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통신사는 뉴스를 수집, 가공, 배포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19세기 중반 샤를 루이 아브라스가 설립한 아브라스(현 AFP)를 시작으로 발전했다. 로이터, 볼프 등 유럽 통신사들이 카르텔을 형성하여 국제 뉴스를 공유했으며, 20세기 초 미국의 AP통신 등장으로 경쟁이 심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 국가들의 국영 통신사 설립이 증가했으며, 로이터는 협동조합 형태로 전환했다. 주요 통신사로는 AFP, AP, 로이터, 타스, 신화사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연합뉴스, 뉴시스 등이 있다. 통신사는 뉴스의 도매상 역할을 하며, 뉴스 와이어 서비스를 통해 기사를 판매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통신사 기사 출처 표기 문제, 정치적 편향성 논란 등이 발생하며, 언론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책임감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통신사 - 로이터
로이터는 파울 율리우스 로이터가 1851년에 설립하여 해저 케이블을 이용한 신속한 뉴스 전달로 명성을 얻었으나, 정보 독점, 보도 편향성 등의 논란에 직면했으며 현재는 톰슨 로이터의 일부로 운영되는 세계적인 뉴스 통신 및 금융 정보 서비스 기업이다. - 통신사 - 연합뉴스
연합뉴스는 1945년 합동통신으로 시작하여 1980년 합병을 거쳐 설립된 대한민국의 뉴스통신사이며,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 지정되어 한국어 등 7개 언어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합뉴스TV 등의 자회사를 운영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 - 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 - 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2 - 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2 - 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2. 역사
통신사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전신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다. 1835년 샤를 루이 아브라스(Charles-Louis Havas)가 AFP)를 설립했고, 이후 베른하르트 볼프(Bernhard Wolff)와 폴 율리우스 로이터는 각각 1849년 볼프 통신(베를린), 1851년 로이터 통신(런던)을 설립했다. 1853년 굴리엘모 스테파니(Guglielmo Stefani)는 토리노(Turin)에서 스테파니 통신(Agenzia Stefani)을 설립, 이탈리아의 주요 통신사로 성장했다.
1850년대 전신 발달은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에서 국가 통신사 탄생을 이끌었으나, 1869년 영국 전신법(Telegraph Act) 등 정부 노력에도 불구, 전신 비용은 여전히 높았다.
1924년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만리오 모르가니(Manlio Morgagni)에게 스테파니 통신을 맡겨 국내외 영향력을 확장했다. 스테파니 통신은 1945년 해산, ANSA로 기술 구조와 조직이 이전되었다. 볼프 통신은 1934년 나치 정권에 인수되었다.[7] 독일 통신(German Press Agency)(dpa)은 1949년 8월 18일 고슬라르(Goslar)에서 협동조합으로 설립, 1951년 유한회사(limited liability company)가 되었다. 총편집장(editor-in-chief) 프리츠 젠거(Fritz Sänger)는 1955년까지 관리이사(managing director), 1959년까지 편집장(managing editor)으로 재직했다. 최초 전송은 1949년 9월 1일 오전 6시에 이루어졌다.[8]
1960년대 이후 주요 통신사는 텔레비전과 잡지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이미지와 사진 전문 제작으로 수요가 증가했다.[9] 1980년대까지 AFP, AP, UPI, 로이터 4대 통신사는 전 세계 신문 외신의 90% 이상을 제공했다.[10]
2. 1. 초기 통신사와 카르텔 형성
