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초콜릿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미군 초콜릿은 1937년 미 육군 군수사령부의 요청으로 허쉬가 개발한 군용 초콜릿으로, D 레이션 바, 트로피칼 바, 사막 바 등이 있다. D 레이션 바는 고칼로리, 고온 내열성을 갖춘 페이스트 형태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군에 대량으로 보급되었다. 이후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도 사용되었으며, 걸프 전쟁 당시에는 사막 바가 개발되기도 했다. 미군 초콜릿은 군인들의 사기 진작과 비상 식량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허쉬 (기업) - 존 빌브레이
존 빌브레이는 허쉬 컴퍼니의 회장 겸 CEO이자 이사이며, 이전에는 허쉬 컴퍼니 북미 사장과 수석 부사장, 미션 푸드와 다논 워터스 오브 노스 아메리카 임원, 프록터 앤드 갬블에서 22년간 근무했고, 2005년부터 맥코믹 앤 컴퍼니의 이사로 재직 중인 미국의 기업인이다. - 허쉬 (기업) - 밀턴 허시
밀턴 허시는 1857년에 태어나 1945년에 사망한 미국의 기업가이자 자선가로, 허시 초콜릿 회사를 설립하여 밀크 초콜릿을 대중화하고, 노동자 복지와 자선 사업에 기여했으며, 타이타닉호 탑승을 취소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 미국의 전투식량 - 타바스코 소스
타바스코 소스는 1868년 에드먼드 매킬러니가 타바스코 고추를 사용하여 루이지애나주 에이버리 섬에서 처음 생산한 핫소스로, 독특한 병 디자인과 매콤한 맛으로 유명하며 전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여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그 역사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 미국의 전투식량 - MRE
MRE는 미군이 야전에서 간편하게 섭취하도록 개발된 전투 식량으로, 휴대성과 보존성을 높였으며 다양한 메뉴와 구성품을 갖춰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한다. - 미국의 과자 - 스니커즈 (과자)
스니커즈는 마스가 출시한 초콜릿 바이며, 땅콩, 캐러멜, 누가에 초콜릿 코팅을 입혀 만들었고, 다양한 종류와 광고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었다. - 미국의 과자 - 허쉬 키세스
허쉬 키세스는 1907년부터 생산된 허쉬의 대표적인 초콜릿으로, 원뿔형 모양, 알루미늄 포일 포장, 종이 띠가 특징이며 자동 포장 기계 도입 후 대량 생산되어 다양한 맛과 포장지로 출시되어 인기를 얻고 있고,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 "크리스마스 벨"로 유명하다.
미군 초콜릿 - [음식]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군용 초콜릿 |
원어 이름 | United States military chocolate (미국) |
종류 | 초콜릿 |
생산 국가 | 미국 |
창시자 | 더 허쉬 컴퍼니 |
상세 정보 | |
주재료 | 초콜릿 설탕 귀리 밀가루 카카오 지방 탈지 분유 인공 향료 |
기타 정보 | |
관련 항목 | 미국군 식량 |
![]() |
2. 역사
미국 육군의 군용 초콜릿 역사는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7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미국 육군 병참부대의 요청으로 허쉬는 최초의 군용 초콜릿인 '''D 레이션 바'''(D Ration Bar)를 개발했다. 이 초콜릿은 비상 식량으로서 높은 칼로리와 내열성을 갖추는 동시에, 병사들이 평시에 간식으로 먹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맛이 없게 만들어졌다.[2][4]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D 레이션 바는 혹독한 환경에서의 영양 공급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딱딱한 식감과 쓴맛 때문에 병사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았다.[7] 이에 1943년에는 맛을 개선하고 내열성을 유지한 '''트로피칼 바'''(Tropical Bar)가 개발되어 D 레이션 바와 함께 대량 생산, 보급되었다.[8][12] 전쟁 기간 동안 약 30억 개의 D 레이션 바와 트로피칼 바가 생산되었다.[6]
전쟁 이후 D 레이션 바는 단종되었지만, 트로피칼 바는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시기에도 계속해서 미군에게 보급되었다.[15] 1990년 걸프 전쟁 때는 사막의 고온 환경에 특화된 '''데저트 바'''(Desert Bar)가 개발되어 시험적으로 보급되었으나, 정식 생산 및 상업 판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17][18]
미군 초콜릿은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을 위한 필수 보급품으로 개발되었지만, 맛보다는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탓에 병사들에게는 종종 외면받기도 했다.
