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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 가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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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쓰이 가즈오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유격수와 2루수를 주로 맡았으며, 5툴 플레이어로 평가받았다. 오사카부 출신으로 PL학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1997년 도루왕을 차지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2003년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여 뉴욕 메츠, 콜로라도 로키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에서 활동했으며, 2011년 일본으로 복귀하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뛰었다. 2018년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으며, 2019년부터 세이부 2군 감독, 2023년에는 1군 감독을 역임했다. 2002년에는 트리플 쓰리를 달성했으며, 통산 2000안타, 200홈런, 200도루를 기록했다. 또한,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와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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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 가즈오 - [인물]에 관한 문서
선수 정보
2018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소속 마쓰이 가즈오
2018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의 마쓰이 가즈오
이름마쓰이 가즈오 (松井稼頭央)
본명마쓰이 가즈오 (松井和夫)
출생일1975년 10월 23일
출생지일본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
신장177cm
체중85kg
포지션내야수 / 외야수 / 코치 / 감독
투타스위치 히터 / 우투
프로 입단 정보
드래프트1993년 드래프트 3순위
NPB 데뷔1995년 4월 5일, 세이부 라이온스
MLB 데뷔2004년 4월 6일, 뉴욕 메츠
NPB 마지막 경기2018년 10월 6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MLB 마지막 경기2010년 5월 19일, 휴스턴 애스트로스
선수 경력
NPB세이부 라이온스 (1994–200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1–201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18)
MLB뉴욕 메츠 (2004–2006)
콜로라도 로키스 (2006–2007)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8–2010)
감독 및 코치 경력
NPB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18–2024)
국가대표 경력
국가일본
올림픽2003년 (아시아 예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년
수상 내역
NPB4× 미쓰이 골든 글러브 상 (1997, 1998, 2002, 2003)
7× 베스트 나인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퍼시픽 리그 도루왕 (1997, 1998, 1999)
일본 시리즈 우승 (2013)
MLBMLB 데뷔 첫 타석 홈런
MLB 데뷔 후 첫 3시즌 연속 첫 타석 홈런
통산 성적 (NPB)
타율0.291
안타2,090
홈런201
타점837
도루363
통산 성적 (MLB)
타율0.267
안타615
홈런32
타점211
도루102

2. 초기 생애

마쓰이 가즈오는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야구 명문으로 알려진 PL학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3]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와카에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야구를 시작했다.[19] 와카에 자이언츠에는 후에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함께 뛰게 되는 이누부시 토시아키와 후지이 아키히토가 있었다.[20][21]

PL 학원 시절, 마쓰이는 1학년 때 벤치에 들어갔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1학년 가을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25] 팀은 봄의 센바츠에 진출했지만, 마쓰이는 준준결승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2실점을 기록하며 3회 도중 강판되었다.[26] 이후 2학년 여름과 3학년 봄에는 고시엔에 출전하지 못했고, 3학년 여름 대회 직전에는 허리 부상을 입기도 했다.[27][28] 오사카부 대회에서는 1회전과 2회전에서 모두 9회까지 던졌고, 1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결승전에서 킨다이 부속 고교의 카네시로 타츠히코에게 패하며 고시엔 진출에 실패했다.[29]

드래프트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서 야수로 지명하겠다는 제안이 있었으나,[31] 세이부 라이온즈가 1993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3순위로 그를 지명하여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450만 엔(추정)에 입단, 등번호 '''32'''번을 받으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32]

2. 1. 유년 시절

유치원 시절부터 야구에 매달리는 생활을 보냈으나, 규정 때문에 바로 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근처 상급생의 권유로 와카에 자이언츠에 입단했다[19]. 당시 팀에는 후에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동료가 되는 이누부시 토시아키[20]와 1년 후배이자 배터리를 이룬 후지이 아키히토가 있었다[21]. 이누부시가 졸업한 후에는 투수로 출전했지만, 팀이 속한 지역에 강팀이 많아[22] 초등학생 시절에는 전국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23]. 와카에 중학교 시절에도 결승전에서 패배하며 전국 대회 진출에 실패했다[24]. 초등학생 때부터 전국대회에 대한 갈망이 컸기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반드시 고시엔에 가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PL학원 시절, 1학년 투수 중 유일하게 봄 대회 엔트리에 포함되었다(등번호 11)[25]. 1학년 가을 대회에서는 팔꿈치 부상으로 던질 수 없었지만, 팀은 승리하여 봄 센바츠에 출전하여(등번호 1) 준준결승에 선발 등판했다. 의사로부터 30~50구가 한계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진통제를 맞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공에 힘이 실리지 않았고[26], 3회 도중 2실점하며 강판되었다. 그 후 팀은 2학년 여름과 3학년 봄 모두 고시엔 진출에 실패했다. 마쓰이 본인도 등번호 10번을 달고 벤치에 앉았지만 부상 때문에 거의 던지지 못했다[27]. 어깨와 팔꿈치 부상이 회복될 무렵, 3학년 여름 대회 직전 강화 훈련에서 허리를 다쳤다. 필사적으로 치료에 매달린 결과,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허리에 불편함이 남아있는 상태였다[28]. 오사카부 대회 1회전과 2회전에서 모두 9회까지 투구했으며, 16개의 삼진을 잡아낸 경기도 있었다. 결승전에서는 킨다이 부속 고교의 카네시로 타츠히코와 맞붙었다. PL학원은 먼저 3점을 냈고, 마쓰이도 4회까지 1안타만 허용했지만, 5회에 연속 안타를 맞고 2점을 내주었고, 7회에는 카네시로에게 2루타를 맞아 역전(3-5)을 허용했다. 8회에는 스퀴즈로 1점을 더 내주며 3-6으로 패배했다[29]. 경기 후, 벤치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30].

드래프트 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드래건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부터 영입 제안이 있었으나, 요미우리와 다이에에서는 투수가 아닌 야수로 지명할 계획이었다[31]. 1993년 드래프트에서 세이부 라이온즈가 3순위로 지명하여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450만 엔(추정)에 입단했다[32]. 세이부에서는 야수로 뛰게 되었으며, 등번호는 "'''32'''"번을 받았다.

2. 2. PL 학원 시절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에서 태어난 마쓰이 가즈오는 PL학원 고등학교 시절 팀의 투수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다. PL 학원은 야구 프로그램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3]

1992년, 제64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봄의 센바츠)에 출전했다. 1학년 가을 대회에서 팔꿈치를 다쳐 마쓰이 본인은 던질 수 없었지만, 팀은 승리하여 봄의 센바츠에 출전할 수 있었다. 준준결승에서 선발로 지명되었지만, 의사로부터 30구에서 50구가 한계라는 말을 듣고 진통 주사를 맞고 마운드에 올라섰다. 경기가 시작되자 공이 제대로 뻗지 못했고, 3회 도중 2실점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26] 그 후 팀은 2학년 여름, 3학년 봄 모두 고시엔 출전에 실패했다. 본인도 등번호 10으로 벤치에 들어갔지만 부상 때문에 거의 던지지 못했다.[27] 어깨와 팔꿈치가 겨우 나았지만, 3학년 여름 대회 직전 강화 합숙에서 허리를 삐끗했다. 죽을 각오로 치료에 전념했고, 대회에 들어가서도 허리에 위화감이 있었지만, 경기 당일 어떻게든 던질 수 있는 상태로 회복했다.[28]

마쓰이는 오사카부 대회 1회전, 2회전 모두 9회까지 던졌고, 16탈삼진을 기록한 경기도 있었다. 결승전에서는 킨다이 부속 고교의 카네시로 타츠히코와의 투수전이 되었다. PL은 3점을 먼저 얻었지만, 마쓰이는 5회에 연타로 2점을 내주고, 7회에 카네시로의 2루타로 역전을 허용(3-5)했다. 8회에도 스퀴즈로 1점을 추가하여 3-6으로 패배했다.[29] 경기 후에는 벤치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있었다.[30]

유치원 시절부터 야구에 매달리는 매일을 보냈지만, 그 전까지는 규정이 있어 팀에 들어가지 못했으나, 초등학교 3학년 때 근처의 상급생의 권유로 와카에 자이언츠에 입단[19]했다. 당시 에이스에는 후에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팀 동료가 되는 이누부시 토시아키[20], 1학년 아래에는 배터리를 이루었던 후지이 아키히토가 있었다[21]。이누부시가 졸업하자 투수로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지만, 팀이 소속된 지역은 강호들이 즐비하여 초등학생 시절에는 전국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고[23], 와카에 중학교 시절에도 결승전에서 패배하여 전국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24]。초등학생 시절부터 계속 억울한 마음을 품어왔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반드시 고시엔에 가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고 한다.

드래프트 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드래건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부터 이야기가 있었지만, 요미우리와 다이에에서는 투수가 아닌 야수로 지명하겠다는 이야기였다.[31] 결국 1993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세이부 라이온즈가 3순위 지명으로 교섭권을 획득,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450만 엔(추정)으로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32] 세이부에서는 야수로 지명되었다. 등번호는 '''32'''번을 받았다.

3. 프로 선수 경력

## 프로 선수 경력

마쓰이 가즈오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1994년 ~ 2003년), 뉴욕 메츠(2004년 ~ 2006년), 콜로라도 로키스(2006년 ~ 200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2008년 ~ 2010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011년 ~ 2017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2018년)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2013년에는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 NPB 경력

1995년 4월 5일,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와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8회말에 타나베 토쿠오를 대신해 유격수로 출전했다. 4월 9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는 첫 타석에서 안타와 타점을 기록했다. 4월 23일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 첫 선발 출장하여 9번 유격수로 나섰다. 4월 26일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첫 삼진을 기록했고, 5월 7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첫 도루에 성공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활약하며, 1996년부터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997년부터 2003년까지는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로 성장했다. 뛰어난 수비 능력과 함께 공격에서도 재능을 발휘하여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1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복귀하여 일본 무대에 복귀했다. 복귀 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으며, 팀의 중심 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018년에는 다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하며 친정팀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 MLB 경력 (2004-2010)

2003년 12월 10일, 뉴욕 메츠와 3년 2010만 달러에 계약하며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다. 하지만 메츠 시절, 마쓰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6년 6월 9일, 엘리 마레로와의 트레이드로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했다. 로키스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기여했다. 2007년 시즌 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3년 계약을 맺었지만, 2010년 5월 19일 방출되었다.

마쓰이는 메이저 리그에서 7시즌 동안 뛰면서 통산 타율 0.267, 32홈런, 211타점, 102도루를 기록했다.

뉴욕 메츠에서 뛸 당시, 2004년, 2005년, 2006년 시즌 각각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Elias Sports Bureau에 따르면, 그는 메이저 리그에서 처음 3시즌 동안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유일한 선수이다. 3시즌 연속으로 첫 타수에서 홈런을 친 유일한 다른 선수는 켄 그리피 주니어였다.[2]

콜로라도 로키스 이적 후, 2007년 시즌 동안 마쓰이의 성적은 향상되어 0.288을 기록했다. 2007년에는 득점(84), 3루타(6), 도루(32), 희생타(8)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또한 마쓰이는 출루 시 득점 확률(47%)에서 메이저리그 1위를 기록했다.[4]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는 2009년 5.33의 수비 범위로 메이저 리그 선발 2루수 중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6]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복귀 (2011-2017)

2010년 11월 2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총액 3억엔의 2년 계약을 발표하며 마쓰이 가즈오의 8년 만의 일본 야구계 복귀를 알렸다.[421] 2012년에는 라쿠텐의 주장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2017년 4월 2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가지야 렌으로부터 홈런을 쳐 NPB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다.[215]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복귀 (2018)

2017년 11월 17일, 마쓰이는 일본 프로 야구(NPB)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계약하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친정팀에서 보내게 되었다.[10] 2018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11]

### 주요 기록

마쓰이는 NPB와 MLB에서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 첫 출장: 1995년 4월 5일, 대 킨테츠 버팔로즈 2차전(후지이데라 구장)
  • 첫 타석·첫 안타·첫 타점: 1995년 4월 9일, 대 닛폰햄 파이터즈 3차전(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1000안타: 2001년 7월 8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 100홈런: 2002년 7월 21일, 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 1000경기 출장: 2002년 9월 15일, 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 300도루: 2003년 8월 3일, 대 닛폰햄 파이터즈
  • 150홈런: 2003년 10월 4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 1500안타: 2011년 7월 26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406]
  • 300 2루타: 2011년 10월 1일, 대 오릭스 버팔로즈
  • 1500경기 출장: 2013년 8월 30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350 2루타: 2013년 9월 18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1000삼진: 2014년 4월 26일, 대 오릭스 버팔로즈
  • 3000루타: 2015년 4월 11일, 대 오릭스 버팔로즈
  • 350도루: 2015년 5월 27일, 대 한신 타이거스
  • 1000득점: 2015년 5월 28일, 대 한신 타이거스
  • 2000안타: 2015년 7월 28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407]
  • 400 2루타: 2015년 8월 14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200홈런: 2017년 4월 23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408]


### 기타 기록

  • 트리플 쓰리: 2002년
  • 사이클링 안타: 2000년 6월 7일, 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 2000안타, 200홈런 달성
  • 2000안타, 200홈런, 200도루 달성[409]


