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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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딜락은 1902년 설립된 미국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이다. 헨리 포드 컴퍼니의 잔여 자산으로 시작되었으며, 앙투안 로메 드 라 모스, 시에르 드 캐딜락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캐딜락은 정밀 제조와 럭셔리 마감을 통해 미국 최고의 자동차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1909년 제너럴 모터스(GM)에 인수되어 GM의 고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1910년대에는 전동 시동기, V8 엔진 등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하며 "세계의 표준"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1950년대에는 테일 핀, 랩어라운드 윈드실드 등 독특한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1960년대에는 럭셔리함과 기술 혁신의 절정을 이루었으며, 1970년대에는 다운사이징과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00년에는 "아트 앤 사이언스" 디자인 철학을 도입하여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으며, 현재는 세단, SUV 등 다양한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캐딜락은 모터스포츠에도 참여하여 레이싱 역사를 이어가고 있으며, 미국 대통령 전용차로도 사용될 정도로 상징적인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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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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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캐딜락 |
이전 이름 | 캐딜락 자동차 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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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비상장 기업 (1902–09) 사업부 (1909–현재) |
설립 | 1902년 8월 22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
창립자 | 윌리엄 머피 레뮤얼 보웬 헨리 M. 릴랜드 |
소재지 |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
서비스 지역 | 미국, 캐나다, 멕시코, 코스타리카, 파나마, 유럽 (러시아 및 벨라루스 제외), 중동 (이란 및 시리아 제외), 중국 (홍콩 및 마카오 제외), 대한민국, 일본 |
주요 인물 | 스티브 칼라일, 캐딜락 사장 |
제품 | 고급 자동차 |
모회사 | 제너럴 모터스 |
웹사이트 | cadillac.com |
관련 명칭 | |
역사 | |
이전 회사 | 헨리 포드 회사 |
인수 | 1909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됨 |
생산 | |
생산 | 자동차 산업 |
소유 구조 | |
소유자 | 제너럴 모터스 |
2. 역사
2. 1. 설립 초기 (1902년 ~ 1915년)
캐딜락은 헨리 포드 컴퍼니(Henry Ford Company)의 잔여 자산으로 설립되었다. 헨리 포드와 투자자들 사이의 분쟁으로 포드는 1902년 3월에 회사를 떠났고, 재정적 후원자였던 윌리엄 머피와 레뮤엘 보웬은 헨리 M. 릴랜드에게 공장과 설비 감정을 의뢰했다. 릴랜드는 이들에게 자신이 개발한 단일 실린더 엔진을 사용하여 자동차 제조를 계속하도록 설득했고, 1902년 8월 22일, 캐딜락 자동차 회사(Cadillac Automobile Company)가 설립되어 카스 스트리트와 암스테르담 애비뉴에 있는 헨리 포드 컴퍼니 공장을 개조했다. 이 회사는 1701년 디트로이트를 설립한 프랑스 탐험가 앙투안 로메 드 라 모스, 시에르 드 캐딜락(Antoine Laumet de La Mothe, sieur de Cadillac)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캐딜락의 최초 자동차인 런어바웃과 토노는 1902년 10월에 완성되었다. 이들은 10마력(7kW)의 단기통 엔진으로 구동되는 2인승 마차였으며, 1903년 포드 모델 A와 거의 동일했다. 캐딜락은 1903년 1월 뉴욕 오토쇼에서 신차를 전시하여 2,000대 이상의 확정 주문을 받을 정도로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캐딜락의 가장 큰 판매 포인트는 정밀 제조, 즉 신뢰성이었다.
캐딜락 자동차 회사는 1905년 릴랜드 앤 폴코너 매뉴팩처링과 합병하여 캐딜락 모터 컴퍼니를 설립했다.[8] 초창기부터 캐딜락은 정밀 공학과 세련된 럭셔리 마감을 추구하여 미국 최고의 자동차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8] 1906년에 완전 밀폐형 자동차를 대량 생산한 최초의 제조사였고, 1908년 영국에서 열린 상호 교환성 테스트에 참여하여 듀어 트로피를 수상했다.[8]
1909년 7월 29일,[1] 캐딜락은 제너럴 모터스(GM)에 인수되었다.[9] 캐딜락은 대형 럭셔리 차량 생산에 전념하는 제너럴 모터스의 고급 브랜드가 되었으며, 리무진, 구급차, 장의차 등의 상업용 섀시 기관 차량에도 사용되었다.[9] 캐딜락은 GM의 차량 계층 구조에서 뷰익, 올즈모빌, 오클랜드보다 상위에 위치하게 되었다.[9]
1912년, 캐딜락은 전동 시동기, 점화 시스템, 조명을 가능하게 하는 전기 시스템을 통합한 최초의 자동차 제조사가 되었다.[10][11]
2. 2. 세계 표준으로의 도약 (1915년 ~ 1941년)
1915년, 캐딜락은 70마력(2400rpm) 및 240 N·m 토크의 90도 플랫 헤드 V8 엔진을 선보였다.[11] 이를 통해 차량은 65 mp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대부분의 도로에서 허용할 수 있는 속도보다 빨랐다.[11] 1918년 캐딜락은 이중 평면 V8 크랭크축을 개척했다. 1928년에는 충돌이 없는 싱크로-메시 수동 변속기를 최초로 도입했다.[11] 1930년에는 45도 오버헤드 밸브, 452 in3(7.4 L) 및 165마력을 갖춘 최초의 V-16 엔진을 적용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하고 조용한 엔진 중 하나였다.[11] V8, V16 및 V12 엔진의 개발과 도입은 캐딜락을 "세계의 표준"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11] 1949년에는 오버헤드 밸브를 갖춘 V8 엔진의 후기 모델은 미국 전체 자동차 산업의 표준을 세웠다.[11]1909년 제너럴 모터스(GM)에 합류한 캐딜락은, 이후 GM의 최고급 라인을 담당하는 모델로 생산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셀프 스타터 탑재(1912년)는 초창기의 현저한 공적이다. 이후에도, 세계 최초의 양산 V형 8기통 엔진이나 V형 16기통 엔진, 싱크로메시・기어 박스, 더블 위시본 식 전륜 독립 현가의 실용화, 파워 스티어링, 헤드 램프 자동 조광 시스템, 에어컨 탑재 등, 근대 승용차의 기술 혁신에 크게 공헌했다.[56] 또한, 캐딜락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듀워 트로피"(Dewar Trophy)를 2회 수상한 회사가 되었다.
