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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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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노 준키는 일본과 한국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1979년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1984년까지 뛰었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1985-1991),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베이스타스(1992-1993)를 거쳐 1994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홍순기라는 등록명으로 활동했다. 은퇴 후에는 샐러리맨으로 일하며 아마추어 야구팀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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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준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선수 이름고노 준키
원어 이름鴻野淳基
로마자 표기Junki Kohno
가나こうの じゅんき
한자鴻野 淳基
출생지아이치현 나고야시
생년월일1961년 7월 10일
신장183cm
체중76kg
수비 위치외야수, 유격수, 2루수
투구/타석우투/우타
드래프트1979년 드래프트 1순위 (세이부 라이온즈)
클럽 정보
첫 출장NPB / 1981년 9월 29일
KBO / 1994년
마지막 출장NPB / 1993년 4월 18일
KBO / 1994년
경력
선수 경력나고야 전기고등학교
세이부 라이온즈 (1980 ~ 1984)
요미우리 자이언츠 (1985 ~ 1991)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992 ~ 1993)
롯데 자이언츠 (1994)

2. 선수 경력

일본 나고야전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9년에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다음 해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여 등번호 7번을 부여받았다. 1985년 스즈키 야스토모와의 맞트레이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후 1987년부터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8년 4월 8일 야쿠르트 스왈로즈전에서 악송구를 던져 팀이 역전패를 해 시즌 중 외야수로 보직을 옮겼다. 이후 1991년 시즌이 끝난 후 오노 유지와의 맞트레이드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로 이적했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994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으나,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코치와의 갈등으로 인해 같은 해 시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2] 은퇴 후에는 샐러리맨으로 일하면서 일본의 아마추어 리그인 마스터 토너먼트 리그의 나고야 80D'sers에서 활동했다. 마스터 토너먼트 리그가 활동 중단한 후에는 샐러리맨 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고노 준키는 선수 시절 다음과 같은 팀에서 활동했다.


2. 1. 일본 프로 야구 (NPB) 시절

나고야 시립 오소네 중학교 시절부터 운동 신경이 뛰어나, 체육대회 100m 달리기는 졸업 후 10년 이상 학교 내 기록을 보유했다. 나고야 전기고 3학년이던 1979년에는 4번 타자, 3루수로서 여름 현 대회에 출전했다. 사카모토 요시카즈 투수를 보유한 토호고에 승리하고, 준결승에서는 스스로 선발로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했지만, 추쿄고에 패배하여 고시엔 출전은 좌절되었다. 고등학교 2년 후배로는 쿠도 키미야스, 야마모토 코지, 나카무라 미노루가 있었다.

1979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세이부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거쳤다.[1] 1994년에는 대한민국 한국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서 '홍순기'라는 이름으로 뛰었지만, 6월에 퇴단했다.[1]

2. 1. 1. 세이부 라이온즈 (1980-1984)

1979년 드래프트 1순위로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했다.[1] 등번호 7번을 부여받아 장래 팀을 짊어질 주력 선수 후보로 기대를 받았지만, 고졸 1년차였던 1980년에는 1군 출전 기회가 없었다. 이스턴 리그에서는 총 70경기 중 56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 2할 3푼 8리, 24삼진, 수비에서도 13실책을 기록하는 등 실력 부족을 드러냈다. 오프 드래프트 1순위로 이시게 히로노리가 입단하면서 등번호를 변경했다. 2년차인 1981년 9월 29일 킨테츠전(닛세이)에 9번 타자, 2루수로 첫 출전 및 선발 출장하여, 4회 초에 타니자키 코지로부터 첫 안타를 기록했다. 1982년 9월 3일 한큐전(니시노미야) 9회 초에 야마구치 타카시로부터 스퀴즈를 성공시켜 첫 타점을 기록했다.