연도구단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루실희타희플사구고사사구삼진병살타타율출루율장타율OPS
199569|219|204|25|45|9|1|2|62|15|21|1|7|1|7|0|0|26|4|.221|.245|.304|.549
세이부|130|518|473|51|134|22|5|1|169|29|50|9|26|2|14|0|3|93|2|.283|.307|.357|.664
세이부|135|645|576|91|178|23|13|7|248|63|62|15|18|2|44|5|5|89|4|.309|.362|.431|.793
세이부|135|641|575|92|179|38|5|9|254|58|43|14|6|4|55|9|1|89|10|.311|.370|.442|.812
세이부|135|609|539|87|178|29|4|15|260|67|32|7|8|6|56|7|0|75|7|.330|.389|.482|.872
세이부|135|611|550|99|177|40|11|23|308|90|26|3|6|7|46|5|2|60|8|.322|.372|.560|.932
세이부|140|613|552|94|170|28|2|24|274|76|26|0|4|5|46|2|6|83|13|.308|.365|.496|.861
세이부|140|651|582|119|193|46|6|36|359|87|33|11|9|3|53|6|4|112|3|.332|.389|.617|1.006
세이부|140|655|587|104|179|36|4|33|322|84|13|10|3|6|55|6|4|124|4|.305|.365|.549|.914
NYM|114|509|460|65|125|32|2|7|182|44|14|3|5|2|40|4|2|97|3|.272|.331|.396|.727
NYM|87|295|267|31|68|9|4|3|94|24|6|1|5|4|14|1|5|43|2|.255|.300|.352|.652
NYM|38|139|130|10|26|6|0|1|35|7|2|0|3|0|6|1|0|19|1|.200|.235|.269|.505
COL|32|126|113|22|39|6|3|2|57|19|8|1|1|2|10|0|0|27|0|.345|.392|.504|.896
COL|104|453|410|84|118|24|6|4|166|37|32|4|8|1|34|1|0|69|1|.288|.342|.405|.746
HOU|96|422|375|58|110|26|3|6|160|33|20|5|7|3|37|0|0|53|3|.293|.354|.427|.781
HOU|132|533|476|56|119|20|2|9|170|46|19|3|16|4|34|2|3|85|4|.250|.302|.357|.659
HOU|27|78|71|4|10|1|0|0|11|1|1|1|2|0|4|0|1|10|0|.141|.197|.155|.352
라쿠텐|139|572|538|51|140|34|2|9|205|48|15|3|4|3|26|0|1|94|8|.260|.294|.381|.675
라쿠텐|106|433|402|55|107|22|4|9|164|43|14|3|3|1|26|3|1|55|6|.266|.312|.408|.720
라쿠텐|125|497|448|55|111|26|2|11|174|58|1|1|2|4|40|2|3|85|4|.248|.311|.388|.700
라쿠텐|128|488|444|57|129|32|3|8|191|46|9|0|2|5|36|0|1|78|9|.291|.342|.430|.772
라쿠텐|126|501|445|52|114|17|1|10|163|48|14|2|7|3|43|3|3|82|7|.256|.324|.366|.690
라쿠텐|56|179|160|19|34|6|1|2|48|13|3|0|0|1|17|1|1|42|5|.213|.291|.300|.591
라쿠텐|44|83|76|6|16|2|1|2|26|10|0|1|0|0|6|0|1|23|1|.211|.277|.342|.619
세이부|30|41|39|8|6|1|0|0|7|2|1|0|0|0|2|0|0|10|1|.154|.195|.179|.375
NPB: 17년|1913|7956|7190|1065|2090|411|65|201|3234|837|363|80|105|53|572|49|36|1220|96|.291|.344|.450|.793
MLB: 7년|630|2555|2302|330|615|124|20|32|875|211|102|18|47|16|179|9|11|403|14|.267|.321|.380|.701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 통산 기록

마쓰이는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일본과 미국 프로 야구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 통산 출장 경기 수: 2619
  • 통산 타석 수: 10551
  • 통산 타수: 9492
  • 통산 득점 수: 1395
  • 통산 안타: 2705
  • 통산 2루타 수: 535
  • 통산 3루타 수: 85
  • 통산 장타 수: 853
  • 통산 루타: 4109
  • 통산 도루 수: 465


마쓰이 가즈오는 일본 야구계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은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팬들에게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3. 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994-2003)

1994년, 프로 입단 첫 해에는 주로 2군에서 활동했다. 이듬해인 1995년 4월 5일, 1군 무대에 데뷔했고, 프로 3년차인 1996년에는 유격수로 선발 출장하며 리그 2위인 50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이시게 히로미치의 등번호 '''7'''번을 물려받았다.[415]

1997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대 타율과 6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 팀의 퍼시픽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같은 해 올스타전에서는 1경기 4개의 도루를 기록하는 신기록을 세우며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415] 이후 3년 연속 퍼시픽 리그 도루왕을 차지했고,[416] 1998년에는 시즌 MVP로 선정되며 일본 프로 야구를 대표하는 간판 유격수로 자리매김했다.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수비 능력 또한 높이 평가받았다. 특히 강한 어깨 덕분에 2루수가 맡는 우익수 송구를 대신 처리하기도 했으며, 3루수와 유격수 사이의 깊은 땅볼을 노스텝으로 1루에 송구해 아웃시키는 플레이도 자주 보여줬다. 미쓰이 골든 글러브상을 4차례 수상했지만, 오이시 다이지로 등 일부 야구 평론가와 팬들 사이에서는 “고사카 마코토에 비해 실책이 많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마쓰이는 시즌 전 경기에 거의 출전했기 때문에 출장 경기 수가 적었던 고사카가 수상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8년 동안 통산 1143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웠으며,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 연속 3할 대 타율과 시즌 170개 이상의 안타를 기록했다. 2001년에는 개인 통산 1000안타를 역대 4위에 해당하는 빠른 기록으로 달성했다. 2002년에는 역대 8번째이자 스위치 히터로는 사상 최초로 트리플 쓰리를 기록했고, 20세기 센추리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되는 등 빠른 발, 정확한 타격, 장타력, 강한 어깨를 가진 수비력을 겸비한 5툴 플레이어로 평가받았다.

마쓰이는 세이부 소속으로 4차례(1994년, 1997년, 1998년, 2002년) 리그 우승을 경험했지만, 일본 시리즈에서는 모두 패하며 우승 경험은 없었다.

2003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11월 17일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12월 8일 뉴욕 메츠와 3년 간 2010만 달러 + 성과급 지급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12월 10일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등번호 7번을 희망했지만 당시 팀의 기대주였던 호세 레예스가 이미 사용하고 있어 무산되었다. 대신 구단은 비어있는 5번과 신조 쓰요시가 사용했던 25번을 제시했고, 마쓰이는 "더하면 7이 된다"는 이유로 25번을 선택했다. 계약에는 마쓰이의 트레이드 거부권이 포함되었다.[417]

한편, 마쓰이에 앞서 양준혁2001년뉴욕 메츠에 입단할 뻔했으나,[418] 삼성과의 4년 계약으로 무산되었다. 양준혁해태 시절이던 1999년 시애틀 이적을 추진했지만 당시 FA 제도가 시행되기 직전이라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해태의 반대로 무산되었다.[419]

=== 데뷔 초 ===

'''1994년''' 고등학교 시절 PL 학원 감독 나카무라 준지는 투수는 9번째 야수라는 가르침을 주었고, 마쓰이는 당시 수비가 특기라고 생각했다. 필딩도 좋다는 평을 듣고 번트가 되면 반드시 주자를 잡아내겠다고 생각했지만, 야수로 프로에 입단한 직후 자신감을 잃었다고 한다. 이스턴 리그 경기에서는 악송구를 여러 번 했고, 24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주루도 초보 수준이어서 슬라이딩이나 헤드 슬라이딩 기술은 전무했고, 어떤 타이밍에 머리부터 들어가야 할지도 몰라 발이 베이스에 닿지 않아 아웃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같은 해 이스턴 리그에서는 타율 0.260, 4홈런, 11도루를 기록했다. 스위치 히터로 전향한 계기는 당시 타격 코치를 맡았던 타니자와 켄이치가 그 해 캠프에서 마쓰이의 타격을 봤는데, 몸이 투수 방향으로 돌진하는 스윙이었기 때문에 타니자와가 문득 "왼손으로 쳐본 적이 있느냐"라고 물은 것이었다. 오른손 타석에서 돌진한다는 것은 오른반신의 힘이 왼반신에 비해 너무 강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왼손 타석에서는 당기는 쪽 팔, 즉 오른팔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마쓰이의 노력으로 좌타자 타법을 순식간에 흡수해 갔다. 이 해 1군 출장은 없었다. 또한 같은 해 개막 전에 등록명을 본명 "마쓰이 가즈오"에서 "마쓰이 가즈오"로 변경했다.

'''1995년''' 마우이 캠프 때, 같은 유격수 나라하라 히로시의 수비가 매우 훌륭했고, 나라하라의 움직임을 뒤에서 꼼꼼히 보면서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도록 흉내를 냈다고 한다. 4월 5일 긴테쓰 버펄로스전에서 1군 첫 출장했고, 이틀 뒤 니혼햄 파이터스전에서 대타로 첫 타석에 들어서 첫 안타와 첫 타점을 기록했다. 그 후 경기 출전 기회가 적어 2군으로 떨어졌지만, 10일 정도 경기에 출전하면 바로 1군으로 올려준다는 약속이 있었다. 이후 1군에 올라가고 나서는 서부를 퇴단할 때까지 한 번도 2군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 해에는 69경기에 출전해 21도루를 기록했다. 도루 실패는 단 1번이었고, 도루 성공률은 0.955를 기록했다. 오프에는 윈터 리그에 참가했다.

'''1996년''' 개막부터 유격수 레귤러 자리를 꿰찼다. 초반에는 타격 부진으로 조기 특타에 힘썼다. 여름에는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9월에는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 시즌 130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리그 2위인 50도루를 기록했다. 도루 실패는 9번으로, 도루 성공률은 0.847을 기록했다. 홈런은 1개에 그쳤지만, 타율은 리그 9위인 0.283을 기록했다. 이 해부터 부동의 레귤러 유격수로서 활약했고, 서부를 퇴단하는 2003년까지 전 경기에 출전했다. 오프에는 《근육번쩍》에서 활약하며 젊은 여성 팬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폭발했다고 한다. 또한 이듬해부터 등번호를 '''32'''에서 다린 잭슨이 달았던 "'''7'''"로 변경하게 되었다.

=== 전성기 ===

'''1997년''' 전반기에만 39도루를 기록했고, 그 중 3루 도루는 9번 시도하여 모두 성공했다. 타율도 전반기 종료 시점에서 0.318을 기록했고, 올스타전에 첫 출장했다. 올스타전 1차전에서 1경기 4도루 신기록을 세우며 MVP를 획득했다. 4도루는 12개 구단 No.1의 도루 저지율을 자랑하는 후루타 아쓰야를 상대로 기록했다. 4도루째는 사와자키 토시카즈와 후루타의 배터리가 마쓰이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3루 도루를 성공시키며, 올스타전 사상 첫 1경기 3루 도루 2회 성공이라는 기록도 동시에 달성했다. 또한 올스타전 스피드건 콘테스트에서는 시속 149km/h를 기록했다. 2차전에서도 후루타로부터 1도루를 기록하며, 시리즈 신기록인 총 5도루를 기록했다. 우승 결정전에서는 동점 홈런을 날렸다. 같은 해 처음으로 타율 3할을 넘겨 0.309로 리그 4위가 되었고, 62도루로 퍼 리그도루왕이 되는 등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62도루 중 3루 도루는 두 자릿수에 달했다. 퍼 리그에서 시즌 60도루 이상을 기록한 것은 1983년 오이시 다이지로 이후 처음이었고, 62도루는 헤이세이 시대 퍼 리그 기록이 되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2차전에서 손가락 부상을 입으면서도 2안타를 기록했고, 3차전에서 맹타상을 달성했다. 감투상을 수상했다.

'''1998년''' 6월 26일부터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3연전에서 연속 맹타상을 달성하는 등, 1경기 3안타 이상을 21번 기록했다. 또한 6월 28일 다이에전에서는 프로 야구 사상 4번째, 퍼 리그 사상 첫 1회 선두 타자 런닝 홈런을 기록했다. 2년 연속 도루왕에 등극했고, 타율도 팀에서 유일하게 3할대에 진입했다(0.311, 리그 5위). 안타 수는 179안타를 기록했지만, 1위 이치로에게 2안타 뒤졌고, 최다 안타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 시즌 MVP 투표에서는 1위 표수에서는 이치로에게 밀렸지만 총점에서는 앞서, 생애 첫 시즌 MVP를 수상했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3차전에서 주자 일소 3점 2루타를 날렸지만, 6경기에서 24타수 5안타(타율 0.208) 4타점 2도루, 득점 0으로 부진했고, 팀도 일본 제일을 놓쳤다.

'''1999년''' 그전까지 1, 2번 타자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시즌 중반에는 3번에 정착했다. 7월부터 8월까지 2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고, 9월에는 1경기 3개의 2루타를 기록했다. 시즌 통산으로는 첫 최다 안타를 기록했고, 3년 연속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홈런은 생애 첫 두 자릿수 홈런인 15홈런을 기록했고, 가키우치 테쓰야와 함께 팀 최다 홈런을 기록했다. 타율은 리그 2위인 0.330을 기록했고, 3위 조지마 겐지의 0.306과 큰 차이를 냈지만, 이치로의 0.343에는 미치지 못해, 수위 타자 획득은 실패했다. OPS는 0.871을 기록했고,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에서는 태피 로즈, 이치로, 필 클라크, 마쓰나카 노부히코에 이어 퍼 리그 5위였다. 득점권 타율 0.324는 모로즈미 겐지에 이어 리그 2위, 출루율 0.389도 2위 오시마 코이치에 5리 차, 3위 요시나가 코이치로에 3리 차로 리그 4위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00년''' 새해 첫날 탤런트 기쿠치 미오와 결혼했다. 캠프에서는 부상으로 도중 귀국했고, 시즌 중에는 양쪽 다리를 다쳤지만 감싸며 출전을 이어갔고, 전 경기에 출전했다. 시즌 초반에는 1, 2번 타자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이후 3번으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한때 4번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6월 7일 긴테쓰전에서는 스위치 히터로서는 마쓰나가 히로미 이후 처음으로 사이클 안타를 달성했다. 같은 달 17일 오릭스 블루웨이브전에서는 프로 첫 4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시즌 통산 타율은 리그 5위인 0.322로 전년보다 하락했지만, 홈런은 생애 첫 20개 이상인 리그 10위인 23홈런을 기록했고, 2년 연속 팀 최다 홈런을 기록했다. OPS는 전년을 상회하는 0.932를 기록했고, 리그 평균을 고려해도 전년을 상회하는 수치였지만, 전년에는 상회했던 나카무라 노리히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수치를 향상시키고, 전년 부상으로 6경기 출전에 그쳤던 나이젤 윌슨의 부활, 전년 규정 타석에 간신히 미치지 못했던 셔먼 오브란도, 프랭크 보릭의 규정 타석 달성도 있어,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에서는 퍼 리그 일본인 선수 중 5위, 리그 전체에서는 8위였다. 또한 74장타는 리그 1위였다. 주루 면에서는 전년에 비해 도루 시도 수가 29개, 도루 수가 26개로 감소했고, 3년 연속 수상했던 도루왕을 놓쳤다. 수비 면에서는 리그 최다인 21개의 실책을 기록했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마쓰이 특유의 에러가 많았다. 이 해는 이치로의 일본 마지막 해였고, 마지막 경기에 마쓰이가 이치로에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나머지는 가즈오에게 맡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2001년''' 전년에 이어 주로 3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부상으로 지명 타자로 출전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140경기에 풀 출전했다. 3월 28일 오릭스전에서 오구라 히로시를 상대로 18구를 끈질기게 버텨 1947년 마쓰이 노부카쓰가 기록한 19구에 1구 차이로 다가섰다. 7월 8일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818경기 만의 달성은 이치로, 부머 웰즈, 요나미네 요에 이은 역대 4위였다. 올스타전에서는 3경기 모두 풀 출장했고, 1차전과 2차전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1차전에서는 홈런을 포함해 3안타를 날렸고, 1997년 올스타 1차전 이후 2번째 MVP를 획득했다. 그 1997년 1차전 이후 퍼 리그 승리에 기여했다. 이 해는 퍼 리그 총 홈런 수가 대폭 증가하는 등 퍼 리그 전체가 투고타저화되는 가운데, 마쓰이 자신은 타율 0.308로 리그 9위로 전년보다 하락했고, 홈런도 전년보다 1개 증가한 24개로 리그 14위에 머물렀다. 이 해 입단한 알렉스 카브레라, 스콧 맥클레인이 마쓰이를 넘는 홈런 수를 기록했기 때문에, 3년 연속 팀 최다 홈런은 되지 못했다. 이듬해 이후에도 카브레라에게 양보하게 된다. 그 외, 2스트라이크 시 타율은 퍼 리그 규정 타석 달성자 2위인 0.275(244타수 67안타)를 기록했다. 한편 만루 시 타율은 0.071(14타수 1안타)로, 퍼 리그 규정 타석 달성자 중 가장 낮았다. 주루 면에서는 2리그제 이후 20도루 이상에서 사상 첫 시즌 도루 성공률 100%를 기록했다(26도루). 이 시점에서 통산 260도루, 도루 실패 49번으로 도루 성공률 0.841의 높은 도루 성공률을 기록했다. 오릭스전에서는 최근 3년간 도루 실패가 없었고, 1998년 10월 9일 도루 실패 후 21연속 도루 성공. 수비 면에서는 실책이 전년에 비해 감소하고, 수비율을 0.980대로 끌어올렸다. 또한, 이 해에 베스트 나인 수상은 5년 연속이 되었고, 퍼 리그 유격수로는 오하시 미노루의 연속 수상 기록 (1972년-1976년)에 맞먹었다.