1917년 7월, 미국 육군은 신뢰할 수 있는 참모용 차량으로 멕시코 국경에서 철저한 테스트를 거쳐 캐딜락 타입 55 투어링 모델을 선택했다. 2,350대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원정군 장교들에 의해 프랑스에서 사용되었다.[12]


1928년부터는 형제 브랜드인 「라 살(La Salle)」을 설립하여, 매년 호화로움을 더해가는 캐딜락보다 내외장 장식을 간략화한 염가 모델을 출시함으로써 새로운 사용자층을 확보하고자 했다. 초기에는 판매가 호조를 보이며 라인업을 늘려갔지만, 뷰익이나 올즈모빌 등 GM 그룹 내 다른 중위 브랜드와의 경쟁 등의 이유로 1940년에 폐지되었다.
1926년, 캐딜락은 자동차 스타일리스트 할리 얼(Harley Earl)을 영입했다. 1928년까지 얼은 새로운 아트 앤 컬러 부서의 수장이 되었고, 결국 30년 이상 지난 은퇴할 때까지 GM에서 근무했다. 그가 디자인한 첫 번째 자동차는 라살(LaSalle)이었으며, 1940년까지 생산되었다.[15] 1927년에 캐딜락은 자동차 공학이 아닌 디자이너 스타일의 차체를 도입했다. 1926년에는 파손 방지 적층 유리를 설치했다. 캐딜락은 또한 승용차 최초의 완전 강철 지붕인 "터렛 탑"을 도입했다.[11]
1930년에는 세계 최초의 승용차용 V형 16기통 엔진을 출시하여 라인업을 확충했지만, 전년에 일어난 대공황으로 인해 1930년대 전반의 판매 대수는 다른 자동차 회사와 함께 저조한 상태를 지속하게 되었다. 1928년과 1933년 사이에 캐딜락 판매량은 84% 감소하여 6,736대로 떨어졌다.[16] 그러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 정책 도입 등으로 미국 내 경제가 회복되면서 1930년대 후반에는 판매 대수가 회복되었다. 1934년 브랜드 판매량이 70%증가하는데 기여한 캐딜락 서비스의 전국 책임자이자 정비사인 닉 드레이슈타트(Nick Dreystadt)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판매를 꺼리는 정책을 폐지했다.[17]
1940년까지 캐딜락 판매량은 1934년에 비해 10배 증가했다.[14] 1936년 드레이슈타트는 캐딜락의 중가 차량 시장 진출을 위한 시리즈 60을 출시했다. 1939년에는 시리즈 61로 대체되었지만, 식스티 스페셜은 1993년까지 계속 생산되었다. 1934년 헨리 F. 필립스(Henry F. Phillips)는 나사 드라이버를 시장에 출시하여 캐딜락 그룹에게 새로운 나사가 조립 시간을 단축하여 이윤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설득했다. 캐딜락은 1937년 필립스 기술을 최초로 사용한 자동차 제조업체였다.[18] 1941년에는 회사에서 생산한 모든 차량이 동일한 기본 엔진과 구동계를 공유했다.[19]
1939년, GM은 세계 최초의 자동변속기 "하이드라매틱"(Hydra-Matic)을 실용화했다. 올즈모빌에 유료 옵션으로 탑재하기 시작했으며, 캐딜락에서는 1942년형부터 채용되었다.[57]
2. 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5년 ~ 1959년)
전후 캐딜락 차량들은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미국 자동차와 동의어가 된 많은 스타일링 기능을 혁신했다. 당시 제너럴 모터스 스타일링 책임자였던 할리 J. 얼의 많은 아이디어를 통합하여, 여기에는 테일 핀, 랩어라운드 윈드실드, 크롬의 광범위한 사용이 포함되었다.[11] 테일 핀은 1948년에 처음 추가되어[11] 1959년에 절정에 달했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지 매년 감소하여 1965년 모델 연도에는 사라졌다(1964년에서 이월된 1965년 시리즈 75 섀시의 제한적 생산에만 흔적으로 남아있었다).캐딜락의 또 다른 독특한 스타일링 특징은 앞 범퍼였다. 전쟁 후 시작된 일련의 포병 셸 모양의 범퍼 가드[26]는 1950년대가 지나면서 전면 디자인에서 더 높이 이동했다. 육감적인 1950년대 텔레비전 인물과 유사하여 다그마 범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1958년에 완화되었고 그 다음 해에 사라졌다.
1956년에는 "세단 드 빌"로 판매된 필라리스 4도어 하드톱 세단이 출시되었고, 1년 후에는 모든 표준 캐딜락에 해당 기능이 나타났다. 신생 자동차 잡지 ''모터 트렌드''는 혁신적인 오버헤드 밸브 V8 엔진에 대해 1949년에 캐딜락에 첫 번째 "''모터 트렌드'' 올해의 차"를 수여했다. 회사는 처음에는 이 영예를 무시했지만, 현재 홍보 자료에서 자랑스럽게 "올해의 차" 수상 경력을 언급한다.[20][21] 1949년 11월 25일, 캐딜락은 100만 번째 자동차인 1950년 쿠페 드 빌을 생산했다.[22] 또한 10만 대의 새로운 판매 기록을 세웠으며,[22] 1950년과 1951년에도 기록을 세웠다.[23] 1949년에는 뷰익과 함께 "B" 필러가 없는 폐쇄형 차체 스타일인 최초의 대량 생산 하드톱 쿠페가 출시되었다. 쿠페 드 빌로 판매된 이 모델은 수년 동안 캐딜락의 가장 인기 있는 모델 중 하나가 되었다.
1945년 8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얼마 동안은, 전쟁 전 모델의 마이너 체인지 모델을 계속 만들었지만, 최초의 본격적인 전후 모델로서 종전 직전부터 개발된 1948년형은, 당시 GM 디자인 담당 부사장이었던 할리 얼(Harley Earl)의 훈도를 받은 프랭클린 Q. 허시(Franklin Q. Hershey)에 의해, 자동차 업계 최초의 곡면 유리와 필러리스 하드탑, 그리고 로키드 P-38전투기를 모티브로 하여, 이후 세계적으로 유행한 테일 핀을 갖춘 선진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51년, 캐딜락은 M41 워커 불독 육군 전차 생산을 시작했고, 이 전차는 한국과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되었다.
