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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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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향가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 초기에 걸쳐 존재했던 한국 고유의 정형시이다. 향가는 4구체, 8구체, 10구체의 구조를 가지며, 한자를 빌려 표기하는 향찰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현재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 등 총 25수가 전해진다. 향가는 당시 신라를 '향'으로 지칭한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순수한 중국 문학과 구별되는 신라의 노래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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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향가
조선시대 양반들의 모습
종류한국 고대 시가
시대삼국 시대와 남북국 시대
특징향찰로 표기
불교적 내용과 민간 신앙 내용
창작 계층승려, 화랑
현재 전승25수 정도만 전함
형식 및 구조
기본 구조4구체 (4줄)
8구체 (8줄)
10구체 (10줄)
향가의 전승 및 기록
주요 문헌삼국유사
균여전
관련 용어
관련 용어사뇌가
도솔가
찬기파랑가
모죽지랑가
헌화가
기타
참고 자료한국문학통사
같이 보기한국의 시

2. 명칭

향가라는 명칭은 삼국시대에는 '우리나라 노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7] 당시 중국을 '(唐)'이라 한 데 대해 신라를 '향(鄕)'이라 일컬었으며, 중국의 사장(詞章)에 대해 신라의 노래를 향가라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3. 형태 및 표기

향가의 구조적 형태는 4구체, 8구체, 10구체로 나뉘며, 한자로 지은 노래도 있고, 이두로 지어진 노래도 있다.[9] 삼국시대 때는 4구체 향가가 많았으나, 남북국 시대 전기와 고려 초기로 가면서 8구체와 10구체 향가들이 다양하게 지어졌다. 향가는 모두 한자를 빌려 한국어를 표기한 것으로, 이두(吏讀)와는 달리 각 수의 가사 전체를 한자로 기록하였기에 순수하고 고유한 고대 한국어인 것이 주목할 만하다.

오구라 신페이의 연구에 따르면, 전해지는 향가는 민요에 사용되는 단일 4행시 형태, 중간적인 2개의 4행시 형태, 그리고 2개의 4행시와 결구(결론적인 2행시)로 이루어진 10행시 형태의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1] 10행시 형태는 향가의 가장 완성된 형태이다.[1]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1980년대 이후 한국 학계에서 문제 제기되었고, 김성규는 향가에는 단일 4행시 형태와 2개의 3행시 형태의 두 가지 형태만 존재한다고 제시한다.[1] 김성규는 10행시의 연속된 두 행을 시적 휴지가 있는 한 줄의 긴 행으로 해석하고, 10행 향가의 소위 "결구"는 각 연의 후렴으로 보아, 공유된 마지막 행을 가진 두 개의 3행시를 형성한다고 해석한다.[1] 또한 김성규는 겉으로 보기에 8행시 형태는 전승 과정에서 한 행이 손실된 결과라고 주장한다.[1]

시인의 누이의 장례식을 위해 지어진 10행시 작품인 《제망매가》를 통해 두 가지 가설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1]

10행 해석번역



6행 해석번역



현존하는 향가는 모두 향찰이라 불리는, 만엽가나풍의 복잡한 한자 표기로 기록되어 있다.

4. 구조

향가의 구조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1] 1920년대 언어학자 오구라 신페이의 연구 이후, 전해지는 향가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되어 왔다. 민요에 사용되는 단일 4행시 형태, 중간적인 2개의 4행시 형태, 그리고 2개의 4행시와 결구(결론적인 2행시)로 이루어진 10행시 형태가 있다. 10행시 형태는 향가의 가장 완성된 형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1980년대 이후 한국 학계에서 문제 제기되었고, 2016년에 김성규가 제안한 새로운 가설은 향가에는 단일 4행시 형태와 2개의 3행시 형태의 두 가지 형태만 존재했다고 제시한다. 김성규는 10행시의 연속된 두 행을 시적 휴지가 있는 한 줄의 긴 행으로 해석하고, 10행 향가의 소위 "결구"는 각 연의 후렴으로 보아, 공유된 마지막 행을 가진 두 개의 3행시를 형성한다고 해석한다. 또한 김성규는 겉으로 보기에 8행시 형태는 전승 과정에서 한 행이 손실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두 가지 가설은 시인의 누이의 장례식을 위해 지어진 10행시 작품인 《제망매가》를 예시로 아래에 설명한다.[1]

10행 해석번역



6행 해석번역


5. 향가의 풀이

향가의 해독은 일찍이 일본 학자들이 시도하였으며, 25수 전반에 걸친 주해는 오구라 신페이가 처음으로 이루었다.[10] 그 뒤로 양주동이 더 나은 해독을 하였다.[10] 해방 후에는 지헌영을 비롯한 이탁, 김준영, 이숭녕, 김동욱, 김선기, 서재극, 홍기문, 정렬모, 김완진 등이 계속 연구·발표하고 있다.[10]

소구라 신페이의 『고려가요 및 이독의 연구』(1924년)는 고려가요 25수의 본문을 확정하고 해독을 시행하였다.[10] 그 이후의 연구는 많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양주동의 『조선고가연구』(1942년), 김완진의 『고려가요해독법연구』(1981년) 등이 있다.[10]

6. 현전하는 향가

현재 전해지는 향가는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로 총 25수이다. 《균여전》에 수록된 향가는 고려균여대사의 작품으로, 불교 예찬 내용의 10구체 향가이다.

