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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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은 1937년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개장한 야구장으로, 한큐 브레이브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프로 야구, 고교 야구, 경륜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1991년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2002년 영업 종료 후 2004년부터 해체되어, 현재는 대형 상업 시설인 한큐 니시노미야 가든스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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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 [경기장/극장]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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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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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니시노미야시 다카마쓰초, 효고현, 일본 |
개장 | 1937년 5월 1일 |
폐장 | 2002년 12월 31일 |
철거 | 2004년 9월 1일부터 2005년 여름까지 |
소유주 | 한큐 전철 |
주요 건설사 | 다케나카 공무점 |
수용 인원 | 35,000명 |
구장 크기 | 좌익수: 91.4 m (-1977), 101 m (1978-) 중견수: 118.9 m 우익수: 91.4 m (-1977), 101 m (1978-) |
사용 팀 | |
주요 사용 팀 | 한큐 브레이브스 (퍼시픽 리그/NPB, 1937–1988) → 오릭스 브레이브스 (퍼시픽 리그/NPB, 1989–1990) |
기타 사용 | 전국 중등학교 우승 야구 대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1946년, 1958년, 1963년※1958년과 1963년은 한신 고시엔 구장과 병행 개최) 다이요 로빈스 (1948년 - 1949년) |
추가 정보 | |
이전 명칭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개장 - 1991년 3월 31일) |
그라운드 | 내외야 - 천연芝 (개장 - 1940년대) 내야 - 흙, 외야 - 천연芝 (1950년대 - 1977년) 내야 - 흙, 외야 - 인조 잔디 (1978년 - 1989년) 내외야 - 인조 잔디 (1990년 - 폐장) |
설계자 | 아베 미키시 |
2. 역사
1936년 고바야시 이치조의 명령을 받은 당시 한큐군 감독 미야케 다이스케가 호리오 후미토를 통해 리글리 필드의 청사진을 입수하여 이를 참고하여 설계했다.[6][9]
1943년 10월 28일, 금속류 회수령에 따라 2층 관람석 전체를 덮고 있던 철제 차양을 해체했다.
1945년 12월 5일, 전후 첫 복싱 “부활 경기”가 열렸다.
전쟁 중 고라쿠엔 구장에서 스모 본 장이 개최된 기록은 있지만, 본 장은 아니지만 입행사 29대 기무라 쇼노스케의 저서에 따르면, 저자가 전후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쇼와 22년 3월, 오사카의 준 장이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특별 스모 경기장에서 열렸다.
1946년 8월 15일, 한신 고시엔 구장이 GHQ에 접수되어 제28회 전국 중등 학교 선수권 야구 대회를 8월 21일까지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개최했다. 잔디는 상당히 손상되었지만, 내야가 흙으로 개수된 것은 1950년대이며, 현재로서는 내외야 총 천연 잔디 구장에서 열린 유일한 전국 대회이다(후술할 1958년 제40회 대회 시점에서는 내야 흙 개수). 고시엔의 흙을 가져가는 것은 신문에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이 대회가 처음이며, 실제로는 니시노미야의 흙이다.
1946년 9월 27일, 세네터스 대 골드 스타전에서 구장은 맑았지만 세네터스 숙소에 비가 와서 선수들이 구장에 모이지 못해 일본 프로 야구 최초의 포기 경기가 선언되었다(당일 규정대로 9-0으로 골드 스타 승리).[6]
1946년 10월 4일, 같은 해 5월 20일부터 5월 26일까지 당 구장에서 개최된 퍼시픽전 4경기에 대해 몰수 경기가 선언되었다.
1947년 1월, 신오사카 신문사 주최로 우와지마에서 소를 데려와 투우 대회가 3일간 개최되었다(후에 이노우에 야스시가 이 투우 대회를 모델로 단편 "투우"를 써서 제2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 이후 쇼와 50년대까지 전국 각지 소를 이용한 투우 대회가 여러 번 열렸다.[10]
1948년, 일본 야구 연맹에 의해 프랜차이즈 제도가 잠정 도입되어, 한큐 브레이브스와 다이요 로빈스의 본거지 구장이 되었다.
1949년 3월 25일, 니시노미야 경륜 첫 개최로 경륜장으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11]
1952년 나이트 조명 설비를 완성하고, 일본 야구 기구에 의해 프랜차이즈 제도가 정식 도입되어 한큐 브레이브스의 본거지 구장이 되었다.
