축과 토축이 혼합된 형태이며, 수리재 계곡은 계단식으로 축성되었다. 옥녀봉 정상에는 장태지로 보이는 석축 흔적이 있으며, 패각층에서 철기 시대 이후의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 내지는 마한의 성지로 추정된다. 주변 남연리 마을의 고분군과의 연관성을 통해 성격 규명이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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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옥녀봉 토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이름해남 옥녀봉 토성
위치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창리 산46 외
문화재 정보
종류향토문화유산
지정 번호4
지정일2001년 11월 15일
시대삼국시대
면적22,596m2
소유자이북오도민해남군엽합회해남윤씨삼산면저산용강공파문중
관리자해남군

2.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남연리와 삼산면 창리의 경계 지역에 있는 해발 200m 내외의 옥녀봉 정상에 위치한다.

3. 구조

해남 옥녀봉 토성은 해남읍 남연리와 삼산면 창리의 경계에 있는 해발 200m 내외의 옥녀봉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삼국 시대 또는 마한 시대의 성으로 추정된다.

성은 옥녀봉 정상에서 시작하여 북쪽 기슭의 성뫼봉과 서쪽 기슭의 매봉을 연결하는 포곡식 산성 형태로, 돌을 심으로 넣고 흙을 쌓는 석심토축(石心土築) 방식과 흙으로만 쌓는 토축(土築) 방식이 함께 사용되었다. 북쪽 성뫼봉에는 후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석축 성벽도 남아 있다.

특히 수리재에서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계곡 부분은 3단 정도의 계단식으로 보강되었으며, 수리재 정상 부근에서는 패총과 토축 흔적이 확인된다. 옥녀봉 정상부 등 여러 곳에서 석축 구조물 흔적이 확인된다.

3. 1. 토성

옥녀봉 토성은 해남읍 남연리와 삼산면 창리의 접경지역인 표고 200m 내외의 옥녀봉 정상에 위치한 토축산성(土築山城)이다. 삼국 시대 내지는 마한 시대의 성으로 추정되는 고대 산성이다. 축성 방식은 옥녀봉 정상에서 시작하여 북쪽 기슭(北麓)의 성뫼봉과 서쪽 기슭(西麓)의 매봉을 연결한 포곡식 산성(包谷式) 형태이다.

옥녀봉 토성은 석심토축(石心土築, 돌을 심으로 넣고 흙으로 쌓음)과 토축(土築, 흙으로만 쌓음)이 혼합된 형식이며, 북쪽 기슭의 성뫼봉에는 후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석축(石築城)이 남아있다. 특히 수리재에서 옥녀봉에 이르는 계곡은 3단 정도의 계단식으로 축성하여 보완하였다. 수리재 정상의 붕괴된 단면에서는 패총(貝殼層, 조개무지)과 함께 토축의 흔적이 보이며, 그 아래의 계단식 성벽에서는 석심토축의 형식이 나타난다. 옥녀봉 정상에서 수리재까지의 성벽은 높이 19m, 폭 3.5m, 길이 166m 규모이며, 토축 위에 석축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옥녀봉 정상에는 장대지(將臺址, 장수가 지휘하던 곳)로 보이는 사각형(方形)의 석축 흔적과 그 아래 구릉지에도 석축 구조물이 있다.

수리재 정상에서 노출된 패총의 범위는 폭 2m, 높이 5m 정도이다. 이 패총은 철기 시대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며, 대형 옹형토기편, 적갈색 경질토기편, 회청색 경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출토 유물과 성의 축조 방법으로 보아 삼국 시대 내지는 마한의 성터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옥녀봉 토성 주변의 남연리 마을에는 고분군이 소재하고 있어, 이들 유적과의 연관성 속에서 성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3. 2. 기타 시설

옥녀봉 정상에는 장대(將臺) 터로 보이는 네모난 형태의 석축 흔적이 남아 있다. 정상 아래쪽의 구릉지에도 석축 구조물이 발견된다.

또한, 토성 주변의 남연리 마을에는 고분군이 있어, 이 유적들과 옥녀봉 토성과의 연관성을 통해 성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 발굴 조사

수리재 정상의 붕괴된 단면에서는 폭 2m, 높이 5m 정도 범위의 패각층(貝殼層)과 함께 토축(土築)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 패총에서는 철기 시대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대형 옹형토기편, 적갈색 경질토기편, 회청색 경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출토 유물과 성의 축조 방법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옥녀봉 토성은 삼국 시대 내지는 마한 시대에 축조된 성으로 추정된다.

또한, 성 주변의 남연리 마을에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어, 이 유적들과 옥녀봉 토성과의 관련성을 연구하여 성의 구체적인 성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5. 역사적 의의

해남 옥녀봉 토성은 삼국 시대 또는 마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산성이다. 이는 해남군 지역의 고대 세력 분포와 방어 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성의 축조 방식은 석심토축(石心土築)과 순수 토축이 혼합된 형태를 보이며, 특히 계곡부는 3단 정도의 계단식으로 보강하여 당시의 발달된 축성 기술을 보여준다. 수리재 정상 부근에서 발견된 패총(貝塚)에서는 철기 시대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대형 옹형토기편, 적갈색 경질토기편, 회청색 경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성의 축조 시기를 추정하고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옥녀봉 정상부에서 확인되는 장대지(將臺址)로 추정되는 방형(方形)의 석축 흔적은 성의 군사적 기능과 구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5. 1. 주변 유적과의 관계

옥녀봉 토성 주변의 남연리 마을에는 고분군이 있어, 이들 유적과 옥녀봉 토성과의 상호 연관성을 통해 성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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