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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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벽은 후한 말 황건적 잔당으로, 하의, 황소 등과 함께 여남군과 영천군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조조에게 투항했다가 관도 대전에서 원소에 호응하여 허도를 위협했으나 조인에게 격파되었다. 유벽의 생사는 불분명하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와 관련된 인물로 등장하여 조조군과 싸우다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의, 황소, 하만 등과 함께 황건 잔당 수만 명을 거느리고 여남군, 영천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원술에 협력하여 손견과도 일하였다.[3] 196년(건안 원년) 조조에게 토벌당해 황소는 전사하고 유벽과 하의는 투항하였다.[3] 200년 관도 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반기를 들어 원소에 호응하고 수도인 허도 근방을 위협하였다. 원소는 유비를 여남으로 보내 지원했지만 조인에게 정벌당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벽은 황건적 잔당으로 여남에서 공도와 함께 활동하며, 조홍의 군세를 괴롭힌다.
2. 생애
『삼국지』「위서」 무제기에 이름이 있다. 황건적의 난 당시의 동정은 전해지지 않지만, 난의 종결 후에도 여남군·영천군에서 하의, 황소, 하만 등과 함께 게릴라적인 반란 활동을 지속하며 토벌군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건안 원년(196년) 2월, 조조의 추격을 받아 황소와 함께 참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1] 이후에도 유벽의 이름이 나타나므로 오기일 가능성이 높다. 유벽의 생사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2. 1. 황건적 활동
황건적의 난 이후 하의, 황소, 하만 등과 각각 수만 명의 황건 잔당을 거느리고 여남군, 영천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원술에 협력하여 손견과도 일했다.[3] 황건적의 난 종결 후에도 이들은 토벌군에 맞서 게릴라식 저항을 계속했다. 유벽은 황건을 지지하는 민병과 황건 잔당군을 이끌고 반란을 지휘했으며, 원소나 손견과는 적대 관계에 있었다.
2. 2. 원술, 손견과의 관계
하의, 황소, 하만 등과 각각 황건 잔당 수만 명을 거느리고 여남군, 영천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원술에 협력하여 손견과도 일하였다.[3]
2. 3. 관도 대전 시기
196년(건안 원년), 조조에게 토벌당해 황소는 전사하고 유벽과 하의는 투항하였다.[3] 200년 관도 대전이 발발하자 유벽은 다시 반기를 들어 원소에 호응하고 수도인 허도 근방을 위협하였다. 원소는 유비를 여남으로 보내 유벽을 지원하게 했지만, 조인에게 정벌당했다.
황건적의 난 종결 후에도 유벽은 여남군, 영천군에서 하의, 황소, 하만 등과 함께 게릴라식 반란 활동을 지속하며 토벌군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원소나 손견과 적대하며, 황건을 지지하는 민병과 황건 잔당군을 이끌고 반란을 지휘했다.
건안 원년(196년) 2월, 조조의 추격을 받아 황소와 함께 참수되었다고 무제기에 기록되어 있지만,[1] 이후에도 유벽의 이름이 나타나므로 오기일 가능성이 높다. 조조와 원소가 대립하여 관도 전투가 일어났을 무렵, 유벽은 여남에서 반란을 일으켜 허를 휩쓸었다. மேலும் 허 주변의 여러 성을 함락시키고, 원소와의 결전을 앞두고 있던 조조의 배후를 위협했다.
이후 유벽은 원소에게 귀순을 표명하고 원소 측에 합류했다. 원소는 이를 받아들여 유비에게 유벽을 지원하도록 명하고, 물자를 주어 유벽에게 보냈다(「촉서」 선주전).
조조는 유벽 등 여남 황건군에 대해 조인을 총대장으로 하는 정예군을 급파했다. 그 후 조조가 보낸 조인 등의 군세에 유벽군은 격파되었다. 유벽군에 참여했던 유비는 패전 속에서 간신히 원소에게 도망쳐 돌아갔다.[2]
무제기·우금전 등 기록에 따라 유벽에 대한 내용이 크게 다르다. 동시대에 유벽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여러 명 있었는지, 또는 오기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며, 유벽의 생사에 대한 진실은 알 수 없다.