1984년 오프에 스즈키 야스토와의 트레이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1]

2. 1. 2. 요미우리 자이언츠 (1985-1991)

오프에 스즈키 야스토와의 트레이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1] 4월 20일 히로시마전(히로시마 시민)에서 9회 초에 카도 미츠오의 대타로 출전, 코바야시 세이지로부터 솔로 홈런을 날려 첫 홈런을 기록했다. 이 무렵에는 정규 유격수였던 카와노 카즈마사가 쇠퇴하여, 부터 오카자키 이쿠와의 치열한 유격수 자리 경쟁이 계속되었다. 같은 해에는 오카자키를 대신하여 7월부터 51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에는 유격수 자리를 잡을 뻔하여 커리어 하이인 94경기에 출전(그 중 67경기에 선발)했다. 같은 해의 옛 소속팀 세이부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3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11타수 1안타로 끝났다. 개막전인 4월 8일 야쿠르트전(도쿄 D)에서 7회 초 1사 1, 3루 상황에서 아라이 유키오가 친 2루 땅볼 병살 플레이 때, 역전패로 이어지는 악송구를 하여, 이후 스구로 히로노리와 카와아이 마사히로의 대두로 2군으로 떨어져, 시즌 중에 외야수로 전향했다. 이후에는 주로 외야 수비 굳히기로 출전하게 되었고, 오프에 오노 유우지와의 트레이드로 전 요미우리 출신 스도 유타카 감독이 이끄는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즈로 이적했지만,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1]

2. 1. 3.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 베이스타스 (1992-1993)

오프에 오노 유우지와의 트레이드로 전 요미우리 출신 스도 유타카 감독이 이끄는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즈로 이적했지만,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1]

2. 2. 한국 프로 야구 (KBO) 시절

에는 한국 프로 야구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홍순기'''라는 이름으로 뛰었다.[1]

2. 2. 1. 롯데 자이언츠 (1994)

에는 한국 프로 야구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홍순기'''라는 이름으로 뛰었지만,[1] 기대했던 결과를 남기지 못하고 6월에 퇴단했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회사원으로 근무하며 프로 야구 마스터스 리그의 나고야 80D'sers에서 뛰기도 했지만, 마스터스 리그가 활동을 중단한 후에는 회사에 전념했다.

4. 상세 정보

고노 준키(鴻野 淳基|고노 준키일본어)는 나고야 전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여 등번호 7번을 부여받았다.[1] 1985년 스즈키 야스토모와의 맞트레이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1987년부터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1988년 4월 8일 야쿠르트 스왈로즈전에서 악송구를 던져 팀이 역전패하면서 시즌 중 외야수로 보직을 옮겼다. 1991년 시즌 후 오노 유지와의 맞트레이드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로 이적했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1994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으나, 나이 탓인지[2]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코치와의 갈등으로 인해 같은 해 시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샐러리맨으로 일하면서 일본의 아마추어 리그인 마스터 토너먼트 리그의 나고야 80D'sers에서 활동했다. 마스터 토너먼트 리그가 활동 중단한 후에는 샐러리맨 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나고야 시립 오소네 중학교 시절부터 운동 신경이 뛰어나 체육대회 100m 달리기는 졸업 후 10년 이상 학교 기록으로 남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9년에는 4번 타자 겸 3루수로 여름 현 대회에 출전했다. 준결승에서 스스로 선발로 나와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지만, 추쿄고에 패하며 고시엔 진출에는 실패했다. 고등학교 2년 후배로는 쿠도 키미야스, 야마모토 코지, 나카무라 미노루가 있었다.

