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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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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택은 덕망 있는 통치자 앞에 나타나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다양한 형태로 묘사되고 숭배되어 온 존재이다. 중국에서는 황제가 동해를 순행할 때 백택을 만나 천하의 요괴와 귀신에 대한 지식을 얻고 이를 그림으로 기록한 『백택도』가 전해지며, 액막이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하쿠타쿠라고 불리며, 액막이, 질병 치료, 부적 등으로 활용되었으며, 에도 시대에는 그림을 베개에 넣어 콜레라를 예방하기도 했다. 현대에는 대중문화, 특히 만화 작품 등에서 백택이 등장하며, 관련 학술서가 판매되는 등 문화적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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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택
개요
하쿠타쿠 그림
하쿠타쿠 그림
이름백택 (白澤)
로마자 표기Baektaek
일본어백택 (白澤 (はくたく)) (Hakutaku)
영어Bai Ze
특징현명하고 박식한 신수
설명
외형소의 몸
사람의 얼굴
9개의 눈
6개의 뿔
능력모든 사물의 이치에 통달
만물의 정통과 변화를 꿰뚫어봄
요괴에 대한 지식
기원황제가 동해에서 만남
1만 1520종의 요괴에 대해 설명
백택도 제작
역할요괴로부터 보호
재앙을 피하고 행운을 가져다줌
문화적 의미
상징지혜, 행운, 보호
활용부적
장식
그림
관련 항목
관련 항목기린
해태
벽사
신화
요괴

2. 중국의 백택

중국에서 백택은 덕망 있는 통치자 앞에 나타나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겨진다.

== 기원 및 생태 ==

중국 명대의 백과사전삼재도회』에 따르면, 동망산(장쑤성 쉬저우시 퉁산구)에 사는 백택은 인간의 말을 사용하며, 당시의 위정자가 덕이 있으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1] 이러한 생태로 인해 백택은 기린이나 봉황 등과 같은 종류의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겨진다. 『연감류함』과 『패문운부』에서는 이를 『산해경』에서 인용했다고 하지만, 현존하는 『산해경』에는 이러한 문장이 없다.[2]

갈홍의 『포박자』에는 "황제(黃帝)는 신간(神奸)을 다하고 백택(白澤)의 말을 기록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구담실달의 『개원점경』 권116에는 "『서응도(瑞應圖)』에 이르기를, 황제가 동해를 순찰할 때 백택이 나타나 만물의 정(情)을 알고 백성에게 경계하여 재앙을 제거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우의 『통전』 권107, 예67, 대가로보에는 "다음은 청유대(清遊隊), 백택기(白澤旗) 2개(좌우로 나누어 각각 1명 집, 2명 인, 2명 협)", "좌우 영군 백택문"(백택기와 백택의 무늬가 천자의 군대에 사용되는 것을 말함)이 있다. 장군방의 『운급칠첨』 권100에는 왕관(王瓘)의 『헌원본기(軒轅本紀)』를 인용하여 "황제가 순수하며,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러 항산에 올라 바닷가에서 백택신수(白澤神獣)를 얻었는데, 말을 할 수 있고 만물의 정(情)을 알고 있었다. 이에 천하의 신귀(神鬼)에 대해 물었다. 옛날부터 정기(精氣)가 물(物)이 되고 유혼(游魂)이 변(変)하는 것이 모두 1만 1,520종인데, 백택이 말했고, 황제는 이를 그림으로 그려 천하에 보이게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당서』 권34, 지24, 오행1에는 위황후의 여동생인 위칠이(韋七姨, 훗날 사괵왕이옹의 아내)가 마귀를 쫓기 위해 백택의 베개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백택도(白沢図)』, 『백택도고(白沢図考)』는 모두 유실된 서적으로 현존하지 않지만,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 여러 서적에서 인용한 『백택도』의 이문(逸文)이 남아있다. 청나라의 유장의 『참귀전』에는 종규의 탈것으로 백택이 등장한다.