19세기 중반, 샤를 루이 아브라스(Charles-Louis Havas)가 설립한 AFP)]와 전 아브라스 직원들이 설립한 로이터(1851년, 영국), 볼프 (1849년, 독일)는 유럽 내에서 각자의 독점 보도 지역을 지정하는 카르텔을 형성했다.[3][4] 이들은 국제 뉴스의 경우 자원을 공유했는데, 예를 들어 아브라스는 프랑스 제국, 남아메리카, 발칸 반도를 담당하고 다른 국가 통신사와 뉴스를 공유했다.[5] 프랑스에서 아브라스와의 일반적인 계약은 지방 신문에 매일 1800줄의 전신 텍스트를 제공하고 연간 구독료는 1만 프랑이었다.[5]2. 2. 미국 통신사의 등장과 경쟁
20세기 초, 미국의 AP 통신은 유나이티드 프레스 협회(United Press Associations)(1907년 설립),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가 설립한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ternational News Service)(1909년 설립)의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의 거대한 국내 시장과 라디오의 성공에 힘입어, AP 통신을 포함한 미국의 주요 통신사들은 1927년 8월 26일 협정을 통해 유럽 통신사 중심의 "카르텔 통신사" 해체를 요구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국가 통신사를 설립하려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움직임과 맞물려 국제 뉴스 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3]2. 3.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변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을 얻은 식민지 국가들을 중심으로 국영 통신사 설립이 가속화되었다. 이들 국영 통신사는 대부분 국가에 의해 운영되었다.[3] 로이터는 협동조합 형태로 전환하여 재정적 안정을 확보하고, AP통신(Associated Press)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데 기여했다. 또한, 스페인의 EFE(에페) 국제화와 AFP 세계화에도 영향을 주었다.[3]3. 주요 통신사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통신사가 활동하며, 각 통신사는 국가, 지역, 전문 분야 등에서 특화된 역할을 수행한다. 통신사는 뉴스를 판매하는 기업이 될 수 있으며(예: PA 미디어, 톰슨 로이터, dpa, 유나이티드 프레스 인터내셔널), 다른 통신사들은 대형 미디어 기업들과 협력하여 뉴스를 중앙에서 생성하고, 주요 통신사들이 선택하여 재배포할 수 있는 지역 뉴스를 공유한다(예: AP 통신(AP), AFP 통신(AFP) 또는 인도 통신사 PTI).
정부가 통신사를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신화사(중국), 타스(러시아) 등 여러 국가들은 정부 지원을 받는 통신사를 운영하며 다른 통신사의 정보도 활용한다.[11]
상업적인 뉴스 와이어 서비스는 비즈니스 와이어, 글로브뉴스와이어, PR 뉴스와이어, PR 웹, 시즌과 같이 기업들에게 뉴스 배포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한다.
유네스코(UNESCO)는 1953년에 출판한 「News agencies: their structure and operation」에서 통신사를 국내 통신사, 국제 통신사, 전문 통신사로 분류하고 있다.[13]
3. 1. 국제 통신사
국제 통신사는 전 세계에 지사를 두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해 뉴스를 수집하고 배포한다. 대표적인 국제 통신사로는 AFP, AP, 로이터(Reuters), 타스, 신화통신 등이 있다.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아브라스(Havas)(현재 AFP)와 미국의 AP통신(Associated Press) 등 소수의 대형 통신사들이 등장했다.[3] 1851년 폴 율리우스 로이터가 영국에 로이터를, 1849년 베른하르트 볼프(Bernhard Wolff)가 독일에는 볼프를 설립했다.[3] 이들은 유럽 내에서 뉴스 보도 지역을 분할하는 카르텔을 형성하기도 했다.[4]
1850년대 전신의 발달은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에서 강력한 국가 통신사의 탄생을 이끌었다. 미국의 거대한 국내 시장과 라디오의 발달로 AP통신은 유나이티드 프레스 협회(United Press Associations),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ternational News Service) 등과 경쟁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이 국가 통신사를 설립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었다. 로이터(Reuters)는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여 재정적 안정을 찾았고, 스페인의 EFE(에페)와 AFP의 국제화에 기여했다.