'''2002년''' 개막부터 1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같은 해에도 손가락이나 오른쪽 어깨 등의 부상에 시달렸지만, 140경기에 풀 출장했다. 전년과 달리 새로운 스트라이크 존 도입이 있어 퍼 리그 전체의 타격 성적이 하락하는 가운데, 마쓰이 자신은 2번 월간 MVP를 수상하는 등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고, 5월 10일과 11일 오릭스전에서는 퍼 리그 사상 2번째 2경기 연속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고, 6월에는 스위치 히터로서는 사상 첫 5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7월 13일 올스타전 2차전에서 사구를 맞아 왼쪽 종아리를 부상했지만, 출전을 희망한 후반전 개막전부터 2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팀의 매직 넘버가 점등된 8월 16일 오사카 긴테쓰전에서는 팀은 3회 초 종료 시점에서 긴테쓰에 9점 차로 뒤졌지만 4회 초 서부 타선이 마쓰이의 좌익수 앞 안타를 시작으로 7연타로 역전했다. 그 후 다시 따라잡혔지만 7회 말 결승타가 되는 홈런을 날렸다. 9월 24일 오릭스전에서는 6회 중견으로 홈런을 날려, 퍼 리그 신기록인 시즌 82장타를 달성했다. 그 후 9월 27일 다이에전에서는 2장타를 날려, 1950년 고즈루 마코토가 기록한 일본 프로 야구 기록 85장타에 육박했다. 더 나아가 10월 2일 긴테쓰전 3회 2루타를 날려, 일본 프로 야구 신기록인 시즌 장타 86개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시즌 88장타를 기록했다. 후반에는 수위 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에 1리 차로 육박하는 등, 수위 타자 경쟁도 펼쳤다. 최종적으로는 수위 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에 8리 차로 육박하는 리그 3위 타율 0.332, 홈런은 카브레라, 로즈, 나카무라 노리히로에 이은 리그 4위인 36홈런, 그 중 전술한 2경기 연속 끝내기 홈런을 포함한 끝내기 홈런 3개의 퍼 리그 타이 기록을 기록했다. 시즌 36홈런은 1번 타자로서 프로 야구 신기록이며, 유격수로서 시즌 35홈런도 퍼 리그 타이 기록이었다. 안타 수는 당시 역대 3위 타이인 193안타를 기록하고, 3년 만에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OPS는 퍼 리그 규정 타석 달성자 중 카브레라,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에 이은 퍼 리그 3위인 1.006을 기록했다. 또한 33도루를 기록하고, 사상 8번째, 스위치 히터로서는 사상 첫 트리플 스리를 달성했다. 2000년부터 3년 연속으로 3할 20홈런 20도루를 기록했다. 수비 면에서는 전년에 비해 더 수비율을 향상시켜 0.985로 했고, 4년 만에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베스트 나인 투표에서는 퍼 리그 유격수 부문에서 만장일치로 선정되었고, 6년 연속 수상했다. 퍼 리그 유격수로는 오하시 미노루를 넘어 세 리그를 포함해도 요시다 요시오가 기록한 연속 수상 기록에 육박했다. 시즌 MVP 투표에서는 카브레라에 이은 2위였다(카브레라가 636점, 마쓰이가 471점). 같은 해 NPB 통산 4000타석에 도달했고, 통산 타율은 0.311로 같은 해 종료 시점에서 역대 8위, 유격수에서는 역대 1위에 올랐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우에하라 고지에게서 1회 선두 타자 안타를 날렸고, 3차전에서는 쿠도 키미야스에게서 우측으로 홈런을 날리는 등 2안타를 기록했지만, 2차전과 4차전에서는 안타가 나오지 않았고, 팀은 4연패를 당했다. 11월에는 함께 일본 시리즈에 출전한 우에하라와 유니세프 하우스를 방문하여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200만 엔을 당 협회 사무국장에게 전달했다.

'''2003년''' 전년에 이어 시즌 내내 거의 1번 타자를 맡았다. 자신이 처음으로 슬럼프라고 평가할 정도의 부진에 빠졌다. 2002년의 새로운 스트라이크 존에서 종래대로의 존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삼진 수가 증가했다. 124삼진은 리그 최악 2위였다. 타율과 홈런도 타율 0.305(리그 14위), 33홈런(리그 4위)으로 성적이 떨어졌다. 전년 리그 2위를 자랑했던 장타율도 리그 9위로 전락했다. 주루 면에서도 개막 직후 도루 실패가 늘어나 슬럼프에 빠졌고, 6월에는 오른쪽 발목에 자타구의 영향도 겹쳐, 남은 7도루를 남겨두고 있던 통산 300도루를 96경기 만에 달성했다. 최종적으로 도루 수 13개, 성공률 0.565로 모두 1995년 1군 첫 출장 이후 시즌 최악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도 2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지만 3년 만에 수비율이 0.980을 밑돌았다. 통산 기록에서는 전술한 300도루 외에도 150홈런을 달성했다. 또한 8년 연속 전 경기 출장 (1996년-2003년), 1143경기 연속 출장을 기록했다. 1997년부터 7년 연속 타율 3할, 170안타 이상, 유격수로서 베스트 나인을 수상, 팬 투표에 의해 올스타에 선출되었다. 2003년 종료 시 통산 타율은 0.309로, 이 시점에서 NPB 역대 9위(4000타석 이상)였다.

시즌 종료 후에는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출전했다. 오프에는 8월 24일에 획득한 FA권을 행사하고, 아른 텔럼을 대리인으로 하여, 11월 17일 메이저 도전을 표명했다.

== 초 기록 ==

  • 첫 출장: 1995년 4월 5일, 대 킨테츠 버팔로즈 2차전(후지이데라 구장), 8회말에 타나베 토쿠오를 대신하여 유격수로 출장
  • 첫 타석·첫 안타·첫 타점: 1995년 4월 9일, 대 닛폰햄 파이터즈 3차전(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8회말에 시바쿠사 우츄로부터
  • 첫 선발 출장: 1995년 4월 23일, 대 닛폰햄 파이터즈 6차전(도쿄 돔), "9번·유격수"로 선발 출장
  • 첫 삼진: 1995년 4월 26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3차전(하마마츠 구장), 4회에 하세가와 시게토시로부터
  • 첫 도루: 1995년 5월 7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7차전(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7회말에 2루 도루(투수: 사이토 마나부, 포수: 야스다 히데유키)
  • 첫 2루타: 1995년 7월 23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17차전(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5회말에 에릭 힐만으로부터
  • 첫 홈런: 1995년 8월 20일, 대 킨테츠 버팔로즈 20차전(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4회말에 사카이 히로키로부터

== 기념비적인 기록 ==

  • 1000안타: 2001년 7월 8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18차전(그린 스타디움 고베), 6회초에 타무라 츠토무로부터 중전 2점 적시타 ※역대 205번째
  • 100홈런: 2002년 7월 21일, 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15차전(오사카 돔), 1회초에 타카무라 유로부터 좌중간으로 선두 타자 홈런 ※역대 222번째
  • 1000경기 출장: 2002년 9월 15일, 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27차전(오사카 돔), "1번·유격수"로 선발 출장 ※역대 381번째
  • 300도루: 2003년 8월 3일, 대 닛폰햄 파이터즈 21차전(세이부 돔), 1회말에 2루 도루(투수: 세키네 히로유키, 포수: 타카하시 신지) ※역대 24번째
  • 150홈런: 2003년 10월 4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27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2회초에 고바야시 히로유키로부터 우월 2점 홈런 ※역대 132번째
  • 1500안타: 2011년 7월 26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3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6회초에 D.J. 홀튼으로부터 중전 안타 ※역대 109번째, 1233경기 만의 달성은 당시 역대 최속
  • 300 2루타: 2011년 10월 1일, 대 오릭스 버팔로즈 23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1회초에 키사누키 히로시로부터 우중간 2루타 ※역대 57번째
  • 1500경기 출장: 2013년 8월 30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8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7번·유격수"로 선발 출장 ※역대 180번째
  • 350 2루타: 2013년 9월 18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2차전(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5회말에 타케다 쇼타로부터 우중간 2루타 ※역대 38번째
  • 1000삼진: 2014년 4월 26일, 대 오릭스 버팔로즈 5차전(핫토못토 필드 고베), 7회초에 히가시 아키라로부터 헛스윙 삼진 ※역대 55번째
  • 3000루타: 2015년 4월 11일, 대 오릭스 버팔로즈 2차전(라쿠텐 Kobo 스타디움 미야기), 4회말에 브라이언 배링턴으로부터 중전 안타 ※역대 54번째
  • 350도루: 2015년 5월 27일, 대 한신 타이거스 2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3회초에 2루 도루(투수: 후지나미 신타로, 포수: 츠루오카 카즈나리) ※역대 18번째
  • 1000득점: 2015년 5월 28일, 대 한신 타이거스 3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1회초에 고토 미츠토시의 좌전 적시타로 득점 ※역대 40번째
  • 2000안타: 2015년 7월 28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2차전(아키타 현립 야구장), 1회말에 나카타 켄이치로부터 중전 안타 ※역대 46번째, 통산 1742경기 만의 달성은 역대 6위, 실동 14년 만의 달성은 2위, 드래프트 제 이후 입단한 선수로서는 최연소 달성
  • 400 2루타: 2015년 8월 14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2차전(라쿠텐 Kobo 스타디움 미야기), 2회말에 요시카와 미츠오로부터 좌익선 2루타 ※역대 12번째, 1755경기 만의 달성은 역대 최속
  • 200홈런: 2017년 4월 23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5차전(후쿠오카 야후! 돔), 6회초에 카지야 렌으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 ※역대 100번째

== 기타 기록 ==

  • 트리플 쓰리: 2002년 ※역대 8번째(스위치 타자로는

3. 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2004-2010)

마쓰이는 뉴욕 메츠에서 2004년, 2005년, 2006년 시즌 각각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Elias Sports Bureau에 따르면, 그는 메이저 리그에서 처음 3시즌 동안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유일한 선수이다. 3시즌 연속으로 첫 타수에서 홈런을 친 유일한 다른 선수는 켄 그리피 주니어였다. 2004년 마쓰이는 1회 초 선두 타자로 나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러스 오티즈를 상대로 첫 번째 공을 받아 홈런을 쳤고, 2005년에는 1회 1아웃 상황에서 신시내티 레즈의 폴 윌슨을 상대로 여섯 번째 공을 받아 홈런을 쳤으며, 2006년에는 3회 초 무사 상황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제이크 피비를 상대로 네 번째 공을 받아 홈런을 쳤다. 세 번째 홈런은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메츠 시절 전 동료였던 마이크 피아자가 홈플레이트를 막고 있는 상황에서 슬라이딩으로 홈에 들어갔다.

마쓰이는 2004년에 114경기에 출전했는데(그의 MLB 커리어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경기), 0.272의 타율에 125개의 안타, 32개의 2루타, 2개의 3루타, 7개의 홈런, 44타점, 65득점, 14개의 도루, 5개의 희생타, 40개의 볼넷 그리고 182개의 총 루타를 기록했다. 그의 안타, 2루타, 홈런, 타점, 볼넷, 총 루타는 모두 커리어 하이였다.

일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마쓰이는 메츠에서 유격수로서 수비 능력이 뛰어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2004년, 마쓰이는 유격수 위치에서 많은 수비 에러와 판단 미스를 범했고, 2005년에는 2루수로 기용되었다. 또한, 그는 일본에서는 문제가 없었던 부상에 시달렸다. 그의 공격 생산력 또한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2005년 중반까지 그는 주전 선수가 아니었고, 미겔 카이로 및 말론 앤더슨과 2루수 자리를 번갈아 맡았다. 마쓰이는 시즌을 0.255의 타율, 3개의 홈런, 24타점으로 마감했다.

마쓰이는 2006 시즌을 0.200(130타수 26안타)의 타율, 10득점, 6개의 2루타, 1개의 홈런, 7타점으로 시작했다. 유일한 홈런은 2006년 4월 20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기록한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었다. 마쓰이는 1975년 이후 시즌 첫 홈런으로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2]

2006년 6월 9일, 마쓰이는 엘리 마레로와 트레이드되어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했다. 콜로라도는 마쓰이에게 계약의 특정 조항을 포기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이에 동의했다. 절차가 완료된 후, 마쓰이는 약 두 달 반 동안 로키스의 트리플 A 제휴팀인 콜로라도 스프링스 스카이 삭스에서 뛰었다. 마쓰이는 2006년 8월 23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로키스 데뷔전을 치렀으며, 클린트 바르메스를 대신하여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마쓰이는 곧 2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2006년까지 그는 메츠에서 130타석에서 0.200/0.235/0.269 (타율/출루율/장타율)를 기록했지만, 로키스 선수로서 113타석에서 0.345/0.392/0.504를 기록하며 성적이 향상되었다.

