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1. 개요
공동경비구역(JSA)은 한국 전쟁 정전협정에 따라 판문점에 형성된 구역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교섭 장소로 활용된다. 원래 널문리라 불렸으며, 한국 전쟁 휴전 회담을 거치며 판문점(板門店)으로 이름이 굳어졌다. 1953년 설정 당시에는 유엔군과 공산군이 공동 경비했으나,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분리 경비하게 되었다. JSA는 남북 간의 잦은 상호 작용과 사건, 사고가 있었으며,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비무장화가 진행되었다. 현재는 관광객들이 방문할 수 있으며, 남북 및 유엔사 간의 새로운 규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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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설치 -
김책시
김책시는 함경북도 동해안에 위치한 도시로, 과거 성진시였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책의 이름을 따 개칭되었으며, 김책제철소와 김책공업대학이 있는 북한의 주요 공업 도시이자 평라선 철도가 통과하고 22개 동과 22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
1953년 설치 -
충청북도자치연수원
충청북도자치연수원은 충청북도 소속 공무원의 교육 훈련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1953년 충청북도공무원훈련소로 설치되어 충청북도지방공무원교육원을 거쳐 2006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원장 아래 행정지원과, 교육운영과, 도민연수과를 두고 있다. -
판문점 -
판문점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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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
자유의 집 (판문점)
자유의 집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남북 연락 및 회담에 활용되는 건물로, 남북 연락사무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남북 관계의 역사와 미래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
한반도 비무장 지대 -
한반도 군사 분계선
한반도 군사 분계선은 한국 전쟁 정전 협정에 따라 설정된 남북한 간 육상 경계선으로, 비무장지대(DMZ)와 함께 분단과 냉전 시대 갈등을 상징하며 평화 구축 노력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
한반도 비무장 지대 -
도라전망대
도라전망대는 서부전선 최북단에 위치하여 비무장 지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개성특별시, 송악산 등을 볼 수 있으며,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건립되어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2. 이름의 유래
공동경비구역의 또 다른 이름은 판문점이다. 판문점의 원래 이름은 '널문리'였다. 널문리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마을에 널빤지로 만든 대문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두 번째 가설은 부근에 널문다리(판문교板門橋)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 번째 가설은 지형이 워낙 넓어서 넓은 마을[里]이라는 뜻으로 넓은리 => 널븐리 => 널문리로 변천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가설은 널빤지로 만든 문이 있는 마을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선조가 피난 갈 때 백성들이 널빤지 문을 뜯어 다리를 만들었다 하여 그 후 마을 이름을 널문리라고 불렀다는 지명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진행된 곳은 널문리의 한 이름 없는 가게 앞이었다. 회담에 참석하는 중공군 대표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회담 장소 앞에 있던 주막을 겸한 가게를 한자로 적었는데, 이것이 바로 널문리의 가게라는 한자어인 ‘판문점(板門店)’이다.
3. 역사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로 판문점에 공동경비구역이 형성되었다.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구역에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의 공동경비구역이 설정되었는데, 동서 800m, 남북 400m에 달하는 정방형 구역이었다. 초기에는 말 그대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공동으로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이남 지역은 유엔군 측이, 이북 지역은 공산군 측이 분리 경비하게 되었다.
2004년 이후 공동경비구역의 경비 임무는 대한민국 국군에게 이양되었으나, 지휘통제권은 계속 유엔군사령부가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과 중립국 감독위원회(스위스, 스웨덴 대표)도 주둔하고 있다.
1998년 2월, 판문점 경비병이었던 김 중위 사망 사건을 계기로, 1996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군 병사 일부가 북측과 30차례 접촉하여 29점의 물품을 수수한 사실이 밝혀져 24명이 적발되었다.
2018년 제5차 남북정상회담에서 JSA 비무장화에 합의했다. 2018년 10월 20일까지 지뢰 제거 작업이 완료되었으며, 남북 양측의 GP(전초), 무기류 철수 작업이 진행되었다. 비무장화가 완료되면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완전 분리되었던 남북의 공동 경비가 부활하고, 관광객에 의한 구역 내 자유 왕래가 가능해진다.