1980년대까지 AFP, AP, UPI, 로이터(Reuters)의 4대 주요 통신사는 전 세계 신문에 게재된 외신의 90% 이상을 제공했다.[10]
3. 1. 1. [[AFP(Agence France-Presse)]] (프랑스)
아브라스(Havas)(현재 AFP)는 1835년 파리의 번역가이자 광고 대리인이었던 샤를 루이 아브라스(Charles-Louis Havas)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프랑스 뉴스를 외국 고객에게 제공했다.[6] 1840년대 아브라스는 점차 다른 프랑스 통신사들을 자신의 통신사에 통합했으며, AFP로 발전했다.[6]1980년대까지 AFP, AP, UPI, 로이터(Reuters)의 4대 주요 통신사는 전 세계 신문에 게재된 외신의 90% 이상을 제공했다.[10] 1960년대 이후 주요 통신사는 텔레비전과 잡지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이미지와 사진의 전문 제작을 제공했으며, 그 수요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9]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AFP가 국내 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9]
3. 1. 2. [[AP통신(Associated Press)]] (미국)
AP통신은 미국의 통신사이다. 1835년 샤를 루이 아브라스(Charles-Louis Havas)가 프랑스 뉴스를 외국에 알리기 위해 아브라스(Havas) 통신사를 설립했다. 1840년대 아브라스는 다른 프랑스 통신사들을 통합했고, 이 통신사가 AFP로 발전했다.[6]1850년대 전신의 발달은 미국에서 강력한 국가 통신사의 탄생을 이끌었다. ''인터 오션 퍼블리싱 대 에이피 통신(Inter Ocean Publishing v. Associated Press)'' 판결로 모든 신문이 AP통신에 가입할 수 있게 되면서 경쟁이 촉진되었다. 1907년 유나이티드 프레스 협회(United Press Associations), 1909년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가 설립한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ternational News Service)가 AP통신에 도전했다.
1980년대까지 AFP, AP, UPI, 로이터(Reuters) 4대 통신사가 전 세계 신문 외신의 90% 이상을 제공했다.[10]
3. 1. 3. [[로이터(Reuters)]] (영국)
폴 율리우스 로이터가 1851년 영국에서 설립한 통신사이다.[3] 1865년 로이터는 볼프와 함께 AFP)와 계약을 맺어 유럽 내 각 통신사의 독점 보도 지역을 지정하는 카르텔을 형성했다.[4]1차 세계 대전 후, 로이터는 전쟁 검열로 약화되었고, 이는 영연방의 신문 협동조합과 아시아의 국가 통신사의 창설을 촉진했는데, 이는 로이터의 강력한 지역 두 곳이었다.[10]
2차 세계 대전 후, 로이터는 협동조합이 되어 재정적 돌파구를 마련하고 미국 통신사의 수를 3개에서 1개로 줄이는 데 기여했으며, 스페인의 EFE(에페)의 국제화와 AFP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10]
1980년대까지 AFP, AP, UPI, 로이터의 4대 주요 통신사는 전 세계 신문에 게재된 외신의 90% 이상을 제공했다.[10]
3. 1. 4. [[타스(TASS)(Russian News Agency TASS)]] (러시아)
타스(TASS)는 러시아의 주요 통신사 중 하나이다. 정식 명칭은 Russian News Agency TASS|러시아 통신사 타스ru이다.
3. 1. 5. [[신화사(Xinhua News Agency)]] (중국)
신화통신(신화사, XINHUA)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영 통신사이다.
3. 2. 대한민국 통신사
대한민국에는 연합뉴스, 뉴시스 등 주요 통신사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외 뉴스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도하며, 한국의 관점을 반영하여 국제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연합뉴스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이며, 뉴시스는 한국인 커뮤니티를 위한 국제 뉴스 취재에 중점을 두고 있다.
3. 2. 1. [[연합뉴스(Yonhap)(Yonhap News Agency)]]
연합뉴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국내외 주요 언론에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노력을 지지하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1]3. 2. 2. [[뉴시스(NEWSIS)]]
Newsis영어는 대한민국의 뉴스 통신사 중 하나로, 국내 뉴스와 함께 한국인 커뮤니티를 위한 국제 뉴스 취재에 중점을 두고 있다.3. 3. 기타 국가 통신사
각 국가별 주요 통신사는 해당 국가의 관점을 반영하여 뉴스를 보도하며,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다음은 주요 국가의 통신사 목록이다.
