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한씨
1. 개요
귀인 한씨는 조선 중종의 후궁이다. 1500년에 태어나 1575년에 사망했으며, 본관은 청주이다. 1518년 후궁으로 입궁하여 정7품 전빈, 정5품 상궁, 종4품 숙원, 종3품 숙용을 거쳤다. 중종 사후 문정왕후의 배려로 궁 안팎을 오가며 지내다 병으로 사저에서 지냈다. 1573년 선조가 약을 하사했으나 효험이 없었고, 1575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528년에 아들을 낳았으나 요절했고, 해안군의 부인 신씨와 의천군에게 후사를 의탁했다.
| 작위 | 후궁 (귀인) |
|---|---|
| 배우자 | 중종 |
| 자녀 | 1남 (요절) |
| 왕조 | 조선 |
| 아버지 | 한순 |
| 어머니 | 이등전의 딸 |
| 친척 | 안순왕후(고모) 등 |
| 출생일 | 1500년 |
| 출생지 | 조선 |
| 사망지 | 조선 |
| 사망일 | 1575년 음력 3월 무신일 |
| 사망 원인 | 병사 |
| 거주지 | 조선 한성부 |
| 국적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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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5년 사망 -
매슈 파커
매슈 파커는 1504년에 태어나 1575년에 사망한 잉글랜드의 종교 지도자이며, 앤 불린의 사제로서 1559년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어 잉글리칸 교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학문적 업적과 사본 수집으로 알려져 있다. -
1575년 사망 -
바바 노부하루
바바 노부하루는 다케다 신겐을 섬긴 무장으로 70번 이상의 전투에서 부상없이 활약하여 불멸의 별칭을 얻었으며, 스와·이나 공략, 가와나카지마 전투, 미카타가하라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고 축성에도 능했으나 나가시노 전투에서 전사하여 다케다 가문 몰락의 계기가 되었다. -
병사한 사람 -
현진건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의 사실주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을 받기도 했다. -
병사한 사람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
1500년 출생 -
벤베누토 첼리니
벤베누토 첼리니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금세공사이자 조각가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로마와 프랑스 등지에서 활동하며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와 '소금통' 같은 대표작을 남겼고, 그의 자서전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1500년 출생 -
테쿤 우만
테쿤 우만은 16세기 스페인 군에 맞서 싸운 키체족 전사이자 과테말라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과테말라 독립의 상징으로 기려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되고 있다.
2. 생애
1500년(연산군 6년)에 태어났다. 인종 때 지은 중종의 지문 등에는 한씨의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최립의 시문집 《간이집》 권2에 남아있는 귀인 한씨의 묘지명에 한씨의 일생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묘지명에 따르면 1514년(중종 9년)에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안순왕후의 서조카인 한씨가 궁에 들어갔다고 하나, 안순왕후는 1498년(연산군 4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묘지명의 이 기록은 맞지 않다. 따라서 한씨의 입궁 경위에 대한 정확한 사실 관계는 알 수 없다.
1518년(중종 13년) 후궁으로 들어갔으며, 한씨의 품계 변동은 다음과 같다.
1544년(중종 39년) 중종이 승하한 후 3년상을 치르고 관례에 따라 출궁하여 살고자 하였으나, 문정왕후의 배려로 궁 안과 밖을 오가며 지냈다. 그러나 이후 병에 걸려 스스로 영추문 밖 사저로 나와서 지냈다. 한씨는 문정왕후가 중전일 때 친잠례를 익히는데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며, 문정왕후 승하 뒤에는 궁중의 의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어 항상 한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1573년(선조 6년) 겨울 무렵 병에 걸려 선조가 약을 하사하여 치료했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하였다. 1575년(선조 8년) 음력 1월 2일 명종비 인순왕후가 승하하자, 한씨는 이 소식을 듣고 병세가 더욱 깊어졌다. 결국 한씨도 이 해 음력 3월 무신일에 향년 7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1528년(중종 23년) 아들을 낳았으나,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해안군의 부인 신씨가 한씨의 외조카였는데, 이 인연으로 한씨는 해안군의 딸을 친자식처럼 보살폈다. 말년에는 종실 의천군 이인에게 후사를 의탁했는데, 이는 의천군의 어머니 한씨가 귀인 한씨의 자매였기 때문이다.
2.1. 가계
1500년 (연산군 6년)에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이며, 아버지는 정국 공신에 봉해진 서원군 한순이다. 어머니는 여산군수를 지낸 이등전의 딸이며, 한순의 첩이다. 한씨의 할아버지는 청천부원군 한백륜이고,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는 한씨의 고모이다.
2.2. 후궁 시절
최립의 시문집 《간이집》 권2에 남아있는 귀인 한씨의 묘지명에 한씨의 일생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인종 때 지은 중종의 지문 등에는 한씨의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묘지명에 따르면 1514년(중종 9년)에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안순왕후의 서조카인 한씨가 궁에 들어갔다고 하나, 안순왕후는 1498년(연산군 4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묘지명의 이 기록은 맞지 않다. 따라서 한씨의 입궁 경위에 대한 정확한 사실 관계는 알 수 없다.
1518년(중종 13년) 후궁으로 들어갔으며, 이후 한씨의 품계는 다음과 같이 변동하였다.
| 시기 | 품계 |
|---|---|
| 1520년(중종 15년) | 정7품 전빈 |
| 1529년(중종 24년) | 정5품 상궁 |
| 1532년(중종 27년) | 종4품 숙원 |
| 1540년(중종 35년) | 종3품 숙용 |
| 1551년(명종 6년) | 종2품 숙의 |
| 1571년(선조 4년) | 정2품 소의 |
| 1572년(선조 5년) | 종1품 귀인 |
1544년(중종 39년) 중종이 승하한 후에는 3년상을 치르고 관례에 따라 출궁하여 살고자 하였으나, 문정왕후의 배려로 궁 안과 밖을 오가며 지냈다. 그러나 이후 병에 걸려 스스로 영추문 밖 사저로 나와서 지냈다. 한씨는 문정왕후가 중전일 때 친잠례를 익히는데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문정왕후가 승하한 뒤에는 궁중의 의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어, 항상 한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2.3. 사망과 후손
한씨는 1573년(선조 6년) 겨울 무렵 병에 걸려 선조가 약을 하사하여 치료했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하였다. 1575년(선조 8년) 음력 1월 2일 명종비 인순왕후가 승하하자, 한씨는 이 소식을 듣고 병세가 더욱 깊어졌다. 결국 한씨도 이 해 음력 3월 무신일에 향년 7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한씨는 1528년(중종 23년) 아들을 낳았으나,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해안군의 부인 신씨가 한씨의 외조카였는데, 이 인연으로 한씨는 해안군의 딸을 친자식처럼 보살폈다. 말년에는 종실 의천군 이인에게 후사를 의탁했는데, 이는 의천군의 어머니 한씨가 귀인 한씨의 자매였기 때문이다.
3. 가족 관계
* 아버지 : 한순(1453~1541)
* 어머니 : 이등전의 딸(한순의 첩)
* 시아버지 : 제9대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
* 시어머니 : 정현왕후(1462~1530)
* 남편 : 제11대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
* 아들 : 요절(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