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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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목욕은 개인 위생을 위한 중요한 행위로, 고대부터 다양한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 인도, 중국, 그리스, 로마 등지에서 목욕 시설이 발달했으며, 종교적 의식, 치료, 레크리에이션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정화 의식으로 목욕을 중시했으며, 근대에는 수치료법이 유행하며 치료적 효과가 주목받았다. 현대에는 위생, 휴식, 사회적 교류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목욕 시설이 존재하며, 한국에서는 대중목욕탕(찜질방) 문화가 발달했다. 목욕은 개인 위생 유지, 심신 안정에 도움을 주지만, 과도한 목욕은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으며, 고혈압 환자 등은 주의해야 한다. 일부 동물들도 위생과 체온 조절을 위해 목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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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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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정의 | 액체로 몸을 씻는 행위 |
관련 활동 | 씻기 샤워 목욕 온천 |
방법 및 종류 | |
방법 | 물, 비눗물 또는 기타 액체 사용 헝겊, 스펀지 등을 사용하여 피부를 닦거나 문지름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거나 헹굼 |
종류 | 부분 목욕: 신체의 특정 부분만 씻는 행위 전신 목욕: 몸 전체를 씻는 행위 샤워: 몸 위로 물을 뿌려 씻는 행위 온천: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행위 증기욕: 증기 속에 몸을 두는 행위 좌욕: 엉덩이와 항문 부위를 담그는 행위 |
문화적 측면 | |
위생 | 몸의 더러움, 땀, 박테리아 제거 질병 예방 |
종교적 의미 | 정화 의식의 일부 일부 종교에서는 종교적 목적으로 목욕을 시행 |
사회적 의미 | 휴식과 기분 전환 사회적 상호 작용의 기회 |
다양한 문화 | 각 문화마다 목욕에 대한 다양한 관습과 전통 존재 |
역사 | |
고대 | 고대 문명에서 목욕 문화 발달 공중목욕탕과 개인 욕조 사용 고대 로마의 목욕 시설은 사회적 중심지 역할 |
중세 | 목욕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감소 공중목욕탕 대신 가정 내 욕조 사용 종교적 이유로 목욕을 기피하는 경향 존재 |
근대 | 공중위생에 대한 관심 증가 샤워 시설의 대중화 목욕이 위생과 건강 유지에 중요한 행위로 인식 |
기타 | |
건강 및 안전 | 너무 뜨거운 물로 목욕 시 화상 위험 너무 자주 목욕 시 피부 건조 유발 가능성 개인의 건강 상태에 맞는 목욕법 선택 필요 |
환경적 고려 | 과도한 물 사용은 환경에 부정적 영향 친환경적인 세척제 사용 권장 |
2. 역사
목욕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인도에서는 고대부터 개인 위생을 위해 하루 세 번 목욕하는 관습이 있었고, 중국에서는 상나라 시대부터 목욕 관련 유물이 발견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작은 욕조와 세면대를 사용했고, 고대 로마에서는 수도교를 통해 물을 공급받아 테르마에라는 공중 목욕탕을 이용했다. 테르마에는 단순한 목욕 시설을 넘어 사교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기원전 1세기경부터 중앙아시아에 찜질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중동의 함맘과 러시아, 북유럽의 사우나로 이어졌다.
7세기 이전 일본에서는 야외 온천 목욕이 일반적이었고, 불교 전래 이후 사찰에 목욕탕이 설치되면서 점차 대중화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센토라는 공중 목욕탕이 등장했고, 초기에는 증기 목욕 형태였으나 점차 온탕으로 변화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초기에는 혼탕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위생과 건강을 위해 목욕을 장려했다. 비잔티움 제국과 서유럽에서는 공중 목욕탕이 건설되었고, 수도원에서도 목욕 시설을 운영했다. 중세에는 공중 목욕탕이 매춘의 온상이 되기도 했지만, 부유층은 집에서 나무 욕조를 사용했다.
흑사병 이후 유럽에서는 공중 목욕탕이 쇠퇴하고 개인 목욕이 주류가 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에는 목욕 대신 옷과 향수로 몸을 치장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위생 관념이 변화하면서 다시 목욕이 장려되었고, 19세기에는 샤워가 발명되었다.
스페인 연대기에는 정복 중과 그 이후의 중앙아메리카 지역 주민들의 목욕 습관이 묘사되어 있다.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는 몬테수마 2세가 매일 오후에 목욕을 했다고 기록했다. 목욕은 엘리트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모든 사람들이 행했다. 중앙아메리카식 목욕은 ''테마스칼''(temazcal)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의식적인 중요성도 가지고 있었으며, 여신 토치와 관련이 있었다. 또한 약초를 물에 사용하여 치료 효과도 있었다.
고대 유대인에게 목욕은 사회적 의무였으며, 몸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모세 율법에도 포함되어 있다. 탈무드에는 "유대인은 공공 목욕탕이 없는 마을에는 살지 않는다" 등 목욕에 관한 자세한 규정이 있다.