그의 뉴욕에서의 기간은 그의 (포지션별로) 뛰어난 일본에서의 기록으로부터 기인한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해 메츠 팬들로부터 거센 야유를 받는 것으로 점철되었다.

마쓰이는 2007년을 위해 1년, 150만 달러 계약으로 콜로라도 로키스와 재계약했으며, 일본에서 착용했던 등번호 7번으로 변경했다.

2007년 시즌 동안 마쓰이의 성적은 향상되어 0.288을 기록했는데, 이는 그의 통산 평균 타율보다 높았다. 2007년에는 득점(84), 3루타(6), 도루(32), 희생타(8)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또한 마쓰이는 출루 시 득점 확률(47%)에서 메이저리그 1위를 기록했다.[4]

마쓰이와 로키스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단판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2007년 내셔널 리그 와일드카드 게임을 확보했고, 콜로라도는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냈다.

마쓰이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NLDS 2차전에서 개인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4회 초 2아웃 3-2로 뒤진 상황에서 만루 홈런이 터졌다. 이 만루 홈런으로 로키스는 리드를 잡았고, 결국 승리를 놓치지 않았다. 콜로라도는 이 경기에서 10-5로 승리했다. 마쓰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정규 시즌이 아닌 포스트 시즌에서 개인 첫 만루 홈런을 기록한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또한 그는 포스트 시즌에서 만루 홈런을 친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만루 홈런과 함께, 마쓰이는 NLDS 2차전에서 3루타와 2루타를 기록하며, 포스트 시즌에서 사이클 히트를 기록하는 유일한 선수가 되는 데 단타 하나가 부족했다. 그러나 마쓰이는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기록한 두 번째 선수(최초는 1968년 월드 시리즈 4차전의 루 브록)가 되었다.

2007년 12월 1일, 마쓰이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3년, 1,65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개막전 전에 마쓰이는 항문 열상 수술을 받았다. 그는 시즌의 처음 2주를 결장했다. 마쓰이는 4월 18일 애스트로스에서 2008년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시즌 동안 타율 0.293, 출루율 0.354, 20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마쓰이는 여전히 부상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2루수 선발 자리를 유지했다.

마쓰이는 통산 2,000개 이상의 안타를 기록한 야구 선수들의 특별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5] 그는 일본에서의 선수 경력과 메이저 리그를 합쳐 2,000번 이상 안타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5.33의 수비 범위로 메이저 리그 선발 2루수 중 1위를 기록했다.[6]

마쓰이는 2010년 5월 19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방출되었다.[7] 71 타석에서 마쓰이는 0.141의 타율과 1 타점, 1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 기타 기록

  • MLB 개막전 신인 첫 타석 첫 홈런 ※사상 최초
  • MLB 3년 연속 시즌 첫 타석 첫 홈런 ※사상 4번째
  • 시즌 수비율 0.991 (2루수로서, 2009년) ※애스트로스 역대 2위 (2009년 종료 시점)
  • 통산 도루 성공률 85% ※역대 6위 (2023년 종료 시점, 도루 시도 수 100 이상)

3. 2. 1. 뉴욕 메츠 (2004-2006)

2003년 12월 10일, 뉴욕 메츠와 3년 2010만 달러에 성적에 따른 보너스 계약을 체결했다.[92] 등번호 7번을 희망했지만, 당시 호세 레예스가 착용하고 있어 포기했다. 구단에서는 5번과 25번을 제시했고, "더하면 7이 된다"는 이유로 25번을 선택했다. 계약에는 뉴욕 양키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애너하임 에인절스를 제외한 팀으로의 트레이드 거부권이 포함되었다.

|thumb|뉴욕 메츠 시대
(2006년 6월 7일)

2004년 시즌을 앞두고 2월 29일, 수비 훈련 중 오른손 중지 손톱 부분을 다쳐 시범 경기 첫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93] 3월 8일, 시범 경기 첫 출전에서 부상 부위의 영향으로 수비를 할 수 없어 지명타자로 출전했다.[94] 3월 15일에는 처음으로 유격수 수비를 맡아 수비력을 인정받았지만[95], 3월 29일에는 오른 손목 부상으로 경기에 결장했다.[96] 시범 경기에서는 타율 0.192로 부진했다.[97]

2004년 4월 6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개막전에서 1번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여[98] 1회 초, 전년도 21승을 거둔 러스 오티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사상 최초로 개막전 신인의 초구 초구 홈런을 기록했다. 아트 하우 감독은 "동화 같다"고 코멘트했고, 애틀랜타의 주요 언론 "저널 컨스티튜션"에서는 "브레이브스를 위해, 일본에서 가즈오(마쓰이 가즈오)를 스카우트한 녀석은 누구인가.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99] 이토 츠토무는 "이것으로 진짜 메이저 리거가 되었네",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굉장했네요. 고의 사구도 있었고, 보고 감동했습니다", 바비 밸런타인은 "센터로 홈런을 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터너 필드에서 쳤다는 것은, 압권이다", 신조 쓰요시는 "압박감 속에서 초구부터 칠 수 있다니, 대단함을 느낀다"고 칭찬했다.[100] 하지만 이후 4월까지 타율 0.256, 2홈런, OPS 0.758, 1도루로 다소 주춤했다.[101] 5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는 랜디 존슨을 상대로 홈런을 치는 등[102][103] 5월까지 타율 0.265, 5홈런, OPS 0.783, 6도루를 기록했다. 6월에는 월간 타율 0.223을 기록하는 등 부진했고, 6월 25일 신시내티 레즈전 결장으로 세이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연속 경기 출장이 1213경기에서 중단되었다.[104] 7월 2일 뉴욕 양키스전(서브웨이 시리즈)에서 2홈런을 치는 활약을 펼치며 7월 29일까지 월간 타율 0.339, OPS 0.904를 기록했지만, 7월 30일 브레이브스전에서 2루 커버를 하다가 격렬한 슬라이딩을 받아 왼쪽 다리 뼈를 다쳤다.[105]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8월 4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 결장했고[106] 7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2안타를 쳤으며, 8일부터 3번 타자로 나섰지만, 11일부터 5경기 연속 결장 후 16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107] 8월 이후에는 총 12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최종적으로 시즌 전체 162경기 중 114경기에 출전했다. 시즌 통산 성적은 타율 0.272, 7홈런, OPS 0.727, 14도루였다. 팀 최다인 125안타, 32개의 2루타, 2개의 3루타를 기록했다.[108] 셰이 스타디움을 홈 구장으로 하면서 홈 성적이 OPS 0.731로 원정 경기보다 약간 높았다.[109] 유격수 수비에서는 실책 수가 많았다. 최종 3경기는 2루수로 출전했다. 구단 측은 마쓰이가 포수의 사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구종을 알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 안경 착용을 요청하기도 했다.[110] 실책 수의 증가는 마이크 피아자의 수비력 부족, 셰이 스타디움의 내야 상태, 메츠 내야진 전체의 연계 부족 등도 원인으로 작용했다.[111] 한편 레인지 팩터는 리그 유격수 중 3위였기에 마쓰이의 수비가 "메이저 리그 실격"이라고 비난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의견도 있었다.[112] 부상 치료를 위해 가족과 함께 플로리다에 머무는 동안 허리케인 아이반이 덮쳐 구장에서 피난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5년 시즌에는 부상을 방지하는 데 집중했다.[113] 수비 위치를 2루수로 변경하며 "승부의 해라고 생각한다. 2루수로서 레귤러를 쟁취하겠다는 강한 마음으로, 1년 동안 건강하게 해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개막전인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전년에 이어 초구 홈런을 기록하며 2년 연속 개막전 초구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6월 16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서 제이슨 켄달과 충돌하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복귀 후 9월 16일 브레이브스전까지 1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타율 0.309, OPS 0.777을 기록했지만[114] 그 브레이브스전에서 오른쪽 허벅지 뒤쪽에 이상을 느껴 9회 수비에서 교체되었고[115] 이후 결장이 이어졌다. 9월 27일 필리스전에서 대타로 10경기 만에 출전했지만, 2루 땅볼로 아웃되어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이 12경기에서 멈췄다.[116] 결국 87경기 출전에 그치는 등, 전년의 성적에 미치지 못했다. 시즌 후에는 세이부 시절 동료였던 구마자와 도루와 개인 트레이너 계약을 맺고 기초 연습을 강화했다.

2006년 시즌에는 "부상당하지 않는 몸 만들기"를 목표로 자율 훈련을 실시했다.[117] 하지만 3월 16일 시범 경기에서 슬라이딩 도중 오른 무릎을 다쳐[118] 마이너 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메이저 리그 승격 후 첫 경기였던 4월 20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전 첫 타석에서 일본인 최초의 런닝 홈런을 기록, 메이저 리그 4번째로 3년 연속 시즌 첫 타석 홈런을 달성했다. 하지만 타율은 0.200으로 부진했다. 6월 9일 일라이 마레로와의 1:1 트레이드로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했다.

마쓰이는 뉴욕 메츠에서 2004년, 2005년, 2006년 시즌 각각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Elias Sports Bureau에 따르면, 그는 메이저 리그에서 처음 3시즌 동안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유일한 선수이다. 3시즌 연속으로 첫 타수에서 홈런을 친 유일한 다른 선수는 켄 그리피 주니어였다. 2004년 마쓰이는 1회 초 선두 타자로 나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러스 오티즈를 상대로 첫 번째 공을 받아 홈런을 쳤고, 2005년에는 1회 1아웃 상황에서 신시내티 레즈의 폴 윌슨을 상대로 여섯 번째 공을 받아 홈런을 쳤으며, 2006년에는 3회 초 무사 상황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제이크 피비를 상대로 네 번째 공을 받아 홈런을 쳤다. 세 번째 홈런은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메츠 시절 전 동료였던 마이크 피아자가 홈플레이트를 막고 있는 상황에서 슬라이딩으로 홈에 들어갔다.[2]

3. 2. 2. 콜로라도 로키스 (2006-2007)



마쓰이는 2006년 6월 9일 이라이 말레로와의 트레이드로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했다. 로키스는 마쓰이에게 계약의 특정 조항을 포기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이에 동의했다. 절차가 완료된 후, 마쓰이는 약 두 달 반 동안 로키스의 트리플 A 제휴팀인 콜로라도 스프링스 스카이 삭스에서 뛰었다[119]. 6월 12일 AAA급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합류했다. 로키스에서의 수비 위치가 아직 확정되지 않아 이날 2년 만에 유격수를 맡았다[120]. 21일에는 허리 통증으로 결장했다[121]. 7월 24일에 복귀[122], 8월 22일에 메이저 리그에 복귀했다[123]. 이적 후 그해 메이저 리그 성적은 32경기 출장, 타율 0.345, 2홈런, 19타점, 8도루, OPS 0.896이었다. 유격수, 2루수, 대타로 출전했다[124]. 자율 훈련에서는 배리 본즈가 말을 걸어준 것을 계기로 합동 타격 연습도 했다. 본즈는 마쓰이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로키스의 간판 선수인 토드 헬튼과는 1995년 시즌 종료 후에 열린 하와이 윈터 트레이닝에서 팀메이트였다. 헬튼은 마쓰이의 수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로키스 입단 직후 시즌 종반부터 2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32경기에 출전, 0.345의 타율, 2홈런, 19타점, 8개의 도루를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FA가 되었지만 팀과의 단년 계약을 체결해 잔류를 결정, 150만 달러(약 1억 8,000만 엔)로 타석 수에 따라 최고 100만 달러(약 1억 1800만 엔)의 인센티브를 더했다고 한다.

2006년까지 그는 메츠에서 130타석에서 .200/.235/.269 (타율/출루율/장타율)를 기록했지만, 로키스 선수로서 113타석에서 .345/.392/.504를 기록하며 성적이 향상되었다. 그의 뉴욕에서의 기간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해 메츠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는 것으로 점철되었다.

마쓰이는 2007년을 위해 1년, 150만 달러 계약으로 콜로라도 로키스와 재계약했으며, 일본에서 착용했던 등번호 7번으로 변경했다.

'''2007년''', 허리 통증으로 이탈, 5월 15일에 복귀했을 때 팀은 16승 23패로 크게 부진했지만, 복귀한 마쓰이가 2번에 고정되고, 윌리 타베라스와의 콤비가 부활한 이후 팀은 호조를 보였다. 후반에는 타베라스의 이탈로 인해 "1번·2루수"에 정착했다. 팀의 후반 14승 1패라는 쾌진격에 선두 타자로서 공헌했다. 2007년 시즌 동안 마쓰이의 성적은 향상되어 0.288을 기록했는데, 이는 그의 통산 평균 타율보다 높았다. 2007년에는 득점(84), 3루타(6), 도루(32), 희생타(8)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또한 마쓰이는 출루 시 득점 확률(47%)에서 메이저 리그 1위를 기록했다.[4]

마쓰이와 로키스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단판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2007년 내셔널 리그 와일드카드 게임을 확보했고, 콜로라도는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냈다.

팀은 와일드카드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10월 4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쳤다. 이 만루 홈런으로 로키스는 리드를 잡았고, 결국 승리를 놓치지 않았다. 콜로라도는 이 경기에서 10-5로 승리했다. 마쓰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정규 시즌이 아닌 포스트 시즌에서 개인 첫 만루 홈런을 기록한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또한 그는 포스트 시즌에서 만루 홈런을 친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만루 홈런과 함께, 마쓰이는 NLDS 2차전에서 3루타와 2루타를 기록하며, 포스트 시즌에서 사이클 히트를 기록하는 유일한 선수가 되는 데 단타 하나가 부족했다. 그러나 마쓰이는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기록한 두 번째 선수(최초는 1968년 월드 시리즈 4차전의 루 브록)가 되었다. 이날 개최지는 필라델피아로, 메츠 시절의 마쓰이를 알고 있던 뉴욕 기자도 있었지만, 마쓰이 본인은 "지금은 콜로라도에 있기 때문에 뉴욕에 대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라고 경기 후 코멘트했다. 팀은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스윕으로 꺾고 리그 첫 우승을 결정, 구단 창단 이후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전 팀 동료인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오카지마 히데키가 소속된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대결이 펼쳐졌고, 3차전에는 마쓰자카를 상대로 1회 선두 타자 안타를 쳤다[127]. 팀은 4차전에서 패했지만, 자신의 포스트 시즌 통산 성적은 타율 0.304, OPS 0.847로 좋은 성적을 남겼다.