2. 4. 최후
196년(건안 원년) 조조에게 토벌당해 황소는 전사하고 유벽과 하의는 투항하였다.[3] 200년 관도 대전이 발발하자 유벽은 다시 반기를 들어 원소에 호응하고 수도인 허도 근방을 위협하였다. 원소는 유비를 여남으로 보내 유벽을 지원했지만 조인에게 정벌당했다. 유벽의 생사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조조와 원소가 대립하여 관도 전투가 일어났을 무렵, 유벽은 여남에서 반란을 일으켜 허를 휩쓸었다. 허 주변의 여러 성을 함락시키고, 원소와의 결전을 앞두고 있던 조조의 배후를 위협했다.
이후 유벽은 원소에게 귀순을 표명하고 원소 측에 가담했다. 원소는 이를 받아들여 유비에게 유벽을 지원하도록 명하고, 물자를 보냈다(「촉서」 선주전).
조조는 유벽 등 여남 황건군을 정벌하기 위해 조인을 총대장으로 하는 정예군을 급파했다. 조조가 보낸 조인 등의 군세에 유벽군은 격파되었다. 유벽군에 참여했던 유비는 패전 속에서 간신히 원소에게 도망쳐 돌아갔다.[2]
이처럼 무제기·우금전 등 기록에 따라 유벽에 대한 내용이 크게 다르다. 동시대에 유벽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여러 명 있었는지, 또는 오기인지에 대해서는 수수께끼가 많아, 유벽의 생사에 대한 진실은 불분명하다.
3. 삼국지연의
3. 1. 유비와의 만남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벽은 여남의 황건적으로 등장하며 공도와 함께 활동한다. 서주에서 조조에게 패하고 흩어진 유비 일행 중 여남으로 온 손건을 받아준다. 관도 대전 시기 유벽과 공도는 여남에서 조조의 후방을 교란한다. 관우가 토벌하러 오자 손건을 통해 유비의 소재를 알리고 일부러 물러난다.[1] 이후 다시 모인 유비 일행을 여남으로 맞아들인다.[1]
3. 2. 유비 지원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벽은 여남의 황건적으로 공도와 함께 등장한다. 서주에서 조조에게 패하고 흩어진 유비 일행 중 여남으로 온 손건을 받아준다. 관도 대전이 발발하자 유벽과 공도는 여남에서 조조의 후방을 교란한다. 관우가 토벌하러 오자 손건을 통해 유비의 소재를 알리고 일부러 물러난다. 이후 다시 모인 유비 일행을 여남으로 맞아들인다.
조조가 창정에서 원소와 격돌하는 사이 유비가 허도를 습격한다. 조조가 급히 내려와 양산(穰山)에서 맞붙는다. 유벽은 여남을 수비하는데 하후돈에게 성을 빼앗기고 유비 역시 조조 본대에 패퇴한다. 유벽은 패잔병으로 유비의 부인들을 호위하다가 홀로 떨어진 유비를 만난다. 장합과 고람에게 포위당해서 자결하려는 유비를 만류하고 고람에게 달려들지만 3합이 안 되어 전사한다.
장각 사후 황건적이 쇠퇴한 후에는 잔당이 되어 여남에서 공도와 함께 활동하며, 토벌하러 온 조홍의 군세를 괴롭힌다. 그 후, 원소에게 귀순했다가 관도 전투에서 조조의 배후를 공격하려 하지만, 관우가 나타난다. 유비는 원소의 밑에 있었기 때문에, 유비에게 돌아갈 관우에게 일부러 져서 여남을 빼앗기게 한 다음 곧 다시 되찾는다.
이후 유비를 군세로 맞이하고, 조조에게서 이반한 관우, 고성에서 산적을 하던 장비 등 유비에게 협력하는 여러 장수들을 받아들인다. 조조와 원소가 싸우는 틈을 타 허도를 치려고 했지만, 하후돈에게 공격받아 성을 포기하고 도망친다. 그 후, 패잔병 천여 기를 모아 유비에게 달려간다. 앞뒤가 막혀 자결하려는 유비를 붙잡고, 혈로를 열려고 고람에게 일기토를 걸지만, 3합도 겨루지 못하고 토벌당한다.
3. 3. 죽음
삼국지연의에서 유벽은 패잔병을 이끌고 유비의 부인들을 호위하다가 홀로 떨어진 유비를 만난다. 장합과 고람에게 포위되어 자결하려는 유비를 만류하고 고람에게 달려들지만, 3합도 겨루지 못하고 전사한다.[1]
참조
[1]
문서
于禁伝にも同様に近い内容がある。
[2]
문서
劉辟もそれに同行した可能性はあるが、詳細は不明。
[3]
서적
무제기 원문은 유벽을 참했다고 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오기로 본다.
노필 편, 《삼국지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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