1957년 제1회 뮤지컬 나이트를 개최했다.
1959년 7월 12일, 세계 최초로 타율 표시기가 설치되었다.[12]
1960년 한신 고시엔 구장 개수 공사로 아메리칸 풋볼 동서 대학 왕좌 결정전 '고시엔 볼'을 당 구장에서 대체 개최했다.[13]
1960년대경 럭키 존이 설치되었다.(이 기간 1967년 프로 야구 시즌 개막 전, 한큐 브레이브스 선수였던 대릴 스펜서의 요청으로 3m 전방으로 럭키 존이 이전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1980년 10월 6일, 실내 연습장 병설 신 합숙소가 준공되어, 한큐 팬인 영화 감독 우라야마 기리오로부터 "집용관"이라고 이름 붙여졌다.[14]
1983년 4월 30일, 한큐 브레이브스 이벤트로 후쿠모토 유타카 vs 밤프 윌리스 VS 경주마의 대결을 개최했다.[15] 결과는 말이 미끄러져 밤프가 승리했다.[15]
1987년, 백네트 측 2F 특별 식당(내야 지정석용)을 "아스트로 식당"(내야 자유석도 이용 가능)으로 오픈했다.
1990년대 전반, 정면 입구 앞에 있던 한큐 전철 임시 티켓 판매소가 철거되었다.
2. 1. 건설 및 개장 (1937년)
일본 최초로 2층 관람석(철산 포함)과 내외야 총 천연 잔디 구장을 갖춘 야구장으로, 시카고의 리글리 필드 등 당시 MLB의 여러 구장을 참고하여 설계되었다. 1936년 12월 1일에 기공, 5개월의 짧은 공사로 완공되어 1937년 4월 30일에 준공, 5월 1일에 개장했다.
당초 구상에서는 야구장 입구가 니시노미야키타구치역에 직결될 예정이었지만, 역 주변의 일부 토지(대부분이 한신 전기 철도 관련 토지)가 부지 매입에 응하지 않아, 역에서 약간 남동쪽으로 떨어진 곳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관람석은 2층 관람석 외에도,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등받이 의자를 갖춘 내야석, 55,000명을 수용하는 관람석의 경사각도를 어디에서 봐도 홈베이스에 맞추는 등 설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후 오랫동안 "가기 쉽고, 보기 쉽다"는 캐치프레이즈가 사용되었다. 또한, 욕실 등 선수용 시설, 기자실, 우체국,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남녀별 화장실, 계단 외에도 슬로프를 설치하는 등 내부 시설도 충실했으며, 넓은 부지와 함께 개장 당시로서는 최신·최고의 설비를 갖춘 구장이었다. 설계는 당시 한큐 관련 건물의 많은 부분을 담당한 아베 미키시가 맡았다.
프로 야구 초창기 흥행의 중심이 된 3개 구장은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 고라쿠엔 구장이었다. 한신 고시엔 구장은 전면에 흙을 깐 "대운동장"으로 개장하여 5년 후에 외야만 잔디를 깐 "구장"으로 개수되었고, 고라쿠엔 구장은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개장 약 4개월 후에 개장하여 2층 관람석(철산 없음)을 가졌다.
한큐 전철이 소유하고 있던 프로 야구 팀 '한큐 브레이브스'의 본거지(프랜차이즈)로서 한큐 주최 경기가 개최되었다. 그 외에, 경륜장으로 경륜 개최(「니시노미야 경륜장」에서 상세 설명), 미식축구 경기,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에 사용되었으며, 그야말로 "다각 경영"의 선구자가 된 야구장이다.
2. 2. 프로 야구 흥행의 중심 (1937년 ~ 1950년대)
1937년 5월 1일 개장한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은 일본 최초로 2층 관람석(철산 포함)과 내외야 천연 잔디를 갖춘 야구장이었다. 시카고의 리글리 필드 등 MLB 구장들을 참고하여 설계되었으며, 당초에는 니시노미야키타구치역과 직결될 예정이었으나 토지 매입 문제로 변경되었다.5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석은 등받이 의자와 홈베이스를 중심으로 한 경사각 설계로 "가기 쉽고, 보기 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베 미키시가 설계했으며, 선수용 시설, 기자실, 우체국, 남녀별 화장실, 슬로프 등 당시로서는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프로 야구 초창기에는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 고라쿠엔 구장이 흥행의 중심이었다.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은 한큐 브레이브스의 본거지로서 한큐 주최 경기가 열렸으며, 경륜, 미식축구,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에도 사용되었다.