1953년에는 "오토닉 아이"가 도입되었다. 이 기능은 마주 오는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하이빔 헤드램프를 자동으로 어둡게 해주는 기능이었다.[24] 1957년, 캐딜락은 더욱 고급 시장으로 진출하려 했고, 수작업으로 제작된 시리즈 70 엘도라도 브로엄을 만들었다.[25] 이 차량은 자동 수평 조절 서스펜션, "메모리 시트" 기능, GM의 델코 라디오에서 생산되었고 1957년 엘도라도 브로엄 모델의 표준 장비로 제공되는 완전 트랜지스터 신호 탐색 자동차 라디오를 특징으로 했다.[26][27][28][29] 이 차량은 캐딜락의 기술적 우수성을 보여주었지만, 904대만 판매되었다.
이 시기부터, 당시 GM의 회장이었던 알프레드 슬론에 의해 발안되어 1949년부터 시작된, GM이 자사의 컨셉트 카를 미국 국내에 널리 전시하기 위해 개최한 순회식 모터쇼인 "모토라마"를 위해 개발된 컨셉트 카의 디자인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호경기에 따른 판매량 증가와 신기술의 진전에 따라, "이어 모델" 형태로, "모토라마"에서 발표된 새로운 디자인 모티브를 도입한 디자인 변경과 신기술의 도입을 실시하는 모델 체인지를 거의 매년 실시하게 되었다.
2. 4. 럭셔리와 혁신의 절정 (1960년 ~ 1976년)
1962년에는 전후방 유압 시스템이 분리된 듀얼 리저버 브레이크 마스터 실린더가 연방 규정보다 6년 먼저 도입되었다. 최초의 완전 자동 히터-에어컨 시스템과 3단 터보-하이드라매틱 자동 변속기가 출시되어 수십 년 동안 GM의 표준 모델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캐딜락은 운전자에게 전구 고장을 알리는 광섬유 경고 시스템을 제공했다. 1959년 이후 매년 외관과 내부에 밝은색 장식이 줄어들었으며, 1966년 모델 연도까지는 후방 범퍼조차 모두 크롬으로 제작되지 않았고, 헤드라이트 베젤을 포함한 큰 부분이 페인트로 칠해졌다.1966년 캐딜락은 연간 판매량이 192,000대 이상(그 중 드 빌 142,190대)으로, 이전까지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60% 이상 증가했다.[30] 1968년에는 처음으로 200,000대를 넘어섰다.[32] 1967년과 1968년에는 에너지 흡수 스티어링 컬럼 및 휠, 부드러운 실내 및 계기판 노브 및 표면, 전방 숄더 벨트, 측면 마커 램프 등 연방 정부가 의무화한 안전 기능이 대거 도입되었다.
1967년 전륜구동 엘도라도가 출시되어 개인용 고급차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단순하고 우아한 디자인은 1950년대의 핀과 크롬과는 거리가 멀었다. 캐딜락의 성공은 경쟁사인 링컨 및 임페리얼을 상대로 성장했으며, 1970년에는 크라이슬러 전체의 판매량을 처음으로 넘어섰다.[33] 1968년 모델에 처음 등장한 엔진은 최대 의 잠재력을 위해 설계되었으며,[34] 1970년 엘도라도에는 으로 증가했다. 이는 1975년부터 모델 전체에 적용되었다.
운전석 및 조수석 에어백("에어 쿠션 제한 시스템")은 1974년에 일부 캐딜락, 그리고 기타 뷰익 및 올즈모빌 고급 모델에서 제공되기 시작했지만, 이 옵션은 인기가 없어 1976년 모델 연도 이후 단종되었다. 하드탑 쿠페 드 빌은 1973년 모델로 종료되었으며, 세단 드 빌은 1976년까지 필러리스로 유지되었다. 1970년대는 차량의 고급스러움과 크기 면에서 새로운 극점을 보였다. 1972년 플리트우드는 1960년 시리즈 75 플리트우드에 비해 휠베이스가 43.18mm 더 길고 전체 길이가 101.6mm 더 길었다. 1972년의 엔트리 레벨 칼레는 동일한 휠베이스에서 1960년 시리즈 62에 비해 60.96mm 더 길었다.[35] 모델은 더욱 부드러운 승차감을 얻었으며, 차량 무게, 표준 장비 및 엔진 배기량이 모두 증가했다. 캐딜락은 1973년에, 그리고 1970년대 후반에 다시 한 번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1975년 5월, 세빌은 성장하는 수입 고급차 시장의 경쟁자로 소개되었으며 "국제적 크기"로 마케팅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크롬 도금을 다용한 "다그마 범퍼"라고 불리는 범퍼 일체형 프론트 그릴이나 듀얼 헤드램프, 더욱 거대해진 테일 핀 등의 호화로운 익스테리어 디자인과 에어 서스펜션, 파워 스티어링, 전동 트렁크 오프너/클로저, 자동 조광 헤드램프 등 당시 최신 기술을 갖춘 신형 모델을 잇따라 시장에 투입했다. 특히 빌 미첼(Bill Mitchell), 척 조던(Chuck Jordan), 데이브 홀스의 지도 아래 제트 엔진 전투기와 로켓을 이미지로 하여 산업 디자인된, 6미터에 가까운 전장에 거대한 테일 핀과 듀얼 헤드램프, 크롬 도금과 화이트월 타이어를 갖춘 1959년형은 호경기에 들뜬 1950년대 미국의 아이콘 중 하나가 되었다. 할리 얼의 뒤를 이어 빌 미첼이 디자인 담당 부사장이 된 직후의 1960년형부터는 거대한 테일 핀과 과도한 크롬 도금은 사라졌지만,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인 피닌파리나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쇼 모델을 계속 발표하고, 그 디자인을 시판차에도 유용했다.