4. 내부 시설
공동경비구역(JSA)은 원래 판문점 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80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JSA와 판문점이라는 용어는 종종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 마을은 현재의 JSA 단지보다 더 넓었고, 대부분 농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국 전쟁 동안 파괴되었으며, 현재 마을 부지에는 한국 휴전 협정 서명을 위해 건설된 건물인 판문점 북한 평화 박물관만 남아 있다. JSA는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한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1~T3)은 군사분계선 위에 설치된 가건물로, 정전협정 체결 후 군사정전위원회 기구들이 회의실로 사용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회색 건물 4개 동은 조선인민군이 관리하고, 하늘색 건물 3개 동은 유엔군사령부측이 관리한다. 이 중 T2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로 관광객 출입이 가능하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평화의 집 뒤쪽 사천강 위에 있으며, 다리 중간을 군사분계선이 가로지르고 있다. 정전협정 조인 후 이 다리를 통해 포로 교환이 이루어졌으나, 1976년 8월 18일 도끼 만행 사건 이후 통행이 금지되었다.
1976년 도끼 만행 사건 이전에는 JSA 내 전체 구역이 중립 구역이며 양측 모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군사분계선 시행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JSA로 들어가는 도로가 없어졌고, 사흘 안에 현재 "72시간 다리"를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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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대한민국 측
자유의 집은 통일의 염원을 담아 방패연 모양으로 설계되었으며, 건물의 양면 곡선은 두 손으로 감싸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1998년에 신축된 4층 건물로, 남북 교류 활성화에 대비하여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 주요 시설 | |
|---|---|
| 1층 | 로비, 기자실, 편의시설 |
| 2층 | 대기실, 사무실, 회의실 (향후 우편물 교환소 등으로 활용 예정) |
| 3층 | 남북 연락사무소, 남북 적십자 연락사무소, 대회의실 (향후 이산가족 면회실 등으로 활용 예정) |
| 4층 | 전망대, 다용도 공간 |
평화의 집은 1989년 남북 대화 증가에 대비하여 판문점 내 우리 측 회담 시설 확충을 위해 건립된 3층 석조 건물이다. 연건평은 600평이다. 1992년 남북 연락사무소(남측)와 직통전화가 설치되었으나, 1998년 자유의 집 완공으로 이전되었다. 평화의 집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회담 후 대표단의 식사나 모임 장소로 사용된다.
| | 주요 시설 | |
|---|---|
| 1층 | 귀빈실, 기자실 |
| 2층 | 회담장 |
| 3층 | 연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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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
1985년 북측이 판문점 회담 시설로 준공한 통일각은 남측 지역 ‘평화의 집’과 대칭되는 개념으로 연건평 460평의 지하 1층, 지상 1층 건물이다. 1992년 5월부터 북측 남북 연락사무소로 사용되면서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개최된 주요 남북회담이나 접촉은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통일각에 설치된 북측 남북 연락사무소는 직원 5~6명이 상주하면서 직통전화 2회선 등을 통해 남측과 연락업무를 수행해왔다. 통일각은 판문각에서 서북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판문각은 판문점 내에 북측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12년간 판문점을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다가 1964년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판문각 자리에 육각정을 지었다. 그후 1969년에 육각정을 헐고 판문각을 신축했는데 판문각은 남쪽에서 보면 웅장한 석조 건물로 보였으나 건물 내의 폭은 좁았다. 그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4년 판문각 중축공사를 시작해 12월에 완공했으며 건물을 3층으로 높이고 건물 폭도 확장하였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폐쇄되고 판문점 내의 경비는 양측이 함께 담당해 온 공동경비에서 분할 경비로 바뀌었다. 