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 (필리핀)
1. 개요
국민당(Nacionalista Party)은 1907년 필리핀 독립을 목표로 창당된 정당이다. 필리핀 정치에서 초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필리핀 코먼웰스 시기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일본 점령기 동안 활동이 중단되었다. 제3공화국 시대에 자유당이 분리되었고, 이후 보수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배출했으며, 계엄령 선포 이후 활동이 위축되었으나, 1986년 피플파워 혁명 이후 재건되었다. 역대 대통령으로는 마누엘 케손, 세르히오 오스메냐, 라몬 마그사이사이, 카를로스 가르시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등이 있다. 현재는 상원 4석, 하원 36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마누엘 비야르가 당 대표, 신시아 비야르가 당 의장을 맡고 있다.
| 공식 명칭 | Nacionalista Party |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약칭 | NP |
|---|---|
| 창립일 | 1907년 4월 25일 |
| 창립자 | 마누엘 L. 케손 세르히오 오스메냐 |
| 본부 | 스타몰 EDSA-쇼 4F, EDSA 코너 쇼 대로, 만달루용, 메트로 마닐라 |
| 청년 조직 | 영 내셔널리스트 |
| 회원수 | 120만 명 |
| 슬로건 | "앙 바얀 히깃 사 라핫" ('국가가 최우선') |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 사무총장 | 마크 비야르 |
| 이념 | 보수주의 국가 보수주의 필리핀 민족주의 우익 포퓰리즘 |
|---|---|
| 정치 성향 | 중도우파 |
| 회장 | 신시아 비야르 |
|---|---|
| 대표 | 매니 비야르 |
| 대변인 | 에이스 바베르스 |
| 전국 | 알리안사 파라 사 바공 필리피나스 (2024–현재) 유니팀 (2021–2024) 변화를 위한 연합 (2016–2021) 팀 PNoy (2013) 진정한 야당 (2007) K4 (2004) PPC (2001) GAD (1987) UNIDO (1980–1986) |
|---|---|
| 지역 | 아시아 태평양 민주 연맹 |
| 색상 | 국가 색상: 빨간색, 파란색, 흰색 관례적: 밝은 녹색 주황색 |
|---|
-
1907년 설치 -
필리핀 하원
필리핀 하원은 1900년 필리핀 위원회로 설립되어 변화를 거쳐 1987년 헌법에 따라 부활한 양원제 의회의 하원으로, 지역구 및 정당 명부 대표로 선출된 316석으로 구성되어 법률 제정, 예산 심의, 공무원 탄핵 등의 권한을 가지며 대통령의 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
1907년 설치 -
서울중부경찰서
서울중부경찰서는 서울특별시 중구(서울남대문경찰서 관할 지역 제외)를 관할하며 1907년 한성본정경찰서로 설립되어 경성본정경찰서, 중부경찰서를 거쳐 200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고 서장(총경)을 정점으로 여러 부서, 지구대, 파출소, 치안센터로 구성되어 중구 지역 주민의 안전을 책임진다. -
필리핀의 정당 -
필리핀 대중의 힘
필리핀 대중의 힘은 조지 S. 안토니오가 조직한 경제 회복 행동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어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배출하고 상원 의석을 유지해 온 정당이다. -
필리핀의 정당 -
필리핀 공산당
필리핀 공산당은 1968년 호세 마리아 시손을 중심으로 재건된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주의 정당으로, 민족민주전선과 신인민군을 조직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했으며 현재는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어 장기 인민전쟁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
독립주의 정당 -
신플람스 연맹
신플람스 연맹은 2001년 국민연합 분열로 결성된 플랑드르 민족주의 정당으로, 현재는 보수주의적 우익 성향을 띠며 플랑드르 지역 최대 정당으로서 자치권 확대, 엄격한 이민 정책, 온건한 유럽회의주의를 추구한다. -
독립주의 정당 -
잉글랜드 민주당
잉글랜드 민주당은 1998년 잉글랜드 의회 설립을 목표로 창당되어 영국 독립당 등과 합병했으나, 선거 부정 등의 논란 속에 2015년 지방 선거에서 모든 의석을 잃었다.
2. 역사
Nacionalista Party영어는 필리핀의 정치 변화와 함께 그 역사를 이어왔다. 이 당은 필리핀 독립을 위한 수단으로 조직되어 자치를 주장했으며, 1907년부터 1916년까지의 필리핀 의회와 1916년부터 1935년까지의 필리핀 입법부에서 이러한 주장을 대표했다. 일본 점령기에는 모든 정당이 칼리바피(KALIBAPI)당으로 대체되면서 활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1945년, 세르히오 오스메냐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했지만, 당내 분열로 인해 마누엘 로하스와 엘피디오 키리노가 필리핀 자유당을 창당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오스메냐는 로하스에게 패배했다.
