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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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가타초는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 위치한 지역으로, 에도 시대부터 다이묘들의 저택이 있었으며, 1936년 국회의사당이 건설되면서 일본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 일본의 국회의사당, 총리대신 관저, 각 정당 본부 등 주요 정부 기관과 시설들이 밀집해 있으며, '나가타초'는 일본 정계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사용된다. 지하철 및 도로 교통이 발달하여 접근성이 뛰어나며, 다양한 문화 시설과 교육 시설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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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타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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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나가타초 |
로마자 표기 | Nagatachō |
일본어 표기 | 永田町 |
지역 구분 | 중심 업무 지구 |
국가 | 일본 |
도도부현 | 도쿄도 |
특별구 | 지요다구 |
지역 | 고지마치 지역 |
우편 번호 | 100-0014 |
면적 | (정보 없음) |
고도 | (정보 없음) |
인구 (2024년) | 539명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전화 지역 코드 | 03 |
차량 등록 번호 | 시나가와 |
주요 시설 | |
주요 시설 | 국회의사당 자유민주당 본부 산노 파크 타워 일본의 수직 기준점 총리 관저 |
관련 정보 | |
주소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나가타초 |
시간대 | 일본 표준시 (UTC+9) |
2. 역사
나가타초의 지명은 에도 시대 초기에 유래했으며, 당시 에도성과 가까워 크고 작은 다이묘들의 저택이 들어선 지역이었다.[8][9][19] 메이지 시대에는 육군의 주요 시설들이 자리 잡으면서 군사적 중심지의 성격을 띠기도 했다.
1936년 국회의사당이 완공되면서 나가타초는 명실상부한 일본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나가타초의 거물'[20], '나가타초에 격진'[21]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나가타초'라는 지명 자체가 일본 정계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2. 1. 초기 역사
나가타초라는 지명은 에도 시대 초기에 유래했다. 당시 이 지역 히에 신사 문전에 하타모토 신분인 에가다 덴쥬로, 곤스케, 이치쥬로 등 나가타(永田|나가타일본어) 성을 사용하는 이들의 저택이 모여 있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8][9] 또한, 이 일대가 '나가타 바바'(永田馬場|나가타 바바일본어)라고 불렸다는 기록도 있으며, 「관영 에도도」에는 '나카타바바(에가다바바)'라고 기재되어 있다.[8][9]에도성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곳에는 점차 크고 작은 다이묘들의 저택(에도번저)이 들어서게 되었다. 에도 시대 말기에는 안세이 대옥을 주도하다 사쿠라다 문 밖에서 암살된 다이로 이이 나오스케의 저택을 비롯하여 많은 다이묘 저택이 위치했다. 2003년 구 총리 관저 개축 공사 중에는 무라카미번 나이토(内藤|나이토일본어) 가문의 저택 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19]
2. 2. 메이지 시대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나가타초는 군사 중심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872년(메이지 5년) 이후, 현재의 헌정기념관에서 일본 수준 원점 부근에 육군성, 참모본부, 교육총감부, 육군항공총감부 등 육군의 중추 기관들이 차례로 들어섰다.[19] 당시 '나가타초'라고 하면 육군참모본부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었으며, 특히 미야케자카는 주로 참모본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군사 시설들은 1941년(쇼와 16년) 12월 이후 이치가야다이로 이전했다.교육 기관들도 이 시기에 자리를 잡았다. 1888년(메이지 21년)에는 도쿄여학관(현 도쿄여학관중학교·고등학교)이, 이듬해인 1889년(메이지 22년)에는 화족여학교(현 학습원여자중·고등과)가 현재의 중의원·참의원 의장 공관 자리에 각각 이전하여 개교했다. 이후 남녀공학인 화족여학교 부속 유치원(현 학습원유치원)도 설치되었다. 1908년(메이지 41년)에는 나가타초 보통소학교(현 고지마치 소학교)가 문을 열었다.
1923년(다이쇼 12년) 발생한 간토 대지진은 나가타초의 모습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지진 이후 현재의 카스미가세키 지역에 대한 구획 재편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육군성 부지였던 곳에는 '담배왕'으로 불리던 무라이 키치베에의 저택 터에 도쿄부립 제일 중학교(현 히비야 고등학교)가 이전해왔다.
