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복모
1. 개요
각복모는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운동에 참여했으나 백강 전투에서 패배한 후 여자신, 목소귀자, 곡나진수, 억례복류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다. 671년, 음양오행설에 능통하여 일본으로부터 쇼센게의 관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허률모, 길대상과 함께 소산상의 관위를 수여받았다. 오토모 황자를 보좌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그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일족에는 각(각·능) 형마로가 있다.
-
백제 부흥운동가 -
흑치상지
-
백제 부흥운동가 -
풍왕
풍왕은 백제의 왕족으로, 외교적 인질로 일본에 갔다가 백제 부흥 운동을 위해 귀국하여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고구려로 망명한 인물이다. -
백제의 달솔 -
흑치상지
-
백제의 달솔 -
해충 (백제)
아신왕 사후 전지왕 옹립에 기여한 해충은 해씨 가문 출신으로, 전지왕 즉위 후 달솔에 임명되어 조세를 하사받는 등 백제 초기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
백제 유민 -
풍왕
풍왕은 백제의 왕족으로, 외교적 인질로 일본에 갔다가 백제 부흥 운동을 위해 귀국하여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고구려로 망명한 인물이다. -
백제 유민 -
예군
예군은 백제 멸망 전후 당나라에서 활동하며 백제 유민들을 위무하는 데 힘쓴 백제 좌평 출신의 인물로, 시안에서 발견된 묘지명에 '일본'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논쟁이 있다.
2. 생애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 내용을 다루므로 중복을 피하기 위해 본문 생략)
2.1. 백제 멸망과 일본 망명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운동에 참여했지만 백강 전투에서 패배한 뒤, 여자신, 목소귀자, 곡나진수, 억례복류 등 다른 백제 귀족 및 유민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다. 671년, 음양오행설에 능통했던 그는 일본 조정으로부터 쇼센게(小山下일본어) 관위를 받았다.
2.2. 일본에서의 활동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운동에 참여했지만 백강 전투에서 패배하자 여자신, 목소귀자, 곡나진수, 억례복류 등 다른 백제 귀족 및 유민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다.
671년, 음양오행설에 능통하여 일본 조정으로부터 쇼센게의 관위를 받았다. 같은 해(덴지 천황 10년 1월)에는 음양도에 통달하였으며, 허률모, 길대상과 함께 소산상의 관위를 수여받았다. 당시 오토모 황자의 학자였던 허률모, 길대상과 더불어 각복모 역시 황자를 보좌할 인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이후의 구체적인 활동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일본서기』에는 "소산하(쇼센게)를 주었고, 다른 달솔 등 50여 명에게도 수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오미 조정이 백제 출신 관료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여 정치 체제를 강화했음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