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흘
1. 개요
강용흘은 1898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한국계 작가이다. 보스턴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대표작으로는 자전적 소설 『초당, The Grass Roof』(1931)이 있으며, 이 외에도 『행복한 숲, The Happy Grove』(1934), 『동양인이 본 서양, East Goes West』 등을 발표했다. 또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1971년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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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작가 -
정도전
정도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서, 조선 건국에 기여하고 통치 체제를 정비했으며, 《조선경국전》 등을 저술했으나, 왕권 중심의 정치를 견제하다가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게 살해당했다. -
한국의 작가 -
백관수
백관수는 호를 근촌이라 하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2·8 독립 선언을 주도하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활동했으며,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다. -
하버드 대학교 동문 -
한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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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교 동문 -
체링 톱게
체링 톱게는 2013년부터 2018년, 그리고 2024년부터 현재까지 부탄의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정치인으로, 인민민주당 창당을 주도하며 정계에 입문하여 경제 발전, 투명성 강화, 그리고 탄소 중립 유지를 위한 환경 운동에 힘쓰고 있다. -
1903년 출생 -
송영 (극작가)
송영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카프 계열 연극인으로 등단하여 노동 운동 풍자 작품을 발표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김일성 항일 무장 투쟁을 형상화한 희곡으로 알려졌으나 한설야 숙청 시기에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보아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
1903년 출생 -
김기진
김기진은 팔봉이라는 호를 사용한 한국의 문학평론가, 소설가, 시인으로, KAPF에서 활동하며 경향파 문학 이론을 이끌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에는 반공주의 문인으로 활동했다.
2. 일생
강용흘은 함흥 영생중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3·1 운동 이후 한국 독립 운동을 위해 한국을 떠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갔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의학,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미 문학을 전공했으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대표작은 일제강점기와 3·1 운동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 첫 영문 장편 소설 『초당』(The Grass Roof)이다.
로마 대학교, 뮌헨 대학교, 파리 대학교 등에서 연구를 계속했으며, 뉴욕 대학교 등에서 동양 문화와 비교 문학을 강의했다. 소설 『행복한 숲』(The Happy Grove, 1934), 『동양인이 본 서양』(East Goes West), 희곡 『왕실에서의 살인』(1935) 등을 발표했다.
번역서로는 『동양의 시』(Oriental Poetry, 1929), 한용운의 『님의 침묵』(Nim-e Chimmuk, 1971, 부인 프란시스 킬리와 공역)이 있으며, 영어 교재와 미국사 관련 서술도 남겼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를 역임하기도 한 그는, 항상 한국이나 한국인에게서 작품의 소재를 찾았다. 펄 S. 벅은 그를 "동방의 가장 빛나는 예지"라고 칭찬했다.
1971년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였음이, 선정 50년 이상 경과 후 노벨상 위원회가 공표한 후보자 명단에 의해 밝혀졌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강용흘은 1898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났다. 함흥 영생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시절 한국에서 유학 및 기독교 선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21년 3·1 운동 이후 한국 독립 운동에 참여한 일로 인해 한국을 떠나 먼저 캐나다로 건너갔고(그곳에서 잠시 달하우지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1925년 보스턴 대학교에서 이학사(B.S.) 학위를, 1927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어 교육 교육학 석사(Ed.M.) 학위를 받았다. 보스턴 대학교에서는 의학을,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영미 문학을 전공했다.
2.2. 미국 유학 및 활동
함흥 영생중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3·1 운동 이후 독립 운동을 위해 한국을 떠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갔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의학,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미 문학을 전공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자로 일했으며, 뉴욕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다가 1928년 미국인 아내 프랜시스 킬리(Frances Keeley)의 지도로 영어로 전환했다. 토마스 울프(Thomas Wolfe)가 그의 소설 풀 지붕(The Grass Roof)의 첫 장을 읽고 스크리브너스(Scribners) 출판사에 추천하여, 레베카 웨스트(Rebecca West)와 H. G. 웰스(H. G. Wells) 등의 작가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각색될 뻔했으나, 풀 지붕은 당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멸시를 확인시켜주는 듯하여 호평을 받았지만, 동쪽에서 서쪽으로(East Goes West)는 미국을 비판했기 때문에 다문화주의 운동이 재조명하기 전까지 인기가 덜했다.
행복한 숲(The Happy Grove), 동양인이 본 서양(East Goes West) 등을 썼고,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거나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서 서평을 썼다. 구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으로 2년간 유럽을 여행했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미국 육군 출판 사무소와 민간 정보 부대에서 미국 정부의 아시아 전문가로 일했다.
로마 대학교, 뮌헨 대학교, 파리 대학교 등에서 연구를 계속했으며, 뉴욕 대학교 등에서 동양 문화와 비교 문학을 강의했다. 소설 『행복한 숲, The Happy Grove』(1934), 『동양인이 본 서양, East Goes West』, 희곡 『왕실에서의 살인』(1935) 등을 발표했다.
번역서로는 『동양의 시, Oriental Poetry』(1929), 한용운의 『님의 침묵, Nim-e Chimmuk』(1971, 부인 프란시스 킬리와 공역)이 있다. 영어 교재와 미국사 관계 서술도 남겼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항상 한국이나 한국인에게서 작품의 소재를 찾았다.
