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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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온인은 정토종의 종조인 호넨이 창건한 일본 교토의 사찰이다. 국보로 지정된 삼문과 본당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 막부의 지원을 받아 사찰 규모가 확장되었고, 현재는 정토종의 총본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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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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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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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름 | 지온인 (知恩院) |
종교 | 정토종 |
위치 | 교토, 히가시야마구 린카초 400, 605-8686 |
국가 | 일본 |
웹사이트 | 지온인 공식 웹사이트 |
창건자 | 호넨 |
명칭 | |
산호 | 화정산 (かちょうざん) |
원호 | 지온교인 (知恩教院), 지온인 (知恩院) |
다른 이름 | 치요인상 (ちよいんさん) 지온인 (智恩院) 요시미즈고보 (吉水御坊) 요시미즈소우안 (吉水草庵) 오오타니젠보 (大谷禅房) |
로마자 표기 | Chion-in |
일본어 | 知恩院 (ちおんいん) |
신앙 대상 | |
본존 | 법연 상인상 (미에이도) 아미타여래 (아미타당) |
역사 | |
창건 연도 | 1175년 (承安 5년) |
개산 | 호넨 |
정식 명칭 | 화정산 지온교인 오타니데라 (華頂山知恩教院大谷寺) |
사찰 정보 | |
사격 | 총본산 |
순례지 | 법연상인이십오영장 제25번 낙양천만궁25사순배 제15번 (매숙암천만궁) |
문화재 | |
국보 | 본당 삼문 아미타25보살내영도 |
중요 문화재 | 대방장 목조 아미타여래 입상 목조 선도 대사 입상 |
2. 역사
지온인의 역사는 크게 창건과 정토종의 발전, 센고쿠 시대와 도쿠가와 가문의 비호, 그리고 근현대의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원래의 사찰은 1234년 호넨의 제자인 겐치(1183–1238)가 스승을 기리기 위해 지었으며, 지온인이라고 명명되었다.[1] 초기에는 세이잔 분파의 조도 슈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었지만, 8대 주지인 뇨이치(1262–1321)는 친제이 분파 조도 슈 불교의 3대 주지인 벤초의 제자였던 승려 료쿠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2] 이후 뇨이치의 후계자인 슌조(1255–1355)는 겐치의 제자인 렌자쿠보와 료추가 그들 사이에 교리적 차이가 없다는 데 동의했다는 전기 기록을 인용하여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1450년까지 지온인은 친제이 분파의 완전한 통제하에 들어갔지만, 오닌의 난으로 인해 직접적인 통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1]
다이에 3년 (1523년), 지온인 25세 초요 존규와 햐쿠만벤 지온지 25세 게이슈 사이에서 본사 다툼이 있었지만 지온인이 승리하여, 친제 의에서 으뜸가는 자리가 되어 본산이 되었다. 교로쿠 3년 (1530년)에는 고나라 천황으로부터 "지온 교원", "오타니사"의 칙액을 받았다.
센고쿠 시대에는 엔요 쇼넨에 의한 전수염불 집단 잇신인류(捨世派, 사세파)가 성립하여 덴분 17년 (1548년)에 잇신인을 건립했다.
덴쇼 3년 (1575년), 오기마치 천황으로부터 정토종 본사로서의 승인을 받았다. 덴쇼 13년 (1585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사령 190석을 기증받았다.
호에이 7년 (1710년), 아미타당을 현재 위치로 옮겼다. 또한 레이겐 상황으로부터 "화정산"의 칙액을 받았다.
