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윤 (14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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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광윤은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 이보의 4대손이다. 음직으로 관직에 올라 조지서, 사헌부, 사직서 등을 거쳐 풍덕 군수를 역임했다. 1535년에 사망했으며, 사후에는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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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윤 (149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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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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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이광윤(李匡胤) |
자 | 명중(明仲) |
시호 | 효정(孝貞) |
본관 | 전주 이씨 |
생년월일 | 1490년(성종 21년) 4월 10일 |
몰년월일 | 1556년(명종 11년) 4월 17일 |
묘소 |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계림군 묘 |
가족 관계 | |
부 | 익양군 이회(益陽君 李懷) |
모 | 전주 최씨, 최중경(崔重卿)의 딸 |
배 | 정부인(貞夫人) 안동 권씨, 권치중(權致中)의 딸 계부인(繼夫人) 해주 오씨, 오자형(吳子衡)의 딸 |
자녀 | 장남: 하릉군 이린 2남: 이정(李鋥) 3남: 이균(李鈞) 4남: 이강(李鎫) 5남: 이신(李鋅) 6남: 이호(李鎬) 장녀: 파평 윤씨 윤형수(尹衡壽)에게 출가 2녀: 평산 신씨 신광보(申光輔)에게 출가 3녀: 안동 권씨 권수(權脩)에게 출가 |
기타 정보 | |
봉군 | 계림군(桂林君) |
신분 | 왕족 |
2. 생애
조선 중종 대의 왕족이자 문신이다.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4대손으로,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다. 1515년(중종 10년) 9월 조지서 관원으로 재직 중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1] 1516년 복직하여 사헌부 감찰 등을 역임했다. 기묘사화와 신사사화의 여파 속에서 1520년 사직서령으로 전임되었고, 이후 풍덕군수, 충훈부도사, 돈녕부 첨정 및 도정을 거쳤다.[2] 1535년(중종 30년) 4월 16일 풍덕군수로 재직하던 중 임지에서 사망하였다.
2. 1. 가계와 초기 생애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 이보의 4대손이다. 증조부는 의성군 이채, 할아버지는 운림도정 이핍이며, 아버지는 파성군 이철동이다. 어머니는 현부인 초계 변씨로, 현감을 지내고 참의에 증된 변담의 딸이다. 왕족으로서의 예우는 아버지 파성군 이철동 대에서 끝났는데, 이는 파성군이 서자였기 때문이다. 파성군은 파성부정에 제수되었다가 파성정을 거쳐, 노인직으로 정의대부 파성군에 올랐다. 이 사실은 윤근수가 이광윤의 아들 이간의 묘비문을 작성하면서 "종실에서는 적서(嫡庶)를 따지지 않지만 파성군 위로는 모두 적파(嫡派)"라고 언급하며 알려졌다.할아버지 운림도정은 장인인 배천군수 광주 정종우가 살던 경기도 양주군 내동면 서고산리(현 의정부시)에 정착하였고, 이로 인해 이광윤의 가문은 의정부시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서고산리 일대에는 배천군수 정종우와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았으며, 인근에 그들의 묘소가 있다.
형 이승윤이 있었으나, 그의 구체적인 행적과 생몰년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여흥민씨와 결혼했으며, 의정부시 고산동 송산의 선영 아래에 묻혔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이광윤의 첫 부인은 안동권씨로 군수 권자선의 딸이었으나 자녀를 두지 못했다. 이후 사옹원 직장을 지낸 이하신의 딸 경주이씨와 재혼하여 아들 이간을 얻었다.
그는 품성이 온화하고 관대하며 장자(長子)의 풍모를 지녔다고 전해진다. 음서로 관직에 나아갔다. 1515년(중종 10년) 9월, 조지서의 관원으로 재직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1] 1516년(중종 11년) 조지서 별제로 복직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헌부 감찰로 승진하였다. 감찰로서 백관을 규찰하고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에 힘썼으나, 남곤과 심정 등이 주도한 기묘사화와 신사사화를 겪는 와중에 1520년(중종 15년) 사직서령으로 전임되었다.