== 황제와의 만남과 백택도 ==

전설에 따르면, 중국 최고(最古)의 황제동해 지방을 순행했을 때 항산에 오른 뒤 방문한 해변에서 백택을 만났다고 한다. 황제는 백택에게서 1만 1520종에 달하는 천하의 요괴와 귀신에 대한 지식과 세상의 해악을 제거하기 위한 충고를 들었다. 황제는 이 지식을 부하에게 받아 적게 했고, 이 책이 『백택도』이다. 『백택도』는 요괴와 귀신, 즉 사람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병마나 천재지변의 상징에 대한 대처법을 담고 있어, 단순한 도록이 아니라 방재 매뉴얼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백택도』는 고대 중국에 실제로 존재했다. 수신지에는 『백택도』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요괴를 퇴치한 제갈각과 육경숙의 일화가 전해진다. 제갈각은 『백택도』를 인용하여 '계낭'이라는 요괴를 퇴치하였고, 육경숙은 팽후라는 나무의 정령을 잡아먹었다. 하지만, 북송 시대에 산실되었다.

20세기 초 모가굴에서 출토된 둔황문헌 중에는 『백택도』와 관련된 그림(백택정괴도)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현대 학자들은 『백택도』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백택도』와는 별도로, 당나라 이후의 중국 민속 종교에서는 백택 그림 자체가 액막이(벽사도)가 된다고 여겨 숭배되었다.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에는 백택 그림을 여행 가이드북에 그려 넣어 부적으로 지니거나, 병마를 물리치기 위해 머리맡에 두기도 했다.

갈홍의 『포박자』에는 "황제(黃帝)는 신간(神奸)을 다하고 백택(白澤)의 말을 기록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구담실달의 『개원점경』 권116에는 "『서응도(瑞應圖)』에 이르기를, 황제가 동해(東海)를 순찰할 때 백택이 나타나 만물의 정(情)을 알고 백성에게 경계하여 재앙을 제거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우의 『통전』 권107, 예67, 대가로보에는 백택기가 천자의 군대에 사용되었음을 알리는 "좌우 영군 백택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장군방의 『운급칠첨』 권100에는 왕관(王瓘)의 『헌원본기(軒轅本紀)』를 인용하여 황제가 백택에게 천하의 신귀(神鬼)에 대해 물었고, 백택은 1만 1,520종의 정기와 유혼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으며, 황제는 이를 그림으로 그려 천하에 보이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당서』 권34, 지24, 오행1에는 위황후의 여동생이 백택침(白澤枕)을 사용하여 귀신을 물리쳤다는 내용이 있다.

== 백택의 모습 ==

백택의 모습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삼재도회』와 일본의 『화한삼재도회』에서는 흰 사자로 묘사된다.[1]본초강목』은 사자(라이온)의 별명을 "백택"이라고 하는 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4]설문해자』에는 그 기술이 확인되지 않는다.[5] 『서응도』를 바탕으로, 사자와 백택은 다르다고 결론짓고 있다.

토리야마 세키엔의 『지금과 옛날의 백귀 야행 - 속(今昔百鬼拾遺)』에 그려진 백택은 머리에 와 같은 두 개의 이 있고, 아래턱에는 염소와 같은 수염을 기르고 있다. 이마에 눈이 하나 더 있으며, 몸통 측면에 세 개씩 총 아홉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택이 세 개 이상의 눈을 가진 모습은 세키엔 이후로 추정되며, 그 전에는 세 개 이상의 눈은 확인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괴기조수도권』(출판은 에도 시대이지만 더 오래된 중국의 서적을 참고하여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의 백택은 눈이 두 개이며, 기린의 체구를 튼튼하게 한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 문화적 영향 ==

백택은 덕망 높은 위정자의 치세에 나타난다고 여겨지며, 병마를 물리치는 존재로 믿어졌다. 위정자들은 백택과 관련된 물건을 가까이 두었는데, 중국의 황제는 호위대의 선두에 "백택기"를 내걸었다고 한다. 닛코 도쇼궁 배전쇼군이 앉는 방의 삼나무 문에는 백택 그림이 그려져 있다.