4. 통신사의 역할과 기능
통신사는 뉴스를 수집, 가공, 배포하여 언론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1830년대 프랑스에는 여러 전문 통신사가 있었는데, 샤를 루이 아브라스(Charles-Louis Havas)가 설립한 아브라스 통신사는 프랑스 뉴스를 외국 고객에게 제공했다. 1840년대 아브라스는 점차 다른 프랑스 통신사들을 통합했고, 이 통신사는 AFP로 발전했다.[6]
1850년대 전신의 발달은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에서 강력한 국가 통신사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인터 오션 퍼블리싱 대 에이피 통신(Inter Ocean Publishing v. Associated Press)'' 판결을 통해 경쟁이 촉진되었다. 신문 증가로 AP통신은 1907년 유나이티드 프레스 협회(United Press Associations)와 1909년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설립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ternational News Service)의 도전을 받았다.
2차 세계 대전 후, 독립을 얻은 식민지의 국가 통신사들이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등 국가 통신사 설립 운동이 가속화되었다. 로이터는 협동조합이 되어 재정적 돌파구를 마련하고 미국 통신사의 수를 줄이는 데 기여했으며, 스페인 EFE(에페)의 국제화와 AFP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1924년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만리오 모르가니(Manlio Morgagni) 지휘 아래 스테파니 통신(Agenzia Stefani)을 두었고, 모르가니는 이탈리아 국내외에서 통신사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했다. 스테파니 통신은 1945년 해산되었고, 그 기술 구조와 조직은 ANSA로 이전되었다. 볼프 통신은 1934년 나치 정권에 의해 인수되었다.[7] 독일 독일 통신(German Press Agency)(dpa)은 1949년 8월 18일 고슬라르(Goslar)에서 협동조합으로 설립되었고, 1951년 유한회사(limited liability company)가 되었다. 초대 총편집장(editor-in-chief)은 프리츠 젠거(Fritz Sänger)였다.[8]
통신사는 뉴스를 판매하는 기업(PA 미디어, 톰슨 로이터, dpa, 유나이티드 프레스 인터내셔널 등)이 될 수 있다. 다른 통신사들은 대형 미디어 기업들과 협력하여 뉴스를 중앙에서 생성하고, 주요 통신사들이 선택하여 재배포할 수 있는 지역 뉴스를 공유한다(AP 통신(AP), AFP 통신(AFP), 인도 통신사 PTI 등).
정부가 통신사를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신화사), 러시아(타스) 등 여러 국가는 정부 지원을 받는 통신사를 운영하며 다른 통신사의 정보도 활용한다.[11]
상업적인 뉴스 와이어 서비스는 기업들에게 뉴스 배포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한다(비즈니스 와이어, 글로브뉴스와이어, PR 뉴스와이어, PR 웹, 시즌 등).