2. 1. 창건과 정토종의 발전 (헤이안 시대 ~ 가마쿠라 시대)
원래 이 절은 1133년에 미마사카국 (현 오카야마현)에서 태어난 호넨이 히가시야마 요시미즈 (현재의 지온인 세이시도 부근)에 지은 초암에서 시작되었다. 호넨은 헤이안 시대 말기에 13세에 히에이산에 올라 15세에 승려 겐코에게서 득도(출가)하였다. 18세에 히에이산에서도 깊은 산중에 있는 사이토 구로다니의 에이쿠를 스승으로 삼아, 겐코와 에이쿠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호넨 보 겐쿠로 개명했다. 호넨은 당나라 시대의 고승 젠도의 저서 『관경서』를 읽고 "전수염불" 사상에 눈을 떠 정토종 개종을 결의하고 히에이산을 내려왔다. 조안 5년 (1175년) 43세 때였다. 호넨은 히가시야마의 요시미즈에 요시미즈 초암(요시미즈 주방, 현 지온인 미에이도, 또는 현 안요지)을 세우고 그곳에 들어갔다.[9]"전수염불"이란 어떤 사람이라도 일심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외우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소위 구불교 측으로부터 격렬하게 규탄받아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호넨은 겐에이 2년 (1207년) 조원의 법난으로 사누키국 (현 가가와현)으로 유죄되었지만, 4년 후 겐랴쿠 원년 (1211년)에는 사면되어 수도로 돌아왔다. 당시 요시미즈 초암에 들어가려 했지만 황폐해져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오타니 젠보(현 지온인 세이시도)에 들어갔다. 그러나 다음 해인 겐랴쿠 2년 (1212년) 1월 25일에 80세로 사망했다.
요시미즈에서의 호넨의 포교 활동은 유죄가 된 만년의 몇 년을 제외하고, 정토종을 개종한 43세부터 생을 마친 80세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정토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때문에 호넨 사후, 오타니 젠보 옆에 호넨의 묘가 만들어져 제자가 지켰지만, 가로쿠 3년 (1227년) 엔랴쿠지 중도에 의해 파괴되었다 (가로쿠의 법난). 그러나 분랴쿠 원년 (1234년)에 호넨의 제자인 시야 문도의 세이칸보 겐치가 재흥하고 시조 천황으로부터 "화정산 지온 교원 오타니사"라는 사호를 하사받았다.[9]
겐지 2년 (1276년), 친제 의 벤초의 제자 료추가 가마쿠라에서 오자, 곧 시야 문도의 햐쿠만벤 지온지 3세 신에는 히가시야마 아카쓰치에서 료추와 담론을 했다. 거기서 양류를 교합해 본 결과, 서로 다른 점이 전혀 없고 부합했으므로, 이후 겐치의 문류는 별류를 세우지 않고 친제 의에 합류하게 되었다("아카쓰치의 담").[1]
이로 인해 시야 문도의 거점이었던 지온인과 햐쿠만벤 지온지는 친제 의의 교토 유력 거점이 되었다.
에이쿄 3년 (1431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곧 재흥되었다.
오닌 원년 (1467년)에 시작된 오닌의 난 때 지온인 22세 슈요 주린이 오미국 이카타치 (현 오쓰시 이카타치)의 킨렌지에 피난하고, 호넨 어영과 불상, 보물류를 근처 암자에 피난시키고, 이 암자를 신 지온인으로 했다.[10] 그리고 분메이 10년 (1478년)에 지온인을 재흥했지만 에이쇼 14년 (1517년)에 소실되었다.
2. 2. 센고쿠 시대와 도쿠가와 가문의 비호 (무로마치 시대 ~ 에도 시대)

1633년 화재로 경내의 수많은 건물이 불탔으나, 3대 도쿠가와 쇼군 이에미쓰 (1604–1651)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웅장한 구조로 완전히 재건되었다.[1]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게이초 8년 (1603년)에 지온인을 영대 보제소로 정하고 사령 703석여를 기증했다. 이듬해 게이초 9년 (1604년)부터는 북쪽에 인접한 쇼렌인의 땅을 할애하여 지온인의 사찰 부지를 확대하고, 여러 전각을 조영하였다. 조영은 에도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계승되어, 현존하는 산몬은 겐나 7년 (1621년)에 건설되었다. 간에이 10년 (1633년)의 화재로 산몬, 경장, 세이시도를 남기고 거의 전소되었지만,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아래에서 곧 재건이 진행되어 간에이 18년 (1641년)까지 거의 완성되었다.
도쿠가와 가문이 지온인의 조영에 힘을 기울인 것은, 도쿠가와 가문이 정토종 신도라는 점, 지온인 25세 초요 존규가 마쓰다이라 씨 제5대 마쓰다이라 나가치카의 동생이라는 점, 니조성과 함께 교토에서 도쿠가와 가문의 거점으로 삼은 것, 도쿠가와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고 교토 고쇼를 내려다보며 조정을 견제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인 배경도 있었다고 한다. 에도 시대의 역대 문주는 황족에서 임명되었지만, 그 황자는 도쿠가와 쇼군가의 유시가 되었다.