2. 2. 관직 생활
그는 음직으로 관직에 올랐다. 1515년(중종 10년) 9월에는 조지서의 관원으로 있었으나, 구체적인 사유는 알려지지 않은 채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1] 이듬해인 1516년(중종 11년) 조지서 별제(別提)로 복직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헌부 감찰(監察)로 승진하여 관리들을 규찰하고 기강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남곤(南袞), 심정(沈貞) 등이 주도한 기묘사화와 신사사화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1520년(중종 15년) 사직서령(社稷署令)으로 전임되었다.1530년(중종 25년)에는 풍덕군수로 임명되었다. 1531년(중종 26년) 충훈부도사(都事)로 재직하던 중, 5월 이조판서 한효원(韓效元)의 추천으로 돈녕부 첨정(僉正)이 되었다.[2] 당시 한효원이 이광윤 처의 인척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통정대부로 가자(加資)되어 돈녕부 도정(都正)으로 승진하였다. 다시 풍덕군수로 임명되어 재직하던 중, 1535년(중종 30년) 4월 16일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2. 3. 사후
그가 사망할 당시 아버지 파성군 이철동과 어머니 현부인 초계정씨가 생존해 있었다. 아버지 파성군 이철동은 1537년에 사망했고, 어머니 초계정씨의 사망 연대는 불확실하나 그의 아들 이간을 양육하였다고 한다.할아버지 운림도정 이핍이 양주 내동면 서고산리에 묘를 쓴 이래 그 주변에 계속 묘역이 조성되었다. 그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내동면 서고산리 송산(현,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산 52-1 송산) 선영 아래 자좌(子坐)에 있으며, 부인 경주 이씨가 그의 좌측, 안동 권씨가 우측에 매장되었다.
이후 그의 묘소 옆 오른쪽 언덕에는 아들 이간의 묘소와 알 수 없는 묘소 하나, 그리고 손자 이경록의 묘소가 연이어 들어섰고, 그 왼쪽 언덕에는 손자 이서의 묘소가 들어섰다. 그의 묘소 왼쪽에는 아버지 파성군 이철동 내외의 묘소와 그 왼쪽에는 할아버지 운림도정 이핍의 묘소가 있고, 아버지 파성군 묘소 북쪽에는 손자 이경복의 묘소가 들어서 있다.
후손들의 출세로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가증되어 증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묘갈명은 월정 윤근수(月汀 尹根壽)가 지었다.
3. 가족 관계
- '''고조부''' : 효령대군 이보(孝寧大君 李補)
- '''증조부''' : 의성군 이심(誼城君 李宷, 1411년 - 1493년 8월 13일), 효령대군의 아들
- '''할아버지''' : 운림도정 이핍(雲林都正 李愊)
- '''아버지''' : 파성군 이철동(把城君 李哲仝, 1453년 ~ 1537년 5월 29일)
- '''어머니''' : 현부인 초계 변씨(1460년 ~ 1537년 이후 10월 10일), 현감 증 참의 정담의 딸
- * '''형''' : 이승윤(李承胤), 생년월일 행적 미상이며, 묘는 송산동 선산에 있다고 한다.
- * '''형수''' : 여흥 민씨, 감사 민사?의 딸
- * '''누이''' : 전주 이씨
- * '''매부''' : 김극핍(金克愊, 1472년 ~ 1531년), 광산인, 시호는 정평(靖平)
- '''부인''' : 안동 권씨(? ~ ?), 군수 권자선(權自善)의 딸
- '''부인''' : 경주 이씨(? ~ ?년 12월 14일), 사옹원 직장을 지낸 이하신(李夏臣)의 딸
- * '''아들''' : 이간(李幹, 1527년 3월 6일 ~ 1598년 3월 3일)
- * '''사위''' : 이소(李紹), 참봉
- * '''사위''' : 정호(鄭湖, 하동인), 현감
- * '''사위''' : 조정간(趙廷幹, 풍양인), 경력
- * '''사위''' : 신각(申火+各, 평산인), 목사
4. 기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묘 비석 상단은 칼로 자른 듯하거나 인위적으로 파손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숙주 일가 묘역 옆 언덕에 그의 진외증조부 배천군수 정종우(鄭宗寓)와 파평윤씨 묘소 아래에 할아버지 운림도정 이핍 내외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정종우의 묘소 뒤편에는 그의 손자 정명덕의 묘와 다른 손자 정대덕의 단이 있다. 장인 정종우 내외와 할아버지 운림도정 이핍의 묘소가 의정부시 고산동에 먼저 자리를 잡은 연유로, 이후 이광윤 일가의 묘역도 이곳에 형성되었다. 운림도정 내외의 묘소는 각각 조성되었으며, 묘 앞에는 각자 묘비가 세워져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다.
부모보다 먼저 사망한 그의 묘소는 할아버지 운림도정 묘 오른쪽 언덕에 조성되었고, 아버지 파성군 철동 내외의 묘소는 그의 묘 서북쪽에 조성되었다. 이광윤의 묘소 오른쪽 언덕에는 아들 이간, 손자 이경록, 증손자 이서의 묘소가 수 미터 간격을 두고 위아래로 조성되었으며, 남쪽 끝에는 다른 손자 이경유, 이경유의 서자 이기축의 묘소도 있다. 도로 건너편은 의정부교도소이며, 인접 지역에는 미군 부대가 보인다.
참조
[1]
실록
대간이 안당의 일·성윤의 일을 아뢰고, 헌부가 조지서의 안윤희를 파직하기를 청하다
중종실록
1515-09-10
[2]
실록
헌부가 가까운 친척을 의망한 이조 판서 한효원을 체직시키도록 아뢰다
중종실록
153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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