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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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상천황은 일본 황실에서 천황이 양위한 후 받는 칭호이다. 최초의 태상천황은 지토 천황으로, 697년 몬무 천황에게 양위하면서 이 칭호를 받았다. 태상천황은 퇴위한 천황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졌으며, 새 천황으로부터 지위를 받는 의미로 변화했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황실전범에서 양위와 태상천황 제도가 삭제되었지만, 2019년 아키히토 천황의 퇴위로 인해 '상황'이라는 칭호가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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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는 1933년 쇼와 천황의 장남으로 태어나 1989년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2019년 퇴위하고 상황이 되었으며, 어류학자로 활동하며 아시아 국가에 대한 사죄와 국민과의 소통에 힘썼다. - 태상천황 - 쇼무 천황
쇼무 천황은 몬무 천황의 아들로 겐메이 천황와 겐쇼 천황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일본의 45대 천황으로, 불교 장려, 도다이지와 고쿠분지 건립, 간전영년사재법 제정 등의 업적을 남기고 고켄 천황에게 양위한 뒤 최초의 태상천황이자 승려가 되었다.
태상천황 | |
---|---|
개요 | |
유형 | 명예 칭호 |
설명 | 퇴위한 일본 천황에게 부여되는 칭호 |
역사 | |
기원 | 아스카 시대 |
최초 수여 | 조메이 천황 |
마지막 수여 | 아키히토 |
칭호 및 호칭 | |
일본어 | 太上天皇 (다이조 덴노/다조 덴노) |
약칭 | 上皇 (조코) |
존칭 | 院 (인) |
불교식 존칭 | 太上法皇 (다이조호오) |
2. 역사
일본의 황실에서 양위의 첫 번째 예는 고교쿠 천황이었지만, 이 시점에서는 군주호는 "천황"이 아닌 "대왕"이었고, 당연히 "태상천황"이라는 칭호도 없었기 때문에 "'''황조모존'''"(스메미오야노미코토)이라는 임시 존호가 제정되었다.[25] 또한, 그 후 고교쿠 천황 자신이 사이메이 천황으로 중조하였다.
그 후, 다이호 율령에서 태상천황의 칭호가 정해지면서, 지토 천황 11년 (몬무 천황 원년) 8월 1일 (697년 8월 22일), 지토 천황이 몬무 천황에게 양위하여, 역사상 최초의 태상천황(상황)이 되었다.
일본 황실에는, 에도 시대 후기닌코 천황에게 양위한 고카쿠 상황까지, 총 59명의 상황이 존재했다. 즉, 역대 천황 중 절반 가까이가 퇴위하여 상황이 되었다. 다만, 헤이안 시대 이후 "천황의 붕어"라는 사태 자체가 금기시되어 회피하게 되었고, 중태가 된 후에 양위 절차가 이루어져 상황의 존호가 내려지고, 직후에 붕어한 예가 많다. 다이고 천황은 양위 후 8일, 이치조 천황은 10일, 고스자쿠 천황은 3일 만에 붕어했다(다만, 이러한 경우에는 후술될 차대 천황에 의한 태상천황의 칭호 봉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고이치조 천황에 이르러서는 그 붕어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그것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그 사실을 숨긴 채 양위 절차를 진행하고, 그것이 완료된 후에 비로소 붕어를 공표하는 상황이었다. 에도 시대의 고코묘 천황 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고모모조노 천황에 이르러서는, 정식 재위 종료일이 붕어일의 10일 후라는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천황의 붕어"가 아닌 "상황의 붕어"로 취급하기 위한 편법이다.