그러나 2007년 시즌에는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리면서 제이미 캐럴와의 병용도 있어 규정 타석에는 채울 수 없었지만 찬스에 강한 타격이나 빈틈이 없는 주루 플레이를 보여주는 등 시즌 중반 이후에는 2루의 정위치를 거의 수중에 넣었다. 특히 메츠 시절에는 비난의 대상이 된 수비에서도 크게 개선되었다. 도루 개수도 메이저 리그에서는 개인 최다인 32개를 기록(4번의 도루 실패, 도루 성공률은 8할 8푼 9리)하는 등 그의 특색이자 적극성을 많이 발휘할 정도의 무난한 시즌을 보냈다. rWAR에서는 3.43을 기록하여 MLB 각 30개 구단에서 2루수 중 13위를 기록하며 높은 순위에 올랐고, 메이저 리그 톱 클래스의 2루수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프에는 FA가 되었다.

팀내 부동의 1번 타자인 윌리 타베라스가 부상으로 이탈당하면서 종반에는 ‘1번·2루수’에 수비 위치를 지켰고, 14승 1패라는 팀의 시즌 종반 성적을 기록하여 팀내 간판 타자로서 맹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팀은 와일드카드에 의한 플레이오프 진출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등 리그 우승도 달성했다.

3. 2. 3.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8-2010)



2007년 12월 2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3년간 1,650만 달러(계약금 150만 달러를 포함하고 연봉은 2010년까지 매년 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으며 입단했다[130]. 이는 당시 은퇴한 팀의 간판 2루수 크레이그 비지오의 후계자로서 큰 기대를 모은 계약이었다[131]. 등번호는 3번을 받았다.

2008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는 6경기에서 타율 0.333, OPS 0.794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개막 직전에 항문이 찢어지는 부상으로 인해 전력에서 이탈했다. 복귀 후 2번 타자로 기용되면서 팀 타격 성적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132]. 마쓰이 본인은 다른 타자들의 타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스스로 (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2번 타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감독 세실 쿠퍼는 "마쓰이가 복귀해서 팀에 최고의 활력을 가져다주었다"라고 칭찬했고[133], 랜스 버크만 역시 "마쓰이가 타선에 합류하여 공격에 리듬이 생겼다"라고 평가했다. 올스타전 이후에는 1번 타자로 기용되어 쾌조의 활약을 이어갔다[134]. 그 해 시즌 1번 타자로서의 성적은 타율 0.295, OPS 0.851이었다[135]. 시즌 전체적으로는 96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93, 출루율 0.354, 20도루를 기록했다.

애스트로스와 계약을 맺었을 때, 현지 주요 언론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136]. 과거 소속팀이었던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 구장인 쿠어스 필드가 라인 드라이브 히터에게 유리한 구장이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지만, 애스트로스에서는 과거 뉴욕 메츠 시절과 같은 부진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마쓰이는 이러한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었다. 파크 팩터 보정이 적용된 타격 지표인 wRC+와 OPS+에서 각각 일본인 내야수로서 역대 최고인 109와 107을 기록하며 2루수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홈 타율 0.289, 원정 타율 0.297로 구장에 관계없이 꾸준한 성적을 냈으며, 역방향으로 장타를 생산하는 능력도 향상되었다. 비록 잦은 질병과 부상에 시달리면서 100% 컨디션으로 뛸 수 있는 경기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수주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시즌 후, 미야모토 신야와 함께 허리 통증 재발 방지책을 재검토하고 코어 트레이닝에 돌입했다[140].

2009년 5월 20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세실 쿠퍼 감독은 마쓰이를 2번 타순에 배치하려 했으나, 실제 선발 라인업에는 마쓰이가 1번 타순에 등록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후 등록 상 2번 타자였던 마이클 본이 1번 타석에 들어서면서 마쓰이는 타석에 들어서기도 전에 아웃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했다. 5월 25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오른쪽 허벅지를 다쳐 다음 날부터 결장했고, 회복을 기다렸지만 "이 4일 동안 서서히 좋아졌지만, 스피드가 아직 40% 정도입니다. 타격은 괜찮지만, 저와 같은 타입은 뛸 수 있어야 하므로"라며 치료를 우선하기로 결정, 29일 6년 연속 9번째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6월 중 달성이 유력했던 NPB/MLB 통산 2000안타 달성도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사실상 무산되는 듯했지만, 마쓰이는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는 이상 확실히 치료하겠다"라며 의지를 다졌다. 8월 15일, 브루어스전에서 일본인 야수로서 이치로와 마쓰이 히데키에 이어 3번째로 NPB/MLB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경기 후에는 세이부 시절 감독이었던 히가시오 오사무로부터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의 블레이저를 수여받았다. 또한, 달성 후 현지 경기 전에 애스트로스의 구단주인 드레이턴 맥클레인 주니어로부터 기념패를 받았다. 9월 10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멀티 안타를 기록하며 미일 통산 2019안타를 기록, 시바타 이사오가 보유한 일본인 양타자 최다 안타 기록인 2018개를 넘어섰다[141]. 2009년 시즌 최종 성적은 132경기 출전, 타율 0.250, 5홈런, 33타점, 19도루였다. 득점권 타율은 0.323으로 팀 내 3위, 득점권 OPS는 0.952로 일본인 선수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만루 상황에서는 8타수 5안타, 10타점을 기록하며 클러치 능력을 발휘했다.

2010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는 타율 0.293, 2홈런, OPS 0.844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개막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다음 날 경기에서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브래드 밀스 감독은 "3차전 데이 게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다른 주전 선수들은 당연하게도 개막 3연전에 모두 선발 출장했다. 결국 개막 5경기까지 3경기에서 마쓰이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고, 밀스 감독은 제프 케핑거의 좋은 타격감을 이유로 들었다. 마쓰이의 선발 출전 기회는 케핑거가 휴식으로 결장하거나, 유격수로 이동했을 때로 제한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마쓰이 본인도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타격 코치 숀 베리는 "기술적으로 큰 문제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매일 경기에 출전해 왔지만, 올해는 출전 기회가 제한되어 그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연습에 너무 열심인 성실함이 결과가 나오지 않아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 같습니다"라고 분석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되었다. 결국 2010년 5월 20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3. 2. 4. 콜로라도 로키스 (마이너 리그) (2010)

마쓰이는 방출 후 콜로라도 로키스(Colorado Rockies)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다.[8] 그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로키스의 마이너 리그 시스템에 머물렀다.

이후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산하 AAA급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메이저 리그 승격을 목표로 했지만, 승격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쳐 FA가 되었고, 대리인인 아른 텔렘과의 계약도 해지했다[144].

MLB에서는 총 7년간 선수 생활을 했으며, 통산 615안타를 기록했다[145]。7년 동안 모든 마이너 리그 조직을 경험했다.

3. 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1-2017)

2010년 11월 2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총액 3억엔의 2년 계약을 발표하며 마쓰이 가즈오의 8년 만의 일본 야구계 복귀를 알렸다.[421] 등번호는 '''32'''번으로 결정되었다.[422]

2011년 7월까지는 타율 0.235, 4홈런, OPS 0.618로 부진했으나, 8월에는 26경기에서 타율 0.333, 3홈런, 14타점, OPS 0.852를 기록하며 통산 5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 하지만 시즌 전체로는 타율 0.260, 9홈런(팀 내 2위), 48타점(팀 내 1위 타이), 15도루(팀 내 3위) 등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2루타는 34개로 리그 1위를 기록했고, 도루 성공률은 8할 이상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등번호는 세이부,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에 착용했던 '''7'''번으로 변경되었다.

2012년 2월 3일, 라쿠텐의 2대 주장으로 지명되었다. 2012년에는 허리 통증과 오른쪽 손목 통증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9월에는 월간 타율 0.361, 35안타, 3홈런, 23득점, 13타점, OPS 0.918을 기록하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10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66, 9홈런, 14도루를 기록했고, DELTA가 산출한 선수 종합 평가 지표 WAR에서는 팀 야수 최고, 투수를 포함해도 다나카 마사히로에 이어 팀 2위를 기록했다.[150] 10월 5일 니혼햄전에서 일미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다. 시즌 종료 후 제3회 WBC 일본 대표 후보 선수 34인에 포함되었다.[151][152]

2013년, 제3회 WBC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지만, 대회에서는 무안타를 기록했다. 귀국 후 세・퍼 교류전에서는 1할대 타율로 부진했지만, 팬 투표와 선수 간 투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시즌 막판 컨디션 난조를 겪었지만, 2년 만에 규정 타석을 채웠고, 11홈런, 58타점을 기록했다. 8월 30일 소프트뱅크전에서 NPB 통산 1500경기 출전을 달성했고,[165] 9월 18일 소프트뱅크전에서 NPB 통산 350 2루타를 달성했다.[166] 팀은 창단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3차전에서는 1루에서 좋은 주루 플레이로 홈에 생환하며 "신의 손"이라는 칭송을 받았다.[169][170][171] 일본 시리즈에서는 전 경기에 풀 이닝 출전하며 맹활약, 팀 우승에 기여했다. 시리즈 통산 타율 0.333으로 출전 선수 중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178][179]

2014년, 개막전에서 시즌 1호 홈런을 쳤다.[182][183] 5월, 6월 부진 후 1번 타자로 발탁되어 타율을 끌어올렸고, 8월에는 월간 MVP를 수상했다.[185] 최종 타율 0.291로 퍼시픽 리그 타율 9위에 올랐다.[186] 8월 24일 오릭스전에서 NPB/MLB 통산 2500안타를 달성했다.[188] 3루 수비와 외야수도 경험하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9월 8일 오릭스전에서는 끝내기 홈런을 쳤다.[192]

2015년부터 외야수로 등록, 본격적으로 외야수로 전향했다.[193] 개막 2차전에서 3도루를 기록했고,[194][195] 4월 11일 오릭스전에서 프로 통산 3000루타를 달성했다.[197] 4월 23일 롯데전에서는 NPB/MLB 통산 450도루를 기록했다.[198] 5월 8일 소프트뱅크전에서는 11년 만에 1경기 2홈런을 기록했다.[199] 7월 28일 소프트뱅크전에서 NPB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200] 8월 14일 니혼햄전에서 NPB 통산 400 2루타를 기록, 타츠나미 가즈요시의 최속 기록을 갱신했다.[201]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256, OPS 0.690으로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우익수 수비에서는 평균 이상의 UZR을 기록했다.[206] 11월 19일, 연봉 1억 6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07][208]

2016년, 오픈전에서 타율 0.407을 기록했지만,[209] 시즌 중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54경기 출전, 타율 0.213, 2홈런, 13타점으로 라쿠텐 입단 이후 최저 성적을 기록했다. 오프에는 56% 삭감된 연봉 7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14]



시즌소속 팀등번호
2011년 ~ 2017년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3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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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3일 소프트뱅크전에서 가지야 렌으로부터 홈런을 쳐 NPB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다.[215] NPB 사상 100번째 기록이며, 스위치 히터로는 최초로 2000안타와 200홈런을 달성했다.[216] 6월 26일 오릭스전에서는 2014년 8월 14일 소프트뱅크전 이후 처음으로 유격수 수비를 맡았다.[217]

3. 4.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18)

2017년 11월 17일, 마쓰이는 일본 프로 야구(NPB)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계약하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친정팀에서 보내게 되었다.[10] 11월 16일, 15년 만에 세이부 라이온즈 복귀가 발표되었고, 테크니컬 코치를 겸임하게 되었다. 등번호는 "'''7'''"번으로, 1년 계약에 연봉은 4000만 엔(추정)이었다.[218][219]

2018년 4월 23일, 벤치에 들어갈 수 있는 코치 인원 조정으로 인해 마쓰이의 코치 등록이 말소되었지만, 구단 내 직함으로는 테크니컬 코치를 계속 맡았다.[220] 9월 25일, 시즌 종료와 함께 은퇴를 발표했다.[11][221] 9월 27일, 은퇴를 공식 발표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11] 11월 23일, 팬 감사 이벤트 "LIONS THANKS FESTA 2018"에서 은퇴 기념 행사가 개최되었다.[222]

4. 지도자 경력

2018년에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플레잉 코치 겸 기술 코치로 활동했다.

2019년부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군 감독으로 취임하여 등번호 77번을 달았다.[223]

2022년에는 세이부 1군 헤드코치로 활동했다.[224]

2022년 10월 13일, 쓰지 하쓰히코 감독의 후임으로 2023년 시즌부터 1군 감독으로 취임이 발표되었고, 코치 시절과 같은 등번호 77번을 유지했다.[225][226]

2024년 5월 26일, 성적 부진(15승 30패, 최하위)으로 인해 휴양에 들어갔으며, 5월 28일 경기부터 와타나베 히사노부 제너럴 매니저가 감독 대행을 겸임하게 되었다.[227][228][229] 10월 9일에는 와타나베와 함께 퇴임이 발표되었다.[230]

4. 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는 플레잉 코치 겸 기술 코치(2018년), 2군 감독(2019년 ~ 2021년), 1군 수석코치(2022년)를 거쳤다.

2019년부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군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등번호는 77번이었다.[223]

2022년에는 세이부 1군 헤드코치로 활동했다.[224]

2022년 10월 13일, 쓰지 하쓰히코 감독 사임 후, 2023년 시즌부터 1군 감독으로 취임이 발표되었다.[225] 등번호는 코치 시절과 동일한 77번을 사용했다.[226]

2024년 5월 26일, 성적 부진(15승 30패, 최하위)으로 인해 휴양에 들어갔고, 5월 28일 경기부터 제너럴 매니저 와타나베 히사노부가 감독 대행을 겸임하게 되었다.[227][228][229] 이후 10월 9일, 와타나베와 함께 퇴임이 발표되었다.[230]

연도구단순위경기승리패배무승부승률게임차타율홈런방어율나이
2023년세이부5위14365771.45822.5.233902.9348세
2024년(6위)4515300.333(42.0)(.212)(60)(3.02)48세
통산: 2년188801071.428B클래스 2회



2024년은 5월 27일부터 휴양에 들어갔으며, 후임 감독은 와타나베 히사노부이다. 괄호 안의 성적은 해당 연도의 최종 성적이다.

