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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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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안의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세종의 서녀 정안옹주의 부마이다. 1453년 정안옹주와 혼인하여 청성위에 봉해졌으며, 계유정난 이후 좌익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흥인문수장,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거쳐 1469년 광덕의빈부 의빈에 올랐으며, 1476년에 사망했다. 심안의는 심덕부의 후손으로, 그의 가문은 조선 시대 명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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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심안의
작위조선 세종의 부마
별칭광덕의빈부의빈(廣德儀賓府儀賓)
가문청송 심씨
부친심선
모친초계 정씨
배우자정안옹주
자녀1남 1녀
능묘심안의 · 정안옹주 합장묘
출생 및 사망
출생일1438년
출생지조선
사망일1476년 3월 17일
사망지조선
사망 원인알 수 없음
학력 및 직업
학력알 수 없음
국적조선
종교유교(성리학)
직업부마
가족 관계
배우자정안옹주
부모심선(부)
친척조선 세종(장인)
숙원 이씨(장모)
하제명(고모부)
심안인(형)
심안례(동생)
심안지(동생)
심안신(동생)
심담(조카)
심빈(조카)
심풍(조카)

2. 생애

1453년 정안옹주와 혼인하여 청성위(靑城尉)에 봉해졌다.[2] 계유정난 이후 김종서의 집을 받았다가 다시 민신의 집을 받았다.[3] 1455년(세조 1)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1등에 녹훈되었다.[4] 1461년에는 흥인문수장(興仁門守將)이 되었다.[5] 1464년 도진무(都鎭撫)·좌상대장(左廂大將)에 이어 1467년에 오부장(五部將)이 되고 이후에도 승진을 거듭하여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지냈다. 1469년(성종 즉위) 광덕의빈부 의빈(廣德儀賓府儀賓)의 자리에 올라, 1476년에 졸하였다.

2. 1. 혼인과 관직 생활

1453년 정안옹주와 혼인하여 청성위(靑城尉)에 봉해졌다.[2] 계유정난 이후 김종서의 집을 받았다가 다시 민신의 집을 받았다.[3] 1455년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1등에 녹훈되었다.[4] 1461년에는 흥인문수장(興仁門守將)이 되었다.[5] 1464년 도진무(都鎭撫)·좌상대장(左廂大將)에 이어 1467년에 오부장(五部將)이 되고 이후에도 승진을 거듭하여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지냈다. 1469년 광덕의빈부 의빈(廣德儀賓府儀賓)의 자리에 올라, 1476년에 졸하였다.

2. 2. 계유정난 참여와 공신 책봉

심안은 1453년 정안옹주와 혼인하여 청성위(靑城尉)에 봉해졌다.[2] 계유정난 이후 김종서의 집을 받았다가 다시 민신의 집을 받았다.[3] 1455년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4]

3. 가계


  • 고조부 : 심덕부 - 문하시중, 영삼사사, 문하부 좌정승, 청성백(靑城伯)[6]
  • 증조부 : 심징 - 세종의 국구 심온 · 태조 이성계의 부마 심종의 형, 경창부윤[6]
  • 조부 : 심석준 - 군자감 판관, 증 호조판서, 양혜공(良惠公)[6]
  • 아버지 : 심선 - 경기도 관찰사 증 영돈녕부사[6]
  • 어머니 : 초계 정씨 - 판원사 정발(判院事 鄭發)의 딸, 증 정경부인[6]
  • 고모 : 청송 심씨 - 심석준의 딸, 심선의 여동생[6]
  • 고모부 : 진주 하씨 하제명(河悌明) - 영의정 하연(河演)의 아들[6]
  • 본인 : '''청성위 심안의'''(靑城尉 沈安義)[6]
  • 부인 : 정안옹주(貞安翁主) - 세종의 서차녀[6]
  • 장인 : 세종[6]
  • 장모 : 숙원 이씨(淑嬪 李氏)[6]
  • 아들 : 심언(沈漹)[6]
  • 며느리 : 문화 류씨 - 류수륜(柳守綸)의 딸[6]
  • 손자 : 심광붕(沈光鵬)[6]
  • 딸 : 청송 심씨(靑松 沈氏, 1454 ~ 1514)[6]
  • 사위 : 전주 최씨 최맹사(崔孟思, ? ~ 1472)[6]
  • 외손자 : 최인수(崔仁壽)[6]
  • 외손자 : 최인복(崔仁福)[6]
  • 형 : 심안인 -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증 병조참판[6]
  • 형수 : 파평 윤씨 - 태종의 부마 파원위 윤평(坡原尉 尹泙)의 딸[6]
  • 조카 : 심담(沈淡) - 제용감 첨정, 심창구(沈昌求,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15대조[6]
  • 조카며느리 : 회인 홍씨 - 세조 즉위 공신 영의정 홍윤성(洪允成)의 딸[6]
  • 조카 : 심빈(沈濱) - 형조판서 심광언(沈光彦)의 아버지, 영의정 심지원(沈之源)의 5대조, 효종의 부마 청평도위 심익현(靑平都尉 沈翼顯)의 6대조, 조선 후기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의 8대조, 심정구(沈晶求, 국회의원 · 선광 부회장)의 15대조, 안성군수, 증 이조판서[6]
  • 조카며느리 : 이천 서씨 - 대사성 서강(徐岡)의 딸[6]
  • 동생 : 심안례 - 영천군수[6]
  • 제수 : 여흥 민씨[6]
  • 동생 : 심안지 - 해주목사, 증 병조참판[6]
  • 제수 : 경주 김씨[6]
  • 조카 : 심풍(沈豊) - 기묘명현(己卯名賢), 이조정랑[6]
  • 동생 : 심안신 - 군자감 직장, 심완구(沈完求, 국회의원 · 초대 민선 울산시장 · 초대 - 제2대 민선 울산광역시장)의 16대조[6]
  • 제수 : 고성 이씨[6]