2. 3. 현대
1936년 국회의사당이 완성되면서 나가타초는 일본 정치의 중심 지역이 되었다. 이후 '나가타초의 거물'(永田町の大物일본어)[20], '나가타초에 격진'(永田町に激震일본어)[21] 같은 표현처럼, '나가타초'는 일본 정계의 대명사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발생한 2·26사건 당시에는 반란군이 나가타초·가스미가세키·산노우시타(日枝神社~아카사카 주변) 일대를 점거하기도 했다.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위해 도로(국회대로)가 확장되기 전까지는 국회의사당 옆에 민가 몇 채가 존재했다. 1967년 4월 1일에는 주거 표시가 실시되었다.[10]
2. 4. 지명 변천
시행 후 | 시행 일자 | 시행 전 (특기가 없는 한 각 정 모두 그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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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타초 1정목 | 1967년 4월 1일 | 나가타초 1정목(대부분), 사넨초, 카스미가세키 1정목, 카스미가세키 2정목, 카스미가세키 3정목 |
나가타초 2정목 | 나가타초 1정목, 나가타초 2정목(대부분) | |
카스미가세키 3정목 | 카스미가세키 3정목, 사넨초, 나가타초 2정목 |
2017년(헤이세이 29년) 12월 1일 기준 세대 수와 인구는 다음과 같다. (1丁目의 세대 수와 인구가 적어 2丁目와 합산한 수치이다.)
치요다구 교육위원회는 공립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운영한다. 치요다구립 고지마치 초등학교는 나가타초 1초메와 2초메의 관할 초등학교이다.[2] 이 학교는 기존의 고지마치 초등학교와 나가타초 초등학교가 합병되어 설립되었다. 2000년에 옛 나가타초 초등학교 시설에서 수업을 시작했으며, 현재 건물은 2003년 4월 1일에 개교했다.[3]
나가타초의 지명은 에도 시대 초기에 나가타(永田일본어) 성을 가진 이들의 저택이 많아 '나가타 바바'(永田馬場일본어)라 불린 데서 유래했다. 에도 성과 가까워 다이묘 저택들이 들어섰으며, 에도 말기에는 이이 나오스케(井伊 直弼일본어)의 저택도 이곳에 있었다.[19] 메이지 시대에는 구 육군성 등이 들어서며 한때 육군참모본부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기도 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구획 재편을 거쳐, 1936년 국회의사당이 완공되면서 일본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19] 이후 '나가타초'는 일본 정계를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20][21]
3. 인구 및 세대수
4. 교육
치요다구는 공립학교 선택제를 도입하고 있어 중학교는 특정 통학 구역이 없으며, 구내 전역에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4][12]
나가타초의 구립 초등학교 및 중학교 학구 정보는 다음과 같다.[11]쵸메 번지 초등학교 중학교 나가타초 1초메 전역 치요다구립 고지마치 초등학교 치요다구립 고지마치 중학교
치요다구립 칸다이치바시 중학교
(학교 선택제에 따라 선택 가능)나가타초 2초메 전역
5. 주요 시설 및 건축물
이 지역에는 국회의사당, 내각총리대신 관저, 내각부 청사 등 일본의 핵심적인 정치·행정 기관들과 자유민주당, 입헌민주당 등 주요 정당의 본부가 밀집해 있다.[22] 또한 히에 신사, 히비야 고등학교, 헌정기념관, 일본 수준원점 표고 등 역사·문화·교육 시설과 기업 본사, 외교 공관 등 다양한 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다.[19]
5. 1. 주요 정부 기관
1936년 국회의사당 완공 이후 나가타초는 일본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20][21] 이곳에는 일본의 주요 정부 기관 및 관련 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주요 정당 본부 역시 나가타초에 위치한다.
이 외에도 나가타초에는 히에 신사(주변은 벚꽃 명소로 알려져 있다), 일본 수준원점 표고(1891년 5월 당시 참모본부 육지측량부 청사 내에 설치, 중요문화재) 등 역사·문화적 장소와 다양한 기관 및 시설이 있다.[19][22]
5. 2. 주요 문화 시설
나가타초에는 일본의 정치 중심지로서의 기능 외에도 여러 문화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5. 3. 주요 기업 및 기타 시설
나가타초에는 일본의 주요 정치, 행정, 문화 시설 및 기업 본사 등이 밀집해 있다.
주요 시설 목록:
6. 교통
난보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