5. 국가대표 경력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 일본 대표로 선출된 적은 없으며, 일본 대표로 선발된 것은 아테네 올림픽 예선 때가 처음이다[388]. 히노마루가 새겨진 유니폼에 대한 동경을 강하게 품었다고 하며[389], 일본 대표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389].

아테네 올림픽 예선에서는 대만전에서 2안타 2타점, 한국전에서는 희생번트로 선제점을 연출하는 등 총 11타수 3안타 3타점으로 일본의 3경기 전승에 기여했다. 아테네 올림픽 본선은 MLB로 이적했기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비디오로 일본 대표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390].

제2회 WBC 일본 대표에는 NPB로부터 협력을 요청하는 사전 연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상 밖으로 낙선되었으며, 소속 사무소 간부가 "선수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고 격노하는 등 소동이 일어났다[391]. 대표로 선발된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함께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392]. 이후 마쓰이는 우승을 차지한 일본 대표팀에게 축하의 말을 보냈다[393].

제3회 WBC 일본 대표에서는 대표로 선발되었다. 캠프에서는 "프로에 들어와서 가장 열심히 (스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WBC에 매달렸으며[394], 소속팀 라쿠텐의 감독 호시노 센이치도 걱정할 정도로 급하게 컨디션을 끌어올렸다[395]. 대외 경기 첫 선발 출전이 된 호주와의 평가전에서는 역전 3점 적시 3루타를 포함 4타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컨디션을 보였지만, 다음 강화 경기인 한신전에서는 "2번 타자·2루수"로 선발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허리 통증으로 결장했다[396]. 본선에서는 진루타나 볼넷은 있었지만 안타는 나오지 않았고, 선발 출전한 경기는 모두 교체되었다. 준결승에서는 9회 2사에서 대타로 기용되었지만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되었고, 일본 대표팀의 마지막 타자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대표팀은 3위를 기록했다.

연도대표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루
실패
희생타희생
플라이
사구고의
사구
사구삼진병살
타율출루율장타율
2013일본612111000000000010020.000.083.000


5. 1.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하여 치러진 대회로, 마쓰이 가즈오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3경기에 출전, 15타석 11타수 2득점 3안타 1개의 3루타, 3타점을 기록했다. 2개의 볼넷과 1개의 사구, 1개의 희생타를 기록했으며, 2개의 삼진을 당했다. 타율은 0.273, 출루율은 0.429, 장타율은 0.455, OPS는 0.883을 기록했다. 일본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출전권을 획득했다.

5. 2.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연도대표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루
실패
희생타희생
플라이
사구고의
사구
사구삼진병살
타율출루율장타율
2013일본612111000000000010020.000.083.000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일본 대표로 3위를 기록했다.

6. 플레이 스타일

마쓰이 가즈오는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준족, 교타, 장타, 강견, 호수비를 겸비한 5툴 플레이어로 평가받았으며, "역대 최강의 1번 타자"라는 칭호를 얻었다.[234] 특히 스프링과 같다는 평가를 받는 탄력 있는 신체는 플레이의 아름다움과 높은 퍼포먼스로 많은 팬들을 매료시켰다.[231]

마쓰이는 30미터 달리기를 3.6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을 가졌으며,[254] 베이스 러닝에 대한 뛰어난 감각과 적극적인 도루 시도로 "루상의 굶주린 늑대"[255], "도루를 심리극에서 뮤지컬로 변모시키는 남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단순히 많이 뛰는 것보다 성공률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256] 2001년에는 시즌 26도루, 도루 성공률 100%를 기록하기도 했다. 메이저 리그에서도 높은 도루 성공률을 유지하며 통산 85.0%의 성공률을 기록, 2013년 종료 시점 기준으로 메이저 리그 역대 8위에 랭크되었다. 라쿠텐 이글스 이적 후에도 빠른 주루는 변함없었고, 2011년 캠프에서는 팀 내 젊은 선수들보다 빠른 베이스 러닝 능력을 보여주었다.[258] 2011년 개막 전 기준으로 306도루, 도루 성공률 81.4%를 기록하며 300도루 이상 기준 일본 역대 2위에 오르기도 했다.[259]

수비에서도 마쓰이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세이부 시절에는 유격수로서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를 활용한 수비를 선보였으며,[260][262] 특히 강한 어깨는 히가시오 오사무 감독으로부터 "투수를 해도 1이닝 정도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프로 입단 초기에는 수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4번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266] 메이저 리그 진출 후에는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 2006년에는 DRS와 UZR에서 플러스 점수를 기록하며 뛰어난 수비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9년에는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에게 주어지는 "디펜시브 플레이어 오브 더 이어" 후보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라쿠텐 이적 후에는 유격수와 2루수를 번갈아 맡으며 팀 수비에 기여했다.

마쓰이의 신체 능력은 야구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발군의 순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미야모토 에이지는 그의 근육을 "고무공 같다"고 극찬했다.[329][330] 기요하라 가즈히로는 "육상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 거야"라며 그의 운동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331] 호시노 센이치 또한 "신체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칭찬했다.[332] 2009년 나가시마 시게오 드림 프로젝트에서는 악력 측정에서 참가 선수 중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333] 30미터 달리기를 3초 6에 주파하는가 하면,[334] 다리 근육 파열 부상에도 100미터를 12초대에 주파한 적도 있다.[336] 또한 스쿼트에서는 체중의 약 2배에 달하는 160kg의 바벨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뛰어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완성된 마쓰이 가즈오의 화려한 플레이는 많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299][300] 그는 기본에 충실한 플레이를 통해 어려운 타구를 쉽게 처리하는 수비를 추구하며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301]

6. 1. 타격

마쓰이는 광각으로 타구를 쳐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238], 콤팩트한 스윙으로 타구를 스탠드까지 날려 보낼 능력을 갖추고 있다[239]. 낮은 공을 잘 쳤으며[240], 2014년에는 바깥쪽 코스에 대해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241].

프로 입단 초기에는 출루율을 높이기 위해 공에 맞추는 타격을 했지만, 풀 스윙을 중시하면서 장타력이 개화했다. 2001년의 타격 성적에 대한 반성에서, 장타력을 늘리기 위해 연구하고 시도했다. 방망이를 눕히지 않고 헤드를 넣지 않도록 한 것이 그 중 하나이며, 안쪽 공에 밀리는 일이 줄어들어 미트하는 확률도 높아졌고, 축도 안정되어 비거리가 늘었다[242]. MLB 이적 후 2007년에는 배트 스피드를 향상시킨 것으로 인해 컨택트 능력이 향상되었다. 빠른 공에 강하며, 변화구에 대한 대응도 진보했다. 스윙은 다소 크지만 배트 컨트롤이 뛰어나 어려운 공을 파울로 만들어 깊은 카운트까지 끌고 가는 능력에 뛰어나다[243]. 2008년에는 역 방향으로의 장타가 늘어, oWAR와 OPS, OPS+, wOBA, wRC+ 등에서 MLB 자기 최고 기록을 세웠다[244].

초회 선두 타자 홈런이 많아 선두 타자 홈런의 달인이라고도 불렸다[245]. 일본에서의 통산 초회 선두 타자 홈런 수는 현역 선수 중 최다이며[246], MLB에서도 통산 9개의 초회 선두 타자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한 근력 향상으로, 1998년에는 9홈런이었던 것이 2000년에는 23홈런으로 증가했다. "홈런을 칠 수 있는 타격을 연구했다"는 2002년에는 전년보다 12개 증가한 36홈런을 기록했으며, 같은 해의 미일 야구에서도 MLB의 무거운 공으로 2홈런을 쳤다[248]. 2000년부터 세이부 최종해인 2003년까지 시즌 20홈런 이상, 특히 최종 2년은 모두 리그 4위, 일본인 리그 2위의 홈런을 쳤으며, MLB 이적 1년차에도 전반기만 7홈런을 기록했지만, 로키스 이적 후에는 "로키스 이적 후에는 오히려 파워는 버리고, 견실한 1, 2번 타자로서의 역할을 재인식하면서, 다시 빛나기 시작한 인상을 받았습니다."라는 질문에 대해, "일본에서는 파워 히터도 아닌데, 그렇게 홈런을 칠 수 있었고, 타순도 3번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진짜 자신이 아닌 자신을 만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메이저에서 해나가면서 깨달은 것은, 타구의 비거리는 얼마든지 더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메이저에서도 진짜 자신이 아닌 자신을 추구해 버리면, 그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메이저에서는 진짜 자신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소중히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제 경우에는, 예를 들어 상대가 싫어하는 타격이라든지, 언제든지 달릴 수 있는 적극적인 도루라든지. 자신을 특징짓고, 그 부분을 늘려나가려고 하면, 서서히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팀의 밸런스에서는, 홈런 타자도 필요하지만, 리드오프맨도 필요합니다.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 그것을 알고, 그것을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249]. MLB 시대에는 세이부 시대보다 스윙을 작게 했으며, 2011년부터 일본 복귀가 결정된 직후에는 조금 스윙을 크게 하겠다고 말했다[250].

젊은 시절에 세이부의 타격 코치로서 마쓰이를 지도했던 타니자와 켄이치에 따르면, 마쓰이는 우타석에서는 몸이 스웨이하는 경향이 있었고, 좌타석을 시켜보니 몸의 축이 흔들리지 않고 좋은 형태로 칠 수 있었으며, 그 후 본격적으로 양타를 시도했다고 한다. 과거의 스위치 히터는 찍어치는 타법이 많았지만, 마쓰이는 몸의 회전을 잘 활용하여 강한 타구를 쳤으며, 장타를 양산할 수 있는 것은 이 폼 덕분이라고 타니자와는 마쓰이의 폼을 해설하고 있다(폼은 메이저 이적 전 세이부 시대의 것)[251]. 또한 메츠 시대의 마쓰이의 폼에 대해서는 테이크백 시 자세가 너무 숙여져서, 스텝이 넓어지고 허리가 돌아가지 않아 손으로만 치는 타구가 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252].

로키스 시절에 MLB 스카우트로부터 "번트 실력은 메이저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호시노 센이치로부터는 "단점을 찾자면 번트를 못 치는 정도."라고 평가받았다.

우타석에 들어갈 때와 좌타석에 들어갈 때 의식적으로 다른 인격을 연기하며, 우타석일 때는 "바보 같고 멍청한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좌타석일 때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려고 했다고 한다[253].

6. 2. 주루

마쓰이는 30미터 달리기를 3.6초에 주파하며, 메이저 리그 이적 전에는 1루까지 3초 중반, 이적 후에도 4.0초를 기록하는 빠른 발을 자랑했다.[254] 베이스 러닝에 대해서도 "엄청 빠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도루는 홈런을 친 것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말하며 도루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고, "루상의 굶주린 늑대"[255], "도루를 심리극에서 뮤지컬로 변모시키는 남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많이 뛰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는 것. 그렇지 않으면 뛸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256] 2001년에는 시즌 26도루, 도루 성공률 100%를 기록했으며, 2002년 개막 전까지 통산 309도루, 도루 성공률 84.1%를 기록했다. 높은 도루 성공률은 다른 선수들과의 속도 차이에서 비롯된다.[257]

미국 메이저 리그 이적 후에도 2007년에는 32번의 도루 중 실패가 4번 뿐이었으며, 같은 해까지 도루 시도 71회 중 62회 성공했다.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는 마쓰이가 1년에 150경기를 뛸 수 있다면 60도루 이상을 기록할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메이저 리그 통산 도루 성공률은 85.0%(102도루)로, 2013년 종료 시점 기준으로 메이저 리그 역대 8위에 해당한다.

라쿠텐 이적 후에도 빠른 주루는 여전했다. 2011년 캠프에서는 베이스 러닝, 노크 시 포구 후 송구 동작에서 팀 내 젊은 선수들보다 빠른 수치를 기록했고,[258] 2013년 캠프에서도 30미터 달리기에서 팀 내 2위를 기록했다. 2011년 개막 전 기준으로 306도루, 도루 성공률 81.4%를 기록하며 300도루 이상 기준 일본 역대 2위에 올랐다.[259] 2014년 종료 시점에는 345도루, 도루 성공률 81.8%, 일본과 미국 통산 447도루, 도루 성공률 82.5%를 기록했다.

일반적인 선수는 2루 도루 시 양발을 1, 2루를 잇는 라인에 맞춰 평평하게 리드를 잡지만, 마쓰이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미는 클로즈 스탠스를 취한다. 이는 왼발의 비트는 양을 늘려 폭발력을 만들어내고, 빠르게 최고 속도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이다. 당시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였던 나가이케 야스오는 마쓰이의 클로즈 스탠스에 대해 "다른 선수들은 왼발이 흘러 2루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뻗을 수 없다", "고관절과 무릎이 부드러우면서 강함도 겸비했기 때문에 왼발을 일직선으로 뻗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드 폭은 사가와 료나 가타오카 야스히로에 비해 짧은 편이다. 마쓰이 본인도 35세 때 "(어린) 사가와의 저 정도 리드는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당시 홍백전에서 평소보다 0.15m 짧은 3.15m의 리드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스타트로 2루 도루를 성공시켰다.

6. 3. 수비

마쓰이 가즈오는 메이저 리그 이적 전 세이부에서 유격수만을 맡았으며[260], 다른 수비 위치는 경험이 없었다[261]。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 등 뛰어난 신체 능력을 활용한 수비를 선보였다[262]。특히 강한 어깨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세이부 시절 감독이었던 히가시오 오사무는 "투수를 해도 1이닝 정도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고 150km/h는 넘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코치였던 스도 유타카는 "저런 어깨는 본 적이 없었다. 요미우리 코치 시절 카와노 카즈마사가 강견 유격수로 불렸지만 비교가 안 됐다. 마치 메이저 리거 같았다"라고 극찬했다. 2군 감독 쿠로에 토시오 또한 "움직임이 좋고 어깨가 강하며, 유격수에게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라고 칭찬했다[263]。1999년 올스타 스피드건 콘테스트에서는 구속 150km/h를 기록했고[264][265], 세이부 제2 구장에서 원투 테스트를 했을 때는 120m 밖의 백스크린을 넘기는 장거리 투구를 선보였다.

