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창 정치범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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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창 정치범수용소는 평안남도 북창군과 득장지구에 걸쳐 있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이다. 1958년에 건설되어 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수용소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4m 높이의 울타리로 둘러싸인 약 73km² 면적에 5만 명의 수감자를 수용할 수 있다. 정치범 외에도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자와 그 가족, 2000년대 이후 인신매매범이나 대한민국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 개천 수용소 수감자의 가족 등이 수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감자들은 강제 노동, 열악한 식량 배급,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인권 유린을 당하며, 공개 처형, 고문, 영양실조 등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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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창 정치범수용소 | |
---|---|
개요 | |
이름 | 북창 제18호 관리소 |
다른 이름 | 북창 정치범수용소 |
위치 | |
상세 정보 | |
좌표 | 39°33′59.51″N 126°05′04.66″E |
관리 유형 | 정치범수용소 |
2. 위치
수용소는 평안남도 북창군과 득장지구에 위치해 있다. 수용소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대동강 중류 유역을 따라 자리 잡고 있으며, 강 남쪽의 산들도 포함한다. 대동강 건너편에는 개천 제14호 관리소가 있다.
황장엽 전 조선로동당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북창 수용소는 1958년에 건설된 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정치범 수용소 중 하나이다.[2] 이곳은 요덕 수용소와 유사하게 종신형 정치범을 수용하는 구역과 교화소로 운영되는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이 구역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각각 북창과 득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3] 다른 정치범 수용소들이 국가안전보위부의 관할 아래 있는 것과 달리, 북창 수용소는 사회안전부에서 운영하는 특징을 보인다.[4] 일부 사례에서는 정치범 본인은 개천 수용소로 보내지고, 그의 부모, 자녀, 형제, 손자녀 등 친척들은 북창 수용소로 이송되는 방식으로 연좌제가 적용되기도 한다. 이들은 단지 정치적으로 불신임 받는 인물의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법적 절차나 유죄 판결 없이 수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용소의 면적은 약 73km2이며,[5] 4m 높이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6] 탈북자 김혜숙의 증언에 따르면, 탈출을 막기 위해 4m 이상의 높이로 전기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으며, 탈출 시도 시 사살된다.[51]
북창 정치범수용소(18호 관리소)에는 정치범 본인 외에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수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개천 14호 관리소 등에 수감된 정치범의 가족들이 연좌제에 따라 이곳으로 보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32][4] 이들은 별다른 법적 절차나 유죄 판결 없이 단지 정치범의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감되어, 북한의 인권 문제를 심각하게 드러내는 사례로 지적된다.[4]
3. 역사
2006년경 수용소가 폐쇄되었다는 일부 소식통의 주장이 있었으나,[24] 이후 위성 사진 분석을 통해 수용소 내 광산 등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수용소의 일부 구역에는 여전히 정치범이 수감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과거 수용소 부지의 상당 부분은 노동 수용소로서의 기능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24]
2016년에는 제18호 관리소(북창 수용소의 다른 명칭)가 다시 문을 열었거나, 혹은 대동강 건너편에 위치한 제14호 관리소(개천 수용소)와 통합되었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위성 사진 분석 결과, 해당 지역에 새로운 보안 구역이 설치되고 활동이 증가한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두 수용소 사이에 연락선이 운영되는 정황도 확인되어 통합 가능성을 뒷받침한다.[25]
4. 구조
내부에는 수감자 막사와 경비병 주택이 있는 여러 노동 수용소 구역(제4, 5, 6사단)이 존재한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생활하는 것이 허용되기도 한다. 전체 수감자 수는 약 50,000명으로 추정된다.[7]
다른 정치범 수용소들이 국가안전보위부의 관할인 것과 달리, 북창 정치범수용소는 사회안전부에서 운영한다.[4] 황장엽 전 조선로동당 비서에 따르면, 요덕 정치범수용소와 유사하게 종신형 수감자를 위한 구역과 교화소로 운영되는 구역이 나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3]
