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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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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육진 방언은 조선 세종 때 개척된 함경북도 육진 지역에서 사용되는 한국어 방언이다. 이 지역은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국어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함경도 방언 내에서도 독자적인 특징을 보인다. 육진 방언은 동부 방언(온성, 경원)과 서부 방언(회령, 종성)으로 나뉘며, 17세기부터 함경도의 다른 지역과 차이를 보였다. 1860년대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의 이주, 일제강점기 만주 이주, 소련 한인의 강제 이주 등으로 인해 현재는 북한, 중국, 러시아, 대한민국 등지에 흩어져 사용되고 있다. 육진 방언은 음운, 문법, 어휘 등에서 중세 한국어의 특징을 많이 보존하고 있으며, 현대에도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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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진 방언
언어 정보
이름육진 방언
다른 이름육친 / 륙진 / 륙친
고유어 이름육읍말 / 뉴웁말 / Nyuup-mal / 여섯 고을 말
해당 국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한국인, 과거 재가승
지역육진
사용자 수알 수 없음
언어 계통한국어족
한국어
조상 언어고대 한국어
중세 한국어
문자한글
ISO 예외방언
한국어 이름 정보
로마자 표기Yukjin bangeon / Ryukjin bangeon / Yeoseot goeul saturi
매큔-라이샤워 표기Yukchin pangŏn / Ryukchin pangŏn / Yŏsŏt koŭl sat'uri
다른 이름 (로마자 표기)Ryukjin language
다른 이름 (한글)륙진어, 육진어, 여섯 고을 말
다른 이름 (한자)六鎭語
다른 이름 (로마자 표기)Ryukjineo / Yukjineo / Yeoseot goeul mal
다른 이름 (매큔-라이샤워 표기)Ryukchinŏ / Yukchinŏ / Yŏsŏt koŭl mal
표기
한글뉴웁말
한자六鎭말
로마자 표기Nyuupmal
기타
특수 문자옛 한글 옛 한글 도움말을 참고

2. 역사

육진 지역이 붉은색 부분으로 표시되어 있다.


육진(六鎭)이라는 말은 세종이 두만강 남쪽의 여진족 거주 지역을 개척하고 여섯 개의 진(鎭)을 설치한 데서 유래한다. 이 지역에는 남부 지방의 백성들이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이들의 후손들이 사용하는 말이 육진 방언의 기초가 되었다.

육진 지역은 한반도 동북단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고립되었기 때문에, 한국어의 주된 변화가 일어난 중부 지역의 영향을 덜 받았다. 이로 인해 육진 방언은 중세 한국어의 특징을 비교적 많이 간직하게 되었으며, 다른 함경 방언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특징을 형성하여 '방언 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초기 기록에 따르면 육진 방언은 형성 당시 남부 방언과 유사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방언들이 겪은 음운 변화를 거치지 않아 오히려 현대 한국어 방언 중 가장 보수적인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평안 방언과 더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흉작, 일제 강점기, 만주 점령 등의 역사적 사건을 거치며 많은 육진 방언 화자들이 러시아 극동이나 만주 등지로 이주하였다. 특히 1930년대 스탈린에 의한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는 고려인 사회를 형성하게 하였고, 이들의 언어인 고려말에도 육진 방언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육진 방언 화자들은 전통적인 고향인 북한 함경북도 지역 외에도 중국 동북부, 중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 분단 이후 대한민국으로 이주한 탈북민 사회 등에 흩어져 있다. 그러나 표준어 보급과 북한의 언어 정책 등의 영향으로 육진 방언 고유의 특징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주로 노년층 화자들에게서 그 모습이 남아있는 등 쇠퇴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두만강 유역에 거주했던 재가승 집단 역시 육진 방언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1. 육진 개척과 방언 형성



육진(六鎭)이라는 이름은 세종이 현재의 함경북도 북부 지역을 개척하고 여섯 개의 진(鎭)을 설치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 여섯 고을은 회령, 종성, 온성, 경원, 경흥, 부령을 가리키며, 모두 두만강 남쪽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15세기 초까지 퉁구스어족 계열의 여진족이 거주하던 곳이었으나, 세종이 군사적 활동을 통해 조선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후 조선 정부는 남부 지방(특히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의 백성을 이주시켜 육진 지역을 개척하게 하였고, 육진 방언은 이들 이주민 후손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한국어의 방언으로 형성되었다. 다만, 육진 중 하나인 부령 지역의 방언은 다른 다섯 고을의 방언과 차이가 있어, 오늘날 부령 지역의 말은 육진 방언보다는 일반적인 함경 방언에 더 가깝다고 보기도 한다.

북한 함경북도 육진(六鎭)


국토의 동북단에 위치한 육진 지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부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어 언어 변화의 중심지인 중부 지역의 영향을 덜 받았다. 이로 인해 육진 방언은 음운이나 어휘 면에서 중세 한국어의 특징을 상대적으로 많이 간직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특징 때문에 '잔재 지역'의 성격을 지닌다고 평가된다. 동시에 육진 지역 내에서 독자적인 언어 변화도 겪으면서 다른 한국어 방언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징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질성 때문에 육진 방언권은 때때로 '방언 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육진 방언은 형성 초기부터 주변 함경 방언과는 다른 특징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함경도 방언에 대한 기록 중 일부는 이미 육진 지역의 언어가 함경도의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점을 언급했다. 1693년에 편찬된 읍지(邑誌)인 《북관지(北關誌)》에는 함경도 대부분 지역의 방언이 매우 특이하지만, 육진 지역은 남부 지방에서 온 이주민들이 정착하여 고향의 말을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향음(鄕音)'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773년, 고위 관리였던 유의양(柳義養)은 육진 지역의 말이 '처음 들으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함경도 남부 방언보다는 남부 지방의 말과 더 비슷하여 이해하기 쉽다고 기록했다. 이는 초기 육진 방언이 당시 남부 한국어 방언과 상당히 유사했음을 시사한다. 현재 육진 방언은 일반적으로 서부의 평안 방언과 더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육진 방언은 다시 동부 방언과 서부 방언으로 나뉜다. 동부 방언은 주로 온성경원 지역에서, 서부 방언은 회령종성 지역에서 주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동부 방언이 서부 방언보다 고어적 특징을 더 많이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 2. 지리적 고립과 언어 보수성