신라 진성여왕 때 위홍과 태구화상이 편찬한 향가 모음집인 《삼대목》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향가는 고려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11세기 『균여전』에 인용된 11수와 13세기 『삼국유사』에 인용된 14수를 합쳐 총 25수이다. 모두 향찰이라는 복잡한 한자 표기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25수의 향가 중 18수는 불교적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또 다른 주요 주제는 죽음이었으며, 승려, 무사, 가족 구성원에 대한 애가(哀歌)가 많다. 특히 668년 통일신라 이전의 신라 시대는 전쟁의 시대였고, 향가는 죽음에 대한 슬픔을 포착하는 동시에 불교는 죽은 자들이 어디로 가고 사후 세계는 어떠한지를 설명해 주었다.

향가는 4구, 또는 4구를 두 번 반복한 8구, 또는 8구 뒤에 후구 2구를 더한 10구로 구성된다.[9] 후구 앞에는 "아야·아야야·탄왈·낙구·후구" 등의 어구가 붙는다.

6. 1.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들은 일연이 불교 관련 설화를 수집하고 기록한 여러 편에 함께 전해진다.

삼국유사의 향가
제목지은이연대구절 수
서동요백제 무왕600년경4
혜성가융천사594년경10
풍요미상635년경4
원왕생가광덕 또는 그의 부인661년~681년경10
모죽지랑가득오곡692년~702년경8
헌화가늙은 목동702년~737년경4
원가신충737년경8
찬기파랑가충담사742년~765년경10
도솔가월명사760년경4
제망매가월명사762년~765년경10
도천수관음가희명762년~765년경10
안민가충담사765년경10
우적가영해785년~798년경10
처용가처용879년경8


6. 1. 1. 서동요

백제 무왕과 신라 진평왕 시기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이다. 삼국유사의 설화에는 서동(백제 무왕의 아명)이 신라 진평왕선화공주와 인연을 맺기 위해 일부러 퍼뜨린 노래라고 나와 있다.

6. 1. 2. 혜성가

신라 진평왕 때 융천사가 지은 10구체 향가로, 혜성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하자 이 노래를 지어 물리쳤다는 설화가 전한다.

6. 1. 3. 풍요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4구체 향가로, 작자는 미상이다. 양지가 영묘사 장육존상을 만들 때 부역 온 사람들이 불렀다는 민요이며, 일명 '양지사석가'(良志使錫歌)라고도 한다.

:來如來如來如 (오다 오다 오다)

:來如哀反多羅 (오다 셔럽다라)

:哀反多矣徒良 (셔렵다 의내여)

:功德修叱如良來如 (공덕 닷ᄀᆞ라 오다)

6. 1. 4. 원왕생가

문무왕 또는 효소왕 때 지어졌다고 추정되는 10구체 향가로, 광덕(廣德)의 처가 지었다고 한다. 광덕이 죽자 그의 친구 엄장(嚴莊)이 그 처에게 동침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노래 원문에 “願往生”이라는 말이 반복되어 불교에서는 “극락에 가고 싶다”라는 뜻으로 풀이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극락노래”라고 한다. “일찍이 노래가 있었다.”라는 기록만 있을 뿐, 명확한 제목은 전해지지 않는다.[2]

달에게 간청하는 이의 기도를 아미타불이 계신 서방정토, 즉 수하바티로 전달해 줄 것을 청하는 노래이다. '왕생(往生)을 기원하는 노래' (혹은 '열반(涅槃)을 기원하는 노래')라고도 불린다. 지은이에 대해서는 광덕(廣德, 광덕|廣德한국어)이라는 승려가 지었다는 설과 그의 부인이 지었다는 설이 있어 불분명하다.[2]