지토 천황 이래, 태상천황의 칭호는 '''퇴위한 천황이 자동으로 칭하는 것'''이었으며, 특별한 의식은 필요 없었다. 시대가 흘러 사가 천황은, 자신의 이복 동생인 준나 천황에게 양위할 때, 태상천황의 칭호의 사퇴를 신청했다. 태상천황은 재위 중인 천황을 친권자로서 지탱하기 때문에, '''천황과 동격의 권위와 권한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지만, 사가 천황의 경우, 형에 지나지 않고 친권자가 아닌 헤이제이 상황과의 권력 분담을 둘러싸고 심각한 대립이 발생하여(약자의 변), 결국 쿠데타로 형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이중 권력의 폐해를 피하기 위해 태상천황을 사퇴한 것이다. 다만 준나 천황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최종적으로는 준나 천황이 사가 천황에게 태상천황의 칭호를 봉상하는(준나 천황이 사가 천황에게 태상천황의 칭호를 선하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이로 인해, 태상천황의 의미는, '''새 천황으로부터 주어지는 지위'''로 변화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역사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헤이제이까지의 태상천황은 그대로 "태상천황"이라고 부르고, 사가 천황 이후의 태상천황을 "상황"이라고 구별하여 부르는 관습이 되었다.
또한, 닌메이 천황이나 고다이고 천황처럼, 퇴위와 붕어가 거의 같은 날이었기 때문에, 퇴위 후에도 생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상천황의 선하가 보류된 경우도 있다. 또한 준닌 천황은, 후지와라 나카마로의 난의 결과로 강제적으로 황위를 쫓겨나 아와지국으로 유배된 채 붕어했기 때문에, "아와지 폐제"라고 불리며 역대 천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존호가 내려지지 않았다. 안토쿠 천황도 동생인 고토바 천황의 즉위에 의해 폐제로 간주되었다. 추쿄 천황은 즉위의 예도 거치지 못한 채 지위를 쫓겨났기 때문에, 즉위의 사실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구조 폐제" "후 폐제"라고 불리며 역시 역대 천황에서 제외되었고, 선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준닌 천황과 추쿄 천황에 대해서는 메이지 천황에 의해 다시 존호가 추증되었다.
고곤 천황은 고다이고 천황의 정권 탈취에 의해 폐위되었고, 즉위의 사실 자체도 부정되었지만 "황태자를 사퇴한 것에 대한 포상"으로서 특례로 태상천황의 칭호가 인정되었다. 소코 천황도 간오의 교란 와중에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남조에 대한 항복(쇼헤이일통)으로 인해 북조가 일시적으로 소멸했기 때문에 폐위되었지만, 융화책을 취한 남조측의 배려로 태상천황이 되었다. 고무라카미 천황·초케이 천황은 남조에 의해 태상천황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북조측은 승인하지 않았다. 고카메야마 천황도 북조 측으로부터 역대 천황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겨우 태상천황의 칭호를 얻었지만, 이것은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단적으로 결정한 강압적인 것이었으며, 그것조차도 "천황이 되지 못한 태상천황"의 취급을 받았다.
고켄 천황은, 일단 퇴위하여 태상천황이 된 후, 후임인 준닌 천황을 폐위한 후 스스로 쇼토쿠 천황으로서 중조하여, 천황으로 복귀했다. 상황에서 천황으로 복귀한 것은, 그 외에 고다이고 천황의 예가 있지만, 이쪽은 겐코의 난에 패배하여 어모반측이 된 고다이고 천황 측이 어디까지나 퇴위를 거부하고, 교토에서는 고곤 천황이 재위하고, 자신은 오키로 유배되어 있는 동안에도 "자신이 정통 천황이다"라고 주장한 결과이며, 본인은 마지막까지 중조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에도 시대까지의 일반적인 황실 계도에서는 고다이고 천황을 중조로 하고 편의상 1대로 하여 고곤도 역대 천황으로 했지만, 메이지 유신에 의해 남조 정통이 된 결과, 2023년 (레이와 5년) 현재의 황통보는 고다이고 측의 주장을 용인하여 고곤을 역대 외 천황으로 하고 있다.
그 외, 천황으로서의 즉위를 거치지 않고 태상천황위를 받은 자가 2명(고타카쿠라인·고소코인), 훙거 후에 태상천황호를 받은 자가 2명(세이닌 친왕, 요코인·간인노미야 노리히토 친왕, 게이코 천황)이 있다.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고엔유 상황의 재세 중과 그 몰후에 치천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었음을 감안, 죽음에 임하여 태상천황의 존호를 받았지만, 후계자인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사퇴했다. 간인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은 생전에 존호가 내려질 것이 결정되었지만, 막부의 반대로 받지 못했다 (존호 일건).