특히 1960년에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 재클린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탈리아의 피닌파리나가 스타일링하고 1961년의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된 "브로엄 재클린"의 디자인 모티브는 1960년대 캐딜락에 수없이 유용되었다. 그 후에도 캐딜락의 우아한 스타일과 최신 기술은 세계 각국의 고급차에 큰 영향을 계속 주었고, 1970년대 전반에 걸쳐 판매 대수가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1973년에는 과거 최고 판매 대수를 기록했다), 그 명성도 절정기를 맞아 엘비스 프레슬리, 리베라체, 조 디마지오 및 쑹메이링, 아가 칸 4세 등 세계의 거부 및 유명 인사, 슈퍼스타들이 애용했으며, 아울러 많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등장함으로써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2. 5. 다운사이징과 기술 혁신 (1977년 ~ 1988년)
1977년, 캐딜락의 D-바디는 GM의 "B" 및 "C" 바디 자동차와 동일한 "다운사이징"을 경험했다. 1977년, GM은 자사의 풀사이즈 자동차를 대폭 다운사이징했다. 플리트우드 브로엄은 독점적인 더 긴 휠베이스를 잃고, 이제 드빌과 동일한 새롭고 짧은 121.5인치 휠베이스를 사용했다. 플리트우드와 드빌 모델 모두 425 입방인치(7.0리터) V8 엔진으로 구동되었는데, 이 엔진은 이전 연도의 472/500 (7.9 L/8.2 L) V8의 보어 축소 버전이었다.1977년은 캐딜락의 75주년이었으며, 다운사이징된 드빌 쿠페와 세단이 출시되었다. 새롭게 디자인된 플리트우드 브로엄은 이제 덜 고급스러운 세단 드 빌과 외관이 유사했다. 이름 외에는 플리트우드 브로엄과 세단 드 빌 간에 미묘한 외부 차이점만 있었고, 내부의 경우 플리트우드가 더 고급스럽고 더 많은 기능을 기본으로 제공했다. 이 새로운 자동차는 이전 해보다 9인치 이상 짧고, 4인치 좁고, 무게가 0.5톤 가벼워졌지만, 트렁크가 더 커지고 헤드룸과 레그룸이 더 넓어졌다. 또한 이들은 뒷바퀴 위에 펜더 스커트가 없는 최초의 드빌이었다. 190마력을 생산하는 500 in3 V8은 1977년에 180마력의 유사한 디자인의 425 in3 V8 변형으로 대체되었다. 미국의 기업 평균 연비 규정 통과로 인해 연비와 배기가스를 개선하기 위해 크기와 무게를 줄였다.
1977년 라인업에는 2도어 쿠페 드 빌(9,654달러)과 4도어 세단 드 빌(9,864달러)이 포함되었다. 이전 세대의 드빌에서 이어진 인테리어 드레스업 옵션인 650달러의 d'Elegance 패키지는 두 모델 모두에 계속 적용되었다. 3면 랩어라운드 테일 램프는 1977년 전용 기능이었다(1987년에 다시 등장). 쿠페 드 빌의 인기 있는 "카브리오레" 옵션은 348달러에, 뒷면 절반 패딩 비닐 루프 커버와 오페라 램프를 포함했다. 표준 7.0리터 파워트레인의 선택 사양인 전자 연료 분사 버전은 15마력을 추가하여 647달러가 추가되었다. 판매량은 쿠페 드 빌 138,750대와 세단 드 빌 95,421대로 총 234,171대의 드빌이 판매되어 역대 최고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다운사이징으로 연비와 핸들링이 개선되었다. 1979년, 캐딜락의 플래그십 모델인 엘도라도 쿠페가 다운사이징되었다. 1980년대에는 드빌, 플리트우드, 엘도라도, 세빌을 포함한 많은 모델이 추가로 다운사이징되었다. 캐딜락은 1980년에 엘도라도와 동일한 전륜구동 섀시로의 이전을 특징으로 하는 버슬백 리어 엔드 스타일링 테마를 특징으로 하는 세빌의 극적인 재설계를 내놓았다.
1970년대 초반에 일어난 석유 파동의 영향으로 미국 시장에서도 요구된 다운사이징화 및 저연비 지향에 대응하는 동시에, 미국산 고급차에 비해 크기가 작고 연비가 우수한 (게다가 가격이 높았던) 메르세데스-벤츠의 "컴팩트 클래스" (현 E클래스)와 S클래스, BMW의 5시리즈 및 7시리즈 등 유럽산 고급차에 대항하기 위해 1975년에 「세빌」을 출시했다.
세빌은 전장이 5미터 남짓으로 크기는 작아졌지만, 내외장 스타일은 지금까지의 캐딜락의 것을 답습하여 우아함을 유지했다. 또한 장비 면에서도 캐딜락 최초로 전자 제어식 연료 분사 장치를 표준 장착하여 저연비 지향에도 대응하는 설계였다. 당시 캐딜락으로서는 가장 가격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리무진 제외) 히트를 기록했으며, 1978년에는 투톤 컬러와 고급 가죽 시트 등을 적용한 상위 버전인 「세빌 엘레강테」를 추가했고, 1979년에는 이탈리아 고급 패션브랜드인 「구찌」 버전을 판매하는 등 캐딜락의 간판 차종 중 하나가 되었다.
1980년에는 1930년대의 다임러와 롤스로이스를 연상시키는 리어 스타일을 갖추고 전륜구동으로 변경되었으며, 실린더 컷오프 기구 등의 연비 절감 기능을 도입한 2세대로 진화했다.
2세대는 캐딜락 최초로 디젤 엔진과 트립 컴퓨터 등 수많은 신기구를 도입한 점도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좋은 판매량을 유지했다.

