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총통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현자총통은 조선 시대에 사용된 화포의 일종이다. 길이 84.21cm, 구경 6.09cm로 차대전, 철환, 산탄 철환 100개를 사용하며, 사정거리는 2,000보였다. 임진왜란 시기 수군의 주력 무기 중 하나였으며, 국립진주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에 보물로 지정된 현자총통이 소장되어 있다. 현자총통은 임진왜란 이후 죽절 증가, 손잡이 변화 등의 특징을 보이며, 제작 시기에 따라 보물 지정 여부가 달라진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국립광주박물관 소장품 -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은 전라남도 화순군 대곡리에서 출토된 세형동검, 청동기 등을 포함하는 청동기 시대 유물로, 1972년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보존 및 관리하며 당시 대한민국의 높은 금속공예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자총통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명칭 | 현자총통 (玄字銃筒) |
문화재 정보 (보물 제885호) | |
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885 |
지정일 | 1986년 11월 29일 |
소장 위치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171-1 국립진주박물관 |
시대 | 조선 초기 |
문화재청 지정 번호 | 12,08850000,38 |
문화재 정보 (보물 제1233호) | |
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1233 |
지정일 | 1995년 12월 4일 |
소장 위치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산110-0 (매곡동, 국립광주박물관) |
시대 | 조선시대 |
문화재청 지정 번호 | 12,12330000,24 |
2. 제원
현자총통의 기본 제원은 길이 4척 1푼(84.21cm), 구경 2촌 9푼(6.09cm)이다. 차대전을 화살로 사용하였으며, 사정거리는 최대 2,000보에 달했다. 탄환으로는 철환을 사용하였고, 한 번에 산탄 100개를 장전할 수 있었다. 사용 화약은 4냥이었다.[1]
주요 유물로는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 있으며, 대표적으로 국립진주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된 현자총통이 있다.[1]
2. 1. 구조
현자총통의 기본적인 길이는 4척 1푼(84.21cm), 구경은 2촌 9푼(6.09cm)이다. 화살은 차대전을 사용했으며, 사정거리는 2,000보에 달해 당시 총통류 중 가장 길었다. 탄환으로는 철환을 사용했는데, 한번에 산탄 철환 100개를 장착하여 발사할 수 있었다.화약 사용량은 4냥으로, 천자총통(30냥)이나 지자총통(20냥)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을 사용했다. 이는 화약 소모가 적어 경제적이면서도, 2,000보라는 긴 사거리를 확보하여 성능 면에서도 만족스러운 무기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임진왜란 시기 조선 수군의 주력 화포로 황자총통과 함께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조란환과 같은 작은 탄환을 여러 개 넣어 발사할 경우, 성을 방어하는 데에도 효과적이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발사 시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식히기 위해 포신 외부의 마디인 죽절 수가 늘어나고, 손잡이도 가운데 하나만 있던 것에서 두 개로 늘어나는 형태로 변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현자총통은 다음과 같다.
지정 번호 | 소장처 | 제작 연도 | 주요 특징 | 발견 장소 |
---|---|---|---|---|
보물 제885호 | 국립진주박물관 | 1596년 (선조 29) | 길이 79cm, 구경 7.5cm | 거제 앞바다 (1984년 인양) |
보물 제1233호 | 국립광주박물관 | 1555년 (명종 10, 가정 연간 추정) | 길이 78.5cm, 약실부 지름 13.9cm, 가운데 손잡이 1개 | 여수시 백도 근해 인양[1] |
조선 후기에 제작된 현자총통 유물은 육군박물관과 동아대학교 박물관 등에도 소장되어 있으며,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는 그 중간 시기에 해당하는 유물이 있다. 보물 지정은 제작 시기가 비교적 명확하며, 임진왜란 이전(보물 제1233호) 및 임진왜란 시기(보물 제885호)처럼 이른 시기에 제작된 유물에 한정되어 있다.