2. 3. 근현대
1947년(쇼와 22년), 지온인은 호넨 쇼닌 어묘를 중심으로 하는 "일종 일원 운동"을 제창했고, 같은 해 12월 8일, 스스로를 본산으로 하는 본파 정토종(후에 정토종 본파로 개칭)을 결성하여 정토종에서 분파했다.[9] 1950년(쇼와 25년)에는 호넨 쇼닌 어묘 맞은편에 있는 잇신인이 정토종 사세파를 결성하여 정토종에서 분파했다. 그러나 1961년(쇼와 36년) 호넨 쇼닌 750년 기를 계기로, 이듬해 1962년(쇼와 37년) 지온인과 정토종 본파는 정토종에 합류했고, 지온인이 다시 정토종의 총본산이 되었다.2011년(헤이세이 23년) 어영당의 반 해체를 수반하는 대수리를 발원하여, 8년 계획으로 기와 지붕의 전면 교체를 시작으로 부패 및 파손 부위의 교체와 보수, 처마 밑의 수정, 내진 진단 조사에 근거한 구조 보강 등을 실시했다. 2019년(레이와 원년)에 일단 준공하고, 내장 등의 복원을 실시하여 2020년(레이와 2년) 4월 13일에 낙경 법요가 거행되었다.[11] 한 번 떼어내어 보수된 지붕은 2016년(헤이세이 28년)에 다시 어영당에 얹어졌다. 또한, 해체 중에는 매달 1회, 무료로 수리 현장이 공개되었고, 지붕이 돌아온 직후에도 수리 현장이 일반 공개되었다.[12][13]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낙경 법요는 대폭 축소되었다.
3. 경내
지온인의 경내는 크게 하단, 중단, 상단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 하단은 삼문과 여러 탑두 사원이 있는 곳이고, 중단은 어영당(본당)을 중심으로 하는 가람이 있는 곳이며, 상단은 세지당과 호넨 묘 등이 있는 곳이다. 이 중 상단이 처음 지온인이 세워졌을 때의 경역이며, 중단과 하단의 대규모 가람은 에도 시대에 에도 막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새로 지어진 것이다.
- '''어영당'''(국보) - 본당, 대전이라고도 불린다. 간에이 10년(1633년) 화재로 소실되어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간에이 16년(1639년)에 재건하였다. 호넨이 머물던 키스이 초암이 있던 자리라고 하며, 호넨의 상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어 어영당이라고 불린다. 입모야즈쿠리 양식의 본 기와 지붕 건물로, 정면 44.8미터, 깊이 34.5미터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에도 막부가 지은 불당의 위용을 보여준다. 건축 양식은 외관은 보수적인 화양을 기본으로 하면서, 내부에는 선종양(당양) 요소를 도입했다. 내부 공간은 세로 3칸의 외진, 가로 5칸・세로 5칸의 내진 등으로 나뉘며, 내진 안쪽에는 사천주를 세우고 궁전 형태의 닫집을 설치하여 호넨의 목상을 안치했다. 근세 불교 건축의 대표적인 예이자 정토종 본산 사찰 건축으로서 문화사적 의의가 높아 2002년 삼문과 함께 국보로 지정되었다.[14] 2007년부터 지붕 수복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2020년 호넨 상인 상이 8년 4개월 만에 어영당으로 돌아왔다. 외진에 걸려 있는 "명조" 칙액은 다이쇼 천황의 친필이다.
- '''아미타당''' - 어영당 왼쪽에 동쪽을 향해 세워져 있으며, 아미타여래 좌상을 안치하고 있다. 1910년(메이지 43년) 재건. 호에이 7년(1710년) 현재 위치로 옮겨지기 전에는 세지당 앞에 있었다. 정면에 걸려 있는 "대곡사" 칙액은 고나라 천황의 친필이다.
- '''다보탑 "칠백오십만령탑"''' - 1958년 건립.