프로 입단 초기에는 수비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스도와 함께 글러브 움직임을 연습하고 코사카 마코토의 움직임을 참고하며 수비 능력을 향상시켰다. 유격수로 전향한 후 포지셔닝, 포구, 송구 등 수비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 4번의 골든 글러브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으며[266],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러한 성과가 재능이 아닌 노력의 결과임을 강조했다[267]。일반적으로 2루수가 중계 플레이를 하는 라이트 방향 송구를, 세이부 시절에는 츠지 하히코의 어깨 상태로 인해 마쓰이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3유간 깊숙한 땅볼을 노스텝으로 1루에 송구하여 아웃시키는 플레이도 자주 보여주었으며, 본인 역시 3유간으로 굴러가는 타구는 모두 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1루 주자가 홈으로 쇄도할 때, 마쓰이의 강한 어깨에 막혀 아웃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그가 수비할 때는 "내야 안타는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왔다[269]。세이버매트릭스 전문가들 또한 마쓰이의 수비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270]

일본 프로 야구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던 그의 어깨는,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들에게는 평범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271][272]。하지만 송구 정확도, 필딩, 수비 범위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양한 각도에서 정확한 송구가 가능했고, 잡고 던지는 동작 또한 빨랐다。수비 범위는 2001년과 2003년 모두 평균 이상으로 평가받았으며, 첫 발의 움직임이 빨라 넓은 범위를 커버했다. 필딩 능력 또한 평균 이상으로 평가받았으며, 글러브 핸들링, 점프력, 타구 판단, 민첩성, 바디 컨트롤 모두 뛰어났다. 2001년에는 "수비에서 톱 4-5 안에 드는 유격수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03년에는 골드 글러브 수상 가능성까지 언급되었다。1996년 미일 야구 당시 칼 립켄 주니어는 "3년차 선수치고는 글러브 핸들링이 훌륭하다. 경험을 쌓으면 더 잘할 것이다"라고 칭찬했으며, 알렉스 로드리게스 또한 "유격수로 전향한 지 3년밖에 안 됐는데 스피드와 풋워크가 모두 훌륭하다"라고 평가했다。

메이저 리그는 천연 잔디 구장이 주류인 반면, 일본 프로 야구는 인조 잔디나 흙 구장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적응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274]。실제로 메이저 리그 첫 해에는 구장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타구 접근 방식이 일본 시절과 달라지기도 했다[275]。시즌 중반부터는 일본 시절의 감각을 되찾았지만, 2루수 전향을 통보받았다[276]

2루 수비에서도 2005년 시즌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277], 2006년에는 DRS와 UZR에서 플러스 점수를 기록했고, 2007년에는 골드 글러브급 선수로 평가받았다[278]。인조 잔디에서 오래 뛰었던 탓에 타구를 기다려 잡는 습관이 있었지만, 천연 잔디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풋워크가 향상되었다。민첩성이 뛰어나고 움직임이 부드러웠으며, 특히 1-2루 간 타구에 강점을 보였다。2008년에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279], 2009년에는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에게 주어지는 "디펜시브 플레이어 오브 더 이어" 후보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리그 2위이자 팀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수비율 .991[280], 더블 플레이 달성 2위를 기록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281], DRS와 UZR은 2008년에 평균 이하였고 2009년에는 평균 수준이었다. 메이저 리그 통산 2루수로서 DRS 2, UZR 5.6, 유격수로서 DRS -7, UZR -12.7을 기록했다. 유격수 시절에는 DPR(병살)에서만 플러스 점수를 기록했지만, 2루수로는 DPR, RngR(범위), ErrR(실책) 모두 플러스 점수를 기록했다[282]。레인지 팩터는 2004년 유격수 리그 3위, 2007년과 2009년에는 2루수 리그 1위를 기록했다.

라쿠텐 이적 후에는 유격수와 2루수로 번갈아 출전했다. TV 프로그램 스포르트! (2012년 11월 28일 방송)의 "프로 야구 선수 100명이 뽑은 1/100" 수비 부문에서 3위를 차지했고[283], WBC일본 대표팀 동료 사카모토 하야토는 "마쓰이 씨가 던지는 공은 위력이 있어서 무섭다. 컨트롤도 정확하고 레벨이 다르다"라고 감탄했다。2013년에는 유격수로 규정 경기 수를 채웠으며[284], DELTA에서 산출한 DP(병살), ErrR(실책)은 유격수로서 평균 이상이었지만, RngR(범위)는 평균 이하였다[285]。전성기에 비해 어깨 힘과 수비 범위는 줄었지만, 안정적인 수비와 빠른 송구는 여전했다[286]

2013년 WBC 일본 대표팀 합숙에서는 처음으로 3루수를 맡았고[287], 2014년에는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3루 수비 연습을 시작, 5월 4일 처음으로 3루수로 출전했다[288]。같은 해, 스스로 외야 수비에 도전하여[289], 8월 21일 처음으로 좌익수 수비를 맡았다. 2015년에는 등록 포지션을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변경하며 본격적인 외야수 생활을 시작했다[290]。외야 수비에 대해 오츠카 코지는 타구 판단과 포구 후의 속도를 칭찬했으며, 중견수로 호흡을 맞춘 세이자와 료는 "타구 판단, 발의 빠르기, 야구 센스 모든 것을 갖췄다. 커버링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엄청나게 잘하는 우익수라고 생각한다"라고 극찬했다[291]。2015년 400이닝 이상 출전한 우익수 중 UZR 9.7로 리그 1위를 기록했다[292]

손목 사용 능력은 일본 프로 야구 12개 구단 최고로 평가받았다. 어깨와 팔꿈치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스냅 스로우를 활용, 불리한 자세에서도 몸의 균형을 잡고 정확한 송구를 할 수 있었다. 백핸드 토스 기술 또한 뛰어났는데, 3루수로 출전한 6월 13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3-2루 간 땅볼을 잡아 2루로 약 25m 거리의 백핸드 토스 송구로 2루 주자를 잡아냈다[293][294][295][296][297]。2015년부터 외야수로 전향하면서는 내야수 특유의 옆으로 던지는 스냅 스로우를 사용하지 않았다[298]

마쓰이의 플레이는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299][300]

그는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에 어려운 타구를 쉽게 처리하는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 진정한 프로의 수비"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301]

6. 4. 신체 능력

마쓰이 가즈오의 뛰어난 신체 능력은 주변에서 모두 인정하며, 일본인으로서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324]. 과거 다카기 다이세이는 "현재 프로 야구 선수 중에서 자율 훈련 없이 캠프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는 가즈오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자율 훈련 "마쓰이 가주쿠"에 참가한 다카야마 히사시가 너무 힘들어 포기했을 정도로, 실제로는 매우 힘든 자율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325]. 메츠 시절에는 잦은 부상과 그로 인한 훈련 부족으로 신체 능력과 주력이 저하되었다[326].

2011년 당시 체지방률은 12%였다. 젊은 시절에는 체지방률이 한 자릿수였다고 하며, 젊은 선수 못지않은 훈련으로 육체의 쇠퇴를 방지하고 있다고 한다[327]. 2014년에도 10%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328].

마쓰이 가즈오는 발군의 순발력을 가지고 있다. 근육을 구성하는 근섬유는 지구력에 뛰어난 지근섬유와 순발력과 스피드를 만들어내는 속근섬유로 나뉘는데, 미야모토 에이지는 마쓰이가 특히 속근섬유가 뛰어나다고 분석하며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일류 운동선수가 될수록 속근섬유는 부드럽지만, 가즈오의 것은 고무공 같다. 그 부드러움은 근육 번개에서 함께 만져본 힉슨 그레이시와 같다", "탄력 있는 근육인데, 힘을 꽉 주면 딱딱해진다. 그때 엄청난 힘이 나온다. 다른 스포츠를 포함하여 다양한 선수들을 봐 왔지만, 이런 근육은 처음이다"[329][330]. 또한 "어떤 스포츠를 해도 최고가 될 수 있다", "지구력 계통은 힘들지도 모르지만, 육상 단거리, 투척, 럭비도 가능하다. 격투기를 해도 강할 것이다", "만약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단거리 달리기나 레슬링, 순발력 계통 종목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요하라 가즈히로는 세이부 시절에 "저 녀석은 육상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 거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라고 말했다. 스포츠맨 No.1 결정전 때에도 "프로 야구 선수는 아깝다. 육상 선수가 더 낫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라고 말했다[331]. 한 대학의 육상 관계자는 마쓰이의 대시 연습을 보고 "30미터까지라면 일본 단거리계에서도 최고 수준이다"라고 진지하게 평가했다고 한다.

호시노 센이치는 "가즈오의 가장 대단한 부분은 신체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과거 선수들과 비교해도 그 능력은 최고다"라고 칭찬했다[332].

2009년에 나가시마 시게오 드림 프로젝트 2009에 참가했을 때, 악력 측정에서 출전 선수 중 최고인 77.3kg을 기록했다[333].

30미터 달리기를 3초 6에 주파한 적이 있으며[334], 2013년 캠프에서의 30미터 달리기에서는 세이자와 료에 이어 팀 2위를 기록했다[335].

다리에 근육 파열이 있는 상태로 100미터를 12초대에 주파한 적도 있다[336].

2011년 시즌 종료 후 오프 시즌에 방송된 TV 프로그램 "신춘! 명구회 골프 in 대만"의 "일구입혼! 스피드건 대결!"에 왕 팀의 마지막 주자로 출전, 137km/h를 기록하여 왕 팀의 역전승을 이끌었다[337]. 2014년 캠프에서 불펜에서 투구했을 때에도 최고 137km/h를 기록했다[338].

스쿼트에서는 체중의 약 2배에 해당하는 160kg의 바벨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이는 럭비, 유도 등 파워 계열 스포츠 선수의 기록에 해당한다.

배구공을 사용하면 덩크 슛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점프력은 충분하지만 한 손으로 농구공을 잡을 수 없어 배구공으로 시도해 성공했다고 한다[339].

7. 인간 관계

마쓰이 가즈오는 '중앙에서 선두에 서서 활약한다'는 의미를 담은 '가즈오'라는 등록명을 사용했다.[365]

부인은 기쿠치 미오이며, 슬하에 두 아이를 두고 있고, 장녀인 마쓰이 하루나는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366] 마쓰이 부인은 UCC 우에시마 커피 광고에 나카무라 타마오와 함께 출연했고, 마쓰이 본인도 UCC 슈퍼 2 광고에 출연했다. 부인의 육촌으로는 이가라시 슌지가 있다.

로키스 시절 팀 동료였던 토드 헬튼은 1995년 시즌 오프 하와이 윈터 트레이닝 마우이 스팅레이즈에서도 함께 뛰었다. 헬튼은 당시 마쓰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의 수비 능력, 특히 피칭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마쓰이는 헬튼으로부터 "데드볼 보복이 있을 테니, 그만둬라"라는 충고를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367] 헬튼은 마쓰이를 "내가 같이 뛰어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칭찬했다.

메츠 시절 유격수 콤비였던 호세 레이예스와는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며 항상 함께 했다.[368] 레이예스는 마쓰이의 로키스 이적 소식을 듣고 그가 부상으로 고생했던 점을 안타까워하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369] 레이예스는 마쓰이의 은퇴 소식을 듣고 "그는 훌륭한 선수였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노력했다."라며 존경심을 표했다.

마쓰이는 농구테니스를 즐기며,[370] 중학교 시절에는 농구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371]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농구 선수를 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372] 다른 스포츠를 통해 다양한 움직임을 흡수하고 야구에 응용한다고 한다.[373]

브루스 리를 좋아하고,[374]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야구와 함께 소림사 권법을 배우기도 했다.[375]

같은 오사카 출신 동갑내기인 우에하라 고지와는 매우 친밀한 사이로,[376] 함께 연습하거나 식사를 자주 한다.[377][378] 2003년 올스타 게임에서는 전 구종 스트레이트 승부를 펼치기도 했다.[379] 우에하라 고지는 마쓰이에 대해 "정말 대단한 분"이라며 "야구에 대한 자세가 남달랐다. 늘 존경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우에하라가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부진했을 때, 마쓰이에게 조언을 구했고, 마쓰이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격려해줬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하라 타츠노리를 좋아했으며,[380] 고등학교 선배인 미야모토 신야를 동경하는 선수로 꼽는다. 한때 20개가 넘는 시즌 실책에 위기감을 느껴 미야모토에게 조언을 구했고, 송구 안정 방법과 포구 자세에 대한 세심한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381] 미야모토 신야는 마쓰이와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는 항상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였다. 그의 리더십은 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2013년 라쿠텐 입단한 앤드루 존스, 케이시 맥기가 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캠프 때부터 적극적으로 다가가 배려했다. 존스는 "마쓰이는 정말 세심하게 배려해준다. 덕분에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고, 맥기도 "항상 농담을 던져준다. 이국 땅에서 뛰는 우리 입장을 알고 있는 것이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382] 존스는 메이저 리그에서 마쓰이와 대결한 경험이 있어 이전부터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383] 존스는 일본 시리즈 이동일에 마쓰이의 자택을 방문해 팀 동료들과 함께 홈 파티를 열기도 했다.[384]

전 팀 동료이자 연습 파트너였던 쿠마자와 토오루는 마쓰이를 "노력할 수 있는 재능과 용기를 가진 선수"라고 평가했다.[385] 세이부 시대 감독 히가시오 오사무는 "다른 사람의 5배 연습했다. 익숙하지 않은 수비와 좌타가 2배씩으로 우타만 보통이다."라고 칭찬했으며,[386] 일미 통산 2000안타 달성 당시 "스위치히터와 수비, 어쨌든 몇 배나 연습해온 선수. 메이저 리그에서 부상 등 고생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달성한 숫자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언급했다.[387]

라쿠텐 시절에는 "'''BURN!'''"(번)이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는 메이저 리그 시절 동료의 움직임을 따온 것으로, 오른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려다 뒤로 빼는 동작이다. 이름은 공모를 통해 결정되었다.[388]

7. 1. 가족

마쓰이 가즈오의 부인은 기쿠치 미오이며, 슬하에 두 자녀가 있다. 장녀 마쓰이 하루나는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366] 기쿠치 미오는 UCC 우에시마 커피의 슷토차 광고에 나카무라 타마오와 공동 출연했으며, 마쓰이 가즈오 또한 UCC 우에시마 커피의 UCC 슈퍼 2 광고에 출연했다. 기쿠치 미오의 육촌으로는 이가라시 슌지가 있다.

7. 2. 동료 선수 및 지도자

토드 헬튼은 마쓰이를 "내가 같이 뛰어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칭찬했다. 호세 레예스는 마쓰이의 은퇴 소식을 듣고 "그는 훌륭한 선수였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노력했다."라며 존경심을 표했다.