2. 2. 성능
현자총통은 길이 4척 1푼(84.21cm), 구경 2촌 9푼(6.09cm)이며, 화살은 차대전을 사용하였다. 사정거리는 2,000보로 당시 총통 중 가장 길었다. 탄환으로는 철환을 사용하였는데, 산탄 철환 100개를 장착할 수 있었다. 화약은 4냥만 사용하여, 천자총통(30냥)이나 지자총통(20냥)에 비해 화약 소모가 적어 경제적이었으며, 긴 사거리 덕분에 성능 면에서도 만족스러운 무기로 평가받았다.이러한 장점 덕분에 임진왜란 시기 수군의 주력 화포는 현자총통과 황자총통이었다. 현자총통은 조란환과 같은 소형 탄환을 다수 장전하여 발사할 경우, 성을 방어하는 데에도 효과적인 무기였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주요 현자총통 유물은 다음과 같다.
지정 번호 | 제작 연도 추정 | 길이 | 구경 | 소장처 | 발견 장소 | 비고 |
---|---|---|---|---|---|---|
보물 제885호 | 1596년 (선조 29) | 79cm | 7.5cm | 국립진주박물관 | 거제 (준설 중 인양) | |
보물 제1233호 | 1555년 (명종 10, 가정 34년)[1] | 78.5cm | - | 국립광주박물관 | 여수시 백도 근해 | 가운데 손잡이 있음, 약실부 지름 13.9cm |
- '''참고''': 보물 제1233호 현자총통의 경우, 원본 자료에는 '현종 10년(1555, 가정연간 간기 확인)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종 재위 기간(1659-1674)과 1555년(명종 10년, 명나라 가정제 34년)이 일치하지 않는다. 명나라 연호인 '가정(嘉靖)' 간기가 확인되므로 1555년 제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1]
임진왜란 이후 현자총통은 발사 시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식히기 위해 포신 외부의 마디인 죽절(竹節) 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초기 형태에는 가운데 손잡이가 하나만 있었으나, 이후 두 개로 늘어나는 변화를 보인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현자총통 유물로는 육군박물관과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품이 있으며, 그 중간 시기에 해당하는 유물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현자총통은 제작 시점이 비교적 명확하고, 임진왜란 이전(보물 제885호) 및 임진왜란 시기(보물 제1233호)와 같이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들이다.
3. 역사
조선 전기 태종 때부터 총통이 개발되어 개량을 거듭하였다.
3. 1. 임진왜란 시기
총통은 조선 전기 태종 때부터 개발되어 꾸준히 개량되었다. 그러나 천자총통이나 지자총통 같은 초기 모델들은 사거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화약 소모가 많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화약 낭비가 적고 효율적인 현자총통이 널리 사용되었다.4. 현존 유물
현자총통의 현존 유물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소장품(보물 제885호)과 국립광주박물관 소장품(보물 제1233호)이 있으며, 이들은 각각 임진왜란 이전과 임진왜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1] 보물 지정은 제작 시점이 비교적 명확하고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에 한정되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제작된 현자총통은 발사 시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식히기 위해 포신에 마디 모양의 죽절(竹節) 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초기 모델은 손잡이가 가운데 하나만 있었으나, 후기에는 두 개로 늘어나는 변화를 보인다.
보물 지정품 외에도 육군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등 여러 기관에서 현자총통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유물은 조선 후기 제작품이거나 그 중간 시기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4. 1.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현자총통 (보물 제885호)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885호 현자총통은 1596년(선조 29)에 제작되었다. 길이는 79cm이고 구경은 7.5cm이다. 이 유물은 1984년 거제에서 준설작업 중에 인양되었다.[1] 보물로 지정된 현자총통 중 제작 시점이 비교적 명확하며, 이른 시기인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평가받는다.[1]4. 2.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현자총통 (보물 제1233호)
국립광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1233호 현자총통은 1555년(명종 10년, 가정 34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총통에 새겨진 가정(嘉靖) 연간의 간기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 현자총통은 가운데 손잡이가 하나 있으며, 길이는 78.5cm, 약실 부분의 지름은 13.9cm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백도 근해에서 인양되었다.[1] 이 유물은 제작 시기가 비교적 명확하고 임진왜란 시기에 제작된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