5. 수감 대상
또한, 출신 성분이 좋지 않다고 분류된 사람들이나 2000년대 이후에는 인신매매범, 대한민국 관련자 등도 일부 수용되었다는 보고가 있다.[31]
한편, 탈북자 김용은 한국 전쟁 포로로 추정되는 노인들이나 송환자[8] 또는 납북자[9]로 보이는 일본인 여성이 수용되어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으나, 이 증언은 다른 경로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10]
5. 1.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 그 가족
북창관리소(18호 관리소)는 약 5만 명이 가족 단위로 수용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47], 적법한 절차 없이 끌려와 공개 처형, 고문, 심각한 영양실조, 하루 12시간 이상의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곳이다.[48]
이곳은 정치범이나 경제사범보다는 주로 지주, 자본가,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에 협력했던 이들처럼 출신 성분이 좋지 않다고 분류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수용했다.[31] 2000년대 들어서는 인신매매범이나 대한민국과 연관된 사람들이 소규모로 수용되었다는 보고도 있다.[31] 또한, 개천시의 14호 관리소에 정치범으로 수용된 사람의 가족이 이곳 18호 관리소로 보내진다는 다른 보고도 존재한다.[32]
탈북자 김혜숙은 할아버지가 한국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13세부터 41세까지 28년 동안 18호 관리소에 수용되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수용자들이 "개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며 강제 노동과 간수들의 학대에 시달렸다고 밝혔다.[33][34][35]
다른 탈북자 김용은 14호 관리소에 있다가 18호 관리소로 옮겨졌다고 증언했으며,[36] 신동혁 역시 처음에는 14호 관리소에서 탈출했다고 밝혔으나, 이후 18호 관리소로 이송된 경험이 있다고 증언 내용을 정정한 바 있다.[37]
5. 2.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 협력자
18호 관리소는 정치범이나 경제범이 아닌, 주로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것으로 분류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수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에 협력했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주요 수용 대상에 포함되었다.[31] 또한 지주나 자본가 계층도 이곳에 수용되었다. 2000년대에는 인신매매범이나 대한민국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소규모로 들어왔다는 보고도 있다.[31] 다른 보고에 따르면, 개천시의 14호 관리소에 정치범으로 수용된 사람의 가족이 이곳 18호 관리소로 이송되기도 했다.[32]
탈북자 김혜숙은 할아버지가 한국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13세부터 41세까지 28년 동안 18호 관리소에 수용되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수용소 내에서 사람들이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으며, 강제 노동과 간수들의 학대에 시달렸다고 밝혔다.[33][34][35]
김용은 14호 관리소에 수용되었다가 18호 관리소로 이송된 사례를 증언했으며,[36] 신동혁 또한 처음에는 14호 관리소에서 탈출했다고 증언했으나, 나중에 18호 관리소로 이송되었던 사실을 정정하여 밝힌 바 있다.[37]
5. 3. 대한민국과 관계가 있는 사람
2000년대 들어 18호 관리소에는 인신매매범과 함께 대한민국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소규모로 수용되었다는 보고가 있다.[31]
김혜숙은 할아버지의 한국 방문을 이유로 13세부터 41세까지 28년 동안 18호 관리소에 수용되었다. 그녀는 수용자들이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으며, 강제 노동과 간수들의 학대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33][34][35]
5. 4. 인신매매범
18호 관리소는 정치범이나 경제범이 아닌 지주, 자본가,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 협력자 등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자와 그 가족을 주로 수용하였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인신매매범이나 대한민국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소규모로 수용되었다는 보고가 있다.[31] 다른 보고에 따르면, 개천시의 14호 관리소에 정치범으로 수용된 사람의 가족이 이곳 18호 관리소에 수용되기도 한다.[32]
6. 인권 유린 실태
북창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수감자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자행된다. 수감자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어떤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오직 경비원의 자의적인 판단과 기분에 따라 생사가 결정된다.[22] 경비원들은 수감자들에게 굴욕감을 주기 위해 무릎을 꿇린 뒤 입에 침을 뱉고 삼키게 하는 행위를 하기도 하며, 즉시 복종하지 않으면 무자비한 구타가 가해진다.[22]