2019년 (헤이세이 31년) 4월 30일 제125대 천황 아키히토의 양위에 따라 제정된 "천황 퇴위 등에 관한 황실전범 특례법 (헤이세이 29년 법률 제63호)"에서는 "태상천황"의 약칭인 "'''상황'''"을 정식 칭호로 했다.
2. 1. 태상천황의 칭호
일본의 황실에서 고교쿠 천황이 양위했을 당시에는 '천황'이 아닌 '대왕' 칭호를 사용했기에 '태상천황'이라는 칭호는 없었고, '황조모존'(스메미오야노미코토)이라는 임시 존호가 제정되었다.[25] 이후 다이호 율령에서 태상천황의 칭호가 정해지면서, 지토 천황 11년 (몬무 천황 원년) 8월 1일 (697년 8월 22일) 지토 천황이 몬무 천황에게 양위하여 역사상 최초의 태상천황이 되었다.지토 천황 이래, 태상천황의 칭호는 퇴위한 천황이 자동적으로 칭하는 것이었으며 특별한 의식은 필요 없었다. 사가 천황은 자신의 이복 동생인 준나 천황에게 양위할 때 태상천황 칭호 사퇴를 신청했다. 헤이제이 상황과의 권력 분담을 둘러싼 심각한 대립(약자의 변)으로 인해, 이중 권력의 폐해를 피하기 위해 태상천황을 사퇴한 것이다. 그러나 준나 천황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준나 천황이 사가 천황에게 태상천황의 칭호를 봉상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이로 인해 태상천황의 의미는 새 천황으로부터 주어지는 지위로 변화했다.
2019년 (헤이세이 31년) 4월 30일 제125대 천황 아키히토의 양위에 따라 제정된 "천황 퇴위 등에 관한 황실전범 특례법 (헤이세이 29년 법률 제63호)"에서는 "태상천황"의 약칭인 "'''상황'''"을 정식 칭호로 했다.
2. 2. 상황의 종류
2. 3. 특이 사례
2. 4. 메이지 시대 이후
메이지 시대의 구 황실전범 기안 당시, '타카나와 회의'에서 이토의 결재에 따라 "양위 규정을 삭제한다", "태상천황 규정도 삭제한다"고 결정되었고[26][27], 전후의 황실전범에도 계승되었다. 메이지 천황은 새로운 메이지 헌법에 퇴위할 권리를 명시하고, 태상천황 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하는 조항을 두기를 원했으나, 내각총리대신은 황제는 정치 위에 있어야 하며, 과거 태상천황의 역할은 분명히 그 반대 방향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거부했다.구 황실전범이 제정된 이후, 다이쇼 천황, 쇼와 천황, 천황 아키히토의 황위 계승에서는 "료안 천조", 즉 천황의 붕어 후, 즉시 황사가 천조하여 즉위하는 형태가 취해졌기 때문에, 태상천황(상황)의 봉상·선하·양위는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2017년 (헤이세이 29년)에 천황 아키히토의 퇴위를 위한 특례법인 천황의 퇴위 등에 관한 황실전범 특례법 (퇴위 특례법)이 제정되어, 2019년 (헤이세이 31년) 4월 30일에 아키히토가 퇴위하고, 2019년(레이와 원년) 5월 1일에 지금의 천황(나루히토)가 즉위했다. 퇴위한 아키히토는, 특례법의 규정에 따라 상황이 되었다.[26][27]
2. 5. 연소 및 연장 기록
로쿠조 상황은 3세 3개월로 천황에서 물러나 상황이 된 최연소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키히토는 85세 4개월로 최연장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태상천황으로 한정하면 고닌 상황이 71세 5개월이다.3. 원정 / 지텐노키미
다이호 율령에는 천황과 마찬가지로 상황도 인젠( 院宣일본어 )[30]을 통해 자신의 의향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다. 상황은 인노초( 院庁일본어 )를 개설하고, 인쿠란도( 院蔵人일본어 )등의 기관을 둘 수도 있었다.