2.3. 문학 활동
강용흘은 한국에서 유학과 기독교식 교육을 받았다. 1921년 독립 운동을 위해 한국을 떠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갔다. 보스턴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학위를 받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뉴욕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행복한 숲》(The Happy Grove), 《동양인이 본 서양》(East Goes West) 등을 썼고,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다가 1928년에 미국인 아내 프랜시스 킬리(Frances Keeley)의 도움으로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자로 일하면서 뉴욕 대학교에서 강의했는데, 동료 토마스 울프가 그의 소설 《풀 지붕》(The Grass Roof)의 첫 장을 읽고 스크리브너스 출판사에 추천했다. 이 책은 레베카 웨스트, H. G. 웰스 등 유명 작가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질 뻔했다. 《풀 지붕》은 당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을 드러내 호평을 받았지만, 《동쪽에서 서쪽으로》는 미국을 비판했기 때문에 다문화주의 운동이 재조명되기 전까지는 인기가 덜했다.
《풀 지붕》과 《동쪽에서 서쪽으로》 외에도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고 뉴욕 타임스에 서평을 썼다. 구겐하임 펠로우십으로 2년간 유럽을 여행했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 미국 육군 출판 사무소와 민간 정보 부대에서 미국 정부의 아시아 전문가로 일했다.
대표작 《초당》(The Grass Roof)은 일제강점기와 3·1 운동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 첫 영문 장편 소설이다. 1931년에 출판되었고, 1947년 김성칠에 의해 제1권이 한국어로 번역되었지만, 제2권은 한국어로 번역되지 못했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10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로마 대학교, 뮌헨 대학교, 파리 대학교 등에서 연구를 계속했으며, 뉴욕 대학교 등에서 동양 문화와 비교 문학을 강의하는 한편, 소설 《행복한 숲》(The Happy Grove, 1934), 《동양인이 본 서양》(East Goes West), 희곡 《왕실에서의 살인》(1935) 등을 발표했다.
번역서로는 《동양의 시》(Oriental Poetry, 1929), 한용운의 《님의 침묵》(Nim-e Chimmuk, 1971, 부인 프란시스 킬리와의 공역)이 있다. 영어 교재와 미국사 관계의 서술 등도 남겼다.
펄 S. 벅은 강용흘을 "동방의 가장 빛나는 예지"라고 칭찬했다. 1971년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 노벨상 위원회가 발표한 후보자 명단을 통해 밝혀졌다.
2.4. 기타 활동
강용흘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편집자로 일했으며, 뉴욕 대학교에서 동료 토마스 울프의 추천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스크리브너스 출판사에 추천된 그의 소설 풀 지붕은 레베카 웨스트, H. G. 웰스와 같은 작가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될 뻔했다.
풀 지붕과 동쪽에서 서쪽으로 외에도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했으며 뉴욕 타임스에서 서평을 썼다. 구겐하임 펠로우십으로 2년간 유럽을 여행했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미국 육군 출판 사무소와 민간 정보 부대에서 미국 정부의 아시아 전문가로 일했다.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 뮌헨 대학교, 파리 대학교 등에서 연구를 계속했으며, 뉴욕 대학교 등에서 동양 문화와 비교 문학을 강의했다. 영어 교재와 미국사 관계 서술도 남겼으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번역서로는 『동양의 시, Oriental Poetry』(1929), 한용운의 『님의 침묵, Nim-e Chimmuk』(1971, 부인 프란시스 킬리와 공역)이 있다.
1971년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음이, 선정 50년 이상 경과 후 노벨상 위원회가 공표한 후보자 명단에 의해 밝혀졌다.
2.5. 수상 경력 및 평가
강용흘은 할페린 카민스키 상, 1953년 루이스 S. 바이스 기념상을 받았으며, 고려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펄 S. 벅은 그를 "동방의 가장 빛나는 예지"라고 격찬했다. 사망 1년 전인 1971년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 선정 50년 이상이 경과한 후 노벨상 위원회가 공표한 후보자 명단을 통해 밝혀졌다.
그는 풀 지붕으로 레베카 웨스트, H. G. 웰스 등 유명 작가들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이 책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각색될 뻔했다. 풀 지붕은 당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멸시를 확인시켜주는 듯하여 호평을 받았지만, 동쪽에서 서쪽으로는 미국을 비판했기 때문에 다문화주의 운동이 재조명하기 전까지 인기가 덜했다.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아 2년간 유럽을 여행하기도 했다.
3. 작품 세계
강용흘은 소설, 희곡,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남겼다. 소설로는 『행복한 숲, The Happy Grove』(1934년), 『동양인이 본 서양, East Goes West』, 『초당, The Grass Roof』(1931년)이 있다. 희곡으로는 『왕실에서의 살인』(1935)을 발표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Nim-e Chimmuk』(1971, 아내 프란시스 킬리와 공역)과 『동양의 시, Oriental Poetry』(1929)를 번역했다.