- '''호넨 상인 상'''
- '''사경탑'''
- '''경장'''(중요 문화재) - 어영당 동쪽에 세워진 보형조 건물로, 겐나 7년(1621년)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기증으로 만들어졌다. 송판 대장경 6천 권을 보관하는 륜장이 있다. 2010년 승용차가 초석에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 '''보불전''' - 1992년 건립. 어영당 남쪽에 북쪽을 향해 세워진 맞배지붕 불당으로, 아미타여래 입상과 사천왕 상을 안치한다.
- '''구중석탑'''
- '''연못'''
- '''납골당''' - 1930년 건립.
- '''대종루'''(중요 문화재) - 보불전 뒤 돌계단을 올라간 곳에 있다. 엔포 6년(1678년) 재건. 간에이 13년(1636년) 주조된 일본 유수의 대종(중요 문화재)이 있으며, 제야의 종을 치는 모습은 연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자주 소개된다.
- '''사각문'''(교토부 지정 유형 문화재)
- '''무가문''' - 집회당 입구에 있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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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현관'''(중요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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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 - 연못 회유식 정원의 남지 "심자지"는 고보리 엔슈와 인연이 있는 승려 타마부치에 의해 조성되었다.
- '''북정''' - 연못 회유식 정원의 북지가 있다.
- '''도쿠가와 이에미쓰 어수 심은 소나무''' - 현재 소나무는 3대째이다.
- '''당문'''(칙사문, 중요 문화재) - 간에이 18년(1641년) 건립.
- '''소방장'''(코호조, 중요 문화재) - 대방장 뒤쪽에 있다. 대방장과 같은 간에이 18년(1641년) 건립된 건물로, 가노파의 그림이 있지만 대방장에 비해 담채로 차분한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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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실 "규이안"'''
- '''곤겐도''' - 1974년 재건. 소방장 안쪽에 있는 소규모 불당으로, 1956년 소실되어 다시 세워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히데타다・이에미쓰의 위패와 초상화를 안치하고 있다.
- '''북문'''
- '''사찰 사무동'''
- '''어묘'''(교토부 지정 유형 문화재) - 호넨 사후 제자들이 세지당 동쪽에 세운 것으로 호넨의 유골을 안치하고 있다. 사련당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건물은 게이초 18년(1613년) 히타치국쓰치우라 번주 마쓰다이라 노부카즈의 기증으로 개축된 것이다.
- '''어묘배전'''(교토부 지정 유형 문화재) - 호에이 7년(1710년) 건립.
- '''어묘 당문'''(교토부 지정 유형 문화재)
- '''세지당'''(중요 문화재) - 본지당. 경내 동쪽 돌계단 위쪽에 있다. 호넨이 거주했던 오타니 선방이 있던 곳으로, 지온인 발상지이다. 무로마치 시대 쿄로쿠 3년(1530년) 재건된 지온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본존 세지보살 좌상은 가마쿠라 시대 작품으로 2003년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토종에서는 호넨을 세지보살의 환생으로 보고 있으며, 호넨의 본지불로서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칙액 "지은교원"은 고나라 천황의 친필이다.
- '''산정''' - 레이겐 천황의 제13황녀 요시코 내친왕의 어전을 호레키 9년(1759년) 하사받아 이전한 것이다. 메이지 시대에 대규모 개수가 있었다. 당초에는 세지당의 객전이었다.
- '''산정 정원''' - 대방장 앞에서 돌계단을 올라간 산복에 위치하며, 교토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있다. 에도 시대 말기 조성된 고산수 정원이다.
- '''센히메의 묘''' -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 '''젖은 머리 대명신''' - 흰 여우의 화신・젖은 머리 동자를 모신다.
- '''위패당''' - 요이타 대불이라고 불린 석가모니불의 불두가 안치되어 있다.
- '''종루'''
- '''표문'''
- '''연화당'''
- '''일심원''' - 지온인 경내에 있지만, 정토종 사세파의 본산이다. 지온인과는 본말 관계가 아니다.
- '''유카와 히데키의 묘'''
- '''종학 연구소'''
- '''흑문'''(교토부 지정 유형 문화재) - 게이초 연간(1596년 - 1615년) 야마오카 도아미에 의해 후시미 성에서 이전・기증되었다.