북한은 그간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판문점에 드나들었으나 다리가 폐쇄되자 공동경비구역으로 출입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급히 통일각 뒤쪽의 사천강에 북쪽으로 콘크리트 다리를 하나 구축했다. 이 다리를 건설하는 데 걸린 시간이 72시간이라고 해서 유엔사는 이 새 다리에 ‘72시간 다리’라는 별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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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남북공동지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우리측 평화의 집 뒤쪽 사천강 위에 있으며, 다리 중간을 군사분계선이 가로지르고 있다. 정전협정 조인 후 이 다리를 통해 포로 교환이 이루어졌는데, 양측 포로들이 이 다리를 통해 남쪽과 북쪽으로 송환되면서 일단 이 다리만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하여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76년 8월 18일 도끼 만행 사건 이후 통행이 금지되었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은 정전협정 체결 후 현재 판문점 위치를 공동경비구역으로 설정하고, 군사정전위원회 기구들이 회의실로 사용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위에 설치된 가건물이다. 회색 건물 4개 동은 북한 측이 관리하고, 가운데 하늘색 건물 3개 동은 유엔군사령부측이 관리한다. 하늘색 3개 동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각각 T1, T2, T3로 불리는데, T는 임시 건물(Temporary)이라는 뜻이다. 이 중 T1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T2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T3은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로 사용되며, 그 중 가운데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은 관광객 출입이 가능하다.
1976년 두 명의 미국 장교 살해 사건 이후 JSA 내 분계선이 시행되기 전에는, 전체 구역이 중립 구역이었으며 양측 구성원 모두 JSA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MDL 시행 후, 북한은 더 이상 JSA로 들어가는 도로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사흘 안에 현재 "72시간 다리"로 알려진 다리를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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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요 사건 및 사고
1953년 7월 27일 한국 전쟁의 한국 휴전 협정 체결 이후, 공동경비구역에서는 여러 사건 및 사고가 발생했다.
* 1953년
* [[작전명 소규모 교환 작전]](Operation Little Switch) (4월): 한국 전쟁 포로 송환 문제 해결을 위한 시험 사례로, 605명의 유엔군 포로와 6,030명의 북한군 및 인민지원군 포로가 교환되었다.
* [[작전명 대규모 교환 작전]](Operation Big Switch) (4월 ~ 9월): 사천강 둑에 위치한 판문점에서 포로 교환이 이루어졌다. 포로들은 강을 건너 자신의 의사에 따라 귀환 여부를 결정했으며, 이로 인해 돌아갈 수 없는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기간 동안 13,444명의 유엔군 포로와 89,493명의 북한군 및 인민지원군 포로가 교환되었다.
* 1960년대
* [[캠프 보니파스]] 공격 (1967년 8월 29일): 북한군 병사들이 소형 무기 및 경기관총으로 캠프 보니파스를 공격하여 미군 1명과 한국군 2명이 사망하고, 미군 12명, 한국군 9명, 한국 민간인 3명이 부상을 입었다.
* 트럭 매복 공격 (1968년 4월 14일): 북한군 병사들이 유엔군 트럭을 매복 공격하여 미군 2명과 한국군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 [[USS 푸에블로 (AGER-2)|USS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968년 12월 23일): 로이드 M. 부처 사령관과 81명의 승무원들이 11개월간 억류되었다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통해 풀려났다.
* [[작전명 템플 벨]](Temple Bell) (1969년 8월 17일): 비무장 OH-23 레이븐 관측 헬리콥터가 북한 영공을 침범하여 강제 착륙되었으며, 승무원 3명은 3개월 반 동안 억류되었다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통해 석방되었다.
* 1970년대
*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1970년 2월 14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되어 북한 원산으로 강제 전환되었다. 승객 39명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으나, 나머지 승객과 승무원은 북한에 억류되었다.