1982년, 시마론은 브랜드의 첫 번째 소형차로 출시되었다.[36] 시마론의 시장 실패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캐딜락의 명성을 훼손하고 미국 시장에서 해당 부문의 점유율을 1979년 3.8%에서 1997년 2.2%로 떨어뜨린 일련의 사건 중 하나이다.[36] 이는 GM의 제품 계획의 최악의 시기로 빈번하게 인용된다.[36] 자동차 저널리스트 댄 닐은 2007년 "역대 최악의 자동차" 목록에 시마론을 포함시키면서 "1980년대 GM의 모든 잘못된 점, 비열함, 게으름, 거짓됨이 이 캐딜락의 좋은 이름과 훌륭한 고객에 대한 명백한 모욕에서 결정화되었다"고 말했다.[37] 그는 시마론이 "캐딜락을 거의 죽일 뻔했고 여전히 가장 큰 수치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37]
1982년에는 고급 세그먼트 진출을 노리는 일본차 및 소형 유럽차와의 경쟁, 캐딜락 오너층의 고령화에 대한 대처, 그리고 미국 정부가 각 자동차 회사에 부과한 "CAFE(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자동차 회사별 평균 연비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창업 초창기인 1914년 이후 67년 만에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디젤 엔진을 준비했다. 게다가 쉐보레 캐벌리어나 폰티악 선버드, 뷰익 스카이호크, 이스즈 아스카 등 다른 GM의 대량 판매 소형차에 사용되던 전륜구동 "J 플랫폼"을 유용한 소형 캐딜락인 "시마론"을 도입했다(도입 초기에는 "시마론 바이 캐딜락"이라고 칭했으며, 정식 캐딜락 브랜드로는 취급하지 않았다).
시마론은 미국 시장의 저연비 지향에 대응하는 신세대 소형 캐딜락으로, 당시 미국에서 일본차 최고급 차종인 토요타 크레시다나 닛산 맥시마,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 190E나 BMW 3 시리즈, 아우디 4000 등의 고급 소형 유럽차를 주요 타겟으로 삼아, 약 12,000달러로 유럽 경쟁사에 비해 저렴하게 설정하면서, 파워 스티어링과 에어컨을 기본 장착하고, 가죽 시트와 자동 조광 헤드라이트를 옵션으로 설정하는 등 다른 "J 플랫폼"의 GM 소형차에 비해 장비를 충실하게 하여 차별화를 연출했다.
그러나 부품 공용화에 집착한 나머지, 캐벌리어, 스카이호크, 올즈모빌 피렌자 등 다른 GM 차종과의 차별화에 실패하여, 첫해부터 판매가 부진했다. 1983년에는 내외장을 대폭 충실하게 하고, "캐딜락 시마론"으로 개명했으며, 1985년에는 V6 엔진을 추가 도입한 외에도, 프론트 그릴 디자인을 거의 매년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디자인이 바뀌지 않아 판매에 대실패를 거두어, 1988년에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981년 모델 연도의 경우, 오랫동안 사용된 "세계의 표준" 슬로건이 "세계의 미국 표준"으로 변경되었다.[38] 1982년 모델 연도에는 슬로건이 "모든 것 중에서 최고... 그것은 캐딜락이다"로 변경되었으며, 이는 1986년까지 사용되었다.[38][39]
새로운 전륜구동 드빌의 생산 지연으로 인해(1985년 모델로 출시 예정), 1984년은 후륜구동 쿠페 드 빌(17,140달러)과 그 4도어 동반자, 인기 있는 세단 드 빌(17,625달러)의 재출시였다. 또한 드빌이 캐딜락 문장 아래에 "V" 엠블럼을 사용한 마지막 해였으며, 1985년 모델부터는 플리트우드와 엘도라도 전용이었던 문장과 월계관 엠블럼을 사용하게 되었다. 1984년 판매량은 총 4도어 107,920대, 2도어 50,840대(드 빌 및 플리트우드 모델 포함)를 기록했다. 새로운 전륜구동 1985 쿠페 드 빌과 세단 드 빌은 대부분의 신차 출시보다 약 6개월 빠른 1984년 봄에 캐딜락 쇼룸에 도착했기 때문에, 1984년 후륜구동 모델과 1985년 전륜구동 모델은(별도의 조립 공장으로 인해) 거의 반년 동안 동시에 판매되고 생산되었다.
세빌의 성공과 미국 시장에서의 연비 중시 경향에 따라, 플리트우드 브로엄이나 엘도라도, 드 빌(당시 일본명 플리트우드 엘레강스) 등의 다른 주력 모델들도 잇따라 다운사이징 및 엔진의 소배기량화를 진행하게 되었고, 풀 사이즈의 드 빌은 1985년에 전륜 구동화를 동반한 대폭적인 다운사이징을 단행한다.
플리트우드도 1985년에 FF화되어 대폭적인 다운사이징을 실시함과 동시에 프레임 보디에서 모노코크 보디로 변경되었다(『80년대 수입차의 모든 것』 산에이 서방・55페이지 참조). 1986년에도 다운사이징 전 모델이 재고 판매되었고, 1987년부터 다운사이징 전의 플리트우드는 "브로엄"으로 개명되어 판매되었다.
플리트우드 브로엄은 1989년에도 마찬가지로 다운사이징을 실시했지만, 다운사이징 전의 플리트우드 브로엄은 플리트우드와 마찬가지로 브로엄을 후속 모델로 하여 계속 생산되었다. 또한 1980년의 2세대 세빌 등장과 동시에, 지금까지 풀 사이즈였던 엘도라도는 세빌과 거의 같은 크기로 다운사이징되어 세빌의 2도어 모델적인 성격을 부여받았다. 또한, 컨버터블 인기의 재점화에 따라 오랜만에 컨버터블 모델이 준비되었다. 세빌과 엘도라도의 관계는 1986년에 등장한 3세대 세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85년에는 품질 지연으로 인해 계획되었던 1984년 모델 연도 출시가 무산된 후, 새로운 전륜구동 드빌 및 플리트우드 모델이 출시되었다. 1986년에는 새로운 다운사이징된 엘도라도 및 세빌 모델이 출시되었다. 1987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피닌파리나 차체의 알란테 로드스터가 HT-4100 V8 엔진을 탑재하고 시장에 출시되었다. 1987년에는 식스티 스페셜이 전륜구동 GM C-바디 라인업에서 최고의 오너 드라이브 캐딜락으로 복귀했으며, 생산은 단 2,000대로 계획되었다. 1987년 및 1988년 식스티 스페셜은 드빌/플리트우드를 기반으로 한 5인치(127 mm) 더 긴 휠베이스를 특징으로 하는 독특하고 맞춤형으로 제작된 자동차였다. 또한 1987년에는 1921년부터 캐딜락이 제작되어 온 디트로이트 조립의 클라크 스트리트 공장이 폐쇄되었다.
