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18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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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상준은 평안남도 성천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를 한 인물이다. 그는 태극학회 성천지회 회장으로 계몽운동을 하다가, 한일 병합 조약 이후 친일파로 활동했다. 평안남도 참여관, 강원도·함경북도·황해도 지사를 거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1930년대 후반부터 각종 친일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39년 경학원 대제학에 임명되어 유교의 친일화에 앞장섰고, 1945년 일본 귀족원 의원으로 선임되었으나, 같은 해 사망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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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1876년) | |
---|---|
기본 정보 | |
본관 | 반남 박씨 |
호 | 노백(老栢) |
자 | 성수(盛叟) |
생애 | |
출생 | 1876년 |
사망 | 미상 |
가족 관계 | 배우자: 김해 김씨 자녀: 4남 2녀 |
경력 | |
대한제국 | 탁지부 주사 사립 흥화학교 교원 |
일제강점기 | 조선총독부 군수 전라북도 참여관 |
주요 활동 | |
친일 활동 | 동민회 발기인 및 간사 국민협회 평의원 흥아협회 평의원 |
작위 및 포상 | |
작위 | 자작 (습작) |
훈장 | 다이쇼 천황 즉위 기념장 쇼와 천황 즉위 기념장 기원 2600년 축전 기념장 훈6등 서보장 훈5등 서보장 훈4등 서보장 훈3등 서보장 |
친일반민족행위 | |
해당 여부 | 친일반민족행위 |
결정 기관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
결정 년도 | 2007년 |
포함 이유 | 중추원 참의 애국채권 매입 권유 징병제 실시 감사 지원병 권유 연설 신사 참배 강행 |
기타 | |
관련 정보 | 박상준은 박문수 (1723년)의 7대손이다. |
2. 생애
박상준은 평안남도 성천 출신으로, 성천의 사립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태극학회 성천지회 회장을 맡아 계몽운동을 벌였다. 이후 강동군과 순천군 군수를 지냈으며,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친일 행적을 보였다.
1919년 3·1 운동 무렵부터 승진을 거듭하여 평안남도 참여관(1921), 강원도 지사(1926), 함경북도 지사(1927), 황해도 지사(1928)를 거쳐 1929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었다.[8][9]
1930년대 후반부터 각종 친일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1939년 경학원 대제학에 임명되어 유교의 친일화에도 앞장섰다. 1945년 4월 3일 귀족원 의원으로 선임되었다.
2. 1. 초기 생애 및 계몽 운동
1878년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태어났다.[3] 1899년에 금성전보사 주임을 맡았고,[3] 1900년에 전무학당에 우등으로 합격했다.[3] 그 후 은산전보사 주임을 거쳐, 평안남도 강동군 군수로 임명되었다.[3] 같은 시기에 성천군 동명학교 감찰 겸 교사로 재직하며,[3] 조선에서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여 태극학회, 서북학회에서 활동했다.[3]2. 2. 친일 관료 행적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강동군과 순천군의 군수를 지낸 박상준은 차츰 친일 행적을 보였다. 1919년 3·1 운동 무렵부터 승진을 거듭하여, 1921년 평안남도 참여관,[3] 1926년 강원도 지사,[3] 1927년 함경북도 지사,[3] 1928년 황해도 지사[3]를 거쳐 1929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3]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었다.[8][9]1930년대 후반부터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그는 각종 친일 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37년 시국강연반에서 전국을 나누어 담당하여 관제 시국 강연을 벌일 때 경상남도 지역에서 친일 연설을 했으며,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3]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1941년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3] 임전대책협의회, 1942년 조선임전보국단에 차례로 참가했다.
1939년 경학원 대제학에 임명되어[3] 유교의 친일화에도 앞장섰다. 1941년 유림 주도로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주관했고, 1943년에는 친일 유림 단체인 조선유도인연합회 회장에 올랐다.
1945년 4월 3일 조선인 중에서 7명의 칙선 귀족원 의원과 23명의 중의원 의원을 일본 국회의 의원으로 선임할 때, 귀족원 의원으로 선임될 정도로 공을 인정받았다.[4]
2. 3. 친일 단체 활동 및 전쟁 협력
1930년대 후반부터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박상준은 각종 친일 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했다.[8][9] 1937년 시국강연반에서 전국을 나누어 담당하여 관제 시국 강연을 벌일 때 경상남도 지역에서 친일 연설을 했다.[8][9]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에 선임되었고,[3] 태평양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된 애국채권 가두 판매 운동과[3] 전쟁 협력을 요청하는 시국 강연 활동을 했다.[3]그는 1939년 경학원 대제학에 임명되어 유교의 친일화에도 앞장섰다.[8][9] 1941년 유림 주도로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주관했고,[8][9] 1943년에는 친일 유림 단체인 조선유도인연합회 회장에 올랐다.[8][9] 1943년부터 조선에서 해군 지원병으로의 입대를 선전했다.[3]
그가 참여한 단체는 다음과 같다.
1945년 4월 3일 조선인 중에서 7명의 칙선 귀족원 의원과 23명의 중의원 의원을 일본 국회의 의원으로 선임할 때, 귀족원 의원으로 선임될 정도로 공을 인정받았다.[4]
2. 4. 유교 친일화 주도
1939년 경학원 대제학에 임명되어 유교의 친일화에 앞장섰다. 1941년 유림 주도로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주관했고, 1943년에는 친일 유림 단체인 조선유도인연합회 회장에 올랐다.[8][9] 1938년에는 경학원 강사를 역임했다.[9]2. 5.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
1945년 4월 3일 조선인 중에서 7명의 칙선 귀족원 의원과 23명의 중의원 의원을 일본 국회의 의원으로 선임할 때, 귀족원 의원으로 선임될 정도로 공을 인정받았다.[4] 광복 후 같은 해 9월 2일에 사망했다.[1]3. 사망
1945년 9월 15일 귀족원에서 조사가 왔다.[5] 2004년 대한민국에서 제정된 일제강점 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으며,[3] 친일반민족행위자로도 규정되었다.[6]
4. 사후 평가
2004년 대한민국에서 제정된 일제강점 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3] [6]
4. 1. 비판
1945년 9월 15일, 귀족원으로부터 조사가 보내졌다.[5] 2004년 대한민국에서 제정된 일제강점 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3] [6]5. 상훈
참조
[1]
서적
議会制度百年史 - 貴族院・参議院議員名鑑
[2]
웹사이트
議会制度七十年史. 第1
https://dl.ndl.go.jp[...]
昭和35年12月
[3]
백과사전
박상준(朴相駿)
http://encykorea.aks[...]
韓国民族文化大百科事典
[4]
서적
貴族院要覧(丙)
貴族院事務局
1947-12
[5]
간행물
『官報』 第5609号 1945年9月21日 「貴族院 議員薨去卒去及弔辞」
"{{NDLDC|2962112/2}}[...]
[6]
웹사이트
06년 12월6일 이완용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106명 명단 확정 공개
https://m.hankookilb[...]
2021-12-06
[7]
서적
해방전후사의 인식 (1)
한길사
2004-05-20
[8]
뉴스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http://www.ilyosisa.[...]
일요시사
2008-03-06
[9]
뉴스
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http://www.ilyosisa.[...]
일요시사
200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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