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무라 쓰구요시
1. 개요
가미무라 쓰구요시는 일본 제국 해군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해군 대좌였다. 그는 원수 사이고 쓰구미치의 아들이자 가미무라 히코노조 해군 대장의 양자였으며, 야마모토 곤베에 해군 대장의 사위였다. 1902년 해군병학교를 졸업하고 쓰시마 해전에 참전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했다. 1923년 해군 대좌로 승진 후 예비역으로 편입되었으며, 1916년 남작 작위를 습작하고 1926년부터 1932년까지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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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명 | 가미무라 쓰구요시 |
|---|---|
| 출생일 | 1881년 1월 1일 |
| 사망일 | 1937년 3월 23일 |
| 묻힌 곳 | 아오야마 영원 |
| 군 경력 | 1902년 - 1924년 |
| 최종 계급 | |
| 제대 후 | 귀족원 의원 |
| 출신 학교 | 해군병학교 |
|---|---|
| 이전 직업 | 해군 대좌 |
| 소속 정당 | 공정회 |
| 칭호 및 훈장 | 정5위 정7위 정8위 |
| 배우자 | 가미무라 나미 |
| 친족 (정치가) | 아버지: 사이고 주도(내무대신) 장인: 야마모토 곤베에(내각총리대신) 백부: 사이고 다카모리(참의) 형: 사이고 주토쿠(귀족원 의원) 형: 사이고 도요히코(귀족원 의원) 처남: 다카라베 다케시(해군대신) 처남: 이와쿠라 도모하루(귀족원 의원) 처남: 야마모토 기요시(귀족원 의원) 조카: 이와쿠라 도모에(귀족원 의원) 사촌 형: 사이고 기쿠지로(교토 시장) 사촌 형: 사이고 도라타로(귀족원 의원) |
|---|---|
| 직함 | 귀족원 의원 |
| 취임일 | 1926년 3월 6일 |
| 퇴임일 | 1932년 7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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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쓰마 사이고씨 -
사이고 주도
사이고 주도는 메이지 유신에 참여하여 활약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해군 대신과 내무 대신 등의 요직을 역임하며 일본 해군 육성에 기여했고, 일본 해군 군인 최초로 원수 칭호를 받았다. -
사쓰마 사이고씨 -
사이고 도라타로
사이고 도라타로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 사이고 다카모리의 아들로, 독일 유학 후 일본군 사격술 향상에 기여하고 후작 작위를 받아 귀족원 의원을 역임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중 포로 수용소장으로 복무 중 사망했다. -
일본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나구모 주이치
나구모 주이치는 1887년 출생하여 해군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만 공격을 지휘한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이며, 미드웨이 해전 패배 후 사이판 전투에서 자결하고 해군 대장으로 추서되었다. -
일본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아라키 사다오
아라키 사다오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육군대신과 문부대신을 역임하며 군국주의적 정책을 추진하고 국가주의 이념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후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그의 군국주의적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
해군병학교 (일본) 동문 -
사이토 마코토
사이토 마코토는 일본 제국의 해군 군인이자 정치가로, 해군대신,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 등을 역임하며 해군력 확장, 문화 통치 추진, 만주국 승인, 국제연맹 탈퇴 등의 행적을 남겼으나 2·26 사건으로 암살당했다. -
해군병학교 (일본) 동문 -
아키야마 사네유키
아키야마 사네유키는 러일 전쟁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일본의 승리에 기여했으며, 해군병학교 수석 졸업 후 미국 유학을 통해 해양 전략을 연구하고 연합함대 참모로서 뤼순항 봉쇄 작전과 쓰시마 해전에서 공을 세운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이다.
2. 가계 및 친족
실부는 사이고 주도 원수이며 그의 넷째 아들이다. 가미무라 히코노조 해군 대장의 양자가 되었다. 장인은 야마모토 곤베 해군 대장이며, 그의 넷째 딸인 '나미'와 결혼했다. 다카라베 아야오 해군 대장은 의형에 해당한다.
2.1. 가계
가미무라 쓰구요시는 사이고 주도 원수의 넷째 아들이다. 가미무라 히코노조 해군 대장의 양자가 되었다. 장인은 야마모토 곤베 해군 대장이며, 그의 넷째 딸인 '나미'와 결혼했다. 다카라베 아야오 해군 대장은 의형에 해당한다. 차남으로 가미무라 남작가를 이은 가미무라 구니노조는 화족 적화 사건으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검거되었다. 둘째 딸 하마코는 사쿠라이 조지의 여덟째 아들인 노부오에게 시집갔다.
2.2. 친족 관계
사이고 주도 원수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가미무라 히코노조 해군 대장의 양자가 되었다. 야마모토 곤베 해군 대장의 넷째 딸 '나미'와 결혼하여, 다카라베 아야오 해군 대장과 의형제 관계를 맺었다. 차남 가미무라 구니노조는 가미무라 남작가를 이었으나, 화족 적화 사건에 연루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둘째 딸 하마코는 사쿠라이 조지의 여덟째 아들 노부오와 결혼했다.
3. 생애
가미무라 쓰구요시는 1902년(메이지 35년) 해군병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군인의 길을 걸었다. 쓰시마 해전에 참전하고 독일 유학을 다녀오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했다. 1923년 해군 대좌로 승진 후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1916년 양아버지 가미무라 히코노조가 사망하자 남작 작위를 물려받았고, 1926년에는 귀족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1932년까지 활동했다.
3.1. 군 경력
1902년 (메이지 35년) 해군병학교를 졸업(30기)했다. 석차는 187명 중 120등이었다. 동기로는 햐쿠타케 겐고 대장, 이마무라 신지로 중장, 마쓰야마 시게루 중장 등이 있다.
출운 중위로서 쓰시마 해전에 참전했다. 출운은 제2함대의 기함으로, 후에 양아버지가 되는 가미무라 히코노조가 사령장관으로서 탑승하고 있었다. 종전 후 해군대학교 선과 학생으로 도쿄 외국어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로 유학했다. 대위 시대에 독일 황족 하인리히 친왕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접반 보조원으로서 야시로 로쿠로를 보좌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제1특무함대 소속의 "아카시" 부장으로 출정했다. 그 후, "지쿠마"·"가스가"의 각 부장, 군사참의관 부관, "쇼리키" 특무 함장 등을 역임했다. 1923년 (다이쇼 12년), 해군 대좌로 승진하여 이듬해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3.2. 귀족원 의원 활동
1916년(다이쇼 5년), 양아버지 히코노조가 사망하자 남작 작위를 습작했다. 1926년(다이쇼 15년) 3월 6일, 보궐 선거에서 귀족원 남작 의원으로 선출되어, 공정회에 소속되어 1932년(쇼와 7년) 7월 9일까지 재임했다.
4. 일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무더운 날씨 속에서 야간 경비를 서던 중 파티를 열고 있던 영국 함대에 탐조등을 비춰 혼란을 일으켰다. 이 파티에는 일본 해군 사령관과 함장도 참가하고 있었다. 부하였던 다카기 소키치에 따르면, 가미무라는 키가 크고 눈이 컸으며 턱수염을 길렀고, 사령관(장관)보다도 당당한 풍채를 지녔다고 한다. 또한 술을 매우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