- '''진수 팔만사(진수당)'''(교토부 지정 유형 문화재)
- '''무대'''
- '''다실 "마쿠즈안"'''
- '''우젠엔''' - 미야자키 겐젠 유래의 연못 회유식 정원으로, 1954년 개수되었다.
- '''연못'''
- '''다실 "카로쿠안"''' - 1968년 축조. 우라센케 유래의 다실.
- '''다실 "하쿠쥬안"''' - 당산 제86세 나카무라 야스다카 게이하의 백수를 기념하여 이전되었다.
- '''삼문'''(국보[15]) - 총문(신문)을 지나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가면 삼문이 나온다. 겐나 5년(1619년) 9월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명으로 삼문과 경장 조영이 시작되어 겐나 7년(1621년) 가을에 거의 완성되었다.[15] 헤이세이 대수리 시 상층 지붕에서 겐나 7년(1621년) 묵서가 발견되어 같은 해 건립으로 판명되었다. 형식은 오칸 산코 니카이 니주몬, 입모야즈쿠리, 본 기와 지붕으로 서쪽을 향한다.[15] "오칸 산코"는 정면 기둥 간격이 5개이고 중앙 3개가 통로인 것, "니주몬"은 2층 건물로 1층・2층 모두 처마가 있는 것을 말한다. 높이 24미터의 웅장한 문으로, 도다이지 남대문보다 크고 현존하는 일본 사찰 삼문(산문) 중 최대의 2층 이중문이다. 세부 양식은 선종양이며, 선사의 삼문과 비슷하다. 문 상층 내부는 석가여래상과 십육 나한 상을 안치하고 천장에 용도를 그리는 등 선사풍이다.[16][17] 산문이 아니라 삼문이라고 불리는 것은 "공문(쿠몬)", "무상문(무소몬)", "무원문(무간몬)"이라는 깨달음에 통하는 세 개의 해탈 경지를 나타내는 문, 삼해탈문(산게다츠몬)이라는 의미이다.
- '''일본 3대 문''' 중 하나로 꼽히는 설이 있는 삼문을 지나면 "남언덕"이라고 불리는 가파른 계단이 있다. 본당 등이 있는 "중단"에 이른다. 오른편에는 완만한 계단, "여언덕"이 있다.[18][19]
- '''와순회관''' - 1972년 축조.
- '''정토종 종무청'''
- '''교토 화정대학'''
- '''화정 단기대학'''
- '''화정 단기대학 부속 유치원'''
- '''화정 여자 고등학교'''
- '''남문'''(교토부 지정 유형 문화재) - 지온인과 마루야마 공원 사이에 있다.
- '''고문'''
- '''총문(신문)'''(교토부 지정 유형 문화재) - 히가시야마도리에 면하고 있다.
3. 1. 하단

거대한 정문인 산몬은 1619년에 지어졌으며, 일본에서 현존하는 동 종류의 구조물 중 가장 크다. 이 건물은 입모야 즈쿠리, 즉 팔작지붕을 특징으로 한다.[3] 팔작지붕의 목적은 사찰의 중심점을 보호하는 것이다.
지온인에는 대규모와 소규모의 객실이 있는데, 이들은 입모야 지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각각 오호조와 코호조라고 불리며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두 객실 모두 1641년에 건축되었다.
지온인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범종이 있는데, 1633년에 제작되었으며 무게는 74ton이다. 예전에는 25명의 팀이 종을 쳐야 했다.[4] 하지만 현재 사찰 웹사이트에 따르면 17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온인에 대해 주목할 만한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모든 지붕 보에는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인 세 개의 호랑가시나무 잎이 새겨져 있다.
- 본당 밖에 있는 서까래에 숨겨져 있는 우산이 있다. 사찰을 재건하는 데 도움을 준 건축가 중 한 명이 비를 오게 하고 (따라서 화재를 막기 위해) 우산을 서까래에 놓았다.