1980년대에는 새로운 기술 지원 고급 기능이 도입되었다. 여기에는 1958년 엘도라도 브로엄 이후 제공되지 않았던 메모리 시트 옵션의 부활이 포함되었다. 1981년에는 모든 모델에 표준 디지털 난방 및 에어컨 컨트롤이 적용되었다. 1982년에는 하이 테크놀로지 엔진이 도입되었다. 원래 1983년에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1985년으로 연기되었으며, 이 엔진은 그 해 캐딜락이 도입할 다운사이징된 전륜구동 모델에 적용될 예정이었다. 1983년에는 엘도라도와 세빌에만 제공되는 895달러의 카세트 스테레오 시스템인 델코/보스 스테레오 시스템 옵션이 도입되었다. 이 보스 시스템은 결국 1985년 FWD 모델의 드빌 및 플리트우드 모델에서도 제공될 것이다. 1979년 엘도라도와 1978년 및 1979년 세빌에 제공된 트립 컴퓨터는 1981년에 새로운 디지털 난방 및 에어컨 제어 패널로 교체되는 일부 트립 컴퓨터 기능과 함께 디지털 계측 기능으로 대체되었다. 디지털 계측 기능은 1985년에 새로운 FWD 드빌 및 플리트우드 시리즈에서 제공될 것이다.
2. 6. 새로운 도전과 변화 (1989년 ~ 1999년)
1991년, 캐딜락은 노스스타 엔진(Northstar engine)을 선보였다. 이 엔진은 1991년부터 2010년까지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에서 생산한 고성능 90° V형 엔진 계열이었다. GM의 가장 기술적으로 복잡한 엔진으로 여겨지는 이 엔진은, 1992년 중반에 도입된 성능 기능 패키지인 가변 밸브 타이밍, 노면 감지 서스펜션, 가변 파워 스티어링, 4륜 디스크 브레이크를 캐딜락의 고출력 및 고토크 노스스타 엔진과 결합한 캐딜락의 상표인 노스스타 시스템과 관련이 깊다.1987년에는 미국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메르세데스-벤츠 SL 클래스나 재규어 XJS 등의 유럽산 고급 쿠페 및 컨버터블 고객을 겨냥하여 2인승 컨버터블인 「알란테(Allanté)」를 도입했다. 이탈리아의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차체와 내외장의 고품질 마감은 호평을 받았다. 또한 이듬해 인디 500의 페이스카로 채택되는 등 대규모 프로모션도 진행했다. 생산 공정에서, 알리탈리아 항공의 보잉 747-200F 전용 화물기로 반제품 상태의 차체를 이탈리아 피닌파리나 공장으로 보내 내외장을 마감한 후 미국으로 다시 보내 엔진과 변속기를 장착하는 공정을 채택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생산 라인"으로 비유되었다. 1989년에는 4,500cc 엔진으로 변경하고, 이듬해에는 트랙션 컨트롤을 장착했다. 1993년에는 최신형 「노스스타」 4,600cc 엔진을 탑재하여 유럽 경쟁 차종과 유사한 동력 성능을 확보했지만, 판매량은 향상되지 않은 채 1993년에 생산이 중단되었고, 후속 차종은 설정되지 않았다.
1992년형 세빌(Seville)은 유럽의 고급 성능 세단과 경쟁하기 위해 재설계되었으며, 1988년 캐딜락 보이저(Voyage) 컨셉트카의 스타일링 큐를 일부 채택했다. 그 해 ''카 앤 드라이버(Car and Driver)'' 잡지의 카 앤 드라이버 텐 베스트(Ten Best list)에도 이름을 올렸다. 1년 후, 브로엄(Brougham)은 단종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1993년형 후륜 구동 플리트우드(Fleetwood)로 대체되었다. 이전의 전륜 구동 플리트우드는 1993년에 식스티 스페셜(Sixty Special)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같은 해, 풀 사이즈 쿠페의 인기가 감소함에 따라 쿠페 드 빌(Coupe deVille)은 단종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캐딜락은 경쟁 상대였던 링컨(Lincoln)이나 유럽의 고급 브랜드뿐만 아니라, 혼다의 "어큐라", 닛산 자동차의 "인피니티", 토요타의 "렉서스" 등 고급화된 일본차와의 직접적인 경쟁에 직면했다.
1994년형 드 빌(DeVille)은 GM K 플랫폼 (FWD)(K-body) 플랫폼을 캐딜락 세빌(Seville)과 공유하도록 재설계되었다. 차체는 재설계되었지만, 휠베이스는 세빌에 사용된 111인치가 아닌 113.8인치로 유지되었다. 생산은 미시간주 햄트램크(Hamtramck, Michigan)로 이전되었다. 1994년형 모든 드 빌 모델에는 표준 SRS 운전자 측 전면 에어백, 통합 메시지 센터가 있는 완전 디지털 계기판, 듀얼 존 전면 HVAC 시스템이 기본으로 제공되었다. 1996년의 스타일 변경 이후 SRS 조수석 전면 에어백이 표준 장비가 되었으며, 새로운 오디오 시스템도 이때 적용되었다. 1995년에는 1982년부터 캐딜락에서 사용된 첨단 기술 엔진이 단종되었다.
1997년에는 캐딜락 카테라(Catera) 중형 세단이 캐딜락의 새로운 엔트리 레벨 모델로 출시되었다. 카테라는 배지 엔지니어링(badge engineering)된 오펠 오메가#오메가 B1 (1994–1999)(Opel Omega B)의 변형 모델로, 독일 뤼셀스하임(Rüsselsheim)의 오펠(Opel)에서 제조되었다. 드 빌도 그 해에 재설계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 캐딜락은 성장하는 SUV 세그먼트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1999년에 출시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Escalade)는 링컨 네비게이터(Lincoln Navigator) 및 다양한 수입 브랜드의 럭셔리 SUV와 경쟁하기 위해 마케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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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7. 아트 앤 사이언스 시대 (2000년 ~ 현재)
2000년, 캐딜락은 "아트 앤 사이언스"(Art and Science)라고 불리는 21세기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도입했다.[41] 이 철학은 "날카롭고 깨끗한 형태와 선명한 가장자리를 통합하여 대담하고 첨단 기술 디자인을 표현하고 이를 설계하는 데 사용된 기술을 연상시키는 형태 어휘"라고 명시했다. 이 새로운 디자인 언어는 오리지널 CTS에서 캐딜락 XLR 로드스터로 확산되었다. 캐딜락의 모델 라인업은 주로 후륜 및 사륜 구동 세단, 로드스터, 크로스오버 및 SUV를 포함했다. 예외는 전륜 구동 소형 고급 캐딜락 BLS (북미에서는 판매되지 않음)[42]와 캐딜락 DTS였다. 스웨덴 트롤헤탄의 사브에서 개발된 BLS는 배지 엔지니어링된 사브 9-3의 변형 모델로, 세단과 스테이션 왜건 형태로 제공되었다.
