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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타카급 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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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루타카급 중순양함은 일본 제국 해군의 중순양함으로, 후루타카와 카코 2척으로 구성되었다. 1920년대에 건조되었으며, 히라가 유즈루의 설계로 유바리급 경순양함의 설계를 발전시켜 경량화된 선체를 특징으로 했다. 1930년대에 두 차례의 개장을 거쳐 화력과 방어력을 강화했으나,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여 웨이크 섬 전투, 괌 전투, 산호해 해전 등에 참여했다. 사보 섬 해전에서 카코가 격침되었고,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후루타카마저 격침되어 두 척 모두 손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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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중순양함 함급 - 아오바급 중순양함
    아오바급 중순양함은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제한 하에 일본 해군이 건조한 A급 중순양함으로, 20cm 연장포 3문과 수상기용 사출기를 장비하여 화력을 강화한 아오바와 기누가사 두 척으로 구성되었으며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함급 개요
함명후루타카급
건조미쓰비시, 나가사키
가와사키, 고베
이전 함급없음
건조 기간1923년 - 1926년
취역 기간1926년–1942년
총 완공 척수2척
총 손실 척수2척
명명 기준산의 이름
특징
함종중순양함
배수량기준: 7,100톤
만재: 9,540톤
길이(전체)
동력12 × 간폰 보일러
추진4축, 4개의 기어드 증기 터빈
항속 거리at
승무원625명
항공기1대 또는 2대의 수상기
항공기 시설1개의 캐터펄트
무장 (초기)
주포6 × 단장 3년식 함포
대공포4 × 단장 3년식 함포
어뢰 발사관6 × 2연장 어뢰 발사관
무장 (최종)
주포3 × 2연장 3년식 함포
대공포4 × 단장 10년식 함포
대공 기관포4 × 2연장 96식 25mm 대공 기관포
어뢰 발사관2 × 4연장 어뢰 발사관
장갑
현측(최대)
사령탑없음
추가 정보
이미지
준공 직후의 후루타카
준공 직후의 후루타카 (1926년)

2. 함급 목록



후루타카급 중순양함은 일본 제국 해군의 중순양함이다. 동형함으로 '''후루타카''', '''카코''' 2척이 있다.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의해 주력함의 건조가 제한되면서, 각국은 보조 함정인 순양함 건조에 힘을 쏟았다. 일본 해군이 건조한 5,500톤급 경순양함은 영국 해군의 호킨스급 순양함이나 미국 해군의 오마하급 경순양함에 비해 성능이 뒤떨어졌다. 그래서 이들 함에 대항하기 위해, 히라가 조 조선관의 설계로 건조되었다.

선체는 소형화되었지만, 유바리와 같이 중량 배분과 방어력 강화를 위해 장갑판을 구조재의 일부로 사용하는 등, 경량화에 힘썼다.

원래는 2등 순양함(경순양함)으로 설계되었지만, 1등 순양함(중순양함)으로 변경되었다. 이 때문에, 1등 순양함으로서는 예외적으로 강의 이름(가코)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준공은 2번함인 후루타카가 먼저 되었기 때문에, 네임쉽이 후루타카가 되었다.

런던 해군 군축 조약의 결과, "6.1인치를 초과하고 8인치 이하의 포를 갖는 10,000톤 이하의 함"이 "카테고리 A", 통칭: 중순양함으로 분류되게 되어, 본 형식도 이에 해당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해군은, 타국보다 소형의 함을 중순양함 취급받아 핸디캡을 지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후루타카가, 사보 섬 해전 이후 미국 해군 잠수함 S-44에 의해 카코가 격침되었다.

2. 1. 후루타카 (古鷹)

연장포를 장비한 후루타카. 뒤의 함은 아오바급 중순양함 키누가사이다.


