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원군
1. 개요
광주원군은 고려 태조 왕건의 아들로, 어머니는 광주 출신의 호족 왕규의 딸 소광주원부인이다. 945년 외조부 왕규가 혜종을 시해하고 그를 왕위에 올리려 했으나 실패했고, 왕규는 왕요와 왕식렴에게 진압되어 참수되었다. 광주원군의 최후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며, 사학자들은 왕규의 난 당시 정종과 광종에 의해 처형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2016년 SBS 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 백현이 왕은 역으로 출연했다.
| 이름 | 광주원군 |
|---|---|
| 한글 이름 | 광주원군 |
| 한자 이름 | 廣州院君 |
| 로마자 표기 | Gwangjuwon-gun |
| 작위 | 고려 태조의 왕자 |
| 부친 | 태조 |
|---|---|
| 모친 | 소광주원부인 왕씨 |
| 출생 | 900년 (추정) |
|---|---|
| 출생지 | 송악, 고려 |
| 사망 | 945년 이후 (추정) |
| 종교 |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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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10세기 사망 -
최치원
최치원은 857년에 태어나 당나라 유학 후 빈공과에 장원 급제하고 황소의 난을 평정하는 데 기여했으며, 신라 개혁 실패 후 해인사에서 은거하다가 고려 시대에 문창후로 추증된 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이다. -
10세기 사망 -
아흐마드 이븐 파들란
아흐마드 이븐 파들란은 10세기 초 압바스 왕조의 사절단 서기관으로서 볼가 불가르로 파견되어 이슬람 율법을 전파하고 다양한 민족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며, 바이킹 장례식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포함한 그의 기록은 당시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료이다. -
10세기 출생 -
다키키
다키키는 10세기 사만 왕조 궁정 시인으로, 이란 역사 서사시 《샤나메》 집필을 시작했으나 미완성으로 사망했고, 그의 작품 일부는 페르도시의 《샤나메》에 보존되었다. -
10세기 출생 -
바츨라프 1세 (보헤미아 공작)
바츨라프 1세는 10세기 보헤미아 공작으로, 기독교를 장려하고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을 건립했으며, 동생 볼레슬라프 1세에게 암살당한 후 성인으로 추앙받아 체코 민족의 영웅으로 숭배받는다.
2. 생애
광주원군은 태조의 아들로, 어머니는 경기도 광주 출신의 호족 왕규의 딸인 소광주원부인이다. 성은 왕, 본관은 개성이며, 이름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945년(혜종 2년), 왕규는 혜종을 죽이고 광주원군을 왕위에 올리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왕규의 난). 《고려사》〈열전〉에는 광주원군의 최후에 대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생몰년이나 무덤에 관한 기록도 없다. 호는 광주원군이다.
2.1. 출생과 가계
태조의 아들로, 어머니는 경기도 광주 출신의 호족 왕규의 딸인 소광주원부인이다. 성은 왕, 본관은 개성이며, 이름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광주원의 외할아버지인 왕규는 영향력 있는 지역 가문의 수장이었다. 광주원의 이름과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2.2. 왕규의 난
945년(혜종 2년), 왕규는 혜종을 죽이고 광주원군을 왕위에 올리려고 혜종의 침소에 자객을 보냈으나, 혜종이 자객들을 직접 때려 죽이는 바람에 실패하였으며, 혜종은 이 일을 불문에 붙였다. 이후에도 왕규는 혜종의 침소에 자객을 또 보냈으나, 혜종은 최지몽의 예언을 듣고 자리를 피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또 왕규는 혜종이 죽더라도 왕요(훗날 정종)와 왕소(훗날 광종)가 있어 광주원군이 보위에 오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혜종에게 두 사람을 참소하였으나, 혜종이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이 해 음력 9월 왕규는 왕요와 왕식렴의 군대에 의해 진압당한 후 참수되었다(왕규의 난).
다만 이 왕규의 난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그 해석이 엇갈리기도 하며, 왕요와 왕식렴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반란을 왕규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는 왕규가 광주원군을 보위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시각에 기인한 것으로, 광주원군이 적통도 아닐 뿐더러, 이는 태조의 유훈인 훈요십조와도 어긋난다. 또한 광주원군이 보위에 오를 경우 반발할 수많은 호족들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왕규가 광주원군을 보위에 올리고자 했다는 것은 왕요 일파가 왕규를 죽이기 위해 억지로 붙인 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3. 최후
《고려사》〈열전〉에는 광주원군의 최후에 대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생몰년이나 무덤에 관한 기록도 없다. 호는 광주원군이다.
한편 사학자 김창현은 자신의 저서 《광종의 제국》에서, 왕규의 난 당시 왕규를 역적으로 규정한 정종, 광종 형제에 의해 광주원군도 함께 처형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는 왕규 뿐 아니라 광주원군도 반역자로 규정해야 정변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3. 가족 관계
4. 대중문화 속 광주원군
2016년 SBS 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 백현이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