일본에서는 신도(神道)와 불교(仏教)의 영향으로 목욕을 통해 때(垢)를 벗겨내는 것은 세속의 더러움과 함께 마음속의 때(소위 "번뇌")도 씻어낸다고 믿어 왔다.
한의학자들 사이에서는 목욕 습관이 널리 퍼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고방파라고 불리는 의사들은 실증주의 관점에서 적당한 목욕은 기의 순환을 좋게 하고 체내의 독물을 외부로 배출하는 것을 돕는다고 주장했고, 란방의도 피부에 때가 부착하는 것의 위험성을 논하며, 「목욕 해독론」을 비판하고 있다.
2. 1. 고대
고대 인도에서는 개인 위생을 위해 하루 세 번 목욕하는 관습이 있었으며, 이는 그리햐 수트라에 기록되어 있다. 힌두교에서는 새벽 4시 "스나남" 또는 목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매우 길조로 여겨졌다.[77]
기원전 2600년경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에는 대규모 공중 목욕탕이 있었다. 고대 인도 16대국 중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에는 온천이 많았고, 죽림정사 근처에는 온천이 있는 불교 승원(Tapodarama)이 있어 요양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중국의 목욕은 상나라 시대(기원전 1600~104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 은허 유적에서는 물을 끓이는 가마솥, 물을 퍼내는 작은 가마솥, 각질 제거 도구 등이 발견되었다. 시안에서는 2300년 된 황실 욕실이 발견되었는데, 정교한 타일과 하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2] 한나라(기원전 202년~서기 220년)에는 관리들이 5일에 한 번씩 목욕을 위해 휴가를 받았으며, 목욕이 공휴일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개인 위생을 위해 작은 욕조, 세면대, 발 씻는 곳을 사용했다. 크노소스 궁전 단지에서는 기원전 2천년 중반의 욕조가 발견되었으며, 아크로티리에서는 대리석 욕조가 발굴되었다. 후대 그리스인들은 체육관 안에 공중 목욕탕과 샤워 시설을 설치하여 휴식과 개인 위생을 위해 사용했다.
고대 로마는 수도교망을 개발하여 모든 대도시와 인구 밀집 지역에 물을 공급했다. 로마 공중 목욕탕인 테르마에는 단순한 목욕 시설이 아니라, 다양한 체육 활동과 세정 시설, 강의와 토론을 위한 방, 도서관 등을 갖춘 중요한 공공 시설이었다. 테르마에는 사회적 교류와 공동체 구성원 간의 교류의 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4] 217년에 만들어진 로마의 카라칼라 대욕장은 2000명 이상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는 규모였다.
기원전 1세기경부터 중앙아시아에 찜질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동에서는 이 찜질방이 공중목욕탕(함맘)이 되었고, 러시아와 북유럽으로 전해져 사우나의 원형이 되었다.
2. 2. 중세 및 근대
7세기 이전 일본에서는 폐쇄된 공간에 대한 증거가 없으므로, 사람들은 많은 온천에서 야외 목욕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6세기부터 8세기까지( 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전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불교 사찰에는 전통적으로 승려들을 위한 목욕탕(유야(湯屋))이 있었다. 불교가 강조하는 청결의 원칙 때문에 이러한 목욕탕은 결국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사적인 목욕탕은 부유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최초의 공중목욕탕은 1266년에 언급되었다. 에도(현재의 도쿄)에서는 1591년에 최초의 센토가 설립되었다. 초기의 증기 목욕탕은 이와부로(岩風呂, "암석 탕") 또는 카마부로(釜風呂, "가마솥 탕")라고 불렸다. 이들은 자연 동굴이나 돌로 만든 아치형 공간에 만들어졌다. 해안가의 이와부로에서는 나무를 태워 바위를 가열한 다음, 바위에 바닷물을 부어 증기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목욕탕"의 입구는 매우 작았는데, 아마도 열과 증기의 빠른 방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창문이 없었기 때문에 내부는 매우 어두웠고, 사용자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이미 사용 중인 자리를 알리기 위해 계속해서 기침을 하거나 헛기침을 했다. 어둠은 성적 접촉을 은폐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었다. 성별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목욕탕은 좋지 않은 평판을 얻었다. 결국 1870년에 위생 및 도덕적 이유로 폐지되었다.[5]
에도 시대 초(1603~1868년)에는 두 가지 종류의 목욕탕이 있었다. 에도에서는 온탕(湯屋, 유야)이 일반적이었고, 오사카에서는 증기탕(蒸風呂, 무시부로)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남녀 공용 목욕탕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목욕탕은 특히 남성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 "목욕하는 여자"(湯女, 유나)는 손님들의 등을 밀어주고 머리를 감겨주는 등의 일을 했다. 1841년에 유나의 고용과 함께 혼탕이 일반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성별 분리는 목욕탕 운영자들에 의해 종종 무시되거나 남녀 구역이 상징적인 선으로만 구분되었다. 오늘날 센토 목욕탕은 남녀 구분된 탕을 갖추고 있다.[6]


