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득종
1. 개요
고득종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효행으로 천거받아 관직에 진출하여 문과에 급제했다. 대호군, 예빈시판관 등을 거쳐, 1439년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외교 활동을 수행했다. 명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외교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문장과 서예에도 능했다. 사후에는 정문이 세워졌으며, 시호는 문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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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이름 | 고득종 |
|---|---|
| 한자 이름 | 高得宗 |
| 로마자 표기 | Go Deukjong |
| 출생 연도 | 1388년 |
|---|---|
| 사망 연도 | 1452년 |
| 직업 | 문신, 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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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 출생 -
제4대 솔즈베리 백작 토머스 몬태규
잉글랜드 귀족이자 군인인 제4대 솔즈베리 백작 토머스 몬태규는 백년 전쟁 시기 프랑스 전선에서 활약하며 헨리 5세의 측근으로서 가터 기사단에 임명되었고, 주요 전투 참전 및 노르망디 육군 장관 등을 역임했으나 오를레앙 포위전에서 사망하여 그의 군사적 업적은 잉글랜드 역사에 영향을 미쳤다. -
1388년 출생 -
알바로 데 루나
알바로 데 루나는 15세기 카스티야 왕국에서 후안 2세의 총신으로 권력을 행사한 정치가이자 군인이었으나, 왕비와의 갈등과 귀족들의 반발로 실각하여 처형당했다. -
1452년 사망 -
황희
황희는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까지 활동한 재상으로, 세종 시대에 영의정을 지내며 태평성대를 이끌었으나, 친인척 비리 옹호 논란도 있는 인물이다. -
1452년 사망 -
게미스토스 플레톤
게미스토스 플레톤은 동로마 제국의 철학자, 학자, 정치 사상가로서 플라톤 철학 부흥을 주도하며 르네상스 시대 서유럽 사상에 영향을 미쳤고, 피렌체 공의회에서 플라톤 철학을 서구에 재소개했으며, 미스트라스에서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고 비잔티움 제국 개혁 사상을 제시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증조부는 고순원(高順元), 할아버지는 고신걸(高臣傑), 아버지는 상장군 고봉지(高鳳智)이다.
1413년(태종 13년) 효행으로 천거되어 음직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1427년(세종 9년)에는 문과 중시에도 급제하였다.
관료 생활 중 명나라와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등 외교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1438년에는 종마진공사(種馬進貢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439년에는 통신사 정사(正使)로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1441년에는 성절사(聖節使)로 다시 명나라를 방문하였다.
이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와 한성부판윤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448년에는 도전운사(都轉運使)로서 충청도와 전라도의 조세를 평안도로 운송하는 책임을 맡았다.
문장과 서예에 능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사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지는 황해도에 마련되었으며, 현재 경기도 강화군과 제주시 등지에서 그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2.1. 관직 생활
1413년(태종 13년) 효행으로 천거받아 음직으로 직장(直長)에 임명되었고, 이듬해인 1414년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대호군(大護軍)과 예빈시판관(禮賓寺判官) 등을 거쳤으며, 1427년(세종 9년)에는 다시 문과 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437년 첨지중추원사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호조참의로서 종마진공사(種馬進貢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39년에는 통신사가 되어 부사 윤인보(尹仁甫), 서장관 김몽례(金夢禮)와 함께 일본에 파견되어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義敎)와 오우치 모치요(大內持世)의 서계(書契)를 받아 돌아왔다. 1441년에는 예조참의로서 다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를 방문하였다.
그 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와 한성부판윤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448년에는 도전운사(都轉運使)가 되어 충청도와 전라도의 쌀을 평안도로 운반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2.2. 외교 활동
1438년 호조참의로서 종마진공사(種馬進貢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39년 통신사가 되어 부사 윤인보, 서장관 김몽례(金夢禮)와 함께 일본에 파견되었다. 당시 일본의 아시카가 요시노리와 오우치 모치요의 서계(書契)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 사절단의 파견 목적은 일본과의 우호 관계(교린 외교)를 증진하고, 당시 조선 해안을 약탈하던 왜구(倭寇, wakō일본어) 문제 해결에 일본 막부의 협조를 얻기 위함이었다. 일본 측은 이 사절단을 일본 중심의 세계 질서를 확인하는 조공 사절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고득종은 양국 간 외교 의례 절차 협상에 더 중점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1441년 예조참의로서 다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2.3. 가문과 사후
증조부는 고순원(高順元), 할아버지는 고신걸(高臣傑)이며, 아버지는 상장군 고봉지(高鳳智)이다.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사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몇 편의 시가 전해진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지는 황해도 김천군과 개풍군 사이 재궁동(齋宮洞)에 마련되었다. 그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경기도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의 영모사(음력 10월 1일 제사)와 제주시 이도1동 오현단의 향현사(양력 10월 15일 제사) 등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