197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국민당은 다시 한번 활동이 중단되었다. 1978년 마르코스는 키루상 바궁 리푸난(KBL)을 창당했고, 국민당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1981년 계엄령 해제 후, 형식적인 야당 후보로 국민당의 알레호 산토스가 출마했으나 마르코스에게 패배했다.
1986년, 국민당은 야당 연합체인 UNIDO에 합류하여 살바도르 로렐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코라손 아키노와 함께 피플 파워 혁명을 통해 마르코스 정권을 붕괴시켰다. 이후 로렐은 국민당을 재건했지만, 1992년 에두아르도 코후앙코 주니어가 국민연합당(Nationalist People's Coalition)을 창당하면서 당은 다시 분열되었다.
2010년, 마누엘 비야르는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국민당은 자유당, PDP-Laban 등과 연합하여 선거에 참여했다. 2022년, 마누엘 비야르 당 대표는 봉봉 마르코스를 지지했다.
2.1. 창당과 초기 활동 (1907년 ~ 1945년)
이 당은 필리핀 독립을 위한 수단으로 조직되어 자치를 주장했으며, 1907년부터 1916년까지의 필리핀 의회와 1916년부터 1935년까지의 후속 필리핀 입법부에서 이러한 주장을 대표했다. 국민당 정치인들은 1935년부터 1941년까지 이어진 필리핀 코먼웰스를 통해 두각을 나타냈으나, 일본 점령기 동안 모든 정당이 하나의 독점적인 칼리바피(KALIBAPI)당으로 대체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2.2. 제3공화국 시대 (1946년 ~ 1972년)
1945년 12월, 미국 의회 하원 내무위원회는 필리핀의 조기 총선 실시를 위한 공동 결의안을 승인하고 1946년 4월 23일을 선거일로 정했다. 이에 따라 세르히오 오스메냐 대통령은 필리핀 의회를 소집했고, 의회는 1946년 4월 23일을 선거일로 하는 공화국 법령 제725호를 제정했다. 오스메냐 대통령은 1946년 1월 5일에 이 법령에 서명했다.
나시오날리스타당은 오스메냐를 지지하는 보수파와 마누엘 로하스 및 엘피디오 키리노를 지지하는 자유당파로 분열되었다. 1946년 1월 3일, 오스메냐는 재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자유당파는 1946년 1월 19일, 필리핀 자유당으로 공식 창당되었고, 로하스와 키리노가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1946년 1월 22일, 에울로히오 로드리게스가 오스메냐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오스메냐-로드리게스 팀은 자유당의 로하스-키리노 팀에게 패배했다.
2.3. 계엄령과 제4공화국 시대 (1972년 ~ 1986년)
197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국민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의 활동이 중단되었다. 마르코스는 1978년 자신의 여당인 키루상 바궁 리푸난(KBL)을 창당했고, 나시오날리스타당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1981년 계엄령이 공식적으로 해제된 후, 마르코스는 형식적인 야당 후보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나시오날리스타당 소속의 알레호 산토스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그는 마르코스에게 큰 표 차이로 패배했다.
1986년, 나시오날리스타당은 야당 연합체인 UNIDO에 합류하여 살바도르 로렐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로렐은 코라손 아키노와 함께 선거에 참여하여 마르코스-톨렌티노 조에 맞섰지만, 공식 결과로는 패배했다. 그러나 이 선거는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고, 결국 피플 파워 혁명으로 이어져 마르코스 정권이 붕괴되었다.
2.4. 제5공화국 시대 (1986년 ~ 현재)
1986년 피플 파워 혁명 이후, 살바도르 로렐은 국민당을 재건했다. 그러나 1992년, 에두아르도 코후앙코 주니어가 국민연합당(Nationalist People's Coalition)을 창당하면서 당은 분열되었다.
2010년, 마누엘 비야르는 대통령 후보로 독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국민당은 자유당, PDP-Laban 등과 연합하여 선거에 참여했다.
2022년, 마누엘 비야르 당 대표는 봉봉 마르코스를 지지했다.