기독교는 위생에 큰 비중을 두었다.[8] 초기 기독교 성직자들이 로마식 공중 목욕탕의 혼탕 방식을 비난하고, 남성 앞에서 여성이 알몸으로 목욕하는 이교도 관습을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신자들이 공중 목욕탕에 가서 목욕할 것을 촉구했다.[9] 교부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터툴리아누스에 따르면 목욕은 위생과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교회는 또한 수도원과 순례지 근처에 남녀 구분된 공중 목욕탕 시설을 건설했으며, 초기 중세 이후로 교황들은 교회 바실리카와 수도원 내에 목욕탕을 설치했다.[10]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목욕을 신체적 필요로서 강조했다.[11]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안티오키아와 같은 중심지에는 대규모 목욕탕이 건설되었고,[12] 교황들은 로마인들에게 ''diaconia''(직무) 또는 사적인 라테라노 목욕탕, 혹은 8세기와 9세기에 운영되던 수많은 수도원 목욕탕을 통해 목욕할 기회를 제공했다.[11] 학자 파올로 스콰트리티는 교황들이 거주지에 "호화로운 목욕탕"을 유지했다고 기술했으며, 온탕을 포함한 목욕탕이 기독교 교회 건물이나 수도원에 설치되었는데, 이는 성직자와 빈곤한 사람들에게 모두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에 "자선 목욕탕"으로 알려져 있다.[13] 파리, 레겐스부르크, 나폴리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공중 목욕탕이 흔했다.[14][15] 아우구스티누스회와 베네딕토회와 같은 가톨릭 수도회는 의례적 정결에 대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고,[16] 누르시아의 베네딕토의 치료 목욕 실천에 대한 격려에서 영감을 받아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은 온천의 개발과 홍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17] 프로테스탄티즘 또한 영국 온천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17]
중세에는 목욕이 일반적으로 공중 목욕탕에서 이루어졌다. 공중 목욕탕은 또한 매춘의 온상이었기 때문에 일부 반대에 부딪혔다. 부유한 사람들은 집에서, 아마도 침실에서 목욕을 했을 것이다. "욕실"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욕은 큰 나무 욕조에서 이루어졌고, 욕조 안에는 욕조 이용자가 나무 파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마포 천이 깔렸다. 또한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기간 동안에는 몸의 실제 청결함이 아닌 옷의 질과 상태가 개인의 영혼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깨끗한 옷은 또한 사회적 지위를 반영했고, 옷이 사람을 만들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흑사병 때문에 전염병 예방을 위해 공중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18][19][20] 16세기에 유럽의 공중 목욕탕의 인기는 급격히 감소했는데, 이는 매독이라는 새로운 전염병으로 인해 성적 방종이 더 위험해졌거나, 종교 개혁을 둘러싼 알몸에 대한 더 강력한 종교적 금지 때문일 수 있다.[21][22] 일부 유럽인들은 목욕이나 증기 목욕이 질병을 유발하는 한선을 연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었다.[23]

이슬람 문화권에서 함맘의 중요성은 종교적, 시민적 측면 모두에서 중요했다. 의식적 세정의 필요성을 충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개인 위생 시설이 없던 시대에 일반적인 위생을 제공했고, 남성과 여성을 위한 성별 분리된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는 등 다른 사회적 기능도 수행했다.[49][50][52] 고고학적 유적은 이슬람 세계에서 우마이야 시대(7~8세기) 초기에 목욕탕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며, 그 중요성은 현대까지 지속되었다.[49][52] 그 건축 양식은 로마식과 그리스식 목욕탕의 설계에서 발전했으며, 탈의실(Apodyterium), 냉탕실(Frigidarium), 미온탕실(Tepidarium), 온탕실(Caldarium)과 같은 일련의 방으로 구성되었다. 열은 난방로에서 생성되어 온수와 증기를 제공했으며, 연기와 뜨거운 공기는 바닥 아래의 도관을 통해 전달되었다.[50][51][52]
현대 함맘에서는 방문객들이 어느 정도의 단정한 옷이나 천조각을 걸치고 옷을 벗은 후 점점 더 뜨거운 방으로 들어가 땀을 낸다. 그런 다음 일반적으로 남성 또는 여성 직원(방문객의 성별과 일치)이 비누와 강한 문지름을 사용하여 씻은 후 따뜻한 물로 씻어 마무리한다.[52] 로마식이나 그리스식 목욕탕과 달리, 목욕하는 사람들은 이슬람의 요구 사항이기 때문에 서 있는 물에 몸을 담그기보다는 흐르는 물로 씻는 것이 일반적이다.[50] 하지만 이란과 같은 일부 지역의 함맘에서는 수영장에 몸을 담그는 것이 관습이었다.[53] 모든 함맘은 대체로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사용법과 건축 양식 모두 지역적인 차이가 있다.[52]