2. 1. 기원 및 생태

중국 명대의 백과사전삼재도회』에 따르면, 동망산(장쑤성 쉬저우시 퉁산구)에 사는 백택은 인간의 말을 사용하며, 당시의 위정자가 덕이 있으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1] 이러한 생태로 인해 백택은 기린이나 봉황 등과 같은 종류의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겨진다. 『연감류함』과 『패문운부』에서는 이를 『산해경』에서 인용했다고 하지만, 현존하는 『산해경』에는 이러한 문장이 없다.[2]

갈홍의 『포박자』에는 "황제(黃帝)는 신간(神奸)을 다하고 백택(白澤)의 말을 기록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구담실달의 『』 권116에는 "『서응도(瑞應圖)』에 이르기를, 황제가 동해를 순찰할 때 백택이 나타나 만물의 정(情)을 알고 백성에게 경계하여 재앙을 제거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우의 『통전』 권107, 예67, 대가로보에는 "다음은 청유대(清遊隊), 백택기(白澤旗) 2개(좌우로 나누어 각각 1명 집, 2명 인, 2명 협)", "좌우 영군 백택문"(백택기와 백택의 무늬가 천자의 군대에 사용되는 것을 말함)이 있다. 의 『운급칠첨』 권100에는 왕관(王瓘)의 『헌원본기(軒轅本紀)』를 인용하여 "황제가 순수하며,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러 환산(桓山)에 올라 바닷가에서 백택신수(白澤神獣)를 얻었는데, 말을 할 수 있고 만물의 정(情)을 알고 있었다. 이에 천하의 신귀(神鬼)에 대해 물었다. 옛날부터 정기(精氣)가 물(物)이 되고 유혼(游魂)이 변(変)하는 것이 모두 1만 1,520종인데, 백택이 말했고, 황제는 이를 그림으로 그려 천하에 보이게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당서』 권34, 지24, 오행1에는 위황후의 여동생인 위칠이(韋七姨, 훗날 사괵왕의 아내)가 마귀를 쫓기 위해 백택의 베개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백택도(白沢図)』, 『백택도고(白沢図考)』는 모두 유실된 서적으로 현존하지 않지만,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 여러 서적에서 인용한 『백택도』의 이문(逸文)이 남아있다. 청나라의 유장의 『참귀전』에는 종규의 탈것으로 백택이 등장한다.

2. 2. 황제와의 만남과 백택도

전설에 따르면, 중국 최고(最古)의 황제동해 지방을 순행했을 때 항산에 오른 뒤 방문한 해변에서 백택을 만났다고 한다. 황제는 백택에게서 1만 1520종에 달하는 천하의 요괴와 귀신에 대한 지식과 세상의 해악을 제거하기 위한 충고를 들었다. 황제는 이 지식을 부하에게 받아 적게 했고, 이 책이 『백택도』이다. 『백택도』는 요괴와 귀신, 즉 사람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병마나 천재지변의 상징에 대한 대처법을 담고 있어, 단순한 도록이 아니라 방재 매뉴얼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백택도』는 고대 중국에 실제로 존재했다. 수신지에는 『백택도』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요괴를 퇴치한 제갈각과 육경숙의 일화가 전해진다. 제갈각은 『백택도』를 인용하여 '계낭'이라는 요괴를 퇴치하였고, 육경숙은 팽후라는 나무의 정령을 잡아먹었다. 하지만, 북송 시대에 산실되었다.

20세기 초 모가굴에서 출토된 둔황문헌 중에는 『백택도』와 관련된 그림(백택정괴도)이 발견되었다.[10]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현대 학자들은 『백택도』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백택도』와는 별도로, 당나라 이후의 중국 민속 종교에서는 백택 그림 자체가 액막이(벽사도)가 된다고 여겨 숭배되었다.[6]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에는 백택 그림을 여행 가이드북에 그려 넣어 부적으로 지니거나(팔우 여암『여행 용심집』 등[7]), 병마를 물리치기 위해 머리맡에 두기도 했다.

갈홍의 『포박자』에는 "황제(黃帝)는 신간(神奸)을 다하고 백택(白澤)의 말을 기록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구담실달의 『개원점경』 권116에는 "『서응도(瑞應圖)』에 이르기를, 황제가 동해(東海)를 순찰할 때 백택이 나타나 만물의 정(情)을 알고 백성에게 경계하여 재앙을 제거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우의 『통전』 권107, 예67, 대가로보에는 백택기가 천자의 군대에 사용되었음을 알리는 "좌우 영군 백택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의 『운급칠첨』 권100에는 왕관(王瓘)의 『헌원본기(軒轅本紀)』를 인용하여 황제가 백택에게 천하의 신귀(神鬼)에 대해 물었고, 백택은 1만 1,520종의 정기와 유혼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으며, 황제는 이를 그림으로 그려 천하에 보이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당서』 권34, 지24, 오행1에는 위황후의 여동생이 백택침(白澤枕)을 사용하여 귀신을 물리쳤다는 내용이 있다.

