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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석유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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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호석유화학은 합성고무, 합성수지, 정밀화학, CNT, 에너지, 건자재 등을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는 기업이다. 주력 사업인 합성고무는 40년 이상 시장을 선도하며, 합성수지는 매출액 기준 또 다른 주력 사업이다. 주요 연혁으로는 1970년 한국합성고무공업 설립, 1985년 금호화학과 합병하여 금호석유화학으로 상호 변경, 1987년 기업 공개 등이 있다.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으나 경영 정상화를 이루었고, 2011년에는 계열분리 시도 및 상표권 분쟁, 검찰 수사 등의 경영 이슈를 겪었다. 본사는 서울에 위치하며, 울산, 여수, 아산 등에 사업장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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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석유화학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회사명금호석유화학 주식회사
로마자 표기Geumho Seogyuhwahak Jusikhoesa
영문 회사명Kumho Petrochemical Co., Ltd.
설립일1970년 12월 28일
설립자박인천
본사 위치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산업화학
제품합성고무
합성수지
정밀화학
전자소재
에너지
건축 자재
서비스합성고무 제조업
석유 화학계 기초 화합물 제조업
합성수지 및 기타 플라스틱 물질 제조업
시가총액정보 없음
매출액 (2012년)5조 8,840억 원
매출액 (2023년)6조 3,225억 원
영업이익 (2012년)2,240억 원
영업이익 (2023년)3,589억 6,187만 원
순이익 (2012년)1,260억 원
순이익 (2023년)4,470억 4,353만 원
자산 (2012년)4조 620억 원
자산 (2020년)5,027,282,217,052원
직원 수 (2012년)1,358명
직원 수 (2020년)1,345명
주요 주주박철완 외 특수관계인: 24.87%
국민연금공단: 8.25%
모회사금호석유화학그룹
웹사이트금호석유화학
경영진
회장 겸 CEO박찬구
사장 겸 CEO김성채
대표이사 사장백종훈
자회사
주요 자회사금호피앤비화학
금호폴리켐
금호미쓰이화학
금호티앤엘
금호상사
연혁
초기한국합성고무공업
한남화학공업사
금호화학
한남화학
미원유화
금호케미칼
기타 정보
포브스 순위'THE GLOBAL 2000' 중 1806위
코스피 100 편입2013년
이미지
금호석유화학 워드마크
금호석유화학의 워드마크 (2006년부터 사용)
금호석유화학 울산 공장
금호석유화학 울산 공장

2. 주요 사업

금호석유화학은 다양한 화학 제품 및 에너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주요 사업 분야는 다음과 같다.


  • 합성고무: SBR, BR 등 범용 합성고무와 고기능성 합성고무, 라텍스 등을 생산하는 핵심 사업이다.
  • 합성수지: 자동차, 가전제품, 건자재 등에 사용되는 PS, ABS, EPS 등 다양한 플라스틱 소재를 생산한다.
  • 정밀화학: 고무 제품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산화방지제 등 고무 약품을 생산한다.
  • CNT: 미래 소재로 주목받는 탄소나노튜브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 에너지: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여 스팀전기를 생산, 공급한다.
  • 건자재: ABS를 이용한 창호 등을 생산한다.

2. 1. 합성고무

금호석유화학의 주력 사업은 합성고무이다. 범용 합성고무 제품인 SBR(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과 BR(부타디엔고무)을 비롯하여, 고기능성 합성고무인 S-SBR(용액 스타이렌 부타디엔 고무)과 Nd-BR(네오디뮴 폴리부타디엔 고무), 의료용 장갑 소재인 NB 라텍스, 중온화 아스팔트 첨가제 등 다양한 합성고무 제품 라인을 보유하고 있다.[10]

40년 이상 BR 및 SBR과 같은 일반 합성고무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해 왔으며, 세계적인 타이어 제조업체들을 장기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EU 타이어 라벨 규정을 충족하는 친환경적이고 고효율의 S-SBR 및 Nd-BR 등의 합성고무를 개발하여 공급하고 있다.[5][6]

2. 2. 합성수지

합성수지는 매출액 기준으로 금호석유화학의 또 다른 주력 사업이다. 자동차, 가전제품, 식품 용기, 건자재 등 다양한 산업 및 생활용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소재를 생산 및 공급하고 있다. 주요 제품군과 용도는 다음과 같다.