1949년까지는 한신 고시엔 구장과 함께 간사이 프로 야구 흥행의 중심이었으나, 1950년 양대 리그 분립 이후에는 한큐가 퍼·리그, 한신 타이거스가 세·리그에 소속되면서 니시노미야에서는 한큐 주최 경기만 열리게 되었다. 1991년에는 한신이 42년 만에 처음으로 세·리그 공식전을 개최했고, 1996년 프로 야구 공식전 개최를 마지막으로 하였다.
2. 3. 고교 야구 대회 개최 (1958년, 1963년)
1958년 제40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와 1963년 제45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1회전부터 3회전까지 한신 고시엔 구장과 함께 경기를 개최했다. 기념 대회로 출전 학교가 늘어나, 한신 고시엔 구장만으로는 경기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6]
제45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한신 고시엔 구장 이외의 야구장은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6]
2. 4. 한큐 브레이브스 시대 (1960년대 ~ 1990년)
1937년 5월 1일 개장한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은 프로 야구 팀 한큐 브레이브스의 본거지(프랜차이즈)였다.[6] 한큐 주최 경기는 물론, 경륜장으로 경륜을 개최하거나(「니시노미야 경륜장」에서 상세 설명), 미식축구 경기,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여 "다각 경영"의 선구자가 되었다.[7][17]1950년 2리그 분립 이후, 한큐는 퍼·리그에 소속되었고, 고시엔을 본거지로 하는 한신 타이거스는 세·리그에 소속되어 니시노미야에서의 공식전은 한큐 주최의 퍼·리그 경기만 열렸다.[6]
1965년 스코어보드를 개수하여 중앙에 대형 컬러 스크린(프로젝터 방식)을 설치했다. 1971년 올스타전 제1전에서는 에가와 유타카가 9연속 탈삼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1972년 9월, 한큐 브레이브스의 후쿠모토 유타카는 이 구장에서 당시 시즌 세계 최다 기록인 105도루를 달성했고, 같은 경기에서 한큐의 리그 우승도 확정되었다. 1975년 10월, 일본 시리즈 제6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가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꺾고, 팀 발족 40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제일을 달성했다. 이 우승은 한큐・오릭스 시대를 통틀어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유일한 일본 제일 달성의 무대였다.
1978년 경륜 뱅크 가로 배치에 대응하기 위해 내야석과 외야석을 깎아 럭키 존 확장 공사를 실시하고, 외야를 인조 잔디로 개수했다. 이는 간사이 야구장 최초의 인조 잔디 도입이었다.
1982년 스코어보드를 전광 게시 방식(마쓰시타 통신 공업제)으로 바꾸고, 아스트로 비전이라 불리는 대형 영상 장치도 설치했다.
1984년 세이부 라이온스의 타부치 고이치가 은퇴 경기를 가졌고, 한큐와 세이부 양 팀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았다. 이 경기에는 타부치가 과거에 재적했던 한신의 팬들도 많이 찾아왔고, 한큐 응원단은 롯코 오로시를 연주해주었다. 같은 해 한큐는 1978년 이후 처음으로 우승하여 6년 만에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일본 시리즈 경기가 열렸지만, 동시에 마지막으로 니시노미야에서 개최된 해가 되었다.
1986년 8월 31일 한큐 대 롯데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관객 동원 100만 명을 달성했다.
1988년 7월, 올스타전 제1전이 개최되어, 고졸 신인 대타다쓰나미 가즈요시가 첫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했다. 같은 해 10월, 한큐 브레이브스가 오리엔트 리스(현:오릭스)에 구단을 양도하고, "오릭스 브레이브스"로 구단명을 변경했다. 오릭스는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을 계속 홈구장으로 사용하기로 발표하고, 내야 지정석을 브레이브스 시트로 개량했다.