1998년 일본과 유럽의 고가 차량을 타겟으로, 고출력 엔진과 고품질의 내장을 갖춘 5세대 세빌을 도입했으며, 이후 고객 단가 상승과 고객 평균 연령 감소를 목표로 브랜드 전체의 쇄신과 재구축을 시작했다. 세빌은 일본과 영국 시장에서의 판매 확대를 노려 우측 핸들 모델도 준비되었다. 1999년 캐딜락 최초의 SUV인 "에스컬레이드"를 도입했으며, 전용 설계가 된 2세대 이후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시장에서 큰 히트를 기록했고, 르망 24시 참전 등의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쳐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많은 주요 시장에서 고급차로서의 인기를 회복시켰다.
브랜드 재구축의 일환으로, 2003년 "카테라"의 후속 차종인 "CTS"의 도입을 시작으로, 2005년에 "세빌"을 "STS"로, 2006년에 "데빌"을 "DTS"로 변경하는 등 라틴 문자의 알파벳(로마자)을 조합한 것으로 변경했다. 2005년, 캐딜락 STS는 캐딜락 세빌의 후속 모델로 출시되었다.[43] 1988년부터 고급 성능 지향적인 ''STS'' (Seville touring sedan) 버전과 편안함을 중시하는 ''SLS'' (Seville luxury sedan) 버전으로 제공되었다. 그 다음 해, STS는 알루미늄 DOHC ''L37'' Northstar V8 엔진을 포함한 캐딜락의 당시 새로운 노스스타 시스템을 받았다. STS는 캐딜락의 최고가 세단으로, 중형 CTS와 대형 DTS 사이의 크기였다. 2006년, 드빌(DeVille) 명칭은 캐딜락 DTS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1986년 "DeVille Touring Sedan" 패키지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부터 사용된 약자였다.
"CTS"부터는 "아트 & 사이언스"라고 칭하는 모던한 스타일링으로 통일하여 젊은 층을 다시 불러들였을 뿐만 아니라, "시그마 아키텍처"라고 불리는 신설계의 플랫폼을 활용, 더 나아가 뉘르부르크링서킷에서의 테스트 주행을 반복하여 개발된 스포츠 모델 "CTS-V"를 투입하고, 동시에 모터스포츠에 참전하는 등, "BMW M5"나 "AMG E55"로 대표되는 고급 스포츠 세단의 구매층도 타겟으로 삼았다. 새로운 2세대 CTS-V 성능 세단은 2009년에 BMW M5의 직접적인 경쟁 모델로 출시되었다.[44] 과급 OHV 6.2 L LSA V8 엔진을 탑재한 CTS-V의 자동 변속기 버전은 뉘르부르크링에서 7:59.32의 기록을 세웠으며, 이는 당시 생산 세단의 기록이었다.[45]
2004년에 과거의 "알란테"를 연상시키는 2도어 카브리올레 플래그십 모델인 "XLR"과, 신형 중형 SUV인 "SRX"를 도입하는 등 라인업을 확대하는 한편, 이탈리아의 보석상 "불가리"와의 제휴를 시작하여 브랜드 이미지 향상을 도모했다. 또한 200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발표된, "시마론" 이후 최초의 소형 모델인 "BLS"를 시작으로 유럽 시장에 본격적인 도입을 시작했다.

마지막 DTS는 2011년 5월 27일 오전 11시 51분에 조립 라인에서 생산되었다.[46] 이 모델은 2012년에 2013년형 모델로 데뷔한 캐딜락 XTS로 대체되었다. 캐딜락 ATS 소형 세단 또한 2012년에 2013년형 모델로 데뷔했으며, 2년 후 ATS의 쿠페 버전이 추가되었다. 2016년, 캐딜락 CT6가 출시되었으며, 1996년 플리트우드(Fleetwood) 단종 이후 브랜드의 첫 번째 대형 후륜 구동 세단이었다.
2007년의 리먼 쇼크 이후 세계 금융 위기로 일어난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GM)의 경영 파탄과 그에 따른 국유화 과정에서 폰티악, 새턴, 험머 등의 브랜드는 매각되거나 폐쇄되었지만, 캐딜락은 높은 브랜드 가치와 안정적인 판매 실적을 바탕으로 쉐보레나 뷰익 등과 함께 제너럴 모터스의 핵심 브랜드이자 최고급 브랜드로 '신생 제너럴 모터스'에 남는다고 발표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 세계적으로 경제가 회복되면서, 최소 모델인 'ATS'와 인기가 높은 SUV인 'SRX' 및 '에스컬레이드'의 신형 모델을 투입하여 판매를 강화했다. 특히 고급차 수요가 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본국인 미국을 판매 대수에서 넘어선 성공을 거두며 완전히 부활했다[61][62]。 또한,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새로운 차명 명명 방식을 정하여, 에스컬레이드를 유일한 예외로 하고 그 외의 세단과 쿠페에는 'CT'가, SUV에는 'XT'가 차명으로 붙고, 그 뒤에 차급을 나타내는 숫자를 붙이는 방식이 되었다(예: CT6 및 XT5).
2017년 초, 캐딜락은 뉴욕시에서 처음 이용할 수 있었던 차량 구독 서비스인 Book By Cadillac을 출시했다. 2017년 11월, Book by Cadillac이 댈러스와 로스앤젤레스로 확장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캐딜락 XT6는 새로운 7인승 고급 중형 크로스오버 SUV로, 2019년 1월 12일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공개되었다.[47] 이 차량은 2019년 3분기에 2020년형 모델로 판매되었다.[48] 2020년형 캐딜락 라인업에 추가된 다른 모델로는 CTS를 대체하는 CT5 중형 고급 세단과 ATS를 대체하는 CT4 소형 세단이 있었다. CT4와 CT5의 성능 "V" 버전도 2020년에 추가되었다.