빅토리아 시대 터키식 목욕탕(전통 이슬람식 목욕탕인 함맘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 자체로 고대 로마식 목욕탕의 변형임)은 외교관이자 스태퍼드 지역구의 국회의원을 지낸 데이비드 어쿼트에 의해 영국에 소개되었다. 그는 정치적, 개인적 이유로 영국에 터키 문화를 대중화하고자 했다. 1850년 그는 스페인과 모로코를 여행한 1848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저술했다.[54] 그는 자신이 오스만 제국과 스페인, 모로코에서 방문했던 증기가 가득한 온탕(로마 시대 이후 거의 변화가 없음)을 묘사했다. 1856년 리처드 바터 박사는 어쿼트의 책을 읽고 그와 함께 이러한 목욕탕을 건설하여 아일랜드 코크주 블라니 근처 세인트 앤(Anne) 언덕에 있는 자신의 수치료 시설에서 사용할 계획이었다.[55] 바터는 인체가 습한 증기가 아닌 건조한 열기 속에서 더 치료적으로 효과적인 고온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그는 1856년 이 유형의 최초의 현대식 목욕탕을 열었다. 그는 그것을 "개선된" 터키식 또는 아일랜드식 목욕탕이라고 불렀다.[56] 현재는 빅토리아 시대 터키식 목욕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듬해, 로마 시대 이후 영국 본토에 건설된 최초의 공공 목욕탕이 맨체스터에 문을 열었고,[57] 이 아이디어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1860년 7월, 어쿼트의 외교 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인 로저 에반스가 마블 아치 근처 벨 스트리트 5번지에 터키식 목욕탕을 열면서 런던에 상륙했다.[58] 그 후 150년 동안 수영장 단지의 일부로 지방 당국이 건설한 목욕탕을 포함하여 영국 제도 전역에 700개가 넘는 터키식 목욕탕이 문을 열었다. 더햄 던롭(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은 열탕 목욕이 물보다 더 효과적인 신체 청결제라고 주장했고,[59] 리처드 메트칼프는 지방 당국이 발 목욕 대신 열탕 목욕을 제공하는 것이 더 비용 효율적일 것이라고 세심하게 계산했다.[60]
터키식 목욕탕은 영국 제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문을 열었다. 존 르게이 브레레턴 박사는 1859년 호주 시드니에 터키식 목욕탕을 열었고,[61] 캐나다는 1869년까지 터키식 목욕탕을 가지고 있었으며,[62] 뉴질랜드의 첫 번째 터키식 목욕탕은 1874년에 문을 열었다.[63] 1861년 찰스 H. 셰퍼드 박사가 뉴욕 브루클린 하이츠 콜럼비아 스트리트 63번지에 미국 최초의 터키식 목욕탕을 개장하면서(아마도 1863년 10월 3일) 제국 외부에서도 어쿼트의 영향력이 느껴졌다.[64]
중세 초기 공중목욕탕이 쇠퇴하면서 나무로 만든 원형 대야가 보급되었다. 2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으며, 경제적, 노력적인 이유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목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목욕은 사치의 한 종류였으며, 귀족들 사이에서는 초대한 손님을 야회 전에 목욕시키는 "돈네 아라베르"라는 관습이 유행했다.
십자군 시대에 동방에서 하맘의 관습이 전해지면서 과거 목욕탕 터 등에 공중목욕탕이 재건되었다. 그러나 방탕한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타락과 사생아가 사회 문제가 되었다. 교회는 "공중목욕탕에서 목욕하는 것은 부도덕하고 이교도적이다"라고 비난하며, 교회 종을 이용해 남녀의 목욕 시간을 나누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한편, 무어인의 영향 아래 있던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세련된 하맘에서의 목욕 관습이 계속되었지만, 기독교도의 국토 회복 운동에 의해 사라졌다.
공동 목욕탕은 콜레라, 페스트, 매독 등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고, 1350년 흑사병 유행으로 많은 공중목욕탕이 폐쇄되었다. 그 이후 공동 목욕탕은 사실상 매춘굴이 되었고, 16세기에는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도 사이에서는 사교적인 목욕은 향락의 상징으로 여겨져 꺼리고, 집에서 하는 개인 목욕이 주류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특히 프랑스)에서는 "물이나 탕에 들어가면 병에 걸린다"고 믿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욕조는 건설 당시에는 사용되었지만, 그 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집올 때까지 사용되지 않았다. 왕족 귀족들은 목욕 대신 자주 셔츠를 갈아입고, 향수로 체취를 가렸다. 이것이 파리 등 프랑스 대도시의 공중위생 악화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18세기, 영국의 존 웨슬리에 의해 일어난 감리교의 "청결은 신성에 버금간다"는 주장과 "수치료법"이라는 민간요법의 유행으로 공중목욕탕과 목욕이 재검토되는 분위기가 높아졌다. 콜레라 대유행을 반성하여 런던의 상하수도가 정비되었고, 1875년 영국에서 "공중위생법"이 제정되어 목욕이 장려되면서 서서히 욕조를 이용한 목욕이 행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 영국에서 샤워가 발명되었다. 이후 샤워를 이용한 목욕이 세계에 퍼져 나갔다.
2. 3. 한국
한국에서는 고대부터 목욕 문화가 존재했다. 삼국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목욕이 더욱 장려되었다. 불설온실세욕중승경이라는 경전도 존재하며, 사찰에는 탕당(湯堂) 또는 욕당(浴堂)이라 불리는 목욕 시설이 설치되어 승려와 일반인 모두에게 개방되었다. 특히 광명황후는 빈곤층의 목욕 치료를 위해 법화사에 욕당을 설치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목욕은 끓인 약초 물의 증기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조선시대에는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몸을 청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가정에서는 주로 나무 욕조를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영향으로 대중목욕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위생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대중목욕탕이 더욱 확산되었다.