사찰 내부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매우 삐걱거리는 마루인데, 이는 꾀꼬리 마루의 예시이다. 나무 판자는 금속 끝부분으로 제작되었으며, 이 끝부분은 판자가 부착된 금속 조인트와 마찰을 일으켜 사람들이 걸을 때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이는 도쿠가와 가문이 사찰에 머물 때 밤에 원치 않는 침입자를 감지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
지온인의 내부는 검은색, 금색, 주사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정교한 금속 세공의 캐노피와 붉은색 실크 밧줄과 술이 이 구역을 장식하고 있다. 금박을 입힌 화분에 담긴 연꽃도 있다.[5]
목재를 미술 작품으로 도입하고 현대 미술과 협업하는 것은 종교 건축물의 건축 및 장식 방식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3. 2. 중단
지온인의 경내는 삼문이나 탑두 사원이 있는 하단, 어영당(본당) 등 중심 가람이 있는 중단, 세지당, 호넨 묘 등이 있는 상단의 3개로 나뉘어져 있다. 이 중 상단이 창건 당시의 사역이며, 중단, 하단의 대가람은 에도 시대에 에도 막부의 전면적인 원조로 새로 조영된 것이다.3. 3. 상단
지온인의 경내는 삼문이나 여러 탑두 사원이 있는 하단, 어영당(본당) 등 중심 가람이 있는 중단, 세지당, 호넨 묘 등이 있는 상단의 3개 구역으로 나뉜다. 이 중 상단이 창건 당시의 사찰 경역이며, 중단과 하단의 대가람은 에도 시대에 에도 막부의 전면적인 원조로 새로 조성된 것이다.3. 4. 탑두(塔頭)
- 숭태원 - 과거 정토진종 본원사파 본산인 오타니 혼간지가 있던 곳이다. '전 오타니'라고도 불린다.
- 광현원
- 수창원
- 기성원
- 원광원
- 신중원
- 보덕원
- 양생원
- 선구원
- 호덕원
- 송숙원 - 송풍 덴만구라고도 불린다. 라쿠요 덴만구 25사 순배 제15번찰소인 '매숙암 덴만구'라고도 한다.
- 입신원
- 광조원



4. 문화재
지온인에는 국보와 중요문화재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 '''국보'''
- * 본당(어영당)(부: 보랑)
- * 삼문
- * 지본 착색 호넨 쇼닌 그림 전 48권 - 가마쿠라 시대의 두루마리 그림.
- * 견본 착색 아미타 25보살 래영도 - 가마쿠라 시대의 불화. 통칭 "하야라이코(早来迎)"
- * 보살처태경(위 대통 16년 도우호원경) - 서위 대통 16년(550년)의 서사.
- * 대루탄경 권 제3(당 함형 4년 소경절 경조 일체경) - 당나라 함형 4년(673년)의 서사.
- * 상궁성덕법왕제설 - 쇼토쿠 태자의 전기, 현존하는 유일한 사본. 헤이안 시대 후기.
보살 처태경 이하 3건은 막말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문주를 역임한 요테츠테이(1814년 - 1891년)의 수집품이다. 국보로 지정된 회화와 서적은 교토 국립 박물관 및 나라 국립 박물관에 기탁되어 있다.
- '''중요문화재 (건축물)'''
- * 오호조
- * 코호조
- * 어묘
- * 어묘 당문
- * 어묘 배전
- * 진수당
- * 사각문
- * 남문
- * 흑문
- * 총문
- '''중요문화재 (미술공예품)'''
- * 지본 착색 호넨 쇼닌 그림 전 48권
- * 견본 착색 아미타 25보살 래영도
- * 보살처태경(위 대통 16년 도우호원경)
- * 대루탄경 권 제3(당 함형 4년 소경절 경조 일체경)
- * 상궁성덕법왕제설
- '''교토부 지정 유형문화재'''
- * 지온인 방장 정원
- * 어묘
- * 어묘 당문
- * 어묘 배전
- * 진수당
- * 사각문
- * 남문
- * 흑문
- * 총문
4. 1. 국보
- 본당(어영당)(부: 보랑)
- 삼문
- 지본 착색 호넨 쇼닌 그림 전 48권 - 가마쿠라 시대의 두루마리 그림.
- 견본 착색 아미타 25보살 래영도 - 가마쿠라 시대의 불화. 통칭 "하야라이코(早来迎)"


- 대루탄경 권 제3(당 함형 4년 소경절 경조 일체경) - 당나라 시대의 함형 4년(673년)의 서사.
- 상궁성덕법왕제설 - 쇼토쿠 태자의 전기, 현존하는 유일한 사본. 헤이안 시대 후기.