3. 1. 조상

심안의의 고조부는 문하시중, 영삼사사, 문하부 좌정승, 청성백(靑城伯)을 지낸 심덕부이다.[6] 증조부는 경창부윤 심징이며, 조부는 군자감 판관을 지내고 증 호조판서와 양혜공(良惠公)에 추증된 심석준이다.[6] 아버지는 경기도 관찰사, 증 영돈녕부사를 지낸 심선이고, 어머니는 판원사 정발(判院事 鄭發)의 딸로, 증 정경부인 초계 정씨이다.[6]

심안의는 세종의 서차녀 정안옹주와 혼인하여 세종의 사위가 되었다. 세종은 심안의의 장인이 된다.[6] 심안의의 장모는 숙원 이씨이다.[6]

심안의는 정안옹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심언과 딸 청송 심씨를 두었다. 심언은 문화 류씨 류수륜(柳守綸)의 딸과 혼인하여 심광붕(沈光鵬)을 낳았다.[6] 심안의의 딸 청송 심씨전주 최씨 최맹사(崔孟思, ? ~ 1472)와 혼인하여 최인수(崔仁壽)와 최인복(崔仁福)을 낳았다.[6]

심안의의 고모는 청송 심씨로 심석준의 딸이자 심선의 여동생이며, 고모부는 영의정 하연의 아들인 진주 하씨 하제명(河悌明)이다.[6]

심안의의 형제로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증 병조참판에 추증된 심안인, 영천군수 심안례, 해주목사 심안지, 군자감 직장 심안신이 있다.[6] 심안인의 처는 파평 윤씨태종의 부마 파원위 윤평(坡原尉 尹泙)의 딸이다.[6] 심안지의 처는 경주 김씨이며, 심안신의 처는 고성 이씨이다.[6]

심안인의 아들 심담(沈淡)은 제용감 첨정을 지냈으며, 심창구(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15대조이다.[6] 심담의 처는 회인 홍씨세조 즉위 공신 영의정 홍윤성의 딸이다.[6] 심안인의 또 다른 아들 심빈(沈濱)은 형조판서 심광언의 아버지이자, 영의정 심지원의 5대조, 효종의 부마 청평도위 심익현의 6대조, 조선 후기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의 8대조, 심정구(국회의원 · 선광 부회장)의 15대조이다.[6] 심빈의 처는 대사성 서강(徐岡)의 딸 이천 서씨이다.[6] 심안지의 아들 심풍(沈豊)은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이조정랑을 지냈다.[6] 심안신의 자손으로는 심완구(국회의원 · 초대 민선 울산시장 · 초대 - 제2대 민선 울산광역시장)가 있으며, 심안신의 16대손이다.[6]

3. 2. 처가

심안의의 고조부는 문하시중, 영삼사사, 문하부 좌정승, 청성백(靑城伯)을 지낸 심덕부이다.[6] 증조부는 경창부윤 심징이고,[6] 조부는 군자감 판관을 지내고 증 호조판서와 양혜공(良惠公)의 시호를 받은 심석준이다.[6] 아버지는 경기도 관찰사를 지내고 증 영돈녕부사에 추증된 심선이며,[6] 어머니는 판원사 정발(判院事 鄭發)의 딸로, 증 정경부인 초계 정씨이다.[6]

심안의는 세종의 서차녀 정안옹주와 혼인하여 세종의 부마가 되었다.[6] 장인은 세종이며, 장모는 숙원 이씨이다.[6]

심안의의 형제로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증 병조참판에 추증된 심안인, 영천군수 심안례, 해주목사 심안지, 군자감 직장 심안신이 있다.[6] 심안인의 처는 태종의 부마 파원위 윤평(坡原尉 尹泙)의 딸 파평 윤씨이다.[6]