제품 약어제품명주요 용도
PS (GPPS, HIPS)폴리스티렌가전제품 외장재, 식품 용기, 일회용품 등
ABS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타이렌자동차 내/외장재, 가전제품, 완구류, 건자재(ABS 창호) 등
EPS발포 폴리스티렌건축용 단열재 (고단열성 블랙 EPS 에너포르 포함), 포장재, 농수산물 상자 등
SAN스티렌 아크릴로니트릴투명 용기, 가전제품 부품, 문구류 등
PPG폴리프로필렌 글리콜폴리우레탄 원료, 윤활유, 화장품 등



금호석유화학은 일반 플라스틱 소재뿐만 아니라 고성능 플라스틱 소재까지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2. 3. 정밀화학

금호석유화학의 정밀화학 부문은 주로 고무 제품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향상시키는 고무 약품을 생산한다.[10]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산업용 고무에 사용되는 산화방지제인 6PPD가 있으며, 이 제품의 생산 능력은 세계 2위 수준이다.[5][6] 금호석유화학은 주력 사업인 합성고무 사업과 정밀화학(특수화학품) 사업 간의 수직적 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2. 4. 기타 사업

금호석유화학은 주력 사업인 합성고무 및 합성수지 외에도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 정밀화학 및 특수화학품: 고무 제품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높이는 고무 약품을 생산한다. 특히 산업용 고무용 산화방지제인 6PPD는 세계 2위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합성고무 사업과의 수직적 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 건자재: ABS를 활용한 창호를 생산한다.
  • 에너지: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여 스팀전기를 생산하며, 이는 주로 자회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사용된다.
  • 전자소재: 반도체디스플레이 부품에 사용되는 전자소재 원료를 생산하며, 성장하는 사업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 탄소나노튜브(CNT): 미래 고부가가치 소재로 평가받는 탄소나노튜브 사업에도 진출하여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3. 주요 연혁

3. 1. 회사 설립 및 성장 (1970년대 ~ 1990년대)


  • 1970년 12월: 삼양타이어와 일본 미쓰이물산이 각각 50%씩 출자하여 한국합성고무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이는 금호석유화학의 모태가 된다.
  • 1973년 6월: 울산에 합성고무공장을 준공하고 스타이렌 부타디엔 고무(SBR) 생산을 시작하였다.
  • 1976년 8월: 세계 합성고무 생산자 협회(IISRP)에 가입하였다.
  • 1976년 12월: 금호피앤비화학의 전신인 금호화학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 1980년 6월: 여수에 두 번째 합성고무공장(여수고무제1공장)을 준공하고 부타디엔 고무(BR) 생산을 시작하였다.
  • 1980년 9월: 싱가포르에 SBR 21ton을 수출하며 창사 이래 첫 해외 수출을 기록하였다.
  • 1985년 6월: 금호화학과 한국합성고무공업을 합병하고, 상호를 금호석유화학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같은 해 금호폴리켐의 전신인 금호EP고무를 설립하였다.
  • 1987년 6월: 정밀화학 사업을 위해 금호몬산토를 설립하였고, 같은 해 금호피앤비화학도 설립하였다.
  • 1987년 12월: 기업 공개(IPO)를 통해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 1989년 3월: 금호미쓰이화학의 전신인 금호미쓰이도아쓰를 설립하였다.
  • 1993년 7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첫 해외사무소를 개소하였다.
  • 1997년 7월: 여수 열병합발전소를 준공하며 에너지 사업에 진출하였다. 같은 해 미원유화를 인수하였다.
  • 1998년 10월: 아산에 전자화학공장을 준공하며 전자소재 사업에 진출하였다.

3. 2. 사업 확장 및 위기 극복 (2000년대 ~ 현재)

2001년 금호케미칼을 흡수합병하여 합성수지 사업 부문을 강화하였다. 2005년에는 금호개발상사를 계열사로 편입하였고, 2008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금호석유화학상해무역유한공사를 설립하며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09년 물류 자회사인 금호티앤엘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면서 금호석유화학 역시 채권단 자율협약 절차에 돌입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사업 확장은 계속되었다. 2011년 2월에는 전라남도 여수에 세 번째 합성고무 공장인 여수고무 제2공장을 준공하였고, 3월에는 충청남도 예산에 건자재 공장을 준공하며 건자재 사업에 새롭게 진출하였다.