1960년대 이후 경제 성장과 함께 가정에 욕실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개인 목욕 문화가 발달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찜질방이 등장하여 한국 고유의 대중목욕 문화로 자리 잡았으며, 다양한 형태의 목욕 시설과 입욕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3. 목적
목욕은 다양한 목적으로 행해진다. 위생을 위해 죽은 피부 세포, 먼지 등을 제거하여 질병 확산을 줄이고 체취를 없앤다.[88] 또한, 종교적 의식이나 치료,[88] 휴식을 위해서도 목욕을 한다.
3. 1. 위생
목욕은 개인 위생을 위한 활동이다. 죽은 피부 세포, 먼지, 오물을 씻어내어 청결을 유지하고 질병 발생 및 확산을 줄이는 예방책이기도 하다.[88] 체취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48]3. 2. 종교 의식
많은 종교에서 목욕은 정화 의식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기독교의 세례는 물에 잠기는 의식을 통해 죄를 씻고 새롭게 태어남을 상징한다.[65]
- 유대교에서는 미크바라는 특별한 목욕 시설에서 의례적인 정결 상태에 도달한다.
- 이슬람교에서는 구슬이라는 의례적 목욕을 통해 순결(''타아히르'')을 얻는다.
이처럼 주요 종교들은 의례적 순결을 강조하며, 목욕은 외적 순결을 얻는 주요 수단 중 하나로 여겨진다.
힌두교 가정에서는 불결한 행위를 목욕으로 해소하며, 종교 의식의 일환으로 사로바르에 몸을 담그기도 한다. 시크교에서는 황금 사원의 신성한 연못에서 목욕하면 병이 치유된다고 믿는다.
고대 유대인에게 목욕은 사회적 의무였으며, 모세 율법에도 몸의 청결 유지가 포함되어 있다. 탈무드에는 "유대인은 공공 목욕탕이 없는 마을에는 살지 않는다"는 규정도 있다. 기원전 1055년 다윗 왕이 예루살렘에 건설을 시작한 공중목욕탕 "미크바"는 솔로몬 왕 시대에 완성되었으며, 정신 정화의 장소이기도 했다.
3. 3. 치료 및 건강
목욕은 피부를 깨끗하게 유지하고, 심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효과가 있다. 적당한 목욕은 피부 청결을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82] 중세 시대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목욕 습관이 없던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페스트가 크게 번졌지만, 목욕을 자주 하던 유대인들은 감염되지 않았다.[82]목욕은 수치료, 치유, 부상이나 중독으로부터의 재활, 이완 등 치료 목적으로 사용된다.[65] 18세기 중후반, 잦은 목욕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목욕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18세기에 발표된 두 편의 영국 저서는 치료 목적의 목욕인 수치료(hydrotherapy)의 유행을 이끌었다. 리치필드의 의사 존 플로이어는 온천의 치료 효과에 주목하여 냉수욕의 역사를 조사하고 1702년 관련 책을 출판했다.[24] 리버풀의 제임스 커리는 1797년 열병 등 질병 치료에 온수와 냉수를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냈다.[26] 1829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라즈네 예세니크에서 농부 빈첸츠 프리에스니츠가 수치료를 적용하면서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28][29] 바이에른의 사제 세바스티안 크나이프는 냉수 요법 논문을 읽고 프리에스니츠의 연구를 이어받았다.[30]
1960년대 히피 문화가 유행했을 때는, 기존 문화를 부정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며 목욕, 양치질, 이발 같은 위생 개념을 거의 지키지 않아 감염병이 확산되기도 했다.[83]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느껴지는 온도를 '''무감온도'''라고 하며, 36~37도 정도이다. 무감온도보다 5도 이상 높은 뜨거운 물에 목욕하면, 처음에는 혈액 순환을 피부 표면에서 멀리하려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한 수압으로 혈관이 눌려 심장에 부담이 커진다. 고혈압 환자나 심장병 환자가 뜨거운 물 목욕을 피해야 하는 이유이다. 목욕 시간이 길어지면 체온이 올라가 혈관이 확장되고 뇌와 내장으로 가는 혈액량이 줄어든다. 저혈압인 사람이 목욕 후 어지럼증을 느끼는 원인이다. 42도 이상의 고온 목욕이나 과도하게 씻는 것은 피부 각질층을 손상시켜 가려움증이나 피부염을 유발할 수 있다.[84]

입욕개조(入浴介助)는 스스로 목욕하기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말한다. 고령화나 장애 등으로 입욕개조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 외에도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긴장을 완화하고, 배설 작용을 촉진하며, 수면을 돕는 효과가 있지만, 낙상, 의식 상실 등의 위험도 있어 복지·간호에서 전문성이 요구되는 중요한 서비스이다.