육진(六鎭) 지역은 국토의 동북쪽 끝, 두만강 남쪽에 위치하여 한반도의 언어 변화를 주도하는 중부 지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러한 지리적 고립은 육진 방언이 다른 지역의 언어 변화 물결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육진 방언은 음운이나 어휘 면에서 중세 한국어의 특징을 상대적으로 많이 간직하게 되어 언어학적으로 '잔재 지역'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처럼 옛말의 모습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 동시에, 육진 지역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방언 특징들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같은 함경도 방언 권역 내에서도 다른 지역 방언과는 구별되는 이질적인 요소가 많아, 학계에서는 육진 방언권을 '방언 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육진 방언은 지리적으로는 함경도의 다른 방언들과 가깝지만, 언어학적으로는 오히려 서쪽의 평안 방언과 더 유사한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육진 방언의 독특한 위상을 엿볼 수 있다. 17세기 말의 기록인 《북관지》(北關志)에는 함경도 대부분 지역의 방언이 매우 특이하지만, 육진 지역은 남부 지방 출신 이주민들이 정착하여 표준적인 남부 방언을 사용했기에 고유한 '향음(鄕音)'이 없다고 적혀 있다. 또한 1773년 관리 유의양(柳義養)은 육진의 말이 처음에는 알아듣기 어렵지만, 남부 한국어와 유사하여 함경도 남부 방언보다는 이해하기 쉽다고 기록했다. 이는 초기 육진 방언이 당시 남부 방언과 상당히 유사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지역 방언들이 근대 한국어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음운 변화를 겪은 반면, 육진 방언은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그 결과, 과거에는 남부 방언과 유사했던 육진 방언이 역설적으로 현대 한국어 방언 중 가장 보수적인 특징, 즉 옛말의 모습을 많이 간직한 방언이 되었다. 오히려 다른 함경 방언들이 변화를 거치면서 현대 표준어나 남부 방언과 더 유사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두만강 유역에 거주하며 주류 사회와 격리되어 살았던 재가승 집단 역시 육진 방언을 사용했다는 점은 언어와 사회 집단의 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표준어 교육이 강화되고 대중 매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육진 방언 고유의 특징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보다는 노년층 화자들에게서 방언 특징이 주로 관찰되며, 지리적으로 고립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언어 동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 내에서도 문화어 보급 정책의 영향으로 육진 방언은 점차 쇠퇴하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3. 근현대 변화와 방언 쇠퇴

현대에 들어 표준어 보급의 영향으로 육진 방언 고유의 음운 특징은 일부 노년층에게만 남아 있는 등 점차 사라지고 있다.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고려말 조사를 통해 육진 방언을 간접적으로 연구하기도 한다.

1860년대 함경도 지역의 흉작에 대응하여 육진 방언 화자들이 러시아 극동의 프리모르스키 지방 남부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언어는 1874년 미하일 푸칠로가 편찬한 사전과 카잔 사범학교 학생이었던 원어민들이 1904년에 편집한 자료에 기록되었다. 이후 1910년대와 1920년대에는 한일 병합 조약을 피해 함경북도의 다른 지역 주민들도 더 큰 규모로 이 지역으로 이주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 북부에서 만주 동부 지역으로의 이주도 촉발되었으며, 1930년대에는 만주 점령의 일환으로 더 많은 한국인들이 일제의 정책에 따라 강제로 만주로 이주당했다. 중국의 언어학자들은 중국 동북부에서 사용되는 한국어 방언을 서북(평안 방언), 중북(함경 방언), 동북(육진 방언) 그룹으로 나눈다. 이 중 육진 방언은 중국 지린성의 최동부에서 주로 사용된다.

1930년대 스탈린 정권은 소련의 한인 전체, 약 25만 명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주요 이주 지역은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에 집중되었다. 고려인으로 알려진 이들 공동체는 중앙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한국어의 한 형태인 고려말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지 언어와 경기 방언의 영향으로 인해 육진 방언의 특징은 상당 부분 약화되었다. 현재 고려말 화자의 약 10% 정도가 육진 방언의 특징을 일부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육진 방언의 현재 화자들은 전통적인 고향인 두만강 유역(현재 함경북도라선, 북한), 중국 북동부 지역의 한국인 공동체,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국가들의 고려인 공동체, 그리고 1940년대 한반도 분단 이후 대한민국으로 이주한 탈북민들 사이에 흩어져 있다. 김대균은 1980년대에 북한 함경도 출신 탈북민들의 언어를 연구했다. 현재 북한에 거주하는 화자에 대한 연구는 드물며, 주로 한국계 중국인 연구자들이 수행한다. 이 방언은 북한의 표준어 사용 정책으로 인해 북한 내에서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두만강 유역에 살았던 여진족의 후손으로 알려진 재가승 집단은 주류 한국 사회와 격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진 한국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고된다.

