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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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추는 후한 말 원소 휘하의 장수로, 안량과 함께 맹장으로 칭송받았다. 관도 대전을 앞두고 공융은 안량과 함께 원소의 맹장이라고 평가했으며, 순욱은 필부의 용맹이라고 평했다. 200년, 안량이 백마 전투에서 전사하자 유비와 함께 조조의 군대를 공격했으나, 순유의 계략에 빠져 조조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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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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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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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문추 |
로마자 표기 | Wen Ch'ou |
출생 정보 | 알 수 없음 |
사망일 | 200년 |
사망 장소 | 연진 (현재의 허난성옌진 현 북쪽) |
직업 | 군사 장군 |
소속 | 원소 군 |
2. 생애
文醜|문추중국어는 후한 말 원소를 섬긴 장수이다. 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관도 대전에서 안량과 함께 원소군의 맹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200년 연진 전투에서 전사했다.
2. 1. 원소군의 맹장
원소를 섬겼다. 관도 대전을 앞두고 반전파인 공융이 안량과 함께 원소의 맹장이라고 했으며, 주전파인 순욱은 필부의 용맹일 뿐이라고 했다.[5]건안 5년(200년) 2월, 안량이 백마에서 전사하자 원소는 기병대장으로서 문추를 유비와 함께 연진으로 보내 조조의 진영을 공격하게 하였다. 이에 조조는 순유의 진언에 따라 수송대를 미끼로 사용해 문추 군을 유인했고, 과연 문추 군은 치중을 쫓아 흩어져 진이 어지러워졌다. 이때 조조가 6백 기를 거느리고 공격하자 문추 군은 격파당했으며 문추도 패사했다.[5][6][7]
문추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드물다. 그는 삼국지의 원소, 조조, 순욱, 순유의 전기에 언급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문추는 그의 상대인 안량에 버금가는 맹장으로 묘사된다.
백마 전투에서 안량이 사망한 후, 원소는 주력 부대를 황하 남쪽으로 이동시켜 조조에게 전면적인 공격을 가했다. 문추와 유비는 5,000명 이상의 기병으로 이루어진 선봉 부대를 이끌고 퇴각하는 조조군을 추격했다. 조조는 언덕 위에 진을 치고 600명 미만의 기병만을 거느린 채 남은 말들을 풀어놓았다.
문추의 군대가 도착하자 많은 병사들이 대열을 이탈하여 말과 물자를 약탈했다. 조조는 즉시 반격을 명령했다. 소수의 정예 기병대는 혼란에 빠진 적을 상대로 훌륭한 승리를 거두었고, 전투에서 문추를 죽였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문추는 전투에서 정체불명의 적에게 사망했지만, 후대의 2차 자료에서는 관우가 문추를 죽였다고 언급하고 있다.[1][2][3]
관도 전투에서 원소군은 백마 전투에서 안량을 잃었으나, 조조군이 백마에서 물러나 황하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원소는 이를 쫓아 황하를 건너 남안의 연진에 도착했다. 원소는 문추에게 당시 객장이었던 유비와 함께 조조를 추격하게 했다.
이에 대해 조조는 순유의 계략을 채택하여 군수 물자를 미끼로 문추를 유인했다. 문추는 이에 걸려 군수 물자를 습격했기 때문에, 이 일로 인해 진형이 흩어졌다. 조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허술해진 문추의 부대에 공격을 가해, 문추를 혼란 속에서 전사시켰다. 안량, 문추와 같은 명장 2명을 연달아 잃은 것으로 인해, 원소군은 크게 동요했다고 한다.
조조군의 순욱은 공융에게 "아무리 무용이 뛰어나더라도, 안량과 문추는 결국 필부의 용기에 불과합니다. 한 번의 전투로 생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2. 2. 연진 전투와 최후
건안 5년, 안량이 백마 전투에서 전사하자 원소는 유비와 함께 문추를 연진으로 보내 조조의 진영을 공격하게 하였다. 순유의 계책에 따라 조조는 수송대를 미끼로 문추 군을 유인했고, 문추 군은 군수물자를 쫓아 흩어져 진이 어지러워졌다. 이때 조조가 6백 기를 거느리고 공격하여 문추 군을 격파하고 문추를 죽였다.[5][6][7]문추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다. 삼국지의 원소, 조조, 순욱, 순유의 전기에 언급된 내용을 통해, 문추는 안량에 버금가는 맹장으로 묘사된다.
200년, 안량이 백마 전투에서 사망한 후, 원소는 주력 부대를 황하 남쪽으로 이동시켜 조조에게 전면 공격을 가했다. 문추와 유비는 5,000명 이상의 기병으로 이루어진 선봉 부대를 이끌고 퇴각하는 조조군을 추격했다. 조조는 언덕 위에 진을 치고 600명 미만의 기병만을 거느린 채 남은 말들을 풀어놓았다.
문추의 군대가 도착하자 많은 병사들이 대열을 이탈하여 말과 물자를 약탈했다. 조조는 즉시 반격을 명령했고, 소수의 정예 기병대는 혼란에 빠진 적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고, 이 전투에서 문추가 죽었다. 공식 기록에는 문추가 전투에서 정체불명의 적에게 사망했다고 기록되었지만, 후대의 2차 자료에서는 관우가 문추를 죽였다고 언급하고 있다.[1][2][3]
원소군에서는 안량과 함께 용장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공융이 조조에게 출병을 건의했을 때 장수의 대표로서 이름이 언급되었다. 건안 5년(200년), 관도 전투에서 원소군은 백마 전투에서 안량을 잃었다. 조조군이 백마에서 물러나 황하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원소는 이를 쫓아 황하를 건너 남안의 연진에 도착했다. 원소는 문추에게 당시 객장이었던 유비와 함께 조조를 추격하게 했다.