이 중, 보살 처태경 이하 3건은 막말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문주를 역임한 요테츠테이(1814년 - 1891년)의 수집품이다. 국보 지정 물건 중, 회화, 서적은 교토 국립 박물관 및 나라 국립 박물관에 기탁되어 있다.
4. 2. 중요문화재 (건축물)
거대한 정문인 산몬은 1619년에 지어졌으며, 일본에서 현존하는 동 종류의 구조물 중 가장 크다. 이 건물은 입모야 즈쿠리, 즉 팔작지붕을 특징으로 한다.[3] 팔작지붕의 목적은 사찰의 중심점을 보호하는 것이다.
지온인에는 대규모와 소규모의 객실이 있는데, 이들은 입모야 지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각각 오호조와 코호조라고 불리며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두 객실 모두 1641년에 건축되었다.
지온인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범종이 있는데, 1633년에 제작되었으며 무게는 74ton이다. 예전에는 25명의 팀이 종을 쳐야 했다.[4] 하지만 현재 사찰 웹사이트에 따르면 17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온인에 대해 주목할 만한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첫째, 모든 지붕 보에는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인 세 개의 호랑가시나무 잎이 새겨져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본당 밖에 있는 서까래에 숨겨져 있는 우산이다. 사찰을 재건하는 데 도움을 준 건축가 중 한 명이 비를 오게 하고 (따라서 화재를 막기 위해) 우산을 서까래에 놓았다.
사찰 내부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매우 삐걱거리는 마루인데, 이는 꾀꼬리 마루의 예시이다. 나무 판자는 금속 끝부분으로 제작되었으며, 이 끝부분은 판자가 부착된 금속 조인트와 마찰을 일으켜 사람들이 걸을 때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이는 도쿠가와 가문이 사찰에 머물 때 밤에 원치 않는 침입자를 감지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
지온인의 내부는 검은색, 금색, 주사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정교한 금속 세공의 캐노피와 붉은색 실크 밧줄과 술이 이 구역을 장식하고 있다. 금박을 입힌 화분에 담긴 연꽃도 있다.[5]
목재를 미술 작품으로 도입하고 현대 미술과 협업하는 것은 종교 건축물의 건축 및 장식 방식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 어묘(御廟)
- 어묘 당문(御廟唐門)
- 어묘 배전(御廟拝殿)
- 진수당(鎮守堂)
- 사각문(四脚門)
- 남문(南門)
- 흑문(黒門)
- 총문(総門)
4. 3. 중요문화재 (미술공예품)
지본 착색 호넨 쇼닌 그림 전 48권 - 가마쿠라 시대의 두루마리 그림.[1]

견본 착색 아미타 25보살 래영도 - 가마쿠라 시대의 불화. 통칭 "하야라이코(早来迎)"[1]
보살 처태경(위 대통 16년 도우호원경) - 서위 시대의 대통 16년(550년)의 서사.[1]
대루탄경 권 제3(당 함형 4년 소경절 경조 일체경) - 당나라 시대의 함형 4년(673년)의 서사.[1]
상궁성덕법왕제설 - 쇼토쿠 태자의 전기, 현존하는 유일한 사본. 헤이안 시대 후기.[1]
이 중, 보살 처태경 이하 3건은, 막말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문주를 역임한 요테츠테이(1814년 - 1891년)의 수집품이다.[1] 회화, 서적은 교토 국립 박물관 및 나라 국립 박물관에 기탁되어 있다.[1]
4. 4. 국가 명승
2021년(레이와 3년) 3월 26일에 지정되었다.[25][26]4. 5. 교토부 지정 유형문화재
5. 지온인의 7대 불가사의
지온인의 7대 불가사의는 다음과 같다.