3. 음운

육진 방언의 음운은 중세 국어의 특징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언어학적으로 주목받는다.[3] 다른 동북 방언에서도 중세 국어의 흔적이 나타나지만, 육진 방언은 특히 그 음운적 보수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성조가 뚜렷하게 남아 있어, 단어의 높낮이가 의미를 구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말[馬]'은 낮은 소리(저조)로, '말[言]'은 높은 소리(고조)로 발음하여 뜻을 구분한다.[3]

또한, 구개음화와 같은 근대적인 음운 변화를 거의 겪지 않아 중세 국어의 발음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표준어에서 'ㅈ', 'ㅊ'으로 변한 발음('뎌', '텨')이 그대로 쓰이거나,[3] 단어 첫머리에서 'ㄴ'이 탈락하지 않고 발음되는 것('닐굽', '니매' 등),[3] 중세 국어의 /s/와 /sj/(sh와 유사한 발음)의 구별이 남아있는 것('셰샹', '무셥다' 등)이 그러한 예이다.[3] 중세 국어의 'ㅸ'(순경음 비읍), 'ㅿ'(반치음), 'ㅇ'(옛이응)에 해당하는 소리가 현대 표준어와 달리 각각 'ㅂ', 'ㅅ', 'ㄱ'으로 실현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가슬', '기슴' 등).[3]

이러한 특징들은 육진 방언이 한국어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됨을 보여준다. 일부 특징은 15세기 중세 한국어보다 더 오래된 음운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다만, 육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음운에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며,[3] 근현대에 들어 표준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러한 고유한 음운 특징들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3]

3. 1. 모음 체계

육진 방언의 모음은 'ㅣ, ㅔ, ㅐ, ㅡ, ㅓ, ㅏ, ㅜ, ㅗ'의 8개로 이루어진다.[3] 이는 표준 서울 방언의 8개 모음과 같다. 이중모음 '외'는 대체로 'ㅙ'으로, '위'는 [wi]로, '의'는 'ㅣ'로 발음되는 경향이 있다.[3]

육진 방언에서 모음 'ㅗ'는 표준어의 [o]보다 더 개모음으로 발음되며, 'ㅡ'는 표준어의 [ɨ~ɯ]보다 더 후설 모음으로 발음된다. 단어의 첫 음절에서 중세 한국어의 모음 /ʌ/(아래아)가 순음 자음 뒤에서 /o/로 변하는 특징이 나타나는데, 이는 첫 음절의 /ʌ/가 거의 항상 /a/로 변하는 서울 방언과의 차이점이다.

일부 화자에게는 'ㅡ'([ɨ])와 'ㅣ'([i]) 사이의 중간 모음인 [ï]가 추가적으로 존재한다. 이 모음은 '의'(/ɨj/)가 'ㅣ'(/i/)로 변하는 음운 변화 과정([ɨj] > [ï] > [i])의 중간 단계로 여겨진다. 이러한 특징은 주로 노년층 화자에게서 나타나며, 젊은 화자에게서는 이 모음이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서울 방언과 마찬가지로 제한적인 모음 조화 체계를 가지고 있다. 동사 어간의 마지막 모음이 /a/, /o/, /ɛ/일 경우에는 '-아' 계열의 접미사가 결합하고, 그 외의 모음일 경우에는 '-어' 계열의 이형태 접미사가 결합한다. 그러나 중국의 젊은 화자들 사이에서는 모음 조화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p/로 끝나는 모든 어간과 /u/로 끝나는 다음절 어간에도 '-아' 계열 접미사를 사용하는 경향이 관찰되는데, 이는 서울 표준 방언과의 새로운 차이점이다.

3. 2. 자음 체계

육진 방언의 자음 체계는 중세 국어의 특징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언어학적으로 주목받는다.[3] 특히 구개음화와 같은 근대 음운 변화를 거의 겪지 않은 점이 두드러진다.

=== 중세 국어 자음의 흔적 ===

중세 국어 시기에 쓰였던 일부 자음 발음이 표준어와 달리 육진 방언에 남아있다.

  • '''구개음화 부재''': 표준어에서 'ㅈ', 'ㅊ' 등으로 변한 발음이 중세 국어 형태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t(h)i-`, `t(h)y-`가 `c(h)i-`, `c(h)-`로 구개음화되지 않은 형태로 나타난다.
  • * 예: '둏다'(좋다), '뎌'(저), '딮'(짚), '뎔귀'(절구), '뎍다'(적다), '댱시'(상인), '-텨르'(-처럼)[3]
  • '''어두 'ㄴ' 유지''': 표준어에서 단어 첫머리의 'ㄴ'이 모음 'ㅣ'나 반모음 'ㅣ[j]' 앞에서 탈락하는 두음 법칙과 달리, 육진 방언에서는 'ㄴ' 발음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 * 예: '닐굽'(일곱), '닢'(잎), '니매'(이마), '녛다'(넣다), '뇽'(龍)[3]
  • '''s- 와 sy- 의 구별 유지''': 중세 국어의 /s/와 /sj/(sh에 가까운 발음)의 구별이 육진 방언에서는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른 방언에서는 대부분 사라진 특징이다.
  • * 예: '셔분하다'(서운하다), '무셥다'(무섭다), '셰샹'(세상)[3]


=== 유성 마찰음의 흔적과 변화 ===

중세 국어에는 있었으나 현대 표준어에서는 사라진 유성 마찰음 /ɣ/, /z/, /β/에 대응하는 자리에, 육진 방언은 이들 자음의 원래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k/, /s/, /p/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내부 재구를 통해 뒷받침되며, 육진 방언이 중세 국어보다 더 오래된 음운 형태를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다.

  • 예: 기슴·지슴(김), 가슬(가을), 섶(옆)[3]


유성 마찰음 대응 비교
의미중세 국어 (추정 발음)서울 방언 (발음)육진 방언 (발음)
알리다알외 (/alɣoj/)아뢰 (/alwe/)알귀 (/aɾkwi/)
가을ᄀᆞᅀᆞᆯ (/kʌzʌl/)가을 (/kaɯl/)가슬 (/kasɯɾ/)
누에*누ᄫᅦ (*nuβəj)누에 (/nue/)느베 (/nɯpe/)


  • ''참고: 중세 국어 '누에'의 /β/ 발음은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에서도 이미 소실된 상태로 나타나 재구된 형태이다.''