헤이안 시대 말에는 천황의 모자 관계에 기반한 외척에 의한 셋칸 정치에서 부자 관계를 기초로 한 상황에 의한 인세이( 院政일본어 )로 정권이 넘어갔다. 역사상 유명한 상황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속한다. 정권을 쥔 상황은 '''지텐노키미'''( )[31]라고 불렸다.
4. 역대 상황
지토 천황이 몬무 천황에게 양위하고 태상천황이 된 것이 최초이며[28], 에도 시대 후기의 고카쿠 천황이 닌코 천황에게 양위할 때까지 총 59명의 상황이 존재했다. 역대 일본 천황 중 절반 가까이가 양위 후 태상천황이 되었으나, 천황 재위 중 사망을 불길하게 여겨 붕어 직전 양위하여 태상천황 존호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다이고 상황은 8일, 이치조 상황은 10일, 고스자쿠 상황은 3일간 상황으로 재위했다.
대부분의 일본 천황은 양위 후 즉시 태상천황 존호를 받았으나, 퇴위 후 존호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닌묘 천황과 고다이고 천황처럼 퇴위 직후 1, 2일 만에 붕어하거나, 아와지 폐제(준닌 천황)처럼 쿠데타로 폐위되거나, 안토쿠 천황과 구조 폐제(주쿄 천황)처럼 즉위·퇴위 사실이 불분명한 경우 등이 있었다. 반면 고곤 천황이나 스코 천황은 사실상 폐위되었으나 후에 존호를 받았다.
무로마치 막부 제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사망했을 때 조정에서 태상천황 존호를 내리려 했으나, 아들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사양하여 무산되었다. 고켄 천황은 퇴위 후 쇼토쿠 천황으로 다시 즉위하여, 태상천황에서 천황으로 돌아간 유일한 사례이다. 1301년 3월 9일부터 1304년 8월 17일까지 5명의 태상천황[29]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했다.
1817년 고카쿠 천황이 닌코 천황에게 양위하여 태상천황이 된 것이 마지막이었고, 메이지 이후 황실전범에서는 양위를 인정하지 않아 현재 태상천황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키히토가 퇴위 의사를 밝혀 2019년 5월 1일 장남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이 차기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총 64명의 일본 천황이 퇴위했다.
이름 | 즉위 | 퇴위 | 사망 | 계승자 | 비고 |
---|---|---|---|---|---|
지토 | 686 | 697 | 703 | 몬무 | 구사카베 친왕은 지토 천황의 후계자로 책봉되었으나,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구사카베의 아들인 가루 친왕이 지토의 후계자로 지명되었고, 그는 몬무 천황이 되었다.[2] 지토는 몬무를 위해 퇴위한 후 태상천황 칭호를 받았다.[3] 지토는 원정 통치를 계속했다.[4] |
겐메이 | 707 | 715 | 721 | 겐쇼 | 겐메이는 8년 동안 재위한 후, 겐쇼에게 양위했고, 그녀는 겐쇼 천황이 되었다.[5] 퇴위 후 겐메이는 태상천황으로 알려졌으며, 지토 천황에 이어 이 칭호를 받은 두 번째 여성 천황이었다.[6] |
겐쇼 | 715 | 724 | 748 | 쇼무 | |
쇼무 | 724 | 749 | 756 | 고켄 | |
고켄 | 749 | 758 | 770 (복위 764) | 준닌 | 쇼무 천황은 749년 딸 다카노 공주에게 양위했고, 그녀는 고켄 천황이 되었다. 고켄 천황은 758년 사촌에게 양위하여 준닌 천황으로 즉위하게 했지만, 764년 쇼토쿠 천황으로 다시 복위했다. |
준닌 | 758 | 764 (폐위) | 765 | 쇼토쿠 (고켄) | |
고닌 | 770 | 781 | 781 | 간무 | |
헤이제이 | 806 | 809 | 824 | 사가 | 헤이제이 천황은 809년 질병으로 인해 퇴위했다. |
사가 | 809 | 823 | 842 | 준나 | |
준나 | 823 | 833 | 840 | 닌묘 | |
세이와 | 858 | 876 | 881 | 요제이 | |
요제이 | 876 | 884 (폐위) | 949 | 고코 | |
우다 | 887 | 897 | 931 | 다이고 | |
다이고 | 897 | 930 | 930 | 스자쿠 | 다이고 천황은 병이 들어 아들에게 양위했고, 몇 달 후에 사망했다. |
스자쿠 | 930 | 946 | 952 | 무라카미 | |
레이제이 | 967 | 969 | 1011 | 엔유 | 레이제이가 퇴위했고, 레이제이인 조코라는 존칭을 받았다. 그의 재위는 2년이었다.[7] |
엔유 | 969 | 984 | 991 | 가잔 | |
가잔 | 984 | 986 | 1008 | 이치조 | |