주요 통신사는 다른 뉴스 기관들이 거의 또는 전혀 수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하드 뉴스 기사와 특집 기사를 작성하여 판매한다. 이들은 와이어 서비스를 통해 이러한 기사를 대량으로 전자적으로 제공한다(원래는 전신을 사용했지만, 오늘날에는 인터넷을 자주 사용한다). 기업, 개인, 분석가 및 정보기관도 구독할 수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1953년 출판한 「News agencies: their structure and operation」에서 통신사를 국내 통신사(National News Agency), 국제 통신사(World News Agency), 전문 통신사로 분류하고 있다.[13]
외국 뉴스 등을 독자적으로 구입하거나 외국에 특파원을 파견하는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신문사를 지원하는 존재로 통신사가 탄생했고, 많은 언론 기관에 채택됨에 따라 보도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4. 1. 뉴스의 도매상
통신사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수집하여 언론사에 제공하는 "뉴스의 도매상" 역할을 한다.[10] 이들은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 다양한 언론사에 뉴스를 공급하여,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취재하기 어려운 지역의 소식을 전달한다.1830년대 프랑스에는 여러 전문 통신사가 있었는데, 그중 샤를 루이 아브라스(Charles-Louis Havas)가 설립한 아브라스 통신사는 프랑스 뉴스를 외국 고객에게 제공했다. 1840년대에 아브라스는 점차 다른 프랑스 통신사들을 통합했고, 이 통신사는 AFP로 발전했다.[6] 아브라스의 직원이었던 베른하르트 볼프(Bernhard Wolff)와 폴 율리우스 로이터는 각각 1849년 베를린에 볼프 통신(Wolffs Telegraphisches Bureau), 1851년 런던에 로이터를 설립하며 경쟁 통신사를 만들었다.[6]
1865년, 로이터와 볼프는 아브라스의 아들들과 계약을 맺어 유럽 내 각 통신사의 독점 보도 지역을 지정하는 카르텔을 형성했다.[4] 국제 뉴스의 경우, 각 통신사는 자원을 공유했는데, 예를 들어 아브라스는 프랑스 제국, 남아메리카, 발칸 반도를 담당하고 다른 국가 통신사와 뉴스를 공유했다.[5]
1960년대 이후 주요 통신사는 텔레비전과 잡지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이미지와 사진의 전문 제작을 제공하며 수요가 증가했다.[9] 1980년대까지 AFP, AP통신, UPI, 로이터의 4대 주요 통신사는 전 세계 신문에 게재된 외신의 90% 이상을 제공했다.[10]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신문 지면의 외신이 통신사의 배급 뉴스로 구성되는 것 등에서 "뉴스의 도매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4. 2. 국제 뉴스의 관문
1835년 파리의 번역가이자 광고 대리인이었던 샤를 루이 아브라스(Charles-Louis Havas)는 프랑스 뉴스를 외국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아브라스(Havas)(현재 AFP) 통신사를 설립했다.[6] 당시 소수의 대형 신문사만이 자국 도시 밖에 지국을 둘 여력이 있었고, 대부분의 신문사는 국제 뉴스를 아브라스와 같은 통신사에 의존했다.[3] 이후 아브라스의 직원이었던 베른하르트 볼프(Bernhard Wolff)와 폴 율리우스 로이터는 각각 1849년 독일 볼프 통신사,[3] 1851년 영국 로이터를 설립했다.[3]1865년 로이터와 볼프는 아브라스의 아들들과 계약을 맺어 유럽 내 각 통신사의 독점 보도 지역을 지정하는 카르텔을 형성했다.[4] 이들은 국제 뉴스를 보도할 때 자원을 공유했는데, 예를 들어 아브라스는 프랑스 제국, 남아메리카, 발칸 반도를 담당하고 다른 국가 통신사와 뉴스를 공유했다. 프랑스에서 아브라스와의 일반적인 계약은 지방 신문에 매일 1800줄의 텔레그래프 텍스트를 제공했으며, 연간 구독료는 1만 프랑이었다. 다른 통신사들은 구독자에게 특집 기사와 소설을 제공하기도 했다.[5]
1980년대까지 AFP, AP, UPI, 로이터 등 4대 주요 통신사는 전 세계 신문에 게재된 외신의 90% 이상을 제공했다.[10] 이들은 국제 뉴스를 수집하고 번역하여 국내 언론에 제공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했다.