어떤 면에서 육진 방언은 15세기 중세 한국어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세 한국어 단어 '둘'(twǔlh)은 단음절이지만, 그 성조는 이전의 이음절 형태에서 유래했음을 시사한다. 일부 육진 방언에서는 이 단어에 대해 'twuwúl'이라는 이음절 형태를 사용하여 이전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 기타 자음 특징 ===

  • '''자음 'ㅈ'(/c/) 발음''': 일반적으로 북한에서 흔히 나타나는 발음인 [ts]로 실현된다. 다만 모음 /i/ 앞에서는 [tɕ](표준어의 'ㅈ'과 유사)로 발음되며, 자음과 활음이 결합된 'cy-' 역시 단일 파찰음 [tɕ]로 실현된다.
  • '''자음 'ㄹ'(/l/) 발음''': 중앙아시아 등 구 소련 지역의 육진 방언에서는 다른 /l/이 뒤따르지 않는 한 항상 [ɾ](탄음) 또는 [r](전동음)로 실현된다. 반면, 중국 동북 지역 등에서는 모음 사이에서는 [ɾ]가 필수적으로 나타나고, 그 외의 환경에서는 [ɾ]와 [l]이 모두 사용될 수 있다.
  • '''"켜다"의 발음''': "켜다"를 "써다"로 발음하는데, 이는 중세어 "ᅘᅧ다"가 변화한 형태로, 동남 방언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3]
  • '''지역별 차이''': 육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약간의 음운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회령, 종성 등지에서는 평안도 방언과 유사하게 반모음이 탈락하여 '돟다'(좋다), '덕다'(적다)와 같은 형태가 쓰이기도 한다.[3]


이처럼 육진 방언의 자음 체계는 한국어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보수적인 특징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으며, 매우 보수적인 음운론적 "잔존 지역"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음운적 특징들은 근현대에 들어 표준어 보급으로 인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으며, 젊은 층에서는 이미 상당 부분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3]

3. 3. 운소 (Prosody)

육진 방언에는 중세국어의 특징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중 상당수는 동북 방언이나 다른 방언에서도 나타나지만, 육진 방언에서는 그 음운적 보수성이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특징으로 성조가 강하게 남아 있어 말의 높낮이가 의미를 구분하기도 한다.[3] 예를 들어 '말[馬]'은 낮은 소리(저조)로, '말[言]'은 높은 소리(고조)로 발음한다.

모음은 'ㅣ, ㅔ, ㅐ, ㅡ, ㅓ, ㅏ, ㅜ, ㅗ'의 8개로 이루어져 표준 서울 방언과 같다.[3] 다만 육진 방언의 'ㅗ' 발음([o])은 서울 방언보다 입을 더 벌려서 내는 경향이 있고(개모음), 'ㅡ' 발음([ɨ~ɯ])은 혀를 더 뒤쪽에서 내는 경향이 있다(후설 모음). 이중모음 'ㅚ'는 대체로 'ㅙ'로, 'ㅟ'는 [wi]로, 'ㅢ'는 'ㅣ'로 발음된다.[3] 단어 첫 음절에서 중세 한국어 모음 'ㆍ'(아래아, /ʌ/)가 서울 방언에서는 거의 항상 'ㅏ'(/a/)로 변하는 것과 달리, 육진 방언에서는 입술소리(순음 자음) 뒤에서 'ㅗ'(/o/)로 변하기도 한다. 일부 나이든 화자에게는 'ㅡ'([ɨ])와 'ㅣ'([i]) 사이의 중간 소리인 [ï]가 추가로 존재하는데, 이는 'ㅢ'([ɨj])가 'ㅣ'([i])로 변하는 과정([ɨj] > [ï] > [i])의 중간 단계로 보이며 젊은 화자들에게는 이미 'ㅣ'로 변화가 완료되었다.

서울 방언처럼 제한적인 모음 조화 체계가 있다. 마지막 모음이 'ㅏ, ㅗ, ㅐ'(/a/, /o/, /ɛ/)인 동사 어간만이 '아/어' 활용 시 '-아'(/a-/) 계열 어미와 결합하고, 다른 동사 어간은 '-어'(/ə-/) 계열 어미와 결합한다. 중국의 젊은 화자들 사이에서는 'ㅂ'(/p/)으로 끝나는 모든 어간과 'ㅜ'(/u/)로 끝나는 다음절 어간도 '-아' 계열 어미와 결합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자음 'ㅈ, ㅊ' 등('c' 계열)은 일반적으로 북한에서처럼 파찰음 [ts] 계열로 발음되지만, 'ㅣ'(/i/) 모음 앞에서는 [tɕ] 계열(표준어의 'ㅈ, ㅊ'과 유사)로 소리난다. 자음과 활음 'ㅑ, ㅕ, ㅛ, ㅠ' 등이 결합한 형태('cy-' 계열, 예: '쟈', '쳐' 등) 역시 단일 파찰음 [tɕ] 계열로 발음된다. 음소 /l/(ㄹ)은 대부분의 한국어 방언에서 모음 사이에서는 탄음 [ɾ]로, 그 외에는 설측음 [l]로 발음되지만, 육진 방언의 구소련 지역 이주민 방언에서는 뒤에 다른 /l/이 오지 않는 한 항상 [ɾ] 또는 전동음 [r]로 발음된다. 구소련 외 지역 방언에서는 모음 사이에서 [ɾ] 발음이 필수적이며, 다른 환경에서는 [ɾ]와 [l]이 모두 쓰일 수 있다.

중세 한국어의 'ㅸ'(순경음 비읍, /β/), 'ㅿ'(반치음, /z/), 'ㅇ'(옛이응, /ɣ/) 발음이 표준어와 달리 각각 'ㅂ'(/p/), 'ㅅ'(/s/), 'ㄱ'(/k/)에 가깝게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다른 함경도 방언과 유사하다.

  • 예: 기슴·지슴(김), 쯔슴(쯤), 가슬(가을), 섶(옆)[3]


표준어에서는 사라진 중세 한국어의 여러 음운 특징이 보존되어 있다.