이두중세 한국어현대 한국어번역 (Mark Peterson, 2006)
願往生歌원왕생가왕생을 기원하는 노래Ode to Eternal Life
月下伊低赤달하 이뎨달이여 이제달이여, 이제
西方念丁去賜里遣셔바ᇰᄭᆞ자ᇰ 가샤리고서방(西方) 넘어 가시려는고오늘 밤 서방으로 가시는 길에,
無量壽佛前乃무랴ᇰ슈불 젼에무량수불전(無量壽佛前)에무량수불 앞에
惱叱古音多可支白遣賜立닏곰다가 ᄉᆞᆲ고샤셔일러서 사뢰옵소서전하고 간청하옵소서.
誓音深史隱尊衣希仰支다딤 기프샨 존어ᄒᆡ 울워러다짐 깊으신 아미타불을 우러러깊은 서원을 세우신 아미타불을 우러러
兩手集刀花乎白良두 손 모도호ᄉᆞᆯᄫᅡ두 손을 모두어두 손을 모아
願往生願往生원와ᇰᄉᆡᇰ 원와ᇰᄉᆡᇰ왕생(往生)을 원하며왕생을 원하며
慕人有如白遣賜立그릴 사ᄅᆞᆷ 잇다 ᄉᆞᆲ고샤셔그리워하는 사람 있다 사뢰소서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전하소서
阿耶 此身遣也置古아으 이 몸 기텨 두고아아 이 몸을 남겨 놓고아아, 이 몸을 남겨두고
四十八大願成遣賜去ᄉᆞ십팔대원 일고샬가사십 팔 대원(大願) 이루실까사십팔 대원이 이루어질까


6. 1. 5. 모죽지랑가

신라 효소왕 때 만들어진 8구체 향가로, 화랑가이다. 화랑 죽지랑의 낭도였던 득오곡(得烏谷, 또는 득오랑)이 그의 스승 죽지랑을 사모하고 찬양하여 지은 노래이다. 노래의 주인공은 화랑 죽지랑이므로 노래의 이름이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이며, 득오곡모랑가(得烏谷慕郞歌)라고도 부른다.

죽지랑은 김유신의 부원수로서 삼국 통일에 공이 컸다. 득오곡은 그의 낭도로서 풍류와 도술로 이름이 높았다. 노래는 이두문으로 되어 있다.

6. 1. 6. 헌화가

신라 성덕왕 때에 지어진 4구체 향가이다. 《삼국유사》에는 “소를 끌고 가던 늙은이가 수로부인에게 절벽의 철쭉꽃을 꺾어다 드릴 때에 부른 노래”라고 하여 “노인헌화가”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헌화가라고 부른다고 한다.

“수로(水路)부인”이 한국어로 지은 이름을 한자로 뜻을 옮겨 만든 것인지, 바다를 끼고 곧 물을 따라가는 부인이라는 뜻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6. 1. 7. 원가

신라 효성왕 때 신충(信忠)이 지은 8구체 향가로서, 연군가(戀君歌)이다.

효성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신충과 잣나무를 두고 훗날을 약속하였으나, 왕위에 오른 후 그 일을 잊자 이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이니 그 나무가 말랐다.

6. 1. 8. 도솔가

경덕왕 때(760년) 월명이 지은 4구체 향가이다.

두 개의 해가 나타났을 때 왕이 월명으로 하여금 산화공덕(散花功德)을 지어 재앙을 물리치게 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6. 1. 9. 안민가

삼국유사 권2 “경덕왕, 충담스님, 표훈대덕 편”에 실려 있다. 경덕왕충담에게 “나를 위하여 편안하게 다스리는 노래를 지으라.”라고 명령하여 지은 노래이다. 10구체 향가이다.

향찰 표기중세 국어현대어 풀이
君隱父也|군은 어비여중국어臣隱愛賜尸母史也|신은 ᄃᆞᅀᆞ샬 어ᅀᅵ여중국어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民ᄋᆞᆫ 얼ᄒᆞᆫ아ᄒᆡ고 ᄒᆞ샬디중국어
知民是愛尸知古如|民이 ᄃᆞᅀᆞᆯ 알고다중국어窟理叱大肹生|구믈ㅅ다히 살손 物生중국어以支所音物生此肹湌惡支治良羅|이흘 머기 다ᄉᆞ라중국어
此地肹捨遣只於冬是去於丁|이ᄯᆞᄒᆞᆯ ᄇᆞ리곡 어듸갈뎌 ᄒᆞᆯ디중국어爲尸知國惡支持以支知古如|나라악 디니디 알고다중국어後句君如臣多支民隱如|아으 君다이 臣다이 民다이 ᄒᆞᄂᆞᆯᄃᆞᆫ중국어
爲內尸等焉國惡太平恨音叱如|나라악 太平ᄒᆞ니잇다중국어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미요, 백성은 어린아이라고 하실 때 백성이 사랑을 알 것이로다. 구물거리며 살던 백성, 이를 먹어 다스려져, '이 땅을 버리고 어디를 가겠느냐' 할 때 나라가 유지될 줄 알 것이로다.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 때 나라가 태평할 것이니라.