3. 4. 레크리에이션 및 사회적 교류
목욕은 휴식과 즐거움을 위한 활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은 사교장이자 오락 시설로서의 의미가 컸으며, 매춘과 음주가 만연하고 나태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고대 로마의 카라칼라 대욕장은 2000명 이상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였으며, 증기탕과 넓은 욕조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로마인들이 목욕을 단순한 청결 유지를 넘어 사교와 여가 활동으로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준다.[41]
4. 종류
목욕은 사용하는 시설, 물의 온도, 첨가물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개인 위생을 위해 작은 욕조, 세면대, 발 씻는 곳을 사용했다. 크노소스 궁전 단지에서 기원전 2천년 중반에 발견된 것이 가장 오래된 욕탕이며, 산토리니의 아크로티리에서는 호화로운 대리석 욕조가 발굴되기도 했다. '욕조'를 의미하는 단어인 아사민토스(ἀσάμινθος|asaminthosgrc)는 호머의 작품에 11번 등장한다.[3] 후대 그리스인들은 휴식과 개인 위생을 위해 체육관 안에 공중 목욕탕과 샤워 시설을 설치했다.
고대 로마는 모든 대도시와 인구 밀집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도교망을 개발했고, 집과 공공 우물, 분수대에 이르는 파이프가 있는 실내 배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로마 공중 목욕탕은 테르마에라고 불렸는데, 단순한 목욕탕이 아니라, 찬물, 따뜻한 물, 뜨거운 물 목욕 시설과 함께 여러 종류의 체육 활동과 세정 시설을 제공하는 중요한 공공 시설이었다.[4]
7세기 이전 일본에서는 폐쇄된 공간에 대한 증거가 없으므로, 사람들은 많은 온천에서 야외 목욕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6세기부터 8세기까지( 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전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불교 사찰에는 전통적으로 승려들을 위한 목욕탕(유야(湯屋))이 있었고, 이것이 점차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최초의 공중목욕탕은 1266년에 언급되었다. 에도(도쿄)에서는 1591년에 최초의 센토가 설립되었다. 초기의 증기 목욕탕은 이와부로(岩風呂, "암석 탕") 또는 카마부로(釜風呂, "가마솥 탕")라고 불렸다. 해안가의 이와부로에서는 나무를 태워 바위를 가열한 다음, 바위에 바닷물을 부어 증기를 발생시켰다.[5] 에도 시대 초(1603~1868년)에는 온탕(湯屋)과 증기탕(蒸風呂)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남녀 공용 목욕탕이 일반적이었다. 1841년에 혼탕이 일반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성별 분리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센토 목욕탕은 남녀 구분된 탕을 갖추고 있다.[6]
스페인 연대기에는 정복 중과 그 이후의 중앙아메리카 지역 주민들의 목욕 습관이 묘사되어 있다.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는 몬테수마 2세가 매일 오후에 목욕을 했다고 기록했다. 목욕은 엘리트 계층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행했다.[7] 중앙아메리카식 목욕은 테마스칼(temazcal)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작은 돔 형태의 방에서 이루어졌다. 멕시코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7]
기독교는 항상 위생에 큰 비중을 두었다.[8] 초기 기독교 성직자들이 로마식 공중 목욕탕의 혼탕 방식을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신자들이 공중 목욕탕에 가서 목욕할 것을 촉구했다.[9] 교부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터툴리아누스에 따르면 목욕은 위생과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안티오키아와 같은 중심지에는 대규모 목욕탕이 건설되었다.[12]
중세에는 목욕이 일반적으로 공중 목욕탕에서 이루어졌다. 부유한 사람들은 집에서 목욕을 하기도 했다.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기간 동안에는 몸의 실제 청결함이 아닌 옷의 질과 상태가 개인의 영혼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개인 위생을 위한 목욕의 경우, 서구와 많은 동구권 국가에서는 욕조 또는 샤워가 가장 일반적인 목욕 방식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택에서 목욕을 하거나 공중목욕탕의 개인 욕실을 이용한다. 일부 사회에서는 강, 개울, 호수 등에서 목욕을 할 수 있다.
물이 부족하거나 앉거나 서서 목욕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 물에 적신 수건이나 스폰지를 사용하거나, 몸에 물을 끼얹어 씻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는 만디(mandi)라고 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큰 용기에서 물을 퍼내 몸에 붓는 방식이다.