  • 구개음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t(h)i-', 't(h)y-'가 'c(h)i-', 'c(h)-'로 변하지 않음)
  • * 예: '둏다'(좋다), '뎌'(저), '딮'(짚), '뎔귀'(절구), '뎍다'(적다), '댱시'(상인), '-텨르'(-처럼)[3]
  • 단어 첫머리의 'ㄴ'('n-')이 'ㅣ'('i')나 'ㅑ, ㅕ, ㅛ, ㅠ'('y' 계열 활음) 앞에서 탈락하지 않고 남아있다.
  • * 예: '닐굽'(일곱), '닢'(잎), '니매'(이마), '녛다'(넣다), '뇽'(龍)[3]
  • 중세의 'ㅅ'('s-')과 '샤, 셔' 등('sy-')의 발음 구별이 남아있다. 이는 육진 방언에만 보존된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 * 예: '셔분하다'(서운하다), '무셥다'(무섭다), '셰샹'(세상)[3]
  • "켜다"를 "써다"로 발음하는데, 이는 중세어형 "ᅘᅧ다"(혀다)가 변화한 것으로 동남 방언에도 남아있는 특징이다.[3]
  •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붙을 때 명사 어간이 바뀌는 중세 한국어의 특징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나무"는 '남오'(namwo)이지만, "나무에"는 '낭게'(nangk-ey)로 발음된다. (중세 한국어: namwo, namk-oy / 서울 방언: namu, namu-ey)
  • 어떤 면에서는 15세기 중세 한국어보다 더 오래된 형태를 보존하기도 한다. 중세 한국어에는 유성 마찰음 /ɣ/, /z/, /β/가 있었는데, 이는 유성음 환경에서 /k/, /s/, /p/가 약화되어 생긴 소리로 추정된다(내부 재구). 육진 방언은 이러한 단어들에서 약화되기 이전 형태인 /k/, /s/, /p/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약화된 자음과의 대응
의미중세 한국어서울 방언육진 방언
알리다알외 (alɣoj-)아뢰 (alwe-)알귀 (aɾkwi-)
가을ᄀᆞᅀᆞᆯ (kʌzʌl)가을 (kaɯl)가슬 (kasɯɾ)
누에*누ᄫᅦ (*nuβəj)누에 (nue)느베 (nɯpe)


  • 참고: 중세 한국어 '누에'의 *nuβəj는 재구된 형태로, 가장 오래된 기록에서도 이미 /β/ 소실이 완료됨.*

  • 마찬가지로, 중세 한국어 단어 '둘'(twǔlh)은 한 음절이지만, 그 상승조는 원래 두 음절이었음을 시사하며, 일부 옛 한국어 표현도 두 음절 형태를 암시한다. 일부 육진 방언에서는 이 단어를 '두월'(twuwúl)로 발음하여 이전의 두 음절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육진 방언은 매우 보수적인 음운론적 특징을 가진 "잔존 지역"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육진 내에서도 음운에 지역차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회령, 종성 등지에서는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같지만, 평안도 방언과 비슷하게 반모음 'ㅣ' 계열('ㅑ, ㅕ, ㅛ, ㅠ' 등)이 탈락하여 '돟다'(좋다), '덕다'(적다), '탁실하다'(착실하다) 등의 표현이 쓰인다. 한편 육진 북부에서는 아래아 발음이 'ㅗ' 발음으로 변화된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

  • 예: '모디'(마디), '몯아바니'(맏아버지), '볿다'(밟다), '뽈다'(빨다)[3]


그러나 이러한 음운적 특징들은 근현대에 들어 표준어 보급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젊은 층에서는 이미 상당 부분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3]

4. 문법

육진 방언의 문법은 표준어와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조사 사용에서는 주격 조사 '-가'가 거의 쓰이지 않고 '-이'가 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3] 동사 활용에서는 표준어의 ㅂ·ㅅ·ㄷ 불규칙 활용 어간이 규칙적으로 활용되며,[3] 청자높임법은 ‘하압소’, ‘하오’, ‘해라’의 세 등급 체계를 가진다.[3] 통사 구조 면에서는 목적어가 중복되어 나타나는 문장(중출문)이 흔히 사용되고, 부정 부사의 위치가 표준어와 다른 점도 특징적이다.[3] 중세 한국어의 특이한 곡용이 일부 남아있기도 하다.[3]

4. 1. 조사

주격 조사 '-가'는 잘 사용되지 않으며, 주격은 주로 '-이'로 나타난다. 드물게 '-이가'가 쓰이기도 한다. 이외에 목적격 조사는 'ㄹ(으)', 여격 조사는 '-게', '-께', 공동격 조사는 '-가' 등이 있다.

  • '코 크다' - 코가 크다
  • '책 닑어라' - 책을 읽어라
  • '동생 개애다 주오' - 동생에게 가져다 주시오
  • '여스 슬기' - 여우와 살쾡이


보조사로는 '-(으)느(ㄴ)', '이라', '으란', '-아부라'(-조차) 등이 사용된다.[3]

  • '나'(나-는), '책으'(책-은)
  • '비 오문'(비가 오면)
  • '네아부라'(너조차)


격 표지 (명사)
자음 뒤비원순 모음 뒤원순 모음 뒤 (때로는 순음)비고
주격-이이 표지는 종성 -ㄴ을 탈락시키고, 움라우트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a/는 /æ/가 된다. 대부분의 고려인 화자에게 /æ/를 포함하는 움라우트 형태는 원래 /a/를 가진 형태의 새로운 기저 형태이다. 다른 모든 현재 사용되는 한국어 변이체와 달리 육진 방언은 다른 방언에서 모음 뒤에 나타나는 주격 이형태 -가가 없다.
대격-이-리-루 (-우)중세 및 현대 한국어 -(ㄹ)을과 동계이며, 종성 유음이 탈락되었다. -리는 때때로 단일 탭 [ɾ]로 실현된다.
도구격-일리-리-월리표준 한국어 -(으)로, 중세 한국어 -(으)라와 동계.
여격-처격무생물에는 -에 및 생물에는 -(우)게, '-(이)테이'표준 한국어 -에, -에게, 및 -한테와 동계
속격탈격무생물에는 -에서 및 생물에는 '-(우)게세'표준 한국어 -에서-에게서와 동계


4. 2. 동사 활용

표준어의 ㅂ·ㅅ·ㄷ 불규칙활용 어간이 규칙활용되는 특징이 있다.