우에하라 고지는 마쓰이에 대해 "정말 대단한 분"이라며 "야구에 대한 자세가 남달랐다. 늘 존경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우에하라가 부진할 때 마쓰이에게 조언을 구했고, 마쓰이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격려해줬다고 한다. 우에하라는 이 조언 덕분에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미야모토 신야는 마쓰이와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는 항상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였다. 그의 리더십은 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8. 평가

마쓰이 가즈오는 일본 프로 야구계와 언론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가 2000년부터 매 시즌 오프에 실시하는 '선수가 뽑는! 베스트 나인'에서 퍼시픽 리그 유격수 부문에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 연속 선출되었고[310], 2013년에도 선정되었다[311]. 과거 센추리 베스트 나인에도 이름을 올렸으며[312],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고의 유격수 중 한 명으로 불리기도 했다[313][314].

수비 능력에 있어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주간 베이스볼에서 실시한 『구계 200명이 뽑은! 내야 수비 랭킹』에서 유격수 3위에 올랐고[317], 텔레비전 프로그램 스포르토! (2012년 11월 28일 방송)의 '프로 야구 선수 100명이 뽑는 1/100' 수비 부문에서도 3위를 기록했다[318].

마쓰이는 선수 생활 동안 다양한 등번호를 사용했는데, 32번(1994년 ~ 1996년, 2011년), 7번(1997년 ~ 2003년, 2007년, 2012년 ~ 2018년), 25번(2004년 ~ 2006년 시즌 도중), 16번(2006년 시즌 도중 ~ 2010년 시즌 종료), 3번(2008년 ~ 2010년), 77번(2019년 ~ 2024년)을 달았다.

MLB EloRater에서는 메이저 리그 역대 일본인 야수 중 3위에 랭크되기도 했다[318]. 니노미야 기요스미는 자서전에서 마쓰이가 세이부에 있을 당시 감독이었던 히가시오 오사무로부터 롯데 감독 바비 밸런타인이 마쓰이와의 트레이드를 제안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319]. 히가시오 또한 95년 시즌 중 밸런타인 감독으로부터 트레이드 제안이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메이저 감독 경력이 있는 밸런타인이 반할 정도의 힘이 2년차의 카즈오에게 있었다"고 말했다[320].

대린 잭슨은 마쓰이의 어깨에 대해 "믿을 수 없는 어깨", "마치 이치로 같은 어깨"라고 극찬하며[321], "이 소년은 정말 강했다. 마쓰이는 강함, 컨디셔닝, 스피드 등 모든 면에서 모든 선수를 능가했다. 모든 선수 말이다. 그는 팀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였다"[322], "최고의 어깨를 가지고, 가장 빠른 발을 가지고, 탄환 라이너로 어디든지 타구를 날리고 있었다"[323]라고 평가했다.

가네무라 요시아키는 "연습을 보고 있으니 엄청난 신체 능력이구나 하고 깜짝 놀랐다.", "22년간 야구에 종사해 왔는데, 걔는 넘버원이다. 스피드, 파워, 그리고 마음도 초일류.", "세이부에 온 선수들이 모두 놀라는 것은 가즈오의 파워와 스피드다. 외국인 선수들까지 뒤집어질 정도다."라고 감탄했다.

마쓰이는 선수 시절 Theme from Enter the Dragon(Main Title) - 라로 시프린과 TRUTH - THE SQUARE를 등장곡으로 사용했다.

마쓰이는 선수 시절 외에도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는데, NANDA!?(TV 아사히), 힘내라 일본 프로 야구!?(J 스포츠), 27시간 챌린지 TV(TV 아사히), 웃짱 난짱의 불꽃 챌린저 이것이 가능하다면 100만엔!!(TV 아사히), 최강의 남자는 누구인가! 장절 근육 배틀!! 스포츠맨 No.1 결정전(TBS) 등에 출연했다.

또한, UCC 우에시마 커피 UCC 슈퍼2, 오츠카 제약 아미노 밸류 (공동 출연: 나카마 유키에), 산토리 데카비타 C (공동 출연: 후카다 쿄코) 등 다양한 CM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메이저 최종 병기 - 나의 결단 -』, 『3000안타의 저편』 등의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413].
수상 내역


  • 최우수 선수: 1회 (1998년)
  • 베스트 나인: 7회 (1997년 - 2003년) ※7년 연속 수상은 유격수 최장 기록. 수상 횟수도 유격수로서 퍼시픽 리그 최다이며 역대 2위와 타이다.
  • 골든 글러브상: 4회 (1997년, 1998년, 2002년, 2003년)
  • 월간 MVP: 6회 (타자 부문: 1996년 9월, 1999년 9월, 2002년 6월, 2002년 9월, 2011년 8월, 2014년 8월)
  • 퍼시픽 리그 연맹 특별 표창: 2회 (특별상: 2002년[404], 공로상: 2018년)
  • 월간 사요나라상: 2회 (2012년 9월, 2014년 9월)
  • "조지아 혼"상: 1회 (2011년도 제6회)
  • 올스타전 MVP: 2회 (1997년 제1전, 2001년 제1전)
  • 일본 시리즈 감투상: 1회 (1997년)
  • 센추리 베스트 나인 (유격수)
  • 호치 프로 스포츠 대상: 2회 (1997년, 2002년)
  • 미일 야구 2002 시리즈 감투상 (2002년)[405]

9. 기타 정보

마쓰이 가즈오에 대한 기타 정보는 다음과 같다.

선수 시절 마쓰이 가즈오의 등장곡은 다음과 같다. Theme from Enter the Dragon (Main Title) - 라로 시프린, TRUTH - THE SQUARE를 사용했다.
방송 출연마쓰이 가즈오는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출연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 NANDA!?(TV 아사히)
  • 힘내라 일본 프로 야구!?(J 스포츠)
  • 27시간 챌린지 TV(TV 아사히)
  • 웃짱 난짱의 불꽃 챌린저 이것이 가능하다면 100만엔!!(TV 아사히)
  • 최강의 남자는 누구인가! 장절 근육 배틀!! 스포츠맨 No.1 결정전(TBS)
  • 톤네루즈의 덕분입니다 신・입맛 까다로운 왕 결정전(1998년 1월 29일, 후지 텔레비전) - 마키세 리호와 대결.
  • GET SPORTS(2000년 5월 7일, TV 아사히)
  • 타임 쇼크 21(2001년 1월 15일, TV 아사히)
  • JUNK SPORTS(2001년 1월 30일, 후지 텔레비전)
  • 톤네루즈의 덕분입니다 신・입맛 까다로운 왕 결정전 (2001년 11월 22일, 후지 텔레비전) - 랜디 존슨과 대결.
  • VivaVivaV6(2002년 7월 4일, 후지 텔레비전)
  • GET SPORTS (2002년 10월 20일, TV 아사히)
  • VivaVivaV6 (2003년 2월 6일, 후지 텔레비전)
  • 체육 왕국(2003년 2월 22일, TBS)
  • 꿈의 대결! 톤네루즈의 스포츠왕은 나다! 스페셜(2004년 1월 2일, TV 아사히)
  • SMAP×SMAP(2004년 1월 26일, 후지 텔레비전)
  • 정열 대륙(2004년 3월 28일, TBS)
  • HERO~히어로즈 마쓰이 히데키&마쓰이 가즈오~NY 야구 소년의 꿈~(2005년 1월 2일, TBS)
  • 우리 올래!?(2005년 12월 25일, 후지 텔레비전)
  • 버스 데이(2007년 11월 8일, TBS)
  • 하나마루 마켓(2007년 12월 20일, TBS)
  • 톤네루즈의 덕분입니다 신・입맛 까다로운 왕 결정전 (2008년 1월 24일, 후지 텔레비전) - 다카시마 아야와 대결.
  • JUNK SPORTS (2008년 1월 27일, 후지 텔레비전)
  • 춤춰라! 산마 어전!!(2010년 12월 14일, 니혼 TV)
  • JUNK SPORTS (2010년 2월 28일, 후지 텔레비전)
  • 2012년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2012년 10월 18일, 10월 19일, STVFBS와의 2국 넷≫) - 파이널 스테이지 제2전, 제3전의 게스트 해설.
  • 불꽃의 체육회 TV(2012년 12월 8일, TBS)
  • 쾌뇌! 매지컬 하테나(2013년 5월 16일, 니혼 TV)
  • 새해맞이 스포츠 축제! KYOKUGEN2013 (2013년 12월 31일, TBS)
  • VS 아라시(2014년 신춘 호화 2부작 SP (2014년 1월 3일, 후지 텔레비전)
  • 우리 올래!? (2014년 2월 9일, 후지 텔레비전)
  • 선데이 스포츠(2016년 10월 9일, NHK 종합)[412]
  • 사마 스포츠(2018년 2월 24일, 3월 3일, TV 도쿄)

CM 출연마쓰이 가즈오는 다양한 광고에 출연했다.
저서마쓰이 가즈오는 다음과 같은 저서를 남겼다.

  • 『메이저 최종 병기 - 나의 결단 -』 마쓰이 가즈오 저
  • 『마쓰이 가즈오의 내추럴 피트니스』 미야모토 에이지 저
  • 『3000안타의 저편』 마쓰이 가즈오 저[413]

9. 1. 등번호

마쓰이 가즈오는 선수 생활 동안 다음과 같은 등번호를 사용했다.

  • 32번 (1994년 ~ 1996년, 2011년)
  • 7번 (1997년 ~ 2003년, 2007년, 2012년 ~ 2018년)
  • 25번 (2004년 ~ 2006년 시즌 도중)
  • 16번 (2006년 시즌 도중 ~ 2010년 시즌 종료)
  • 3번 (2008년 ~ 2010년)
  • 77번 (2019년 ~ 2024년)

9. 2. 등장곡

선수 시절 등장곡은 다음과 같다.

  • Theme from Enter the Dragon (Main Title) - 라로 시프린
  • TRUTH - THE SQUARE

9. 3. 방송 출연


  • NANDA!?(TV 아사히)
  • 힘내라 일본 프로 야구!?(J 스포츠)
  • 27시간 챌린지 TV(TV 아사히)
  • 웃짱 난짱의 불꽃 챌린저 이것이 가능하다면 100만엔!!(TV 아사히)
  • 최강의 남자는 누구인가! 장절 근육 배틀!! 스포츠맨 No.1 결정전(TBS)
  • 톤네루즈의 덕분입니다 신・입맛 까다로운 왕 결정전(1998년 1월 29일, 후지 텔레비전) - 마키세 리호와 대결.
  • GET SPORTS(2000년 5월 7일, TV 아사히)
  • 타임 쇼크 21(2001년 1월 15일, TV 아사히)
  • JUNK SPORTS(2001년 1월 30일, 후지 텔레비전)
  • 톤네루즈의 덕분입니다 신・입맛 까다로운 왕 결정전 (2001년 11월 22일, 후지 텔레비전) - 랜디 존슨과 대결.
  • VivaVivaV6(2002년 7월 4일, 후지 텔레비전)
  • GET SPORTS (2002년 10월 20일, TV 아사히)
  • VivaVivaV6 (2003년 2월 6일, 후지 텔레비전)
  • 체육 왕국(2003년 2월 22일, TBS)
  • 꿈의 대결! 톤네루즈의 스포츠왕은 나다! 스페셜(2004년 1월 2일, TV 아사히)
  • SMAP×SMAP(2004년 1월 26일, 후지 텔레비전)
  • 정열 대륙(2004년 3월 28일, TBS)
  • HERO~히어로즈 마쓰이 히데키&마쓰이 가즈오~NY 야구 소년의 꿈~(2005년 1월 2일, TBS)
  • 우리 올래!?(2005년 12월 25일, 후지 텔레비전)
  • 버스 데이(2007년 11월 8일, TBS)
  • 하나마루 마켓(2007년 12월 20일, TBS)
  • 톤네루즈의 덕분입니다 신・입맛 까다로운 왕 결정전 (2008년 1월 24일, 후지 텔레비전) - 다카시마 아야와 대결.
  • JUNK SPORTS (2008년 1월 27일, 후지 텔레비전)
  • 춤춰라! 산마 어전!!(2010년 12월 14일, 니혼 TV)
  • JUNK SPORTS (2010년 2월 28일, 후지 텔레비전)
  • 2012년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2012년 10월 18일, 10월 19일, STVFBS와의 2국 넷≫) - 파이널 스테이지 제2전, 제3전의 게스트 해설.
  • 불꽃의 체육회 TV(2012년 12월 8일, TBS)
  • 쾌뇌! 매지컬 하테나(2013년 5월 16일, 니혼 TV)
  • 새해맞이 스포츠 축제! KYOKUGEN2013 (2013년 12월 31일, TBS)
  • VS 아라시(2014년 신춘 호화 2부작 SP (2014년 1월 3일, 후지 텔레비전)
  • 우리 올래!? (2014년 2월 9일, 후지 텔레비전)
  • 선데이 스포츠(2016년 10월 9일, NHK 종합)[412]
  • 사마 스포츠(2018년 2월 24일, 3월 3일, TV 도쿄)

9. 4. CM 출연

마쓰이 가즈오는 다양한 광고에 출연했다.

9. 5. 저서


  • 『메이저 최종 병기 - 나의 결단 -』 마쓰이 가즈오 저
  • 『마쓰이 가즈오의 내추럴 피트니스』 미야모토 에이지 저
  • 『3000안타의 저편』 마쓰이 가즈오 저[4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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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문서 1998년에는 당시 [[지바 롯데 마린스]]의 소속이었던 [[고사카 마코토]]와의 도루왕 타이틀을 놓고 고의성 보크 의혹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417] 문서 다만 [[뉴욕 양키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에 대한 트레이드 통고는 거부권을 파기한다고 말했다.
[418] 뉴스 "[심층인터뷰] 은퇴선언 양준혁의 불꽃 야구 인생" https://sports.news.[...] 신동아 2010-09-24
[419] 뉴스 양준혁, 짐 콜번과 11년만에 해후 https://sports.news.[...] 스포츠조선 2010-02-26
[420] 문서 시즌 4번의 실책, 9할 9푼 2리의 수비율은 2루수로서의 리그 1위가 되는 기록이었다.
[421] 웹인용 ja松井稼頭央選手との契約合意に関して http://www.rakutenea[...] 2014-01-01
[422] 문서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의미로 세이부에 입단했을 당시와 똑같은 등번호를 본인이 희망했다.
[423] 문서 1233경기째의 도달은 일본 프로 야구 역대 최고 속도.
[424] 웹인용 楽天松井稼頭央200本塁打 NPB史上100人目 https://www.nikkansp[...] 2017-04-22
[425] 문서 역대 8번째, 스위치 히터로서는 사상 최초.
[426] 문서 퍼시픽 리그 타이 기록이며, 8년 연속 전 경기 출장은 퍼시픽 리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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