필리핀에서는 팀바(timba)(양동이)와 타보(tabo)(물통)가 모든 욕실에서 필수적인 용품이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강이나 폭포에서 행해졌던 목욕의 일종으로 생각되는 미소기(禊ぎ)의 풍습이 있었다.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 건립된 사찰에는 탕당(湯堂), 욕당(浴堂)이라 불리는 목욕 시설이 만들어졌다. 원래는 승려와 비구니를 위한 시설이었지만, 시욕(施浴)에 의해 일반 민중에게도 개방이 진행되었다고 여겨진다. 헤이안 시대가 되면 상류 귀족의 저택 내부에 증기 목욕식 욕당 시설을 들여놓는 양식이 나타난다. 욕조에 물을 채우고 몸을 담그는 스타일은 에도 시대에 들어서부터 일반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의학자들 사이에서는 목욕 습관이 널리 퍼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후세파 의사들은 온천 요법 이외의 목욕은 체내의 기를 어지럽혀 몸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방파 의사들은 실증주의 관점에서 적당한 목욕은 기의 순환을 좋게 하고 체내의 독물을 외부로 배출하는 것을 돕는다고 주장했고, 란방의도 피부에 때가 부착하는 것의 위험성을 논하며, 「목욕 해독론」을 비판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보아도 일본인의 목욕 빈도는 매우 높다. 고도 경제 성장기 이후 가정 내에 가스를 이용한 순간 온수기와 수돗물의 보급이 진행되면서 매일 목욕하는 습관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알몸으로 목욕하는 공중목욕탕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본 특유의 목욕 문화이다. 1591년에 에도(도쿄)에 최초의 센토가 설치된 이후, 에도 시민의 생활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4. 1. 시설에 따른 분류
시설에 따른 목욕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 '''탕욕'''(湯浴):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는 방식이다. 영리 목적의 목욕탕에는 대부분 욕조가 설치되어 있다. 가정집에는 욕조가 없어 샤워만 가능한 경우도 있다.[5]
- '''샤워''':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을 이용하여 몸을 씻는 방식이다.
- '''스폰지 목욕''': 물이 부족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경우, 젖은 수건이나 스폰지를 이용하여 몸을 닦는 방식이다. 주로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 '''찜질''': 뜨거운 증기나 열기를 이용하여 땀을 내는 방식이다. 사우나, 한증막 등이 대표적이다.
- 함맘(hammam): 이슬람 문화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중 목욕탕으로, 로마의 테르메(thermae) 모델에서 유래하였다. 의식적 세정과 위생뿐 아니라, 남녀가 분리된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는 등 사회적 기능도 수행했다.[49][50][52]
- 빅토리아 시대 터키식 목욕탕: 데이비드 어쿼트에 의해 영국에 소개되었으며, 건조한 열기를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56]
- '''타보(tabo)를 이용한 목욕''': 필리핀 등에서 사용되는 방식으로, 타보(tabo)(물통)와 ''팀바(timba)''(양동이)를 이용하여 물을 몸에 끼얹는 방식이다.
4. 2. 물의 온도에 따른 분류
물의 온도에 따라 목욕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냉탕: 차가운 물을 이용한 목욕이다.
- 온탕: 따뜻한 물을 이용한 목욕이다.
- 열탕: 뜨거운 물을 이용한 목욕이다.
- 반신욕: 몸의 하반신만 물에 담그는 방식이다. 욕조에 들어가서 가슴 밑까지 물에 잠기게 하는 목욕 방법이다.
4. 3. 첨가물에 따른 분류
목욕은 사용하는 첨가물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비누 목욕''': 비누나 샤워젤 등을 사용하여 몸을 씻는 방식이다.
- '''소금 목욕''': 소금을 물에 풀어 사용하는 방식이다.
- '''약초 목욕''': 약초를 우려낸 물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 '''오일 목욕''': 오일을 물에 풀어 사용하는 방식이다.
4. 4. 기타
대한민국에서는 영리 목적의 혼탕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일반 가정에서 가족 간에만 가능하다. 혼욕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목욕하는 것을 의미하며, 일본이나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는 혼탕이 있는 목욕탕이 존재한다.좌욕은 끓인 약재의 증기를 쏘이거나 따뜻한 물에 좌욕제를 넣고 엉덩이를 담그는 방식이다.
5. 한국의 목욕 문화
한국은 역사, 사회, 환경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목욕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7세기 이전에는 폐쇄된 공간에서의 목욕에 대한 증거가 없어, 사람들은 주로 온천에서 야외 목욕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6세기부터 8세기까지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고, 이는 목욕 문화를 포함한 전국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5] 불교 사찰에는 승려들을 위한 목욕탕(유야(湯屋))이 있었고, 청결을 강조하는 불교의 원칙에 따라 이러한 목욕탕은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강이나 폭포에서 행해졌던 목욕의 일종으로 생각되는 제사](禊ぎ,みそぎ)의 풍습이 있었다. 기원후 3세기 중국 역사서에는 일본인의 철저한 청결성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5. 1. 대중목욕탕 (찜질방)
1591년 에도(江戸)에 이세 요이치(伊勢与市)가 최초의 센토(銭湯)를 설치한 후, 센토는 에도 시민의 생활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에도 시대에는 센토가 대중화되었는데, 처음에는 신체적인 이유로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점차 멋, 오락(娯楽), 사회적 교류의 장으로 센토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센토에서 때밀이와 머리 손질 서비스를 유나(湯女)(여탕 종업원)에게 받는 유나부로(湯女風呂) 등이 증가했다. 당시 카와류(川柳)에는 "센토에 가지 않으니 하녀가 독설을 퍼붓는다"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센토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비웃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마쓰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는 에도의 센토에서 남녀 혼욕을 금지하는 법도를 내려 풍기를 단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단속은 일본의 좁은 주택 사정 때문에 센토 측에서 욕조에 간편한 칸막이를 설치하는 것에 그쳤고, 결과적으로 욕실이 좁아져 특히 여성들에게서 불만이 나왔다. 막부는 산쿄덴(山東京伝)에 따르면 쿄와(享和) 연간의 입욕료를 어른 10문, 아이 8문으로 유지하는 대신 센토 업자를 보호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센토에 다니는 손님을 위해 월 단위로 계속 이용할 수 있는 나무 팻말을 팔기도 했다.『우키요부로(浮世風呂)』( 시키테이 산바(式亭三馬))와 같이 문학, 회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에도 시대의 센토 욕실은 증기탕을 겸하고 있었다. 입구는 '''석류구(柘榴口)'''라고 불리는 높이가 낮은 문지방으로 되어 있어 증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욕실 내부는 상당히 어두웠다. 따라서 욕실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는 먼저 온 손님에게 말을 거는(예를 들어, 들어갈 때는 "차가운 물입니다" 등) 것이 예의였다. 석류구는 메이지 초기, 위생 문제를 이유로 정부의 명령에 의해 철거되었다.