  • 예) 곱아서 (표준어: 고와서), 닛어서 (표준어: 이어서)


청자높임법은 ‘하압소’, ‘하오’, ‘해라’의 세 등급 체계이다. '하오'체는 표준어의 '하오'~'하게' 정도의 존대에 해당하여 비교적 자주 쓰인다. 존대어에서는 '-읍/습꾸마', '-읍/습꿔니'의 어미가 쓰이는 것이 특징적이며, 평대어에서 어미 '-오/소'는 단순 서술뿐 아니라 명령문이나 의문문에서도 쓰인다. 청유법에서는 '-겝소(깁소)'(하압소체), '-게오(기오)'(하오체), '-라'(해라체) 등의 접사가 쓰이며, 의문법에서는 '-(ㅅ)음둥' 등 특징적인 말이 쓰인다.[3]

  • '어시래 오오' - 어서(빨리) 오시오


육진 방언의 동사 체계 분석은 주로 문장 종결 어미로 구분되는 세 가지 화법의 격식과 정중함 수준을 식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학자들마다 어떤 어미가 어떤 화법을 나타내는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다. 일부 격식체 어미는 자음 뒤에 '수-'로 시작하는 변이형을 가지는데, 이는 기존의 존칭 표시 동사 내부 어미 '-습-'에서 유래한 것을 반영한다. 동사 어간이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에는 '-(으)ㅂ' 형태를 취한다. 중국, 한국, 서양 연구자들이 식별한 양상 표지 문장 종결 어미는 다음과 같다.

어미양상화법비고
(스)꾸마서술, 의문, 명령격식체어원적으로 더 명확한 형태인 -(스)ㅂ꾸마도 발견된다. 기능이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관련 형태인 -(스)꼬마도 있으며, 현재 북한 화자들이 널리 사용하지 않는다. -(스)꿈-(스)꾸와 같은 축약형도 발견되며, 더 격식 없는 뉘앙스를 갖는다. 이 어미는 양상에 따라 억양이 다르다. 중국의 젊은 화자들은 표준 한국어에 해당하는 -(스)ㅂ니다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스)꿔니-(스)꾸마보다 더 격식적이고 덜 친밀하다. 현재 혜산시를 제외하고 북한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는다. -(스)꿰이, -(스)께니, -(스)꼬아니, -(스)까이와 같은 변형이 확인되었다. 이 어미는 북한 외의 화자에게서는 드물다. 이 어미는 양상에 따라 억양이 다르다.
오/소가장 일반적으로 중립적이지만 모든 화법에서 발견된다.-소는 비유동음 자음 뒤에 사용된다. 긍정적 서술형 이- "이다"와 부정적 서술형 아니- "아니다"를 포함하여 -이 또는 -우로 끝나는 동사 어간에서는 생략될 수 있다. 이 다재다능한 어미는 경상 방언에서도 발견되지만, 격식체 표지로만 사용된다.
서술중립격식 없는 대화에서 널리 사용되는 혁신이며, 이 어미는 육진 함경 방언이 아닌 방언에서도 발견되며, 이전에는 평안 방언에서도 발견되었다.
비격식체한국어 방언 전체에서 서술형 표지로 발견되며, 고대 한국어 이후로 증명되었다.
슴둥/ㅁ둥의문격식체육진 고유의 의문 표지이다. 두 번째 모음은 일반적으로 비음화되지만, 비음화되지 않은 변형 -(스)ㅁ두도 발견된다. 중국의 젊은 화자들은 표준 한국어 -(스)ㅂ니까에서 차용된 -(스)ㅇ까를 선호한다.
비격식체의미적 차이 없이 -니 형태도 취한다. 앞선 과거 시제 표지 -았/었-과 결합하여 -안/엔이 되고, 회고 표지 -더-와 결합하여 -든이 될 수 있다. 한국어 방언 전체에서 의문 표지로 발견된다.
읍소명령격식체다재다능한 어미 -(으)오/소에서 어원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이 어미는 -(으)ㅂ세 또는 -(으)ㅅ소로도 발견된다.
(아)라/(어)라비격식체표준 한국어에서 비격식 명령형 표지로 발견된다. 현대 북한 방언에서는 으로 비음화될 수 있다. 온성에서는 변형 -나가 일반적이며, 혜산에서는 -네가 일반적이다.
구려고려인 출처에서 증명된, 자녀에게 말하는 어머니에게만 국한된 특이한 표지이다.
깁소청유격식체-겝소-겝쇼로도 증명되었다. 어원적으로 앞서 언급한 -기--(으)ㅂ소의 합성어이다.
기오중립-게오-교로도 증명되었다. 어원적으로 -기--오의 합성어이다.
비격식체표준 한국어에서도 발견된다.
구마감탄해당 없음-(스)꾸마와 유사하게 발음되지만, 자음 뒤에도 수-가 있는 변이형을 취하지 않는다.



통사 구조상의 특징으로는, 목적어 중출문이 흔히 쓰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3]


  • '아르 우티르 닙히오' - 아이에게 옷을 입히시오


또한 부정부사의 일반적 위치가 표준어에서와 다르다는 점도 구조적 특징이다.[3]

  • '영게사 떠 못 나오' - 여기서 못 떠나오
  • '안즉 닑어 못 보앗소' - 아직 못 읽어 보았소

4. 3. 통사

주격 조사 '-가'가 잘 사용되지 않아 주격은 거의 '-이'만으로 구성되며, 드물게 '-이가'가 사용되기도 한다. 이외에 목적격 조사는 'ㄹ(으)', 여격 조사는 '-게', '-께', 공동격 조사는 '-가' 등이 있다.