수감자들은 '비둘기 고문', 앉고 서기를 반복시키는 '펌프훈련 고문', '마구잡이 전신 구타 고문' 등 각종 고문에 시달린다.[48] 이러한 고문은 수감자들의 저항 의지를 꺾고 복종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탈출 시도, 식량 절도, 경비원의 지시 위반 등은 즉결 처형 사유가 된다.[14][51] 수용소 주변에는 4m 이상의 전기 철조망이 쳐져 있어 탈출은 거의 불가능하며,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히면 예외 없이 처형당한다.[51] 특히 공개처형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데, 이는 다른 수감자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심어주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기 위한 통제 시스템의 일부이다.[49] 탈북자 김혜숙은 연간 100명 이상의 공개 처형을 목격했으며, 처형 전 고문을 가한 뒤 총살하거나 교수형에 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증언했다.[15]
수감자들은 보안 요원들에 의해 거의 지속적으로 감시를 받으며, 서로를 감시하고 다른 수감자들의 잘못을 고발하도록 강요받는다.[23] 이러한 상호 감시 체계는 수감자들 사이의 불신을 조장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일부 증언에 따르면 북창 수용소의 규칙은 다른 정치범 수용소에 비해 다소 덜 엄격한 측면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13][40] 그러나 여전히 강제 노동, 고문, 공개처형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만연하며, 영양실조, 질병, 노동 재해로 인해 수많은 수감자들이 사망하고 있다.[16][40][45]
6. 1. 강제 노동
북창 정치범수용소는 북한 정부가 정치적으로 불신한다고 간주하는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이들을 가혹하고 위험한 노동으로 착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48] 수용소 내에서는 적법한 절차 없이 끌려온 수감자들에게 하루 12시간 이상의 강제 노동이 자행된다.[48]탈북자 김혜숙은 1975년부터 2002년까지 28년간 이곳에 수감되었는데, 그녀의 증언[48]에 따르면 북창 관리소의 대부분은 탄광이며 거의 모든 수감자가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한다. 김혜숙 자신도 탄광에서의 강제 노동으로 기관지병을 얻었다고 증언했다.[50] 수용소 구역 내에는 최소 5개의 탄광[11]이 있으며, 이 외에도 시멘트 공장과 다른 여러 공장들이 운영되고 있다.[12] 노동 가능한 모든 수감자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12]
수감자들은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매일 16시간에서 18시간 동안 광산에서 일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이러한 강제 노동의 결과로 수감자들은 몇 년 안에 대부분 진폐증을 앓게 되며, 많은 이들이 이로 인해 사망한다.[20] 김혜숙은 탄광에서 흡입한 먼지로 인해 폐암이 발병했다고 증언했다.[20] 또한, 탄광 내 잦은 사고로 사망하는 사례가 많으며[50], 작업 중 사고는 신체 절단과 같은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21] 이러한 작업 사고와 질병, 그리고 심각한 영양실조는 가혹한 강제 노동 환경 속에서 수감자들의 주요 사망 원인이 되고 있다.[16][40][45]
6. 2. 열악한 식량 배급
수감자들에게는 하루에 350g 미만의 식량과 염장배추 3줄기, 0.5g의 소금만이 배급된다.[48] 특히 1990년대 중후반 식량난 시기에는 하루 배급량이 200g으로 줄어들었다.[48] 수용소 탈출자의 증언에 따르면, 며칠 동안 죽만 먹으면 몸이 퉁퉁 붓고 누른 자리가 움푹 들어갈 정도로 맥이 빠져 걷기조차 힘들어진다고 한다.[49] 영양실조는 질병, 작업 사고와 함께 수감자들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다.[16]탈북자 김혜숙은 1990년대에 자신의 가족이 한 달에 7kg의 옥수수와 가끔 된장이나 소금을 배급받았다고 증언했다.[17] 생존을 위해 수감자들은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곤충 등을 찾아 먹어야 했다.[18] 김혜숙은 수용소 주변에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을 보았으며, 인육 섭취 사례도 있었다고 보고했다.[19]
6. 3. 열악한 위생 환경과 질병
북창 관리소에서 수감자들이 사망하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는 질병이다.[16] 열악한 위생 상태와 강제 노동 환경은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수감자들은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매일 16시간에서 18시간에 달하는 고된 노동을 강요당한다. 특히 광산 노동의 경우, 몇 년 후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진폐증을 앓게 되며 이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20] 탈북자 김혜숙은 수용소 생활 중 흡입한 먼지로 인해 폐암이 발병했다고 증언했다.[20] 또한 열악한 작업 환경은 절단과 같은 심각한 노동 재해로 이어지기도 한다.[20]
어린이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여, 많은 아이들이 신발이 없어 겨울에도 맨발로 다녀야 하기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일이 흔하다.[21]
만성적인 식량 부족으로 인한 심각한 영양실조 역시 질병의 주요 원인이다.[40][16] 수감자들은 생존을 위해 먹을 수 있는 식물, 잎, 곤충 등을 찾아 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18]
7. 증언