2. 1. 개발 배경
미국 육군이 처음으로 규정한 군용 초콜릿은 '''D 레이션 바'''(D Ration Bar)이다.[2] 1937년 4월, 미 육군 군수사령부의 폴 로건 대령은 허쉬 초콜릿을 방문하여 당시 회장 윌리엄 머리와 수석 화학자 샘 힝클(Sam Hinkle)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로건 대령은 군용으로 보급될 초콜릿 바에 대한 네 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당시 허쉬의 창업자였던 밀턴 허쉬 역시 이 제안에 큰 관심을 보였고, 이는 D 레이션 바의 실험 생산으로 이어졌다.[4]로건 대령이 제시한 네 가지 요구 사항은 다음과 같다.
# 무게는 약 113.40g (약 113.4g)일 것.
# 고칼로리일 것.
# 고온에서 잘 견딜 것 (내열성).
# 맛은 "삶은 감자보다 약간 더 나은 정도"일 것.
특히 마지막 맛에 대한 요구 사항은, 군용 초콜릿의 맛이 너무 좋아 군인들이 비상 식량임에도 평소에 간식처럼 먹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로건 대령은 초콜릿을 비상 식량으로 간주했고, 정말 필요할 때 병사들의 수중에 남아있도록 맛을 의도적으로 제한하고자 했다.
D 레이션 바의 재료는 초콜릿, 설탕, 오트밀, 카카오 지방, 탈지 분유, 인공 향료 등이었으며, 각기병 예방을 위해 비타민 B1이 강화되었다.[3] 하지만 높은 내열성을 위한 배합은 일반적인 초콜릿 제조 방식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끈적한 페이스트 형태가 되었다. 결국 힝클은 각 약 113.40g 분량을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무게를 재어 틀에 눌러 찍어내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고안해야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D 레이션 바는 매우 단단한 짙은 갈색 초콜릿 덩어리로, 약간의 노력을 들여야 부술 수 있었고, 약 48.9°C의 고온까지 견딜 수 있었다. 완성된 바는 알루미늄 포장지에 싸여 종이 상자에 담겼으며, 세 개의 바로 하루 배급량(1,800 Cal)을 충족하도록 설계되었다.
로건 대령은 첫 시제품에 만족했고, 1937년 6월 미국 육군은 90,000개의 '로건 바'(Logan Bars)를 주문하여 필리핀, 파나마, 텍사스 국경 및 미국 내 여러 기지에서 현장 테스트를 진행했다. 일부는 리처드 E. 버드 제독의 세 번째 남극 탐험대에 보급되기도 했다.[4] 테스트 결과가 성공적이자 군은 D 레이션 바를 비정기적으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진주만 공격 이후에는 독가스 공격에 대비해 포장을 방독 처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미국 의회는 사탕 산업을 비필수 산업으로 간주하여 폐쇄하려 했으나, 밀턴 허쉬는 초콜릿이 군인들에게 필수적인 영양 공급원이라고 의회를 설득하여 생산을 계속할 수 있었다.[5] 전쟁 기간 동안 허쉬 생산량의 대부분은 군납 물량이었으며,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약 30억 개의 D 레이션 바와 이후 개발된 트로피칼 바가 생산되어 전 세계 미군에게 보급되었다.[6] 1939년 허쉬 공장은 하루 10만 개의 D 레이션 바를 생산했으며, 전쟁 말기에는 주당 생산량이 2,400만 개에 달했다. 허쉬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육군과 해군으로부터 5개의 상을 받았다.
