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드룬 엔슬린
1. 개요
구드룬 엔슬린은 1940년에 태어나 1977년에 사망한 독일의 테러리스트이다. 루터교 목사의 딸로, 우수한 학업 성적을 거두며 성장했지만,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사회주의 독일 학생 연맹(SDS)의 활동을 거치며 급진적인 정치 노선을 걷게 되었다. 1968년 안드레아스 바더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백화점에 방화하고, 독일 적군파(RAF)를 결성하여 과격한 테러 활동을 주도했다. 1972년 체포되어 수감된 후, 1977년 '독일의 가을' 사건 당시 슈탐하임 감옥에서 다른 적군파 지도자들과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그녀의 삶은 여러 영화, 연극,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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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자살 -
안드레아스 바더
안드레아스 바더는 독일 적군파의 핵심 인물로서 프랑크푸르트 백화점 방화 사건과 여러 테러 행위에 가담하여 종신형을 선고받고 사망했으며,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 및 타살 논란이 있다. -
1977년 자살 -
스탠리 애덤스
스탠리 애덤스는 코믹하고 젠체하는 성격 연기로 유명한 미국의 성격 배우로, 다양한 영화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특히 《스타 트렉》에서 시라노 존스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
독일의 테러리스트 -
울리케 마인호프
독일 저널리스트이자 적군파 공동 창립자인 울리케 마인호프는 학생 운동가와 잡지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사회 비판적 시각을 보였고, 반제국주의 테러 활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수감 중 사망하여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
독일의 테러리스트 -
브리기테 몬하우프트
브리기테 몬하우프트는 독일 적군파(RAF)의 일원으로서 1970년대 테러 활동에 가담하여 연방 검찰총장 암살 등에 관여했고, 1982년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2007년 가석방되었다. -
교도소에서 자살한 사람 -
제프리 엡스타인
1953년생 미국 금융가이자 성범죄자인 제프리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매매 및 성폭행 혐의로 여러 차례 수사를 받았고, 2019년 유사 혐의로 체포 후 구치소에서 사망하여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교도소에서 자살한 사람 -
울리케 마인호프
독일 저널리스트이자 적군파 공동 창립자인 울리케 마인호프는 학생 운동가와 잡지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사회 비판적 시각을 보였고, 반제국주의 테러 활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수감 중 사망하여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2. 초기 생애와 교육
엔슬린은 1940년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바르톨로메에서 7명의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헬무트 엔슬린(de)은 복음주의 교회의 목사였다.
엔슬린은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성경 공부를 조직하는 등 종교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18세에 미국에서 1년간 유학하며 펜실베이니아주 워렌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독일 학술 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튀빙겐 대학교에서 교육학, 영어학, 독일학을 공부했다. 1962년 2월, 베른바르트 페스퍼(de)를 만났고, 함께 문학 활동과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 1963년에는 페스퍼 등과 함께 '스튜디오 노이에 리터라투어'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핵무기에 반대하는 시 선집 등을 출판했다.
1963년과 1964년에 엔슬린은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964년 여름, 서베를린으로 이주하여 한스 헤니 야흔에 대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1965년에는 페스퍼와 약혼하고,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활동하며 베트남 전쟁 등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1967년 5월에는 아들 펠릭스 엔슬린을 낳았다.
3. 정치 활동과 과격화
1960년대 중반, 엔슬린은 베른바르트 페스퍼와 함께 독일 사회민주당(SPD)을 지지하며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 이들은 새로운 보안법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시위 권리를 옹호하는 시위에 함께 참여했다. 1966년에는 페스퍼 등과 함께 반전을 주장하는 책자 『the Voltaire Flugschriften』을 출판하기도 했다.
1967년 6월, 이란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의 독일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벤노 오네조르크가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엔슬린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서독 정부를 파시스트 경찰 국가라고 맹렬히 비난하며,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1968년, 엔슬린은 안드레아스 바더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페스퍼와 아들을 떠나 바더와 함께 과격한 무장 투쟁 노선을 걷게 된다. 같은 해 4월 2일, 바더 등과 함께 프랑크푸르트의 백화점 두 곳에 방화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들은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풀려난 후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도주했다.