메이지 이전에도 남녀 혼욕(混浴)은 풍기를 어지럽히는 근원으로 금지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서야 남녀 분욕이 철저히 지켜지게 되었다. 터키탕(현재의 소프랜드(ソープランド))은 일본 특유의 성인 성풍속(性風俗) 문화로서 발전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알몸으로 목욕하는 공중목욕탕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본 특유의 목욕 문화이다. 일본 이외의 온천이나 공중목욕탕에서는 수영복이나 앞치마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에서도 보영(宝永) 연간 이전에는 남자는 후로후나(風呂褌), 여자는 유모지(湯文字)라는 전용 의복을 입고 목욕을 했다.[81]
귀족이 저택에 목욕 시설을 갖추기 시작한 헤이안 시대부터, 주택이 밀집한 도시에는 목욕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을 목욕탕이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5. 2. 가정 내 목욕

과거 일본에서는 나무 욕조가 주로 사용되었으나, 쇼와 시대 후기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며 현대에는 샤워 시설과 욕조가 함께 설치된 욕실이 일반화되었다.[73] 1인 가구 증가와 개인 위생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인해 가정 내 목욕 시설은 고급화되고, 다양한 입욕 제품이 개발되는 추세이다.
5. 3. 기타
한국에서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목욕재계하는 풍습이 있다. 이는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코쿠 일부 지역에서는 새로 지은 집이나 목욕탕을 리모델링할 때, 첫 번째 목욕을 지나가는 노숙자나 오헨로(시코쿠 88개소) 순례자, 친척 노인 등에게 사용하게 한 후 응접실에서 음식(혹은 우동)을 대접하는 풍습이 있는 곳이 있다.[79]6. 동물과 목욕
일부 동물들은 위생, 체온 조절, 기생충 제거 등을 위해 목욕을 한다. 일본 원숭이는 온천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온천 원숭이"로 불리며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86][87]
멧돼지나 사슴 등은 물웅덩이에서 진흙 목욕을 하고, 버팔로는 버펄로 월로우에서 진흙 목욕을 한다. 말 등은 모래 목욕을 한다. 대부분의 새와 코끼리는 물을 이용해 목욕을 하는데, 새는 세족하면서 날갯짓할 때 발생하는 물보라를 맞는 경우가 많다. 코끼리는 물웅덩이 등의 물을 코로 빨아들여 마치 샤워기나 호스처럼 코에서 물을 분사하여 자신의 몸에 뿌린다. 반려동물은 주인이 정기적으로 목욕을 시켜주는 것이 건강 관리에 중요하다.[85]
7. 의학적 관점
적절한 목욕은 피부를 깨끗하게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며, 혈액 순환을 좋게 하는 등 건강에 여러모로 이롭다. 하지만 너무 자주 목욕하거나 뜨거운 물을 사용하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피부 질환이 심해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특히, 고혈압 환자나 심장병이 있는 사람은 뜨거운 물에 오래 있는 것을 피해야 한다.[84]
몸에 가장 편안한 온도를 '무감온도'라고 하는데, 대략 36~37도 정도이다. 이 온도에서 목욕하면 몸이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쓴다. 무감온도보다 높거나 낮으면 목욕 중에 몸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또한, 42도 이상의 뜨거운 물에 목욕하거나 너무 많이 씻으면 피부의 각질층이 손상되어 가렵거나 피부염이 생길 수 있다.[84]
무감온도보다 5도 이상 높은 뜨거운 물에 목욕하면, 처음에는 몸이 피부 표면에서 혈액을 멀리 보내려고 한다. 또한, 수압 때문에 혈관이 눌려 심장에 부담이 커진다. 고혈압 환자나 심장병이 있는 사람이 뜨거운 물 목욕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목욕 시간이 길어지면 체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이때 몸은 열을 내보내기 위해 혈관을 확장시키고, 뇌와 내장으로 가는 혈액량을 줄인다. 그래서 저혈압인 사람은 목욕 후에 어지럼증을 느끼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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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は肌の大敵=誤った入浴方法が痒み生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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