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 정치범수용소
1. 개요
개천 정치범수용소는 평안남도 개천시 인근에 위치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로, 1959년에 설립되었다. 약 155km² 면적에 달하며, '교화 불가능'으로 분류된 정치범들을 격리 수용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 수감자들은 강제 노동, 고문, 열악한 식량 환경 등 심각한 인권 침해에 시달리고 있으며, 탈출에 성공한 신동혁의 증언을 통해 수용소의 실상이 국제 사회에 알려졌다.
| 유형 | 수용소 |
|---|---|
| 위치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개천시 |
| 다른 이름 | 개천 정치범수용소 |
|---|---|
| 운영자 | 알 수 없음 |
| 관련 기관 | 알 수 없음 |
| 설립일 | 알 수 없음 |
| 폐지일 | 알 수 없음 |
| 운영 여부 | 알 수 없음 |
| 수감 원인 | 알 수 없음 |
| 수감자 수 | 약 1만 5천명 |
| 사망자 수 | 알 수 없음 |
| 주요 수감자 | 알 수 없음 |
|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
개천시 -
송암동굴
-
개천시 -
개천선
개천선은 신안주청년역에서 개천역까지 29.5km를 잇는 철도 노선으로, 표준궤에 직류 3000V로 전철화되었으며, 무연탄과 시멘트를 주로 수송하고 급행, 준급행, 보통 열차 등이 운행한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범수용소 -
요덕 정치범수용소
요덕 정치범수용소는 북한 함경남도 요덕군에 위치하며, 정권 비판 등의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이 강제 노역과 고문 등 극심한 인권 유린에 시달리는 곳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범수용소 -
요덕 스토리스
요덕 스토리스는 2008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다루며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국제 사회의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 -
신숙자
간호사 출신 신숙자는 독일에서 결혼 후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이주했으나, 강제 노역과 남편의 탈북 후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통영의 딸' 송환 운동에도 불구하고 사망하여 북한 인권 유린의 상징이 되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 -
대북전단과 대남전단
2. 위치
개천 제14호 관리소는 1959년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개천시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설립되었다. 수용소의 남쪽 경계는 대동강 중류와 맞닿아 있으며, 강 북쪽에 있는 부락산의 일부도 수용소 구역에 포함된다. 대동강 남쪽 건너편에는 북창 제18호 관리소가 위치하고 있다. 위성 사진으로 확인된 수용소의 총 면적은 약 155km2로, 이는 서울특별시 면적의 1/4 또는 개천시 전체 면적의 1/5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3. 현황
관리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교화가 불가능"하다고 분류한 정치범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된다. 수용소로 보내지는 사람들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관리,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 그들의 자녀, 수용소에서 태어난 사람, "반정부" 활동에 관여한 혐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수감자들은 한번 관리소에 들어오면 석방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며, 사망할 때까지 고된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 이들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격리되어 생활하며, 관리소 안에는 수감자들을 위한 막사가 각각 남자, 여자, 청소년별로 분리되어 있다. 약 15,000명 가량의 수감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간수들의 막사와 행정본부 등도 관리소 안에 별도로 존재한다.
수감자들은 광산, 집단 농장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된다. 주로 탄광, 농업, 또는 섬유, 종이, 음식, 고무, 신발, 세라믹, 시멘트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해야 한다. 가축 사육은 수감자들이 동물 사료를 훔치거나 소화되지 않은 곡물을 찾기 위해 동물의 배설물을 뒤질 기회를 주기 때문에 가장 선호하는 작업으로 여겨진다.
4. 관리소 내 인권침해 실태
개천 수용소를 탈출한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새벽 5시 30분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장시간의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 이들은 주로 탄광이나 공장에서 고되고 위험한 작업에 투입된다. 심지어 11세 정도의 어린 아이들조차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작업장에 동원되어 노동해야 하며,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극히 제한적이다.
수용소 내에서는 사소한 규칙 위반조차 구타나 고문으로 이어지며, 심각한 경우에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한다. 식량 사정은 매우 열악하여, 수감자들에게는 하루에 500g이 채 되지 않는 옥수수밥과 소금에 절인 채소(염장국 또는 염장 양배추)만이 배급된다. 이러한 열악한 배급으로 인해 많은 수감자들이 영양실조로 심하게 쇠약해지며, 이가 빠지고 잇몸이 검게 변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매년 수많은 수감자들이 영양실조, 질병, 작업 중 사고, 고문 후유증 등으로 사망한다.
극심한 단백질과 니코틴산(비타민 B3) 부족은 펠라그라와 같은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수감자들은 들쥐, 뱀, 개구리, 곤충 등을 잡아먹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쥐고기는 펠라그라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용소 규칙상 배급된 식량 외에 동물이나 식물을 사냥하거나 재배하여 먹는 것은 불법이며, 적발될 경우 고문이나 독방 감금과 같은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다.