이치조 | 986 | 1011 | 1011 | 산조 | |
산조 | 1011 | 1016 | 1017 | 고이치조 | |
고스자쿠 | 1036 | 1045 | 1045 | 고레이제이 | |
고산조 | 1068 | 1073 | 1073 | 시라카와 | 이치조 천황 재위 25년에 천황이 퇴위했고, 사촌이 왕위를 계승했다.[9] 태상천황 이치조 천황이 3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0] |
시라카와 | 1073 | 1087 | 1129 | 호리카와 | 시라카와 천황은 공식적으로 퇴위했고,[11] 태상천황 칭호를 받았다.[12] 시라카와는 14년 동안 왕위에 있었고, 그 후 43년 동안 원정으로 알려지게 될 광범위한 권력을 행사했다.[13] |
도바 | 1107 | 1123 | 1156 | 스토쿠 | 전 천황 도바는 39세의 나이로 삭발하고 불교 승려가 되었다.[15] 원정 천황 도바는 태상 호오라는 칭호로 알려졌다.[17] |
스토쿠 | 1123 | 1142 | 1164 | 고노에 | 스토쿠-텐노 재위 18년에 천황이 퇴위했고, 전 도바 천황의 8번째 아들인 남동생이 왕위를 계승했다.[16] |
고시라카와 | 1155 | 1158 | 1192 | 니조 | |
니조 | 1158 | 1165 | 1165 | 로쿠조 | |
로쿠조 | 1165 | 1168 | 1176 | 다카쿠라 | |
다카쿠라 | 1168 | 1180 | 1181 | 안토쿠 | |
고토바 | 1183 | 1198 | 1239 | 쓰치미카도 | |
쓰치미카도 | 1198 | 1210 | 1231 | 준토쿠 | |
준토쿠 | 1210 | 1221 | 1242 | 추쿄 | |
추쿄 | 1221 | 1221 | 1234 | 고호리카와 | |
고호리카와 | 1221 | 1232 | 1234 | 시조 | |
고사가 | 1242 | 1246 | 1272 | 고후카쿠사 | |
고후카쿠사 | 1246 | 1259 | 1304 | 가메야마 | |
가메야마 | 1259 | 1274 | 1305 | 고우다 | |
고우다 | 1274 | 1287 | 1324 | 후시미 | |
후시미 | 1287 | 1298 | 1317 | 고후시미 | |
고후시미 | 1298 | 1301 | 1336 | 고니조 | |
하나조노 | 1308 | 1318 | 1348 | 고다이고 | |
고곤 | 1331 | 1333 (폐위) | 1364 | 고다이고 | |
고다이고 | 1318 | 1339 | 1339 | 고무라카미 | |
고묘 (북조) | 1336 | 1348 | 1380 | 스고 (북조) | |
스고 (북조) | 1348 | 1351 | 1398 | 고고곤 (북조) | |
고고곤 (북조) | 1352 | 1371 | 1374 | 고엔유 (북조) | |
초케이 (남조) | 1368 | 1383 | 1394 | 고카메야마 (남조) | |
고엔유 (북조) | 1371 | 1382 | 1393 | 고코마쓰 (북조) | |
고카메야마 (남조) | 1383 | 1392 | 1424 | 고코마쓰 | |
고코마쓰 | 1382 (북조) 1392 (남조) | 1412 | 1433 | 쇼코 | |
고하나조노 | 1428 | 1464 | 1471 | 고쓰치미카도 | 고하나조노 천황은 1464년에 퇴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닌의 난이 발발했다. 오기마치 천황이 1586년까지 더 이상의 퇴위는 없었다.[18] |
오기마치 | 1557 | 1586 | 1593 | 고요제이 | |
고요제이 | 1586 | 1611 | 1617 | 고미즈노오 | |
고미즈노오 | 1611 | 1629 | 1680 | 메이쇼 | |
메이쇼 | 1629 | 1643 | 1696 | 고코묘 | |
고사이 | 1655 | 1663 | 1685 | 레이겐 | |
레이겐 | 1663 | 1687 | 1732 | 히가시야마 | |
히가시야마 | 1687 | 1709 | 1710 | 나카미카도 | |
나카미카도 | 1709 | 1735 | 1737 | 사쿠라마치 | |
사쿠라마치 | 1735 | 1747 | 1750 | 모모조노 | |
모모조노 | 1747 | 1762 | 1762 | 고사쿠라마치 | |
고사쿠라마치 | 1762 | 1771 | 1813 | 고모모조노 | 일본의 역사에서 고사쿠라마치 천황은 8명의 여왕 중 마지막이었다. 고사쿠라마치 이전에 재위했던 7명의 여성 군주는 스이코, 고교쿠(사이메이), 지토, 겐메이, 겐쇼, 고켄 (쇼토쿠) 및 메이쇼였다. |
고카쿠 | 1780 | 1817 | 1840 | 닌코 | 3천년기가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조코가 된 천황은 1817년의 고카쿠였다. 그는 나중에 "손고 사건"("존칭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을 일으켰다.[19] |
