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틀리프 시크
1. 개요
고틀리프 시크는 낭만주의적 경향을 띤 역사화, 인물화, 풍경화를 주로 그린 독일의 화가로, 특히 인물화로 유명하다. 1787년부터 미술 교육을 받았으며, 자크 루이 다비드의 영향을 받았다. 1802년부터 1811년까지 로마에서 활동하며 낭만주의적 화풍을 발전시켰고, 빌헬름 폰 훔볼트와 그의 가족과 친분을 맺었다. 1811년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왔으나 몇 달 후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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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고틀리프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시크 |
|---|---|
| 출생 | 1776년 8월 15일 |
| 출생지 | 슈투트가르트 |
| 사망 | 1812년 5월 7일(35세) |
| 사망지 | 슈투트가르트 |
| 국적 | 독일 |
| 직업 | 화가 |
| 학력 | 슈투트가르트 예술 아카데미 |
| 사조 | 고전주의 |
| 스승 | 요한 하인리히 폰 단네커 |
| 대표작 | "다윗이 사울에게 하프를 연주하다"(1800) "아론이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지다"(1806-1808) "요한 하인리히 단네커의 초상"(1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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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향받음 | 니콜라우스 프리드리히 폰 튀빙겐 자크루이 다비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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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출생 -
김건순
김건순은 조선 후기 노론 명문가 출신으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유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순교자이며 정약종과 함께 《성교전서》를 저술하던 중 황사영에 의해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
1776년 출생 -
소피 제르맹
소피 제르맹은 13세에 수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독학하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기여했으며 소피 제르맹 소수와 소피 제르맹 정리를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다. -
슈투트가르트 출신 -
요하네스 케플러
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발견하여 근대 천문학과 과학 발전에 혁명적인 기여를 한 독일의 천문학자, 수학자, 점성술사이다. -
슈투트가르트 출신 -
게르하르트 에르틀
게르하르트 에르틀은 고체 표면에서의 화학 반응 연구에 기여한 독일의 물리화학자로, 200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고, 하버-보슈 공정 등 분자 메커니즘 규명과 표면화학 연구 방법론 정립에 기여했으며, 자서전을 출판하기도 했다. -
독일의 화가 -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의 대표 화가로, 자연에 대한 깊은 관조와 상징적 표현을 통해 숭고미를 추구하며 종교적, 정신적 의미를 풍경화로 전달하고자 했다. -
독일의 화가 -
마르코 주르제비치
마르코 주르제비치는 독일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TRPG 회사에서 흑백 그림을 제작하고 Massive Black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으며, 데제네시스 외형 디자인과 마블 코믹스 삽화 작업을 진행했다.
2. 생애와 작품 활동
고틀리프 시크는 낭만주의적 경향을 띄는 역사화, 인물화, 풍경화 등을 그렸으며, 그 중 인물화로 가장 유명하다. 1798년부터 1802년까지 자크루이 다비드의 스튜디오에서 공부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고틀리프 시크는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1787년부터 호에 카를스슐레 군사학교에서 필립 프리드리히 폰 헷취에게서 공부했고, 1795년부터 1797년까지 카를슐레 슈투트가르트에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추종자였던 필리프 프리드리히 폰 헤취에게서 배웠다. 1797년부터 1798년까지는 요한 하인리히 폰 단네커에게서 공부했고, 이후 파리로 이주하여 1799년부터 1802년까지 자크루이 다비드의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냈다. 1802년부터 1811년까지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에서 머물면서 그의 작품이 낭만주의적 성격을 띄게 되었다.
2.2. 로마 체류 시기 (1802-1811)
1802년부터 1811년까지 이탈리아 로마에 머물면서 그 도시의 예술 및 지적계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특히 빌헬름 폰 훔볼트와 그의 가족의 절친한 친구였다. 말년에 쉬크의 라파엘로풍 고전주의 양식은 점차 낭만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 1809년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예술가들로부터 특별 인정을 받았다.
2.3. 슈투트가르트 귀환과 사망
1811년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왔지만, 몇 달 후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