후루타카 건조 정보
항목내용
한자古鷹|후루타카일본어
건조소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
기공1922년 12월 5일
진수1925년 2월 25일
취역1926년 3월 31일
최후1942년 10월 11일,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격침


2. 2. 카코 (加古)

건조 데이터
항목내용
이름加古|카코일본어
건조가와사키 조선소
기공1922년 11월 17일
진수1925년 4월 4일
취역1926년 7월 20일
종말1942년 8월 10일, 사보 섬 해전 이후 미국 해군 잠수함 S-44에 의해 격침


3. 설계

후루타카급은 일본 제국 해군 최초의 중순양함(A급 순양함)으로,[3]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건조된 5,500톤급 경순양함의 화력이 미국 해군의 오마하급 순양함이나 영국 해군의 호킨스급 순양함에 비해 열세였기 때문에 이들을 능가할 목적으로 계획되었다.[4] 설계는 대령 히라가 유즈루가 주도하고 중령 후지모토 기쿠오가 보조했으며,[3] 유바리의 혁신적인 설계를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주요 설계 개념은 유바리와 마찬가지로, 제한된 배수량(기준 배수량 7,100톤) 안에 강력한 화력(20cm 포 6문)을 탑재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선체 구조에 장갑판을 통합하고 플러시 데크 구조를 채택하는 등[5] 적극적인 경량화를 시도했다. 이는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서 정한 8인치 포 탑재 순양함의 기준 배수량 10,000톤보다 훨씬 작은 선체에 동등한 무장을 갖추려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실제 건조 과정에서는 설계 중량을 초과하는 문제가 발생했고,[6][7] 어뢰 발사관 배치와 관련해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9] (세부적인 특징과 문제점은 하위 문단 참조)

런던 해군 군축 조약 체결 이후, 8인치 포를 탑재한 후루타카급은 중순양함(카테고리 A)으로 분류되어, 일본 해군은 상대적으로 작은 함선으로 중순양함 보유량 제한을 받게 되는 불리함을 안게 되었다.

함명 '가코'는 본래 센다이급 경순양함의 함명이었으나,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으로 해당 함선 건조가 중단되면서 후루타카급 1번함에 사용되었다.[19][20][21] 이 때문에 1등 순양함임에도 강의 이름이 붙었다. '가코'는 준공 직전 사고로 완공이 늦어져, 먼저 준공된 2번함 '후루타카'의 이름을 따 후루타카급으로 명명되었다.

3. 1. 특징

일본 제국 해군 최초의 중순양함으로 분류되는 후루타카급은 유바리의 설계를 발전시킨 함선이다. 설계는 대령 히라가 유즈루가 주도하고 중령 후지모토 기쿠오가 보조했다.[3] 당시 미국 해군의 오마하급 순양함과 영국 해군의 호킨스급 순양함을 능가하는 성능을 목표로 했으며, 특히 속도, 화력, 뇌격 능력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4]

준공 당시의 가코.


후루타카급은 여러 가지 새로운 설계 특징을 도입했다. 선체는 플러시 데크(평갑판형) 구조를 채택하여 선체 구조재를 연속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무게를 줄이고 강도를 높였다.[5] 또한 유바리처럼 측면 및 갑판 장갑을 선체 구조의 일부로 통합하여 무게를 추가로 절감하려 시도했다.[5]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건조된 가코는 설계 중량보다 900ton 이상 무거웠다. 이로 인해 흘수선이 1m 이상 깊어져 최고 속도가 감소했고, 벨트 장갑의 수면 위 높이가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했다.[6] 또한 가장 낮은 갑판의 승무원 거주 구역 현창이 수선에 너무 가까워 항해 중에는 닫아야 했으며, 이는 통풍 부족으로 이어져 거주 환경을 악화시켰다.[7]

함교 구조는 당시 일본 해군 순양함 중 처음으로 항해, 사격 통제, 통신 및 지휘 기능을 통합한 6층 규모의 대형 탑형 함교를 채택했다.[8] 연돌은 2개의 굴뚝을 하나로 모은 집합 연돌 형태로, 함교와의 거리를 확보하여 배기가스가 함교 운용에 미치는 영향을 줄였다.

준공 당시 후루타카급의 선체 단면도. 파란 선은 구조재, 빨간 선은 장갑판을 나타낸다.