2011년 4월에는 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IISRP) 서울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12월에는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30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며 위기 극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12년 5월, 기업 신용등급이 BBB+에서 A-로 상향 조정되었고, 9월에는 본사를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동 시그니쳐 타워로 이전하였다. 마침내 같은 해 12월, 채권은행 공동관리 절차(자율협약)를 성공적으로 졸업하며 경영 정상화를 이루었다.

경영 정상화 이후, 금호석유화학은 신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하였다. 2013년에는 코리아에너지발전소 지분을 인수하며 태양광 발전 사업에 진출하였고, 탄소나노튜브(CNT) 상업생산을 시작하며 신소재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다. 2014년 11월에는 통상임금을 확대한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안정적인 노사 관계 구축에도 힘썼다.

2015년 12월에는 페놀계 첨가제, 비스페놀 A(BPA), 메틸 아이소뷰틸 케톤(MIBK) 등 3개 품목이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세계일류상품으로 추가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16년 3월에는 여수 제2에너지 설비 증설을 완료하였으며, 같은 달 여수공장은 4,754일(18배수) 동안 무재해 기록을 달성하며 안전 관리 역량을 입증하였다.

4. 경영 이슈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시절부터 여러 경영상의 어려움과 갈등을 겪었다. 특히 박삼구 당시 그룹 회장이 주도한 대우건설(2006년) 및 대한통운(2008년) 인수는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11] 이 과정에서 대한통운의 자금이 그룹 유동성 해결을 위해 과도하게 유입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무리한 외형 확장에 대한 우려와 책임 소재를 놓고 박찬구 당시 부회장과 박삼구 회장 간의 갈등이 깊어졌고, 이는 2009년 경영권 분쟁, 소위 '제1차 형제의 난'으로 이어졌다.[11] 이 분쟁은 그룹의 워크아웃 돌입과 맞물려 복잡하게 전개되었으며, 결국 채권단 주도로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회장 체제로 사실상 분리 경영에 들어가게 되었다.[12]

이후 금호석유화학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2012년 말 그룹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채권단 자율협약을 졸업하며 경영 정상화에 성공했다.[13][7]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완전한 계열 분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와 법적 소송으로 난항을 겪었으며,[14] '금호' 브랜드 상표권을 둘러싼 분쟁도 장기간 이어졌다.[17][18]

또한 2011년에는 박찬구 회장이 비자금 조성 및 주가 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이 수사는 '제2차 형제의 난'으로 불리며 기획수사 논란 속에 진행되었고,[15] 최종적으로 일부 배임 혐의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16]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금호석유화학의 경영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이슈였다. 2016년 8월, 금호석유화학은 그룹과의 모든 소송을 취하하며 오랜 갈등을 일단락지었다.[19]

4. 1. 형제의 난 (2009년)

대우건설(2006년)과 대한통운(2008년) 인수합병(M&A)을 통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무리한 외형 확장에 대해 박찬구 당시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은 책임자 문책과 대한통운 매각 등을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형인 박삼구 당시 그룹회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9년 초, 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금호석유화학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박찬구 부회장은 박삼구 회장과의 결별을 준비하며 계열 분리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 12일, 박찬구 부회장은 박삼구 회장에게 공동경영 합의 해지를 통보하고, 창업주 박인천 회장의 기일인 6월 15일에 맞춰 보유하고 있던 금호산업 (당시 금호건설)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추가 매수하여 지분율을 10.01%에서 18.47%까지 늘렸다. 이에 박삼구 회장 부자 역시 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금호산업 지분을 시간 외 매매로 넘기면서 확보한 자금으로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경쟁적으로 매수했다.