* 헨더슨 소령 사건 (1975년 6월 30일): 북한 기자가 헨더슨 소령을 폭행하고, 북한군 경비병이 헨더슨 소령을 공격하여 후두를 짓누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북한 경비대가 유엔군 검문소 사이를 가리는 나무를 가지치기하던 유엔군사령부 근무대를 공격하여 미 육군의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가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군사분계선 표지석이 생겨 남북 서로 간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 헬기 격추 사건 (1977년): 비무장지대 상공에서 순찰 중이던 미군 CH-47 헬기가 북한 영토로 침범했다가 격추되어 승무원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생존하여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 1980년대
* 소련 관광안내원 [[바실리 마투조크|마투조크]] 망명 사건 (1984년 11월 23일): 소련 관광안내원 바실리 마투조크가 판문점에서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면 촬영 중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망명하였다. 북한군은 총격을 가하며 추격했으나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군 장명기 일병이 전사하고 유엔군 1명이 부상을 입었다. 북한군은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소떼 방북 (1998년 6월 16일, 10월 27일):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두 차례에 걸쳐 소 1,0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여 남북 간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2010년대
* 북한군 병사 [[오청성]] 귀순 총격 사건 (2017년 11월 13일): 북한군 육군 하전사 오청성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측 초소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귀순을 시도하다가, 뒤따라오던 다른 북한군의 총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제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 [[제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2018년 5월 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두 정상이 다시 만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 [[남·북·미 정상 판문점 3자 회동]]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만나 자유의 집에서 북미 정상 간 회동을 가졌다.
* 2020년대
*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 월북 사건 (2023년 7월 18일): 판문점 견학 중이던 트래비스 킹이 무단으로 월북하였다.
6. JSA 경비대대의 임무
공동경비구역 유엔사경비대대(United Nations Command Security Battalion - Joint Security Area)는 1952년 5월 5일 창설되었다. JSA 경비대대는 본부중대와 작전 중대로 나뉜다. 작전 중대는 경비중대와 민정중대로 구성되며, 본부중대는 이들을 지원한다. 경비중대는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를, 민정중대는 대성동 마을 경비 및 치안 유지를 담당한다.
JSA 경비대대는 우발적 상황과 악조건 속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능력을 배양하고자 주기적으로 훈련을 실시한다. 훈련 종류는 다음과 같다.
* ‘악조건하 전투사격’
* ‘우발상황대비훈련’
* ‘기동사격 훈련’
* 'CQB(폐쇄구역 근접전투)훈련'
'악조건하 전투사격'은 가혹한 환경을 조성하여 사격 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이다. 'CQB훈련'은 시가전 및 대테러전에서 건물 내부 침투 시 사용하는 근접전투 전술이다.
민정중대는 비무장지대 내 유일한 마을인 대성동 마을의 경비와 치안 유지를 담당한다. 이들은 농사짓는 주민을 경호하고 주민들의 외출을 관리한다.
7. 관광
공동경비구역은 여러 관광회사와 USO를 통해 관광이 가능하다. 판문점견학지원센터에서 예약 후 견학할 수 있으며, 정해진 코스와 복장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견학 코스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버스 통과) → 남측 3초소 → 오청성 귀순 장소 → 자유의 집 → T2(군정위본회의실) → 기념식수 → 장명기 상병 추모비 순서이다. 군사시설 견학이므로 복장 제한과 사진 촬영 제한이 있다.
복장 규정 위반 사항은 다음과 같다.
| * 민소매, 배꼽티, 탱크탑, 모욕적이거나 도발적인 문구가 적힌 티셔츠 |
| * 낡거나 찢어진 반바지, 운동용 반바지, 엉덩이가 보이는 반바지 |
| * 얇게 비치는 옷 |
| * 스포츠 유니폼, 츄리닝을 포함한 모든 운동복 |
| * 샤워용 슬리퍼 또는 조리 (정장용 샌들, 발가락만 노출된 구두는 허용) |
| * 지나치게 큰 옷, “갱스터” 또는 “힙합” 스타일의 헐렁한 바지/스웨터, 가죽 조끼 및 가죽 바지 |
2018년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합의에 따라, 관광객은 공동경비구역 북쪽 구역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2018년 10월 16일, 남북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관광객들이 군사분계선을 걸어갈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