아키히토 | 1989 | 2019 | 생존 | 나루히토 |
5. 동시 재위
쇼안 3년(1301년) 3월 9일부터 가겐 2년(1304년) 8월 17일까지 3년 5개월 동안 고후카쿠사 상황, 가메야마 상황, 고우다 상황, 후시미 상황, 고후시미 상황의 5명의 상황이 동시에 재위한 것이 최다 기록이다.
역대 천황과 상황의 동시 재위 기간은 아래 표와 같다.
년 | 천황 | 상황 | |||||
---|---|---|---|---|---|---|---|
문무 천황 원년(697년) | 문무 | 지토 상황 | |||||
문무 천황 7년(703년) | |||||||
와도 8년/레이키 원년(715년) | 겐쇼 | 겐메이 상황 | |||||
요로 5년(721년) | |||||||
요로 8년/신키 원년(724년) | 쇼무 | 겐쇼 상황 | |||||
덴표 20년(748년) | |||||||
덴표 21년/덴표칸포 원년(749년) | 고켄 | 쇼무 상황 | |||||
덴표쇼호 8년(756년) | |||||||
덴표호지 2년(758년) | 준닌 | 고켄 상황 | |||||
덴표호지 8년(764년) | |||||||
쇼토쿠 | |||||||
진고케이운 4년/호키 원년(770년) | |||||||
호키 12년/덴오 원년(781년) | 간무 | 고닌 상황 | |||||
덴오 2년/엔랴쿠 원년(782년) | |||||||
다이도 4년(809년) | 사가 | 헤이제이 상황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
고닌 13년(822년) | |||||||
고닌 14년(823년) | 준나 | 사가 상황 | |||||
덴초 10년(833년) | |||||||
닌묘 | 준나 상황 | ||||||
조와 7년(840년) | |||||||
조와 9년(842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조간 18년(876년) | 요제이 | 세이와 상황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
겐게이 5년(881년) | |||||||
겐게이 8년(884년) | 고코 | 요제이 상황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4" | | ||||
닌나 3년(887년) | |||||||
우다 | |||||||
간표 9년(897년) | |||||||
다이고 | 우다 상황 | ||||||
엔초 8년(930년) | |||||||
스자쿠 | |||||||
엔초 9년/조헤이 원년(931년) | |||||||
덴교 9년(946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무라카미 | 스자쿠 상황 | ||||||
덴랴쿠 3년(949년) | |||||||
덴랴쿠 6년(952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안나 2년(969년) | 엔유 | 레이제이 상황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
에이칸 2년(984년) | |||||||
가잔 | 엔유 상황 | ||||||
칸와 3년/에이엔 원년(987년) | |||||||
이치조 | 가잔 상황 | ||||||
쇼랴쿠 2년(991년) | |||||||
간코 5년(1008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
간코 8년(1011년) | |||||||
산조 | 이치조 상황 | ||||||
style="background-color:#ddf" |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3" | | ||||||
조와 5년(1016년) | 고이치조 | 산조 상황 | |||||
조와 6년/간닌 원년(1017년) | |||||||
간토쿠 2년(1045년) | 고레이제이 | 고스자쿠 상황 | style="background-color:#ddf" | | ||||
엔큐 5년(1073년) | 시라카와 | 고산조 상황 | style="background-color:#ddf" | | ||||
오토쿠 4년/간지 원년(1087년) | 호리카와 | 시라카와 상황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4" | | ||||
가쇼 2년(1107년) | |||||||
가쇼 3년/텐닌 원년(1108년) | 토바 | ||||||
호안 4년(1123년) | |||||||
스토쿠 | 토바 상황 | ||||||
다이지 4년(1129년) | |||||||
에이지 2년/고지 원년(1142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고노에 | 스토쿠 상황 | ||||||
큐주 2년(1155년) | |||||||
고시라카와 | |||||||
큐주 3년/호겐 원년(1156년) | |||||||