4. 3. 오보 방지와 사실 확인
통신사는 뉴스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며, 오보를 방지하고 사실 확인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소수의 대형 신문사만이 자국 도시 밖에 지국을 둘 여력이 있었고, 대신 통신사에 의존했다. 국제 뉴스의 경우, 각 통신사는 자원을 공유했다.[5]5. 통신사의 특징
1830년대 프랑스에는 여러 전문 통신사가 있었다. 1835년 샤를 루이 아브라스(Charles-Louis Havas)가 설립한 아브라스 통신사는 프랑스 뉴스를 외국에 제공했다.[6] 1840년대에 아브라스는 다른 프랑스 통신사들을 통합하여 AFP로 발전했다.[6] 아브라스의 직원이었던 베른하르트 볼프(Bernhard Wolff)와 폴 율리우스 로이터는 각각 1849년 베를린에 볼프 통신(Wolffs Telegraphisches Bureau), 1851년 런던에 로이터를 설립하여 경쟁했다.[6]
1865년, 로이터와 볼프는 아브라스의 아들들과 계약하여 유럽 내 독점 보도 지역을 지정하는 카르텔을 형성했다.[4] 국제 뉴스는 각 통신사가 자원을 공유했는데, 예를 들어 아브라스는 프랑스 제국, 남아메리카, 발칸 반도를 담당하고 다른 국가 통신사와 뉴스를 공유했다.[5] 프랑스에서 아브라스와의 계약은 지방 신문에 매일 1800줄의 텔레그래프 텍스트를 제공하고 연간 구독료는 1만 프랑이었다.[5]
1850년대 전신의 발달로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에서 강력한 국가 통신사가 탄생했다.[7] 그러나 1869년 영국의 전신법(Telegraph Act)에서 영감을 받은 1878년 프랑스의 전신법과 같이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신 비용은 여전히 높았다.[7]
미국에서는 ''인터 오션 퍼블리싱 대 에이피 통신(Inter Ocean Publishing v. Associated Press)'' 판결로 경쟁이 촉진되었고, AP통신(Associated Press)은 1907년 유나이티드 프레스 협회(United Press Associations), 1909년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ternational News Service)의 도전을 받았다.[7]
1927년, 미국의 거대한 국내 시장과 라디오의 성공으로 3대 주요 통신사는 "카르텔 통신사"의 해체를 요구했다.[7] 제1차 세계 대전 후 국가 통신사를 설립하려는 다른 유럽 국가들은 미국 통신사의 성공을 우려했다.[7] 로이터는 전쟁 검열로 약화되었고, 이는 영연방과 아시아의 국가 통신사 창설을 촉진했다.[7]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독립한 식민지의 국가 통신사들이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등 국가 통신사 설립 운동이 가속화되었다.[7] 로이터는 협동조합이 되어 재정적 돌파구를 마련하고 미국 통신사의 수를 줄이는 데 기여했으며, 스페인의 EFE(에페)와 AFP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7]
1924년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만리오 모르가니(Manlio Morgagni)에게 스테파니 통신을 맡겼고, 모르가니는 이탈리아 국내외에서 통신사의 영향력을 확장했다.[7] 스테파니 통신은 1945년 해산되었고, 그 기술 구조와 조직은 새로운 ANSA로 이전되었다.[7] 볼프 통신은 1934년 나치 정권에 인수되었다.[7] 독일의 독일 통신(German Press Agency)(dpa)은 1949년 협동조합으로 설립되었고, 1951년 유한회사(limited liability company)가 되었다.[8] 프리츠 젠거(Fritz Sänger)가 초대 총편집장(editor-in-chief)을 맡았고, 최초 전송은 1949년 9월 1일 오전 6시에 이루어졌다.[8]
