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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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송 심씨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을 지낸 심홍부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우왕 때 왜구를 토벌한 심덕부가 청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그의 후손들은 조선 시대에 영의정을 역임하거나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으며 가문을 번성시켰다. 심온은 세종의 장인이자 영의정을 지냈고, 심회, 심연원, 심열 등도 영의정에 올랐으며, 인순왕후, 단의왕후, 소헌왕후 등 여러 왕비와 부마를 배출했다. 심덕부의 후손들은 서울에 거주하며 벼슬을 한 경파와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킨 심원부의 후손인 향파로 나뉘며, 각 파별로 항렬자를 다르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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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송 심씨 - 심상정
심상정은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하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결성에 참여했으며,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여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의당 창당을 주도하고 고양시 덕양구 갑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대선에 두 번 출마하고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의 진보적 의제를 제기해 온 정치인이다. - 청송 심씨 - 심대평
심대평은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충청남도지사, 국회의원, 국민중심당 대표, 자유선진당 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17대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가 사퇴하고 정계 은퇴 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청송 심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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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심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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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성씨 | 청송 심씨 (靑松沈氏) |
나라 | 한국 |
관향 | 경상북도 청송군 |
시조 | 심홍부(沈洪孚) |
집성촌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파천면 강원도 인제군 남면 관대리 경기도 파주시, 화성시 경상남도 산청군, 합천군 전라남도 곡성군, 장성군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부곡리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추산리 |
인물 | 심덕부 심원부 심온 심종 소헌왕후 심회 심결 심안의 심순경 심광언 심연원 심달원 심통원 심강 인순왕후 심의겸 심충겸 심우승 심희수 심열 심기원 심지원 심익현 심액 심광수 심재 심호 단의왕후 심단 심수현 심육 심사정 심능건 심풍지 심이지 심환지 심능악 심상규 심의신 심의면 심순택 심이택 심상훈 심상학 심성지 심호택 심흥택 심의석 심훈 심수관 심성택 심흥선 심의환 심우영 심정구 심명보 심재홍 심대평 심상명 심재권 심재철 심상정 심대섭 |
년도 | 2015 |
인구 | 240,768명 |
비고 | 청송 심씨 대종회 |
2. 역사
심덕부의 아들 7형제 대에서 가문이 크게 융성하였다. 다섯째 아들 심온(沈溫)은 세종의 장인으로 영의정을 지냈고, 여섯째 심종(沈淙)은 태조의 사위로 청원군(靑原君)에 봉해졌다.
심온의 둘째 아들 심회(沈澮)도 세조 때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하였다. 심회의 증손인 심연원(沈連源)은 명종 때 영의정에 오르고,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봉해졌다.
심연원의 아들 심강(沈鋼)은 명종의 장인으로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에 봉해졌다. 심강의 손자 심열(沈悅)은 인조 때 영의정에 올랐다.
심열의 현손 심호(沈浩)는 경종의 장인으로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에 봉해졌다.
2. 1. 고려 시대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했다.4세 심덕부(沈德符)는 고려 우왕 때 왜구를 토벌하여 공을 세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서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고, 조선 개국 후 회군공신(回軍功臣) 1등에 추록되었으며, 1399년 좌정승(左政丞)에 이르렀다. 심덕부의 아우 심원부(沈元符)는 고려 말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멸망하자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2. 2. 조선 시대
심덕부의 아들 7형제 대에서 가문이 크게 융성하였다. 세종의 장인이자 영의정을 지낸 심온, 태조의 사위 심종, 영의정을 지낸 심회, 심연원, 명종의 장인 심강, 영의정을 지낸 심열, 경종의 장인 심호 등이 주요 관직을 역임했다.3. 분파
경파(京派)는 심덕부의 후손으로, 대대로 서울에 살면서 벼슬을 지냈다. 향파(鄕派)는 심원부의 자손들로, 고려가 망하자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간 심원부의 유훈을 지켜 대대로 고향에 살면서 벼슬을 멀리하였다. 경파는 심덕부의 아들 7형제에서 7개 분파로 갈라진다.
분파명 | 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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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총제공파(都摠制公派) | 심인봉 |
판사공파(判事公派) | 심의구 |
성주지사공파(成州知事公派) | 심계년 |
인수부윤공파(仁壽府尹公派) | 심징 |
안효공파(安孝公派) | 심온 |
청원군파(靑原君派) | 심종 |
동지총공파(同知摠公派) | 심정 |
그 중에서도 넷째 집인 인수부윤공파와, 다섯째 집인 안효공파가 번성하여 굵직한 벼슬을 도맡아 했다.
이외 분파로는 심천윤의 영동정공파(令同正公派), 심천주의 현령공파(縣令公派), 심덕귀의 정랑공파(正郞公派), 심춘우의 목사공파(牧使公派), 심언룡의 감찰공파(監察公派), 심언충의 부위공파(副尉公派), 심봉원의 효창공파(曉窓公派)가 있다.
4. 주요 인물
- 심덕부(沈德符) : 고려 우왕 때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내고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조선 개국 후 회군공신(回軍功臣) 1등에 추록, 1399년 좌정승(左政丞) 역임.