1990년 내야도 인조 잔디로 개수하고, 서일본 최초로 투수 마운드 승강 장치를 설치했다. 이 해를 마지막으로 오릭스 브레이브스는 그린 스타디움 고베로 본거지를 이전했다.
2. 5. 다목적 스타디움 시대 (1991년 ~ 2002년)
1991년 한큐 전철이 구단을 오릭스에 양도하고 프랜차이즈를 이전한 후, "다목적 스타디움"임을 표방하며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으로 개칭되었다.1949년까지 1리그 시대에는 인근 한신 고시엔 구장과 함께 간사이 프로 야구 흥행의 중심이었지만, 1950년 2리그 분립 이후에는 한큐가 퍼·리그, 고시엔을 본거지로 하는 한신 타이거스가 세·리그로 나뉘고, 프랜차이즈 제도의 영향으로 니시노미야에서는 한큐 주최의 퍼·리그 경기만 열렸다. 1991년 오릭스의 프랜차이즈 이전 후, 한신이 42년 만에 처음으로 세·리그 공식전을 개최했다. 1996년 프로 야구 공식전 개최는 한신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미식축구와 경륜 개최가 주가 되었지만, 인조 잔디 노후화로 미식축구 개최가 감소하고, 경륜 개최도 매출 감소로 폐지되면서 구장 노후화와 경영난으로 2002년 말 폐쇄되었다. 2004년 9월 1일부터 2005년까지 철거되었다.
부지에는 2008년 11월 대형 복합 상업 시설 "한큐 니시노미야 가든즈"가 개업했다. "한큐 니시노미야 갤러리"에는 1983년 당시 구장 디오라마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폐쇄·해체 후에도 한큐 이마즈 남선 입출고선과 효고현도 606호 니시노미야 도요나카선이 교차하는 건널목 명칭은 "구장 앞 건널목", 서쪽의 효고현도 606호선과 니시노미야 시도 간38호 교차점 명칭은 "구장 다리"로 남아있다.
- 1991년 ~ 1993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오사카 대회 일부 경기가 개최되었다. 이는 오사카 구장의 야구장 기능 폐지(1990년)로 오사카부 내 회장 부족에 따른 특례 조치였다(다른 나라시 고노이케 구장도 사용).
- 1991년 4월 1일: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으로 개칭. 간사이 아마 야구, 아메리칸 풋볼 주 경기장이 되었다. 같은 해 8월 24일, 2리그 분열 후 첫 센트럴 리그 공식전인 한신 대 주니치 드래곤스전이 열렸다.
- 1992년: 럭키 존을 철거하고, 양익 101m까지 확장되었다.
- 1995년1월 17일: 한신·아와지 대지진 발생. 스탠드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잠시 광역 피난소로 활용되었고, 같은 해 3월까지 그라운드 포함 부지가 육상자위대 활동 거점이 되어 재해 복구를 위한 트럭 등이 드나들었다.
- 1996년7월 30일: 1957년부터 매년 여름 개최된 뮤지컬 나이트가 종료되었다(1995년은 개최 중지).
- 1996년8월 24일: 한신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을 마지막으로 프로 야구 공식전 사용 종료.
- 1998년: 백스크린과 스코어 보드를 철거하고, 구 스코어 보드 자리에 유리로 된 경륜 특별 관람석 설치(후술). 대형 영상 장치는 경륜 운영 본부 위 배당금 게시판 부분으로 이설되었다.
- 1999년: 한큐 전철에서 자회사 한큐 어뮤즈먼트 서비스가 운영 위탁을 받았다.
- 2002년3월 8일: 니시노미야 경륜 최종 개최.
- 2002년 8월: SMAP이 콘서트로 사용하는 마지막 공연을 했다.
- 2002년12월 31일: 경륜 개최 폐지, 시설 노후화 등으로 영업 종료. 인접 니시노미야 구기장, 코마 스타디움 경영 골프 연습장과 실내 풀도 동시 폐쇄·해체. 니시노미야키타구치역 스타디움 관련 간판, 역명 아래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앞" 문자도 삭제.