'''주요 기록 (NPB)'''


  • 첫 출장 · 첫 선발 출장: 1981년 9월 29일, 대 긴테쓰 버팔로스 후기 13차전 (니세이 구장), 9번 · 2루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 상동, 4회 초에 타니자키 코지로부터
  • 첫 타점: 1982년 9월 3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후기 11차전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9회 초에 야마구치 타카시로부터 스퀴즈
  • 첫 홈런: 1985년 4월 20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9회 초에 스미 스미오의 대타로 출장, 코바야시 세이지로부터 솔로 홈런


'''등록명'''

고노 준키(鴻野 淳基|고노 준키일본어) (1980년 ~ 1993년) (일본 프로 야구)
홍순기(洪淳基) (1994년) (한국 프로 야구)[1]



'''선수 경력'''



'''등번호'''

연도등번호
1980년7
1981년 ~ 1984년38
1985년 ~ 1991년25
1992년8
1993년49
1994년18


4. 1. 통산 기록

통산 기록
NPB
KBO 리그


4. 1. 1. 일본 프로 야구 (NPB)

연도소속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루자희생 번트희생 플라이볼넷고의 4구사구삼진병살타타율출루율장타율OPS
1981년세이부3651100010010010030.200.333.200.533
1982년7211000001001000000.000.000.000.000
1983년161093000000000010020.000.100.000.100
1984년91090100010001000030.111.111.111.222
1985년요미우리352825860111133310200120.240.296.440.736
1986년60190172204310246920103611110414.250.293.401.695
1987년942742364069123499171181921601452.292.337.419.757
1988년651721492340722579641011210311.268.321.383.704
1989년79686017120011539530500132.200.262.250.512
1990년6110000000010000010.000.000.000.000
1991년57656017183122963020200211.300.323.483.806
1992년다이요/요코하마14252333100412000100110.130.167.174.341
1993년5660000000000000010.000.000.000.000
1994년롯데19453614100530210602113.111.273.139.412
NPB:13년45085775613319333914286604425434512118610.255.302.378.680


4. 1. 2. KBO 리그

연도소속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루자희생번트희생플라이볼넷고의4구사구삼진병살타타율출루율장타율OPS
1994년롯데19453614100530210602113.111.273.139.412


4. 2. 주요 기록 (NPB)


  • 첫 출장 · 첫 선발 출장: 1981년 9월 29일, 대 긴테쓰 버팔로스 후기 13차전 (니세이 구장), 9번 · 2루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 상동, 4회 초에 타니자키 코지로부터
  • 첫 타점: 1982년 9월 3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후기 11차전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9회 초에 야마구치 타카시로부터 스퀴즈
  • 첫 홈런: 1985년 4월 20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9회 초에 스미 스미오의 대타로 출장, 코바야시 세이지로부터 솔로 홈런

4. 3. 출신 학교

나고야 전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1] 나고야 시립 오소네 중학교 시절부터 운동 신경이 뛰어나 체육대회 100m 달리기는 졸업 후 10년 이상 학교 기록으로 남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9년에는 4번 타자 겸 3루수로 여름 현 대회에 출전했다. 준결승에서 스스로 선발로 나와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지만, 추쿄고에 패하며 고시엔 진출에는 실패했다. 고등학교 2년 후배로는 쿠도 키미야스, 야마모토 코지, 나카무라 미노루가 있었다.

4. 4. 선수 경력

일본 나고야전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9년에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다음 해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여 등번호 7번을 부여받았다. 1985년 스즈키 야스토모와의 맞트레이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후 1987년부터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8년 4월 8일 야쿠르트 스왈로즈전에서 악송구를 던져 팀이 역전패하는 바람에 시즌 중 외야수로 보직을 옮겼다. 이후 1991년 시즌이 끝난 후 오노 유지와의 맞트레이드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로 이적했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994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으나, 나이 탓인지[2]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코치와의 갈등으로 인해 같은 해 시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그 후에는 샐러리맨으로 일하면서 일본의 아마추어 리그인 마스터 토너먼트 리그의 나고야 80D'sers에서 활동했다. 마스터 토너먼트 리그가 활동 중단한 후에는 샐러리맨 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4. 5. 등록명

4. 6. 등번호

연도등번호
1980년7
1981년 ~ 1984년38
1985년 ~ 1991년25
1992년8
1993년49
1994년18


참조

[1] 서적 プロ野球人名事典 2003 日外アソシエーツ 2003-04
[2] 뉴스 "「억대수입선수」쓸곳이 없다" 삼성 롯데 벙어리 냉가슴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199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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