1960년대 이후 주요 통신사는 텔레비전과 잡지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이미지와 사진의 전문 제작을 제공하며 수요가 증가했다.[9] 1980년대까지 AFP, AP, UPI, 로이터의 4대 주요 통신사는 전 세계 신문에 게재된 외신의 90% 이상을 제공했다.[10]
5. 1. 일본 통신사
1940년대 일본의 국책 통신사였던 연합통신사(同盟通信社)는 아시아를 거의 장악하고, 만주국 통신사(満州国通信社), 몽강 통신사(蒙疆通信社)를 설립하여 중국과 유럽에도 정보망을 형성했다. 연합통신사(同盟通信社)는 7대 통신사 중 하나였으며, 로이터, AP통신과 경쟁할 정도의 대형 통신사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후 후노 이노스케(古野伊之助)에 의해 분할되었다.[1] 이 과정에서 정치, 사회, 국제 뉴스를 다루는 사단법인 교도통신(共同通信社)과 경제 뉴스와 출판을 담당하는 주식회사 지지통신(時事通信社)이 탄생했다.[2]초기에는 양사가 업무를 분담했지만, 곧 서로의 분야에 진출하여 현재는 경쟁 관계에 있다.[3] 교도통신(共同通信社)은 지방 신문 등 가맹사로부터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 반면, 지지통신(時事通信社)은 QUICK(퀵)을 통해 금융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본경제신문(日本経済新聞)과 로이터, 블룸버그 등 외국계 통신사와의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4] 효고현 남부 지진(兵庫県南部地震)(한신·아와지 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 당시 양사는 협력하여 취재하기도 했다.[5]
일본의 통신사는 특히 지방 신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국내외 뉴스를 지방 신문사와 방송국(가맹사)에 배포한다.[6] 가맹사가 취재한 뉴스를 다른 가맹사에 배포하거나, 선박(船舶) 등에 뉴스를 배포하기도 한다.[7]
1988년(1988年)에는 광섬유(光ファイバー) 사진 전송 시스템을 완성하여, 지방 신문에서도 서울올림픽(ソウルオリンピック)이나 미국 제트추진연구소(미국 항공우주국 제트추진연구소)의 사진을 신속하게 게재할 수 있게 되었다.[8] NTT의 광섬유(光ファイバー)가 각 도도부현에 조기에 도달했을 때 최초 사용자이기도 했다.[9]
현재 일본에서 사실상 국영 통신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외무성 외곽 단체 출신으로 일반재단법인 형태를 취하는 라디오프레스(ラヂオプレス)이다.[10]
5. 2. 미국 통신사
미국에서는 속보와 같은 긴급 뉴스는 가능한 한 통신사(와이어 서비스라고도 함)에 의존하며, 신문사는 분석이나 비평 기사와 같은 저널리즘에 특화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통신 기자와 신문 기자는 사진 기자와 기자 정도로 전혀 다른 직업으로 여겨진다.[14]사건·사고 취재는 통신사의 역할이기 때문에, 911 테러와 같이 전례 없는 사건·사고가 아닌 이상 일본처럼 수십 명의 신문사 기자가 동원되는 일은 드물다. ফলে 많은 수의 언론 관계자가 취재 대상자나 대상 지역에 몰려들어 피해를 주는 미디어 스크럼은 일어나기 어렵다.[14]
이 때문에 미국의 신문사는 일본보다 적은 기자로 매일 평일판 약 100페이지, 일요판 300페이지가 넘는 신문을 제작할 수 있다(『뉴욕 타임스』의 경우).[14]
5. 3. 기타 아시아 국가 통신사
싱가포르에서는 영자신문 스트레이츠 타임즈(The Straits Times) 등을 발행하는 최대 신문사인 싱가포르프레스홀딩스(SPH)가 통신사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태국의 경우, 국영 통신사인 TNA(Thai News Agency)는 반관반민 방송 대기업인 MCOT의 사업으로서 해외 배포에 특화되어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신문사는 기본적으로 TNA의 기사를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취재 활동을 한다.