무장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주포: 50구경 3년식 20cm 포 6문을 단장 포탑 형식으로 장착했다. 포탑은 함수와 함미에 각각 3기씩 피라미드 형태로 배치되었는데, 함수 2번 포탑과 함미 5번 포탑을 한 단 높게 설치하여 전후방 집중 사격을 용이하게 했다. 하지만 이 포는 인력으로 장전하는 방식이어서 포탄 운반에 많은 인원이 필요했고, 포탑 내 준비탄 소진 시 탄약고에서 100 kg이 넘는 포탄을 인력으로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 지속 발사 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포신의 작동 범위는 앙각 25도, 부각 5도였으며, 좌우 선회 각도는 150도였으나, 함교 구조물과 가까운 4번 포탑은 전방으로 좌우 20도의 사격 제한 구역이 있었다.
  • 고각포: 대공 무장으로는 40구경 3년식 8cm 고각포 4문을 단장 포가 형태로 장비했다. 이론상 360도 선회가 가능했지만 실제로는 상부 구조물에 의해 사격 범위가 제한되었다. 부앙각은 앙각 75도, 부각 5도였고 분당 발사 속도는 13발이었다.
  • 어뢰: 61cm 연장 어뢰 발사관 6기(총 12문)를 함내 중앙부 갑판 양 현에 3기씩 고정식으로 설치했다. 높은 건현 때문에 주갑판 설치가 어려워 함내에 설치한 것인데, 설계자인 히라가 유즈루는 전투 중 피격 시 어뢰 유폭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우려하여 이러한 배치에 반대했다.[9] 실제로 이 우려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현실이 되어, 후루타카를 포함하여 유사한 어뢰 배치를 가진 미쿠마, 스즈야, 모가미 등이 어뢰 유폭으로 침몰하거나 큰 피해를 입었다.


방어 구조는 유바리의 설계를 따라 장갑판을 선체 강도의 일부로 활용했다. 수선부에는 9도 경사진 76mm 두께의 NCVC 균질강을, 갑판에는 최대 35mm 두께의 NCVC 균질강을 장착했다. 주포탑은 전면과 측면 25mm, 천장 19mm 두께로 파편 방어 수준이었다. 탄약고는 선체 장갑과는 별도로 측면 51mm, 상면 35mm의 장갑으로 보호되었다. 어뢰 방어로는 현측 장갑 뒤에 수밀 구획을 설치하고, 수선 아래에는 연료 탱크를 겸하는 벌지를 두어 부력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설계 당시 예상했던 수선부 장갑의 높이(4.2m)는 건조 중량 증가로 인해 실제로는 상비 배수량 상태에서 2.2m밖에 확보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3. 2. 문제점

무게 절감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조 과정에서 후루타카급의 1번함 가코는 원래 설계했던 7,100톤보다 900톤 이상, 비율로는 10% 이상 중량이 초과되는 문제가 발생했다.[6] 이는 설계 자체의 오류라기보다는, 건조를 담당한 조선소 현장에서 혁신적인 설계를 임의로 변경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중량 초과는 여러 문제점을 야기했다. 우선 흘수선이 1m 이상 높아져 최고 속도가 계획보다 느려졌고, 방어의 핵심인 벨트 장갑이 수면 위로 노출되는 높이가 낮아져 방어력이 약화되었다.[6] 또한, 가장 아래층에 있는 승무원 거주 구역의 현창이 수면에 너무 가깝게 위치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함선이 항해할 때는 파도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현창을 항상 닫아두어야 했고, 이는 심각한 통풍 불량과 거주 환경 악화로 이어졌다.[7] 당시 「가코」 함장의 증언에 따르면, 낮은 건현 때문에 작은 파도에도 현창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항상 창문을 닫고 지내야 했으며, 이로 인해 함 내에서는 "수족관"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25]