2. 3. 백택의 모습

백택의 모습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삼재도회』와 일본의 『화한삼재도회』에서는 흰 사자로 묘사된다.[1]본초강목』은 사자(라이온)의 별명을 "백택"이라고 하는 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4]설문해자』에는 그 기술이 확인되지 않는다.[5] 『서응도』를 바탕으로, 사자와 백택은 다르다고 결론짓고 있다.

토리야마 세키엔의 『지금과 옛날의 백귀 야행 - 속(今昔百鬼拾遺)』에 그려진 백택은 머리에 와 같은 두 개의 이 있고, 아래턱에는 염소와 같은 수염을 기르고 있다. 이마에 눈이 하나 더 있으며, 몸통 측면에 세 개씩 총 아홉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택이 세 개 이상의 눈을 가진 모습은 세키엔 이후로 추정되며, 그 전에는 세 개 이상의 눈은 확인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괴기조수도권』(출판은 에도 시대이지만 더 오래된 중국의 서적을 참고하여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의 백택은 눈이 두 개이며, 기린의 체구를 튼튼하게 한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3]

2. 4. 문화적 영향

백택은 덕망 높은 위정자의 치세에 나타난다고 여겨지며, 병마를 물리치는 존재로 믿어졌다. 위정자들은 백택과 관련된 물건을 가까이 두었는데, 중국의 황제는 호위대의 선두에 "백택기"를 내걸었다고 한다. 닛코 도쇼궁 배전쇼군이 앉는 방의 삼나무 문에는 백택 그림이 그려져 있다.

3. 일본의 백택

일본에서는 백택을 하쿠타쿠/はくたく일본어라고 부르며, 액막이와 치료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하쿠타쿠의 가장 오래된 묘사는 중국에서 유래된 작품인 『천지서상지(天地瑞祥志)』에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9세기 후반 일본의 서지 목록에 등재되어 있지만 중국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천지서상지』에서 하쿠타쿠는 소의 몸과 수염이 달린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다. 후쿠하라 고가쿠가 그린 "하쿠타쿠 히 카이 즈"라는 그림에는 세 개의 얼굴이 있으며, 각각 세 개의 눈과 한 쌍의 뿔이 있는데, 18세기까지 이 백택의 묘사가 일본에서 표준이 되었지만 그 기원은 불확실하다. "하쿠타쿠 히 카이 즈"에서 하쿠타쿠는 악령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으로 묘사되어 집 안에 하쿠타쿠의 그림을 걸어두면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

18세기와 19세기 일본에는 하쿠타쿠를 보호 부적이나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등 마법적인 용도에 대한 광범위한 기록이 있다. 1858년 에도에서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쿠타쿠의 그림을 베개에 올려놓아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지시받았다. D. T. 스즈키는 『선과 일본 문화』에서 하쿠타쿠를 "손과 같은 몸에 사람의 머리를 가진 신화적 생물"로 묘사하며, 고대에는 이 생물이 우리의 악몽과 나쁜 경험을 먹는다고 믿어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질병을 먹어주기를 바라며, 그 그림을 현관문이나 집 안에 걸어두곤 했다.

토리야마 세키엔의 백택


에도 시대 일본의 백택 삽화


당나라 시대의 삽화 ''백택도'' 조각. 프랑스 중국학자 폴 펠리오가 발견한 둔황 문서 중 하나로,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각선사어록』 3권에는 "기. 여우에게 홀린 자가 있다. 오랫동안. 집에 백택도가 없다. 요괴가 스스로 소멸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마법을 막기 위해 『백택도』가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에도 시대 중기의 데라지마 료안이 편찬한 그림이 있는 백과사전인 『화한삼재도회』와 에도 시대 중기의 토리야마 세키엔이 그린 요괴 도록인 『지금 옛날 백귀습유』에도 백택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에도 시대 후기에는 야시로 히로카타의 『백택고』, 타니 분초 모사·세키 카츠아키라 찬의 『백택지도』와 같은 백택 연구서와 도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3. 1. 묘사 및 상징