조조는 순유의 계략을 채택하여 군수 물자를 미끼로 문추를 유인했다. 문추는 이에 걸려 군수 물자를 습격하여 진형이 흩어졌다. 조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허술해진 문추의 부대에 공격을 가해 문추를 혼란 속에서 전사시켰다. 안량, 문추와 같은 명장 2명을 연달아 잃은 원소군은 크게 동요했다고 한다.
조조군의 순욱은 공융에게 "아무리 무용이 뛰어나더라도, 안량과 문추는 결국 필부의 용기에 불과합니다. 한 번의 전투로 생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3. 《삼국지연의》 속 문추
삼국지연의에서 문추는 해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묘사된다.獬豸|해치중국어는 흉측한 모습이라고 여겨지는 전설적인 짐승이다. 원소는 화웅에게 공격을 받으며 "만약 안량이나 문추가 여기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한탄하며 문추의 전투 능력을 칭찬한다.
문추는 관우에게 백마 전투에서 죽임을 당한 자신의 절친한 친구 안량을 위해 복수하겠다고 자원한다. 7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 조조의 진영으로 향한다. 조조는 자신의 군대를 완전히 돌려 보급품을 앞에 배치했고, 문추의 병사들이 보급품을 약탈하는 동안 병사들을 남쪽 언덕으로 이끌어 말에게 풀을 뜯게 했다. 문추의 병사들은 언덕에 접근하자 말들에게 달려들어 혼란스러워졌고, 조조는 반격을 명령해 적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조조의 장수 장료와 서황이 추격했다. 문추는 말 위에서 두 발의 화살을 쏘았는데, 하나는 장료의 투구 깃털을 베었고 다른 하나는 그의 말의 얼굴을 맞혔다. 서황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문추에게 돌진했지만, 적 병사들이 사령관을 구하기 위해 오자 후퇴해야 했다.
관우는 10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문추의 도주로를 막아 일대일 대결을 벌였다. 세 번의 공방 끝에 문추는 물러나 도주하려 했지만, 관우의 말 적토마는 뛰어난 품종이었고 곧 그를 따라잡았다. 관우는 뒤에서 문추를 죽였다.[1]
3. 1. 반동탁 연합군
반동탁연합군에 원소가 참전했을 때, 안량과 문추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화웅을 당해낼 자가 없다고 탄식하는 장면에서 처음 언급된다. 제6회에서는 문추와 함께 원소를 호위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본격적으로 활약하는 것은 제7회로, 원소가 한복에게서 기주를 빼앗고 공손찬과 다투는 장면이다. 문추는 공손찬을 거의 죽일 뻔했으나 조자룡에게 저지당하고 50여 합을 겨루다가 공손찬의 원군이 도착하여 놓치게 된다.
이후 연진 전투에서 의형제 안량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유비를 부장으로 삼아 출전, 서황과 장료를 패주시킨다. 그러나 조조에게 의탁하고 있던 관우에게 죽임을 당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키가 8척(8척), 얼굴은 해치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며, 안량과는 형제나 다름없는 친한 친구로 설정되어 있다.
계교 전투 전후에도 등장한다. 계교 전투에서 공손찬을 거의 사로잡을 뻔했지만, 원소에게서 도망친 조운에게 가로막혀 놓친다.
백마 전투에서 안량이 죽자, 원수를 갚기 위해 유비와 함께 출진한다. 군수 물자 함정에 빠져 패주하지만, 추격해 온 장료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서황마저 물리친다. 하지만 관우에게 패배하고, 도망가던 중 추격을 받아 뒤에서 참수당한다.[1]
3. 2. 계교 전투
계교 전투에서 공손찬을 향해 돌진하여 거의 생포할 뻔하지만, 원소 밑에서 도망친 조운에게 가로막혀 놓친다. 공손찬을 몰아붙여 거의 죽일 뻔했으나 조자룡에게 저지당해 50여 합을 겨루다 공손찬의 원군이 와 공손찬을 놓쳤다.[1]
3. 3. 안량의 복수와 죽음
안량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유비(劉備)를 부장으로 삼아 출전해 서황과 장료를 패주시켰으나, 조조에게 의탁하고 있던 관우(關羽)에게 살해당한다.[1]
14세기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문추는 해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묘사된다. 獬豸|해치중국어는 흉측한 모습이라고 여겨지는 전설적인 짐승이다. 백마 전투에서 안량이 죽자, 원수를 갚기 위해 유비와 함께 출진하여 군수 물자의 함정에 빠져 패주한다. 그러나 추격해 온 장료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서황마저 물리친다. 하지만 관우에게 패하여 도망가는 도중에 추격을 받아 뒤에서 참수당한다.[1]
참조
[1]
서적
二王尺牍集
[2]
서적
容斋随笔
[3]
서적
山西通志
[4]
문서
[5]
논문
삼국지 권10 순욱순유가후전
[6]
논문
삼국지 권1 무제기
[7]
논문
삼국지 권6 동이원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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