하지만 D 레이션 바는 쓴맛과 딱딱한 식감 때문에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많은 병사들이 배급받아도 먹지 않고 버렸으며,[7] 일부는 소화 불량을 일으킨다 하여 "히틀러의 비밀 병기"라고 부르기도 했다.[7] 치아가 약한 병사는 먹기 어려웠고, 튼튼한 사람조차 칼로 조각을 내어 먹어야 할 정도였다.[7]
1943년에는 맛을 개선하고 높은 열에도 더 잘 견디는 과자 스타일의 군용 초콜릿 생산 요청이 육군 조달청으로부터 허쉬에 전달되었다. 짧은 실험 끝에 허쉬는 트로피칼 바(Tropical Bar) 생산을 시작했다. 트로피칼 바는 D 레이션 바보다 일반 초콜릿과 더 유사한 모양이었고 맛도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병사들은 텁텁하고 맛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야전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식량으로서는 성공적이었다.
2. 2. 제2차 세계 대전
미국 육군이 최초로 정식 채택한 군용 초콜릿은 '''D 레이션 바'''(D Ration Bar)이다. 1937년 4월, 미국 육군 병참부대의 폴 로건 대령은 허쉬를 방문하여 당시 사장 윌리엄 머리와 수석 화학자 샘 힝클(Sam Hinkle)을 만나 군용 초콜릿 개발을 의뢰했다. 창업자 밀턴 허쉬도 이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보였다.[2]로건 대령은 D 레이션 바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 무게는 약 113.40g (약 113g)일 것.
# 고칼로리일 것.
# 높은 온도에서도 녹지 않고 견딜 수 있을 것.
# 맛은 "삶은 감자보다 약간 나은 정도"일 것.
네 번째 요구 사항은 초콜릿이 너무 맛있으면 병사들이 비상 상황이 아닐 때 간식처럼 먹어버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비상시에만 먹도록 의도적으로 맛을 제한한 것이다.[2]
허쉬의 화학자 힝클은 이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새로운 제조법을 개발해야 했다. D 레이션 바의 재료는 초콜릿, 설탕, 오트밀, 코코아 버터, 탈지 분유, 인공 향료 등이었으며, 각기병 예방을 위해 비타민 B1이 강화되었다.[3] 하지만 고온에 견디도록 만든 배합물은 상온에서도 잘 녹지 않는 끈적한 페이스트 형태가 되어 기존의 초콜릿 제조 설비로는 틀에 부어 모양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각 약 113.40g 분량의 반죽을 손으로 직접 틀에 눌러 찍어내는 방식으로 생산해야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D 레이션 바는 매우 단단한 짙은 갈색 덩어리였고, 약 48.9°C (약 49°C)의 고온에서도 견딜 수 있었다. 3개의 바로 구성된 1일치 D 레이션은 병사에게 필요한 최소 열량인 1,800 kcal를 제공하도록 설계되었다.[2]
로건 대령은 시제품에 만족했고, 1937년 6월 미국 육군은 9만 개의 '로건 바'(Logan Bars)를 주문하여 필리핀, 파나마, 텍사스주 국경 지대 등에서 현장 테스트를 진행했다. 일부는 리처드 E. 버드 제독의 세 번째 남극 탐험대에 보급되기도 했다.[4] 테스트 결과가 성공적이어서 육군은 D 레이션 바를 부정기적으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에는 독가스에 대비해 포장을 방독 처리하도록 변경되었다.

D 레이션 바는 그 맛과 식감 때문에 병사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너무 단단해서 먹기 힘들었고, 쓴맛 때문에 "히틀러의 비밀 무기"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7] 많은 병사들이 배급받은 D 레이션 바를 먹지 않고 버리거나, 칼로 조금씩 깎아 먹어야 했다.[7]
1943년, 미국 육군 조달 부서는 허쉬에 맛을 개선하면서도 고온에 더 잘 견디는 새로운 형태의 군용 초콜릿 개발을 의뢰했다. 이는 특히 태평양 전선의 더운 기후에 적합한 초콜릿이 필요했기 때문이다.[8] 짧은 실험 끝에 허쉬는 '''트로피칼 바'''(Tropical Bar)를 생산하기 시작했다.[12] 트로피칼 바는 D 레이션 바보다 일반 초콜릿과 더 비슷한 모양과 맛을 가졌으며, K 레이션과 같은 야전 식량과 함께 보급되었다. 처음에는 약 28.35g와 약 56.70g 크기로 나왔고, 1945년 이후에는 약 113.40g D 레이션 크기로도 생산되었다.