2. 6. 철거 및 재개발 (2004년 ~ 2008년)
2002년 말, 구장 자체의 노후화와 경영난으로 폐쇄되었고, 2004년 9월 1일부터 2005년에 걸쳐 철거되었다.[6] 이후 구장 부지는 주변 지역과 함께 재개발되어, 2008년 11월에 대형 복합 상업 시설인 "한큐 니시노미야 가든즈"가 개업했다. "가든즈" 내 "한큐 니시노미야 갤러리"에는 1983년 당시 구장 디오라마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폐쇄 및 해체 이후에도, 인근 한큐 이마즈 남선의 입출고선과 효고현도 606호 니시노미야 도요나카선이 교차하는 지점의 건널목 이름은 "구장 앞 건널목"으로, 그 서쪽의 효고현도 606호 니시노미야 도요나카선과 니시노미야 시도 간38호가 교차하는 지점의 교차점 이름은 "구장 다리"로 남아, 구장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연혁은 다음과 같다.
날짜 | 사건 |
---|---|
2002년 3월 8일 | 니시노미야 경륜 최종 개최 |
2002년 8월 | SMAP의 마지막 콘서트 |
2002년 12월 31일 | 경륜 개최 폐지, 시설 노후화 등으로 영업 종료. 니시노미야 구기장, 골프 연습장, 실내 풀도 동시 폐쇄 및 해체 |
2004년 9월 1일 ~ 2005년 여름 | 해체 공사 완료 |
2005년 11월 4일 | 한큐 전철, 부지에 한큐 백화점을 중심으로 하는 대형 복합 상업 시설 건설 발표 |
2006년 봄경 | 부지 동남단에 한큐 부동산(당시) 분양 맨션 모델 룸 설치 |
2008년 11월 26일 | 부지에 대형 상업 시설 한큐 니시노미야 가든즈 개업 |
1949년 3월 25일 니시노미야 경륜이 처음 개최되었다. 당시에는 야구장 위에 나무 패널 120장을 조합한 둘레 300m 뱅크로 개장했다. 뱅크는 백 네트에서 백 스크린 방향으로 조성되었고, 골 라인은 1루 측 내야 스탠드 옆에 있었다.[17]。패널이 안정되지 않아 진동으로 선수들이 힘을 빼앗겼고, 낙차 시 나무 가시가 피부에 박혀 찰과상이 심해 불평이 잇따랐다.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은 야구 경기 외에도 경륜, 미식축구,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에 사용되었다[17]
3. 니시노미야 경륜장
1964년까지 고시엔 경륜장과 함께 여자 경륜을 적극적으로 개최했다.
1966년 패널을 아스팔트로 변경하고, 특별 경륜(현재의 GI 상당) "전국 도도부현 선발 경륜"(우승은 다카하라 에이고)이 개최되었다.
1978년 구장에 인조 잔디가 깔리면서 뱅크를 개수했다. 외야 인조 잔디 부분에 야구대를 세우고 주행로를 333m(소위 "산·산 뱅크")로 연장했다(패널은 118장). 이후 니시노미야 경륜 폐지 때까지 이 뱅크에서 개최되었다.[18][19]。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직후부터 3월 말까지 개최를 중단했다가 4월부터 재개했다. 매년 3월 실시하던 개설 기념 경륜(GIII 상당) "한큐 다이아몬드상"은 그 해 개최가 중지되었다.
1978년과 1984년에는 특별 경륜(GI) "올스타 경륜"이 개최되었다.
1996년 2월 하순, 전년 3월에 중지되었던 개설 기념 대체의 "지진 부흥 특별 경륜"이 3월 개설 기념과는 별도로 개최되었다.
좌중간에서 백 스크린 쪽 부분에는 경륜 개최용 운영 본부와 환불금 표시용 전광 게시판이 설치되었다. 경륜 이외 시간에는 문을 닫고 야구장용 광고 간판을 걸었다. 1982년 스코어보드에 대형 영상 장치 아스트로비전이 설치되면서 배당률 표시, 레이스 리플레이 상영에 활용되었다(전광 게시판도 병용).
1998년 대형 영상 장치를 경륜 운영 본부 상부 전광판으로 대체 설치하고, 백 스크린을 철거한 자리에 전천후 유리벽 특별 관람석을 설치하여 경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매출은 1992년을 정점으로 감소했고, 시행자인 효고현 외곽 단체 '''효고현 시정 경륜 사무 조합'''의 적자 경영으로 적립금이 바닥나면서 폐지가 거론되었다.