어뢰 무장 배치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높은 건현 때문에 어뢰 발사관을 주 갑판에 설치할 수 없어 중간 갑판 양측에 3쌍씩 고정식으로 설치했는데, 설계자인 히라가 유즈루는 이러한 배치가 전투 중 피격 시 어뢰 유폭을 유발하여 함선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며 반대했다.[9] 실제로 이 우려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현실이 되었다. 후루타카를 포함하여 비슷한 어뢰 배치를 가졌던 미쿠마, 스즈야, 모가미 등이 전투 중 피격으로 인해 어뢰가 유폭되어 침몰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는 사례가 발생했다.[9]

4. 개장

일본 해군태평양 전쟁을 대비하며 미국 해군을 주적으로 상정하고 장거리 어뢰를 활용한 야간 뇌격전술을 중시했다.[10] 1930년 런던 해군 군축 조약으로 해군력 증강에 제약을 받게 되자, 해군 참모부는 기존 함정의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대규모 현대화 계획을 승인했다. 이 계획에는 최신 무기, 방어 설비, 사격 통제 시스템, 통신 장비의 도입이 포함되었다.[11]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역시 이러한 계획에 따라 두 차례에 걸쳐 개장 공사를 받았다.

1차 개장은 1931년부터 1933년 사이에 이루어졌으며, 주로 대공 무장을 강화하고 항공기 운용 능력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12]

2차 개장은 가코가 1936년부터 1937년, 후루타카가 1937년부터 1939년 사이에 시행된 대규모 공사였다.[13] 이 개장을 통해 주포와 어뢰 무장을 신형으로 교체하고 대공 능력을 강화했으며, 함교 구조와 기관 설비 등 함 전반에 걸쳐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늘어난 중량에 대응하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체 개조도 병행되었다.[13]

4. 1. 1차 개장 (1931-1933)

1931년부터 1933년까지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2척에 대한 1차 개장이 이루어졌다. 가코는 1931년부터 1932년경, 후루타카는 1932년부터 1933년경에 각각 개장을 받았다.[23]

주요 개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대공 무장 강화''': 기존의 대공포 4문을 12cm 단장 고각포 4문으로 교체했다.[12][23] 이 고각포는 전기 유압식으로 작동했으며, 관련 지휘 장치와 거리 측정기도 함께 설치되었다.[12] 포가의 선회 각도는 140도, 앙각은 75도, 부앙각은 -10도였고, 발사 속도는 분당 34발이었다. 고각포 사격지휘장치는 제1 굴뚝 앞쪽 양쪽 현에 철골 구조의 플랫폼을 만들어 설치했다.[23]
  • '''항공 장비 교체''': 건조 당시 설치되었던 활주대는 포격 시 수상기 파손 위험과 운용 시간 문제로 1930년까지 철거되었다.[22][23] 대신 정찰 수상기 운용을 위한 항공기 사출기가 새롭게 설치되었다.[12][23]
  • '''기타''': 함교 전방 중단에 폰툰(pontoon)을 설치하고 13mm 연장 기관총 1기를 장착했다. 이 시기에 탐조등도 교체된 것으로 추정된다.[23]

4. 2. 2차 개장 (후루타카: 1937-1939, 카코: 1936-1937)

현대화 개장 후의 ''후루타카''


근대화 개장 후 후루타카형의 함 용을 나타낸 일러스트


개장 후의 가코 전부 주포군


근대화 개장 후의 가코 후부 (1941년). 좌우 현에 각 1기 장비된 61 cm 4연장 어뢰 발사관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화 개장 후 본급의 선체 단면도. 청색 선이 구조재, 적색 선이 장갑판, 흑색 선이 새로 추가된 벌지 표시.


1930년 런던 해군 군축 조약으로 해군력에 제한이 가해지자, 일본 해군 참모부는 기존 함정의 성능 강화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A급" 순양함의 광범위한 현대화 계획이 승인되었으며, 최신 무기, 방어 체계, 사격 통제 시스템, 통신 장비 등이 포함되었다.[11]

후루타카급 중순양함은 가코가 1936년부터 1937년까지, 후루타카가 1937년부터 1939년까지 대대적인 개장 공사를 받았다.[13][24] 이 개장을 통해 함의 외형은 아오바형과 거의 동일하게 변모했으며, 선체 공사는 오사카 철공소 사쿠라지마 공장에서 이루어졌다.[24]