북창 정치범수용소의 끔찍한 실상은 이곳에 수감되었다가 탈출하거나 석방된 이들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의 증언은 정치범수용소 내부의 비인간적인 생활 환경, 강제 노동, 만연한 고문과 폭력, 공개 처형 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 유린 실태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증언자로는 아래에서 다룰 김용, 김혜숙 등이 있으며, 이들의 경험은 국제 사회에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7. 1. 김용
김용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북창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처음에 개천 제14호 관리소에 수감되었는데, 그의 아버지와 형이 미국의 스파이 혐의로 처형된 사실을 숨겼다가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전 직장의 중재를 통해 북창으로 이송되었다.[26]7. 2. 김혜숙
탈북자 김혜숙은 할아버지가 대한민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13세의 나이에 북창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1975년부터 2002년까지 28년간 복역했다.[27][28][48]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소의 대부분은 탄광이며 거의 모든 수감자가 이곳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48] 김혜숙 자신도 탄광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기관지병을 얻었으며, 흡입된 먼지로 인해 폐암이 발병하기도 했다.[48][20] 수감자들은 보호 장비 없이 매일 16~18시간 동안 광산에서 일해야 했고, 이로 인해 몇 년 후 대부분 진폐증을 앓게 되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20] 작업 중 사고로 절단을 당하는 경우도 잦았으며, 많은 아이들은 신발이 없어 겨울에도 맨발로 다니다 동상에 걸렸다.[21] 탄광 사고로 숨지는 사례도 많았다.[50]
김혜숙은 수용소 내 통제 시스템에 대해 고발했는데, 빈번한 공개처형을 통해 수감자들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했다고 증언했다.[49] 그녀는 연간 100명 이상의 공개 처형을 목격했으며, 수감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고문을 당한 뒤 총살되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밝혔다.[15] 탈출 시도, 식량 절도, 지시 위반 등도 총살의 이유가 되었다.[14] 수감자들은 '비둘기 고문', '펌프훈련 고문'(앉았다 일어서기 반복), '마구잡이 전신 구타 고문' 등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48] 철조망으로 사방이 막혀 있고 기강이 세서 탈출 시도조차 어려웠으며, 잡히면 강제 처형되었다.[50][51]
수감자들은 인권이 전혀 없었으며, 경비원들의 자의적인 처우에 놓여 있었다. 경비원들은 굴욕감을 주기 위해 수감자들을 무릎 꿇리고 입에 침을 뱉은 뒤 삼키게 하기도 했으며, 즉시 복종하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구타했다.[22] 또한, 수감자들은 보안 요원에게 거의 지속적으로 감시당했으며,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도록 강요받았다.[23]
식량 사정도 매우 열악하여, 김혜숙은 1990년대에 그녀의 가족이 한 달에 7kg의 옥수수와 가끔 된장 또는 소금을 배급받았다고 보고했다.[17] 생존을 위해 수감자들은 먹을 수 있는 식물, 잎, 곤충 등을 찾아다녀야 했다.[18] 그녀는 수용소 주변에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을 목격했으며, 인육 섭취 사례도 보고했다.[19]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영양실조, 작업 사고, 질병이었다.[16]
김혜숙은 이러한 북창 수용소의 인권 상황을 상세히 묘사했으며, 캐나다 의회와 영국 의회에서 증언했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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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문서
The Hidden Gulag Second Edition
[43]
간행물
「私は政治犯収容所に10年いた」 北倉(プクチャン)18号管理所出所者の証言 9
http://www.asiapress[...]
2016-05-05
[44]
문서
The Hidden Gulag
[45]
간행물
Twenty-Eight Years of My life in Political Prisoner Camp (Gwalliso) No. 18
http://eng.nkhumanri[...]
201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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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韓国統一研究院の上記報告
[47]
뉴스
김혜숙 씨, "북창 18호 관리소는 보위부 아닌 경찰이 관할"
http://libertyherald[...]
리버티헤럴드
2011-05-04
[48]
뉴스
그림으로 보는 北 개천•북창 정치범수용소
http://www.dailynk.c[...]
데일리NK
2011-05-04
[49]
뉴스
끔찍한 수용소 벗어난 내 앞엔 암담한 운명 뿐…
http://www.dailynk.c[...]
데일리NK
2011-05-04
[50]
뉴스
북 공개 봉창탄광은 '정치범수용소'
http://www.rfa.org/k[...]
자유아시아방송
2011-05-04
[51]
뉴스
김혜숙 씨, "북창 18호 관리소는 보위부 아닌 경찰이 관할"
http://libertyherald[...]
리버티헤럴드
201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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