맛을 개선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로피칼 바 역시 병사들에게는 여전히 씹기 힘들고 맛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많은 회고록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기록되어 있으며, 병사들은 종종 이 초콜릿을 버리거나 다른 물품과 교환하려 했다. 하지만 중국-버마-인도 전역(CBI)에서는 이질과 같은 질병으로 쇠약해진 병사들이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식량이라 하여 "이질 레이션"(dysentery ration)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13]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약 30억 개의 D 레이션 바와 트로피칼 바가 생산되어 전 세계의 미군에게 보급되었다.[6] 1939년 허쉬 공장은 하루에 10만 개의 레이션 바를 생산할 수 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주당 2,400만 개를 생산할 정도로 생산 능력이 크게 늘어났다. 허쉬는 이러한 전시 생산 기여를 인정받아 품질과 생산량 모두에서 군의 기대를 뛰어넘었다는 평가와 함께 육군-해군 ‘E’상(Army-Navy 'E' Award)을 5번 수상했다.
2. 3.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레이션 D 바의 생산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허쉬가 만든 트로피컬 바는 계속해서 미 육군의 표준 레이션으로 남았다.[15] 이 트로피컬 바는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잡화" 키트(세면도구도 포함)의 일부로 미군에게 보급되었다.[15]
트로피컬 바는 1943년 고온에서도 잘 견디면서 맛을 개선한 형태로 개발되었으며[8][12], 기존 D 레이션보다 일반 초콜릿과 맛이나 모양이 더 비슷했다. 하지만 많은 병사들은 여전히 딱딱하고 맛이 없다고 여겼으며, 종종 다른 물품과 교환되기도 했다. 중국-버마-인도 전역에서는 이질 환자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식량이라는 의미에서 "이질 레이션"으로 불리기도 했다.[13]
1957년에는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배합이 변경되었지만, 여전히 씹기 어렵다는 평가는 남아 있었다. 트로피컬 바는 1971년 7월 15일 아폴로 15호의 우주식으로 채택되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기도 했다.
2. 4. 걸프 전쟁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걸프 전쟁 기간 동안, 허쉬 초콜릿은 고온의 사막 환경에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초콜릿 바인 '데저트 바'(Desert Bareng)를 개발했다. 이 초콜릿은 섭씨 60°C (화씨 140도)의 고온에서도 녹지 않도록 설계되었다.허쉬는 사막의 방패 작전과 사막의 폭풍 작전 동안 이 신제품의 시험 시장 공략의 일환으로, 144,000개의 데저트 바를 서남아시아 전역의 미군 부대에 납품했다.[17] 미 육군 대변인은 초콜릿의 맛이 좋다고 평가했지만, 실제 초콜릿을 받은 병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17] 결국 데저트 바는 상업용으로 시판되지 않았고 정식 생산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허쉬의 실험용 데저트 바 공급 물량이 도착하기 전에 전쟁이 끝나면서, 남은 생산분은 '사막 위장'(Desert Camouflageeng) 무늬 포장지에 담겨 잠시 판매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시적인 관심을 끄는 데 그쳤고, 허쉬는 재고가 소진된 후 데저트 바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았다.[18]
3. 생산 및 기술
최초의 미군용 초콜릿인 '''D 레이션 바'''는 1937년 미국 육군 군수사령부(Army Quartermaster)의 폴 로간 대령(Colonel Paul Logan)이 허쉬에 특별한 요구 조건을 제시하며 개발되었다. 로간 대령은 밀턴 허쉬 사장과 수석 화학자인 샘 힌클에게 아래 4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초콜릿 바를 요구했다.