주요 개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주포 교체: 기존의 수동 장전 방식 20cm 단장포 6문을 해체하고, 조약 제한을 최대한 활용한 기력 장전 방식의 20.3cm 연장포 3기(총 6문)로 교체했다. 이 포는 하고로와 아시가라에서 사용하던 것을 내경 가공(Mark II)하여 탑재한 것이다.[14] 이는 포신의 내통(라이플링이 가공된 부분)을 8인치 포용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신형 주포는 최대 앙각 40도, 부각 5도, 좌우 선회 각도 150도였으며, 분당 3~5발의 발사 속도를 가졌다. 최대 사거리는 26700m로 늘어났고, 91식 철갑탄 사용이 가능해져 공격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선체 강도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었기에, 묘코형 이후의 중순양함보다 집탄성이 우수했다는 평가도 있다.
  • 대공 무장 강화: 기존의 12cm 고각포 외에 25mm 연장 기관포 4기(총 8문)를 추가하여 경량 대공 방어 능력을 강화했다.
  • 어뢰 발사관 교체: 함 중앙부 갑판 양 현에 고정식으로 설치되어 있던 61cm 연장 어뢰 발사관 6기(총 12문)를 철거하고, 상부 갑판의 사출기 양옆에 선회식 61cm 4연장 어뢰 발사관 2기(총 8문)를 새로 설치했다. 이 발사관은 강력한 신형 93식 어뢰를 운용할 수 있어 어뢰 공격 능력과 유효 사거리가 크게 증대되었다.
  • 함교 구조 변경: 주포, 대공포, 어뢰 발사관을 위한 최신 거리 측정기 및 사격 통제 장비를 탑재하기 위해 함교 구조를 완전히 개조했다. 항공기 감시원을 위한 플랫폼도 재설계되었으며, 전체적으로 탑형 함교가 대형화되었다.
  • 기관 교체: 기존의 석탄-중유 혼합 연소 보일러 12기를 10개의 대형 중유 전용 보일러로 교체했으며(일부 자료에서는 석탄 전소 보일러 2기를 철거하고 8기로 통일했다고도 함), 이 과정에서 보일러실을 재설계하고 석탄 저장고를 연료 탱크로 개조했다.
  • 벌지 추가: 개장으로 인한 중량 증가에 대응하고 부력과 복원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체 양 측면에 부력 구조물인 벌지(Bulge)를 추가했다. 이는 어뢰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었으며, 현측 장갑이 수면 아래로 잠기는 것을 방지했다. 벌지 추가로 함선 폭은 16.92m로 증가했다.
  • 발전 능력 향상: 늘어난 전기 소요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발전기 3기를 추가하여 총 발전 용량을 315kW에서 885kW로 증강했다.


이러한 개조 공사로 인해 함선 중량은 약 560ton 증가했다. 배수량 증가와 벌지 추가로 인한 항해 저항 증가로 최고 속도는 32노트대로 다소 감소했다.

5. 함생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후루타카와 카코는 모두 아오바급 중순양함 아오바가 기함으로 있는 제6전대에 배속되어 태평양 전쟁 초기에 활동했다. 두 함선은 웨이크 섬 전투와 괌 전투에 참가했으며, 이후 산호해 해전에서는 경항모 쇼호를 호위했다. 과달카날 전역사보섬 해전에도 함께 참가했으나, 이 해전 이후 귀환하던 중 카코는 미국 해군 잠수함 S-44의 공격으로 격침되었다.[1] 후루타카는 이후 에스페란스곶 해전에서 미 함대의 기습 공격을 받아 격침되었다.[1]

5. 1. 주요 참전 해전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두 척(후루타카, 카코)은 모두 아오바급 중순양함 아오바가 기함으로 있는 제6전대에 배속되어 태평양 전쟁 당시 활동했다. 전쟁 초기에는 웨이크 섬 전투와 괌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후 최초의 함대 항공전으로 평가받는 산호해 해전에서는 경항모 쇼호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때 키누가사, 아오바, 후루타카, 카코가 사각형 형태로 쇼호를 둘러싸 조기 경보 임무에 가까운 진형을 유지했다. 이들은 수상기를 이용해 미국 해군 항공모함 렉싱턴을 발견했으나, 항모 쇼카쿠의 정찰기가 급유함 네오쇼를 항공모함으로 잘못 식별하는 혼란이 있었다.