6. 1. 10. 제망매가

제망매가(祭亡妹歌)는 신라 경덕왕월명이 지은 것으로, 《삼국유사》 권5 “월명사 도솔가조(月明師兜率歌條)”에 “월명이 죽은 누이를 위하여 부처에게 공양하는 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제사를 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11] 박제천의 〈월명〉(月明)은 〈제망매가〉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품으로, 나뭇잎을 통해 깨달은 인생의 본질을 노래하고 있다. 나무를 떠나야만 하는 수많은 나뭇잎들을 통해 죽음의 세계로 떠나야 하는 인간 존재를 형상화하고 있다.[11]

6. 1. 11. 찬기파랑가

신라 경덕왕충담사가 화랑 기파랑의 인품을 흠모하여 지은 10구체 향가이다. 제망매가와 함께 현전하는 향가 가운데 문학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1. 12. 도천수관음가

경덕왕 때 희명(希明)이 지은 향가로, 천수관음가(千手觀音歌),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맹아득안가(盲兒得眼歌) 등으로도 불린다. 삼국유사 권3 분황사천수대비맹아득안조(芬皇寺千手大悲盲兒得眼條)에 수록되어 있다.

6. 1. 13. 우적가

삼국유사 권5 〈도적을 만나다〉 편에 이 노래를 짓게 된 이유와 노래의 내용을 칭송하여 지은 한시 한 편이 실려 있다. 8세기 중엽에 지어진 노래이다.

6. 1. 14. 처용가

삼국유사》 기이편 “처용랑과 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수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헌강왕처용이란 인물이 지었다고 하며, 역신이 그의 아내를 흠모하여 동침하고 같이 잠자리에 있는 것을 돌아와서 보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그러자 역신은 처용이 노하지 않은 것에 감동하여 그 앞에 나타나 꿇어앉았다고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역신을 쫓았다고 한다.

고려 가요 중에도 처용가가 악학궤범에도 전해져 후에 향가 해독에 도움을 주었다.[1]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兮隱吾下於叱古 二兮隱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於隱 奪叱良乙何如爲理古|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한국어

6. 2. 균여전에 실린 향가

고려균여가 지은 11수의 10구체 향가는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을 노래한 불교 찬가로, 균여전에 실려 전해진다.

6. 2. 1. 보현십원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는 고려균여(923~973)가 지은 11수의 10구체 향가다. 균여가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화엄경보현보살 열 가지 행원에 낱낱이 향가 한 수씩을 짓고, 11장은 그 결론으로 삼은 사뇌가이다. 고려 광종 연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은 해인사 장경판으로 전하는 《균여전》에 향찰로 기록되어 있다.

  • 〈예경제불가(禮敬諸佛歌)〉
  • 〈칭찬여래가(稱讚如來歌)〉
  • 〈광수공양가(廣修供養歌)〉
  • 〈참회업장가(懺悔業障歌)〉
  • 〈수희공덕가(隨喜功德歌)〉
  • 〈청전법륜가(請轉法輪歌)〉
  • 〈청불왕생가(請佛王生歌)〉
  • 〈상수불학가(常隨佛學歌)〉
  • 〈항순중생가(恒順衆生歌)〉
  • 〈보현회향가(普賢廻向歌)〉
  • 〈총결무진가(總結无盡歌)〉

6. 3. 그 밖의 향가

고려 예종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도이장가(悼二將歌)를 향가로 보기도 한다.[12] 현존하는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미실사다함이 출정할 때 지었다는 풍랑가가 기록되어 있으나, 화랑세기 필사본은 오늘날 사학계에서 위작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여 정확히 알 수 없다.[8]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공사부지에서 발견된 목간에 기록된 내용을 향가로 보는 논문이 출간된 바 있다. 이 향가로 추정되는 글에는 '만신가'(万身歌)라는 이름이 붙었다.[12]

참조

[1] 서적 生死路는 / 이에 있으매 두려워서 / '나는 간다' 말도 / 못다(또는 못) 이르고 간 것이오? / 날가을 이른 바람에 / 여기저기에 떠서 질 잎같이 / 한 가지에 나고도 / 가는 곳 모르는구나! / 아아! 彌陀刹에서 만날 나를 / (그대는) 길 닦아 기다릴 것이오. 2006
[2] 웹사이트 Several examples of ''Hwangga'' http://www.lifewater[...] 2011-10-02
[3] 웹사이트 희명 http://encykorea.aks[...]
[4] 서적 『均如伝』に引く普賢十種歌の序
[5] 서적 『三国遺事』巻一、弩礼王
[6] 서적 『三国史記』雑志第一・楽
[7] 서적 2003
[8] 서적 2003
[9] 서적 1931
[10] 서적 1931
[11] 서적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 한국교육방송공사 2009-01-05
[12] 뉴스 경주 목간에서 신라향가 1수 발견 https://new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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