2009년 7월 28일, 박삼구 회장은 임시이사회를 열어 박찬구 부회장의 대표이사직 해임 안건을 상정하여 통과시켰다. 동시에 자신도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하며 동반 퇴진 형식을 취했다. 이후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한다며 박찬법 부회장을 제5대 그룹회장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박삼구 회장은 그룹 회장직 사임 발표에도 불구하고, 채권단과의 관계를 이유로 6개 계열사 대표이사직은 유지하겠다고 밝혀 실질적인 경영권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초기에 박삼구 회장의 승리로 보였으나, 대우건설 매각 발표에도 불구하고 금호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2009년 12월 말 부도설이 확산되었고, 2010년 1월 5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하게 되었다.[11] 이후 채권단은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박찬구 회장과 그의 아들 박준경, 그리고 고 박정구 전 회장의 장남 박철완에게 인정해주면서, 사실상 박찬구 회장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2011년 박찬구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언론 등에서는 2009년의 경영권 분쟁을 '제1차 형제의 난'으로 부르기 시작했다.[11]

채권단 합의에 따라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독립적인 경영을 시작했다. 2010년 2월부터 창업주의 넷째 아들인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및 자회사를, 셋째 아들인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를 책임지게 되었다.[8]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완전한 계열 분리를 추진했다.[9] 2012년 말, 금호석유화학은 채권단 감독 아래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신용평가로부터 'A−'(안정적) 신용등급을 받았다.[7] 이는 2009년금호아시아나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첫 성공 사례였다.

4. 2. 채권단 자율협약 및 경영 정상화 (2010년 ~ 2012년)

2009년 6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유동성 위기로 인해 채권은행들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었다. 그룹은 대우건설을 산업은행에 되팔기로 결정했으나, 유동성 위기와 신용도 하락이 지속되어 2009년 말 사실상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10년 1월 5일, 주관은행인 산업은행은 금호그룹의 워크아웃을 공식 선언하고 대상 계열사 선별과 대주주 합의 절차를 시작했다.

2010년 2월 초, 채권단은 상대적으로 재무 상태가 양호했던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을 '채권단 자율협약' 대상으로 분류했다. 반면 부실이 심했던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대주주 및 계열사 간 지분을 100:1 비율로 감자(사실상 대주주 지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 구조도 재편되어, 박삼구 회장과 아들 박세창은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를, 박찬구 회장과 아들 박준경, 그리고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 박철완은 금호석유화학 공동 경영을 맡게 되었다.[12]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도 위임받아, 그룹은 사실상 두 개로 나뉘어 운영되었다.

금호석유화학은 채권단 결정에 따라 2010년 3월 이사회에서 박찬구 회장이 대표이사로 재선임되어 경영에 공식 복귀했다. 이후 2년간 노사 임금 동결, 자산 매각, 세 번째 합성고무 공장 준공, 새로운 비전(Vision 2020) 발표 등 강도 높은 경영 정상화 노력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12년 말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자율협약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경영 정상화를 통해 부채비율은 2009년 말 498%에서 2012년 말 166%로 크게 낮아졌고, 신용등급은 BBB-에서 역대 최고 등급인 A-로 상향되었다.[13] 같은 해 말 한국신용평가는 금호석유화학에 'A−'(안정적) 신용등급을 부여하며 구조조정 성공을 공식화했다.[7] 이는 2009년 말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첫 성공 사례였다.

이러한 성과는 채권단 합의에 따라 금호석유화학이 모회사인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독립적인 경영을 한 결과로 평가된다. 2010년 2월부터 창업주의 넷째 아들인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및 자회사를, 셋째 아들인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를 각각 책임지는 분리 경영 체제가 구축되었기 때문이다.[8] 이후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회사와 계열사들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9]

4. 3. 계열분리 시도 및 상표권 분쟁 (2011년 ~ 2016년)

2011년 3월, 금호석유화학은 대한민국 공정거래위원회금호타이어금호산업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제외해달라는 '계열제외' 신청을 했다. 이는 2010년 2월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과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박삼구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지분 약 10%를 계속 보유하여 금호석유화학이 그룹에서 분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6월, 공정위는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이 계열제외를 위한 지분율 조건은 충족하지만, 그룹 총수인 박삼구 회장이 여전히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계열사 제외를 거부했다. 이에 금호석유화학은 7월, 서울고등법원에 '공정거래위원회 계열제외 신청 거부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고, 이후 대법원에 상고하여 심리가 진행 중이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채권단 관리 하에 있는 워크아웃 기업 경영자의 사실상 지배력을 인정한 공정위와 법원의 판단에 강하게 반발하며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14] 이 사건은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졸업 여부와 맞물려 재계와 법조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14]