일본에서 백택은 하쿠타쿠라고도 불린다. 하쿠타쿠의 가장 오래된 묘사는 중국에서 유래된 작품인 『천지서상지(天地瑞祥志)』에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9세기 후반 일본의 서지 목록에 등재되어 있지만 중국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천지서상지』에서 하쿠타쿠는 소의 몸과 수염이 달린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다. 후쿠하라 고가쿠가 그린 "하쿠타쿠 히 카이 즈"라는 그림에는 세 개의 얼굴이 있으며, 각각 세 개의 눈과 한 쌍의 뿔이 있는데, 18세기까지 이 백택의 묘사가 일본에서 표준이 되었지만 그 기원은 불확실하다. "하쿠타쿠 히 카이 즈"에서 하쿠타쿠는 악령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으로 묘사되어 집 안에 하쿠타쿠의 그림을 걸어두면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

18세기와 19세기 일본에는 하쿠타쿠를 보호 부적이나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등 마법적인 용도에 대한 광범위한 기록이 있다. 1858년 에도에서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쿠타쿠의 그림을 베개에 올려놓아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지시받았다. D. T. 스즈키는 『선과 일본 문화』에서 하쿠타쿠를 "손과 같은 몸에 사람의 머리를 가진 신화적 생물"로 묘사하며, 고대에는 이 생물이 우리의 악몽과 나쁜 경험을 먹는다고 믿어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질병을 먹어주기를 바라며, 그 그림을 현관문이나 집 안에 걸어두곤 했다.

『대각선사어록』 3권에는 "기. 여우에게 홀린 자가 있다. 오랫동안. 집에 백택도가 없다. 요괴가 스스로 소멸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마법을 막기 위해 『백택도』가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에도 시대 중기의 데라지마 료안이 편찬한 그림이 있는 백과사전인 『화한삼재도회』와 에도 시대 중기의 토리야마 세키엔이 그린 요괴 도록인 『지금 옛날 백귀습유』에도 백택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에도 시대 후기에는 야시로 히로카타의 『백택고』, 타니 분초 모사·세키 카츠아키라 찬의 『백택지도』와 같은 백택 연구서와 도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3. 2. 민간 신앙

일본에서는 백택을 하쿠타쿠라고도 부른다. 에도 시대에는 하쿠타쿠 그림을 부적으로 사용하거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머리맡에 두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특히 1858년 에도에서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쿠타쿠의 그림을 베개에 올려놓아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지시받았다.

D. T. 스즈키는 『선과 일본 문화』에서 하쿠타쿠를 "손과 같은 몸에 사람의 머리를 가진 신화적 생물"로 묘사하며, 고대에는 이 생물이 악몽과 나쁜 경험을 먹는다고 믿어져, 사람들이 그 그림을 현관문이나 집 안에 걸어두곤 했다고 설명한다.

하쿠타쿠의 가장 오래된 묘사는 중국에서 유래된 작품인 『천지서상지(天地瑞祥志)』에 등장한다. 이 작품은 9세기 후반 일본의 서지 목록에 등재되어 있지만 중국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천지서상지』에서 하쿠타쿠는 소의 몸과 수염이 달린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다. 후쿠하라 고가쿠가 그린 "하쿠타쿠 히 카이 즈"라는 그림에는 세 개의 얼굴이 있으며, 각각 세 개의 눈과 한 쌍의 뿔이 있다. 18세기까지 이 백택의 묘사가 일본에서 표준이 되었지만 그 기원은 불확실하다. "하쿠타쿠 히 카이 즈"에서 하쿠타쿠는 악령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으로 묘사되어 집 안에 하쿠타쿠의 그림을 걸어두면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

백택(하쿠타쿠) 관련 문헌으로는 『대각선사어록』, 데라지마 료안이 편찬한 그림이 있는 백과사전인 『화한삼재도회』, 토리야마 세키엔이 그린 요괴 도록 『지금 옛날 백귀습유』, 에도 시대 후기의 백택 연구서와 도상인 야시로 히로카타 저, 『백택지도』 전 타니 분초 모사·세키 카츠아키라 찬 등이 있다.