2002년 3월 8일 개설 기념 "한큐 다이아몬드상" 후절 최종일, 제11 레이스 결승전에서 무라카미 요시히로(당시 27세)가 도주하여 우승한 것을 마지막으로 니시노미야 경륜장은 53년 역사에 막을 내렸고, 구장 자체도 같은 해 말 폐쇄되었다.
1987년 오봉 휴가 시리즈(8월) 개최 시 경륜 사상 최초, 공영 경주에서는 1986년 야간 경주를 시작한 오이 경마장에 이어 두 번째 야간 경주로 개최할 계획이었다.
1979년 전일본 프로 선수권 자전거 경기 대회에서는 야간 경주가 열렸다.
4. 기타 시설
니시노미야 경륜은 '''룰렛 뱅크'''[20]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뱅크의 경사가 심하고 가상 직선이 짧아 빠른 속도의 경주가 펼쳐졌다. 뱅크는 조립식으로, 경륜 개최 전후 설치 및 해체가 이루어졌으며[21], 개최 시에는 내야 스탠드와 외야 스탠드 사이에 가교가 설치되어 관람객 편의를 도왔다. 입장료는 50엔, 특별 관람석은 2000엔이었고, 새벽에는 음료, 신춘 한큐 컵에서는 다시마 차가 제공되기도 했다[17]
1967년 한큐 브레이브스의 리그 우승으로 일본 시리즈가 개최되면서, 경륜 개최가 연기되기도 했다[24]
1990년대에는 나카가와 겐지가 고시엔 경륜장과 함께 니시노미야 경륜의 레이스 실황을 담당했고[25], 선 텔레비전에서 니시노미야·고시엔 케이린 아워라는 다이제스트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직후에는 방송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으며, 이후 SPEED 채널 등에서 전 레이스 무료 방송이 실시되었다.
2002년 3월 8일 마지막 경륜 레이스 후에는 선수들이 경주용 유니폼을 팬들에게 선물했다.
4. 1. 니시노미야 제2구장
현재 야마테 간선 도로의 남쪽에 설치되었다. 주로 한큐 → 오릭스 2군 (웨스턴 리그)의 공식 경기, 또는 1군과 2군 모두 사전 연습 등에 사용되었다. 관람석은 설치되지 않았다.[8]
1951년에 마이니치 오리온즈가 이 니시노미야 제2구장에서 캠프를 진행했고, 인접한 본 구장에서는 한큐가 연습을 했다.[8]
전후에 개통한 메이신 고속도로가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의 남동쪽을 스치며 제2구장의 부지를 통과하게 되었다. 1966년 촬영된 항공 사진에서는 휴지 상태의 니시노미야 구기장의 잔디를 내야처럼 걷어낸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제2구장은 사용이 중단되어 구기장을 대체로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속도로 개통 후에는 그 동쪽에 제2구장이 재건되었다.
구장으로서의 외관이 정비된 것은 1970년대에 잔디가 심어지고 나서이다.
특히 2군의 경기는 경륜이 본 구장에서 열린 경우에 공식 경기를 개최한 경우가 많았다.
제2구장 남쪽에는 브레이브스의 선수 기숙사 "슈유칸"도 병설되어 있었다.
오릭스 브레이브스가 블루웨이브로 구단명을 변경하고 프랜차이즈 구장을 이전한 1991년 4월을 기점으로 기능이 종료되었고, 합숙소와 함께 폐쇄되었다 (2군 시설 및 선수 기숙사는 그린 스타디움 고베 서브 구장과 그 인근 부지로 이전했으며, 이후 오사카시의 마이시마로 재이전했다).
이와 함께 구장과 합숙소는 해체되었고, 부지는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주택・도시 정비 공단 등에 잇따라 매각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 걸쳐 부지에는 이러한 공영 주택이 건설되었으며, 특히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집을 잃은 세대에 대한 지진 재해 복구 주택으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
4. 2. 한큐 상업 학원
1957년, 한큐 백화점이 장래의 우수한 사원을 육성할 목적으로 설립한 기업 내 교육 시설이다.[1] 입학자는 전원 한큐 소년 음악대로서 취주악 활동을 하였고, 졸업 후에는 한큐 백화점에 취직하게 되어 있었다.[1] 구장의 5층과 6층에 교실·직원실이 있었다.[1] 교내 규율은 엄격했고, 학생복 옷깃은 여며야 했으며, 학생의 찻집 이용은 금지되었다.[1] 마칭은 제2구장에서 연습했고, 야간 경기가 없는 날에는 방과 후에 구장 스탠드에서 연습할 수 있었다.[2]
크리스마스의 한큐 그랜드 돔에서의 콘서트 등 한큐 백화점 행사 외에도 각종 이벤트, 라디오, 콘서트에 출연하여 취주악 팬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서도 인기를 얻었다.
