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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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람은 후한 말 원소를 섬겼던 인물이다. 200년 관도 전투에서 조조의 본진을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이후 조조 휘하에서 장합과 함께 원소군을 공격하여 공을 세웠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원소군의 용장으로 묘사되며, 조조에게 항복한 후 유비 토벌에 참여했으나 조운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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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고람은 원소를 섬겼다.

200년 원소의 참모 허유가 원소를 배반하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허유는 군량이 부족하던 조조에게 순우경이 지키는 오소(烏巢)를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조조는 조홍과 순유에게 본진을 지키게 하고 직접 오소를 치러 갔다. 이를 안 원소가 장합과 고람에게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게 하려 하자, 장합은 오소를 돕자고 했으나, 곽도와 총대장 원소는 본진 공격을 주장했으므로 본진을 치러 갔다. 그러나 본진 공략에 실패하자 후환을 두려워한 곽도는 장합을 모함했고, 고람은 장합과 함께 조조에게 항복했다. 그 이후의 일은 전하지 않는다.

《삼국지연의》에서 고람은 원소군의 용장으로 묘사되었다. 공융은 고람을 장합, 순우경과 더불어 뛰어난 장수라고 평했다. 안량문추가 죽은 후 원소군에서 고람은 장합과 함께 맹활약하였으며, 관도 전투에서는 허저와 호각으로 일기토를 벌이기도 했다. 조조군 본진 공격에 실패한 후 곽도의 모함을 받자, 고람은 사자를 죽이고 장합과 함께 조조에게 항복하여 편장군(偏將軍)으로 임명되고 동래후(東萊侯)에 봉해졌으며, 장합과 함께 원소군을 공격하여 패배시켰다.

여남(汝南)에서 세력을 키우던 유비가 허창으로 진군해 오자 조조는 이를 요격했고, 고람은 유비를 쫓으며 유벽을 쓰러뜨렸으나, 조운과의 일기토에서 단 1합만에 죽임을 당했다.

2.1. 원소 휘하 시절

고람은 원소를 섬겼다.

200년 원소의 참모 허유가 원소를 배반하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허유는 군량이 부족하던 조조에게 순우경이 지키는 오소(烏巢)를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조조는 조홍과 순유에게 본진을 지키게 하고 직접 오소를 치러 갔다. 이를 안 원소가 장합과 고람에게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게 하려 하자, 장합은 오소를 돕자고 했으나, 곽도와 총대장 원소는 본진 공격을 주장했으므로 본진을 치러 갔다. 그러나 본진 공략에 실패하자 후환을 두려워한 곽도는 장합을 모함했고, 고람은 장합과 함께 조조에게 항복했다. 그 이후의 일은 전하지 않는다.

2.2. 조조 투항

원소를 섬겼다.

200년 원소의 참모 허유가 원소를 배반하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허유는 군량이 부족하던 조조에게 순우경이 지키는 오소(烏巢)를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조조는 조홍과 순유에게 본진을 지키게 하고 직접 오소를 치러 갔다. 이를 안 원소가 장합과 고람에게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게 하려 하자, 장합은 오소를 돕자고 했으나, 곽도와 총대장 원소는 본진 공격을 주장했으므로 본진을 치러 갔다. 그러나 본진 공략에 실패하자 후환을 두려워한 곽도는 장합을 모함했고, 고람은 장합과 함께 조조에게 항복했다.

2.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삼국지연의》에서 고람은 원소군의 용장으로 묘사되었다. 공융은 고람을 장합, 순우경과 더불어 뛰어난 장수라고 평했다. 안량문추가 죽은 후 원소군에서 고람은 장합과 함께 맹활약하였으며, 관도 전투에서는 허저와 호각으로 일기토를 벌이기도 했다.

2.3.1. 주요 전투 활약

200년 허유가 원소를 배반하고 조조에게 항복하면서 순우경이 지키는 오소(烏巢)를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원소는 장합과 고람에게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게 했으나 실패했고, 곽도의 모함으로 고람은 장합과 함께 조조에게 항복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원소군의 용장으로 묘사되었다. 공융은 고람을 장합, 순우경과 함께 뛰어난 장수라고 평했다. 조조군 본진 공격에 실패한 후 곽도의 모함을 받자, 고람은 사자를 죽이고 장합과 함께 조조에게 항복하여 편장군(偏將軍)으로 임명되고 동래후(東萊侯)에 봉해졌으며, 장합과 함께 원소군을 공격하여 패배시켰다.

여남(汝南)에서 세력을 키우던 유비가 허창으로 진군해 오자 조조는 이를 요격했고, 고람은 유비를 쫓으며 유벽을 쓰러뜨렸으나, 조운과의 일기토에서 단 1합만에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