  • '코이 크다' - 코가 크다
  • '책으 닑어라' - 책을 읽어라
  • '동생께 개애다 주오' - 동생에게 가져다 주시오
  • '여스가 슬기' - 여우와 살쾡이


보조사로 '-(으)느(ㄴ), '이라', '으란', '-아부라'(-조차) 등이 있다.[3]

  • '나느'(나-는), '책으느'(책-은)
  • '비라 오문'(비가 오면)
  • '네아부라'(너조차)


또한 여타 함경도 방언과 같이, 표준어의 ㅂ·ㅅ·ㄷ 불규칙 활용 어간이 규칙적으로 활용된다.

  • 예) 곱아서(표준어: 고와서), 닛어서(표준어: 이어서)


중세 한국어의 특이한 곡용이 남아있기도 한데, 일례로 '나무'는 '낭기'(주격), 낭그(목적격), 낭글르(도구격), 낭게서(처격), 나무두(조사 '-도') 등으로 활용 변화되며, '니르다'(표준어: 읽다)와 같은 단어도 존재한다.[3]

청자높임법은 ‘하압소’ ‘하오’ ‘해라’의 세 등급 체계인데, '하오'체는 표준어의 '하오'~'하게' 정도의 존대에 해당하여 비교적 자주 쓰인다. 존대어에서 '-읍/습꾸마', '-읍/습꿔니'의 어미가 쓰이는 것이 특징적이며, 평대어에서 어미 '-오/소'는 단순 서술뿐 아니라 명령문이나 의문문에서도 쓰인다. 청유법에서는 '-겝소(깁소)'(하압소체), '-게오(기오)'(하오체), '-라'(해라체) 등의 접사가 쓰이며, 의문법에서는 '-(ㅅ)음둥' 등 특징적인 말이 쓰인다.

  • '어시래 오오' - 어서(빨리) 오시오


통사 구조상의 특징으로는, 목적어 중출문(목적어가 두 번 나오는 문장)이 흔히 쓰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3]

  • '아르 우티르 닙히오' - 아이에게 옷을 입히시오


또한 부정 부사의 일반적 위치가 표준어에서와 다르다는 점도 구조적 특징이다.[3]

  • '영게사 떠 못 나오' - 여기서 못 떠나오
  • '안즉 닑어 못 보앗소' - 아직 못 읽어 보았소


육진 방언에서는 매우 드물게, 부정어(예: '아니', '못')가 다른 한국어 방언과는 달리 (다른 함경도 방언 제외) 동사와 조동사 사이에 위치한다. 다른 방언에서는 부정어가 동사 앞에 오거나 조동사 뒤에 온다.

육진서울 (표준어)
빨리 나 오디
palli na mwo' wo-ti
(의미: 빨리 나와 오지 못한다)
빨리 나오지
palli mwos' na-wo-ci
(의미: 빨리 나오지 못한다)



동사 '같-'('같다')가 뒤따를 경우, 일반적으로 관형사형 어미 '-ㄴ'과 '-ㄹ'은 명사화의 기능을 한다. 명사화는 두 어미의 원래 기능이었으며, 고대 한국어에서 주요하게 나타났지만, 15세기 초 중세 한국어에서는 이미 드물어졌다.

5. 어휘

육진 방언의 어휘는 다른 동북 방언과 유사한 특징을 공유하지만, 육진 방언 고유의 음운적 특징으로 인해 단어 형태에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중세 한국어의 모습을 많이 간직한 고어적인 특징을 보이며, 다른 방언에서는 사라진 옛 형태가 다수 보존되어 있다.

표준어와 단어 형태는 같지만 의미가 다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반반'은 '완전히'라는 부사로 쓰이며, '짱짱하다'는 '차갑다'는 의미로 사용된다.[2]

지리적 위치의 영향으로 중국어러시아어로부터 들어온 차용어가 많으며, 여진어만주어에서 유래한 어휘도 일부 남아있다.[3] 특히 구소련 지역의 화자들에게서는 러시아어 차용어 및 차용 번역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친족 어휘에서는 모계와 부계 친족을 구분하지 않는 독특한 특징이 나타나는데, 이는 조선 시대 신유학적 부계 사회 규범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했음을 시사할 수 있다.

5. 1. 고유어

육진 방언의 어휘는 중세 한국어의 특징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고어적인 면모를 보인다. 이는 다른 한국어 방언에서는 사라진 중세 한국어의 여러 형태가 육진 방언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동북 방언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어휘들도 육진 방언에서 발견되지만, 육진 방언 고유의 음운적 특징으로 인해 그 형태가 변형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표준어와 형태는 동일하지만 의미가 다른 어휘들도 존재한다.

어휘표준어 의미육진 방언 의미예시
반반쓸만하고 보기가 좋다 (형용사 반반하다)완전히 (부사)반반 싹 나가지 (완전히 모두 나가지)
짱짱하다굳세다차갑다[2]



또한, 육진 지역의 지리적 특성상 인접 국가 언어로부터 들어온 차용어가 많다.


  • 중국어 차용어: 다두배채(양배추), 촨(船|chuán중국어, 배), 승천(剩錢|shèngqián중국어, 거스름돈), 마우재(毛子|máozi중국어, 러시아인) 등이 있다.
  • 러시아어 차용어: 비지깨(Спичка|spíchkaru, 성냥), 마선(машина|mashínaru, 재봉틀), 거르만(карман|karmánru, 주머니) 등이 있다.[3] 특히 구소련 국가에 거주하는 화자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어 차용어와 차용 번역이 많이 나타난다.
  • 여진어/만주어 차용어: 새를 잡는 올가미를 뜻하는 '탄'(than, 만주어 dan|단mnc에서 유래), 송어를 의미하는 '야리' 등이 여진어에서 비롯된 말로 여겨진다.[3] 또한 만주어 동사 어간 gari-|가리-mnc(개 등 동물이 교미하다)에 한국어 사동 접미사 '-우'(-wu)가 붙은 동사 어간 '가리우-'(kaliwu-, 동물을 번식시키다), 만주어 uku|우쿠mnc에서 유래한 '우쿠리'(wukwuli, 발) 등도 있다.