한편, 금호그룹의 상표권 문제는 2007년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 명칭과 윙마크 로고('^')를 공동 상표권자로 등록했다. 그러나 그룹의 지주회사 본부가 금호산업 산하 '전략경영본부'로 운영되면서, 공동 상표권자인 금호석유화학에게 상표권 사용료(매출액의 0.1%)를 징수하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양사는 금호 브랜드의 실소유권이 금호산업에 있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2009년 말 그룹이 워크아웃에 돌입하고, 2010년 초 박삼구 회장(금호타이어 중심)과 동생 박찬구 회장(금호석유화학 중심)으로 경영권이 정리되면서 상표권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2010년 경영에 복귀한 박찬구 회장은 문서 서식 등에서 그룹 윙마크를 제거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차별화를 시도했고, 2011년 2월에는 '금호' 브랜드는 창업주인 아버지의 유산이므로 계속 사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후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2009년까지 공동 상표권자임에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지급했던 상표권료는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했고(손비 불인정), 반대로 다른 계열사로부터 받지 않은 상표권료는 매출 누락으로 지적되어 세금을 추징당했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실소유권 합의서를 제출했으나 국세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상표권 분쟁은 2012년 5월 박삼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처분한 자금으로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오너로 복귀한 후 격화되었다. 2012년 6월,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금호석유화학 등에 상표권 사용료를 기존 매출액의 0.1%에서 0.2%로 인상하겠다고 공시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즉각 반박하며 상표권료 지급을 거부했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2009년 이후 윙마크와 그룹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고 ▲'금호'는 창업주 아호로 사용을 막을 명분이 없으며 ▲대법원 판례도 형제간 공유를 인정하고 ▲상표권 자산을 정식으로 매각하거나 양도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2012년 말, 금호산업 등은 2009년 워크아웃 직전 금호석유화학 및 계열사에 떠넘겼던 CP(기업어음) 만기 대금과 자신들이 공시한 상표권료를 상계 처리했다. 이에 금호석유화학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은 2013년 6월 금호산업을 상대로 '어음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17]

2015년 7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금호산업이 금호석유화학 등을 상대로 낸 상표권 이전등록 청구 소송에서 원고(금호산업)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 사이에 상표권 명의신탁 약정이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으며, 과거 작성된 상표사용계약서는 금호산업이 상표권료를 징수하기 위한 법적 장치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판결 직후 항소 의사를 밝혔다.[18]

2016년 6월 16일, 항소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서울고등법원은 사건을 조정 절차로 전환했다. 양측은 7월 11일 만나 논의했으며, 조정 기일은 8월 22일로 연기되었다.

한편, 금호석유화학은 2012년 말 채권단 감독 하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한국신용평가로부터 신용등급 'A−(안정적)'을 받았다.[7] 이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워크아웃 이후 첫 성공 사례로, 2010년 2월부터 박찬구 회장 주도로 그룹으로부터 독립적인 경영을 추진한 결과였다.[8][9]

4. 4. 검찰 수사 (2011년)

"제 2차 형제의 난"으로도 불리는 사건의 일부로, 2011년 4월 12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 6부(차맹기 부장검사)는 수십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금호석유화학 본사(당시 종로구 신문로 소재) 및 협력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박찬구 회장이 협회장 자격으로 전 세계 61개 합성고무기업을 초청해 제52차 IISRP(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 서울총회를 개최한 첫 날이었다.

압수수색 당시 혐의는 ‘비자금 조성’이었으나, 소환 조사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 이용을 통한 주가조작’ 혐의가 추가되었다. 또한 검찰 소환조사 중 박삼구 당시 그룹회장 측의 차명계좌가 발견되었으나, 남부지검은 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때문에 박삼구 회장 측에 의한 기획수사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검찰은 압수수색 후 약 8개월 만인 12월 2일, 이례적으로 박찬구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영장실질심사에서 증거 불충분과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 부족 등의 이유로 영장은 기각되었다. 결국 2011년 12월 18일, 검찰은 박찬구 회장을 불구속 상태로 기소했으며, 2012년 6월 25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15]