3. 역대 대통령
마누엘 케손 (1935-1944)
세르히오 오스메냐 (1944-1946)
라몬 마그사이사이 (1953-1957)
카를로스 P. 가르시아 (1957-1961)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1965-1972, 이후 1986년까지 계엄 통치)
1945년 12월, 미국 의회 하원 내무위원회는 1946년 4월 23일을 선거일로 하는 공동 결의안을 승인했다. 세르히오 오스메냐 대통령은 필리핀 의회를 소집, 공화국 법령 제725호를 제정하여 선거일을 확정했다. 나시오날리스트당은 오스메냐 지지파(보수파)와 로하스 및 키리노의 자유당파로 분열되었다. 오스메냐는 재선 출마를 선언했고, 자유당파는 필리핀 자유당을 창당하여 로하스와 키리노를 각각 대통령,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오스메냐는 에울로히오 로드리게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으나, 로하스-키리노 팀에게 패배했다.
1949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당은 호세 P. 로렐을 대통령 후보, 마누엘 브리오네스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자유당 분열에도 불구하고, 키리노가 로렐을 이겼다. 카를로스 P. 로물로 등은 이 선거를 필리핀 역사상 가장 더러운 선거로 평가했다.
호세 P. 로렐은 1953년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라몬 마그사이사이를 지지했다. 카밀로 오시아스가 대통령 후보 지명을 추진했으나, 마그사이사이가 승리했다. 카를로스 P. 가르시아가 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마그사이사이와 가르시아는 1953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4. 이념 및 정책
국민당은 초기에는 필리핀 민족주의 정당으로, 1946년 미국이 필리핀에 독립을 승인할 때까지 필리핀 독립을 지지했다. 제3공화국 시대에는 자유당과 진보당에 대한 반대로 인해 보수주의적 경향을 보였다는 주장이 있다.
5. 당세
자유당의 승리 이후, 국민당은 1947년 상원 선거에서 8석 중 카밀로 오시아스 단 1명만이 당선되었다. 1949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당은 호세 P. 로렐을 대통령 후보로, 마누엘 브리오네스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자유당의 분열 속에서 국민당은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엘피디오 키리노가 로렐을 꺾고 당선되었다. 이 선거는 필리핀 역사상 가장 부정부패가 심했던 선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같은 해 상원 선거에서는 클라로 M. 레크토가 선거 소송 끝에 간신히 당선되었다.
1961년 대통령 선거에서 카를로스 P. 가르시아 대통령은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에게 패배하여 재선에 실패했다. 호세 로이와 로렌조 수멀롱은 국민당 소속으로 상원 의석을 획득했다.
5.1. 역대 선거 결과
필리핀 국민당은 여러 차례 선거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하며 필리핀 정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선거 | 결과 |
|---|---|
| 1946년 선거 | 나시오날리스트당 분열. 오스메냐 후보, 자유당 로하스-키리노 팀에게 패배. |
| 1947년 상원 선거 | 8석 중 카밀로 오시아스 1석 차지. |
| 1949년 대통령 선거 | 호세 P. 로렐 후보, 자유당 키리노에게 패배. 필리핀 역사상 가장 더러운 선거 중 하나로 평가됨. |
| 1949년 상원 선거 | 클라로 M. 레크토, 선거 소송 끝에 승리. |
| 1961년 대통령 선거 | 가르시아 대통령,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에게 패배. 호세 로이, 로렌조 수멀롱 의석 획득. |
| 1965년 대통령 선거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자유당 탈당 후 국민당 합류 및 대통령 당선. |
6. 주요 당직자
| 직책 | 이름 | 비고 |
|---|---|---|
| 당 대표 | 마누엘 비야르 | 전 상원 의장 |
| 당 의장 | 신시아 비야르 | 현 상원의원 |
| 사무총장 | 마크 비야르 | 현 상원의원 |
7. 연관 정당
1947년 상원 선거에서 자유당이 승리한 후, 국민당은 8석 중 카밀로 오시아스가 차지한 1석만을 얻었다. 1949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당은 전 "협력자"이자 정치 베테랑인 호세 P. 로렐을 후보로, 전 상원의원이자 대법원 부장판사인 마누엘 브리오네스를 러닝메이트로 내세웠다.
8. 한국과의 관계
나시오날리스타당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지만, 필리핀의 주요 정당으로서 한국과의 외교 관계, 경제 협력 등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시오날리스타당 소속 정치인들은 대체로 친미, 친서방 성향을 보여왔으며, 이는 한국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한국 전쟁 당시 필리핀군 파병을 결정하는 등 한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의 독재 통치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현재 나시오날리스타당은 봉봉 마르코스를 지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