3. 모델
'''현재 생산 차량'''
- 1999년~현재 에스컬레이드
- * 1999년~현재 에스컬레이드
- * 2003년~현재 에스컬레이드 ESV
- 2016년~현재 CT6
- 2017년~현재 XT5
- 2019년~현재 XT4
- 2020년~현재 CT4
- * 2020년~현재 CT4
- * 2020년~현재 CT4-V[49]
- 2020년~현재 CT5
- * 2020년~현재 CT5
- * 2020년~현재 CT5-V
- 2020년~현재 XT6
- 2023년~현재 리릭
- 2023년~현재 GT4
- 2023년~현재 옵틱
'''출시 예정 차량'''
- 2024년~ 셀레스틱
- 2025년~ 에스컬레이드 IQ
- 2026년~ 비스틱
3. 1. 세단
CT4, CT5, CT6가 현재 판매 중인 세단 모델이다. 과거에는 XTS, DTS, ATS, CTS, SRX, XLR, STS, 엘도라도, 드빌, 알란테, 카테라, 시마론, 세빌, 플리트우드 등의 모델이 있었다.3. 2. SUV/크로스오버
XT4는 2018년에 출시된 전륜구동 기반의 준중형 SUV이다. XT5는 2016년에 출시되었으며, SRX의 후속 모델이다. XT6는 2019년에 출시된 전륜구동 기반의 7인승 준대형 SUV이다. 리릭은 2022년에 출시된 전기 SUV이다. GT4는 중국 시장 전용 모델이며, XT4와 동일한 전륜구동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에스컬레이드는 1998년에 출시되었으며, 쉐보레 서버번/타호, 유콘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풀사이즈 SUV이다. 에스컬레이드는 숏바디 모델과 롱바디 모델인 에스컬레이드 ESV로 나뉜다. 에스컬레이드 IQ는 에스컬레이드의 전기차 버전이다.
3. 3. 대한민국 시장
4. 모터스포츠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 캐딜락은 다른 대부분의 제조사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모터스포츠에 참가했으며, 많은 앨라드 자동차에 캐딜락 엔진이 사용되었다.
1950년대에 캐딜락은 NASCAR 그랜드 내셔널 시리즈에 참가했으나, 1960년대에 해당 시리즈에서 사라졌다.[51]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아메리카 르망 시리즈 초창기에 캐딜락 노스스타 LMP라는 르망 프로토타입에 동력을 제공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철수했다. 이후 SCCA 월드 챌린지 그랜드 투어링 클래스에서 CTS-V를 사용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2017년에는 캐딜락 DPi-V.R을 통해 웨더테크 스포츠카 챔피언십에 프로토타입 레이싱으로 복귀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2023년, 캐딜락은 FIA 세계 내구 선수권 대회와 IMSA 스포츠카 챔피언십에 캐딜락 V-시리즈.R을 출전시켰다. 칩 가나시 레이싱과 함께 두 대회에 정식 제조사로 풀 시즌 엔트리를 등록하고, 액션 익스프레스 레이싱에 고객용 차량을 제공했다.[51]
2023년 1월 5일, 캐딜락의 모회사인 제너럴 모터스는 안드레티 글로벌과 협력하여 캐딜락 브랜드를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할 의사를 발표했다.[52][53] 2028 시즌을 위해 안드레티를 위한 포뮬러 원 엔진을 생산할 계획이었으나, 2024년 1월 31일, 안드레티 팀은 FIA의 승인에도 불구하고 2025년 및 2026년 시즌 참가가 거부되었다. 포뮬러 원은 캐딜락의 엔진이 준비된다는 전제하에 2028년에 안드레티와 캐딜락의 참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54]
2024년 11월 25일, 제너럴 모터스는 "'''캐딜락 F1 팀'''"으로 2026년부터 F1에 참전할 것을 발표했다. 2028년부터는 파워 유닛도 자체 제작하여 풀 워크스화를 할 예정이다. 안드레티 글로벌을 보유한 TWG 글로벌과 제휴하여, 1978년에 드라이버 챔피언을 획득한 마리오 안드레티가 팀의 이사를 맡는다.[55]
5. 미국 대통령 전용차
우드로 윌슨이 제1차 세계 대전 전승 기념 퍼레이드에서 캐딜락 오픈카를 사용하여 보스턴까지 퍼레이드를 한 이후, 캐딜락은 미국 대통령 전용차로 자주 사용되었다. 캘빈 쿨리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많은 대통령들이 캐딜락을 전용차로 사용했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1년 자신의 취임 퍼레이드에 맞춰 납품된 드빌 리무진 특장차를 사용했고, 2005년에는 DTS 리무진이 새롭게 대통령 전용차로 납품되었다.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전용차로 DTS 리무진의 신형 특장차가 공개되었다. 이 차량은 GMC 톱킥의 섀시를 사용하고 이즈즈 자동차제 디젤 엔진을 탑재했으며, 강화된 장갑과 최신 통신 장비를 갖추고 있다. 차내에는 수혈용 혈액과 수혈 장치가 장비되어 있으며, 프론트 노즈의 국기와 대통령 문장기를 야간에 LED로 라이트업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과거에는 대통령 취임 퍼레이드용 오픈카도 준비되었지만, 테러리스트에 의한 습격을 방지하기 어려워 현재는 준비되지 않는다.
6. 생산 공장
랜싱 그랜드 리버 조립 공장은 미국 미시간 주에 있으며, 캐딜락 CT4와 캐딜락 CT5를 생산한다. 알링턴 조립 공장은 미국 텍사스 주에 있으며,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SV를 생산한다. 페어팩스 조립 공장은 미국 캔자스 주에 있으며, 캐딜락 XT4를 생산한다. 스프링 힐 제조 공장은 미국 테네시 주에 있으며, 캐딜락 리릭, 캐딜락 XT5, 캐딜락 XT6를 생산한다. 상하이 GM은 중국에 있으며, 캐딜락 CT4, 캐딜락 CT5, 캐딜락 CT6, 캐딜락 리릭, 캐딜락 XT4, 캐딜락 XT5, 캐딜락 XT6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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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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