4.1. 신동혁의 증언
개천 수용소를 탈출한 신동혁은 수용소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인권 유린 사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 신동혁의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자, 그는 서거나 누울 수 없는 비좁은 지하 감방에 갇혔다. 이곳에서 8개월 동안 지내며 고문을 당했다.
* 고문 과정에서 신동혁은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발에는 수갑이 채이고 두 손은 묶여 천장에 매달렸다. 간수들은 달궈진 화로를 그의 등 아래에 놓고, 뜨거움에 몸부림치는 신동혁을 갈고리로 아랫배를 찔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 고문으로 신동혁은 등에 심한 화상을 입고 흉터가 남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14세였다.
* 탈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신동혁의 어머니 차혜경은 교수형에, 형 신하근은 총살형에 처해졌다. 신동혁은 이들의 공개 처형 장면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다.
* 피복 공장에서 일하던 중 실수로 재봉틀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수용소 간수들은 처벌로서 그의 가운뎃손가락 한 마디를 절단했다.
신동혁은 수용소 내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인권 유린 실태를 다음과 같이 추가로 증언했다.
* 매년 십여 건의 공개 처형이 집행되는 것을 목격했다. 다른 수감자 김영은 자신이 속한 구역에서만 2년 동안 약 25명이 처형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 여섯 살짜리 소녀가 옥수수 다섯 알을 훔쳤다는 이유로 간수에게 맞아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 12살 때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만남조차 통제받았다. 수용소의 아이들은 학업 대신 김매기, 가을걷이, 거름 나르기 등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렸다.
* 13세에서 16세 사이에는 위험한 건설 공사 현장에 투입되었고, 많은 또래 아이들이 작업 중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을 목격했다. 하루에 네다섯 명, 심지어 한 번에 여덟 명이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 신동혁의 사촌 누나는 간수들에게 강간당한 후 살해되었으며, 딸의 죽음에 통곡하던 사촌 누나의 어머니 역시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졌다.
* 수용소 보위 지도원들이 이를 잡는 약이라며 액체로 된 화학약품으로 목욕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여자 5명과 남자 7명이 이 약품으로 몸을 닦았고, 한 달 뒤 살이 문드러져 죽어갔다.
* 수용소를 탈출할 때 함께 탈출하던 박용철은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감전되어 즉사했다.
블레인 하든이 집필한 신동혁의 공식 전기 14호 수용소 탈출에서 신동혁은 자신이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탈출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5년, 신동혁은 이 이야기의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그는 하든에게 일부 날짜와 장소를 변경했으며, 자신의 이야기에 일부 "허구적 요소"를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하든은 책의 서문에 이러한 수정 사항을 간략히 언급했지만, 책 전체 내용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신동혁은 북한에서의 삶 전체를 14호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면서도,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상대적으로 덜 가혹한 18호 관리소로 이송되어 수년간 지냈다고 진술했다. 2002년 18호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한 것에 대한 처벌로 14호 수용소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5. 탈출한 수감자
개천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수감 생활을 경험하고 외부 세계에 그 실상을 알린 사례들이 있다.
* 신동혁(출생 당시 이름: 신인근)은 1982년 개천 수용소에서 태어나 2005년까지 수감되었다가 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 중 형제들이 남한으로 도망갔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왔다. 신동혁의 경험은 국제 사회에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인권 실태를 알리는 중요한 증언이 되었다.
* 김용은 1995년부터 1996년까지 개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이후 북창 정치범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이 미국 스파이로 몰려 처형된 사실이 발각되면서 일종의 연좌제로 수감된 것으로 전해진다.
5.1. 김용
김용은 1995년부터 1996년까지 개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고, 이후 북창 정치범수용소로 이감되었다. 그의 아버지와 형이 미국 스파이 혐의로 처형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종의 연좌제로 인해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은 개천 수용소 구역에서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약 25건의 처형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5.2. 신동혁
신동혁(출생 당시 이름: 신인근)은 1982년 개천 정치범수용소 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 당시 형제들이 남한으로 넘어갔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신동혁은 1982년부터 2005년까지 개천 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레인 하든이 쓴 신동혁의 전기 14호 수용소 탈출에서, 신동혁은 자신이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탈출할 때까지 그곳에서만 살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2015년, 신동혁은 자신의 증언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그는 하든에게 일부 날짜와 장소를 바꾸었으며, 이야기 속에 "허구적 요소"가 일부 포함되었다고 밝혔다. 하든은 책의 새로운 서문에서 이러한 수정 사항을 언급했지만, 책 전체 내용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신동혁은 북한에서의 삶 전체를 14호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아니라고 정정했다. 그는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난 것은 맞지만,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상대적으로 덜 가혹한 18호 관리소로 옮겨져 여러 해를 보냈다고 진술했다. 또한 2002년에는 18호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14호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