- 심원부(沈元符) : 고려 말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냈으나,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킴. 두문동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 중 한 명.
- 심온(沈溫) : 세종의 국구(國舅, 왕의 장인)로서 영의정 역임.
- 심회(沈澮) : 세조 때 영의정 역임.
- 심안의(沈安義) : 세종의 부마 청성위(靑城尉).
- 심연원(沈連源) : 명종 때 영의정 역임,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봉해짐.
- 심강(沈鋼) : 명종의 국구(國舅)로서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에 봉해짐.
- 심의겸(沈義謙) : 서인(西人)의 초대 영수, 선조 때 병조판서(兵曹判書) 역임.
- 심열(沈悅) : 인조 때 영의정 역임.
- 심환지(沈煥之) : 노론 벽파(僻派)의 영수, 정조 때 병조판서, 순조 때 영의정 역임.
- 심상규(沈象奎) : 노론 시파(時派)의 영수, 영의정 역임.
- 심순택(沈舜澤) : 대한제국 초대 의정대신(議政大臣), 총리대신 역임.
- 심성지(沈誠之) : 구한말 항일의병장, 1896년 을미의병 때 청송의진(靑松義陣) 의병대장으로 활동.
- 심상학(沈相學) :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 문물을 시찰,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벨기에 5개국 전권대신(全權大臣) 역임.
- 심건택(沈健澤) : 대한제국 고종 때 충청남도 관찰사 역임.
- 심재준(沈載准): 한국교원대학교 일반사회교육학과 졸업, 임용고시 경북 수석, 성주고등학교 사회 교사.
5. 항렬자
19세 | 20세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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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지(之) | 능(能) | 의(宜) | 口택(澤) | 상(相) | 口섭(燮) | 재(載) | 口보(輔) | 규(揆) | 口용(用) | 영(寧) | 口기(起) | 장(章) | 口후(厚) | 양(亮) | 口남(南) | 무(茂) | 口용(鎔) | 한(漢) | 口근(根) | 형(炯) | 口균(均) | 진(鎭) | 口순(淳) | 동(東) | 口병(炳) | 口곤(坤) |
19세 | 20세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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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영(永) | 낙(樂) | 노(魯) | 원(遠) | 종(鍾) | 口구(求) | 口식(植) | 우(愚) | 기(基) | 口석(錫) | 태(泰) | 口수(秀) | 병(丙) | 口균(均) | 口용(鎔) | 진(震) | 口동(東) | 영(寧) | 口기(起) | 용(鏞) | 口한(漢) | 상(相) | 口희(熙) | 재(在) | 口찬(鑽) | 승(承) | 口근(根) |
19세 | 20세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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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啓) | 학(學) | 우(雨) | 승(承) | 口래(來) | 口섭(燮) | 口규(圭) | 口호(鎬) | 영(永) | 정(楨) | 口열(烈) | 口기(基) | 석(錫) | 해(海) | 口식(植) | 口연(然) | 중(重) | 종(鍾) | 口호(浩) | 口모(模) | 형(炯) | 의(義) | 口용(鏞) | 口준(浚) | 동(東) | 병(炳) | 口배(培) |
6.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 세종 왕비 소헌왕후
- 명종 왕비 인순왕후
- 경종 왕비 단의왕후
- 태조의 차녀 경선공주의 남편(부마) 청원군 심종
- 세종의 서녀 정안옹주의 남편(부마) 청성위 심안의
- 효종의 삼녀 숙명공주의 남편(부마) 청평도위 심익현
- 영조의 서녀 화령옹주의 남편(부마) 청성위 심능건
- 성종의 서자 영산군 정비 금릉군부인 청송 심씨
- 세종의 서자 수춘군의 사위이자 성종의 서자 영산군의 장인 심순로
- 중종의 서자 봉성군의 사위 심충겸
- 선조의 서자 경창군의 사위 심약하
- 선조의 서녀 정신옹주의 사위 심항
- 순조의 장모 청양부부인(靑陽府夫人) 청송 심씨 - 순조 국구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의 부인, 순조 왕비 순원왕후의 어머니
- 성종 후궁 숙용 심씨
7. 가승
세종의 장인 심온은 1418년 태종이 왕위를 물려주고 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으로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 이때 심온의 아우 의흥삼군부 도총제/동지총제 심정이 병조판서 박습과 상왕(이방원)의 권한인 군사 이동을 임의로 처리한 것에 불만을 품은 병조좌랑 안현오가 밀고하자, 태종은 이들과 함께 병조판서 박습 등을 참수하게 했다. 심온은 그 수괴로 지목되어 귀국 도중 의주에서 체포된 뒤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고 유배지 수원에서 사사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심온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걱정한 태종과 좌의정 박은이 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후 사정을 들은 심온은 죽으면서 "이후로 우리 집안에서는 박씨 가문과 혼인하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다. 이 사건은 태종의 왕비 민씨의 동생 2명을 사사시킨 전력이 있는 이방원이 훗날 아들 세종의 외척인 심온의 세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 것과 거기에 동조한 박은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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