동북 관화에서 차용된 단어도 일부 존재한다.

친족 용어에서는 다른 한국어 방언(제주어 포함)과 달리 모계 친족(외삼촌, 이모, 외조부모 등)과 부계 친족(삼촌, 고모, 조부모 등)을 구분하지 않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는 조선 시대 신유학 이념이 강조했던 부계 사회적 규범의 영향력이 육진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다.

5. 2. 차용어

동북 방언의 특징적인 어휘들은 육진 방언에서도 나타나지만, 음운적 특징 때문에 형태가 변하는 경우가 많다.

표준어와 형태는 같으나 의미가 다른 어휘도 존재한다.

  • '''반반''': 표준어의 '반반하다'(쓸만하고 보기가 좋다)와 달리, 육진 방언에서는 부사로 쓰여 '완전히'라는 뜻을 가진다. (예: 반반 싹 나가지 - 완전히 모두 나가지)
  • '''짱짱하다''': 표준어의 '굳세다'는 뜻과 달리, 육진 방언에서는 '차다[寒]'는 뜻으로 사용된다.[2]


또한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중국어러시아어로부터 들어온 차용어가 많다. 여진어 또는 그 후예인 만주어에서 유래한 어휘도 발견된다.

육진 방언의 차용어 예시
기원 언어육진 방언 어휘원어 표기 (의미)한국어 의미
중국어다두배채양배추
船|chuán중국어 (배)
승천剩錢|shèngqián중국어 (남은 돈)거스름돈
마우재毛子|máozi중국어 (러시아인)러시아인
러시아어비지깨Спичка|spíchkaru (성냥)성냥
마선машина|mashínaru (기계)재봉틀
거르만карман|karmánru (주머니)주머니
여진어 / 만주어만주어 'dan'새(특히 기러기) 잡는 올가미[3]
야리송어[3]
우쿠리만주어 'uku'



만주어 동사 어간 'gari-'(개 등 동물이 교미하다)에서 유래하여 한국어 사동 접미사 '-우-'가 붙은 동사 어간 '가리우'(kaliwu-, 동물을 번식시키다)도 있다.

이 외에도 동북 관화에서 차용된 단어가 일부 존재한다. 특히 구소련 국가에 거주하는 고려인 화자들 사이에서는 많은 러시아어 차용어와 차용 번역이 나타난다.

5. 3. 친족 어휘

다른 한국어 방언(제주어 포함)과는 달리, 모계 친족과 부계 친족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즉, 외삼촌, 이모, 외조부모와 삼촌, 고모, 조부모를 구별하지 않는다. 이는 조선의 신유학 국가가 장려한 부계 사회 규범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했음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6. 지역별 분포와 하위 방언



'육진(六鎭)'은 회령, 종성, 온성, 경원, 경흥, 부령의 여섯 고을을 가리키며, 이들은 모두 두만강 굴곡부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본래 15세기 초까지 퉁구스어족 계열의 여진족이 거주하던 곳이었으나, 세종이 이 지역을 확보하여 한국의 함경북도에 편입시키고, 한반도 동남부 지역의 주민들을 이주시켜 정착하게 하였다. 육진 방언은 이들 이주민 후손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한국어 방언이다.

여섯 고을에서 사용되는 육진 방언은 다시 동부 방언과 서부 방언으로 나뉜다. 동부 방언은 온성, 경원 지역의 방언으로 대표되며, 서부 방언은 회령, 종성 지역에서 주로 사용된다. 동부 방언은 서부 방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고어적 특징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경흥부령 지역의 언어를 육진 방언보다는 주류 함경 방언에 더 가까운 것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육진 방언 화자들은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며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1860년대 함경북도의 흉작으로 인해 일부 주민들이 러시아 극동의 프리모르스키 지방 남부로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1910년대와 1920년대에는 한일 병합 조약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했다.

1930년대에는 스탈린 정권에 의해 소련한인 약 25만 명이 중앙아시아 지역, 특히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이들 고려인 공동체 중 일부는 육진 방언을 보존하고 있으나, 현지 언어 및 경기 방언의 영향으로 점차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고려말 화자 중 약 10% 정도가 육진 방언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만주 동부 지역으로의 이주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1930년대 만주국 성립 이후에는 만주 점령의 일환으로 강제 이주가 시행되기도 했다. 중국의 언어학자들은 중국 동북 지역에서 사용되는 한국어 방언을 서북 방언(평안 방언), 중북 방언(함경 방언), 동북 방언(육진 방언)으로 분류하는데, 이 중 동북 방언(육진 방언)은 중국 지린성의 최동부 지역에서 주로 사용된다.

결과적으로 육진 방언 화자들은 전통적인 거주지인 두만강 유역(현재 북한함경북도 및 라선)을 비롯하여, 중국 동북부의 조선족 공동체, 구 소련 국가들의 고려인 공동체, 그리고 1945년 한반도 분단 이후 대한민국으로 이주한 실향민 및 탈북민 사회 등지에 흩어져 분포하고 있다. 현재 북한 내 육진 방언 화자에 대한 연구는 제한적이며, 주로 중국 내 조선족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의 강력한 표준어 보급 정책으로 인해 북한 내에서는 육진 방언이 점차 쇠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두만강 유역에 거주했던 여진족의 후손으로 알려진 재가승 집단은 주류 한국 사회와 격리되어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육진 방언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고된다.

참조

[1] 문서 현재 행정구역 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역
[2] 뉴스 륙진방언연구 http://book.naver.co[...] 역락 2003-01-29
[3] 웹사이트 육진방언(六鎭方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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