당초 오랫동안 남학교였지만, 1997년부터 여자만 입학하게 되어 최말기에는 여학교가 되었다. 이에 따라 애칭도 한큐 소년 음악대에서 한큐 상업 학원 윈드 밴드로 변경되었다.
이후, 한큐 백화점이 학원 운영에서 철수하고, 2004년부터는 고졸 자격 취득을 위한 연계교였던 향양대고등학교가 취주악 코스를 신설하여, 향양대고등학교 윈드 밴드(후술하는 링크 참조)로 계승되었고, 2009년부터는 동일 법인의 와세다 셋료 고등학교로 이관되어, 와세다 셋료 고등학교 윈드 밴드로 재출발했다. 학원이 한큐 백화점과 구장을 떠나는 것을 계기로, 2004년에 OB와 재학생 150명에 의한 기념 연주회가 그라운드에서 개최되었다.[3]
한큐 상업 학원 시대에는 음악을 주체로 하던 학교였기 때문에, 규정에 의해 전일본 취주악 콩쿠르에 출전할 수 없었다. 2004년에 향양대고등학교로 계승된 후부터는 고등학교 부문으로 전일본 취주악 콩쿠르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4. 3. 코마 수영 스쿨・코마 스포츠 센터・니시노미야 코마 골프 연습장
이 섹션은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에서 과거에 운영되었던 시설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제공된 소스에는 이 시설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해당 섹션에는 다음 내용만이 포함될 수 있다.
5. 주요 이벤트
한큐 브레이브스의 본거지(프랜차이즈)로서 한큐 주최 경기가 개최되었다. 그 외에도 경륜장으로 경륜을 개최하거나(「니시노미야 경륜장」에서 상세 설명), 미식축구 경기,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에 사용되어, "다각 경영"의 선구자가 된 야구장이다.
; 콘서트
마이클 잭슨, 마돈나, 본 조비, 휴이 루이스 & 더 뉴스, 듀란 듀란, 퀸, RC 서세션, 사잔 올 스타즈, 오냥코 클럽, GLAY, THE YELLOW MONKEY, globe, SMAP, 와타나베 미사토, 야자와 에이키치, 하마사키 아유미, 유즈, 핑크 레이디 등이 콘서트를 개최했다. 경기장 안을 엿볼 수 있는 곳이 있어, 거기에서 콘서트를 엿보는 사람도 많았다.
마지막 콘서트는 2002년 8월 SMAP의 공연이었다.
; 3000인의 취주악
간사이 TV 방송 주최로 매년 5월경에 열렸던 일본 유수의 마칭 이벤트였다.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폐쇄 후에는 오사카 돔에서 개최되고 있다.
; 킨더 페스티벌
효고현, 오사카부의 유치원생들이 모여 춤을 추는 운동회(집단 체조) 성격의 이벤트였다.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폐쇄 후에는 오사카 돔에서 개최되었으며, 2011년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
; 다카라즈카 가극단 대운동회
1922년부터 개최되었으며, 제18회부터 10년마다 개최되었다. '하나구미', '츠키구미', '유키구미', '호시구미', '소라구미', '센카·음악학교'의 6개 조로 나뉘어 경기를 펼쳤다.
; 재팬 슈퍼 크로스
그라운드에 흙을 넣어 모토크로스장으로 '재팬 슈퍼 크로스 (오토바이 레이스의 빅 이벤트)'도 열렸다.
; 뮤지컬 나이트
긴키 관구 경찰국 주최로 1957년부터 매년 여름에 개최되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계기로 1995년 이후 개최가 중지되었다.
6. 교통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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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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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s.google[...]
U of Nebrask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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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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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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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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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選手権競輪】いわき平競輪実況・中川建治アナウンサーに聞いた「こんな選手は要チェッ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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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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