2014년 1월 16일,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박찬구 회장의 횡령 및 내부정보 이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일부 배임 혐의는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 이후 재계에서는 두 형제 간의 화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하기도 했다.[16]

5. 사업장 안내

금호석유화학 울산공장 전경


'''금호석유화학 사업장 현황'''
구분명칭소재지
본사금호석유화학 본사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00 시그니쳐타워 동관 10층~14층
연구소금호석유화학 중앙연구소대전광역시 유성구 유성대로 1557
영업사무소금호석유화학 광주영업사무소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민주로 121
금호석유화학 대구영업사무소대구광역시 북구 칠곡중앙대로 461 이조빌딩 4층
금호석유화학 부산고무사업소부산광역시 금정구 중앙대로 1925 금정빌딩 12층
금호석유화학 부산수지사업소부산광역시 금정구 중앙대로 1925 금정빌딩 12층
공장금호석유화학 울산고무공장울산광역시 남구 상개로 64
금호석유화학 울산수지공장울산광역시 남구 처용로 260-257
금호석유화학 여수고무제1공장전라남도 여수시 여수산단3로 118
금호석유화학 여수고무제2공장전라남도 여수시 산단중앙로 331
금호석유화학 여수정밀화학공장전라남도 여수시 여수산단2로 227
금호석유화학 여수제1에너지전라남도 여수시 여수산단2로 46-51
금호석유화학 여수제2에너지전라남도 여수시 여수산단2로 223-84
금호석유화학 아산공장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온천대로 958
금호석유화학 예산건자재공장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예덕로 1033-9
금호석유화학 화성단열재공장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발안로 1093


6. 노사 관계

2020년 기준으로 1사 3노조 체제를 이루고 있다. 2010년부터 3년간 이어진 경영정상화 기간 중에는 2년간 임금이 동결되기도 했다. 한편, 2010년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상인 노사문화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에는 고용창출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참조

[1] 간행물 Annual Report 2012
[2] 웹사이트 KOSPI 100 Constituents http://eng.krx.co.kr[...]
[3] 뉴스 Korea Kumho Petrochemical Co., Ltd. Announces Name Change https://www.reuters.[...] 2012-02-13
[4] 뉴스 금호그룹, 금호석유화학 8개 계열사와 완전 분리…대법원 판결 http://news1.kr/arti[...] 2015-12-13
[5] 웹사이트 Why S-SBR matters to the tire industry http://tireindustryr[...] 2013-07-08
[6] 웹사이트 Kumho Petrochemical accelerates its drive in expanding synthetic rubber business http://news.mk.co.kr[...] 2013-08-01
[7] 웹사이트 Kumho Petrochemical receives highest credit rating http://news.mk.co.kr[...] 2013-08-05
[8] 웹사이트 Four Floors Apart https://www.forbes.c[...] 2011-10-26
[9] 웹사이트 No end in sight for divorce at Kumho Group http://koreajoongang[...] 2011-07-07
[10] 기타
[11] 뉴스인용 형제의 난, 제 2막 https://news.naver.c[...] MBC <시사매거진 2580> 2011-06-12
[12] 뉴스인용 금호, 3개이상 소그룹으로 쪼개질듯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10-02-09
[13] 뉴스인용 독립경영 날개 단 금호석유화학 http://economy.hanko[...] 서울경제신문 2012-12-13
[14] 뉴스인용 금호, 전례 없는 '주인' 가리기 다툼 왜? http://www.mt.co.kr/[...] 더벨 2011-06-27
[15] 뉴스인용 수십억 금호 비자금 주인은 누구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1-04-28
[16] 뉴스인용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악연…과거 굴레에 연연 말자" http://biz.chosun.co[...] 조선비즈 2014-01-16
[17] 뉴스인용 금호家 브랜드 사용료 분쟁, 법정으로 가나?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2-07-14
[18] 뉴스인용 금호 상표권 분쟁, 동생이 먼저 이겼다 http://www.hankyung.[...] 한국경제 2015-07-17
[19] 웹인용 정욱,박용범 기자 (2016.8.11) `금호家 형제분쟁` 7년만에 화해…박삼구·박찬구 회장 단독인터뷰. 매일경제 http://news.mk.co.kr[...] 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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