# 무게는 약 113.40g일 것
# 고칼로리일 것
# 고온에서 견딜 것
# 삶은 감자보다는 맛이 더 좋을 것
이는 당시 군용 초콜릿이 너무 맛있어 병사들이 비상식량 대신 평소에 간식으로 먹어버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허쉬는 이 요구에 맞춰 초콜릿과 오트밀을 혼합하여 고온에서도 잘 녹지 않는 끈적한 페이스트 형태의 D 레이션 바를 개발했다. 이 초콜릿 바는 3개 팩으로 구성되어 하루 최소 권장량인 1,800 칼로리를 제공하도록 설계되었다.
1943년에는 미국 육군 조달청의 요청으로 맛과 내열성을 개선한 트로피칼 바가 개발되어 생산되기 시작했다. 트로피칼 바는 D 레이션 바보다 일반 초콜릿에 가까운 형태와 개선된 맛을 가졌지만, 여전히 많은 병사들은 텁텁하고 맛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야전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 식량으로는 성공적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인 1940년부터 1945년까지 D 레이션 바와 트로피칼 바는 약 30억 개가 생산되어 전 세계 미군 장병들에게 보급되었다. 허쉬는 전쟁 중 생산량과 품질 면에서 군의 기대를 충족시켜 육군과 해군으로부터 5개의 상을 받았다.
3. 1. 초기 생산 방식
D 레이션 바의 재료는 초콜릿,[2] 설탕, 오트밀, 카카오 지방, 탈지 분유, 인공 향료였으며, 각기병 예방을 위해 비타민 B1을 강화했다.[3]기존의 초콜릿 제조 설비는 액체 상태의 초콜릿을 틀에 흘려 넣는 방식이었지만, D 레이션 바의 내열성을 위한 배합은 고온에서도 잘 녹거나 흐르지 않는 끈적한 풀(페이스트) 형태였다. 이 때문에 액체 초콜릿과 귀리 가루의 혼합물이 틀로 잘 흘러 들어가지 않아 기존 방식으로는 생산하기 어려웠다.
이에 허쉬의 수석 화학자인 샘 힝클은 완전히 새로운 생산 방식을 개발해야 했다. 각 약 113.40g (약 113.4g) 분량의 초콜릿 반죽을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무게를 잰 뒤 틀에 눌러 넣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생산된 D 레이션 바는 약간의 힘을 주어야 부서질 정도로 매우 단단한 짙은 갈색 초콜릿 덩어리였으며, 화씨 120도(약 48.9°C, 약 48.9°C)의 고온까지 견딜 수 있는 내열성을 갖추게 되었다.
3. 2. 대량 생산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약 30억 개 이상의 D 레이션 바와 트로피칼 바가 생산되어 전 세계의 미군 병사들에게 보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9년 허쉬 공장은 하루에 10만 개의 레이션 바를 생산할 수 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공장의 모든 생산력을 동원하여 주당 2,400만 개의 레이션 바를 생산할 정도로 생산 능력이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대량 생산은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에 기여했으며, 허쉬는 D 레이션 바와 트로피칼 바 생산에서 품질과 수량 모두 미군의 기대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허쉬 초콜릿 컴퍼니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육해군 E호 생산상을 5번 수상했다. (수상 횟수를 나타내는 별 4개가 휘장에 추가되었다.) 당시 미국의 선전에서는 이러한 생산 능력을 민주주의 제도의 우월성과 미국 경제 및 농업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활용하기도 했다.[14]3. 3. 기술 발전
1943년, 미국 육군 조달 부서는 허쉬에 태평양 전선에서 보급하기 위해 극심한 열에도 견딜 수 있으면서 맛을 개선한 제과 스타일의 초콜릿 바 생산을 요청했다.[8] 짧은 실험 끝에 허쉬는 허쉬 트로피컬 바 생산을 시작했다.[12] 이 초콜릿 바는 기존의 D 레이션 바보다 모양과 맛이 일반 초콜릿 바에 더 가까웠지만, 여전히 많은 병사들은 씹기 힘들고 맛이 없다고 평가했다.1957년, 트로피컬 바의 맛을 개선하기 위해 공식이 변경되었다. 기존의 귀리 가루를 제거하고, 무지방 우유 고형분 대신 탈지 분유를 사용했으며, 코코아 파우더는 카카오 지방으로 대체하고 인공 바닐라 향료와 설탕을 추가했다. 이러한 변화로 맛은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씹기 어려운 질감은 남아있었다.