3. 3. 예술 작품 속 백택

일본에서는 백택을 하쿠타쿠라고도 부른다. 하쿠타쿠의 가장 오래된 묘사는 중국에서 유래된 작품인 『천지서상지(天地瑞祥志)』에 등장하며, 9세기 후반 일본의 서지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천지서상지』에서 하쿠타쿠는 소의 몸과 수염이 달린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다. 후쿠하라 고가쿠가 그린 "하쿠타쿠 히 카이 즈"라는 그림에는 세 개의 얼굴이 있으며, 각각 세 개의 눈과 한 쌍의 뿔이 있다. 18세기까지 이 백택의 묘사가 일본에서 표준이 되었지만 그 기원은 불확실하다. "하쿠타쿠 히 카이 즈"에서 하쿠타쿠는 악령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으로 묘사되어 집 안에 하쿠타쿠의 그림을 걸어두면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

18세기와 19세기 일본에는 하쿠타쿠를 보호 부적이나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등 마법적인 용도에 대한 광범위한 기록이 있다. 1858년 에도에서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쿠타쿠의 그림을 베개에 올려놓아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지시받았다. D. T. 스즈키는 『선과 일본 문화』에서 하쿠타쿠를 "손과 같은 몸에 사람의 머리를 가진 신화적 생물"로 묘사한다. 고대에는 이 생물이 우리의 악몽과 나쁜 경험을 먹는다고 믿어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질병을 먹어주기를 바라며, 그 그림을 현관문이나 집 안에 걸어두곤 했다.

『대각선사어록』 3권에는 "기. 여우에게 홀린 자가 있다. 오랫동안. 집에 백택도가 없다. 요괴가 스스로 소멸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화한삼재도회』는 에도 시대 중기의 데라지마 료안이 편찬한 그림이 있는 백과사전이다. 『지금 옛날 백귀습유』는 에도 시대 중기의 토리야마 세키엔이 그린 요괴의 도록이다. 『백택고』 (야시로 히로카타 저), 『백택지도』 (전 타니 분초 모사·세키 카츠아키라 찬)는 에도 시대 후기의 백택 연구서와 도상이며, 세 사람은 탐기회를 통해 친교가 있었다.

4. 한국의 백택

4. 1. 조선시대의 백택

5. 현대의 백택

20세기 말 이후 대중문화·서브컬처에 백택이 종종 등장한다. 에구치 나츠미의 일본 만화 작품 『호오즈키의 냉철』에 청년 모습의 "백택"이 등장한다.[12] 2017년에는 『호오즈키의 냉철』의 영향으로 『백택도』를 주제로 한 학술서가 이례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13]

5. 1. 대중문화 속 백택

20세기 말 이후 대중문화·서브컬처에 백택이 종종 등장한다. 에구치 나츠미의 일본 만화 작품 『호오즈키의 냉철』에 청년 모습의 "백택"이 등장한다.[12] 2017년에는 『호오즈키의 냉철』의 영향으로 『백택도』를 주제로 한 학술서가 이례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13]

참조

[1] 서적 三才図会 https://archive.org/[...]
[2] 문서 西岡
[3] 서적 怪奇鳥獣図巻 工作舎 2001
[4] 위키문헌 本草綱目 獣之二 獅
[5] 웹사이트 説文解字を「白澤」で検索 http://ctext.org/shu[...]
[6] 웹사이트 Ⅳ 白沢からクタベへ https://www.kyoto-su[...] 2021-04-24
[7] 웹사이트 おうちでミュージアム「江戸刷リ物品定メ 二代目金沢文庫長の秘策」後編 https://www.pref.kan[...] 2020-04-17
[8] 웹사이트 12 白沢之図 https://www.kyoto-su[...] 2021-04-24
[9] 서적 朝夜僉載 https://archive.org/[...]
[10] 서적 玉函山房輯佚書 https://archive.org/[...]
[11] 위키문헌 斬鬼傳
[12] 간행물 『白沢図』の展開から見えてくるモノからコトへ https://www.toho-sho[...] 東方書店 2020-09-06
[13] 웹사이트 『復元 白沢図』二刷出来 https://hakutakusha.[...] 2020-09-05
[14] 서적 三才図会 https://archi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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