그의 대표작은 《초당》과 《동양인이 본 서양》으로, 한국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3.1. 《초당 (The Grass Roof)》
《초당》은 한중파라는 인물을 통해 강용흘의 한국에서의 삶을 묘사하고 그가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를 설명한다. 한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저항 운동에 참여하기보다는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서양 문학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 보는 집단 운동, 민족주의, 그리고 가족 관계의 강조보다는 서구의 개인주의적 약속을 선호하며, 이러한 한국을 쇠퇴하고 있다고 여긴다.
3.2. 《동양인이 본 서양 (East Goes West)》
《동양인이 본 서양》은 강용흘의 미국 생활과 그곳에서의 경험을 다룬 소설이다. 그는 이민자들이 한국 독립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지 깨닫는다. 그러나 동료 이민자들과의 거리감은 새로운 나라에서의 고독감을 더욱 깊게 만든다. 서양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그의 희망은 당시 미국의 현실적인 기회를 넘어서는 꿈이었기에 실현되지 못한다. 그는 진정으로 미국인이 되기를 원하는 두 명의 한국인, 점과 김과 친구가 되지만, 그들 역시 미국 사회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다.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해결책이 되기를 바라지만, 대학 장학금조차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소설의 끝에서 강용흘은 이생 너머의 삶에 대한 불교적 희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꿈이 좌절되었음을 깨닫는다.
3.3. 주제 의식
《풀 지붕》은 한중파라는 인물을 통해 강용흘의 한국에서의 삶을 묘사하고 그가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를 설명한다. 한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저항 운동에 참여하기보다는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서양 문학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 보는 집단 운동, 민족주의, 그리고 가족 관계의 강조보다는 서구의 개인주의적 약속을 선호하며, 이러한 한국을 쇠퇴하고 있다고 여긴다.
《동쪽이 서쪽으로 간다(East Goes West)》는 강(강용흘을 대신함)과 미국에서의 삶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다른 이민자들이 한국 독립에 얼마나 관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얼마나 희망하는지 깨닫는다. 동료 이민자들과의 거리감은 새로운 나라에서의 고독감을 더욱 키운다. 더욱이, 서양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그의 희망은 실현되지 못하는데, 이는 그의 꿈이 당시 미국의 기회 현실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으로 미국인이 되기를 원하는 두 명의 다른 한국인, 점과 김과 친구가 되지만, 그들 또한 미국 사회에 완전히 진입하지 못한다. 그는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해결책이 되기를 바라지만, 대학 장학금조차 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소설이 끝날 무렵, 강은 이생 너머의 삶에 대한 불교적 희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꿈이 좌절된 것을 발견한다.
4. 작품 목록
강용흘은 소설, 희곡,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남겼다. 대표적인 소설로는 East Goes West영어와 1931년에 발표한 『초당』, 1934년에 발표한 The Happy Grove영어가 있다. 희곡으로는 1935년에 발표한 『왕실에서의 살인』이 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Nim-e Chimmuk영어, 1971)을 아내 프란시스 킬리와 함께 번역했으며, 1929년에는 Oriental Poetry영어를 번역했다.
4.1. 소설
초당(The Grass Roof영어, 1931년), The Happy Grove영어(1934년), East Goes West영어 등의 소설을 썼다.
4.2. 희곡
1935년 희곡 『왕실에서의 살인』을 발표했다.
4.3. 번역
강용흘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1971)을 아내 프란시스 킬리와 함께 번역했다.
5. 비평 연구
여러 학자들이 강용흘과 그의 작품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 리규한은 《코리아 저널》 기고문에서 강용흘을 한국계 미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했다.
* 데이비드 스트레인지는 강용흘과 토마스 울프의 관계를 조명했다.
* 월터 K. 르는 강용흘의 초기 작품과 대학 시절을 연구했다.
* 준옥 허는 강용흘의 작품에 나타난 뉴욕 시의 모습을 분석했다.
* 제임스 리빙스턴은 강용흘의 생애와 작품을 다루었다.
* 스티븐 크나들러는 강용흘의 작품에 나타난 인종 문제와 귀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분석했다.
* 월터 K. 르는 강용흘의 작품에 나타난 이식과 번역의 문제를 다루었다.
* 건 종 리는 강용흘의 작품에 나타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모습을 분석했다.
* 샌드라 시 윤 오는 강용흘의 작품을 조용한 오디세이, 위안부, 딕테와 함께 한국계 미국 문학의 저항과 역설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분석했다.
* 크레메나 토치코바 토도로바는 강용흘의 소설을 1930년대 근대성, 이민, 도시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분석했다.
* A. 로버트 리는 강용흘의 생애와 작품을 다루었다.
* 리프 소렌슨은 강용흘의 작품에 나타난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 문제를 분석했다.
* 클라라 스만코는 강용흘의 작품을 1930년대 미국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분석했다.
* 카렌 J. 쿠오는 강용흘의 작품을 1924-1942년 미국의 아시아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분석했다.
* 데이비드 로는 강용흘의 작품에 나타난 과학적 관리와 한국 노동의 문제를 분석했다.
* 조셉 J. 전은 강용흘을 리처드 E. 김과 함께 망명한 한국인 작가로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