과달카날 전역사보섬 해전에는 두 척 모두 참가하여 미 해군 중순양함 퀸시 등에 포격을 가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사보섬 해전 이후 귀환하던 중, 잠수함 회피 기동을 중지했을 때 미국 해군의 S급 잠수함 S-44의 공격을 받아 카코가 격침되었다.

이어 벌어진 에스페란스곶 해전에서는 미 함대의 기습을 받았다. 후루타카는 우현으로 선회하던 중 집중 포격을 받고 있던 기함 아오바의 앞으로 지나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포탄을 맞고 결국 격침되었다.

6. 평가



후루타카급의 2번함 가코의 함장에 따르면, 이 함급은 거주성이 좋지 않았고 건현이 낮았다. 이 때문에 내화정(內火艇, 함재정)이 옆을 지나갈 때 생기는 파도에도 현창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항상 창문을 닫고 지내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각 함에서는 "수족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 한다.[25]

7. 아오바급 중순양함

후루타카형의 설계를 기반으로 주포를 연장포 3기로 변경한 개량형이 아오바형 중순양함이다. 아오바와 키누가사 2척이 건조되었으며, 후루타카형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아오바형은 원래 영미의 경순양함에 대항하기 위해 건조된 후루타카형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이후 변경된 상황에 맞춰 개량한 함선이다. 워싱턴 조약으로 인해 기존 후루타카형의 배수량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고, 일본 해군은 조약 상한선인 10,000톤급 중순양함(묘코형 중순양함 원안) 건조를 계획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후루타카형의 3, 4번함으로 계획되었던 아오바와 키누가사는 새로운 중순양함의 테스트 케이스로서, 주포를 기존의 20cm 단장포 6문에서 20cm 연장포 3기로 변경하고, 고각포도 신형 12cm포로 교체했으며, 항공기 운용을 위한 캐터펄트를 탑재하는 등 개량을 거쳐 건조되었다.

참조

[1] 서적 Whitley
[2] 서적 Lacroix & Wells
[3] 서적 Lacroix & Wells
[4] 서적 Lacroix & Wells
[5] 서적 Lacroix & Wells
[6] 서적 Lacroix & Wells
[7] 서적 Lacroix & Wells
[8] 서적 Lacroix & Wells
[9] 서적 Lacroix & Wells
[10] 서적 Lacroix & Wells
[11] 서적 Lacroix & Wells
[12] 서적 Lacroix & Wells
[13] 서적 Lacroix & Wells
[14] 서적 Whitley
[15] 문서 加古は河川名。これは[[川内型軽巡洋艦]]の増備中止に伴い未使用となった名をスライドしたことによる。
[16] 문서 巡洋戦艦は、日本海軍の内規に基づく一等巡洋艦であり、古鷹以前に最後に竣工した一等巡洋艦は[[榛名_(戦艦)|榛名]]と[[霧島_(戦艦)|霧島]]である。
[17] 문서 性能諸元は加古の値。
[18] 문서 略同型艦の青葉型を含めて4隻と扱うこともある。
[19] 간행물 2等巡洋艦1隻製造の件
[20] 간행물 군함加古工事に関する件
[21] 간행물 군함加古工事に関する件
[22] 문서 当時航空艤装を持った艦としては[[長良型軽巡洋艦]]があるが。この艦の搭載機は陸上機であり、水上機の長期運用を念頭に置いた艦は本型が最初である
[23] 사진 写真日本の軍艦第6巻、航空機を搭載した最初の巡洋艦
[24] 사진 写真日本の軍艦第6巻、大改装された古鷹型のデータ
[25] 서적 鉄底海峡重巡「加古」艦長回想記 光人社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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