- 우구이스바리 복도: 어영당에서 대방장, 소방장으로 이어지는 약 550m의 복도이다. 걸으면 꾀꼬리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기 때문에 "꾀꼬리 복도"라고 불리며, 조용히 걸으려고 할수록 소리가 더 크게 난다. 이는 일종의 보안 시스템 역할을 하며, 꾀꼬리 소리는 부처의 가르침을 경청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6]
- 흰 나무 관: 삼문 누각 위에 안치된 두 개의 흰 나무 관으로, 안에는 쇼군가로부터 삼문 조영의 명령을 받고 삼문 완성 후에 공사 예산이 초과되어 책임을 지고 자결했다고 전해지는 대목수 도료(棟梁)・고미 킨에몬 부부의 자작 나무상이 안치되어 있다.[6]
- 빠져나간 참새: 가노 노부마사가 그린 대방장의 국화 사이 미닫이 그림이다. 만수국 위에 몇 마리의 참새가 그려져 있었는데, 너무나 훌륭하게 그려져 참새가 생명을 얻어 날아가 버렸다고 전해진다.[6]
- 삼방 정면을 바라보는 고양이: 대방장의 복도에 있는 삼나무 미닫이에 그려진 가노 노부마사 필의 고양이 그림으로, 어느 쪽에서 보아도 보는 사람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어서 "삼방 정면을 바라보는 고양이"라고 불린다.
- 큰 국자: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미요시 세이카이 뉴도가 병사들에게 밥을 나눠줄 때 사용했다고도, 무기로 휘둘렀다고도 전해지는 국자이다. 아미타불의 대자비로 모든 사람이 구제된다는 일체 중생 구제를 나타낸 것이다.[6]
- 오이풀 돌: 흑문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으며, 지온인이 건립되기 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큰 돌이다. 하룻밤 사이에 이 돌에서 덩굴이 뻗어 꽃이 피고 오이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그 아래에는 니조성까지 이어지는 통로가 있다는 전설도 있다.[6]
참조
[1]
서적
Jodo Shinshu: Shin Buddhism in Medieval Japan
University of Hawaii Press
[2]
서적
Traversing the Pure Land Path: A Lifetime of Encounters with Honen Shonin
Jodo Shu Pres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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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ion-in[...]
2019-11-20
[4]
서적
Lafcadio Hearn Glimpses of Unfamiliar Japan Vol 1
https://books.google[...]
Brighthouse
[5]
간행물
Impressions of Japanese Architecture and the Allied Arts
http://archive.org/d[...]
1905
[6]
웹사이트
The Seven Wonders of Chion-in - History & highlights|CHION-IN
https://www.chion-in[...]
2019-11-2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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友禅染
https://www2.city.ky[...]
京都市
2024-11-0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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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恩院
http://otera.jodo.or[...]
宗教法人浄土宗
20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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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頂誌要 華頂山編」『浄土宗全書』19巻169頁"
http://www.jozensear[...]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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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知恩院
http://www.rekihaku.[...]
大津市歴史博物館
2014-03-16
[11]
문서
국보・御影堂 大修理
http://www.chion-in.[...]
知恩院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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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成28年国宝知恩院御影堂修理現場見学
http://www.pref.kyot[...]
京都府文化スポーツ部文化政策課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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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成28年度 秋 文化財修理現場見学会 国宝知恩院御影堂
http://www.pref.kyot[...]
京都府文化スポーツ部文化政策課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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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指定の文化財
第一法規
[15]
간행물
増上寺三解脱門の建立年代に関する一考察
https://edo-tokyo-mu[...]
東京都江戸東京博物館
2013-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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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指定の文化財
第一法規
[17]
문서
国宝になった知恩院の本堂と三門
第一法規
[18]
웹사이트
知恩院にお参りしよう
https://www.chion-in[...]
浄土宗総本山 知恩院
2024-02-08
[19]
웹사이트
【きょうの京】知恩院の三門をくぐると男坂と女坂
https://www.fujingah[...]
ハースト婦人画報社
2024-02-08
[20]
문서
本堂、三門の国宝指定告示は平成14年5月23日文部科学省告示第90号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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浄土宗では「らいごう」とは読まな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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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成15年5月29日文部科学省告示第104号
[23]
문서
平成22年6月29日文部科学省告示第98号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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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成26年8月21日文部科学省告示第105号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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令和3年3月26日文部科学省告示第45号
[26]
웹사이트
文化審議会の答申(史跡等の指定等)について
https://www.bunka.go[...]
文化庁
2020-11-2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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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プリングの日本発見』中央公論社、2002年、p15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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仏名経 ブツミョウキョウ
https://kotobank.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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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4回 御影堂に残る伝説
http://www.chio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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