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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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길영은 1930년 경상북도 상주 출생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924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대한민국 해병대 중위이다. 1949년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여 진동리 전투, 통영지구작전,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으며, 소위 임관 후 가리산지구 전투, 화천지구 전투, 도솔산지구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특히 1951년 924고지 전투에서 중대장의 부상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부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며 최후의 진격을 감행하다 전사했다. 그의 희생으로 924고지를 탈환하는 데 기여했으며,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중위로 추서했다. 강길영은 6.25 전쟁 영웅, 호국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해병대의 귀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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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영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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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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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1930년 9월 22일 ~ 1951년 9월 1일 |
출생지 | 상주읍 경상북도 상주군 |
사망지 |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인근 924고지 |
복무 | 대한민국 해병대 |
최종 계급 | 중위 |
복무 기간 | 1949년 4월 1일 ~ 1951년 9월 1일 |
임관 | 1951년 3월 3일 |
서훈 내역 | 충무무공훈장 |
기타 이력 | 이달의 호국 인물 이달의 전쟁영웅 |
국적 | 대한민국 |
근무 | 대한민국 해병대 1연대 |
지휘 | 대한민국 해병대 1연대 3대대 11중대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2. 생애
강길영 해병 중위는 1930년 경상북도 상주읍에서 아버지 강석주, 어머니 김주순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1] 1949년 4월 1일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여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25 전쟁 발발 후 소총병으로 진동리 전투, 통영지구작전, 인천상륙작전 등에 참전하였다. 1951년 3월 3일 소위로 임관한 후에는 가리산지구 전투, 화천지구 전투, 도솔산지구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2]
2. 1. 924고지 전투 (김일성 고지 전투)
6.25 전쟁의 공방전이 고지전 양상으로 접어든 1951년 7월, 해병 제1연대는 강원도 홍천을 떠나 인제 북방 21km 지점의 평촌으로 이동했다. 해병 제1연대는 이곳에서 미 해병 1사단과 함께 월령산 서북쪽의 924고지-1026고지-1055고지를 사이에 두고 북한군 제1사단 3연대와 전투를 벌이고자 했다. 이 지역 확보는 동부전선의 핵심 요충지인 펀치볼(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 일대)[3]을 제압하여 북한군의 근거지를 통제하고,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을 분리하려는 적의 공격 위협을 줄이는 데 중요했다. 또한, 이 전선을 일직선으로 만들어 전선을 축소하고 예비 병력을 확보함으로써 중동부 전선 전체의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924고지에 '김일성 고지', 1026고지에 '모택동 고지'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이 전투에 임하는 장병들의 높은 사기와 적개심을 보여준다.
해병 제1연대는 도솔산 전투의 후유증과 장마철 호우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작전 지역에 도착하여 북한군 최정예 부대 중 하나인 제1사단 3연대와 격전을 시작했다. 치열한 포격과 집중사격을 뚫고 제11중대가 우측 선봉에서 적진을 돌파하던 중, 적진 100m 전방에서 중대장 육동욱 중위가 적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중대는 위기에 처했다.
이때 중대 선임장교였던 강길영 소위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쓰러진 중대장을 안심시키며 앞장섰다. "중대장님, 걱정 마십시오. 김일성 고지는 우리가 꼭 점령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마지막 돌격을 감행했으나, 빗발치는 적의 총탄에 맞아 작전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의 희생은 남은 장병들의 사기를 크게 북돋았고, 강길영 소위가 전사한 다음 날 아침, 마침내 국군은 924고지(김일성 고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구분 | 내용 |
---|---|
전과 | |
아군 피해 (해병 제1연대) |
[1]
웹인용
2016년 9월 호국인물 : 강길영 해병중위
https://www.warmemo.[...]
2021-11-06
924고지 전투는 해병대 5대 작전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이 전투의 승리로 중동부 전선의 전세는 국군과 유엔군에게 유리하게 전환되었다.[4]
3. 사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924고지 전투를 "신인(神人)이 경탄할 공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강길영 중위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1953년 3월 30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고, 해병 소위에서 중위로 1계급 특진시켰다.[2]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는 1999년 6월 20일, 924고지 전투에서 위훈을 세우고 전사한 강 중위와 대원들을 기리기 위해 격전지였던 펀치볼 지역에 전적비를 건립하고 추모식을 거행했다.[2]
또한 그의 공적을 인정받아 국가보훈처 선정 '2014년 11월의 6.25 전쟁 영웅'[5]과 전쟁기념관 선정 '2016년 9월의 호국 인물'[6]로 선정되었다.
4. 평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924고지 전투에서의 공적을 "신인(神人)이 경탄할 공훈"이라 높이 평가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강길영 중위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1953년 3월 30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하고, 해병 소위에서 중위로 일계급 특진시켰다.[2]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는 1999년 6월 20일, 924고지 전투에서 해병의 신화를 남기고 산화한 강 중위와 대원들의 위훈을 기리고자 격전지였던 펀치볼 지역에 전적비를 세우고 추모식을 거행했다.[2] 그의 용맹함과 리더십은 오늘날까지도 해병대의 귀감이 되고 있다.
또한 그의 공적은 국가적으로도 인정받아,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는 2014년 11월의 6.25 전쟁 영웅[5]과 전쟁기념관에서 주관하는 2016년 9월의 호국 인물[6]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의 희생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대한민국 안보에 기여한 공로로 인정받는다.
참조
[2]
웹인용
1999년 9월 호국인물 : 강길영 해병 중위
https://www.warmemo.[...]
대한민국 전쟁기념관
2021-11-06
[3]
서적
군사작전을 통해 본 6.25전쟁
양서각
2018-08-25
[4]
웹인용
924고지 및 1026 고지 전투
http://encykorea.aks[...]
[5]
웹인용
2014년 11월의 6·25전쟁영웅 강길영 해병 중위
https://www.mpva.go.[...]
[6]
웹인용
2016년 9월 호국인물 강길영 해병 중위 현양행사
http://archives.w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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