3.1. 독일 적군파 (RAF) 결성과 활동
1970년 4월, 바더가 체포되었으나, 엔슬린은 좌익 언론인 울리케 마인호프와 다른 두 여성의 도움으로 같은 해 5월 14일 바더를 탈옥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이것이 적군파의 시작이었다. 이후 엔슬린은 독일에서 가장 수배되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엔슬린은 바더, 마인호프 등과 함께 "바더 마인호프 그룹"(후의 독일 적군파)을 조직했다. 이들은 은행 강도, 미디어 재벌 악셀 슈프링거의 신문사 빌딩 및 미군 시설에 대한 폭탄 공격 등으로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바더, 마인호프와 함께 요르단으로 도망쳐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PFLP) 훈련 시설에서 전투 훈련을 받았지만, 우루과이의 투파마로스로부터 영향을 더 강하게 받았다는 설도 있다.
4. 체포와 수감 생활
1972년 6월, 엔슬린은 함부르크에서 체포되어 슈투트가르트 슈탐하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았다. 수감 중에도 엔슬린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굽히지 않고, 단식 투쟁 등을 통해 저항을 이어갔다.
4.1. 독일의 가을과 죽음
1977년 가을, 적군파 2세대는 엔슬린 등 1세대 지도부의 석방을 요구하며 한스-마르틴 슐라이어 납치 및 루프트한자 181편 납치 등 테러를 감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독일의 가을'이라 불리며 독일 사회를 혼란과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독일 대테러 부대가 루프트한자 181편을 습격하여 인질 구출 작전을 성공시킨 몇 시간 후, "슈탐하임의 죽음의 밤"으로 알려진 밤에 엔슬린, 바더, 얀-카를 라스페는 슈투트가르트 슈탐하임 감옥의 최고 보안 구역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엔슬린은 울리케 마인호프처럼 감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고, 바더와 라스페는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르가르트 묄러는 훔친 칼로 가슴을 네 번 찔렸으나 살아남았으며, 이후 이들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당시 정부가 저지른 초법적 살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전현직 정부에 의해 강력히 부인되었다. 슈테판 아우스트가 쓴 적군파에 대한 연구(2009년 "바더-마인호프: RAF 내부 이야기"로 개정됨)는 이들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는 국가의 공식 판결을 지지한다.
1977년 10월 27일, 엔슬린은 바더, 라스페와 함께 슈투트가르트 도른할덴 묘지에 공동 묘지로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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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산과 평가
엔슬린은 1960년대와 70년대 독일 사회의 급진적인 좌파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삶과 죽음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며, 독일 사회의 과거사 청산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다. 특히 엔슬린과 바더, 라스페가 슈투트가르트의 슈탐하임 감옥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슈탐하임의 죽음의 밤"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죽음이 자살인지 아니면 당시 정부에 의한 초법적 살인인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슈테판 아우스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들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는 공식 판결을 지지한다.
바더 마인호프 그룹(적군파)의 핵심 인물이었던 엔슬린의 이야기는 여러 영화, 연극, 책 등을 통해 재조명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5.1. 대중문화
1981년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장편 영화 마리안네와 율리아네는 수감된 엔슬린(바바라 수코바 분)과 그녀의 여동생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1986년 사비네 베그너는 라인하르트 하우프 감독의 영화 슈탐하임에서 엔슬린 역을 맡았는데, 이 영화는 엔슬린, 바더, 마인호프 등의 재판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같은 해, 코리나 키르히호프는 마르쿠스 임호프 감독의 영화 여행(Die Reise)에서 엔슬린 역을 맡았으며, 이 영화는 엔슬린의 동반자였던 베른바르트 베스퍼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다.
1997년 아냐 호프만은 하인리히 브렐로어 감독의 TV 다큐 드라마 데스 게임에서 엔슬린 역을 연기했다. 2008년에는 울리 에델 감독의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에서 요한나 보칼렉이 엔슬린을 연기했다. 이 영화는 슈테판 아우스트의 동명 논픽션 책을 원작으로 한다. 보칼렉은 이 영화로 2009년 독일 영화상 후보에 올랐고, 밤비 상에서 최고의 독일 여배우 상을 받았다. 영화는 제81회 아카데미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독일 대표로 출품되었으며, 제66회 골든 글로브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2011년 2월, 안드레스 파이엘 감독의 장편 영화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면에서는 레나 로이체미스가 구드룬 엔슬린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알프레드 바우어 상과 독일 예술 영화관 상을 받았다.
구드룬 엔슬린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희곡 울리케 마리아 슈투어트에서 마인호프와의 관계를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의 관계에 빗대어 묘사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녀의 저작물은 독일 아방가르드 작곡가 헬무트 라헨만의 오페라 성냥팔이 소녀에 인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