호겐 3년(1158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니조 | 고시라카와 상황 | ||||||
죠칸 2년(1164년) | |||||||
죠칸 3년/에이만 원년(1165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로쿠조 | 니조 상황 | ||||||
닌안 3년(1168년) | |||||||
타카쿠라 | 로쿠조 상황 | ||||||
안겐 2년(1176년) | |||||||
지쇼 4년(1180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안토쿠 | 타카쿠라 상황 | ||||||
지쇼 5년(1181년) | |||||||
지쇼 6년(1182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4" | | ||||||
지쇼 7년(1183년) | 고토바 | ||||||
겐큐 3년(1192년) | |||||||
겐큐 9년(1198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3" | | ||||||
츠치미카도 | 고토바 상황 | ||||||
죠겐 4년(1210년) | |||||||
준토쿠 | 츠치미카도 상황 | ||||||
조큐 3년(1221년) | |||||||
츄쿄 | 준토쿠 상황 | ||||||
고호리카와 | |||||||
칸키 3년(1231년) | |||||||
칸키 4년/조에이 원년(1232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시조 | 고호리카와 상황 | ||||||
텐푸쿠 2년/분랴쿠 원년(1234년) | |||||||
랴쿠닌 2년/엔오 원년(1239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
닌지 3년(1242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간겐 4년(1246년) | 고후카쿠사 | 고사가 상황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7" | | |||
쇼겐 2년/분오 원년(1260년) | |||||||
가메야마 | 고후카쿠사 상황 | ||||||
분에이 9년(1272년) | |||||||
분에이 11년(1264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고우다 | 가메야마 상황 | ||||||
코안 10년(1287년) | |||||||
후시미 | 고우다 상황 | ||||||
에이닌 6년(1298년) | |||||||
고후시미 | 후시미 상황 | ||||||
쇼안 3년(1301년) | |||||||
고니조 | 고후시미 상황 | ||||||
가겐 2년(1304년) | |||||||
가겐 3년(1305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7" | | ||||||
토쿠지 3년/엔케 원년(1308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4" | | ||||||
하나조노 | |||||||
쇼와 6년/분포 원년(1317년) | |||||||
분포 2년(1318년) | rowspan="6" style="background-color:#ddf" | | ||||||
고다이고 | 하나조노 상황 | ||||||
겐코 4년/쇼추 원년(1324년) | |||||||
겐코 4년/겐무 원년(1334년) | 고곤 상황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
겐무 2년(1335년) | |||||||
겐무 3년/엔겐 원년/겐무 3년(1336년)| | |||||||
겐겐 2년/겐무 4년(1337년) | |||||||
겐겐 3년/겐무 5년/랴쿠오 원년(1338년) | |||||||
겐겐 4년/랴쿠오 2년(1339년) | 고무라카미 | ||||||
쇼헤이 3년/조와 4년(1348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
고묘 상황 | |||||||
쇼헤이 6년/간오 2년(1351년) | 스고 상황 | ||||||
쇼헤이 19년/조지 3년(1364년) | |||||||
쇼헤이 23년/조지 7년/오안 원년(1368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
초케이 | |||||||
켄토쿠 2년/오안 4년(1371년) | 고고곤 상황 | ||||||
분추 3년/오안 7년(1374년) | |||||||
텐주 6년/코랴쿠 2년(1380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4" | | ||||||
텐주 7년/코랴쿠 원년/코랴쿠 3년/에이토쿠 원년(1381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코랴쿠 2년/에이토쿠 2년(1382년) | 고엔유 상황 | ||||||