1980년대 후반, 미 육군 나틱 연구소는 계란 흰자를 사용하여 60°C 이상의 열에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고온 초콜릿을 개발했다. 연구원들은 이를 "콩고 바(Congo Bareng)"라고 불렀으며, 퍼지(fudge)와 비슷한 질감을 가졌다.[16]
사막의 방패 작전과 사막의 폭풍 작전 동안 허쉬는 이 새로운 고온 초콜릿 바 144,000개를 서남아시아 전역의 미군에게 보냈다.[17] 육군 대변인은 맛이 좋다고 평가했지만, 병사들의 반응은 엇갈렸고 결국 정식 생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전쟁 종료 후 남은 실험용 초콜릿 바는 "사막 위장(desert camouflageeng)" 포장지에 담겨 "데저트 바(Desert Bareng)"라는 이름으로 잠시 판매되었으나, 재고 소진 후 단종되었다.[18]
4. 전후 일본으로의 유입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진주군으로 주둔한 미군 병사들이 일본인들에게 초콜릿을 나누어 주었다. 이 과정에서 "'''Give me chocolate|기브 미 초콜릿eng'''"이라는 가타카나식 영어 표현이 널리 퍼졌으며, 많은 일본 어린이들이 미군 병사들에게 초콜릿을 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당시 초콜릿은 병사 개인이 자신의 레이션을 증여하는 형태뿐만 아니라, 자선 사업을 통한 배포, 심지어 일본 정부가 대금을 지불하고 사업으로 들여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종전 직후 일본 사회에 폭넓게 유통되었다.
참조
[1]
이미지
Picture of a Hershey military chocolate bar
https://hersheyarchi[...]
[2]
웹사이트
Hershey's Field Ration D bars did not melt in heat, and tasted "just a little better than a boiled potato"
https://www.thevinta[...]
Thevintagenews.com
2020-03-01
[3]
웹사이트
Ration D Bars – Hershey Community Archives
https://hersheyarchi[...]
Hersheyarchives.org
2020-03-01
[4]
웹사이트
Ration D Bars – Hershey Community Archives
https://hersheyarchi[...]
2019-06-15
[5]
웹사이트
Hogsalt
http://www.hogsalt.c[...]
Hogsalt
2020-03-01
[6]
간행물
A Sweet Prison Camp
[7]
서적
The US Army in World War II (1): The Pacific
Osprey Publishing
2000
[8]
웹사이트
This was the Hershey bar custom-built for World War II
https://www.wearethe[...]
Wearethemighty.com
2020-03-01
[9]
문서
[10]
웹사이트
Hershey's Tropical Chocolate Bar
https://hersheyarchi[...]
Hershey Community Archives
2020-03-01
[11]
웹사이트
The Price of Freedom: Hershey's Tropical Chocolate Bar
https://amhistory.si[...]
AmHistory.SI.edu
2020-03-01
[12]
웹사이트
How Hershey's Chocolate Helped Power Allied Troops During WWII
https://www.history.[...]
History
2020-03-01
[13]
서적
The Burma Road: The Epic Story of the China-Burma-India Theater in World War II
Harper-Collins
2004
[14]
간행물
War Rations and the Food Politics of Late Modernism
[15]
웹사이트
Hershey's – Tropical Chocolate – candy bar wrapper proof – August 1969
http://www.collectin[...]
CollectingCandy.com
2020-03-01
[16]
웹사이트
The Race to Create Chocolate That Only Melts in Your Mouth
https://thewalrus.ca[...]
TheWalrus.ca
2020-03-01
[17]
웹사이트
A Guide to Every Hershey's Chocolate Bar in U.S. Military MREs
https://military.id.[...]
The SITREP Military Blog
2020-03-01
[18]
웹사이트
New candy bar defies heat
https://www.baltimor[...]
2022-07-0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