중국과 북한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매체 통제 원칙에 따라, 중앙 정부의 중요 발표를 다루는 것은 통신사, 지배 정당의 발표를 알리는 것은 당의 중앙 기관지인 신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6. 논란과 과제
통신사는 언론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배포 기사의 출처 표기 문제 등 몇 가지 논란과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오보 발생 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6. 1. 배포 기사 출처 표기 문제
일부 국가에서는 통신사가 제공한 기사의 출처를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지방 신문들이 통신사 기사를 자사 기사처럼 보도하는 관행이 있어, 오보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서구 주요 신문의 경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배포 기사에는 배포한 통신사의 이름(크레딧)이 표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오키나와현을 제외하고, 배포 기사임을 나타내는 크레딧을 표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 이유는 지방 신문의 경우 크레딧 유무에 따라 판매 부수의 증감이 현저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15]
교도통신사 정관 시행 세칙 제10조에는 교도통신사가 배포한 기사를 직원(교도통신사는 사단법인이므로, 직원은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의 가맹사를 가리킨다)이 신문, 유선·무선을 통해 공급하는 경우, ‘교도통신’ 크레딧을 붙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배포 기사를 제공받는 지방 신문에서는 이 규정이 준수되지 않고 있다. 배포원의 크레딧 표기가 없기 때문에, 일반 독자에게는 마치 배포처가 독자적으로 취재·제작한 기사로 보인다.
이는 일본 고유의 관행이며, 통신사 측도 묵인하고 있는 일이지만, 크레딧이 본래 져야 할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를 들어 통신사가 오보를 배포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2001년에 발생한 도쿄여자의과대학 사건에서 기소되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의사가 당시 사건을 보도한 교도통신사와 그 기사를 배포받은 지방 3개 신문(아키타게이신포, 조모신문, 시즈오카신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 책임 소재 문제는 일약 주목을 받게 되었다.[16] 특히 도쿄지방법원의 1심 판결에서는, 배포받은 지방 3개 신문이 크레딧을 붙이지 않고 자사 기사의 형태를 취했던 점을 들어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17]
7. 협회
EANA는 유럽 뉴스 통신사 연맹이고, OANA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뉴스 통신사들의 협회이다. MINDS는 새로운 미디어 사업에 협력하는 주요 뉴스 통신사들의 글로벌 네트워크이다.
참조
[1]
논문
From the Big Three to elite news sources: a shift in international news flow in three online newspapers TheNational.ae, Nst.com.my, and Nzherald.co.nz
https://www.tandfonl[...]
2022-04-26
[2]
서적
The International News Services
[3]
서적
The International News Services
[4]
웹사이트
Ch 7 Telegraph
http://www.environme[...]
2013-02-12
[5]
서적
France: 1848–1945
[6]
서적
Consider the source: A Critical Guide to 100 Prominent News and Information Sites on the Web
https://archive.org/[...]
Information Today, Inc.
[7]
뉴스
Baroness Reuter, last link to news dynasty, dies
https://www.reuters.[...]
Reuters
2013-02-12
[8]
웹사이트
Facts and figures
https://www.dpa.com/[...]
2020-12-18
[9]
웹사이트
« Statistiques d’entreprises des industries culturelles », par Valérie Deroin, Secrétariat général Délégation au développement et aux affaires internationales au sein du Département des études, de la prospective et des statistiques
https://www.culture.[...]
2022-04-27
[10]
웹사이트
The Big Four
https://newint.org/f[...]
1981-06-01
[11]
서적
News Agencies in the Turbulent Era of the Internet
Generalitat de Catalunya
[12]
백과사전
News agency
https://www.britanni[...]
2002-08-23
[13]
서적
ニュース・エージェンシー : 同盟通信社の興亡
中央公論新社
[14]
서적
ジャーナリズム崩壊
幻冬舎
2008-07-30
[15]
웹사이트
平成21(受)2057 損害賠償請求事件 判決文
https://web.archive.[...]
最高裁判所
2011-04-28
[16]
웹사이트
共同通信と3紙提訴 女子医大事件無罪の医師
https://web.archive.[...]
2006-04-06
[17]
웹사이트
判例検索システム>検索結果詳細画面
https://www.courts.g[...]
最高裁判所
2011-07-27
[18]
뉴스
연합뉴스 지원금 폐지 논란…“스스로 자초”
https://news.naver.c[...]
KBS
2019-04-2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