코랴쿠 3년/에이토쿠 3년(1383년) | |||||||
고카메야마 | 초케이 상황 | ||||||
겐추 9년/메이토쿠 3년(1392년) | |||||||
고코마츠 | |||||||
메이토쿠 4년(1393년) | 고카메야마 상황 | ||||||
메이토쿠 5년/오에이 원년(1394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3" | | ||||||
오에이 5년(1398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7" | | ||||||
오에이 19년(1412년) | |||||||
쇼코 | 고코마츠 상황 | ||||||
오에이 32년(1425년) | |||||||
오에이 35년/쇼초 원년(1428년) | |||||||
고하나조노 | |||||||
에이쿄 5년(1433년) | |||||||
칸쇼 5년(1464년) | 고츠치미카도 | 고하나조노 상황 | |||||
분메이 3년(1471년) | |||||||
텐쇼 14년(1586년) | 고요제이 | 오기마치 상황 | |||||
텐쇼 20년/분로쿠 원년(1593년) | |||||||
게이초 16년(1611년) | 고미즈노오 | 고요제이 상황 | |||||
겐나 3년(1617년) | |||||||
간에이 6년(1629년) | 메이쇼 | 고미즈노오 상황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
간에이 20년(1643년) | |||||||
고코묘 | 메이쇼 상황 | ||||||
쇼오 3년(1654년) | |||||||
쇼오 4년/메이레키 원년(1655년) | 고사이 | ||||||
간분 3년(1663년) | |||||||
레이겐 | 고사이 상황 | ||||||
엠포 8년(1680년) | |||||||
조쿄 2년(1685년) | style="background-color:#ddf" rowspan="2" | | ||||||
조쿄 4년(1687년) | |||||||
히가시야마 | 레이겐 상황 | ||||||
겐로쿠 9년(1696년) | |||||||
호에이 6년(1709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나카미카도 | 히가시야마 상황 | ||||||
호에이 7년(1710년) | |||||||
교호 17년(1732년) | |||||||
교호 20년(1735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사쿠라마치 | 나카미카도 상황 | ||||||
교호 21년/겐분 원년(1736년) | |||||||
겐분 2년(1737년) | |||||||
엔쿄 4년(1747년) | 모모조노 | 사쿠라마치 상황 | |||||
엔쿄 5년/칸엔 원년(1748년) | |||||||
칸엔 3년(1750년) | |||||||
메이와 7년(1770년) | 고모모조노 | 고사쿠라마치 상황 | |||||
안에이 8년(1779년) | |||||||
안에이 9년(1780년) | 고카쿠 | ||||||
분카 10년(1813년) | |||||||
분카 14년(1817년) | style="background-color:#ddf" | | ||||||
닌코 | 고카쿠 상황 | ||||||
텐포 11년(1840년) | |||||||
레이와 원년(2019년) | 지금상 | 상황 아키히토 | |||||
레이와 6년(2024년) |
6. 막말의 어령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의 『구고구령취조장 데이터베이스』에는 세쓰 국 시마시타 군 중 시모나카조 촌 일부, 아유카와 촌 일부, 스이다 촌 일부, 우에노 촌의 전역을 합쳐 1,896석 8두 8승 9합이 "선동어령"으로 기재되어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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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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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s.googl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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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皇室典範10条(「天皇崩スルトキハ皇嗣即チ践祚シ祖宗ノ神器ヲ承ク」)に関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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