3. 3. 가족 관계

심안의의 고조부는 문하시중, 영삼사사, 문하부 좌정승, 청성백(靑城伯)을 지낸 심덕부이다.[6] 증조부는 경창부윤 심징이며, 조부는 군자감 판관을 지내고 증 호조판서와 양혜공(良惠公)에 추증된 심석준이다.[6] 아버지는 경기도 관찰사를 지내고 증 영돈녕부사에 추증된 심선이며,[6] 어머니는 판원사 정발(判院事 鄭發)의 딸로, 증 정경부인에 추증된 초계 정씨이다.[6]

심안의는 세종의 서차녀 정안옹주와 혼인하여 세종의 부마가 되었다.[6] 장인은 세종이며, 장모는 숙원 이씨이다.[6]

심선의 여동생이자 심석준의 딸인 청송 심씨는 심안의의 고모이며, 고모부는 영의정 하연의 아들인 진주 하씨 하제명(河悌明)이다.[6]

심안의는 정안옹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심언(沈漹)과 딸 청송 심씨를 두었다.[6] 며느리는 문화 류씨 류수륜(柳守綸)의 딸이며,[6] 사위는 전주 최씨 최맹사(崔孟思)이다.[6] 손자는 심광붕(沈光鵬)이며,[6] 외손자는 최인수(崔仁壽)와 최인복(崔仁福)이다.[6]

심안의의 형제로는 형 심안인과 동생 심안례, 심안지, 심안신이 있다.[6] 심안인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형수는 태종의 부마 파원위 윤평(坡原尉 尹泙)의 딸 파평 윤씨이다.[6] 심안례는 영천군수를 지냈고, 제수는 여흥 민씨이다.[6] 심안지는 해주목사를 지내고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제수는 경주 김씨이다.[6] 심안신의 제수는 고성 이씨이며, 심안신은 군자감 직장을 지냈다.[6]

심안인의 조카는 심담(沈淡)과 심빈(沈濱)이다.[6] 심담은 제용감 첨정을 지냈으며, 심창구의 15대조이다.[6] 심담의 처는 세조 즉위 공신 영의정 홍윤성의 딸 회인 홍씨이다.[6] 심빈은 형조판서 심광언의 아버지이자 영의정 심지원의 5대조이며, 효종의 부마 청평도위 심익현의 6대조, 조선 후기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의 8대조, 심정구의 15대조이다.[6] 심빈의 처는 대사성 서강(徐岡)의 딸 이천 서씨이다.[6] 심안지의 조카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이자 이조정랑인 심풍(沈豊)이다.[6] 심안신의 후손으로는 심완구가 있다.[6]

3. 4. 형제 관계

심안의는 세종의 서차녀 정안옹주와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6] 아들은 심언(沈漹)이며, 딸 청송 심씨(靑松 沈氏)는 전주 최씨 최맹사(崔孟思)와 혼인하였다.[6]

심안의의 형제로는 형 심안인과 동생 심안례, 심안지, 심안신이 있었다.[6] 심안인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조카 심담(沈淡)은 심창구(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15대조이다.[6] 심안지의 조카 심풍(沈豊)은 기묘명현(己卯名賢) 중 한 명으로 이조정랑을 지냈다.[6] 심안신의 후손으로는 심완구(국회의원 · 초대 민선 울산시장 · 초대 - 제2대 민선 울산광역시장)가 있다.[6]

심안의의 가계는 고려 말 심덕부를 고조부로, 심징을 증조부, 심석준을 조부, 심선을 아버지로 둔 명문가였다.[6] 심안의의 고모는 하연의 아들 하제명과 혼인하였다.[6]

3. 5. 후손

심안의의 고조부는 문하시중, 영삼사사, 문하부 좌정승, 청성백(靑城伯)을 지낸 심덕부이다.[6] 증조부는 경창부윤 심징이고, 조부는 군자감 판관을 지내고 증 호조판서와 양혜공(良惠公)에 추증된 심석준이다.[6] 아버지는 경기도 관찰사를 지내고 증 영돈녕부사에 추증된 심선이며, 어머니는 판원사 정발(判院事 鄭發)의 딸로 증 정경부인에 추증된 초계 정씨이다.[6]

심안의는 세종의 서차녀 정안옹주와 혼인하여 아들 심언(沈漹)과 딸 청송 심씨(靑松 沈氏)를 두었다.[6] 심언은 류수륜(柳守綸)의 딸 문화 류씨와 혼인하여 심광붕(沈光鵬)을 낳았다.[6]청송 심씨전주 최씨 최맹사(崔孟思)와 혼인하여 최인수(崔仁壽)와 최인복(崔仁福)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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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문서 원래 남양주시에 심안의와 정안옹주의 묘가 각각 따로 있었는데, 포천시로 이장하면서 합장묘가 되었다.
[2] 실록 조선왕조실록 단종 5권, 1년(1453년) 1월 4일 2번째기사
[3] 실록 조선왕조실록 단종 9권, 1년(1453년) 12월 2일 4번째기사
[4] 실록 조선왕조실록 세조 2권, 1년(1455년) 12월 27일 3번째기사
[5] 실록 조선왕조실록 세조 26권, 7년(1461년) 10월 9일 5번째기사
[6] 문서 심선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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