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왕후
1. 개요
안순왕후는 조선 예종의 후궁이자 왕비, 그리고 왕대비였다. 1445년에 태어나 1463년 예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소훈이 되었으며, 1468년 예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예종 사후, 성종이 즉위하면서 왕대비가 되었고, 1499년에 사망하여 안순왕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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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 | 왕후 |
|---|---|
| 왕조 | 조선 |
| 재위 | 1468년 10월 3일 ~ 1469년 12월 31일 |
| 왕비 책봉 | 1468년 |
| 폐위 | 1469년 |
| 전임 | 정희왕후 |
| 후임 | 공혜왕후 |
| 출생 | 1445년 4월 27일 |
|---|---|
| 출생지 | 경기도 안산시 |
| 사망 | 1499년 2월 12일 |
| 사망 장소 | 경복궁 자경전, 서울 |
| 매장지 | 고양시, 창릉 |
| 배우자 | 예종 이황 |
|---|---|
| 자녀 | 성종 이혈(양자), 현숙공주, 제안대군 이현, 혜순공주, 이름 없는 대군 |
| 가문 | 청주 한씨 |
| 아버지 | 한백륜 청천부원군 |
| 어머니 | 풍천 임씨 서하부부인 |
| 추존 시호 | 인혜명의소휘제숙안순왕후 |
|---|---|
| 존호 | 인혜명의 |
| 휘호 | 소휘제숙 |
| 능호 | 안순 |
| 묘호 | 창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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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왕대비 -
정희왕후
정희왕후는 조선 세조의 왕비로서, 계유정난을 통해 남편의 왕위 등극을 도왔으며, 성종 대에 수렴청정을 실시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룩했다. -
조선의 대왕대비 -
문정왕후 (조선)
문정왕후는 조선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로서, 정치적 숙청과 불교 중흥 정책을 펼치며 조선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인종의 죽음 관련 의혹이 있으며, 그녀의 능은 태릉이다. -
1498년 사망 -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145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도미니크 수도사이자 종교 개혁가로, 피렌체에서 활동하며 정치적, 종교적 개혁을 시도했으나 교황과 대립하여 파문당하고 화형에 처해졌다. -
1498년 사망 -
샤를 8세
샤를 8세는 프랑스 발루아 왕가의 왕으로, 브르타뉴 여공작과의 결혼으로 브르타뉴를 프랑스에 통합하고 이탈리아 전쟁을 일으켰으나 큰 성과 없이 사망하여 발루아 왕가의 직계가 단절되었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를 프랑스에 전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조선 예종 -
성종 (조선)
성종은 조선의 제9대 국왕으로, 세조의 손자이자 덕종의 아들이며 예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거쳐 친정 후 홍문관 설치, 경국대전 반포 등 조선의 통치 체제 확립과 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나, 폐비 윤씨 사사 사건과 서얼 차별 강화는 비판받기도 한다. -
조선 예종 -
세조 (조선)
세조는 조선의 제7대 왕으로서,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라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육조직계제를 실시하고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추진했다.
2. 생애
1445년에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1461년에 예종의 세자빈이었던 장순왕후가 요절하자, 1463년에 왕세자였던 예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종5품 소훈(昭訓)이 되었다. 당시 안순왕후의 아버지 한백륜은 사옹별좌(司饔別坐)였다. 소훈은 빈의 공상(供上)과 예로 대우받았다.
안순왕후는 2남 2녀를 낳았지만, 1466년에 낳은 제안대군을 포함하여 1남 1녀만이 생존하였다.
1468년, 세조가 병으로 왕세자에게 양위하여 예종이 즉위하였다. 세조는 소훈 한씨를 왕비로 삼도록 하였는데, 당시 한씨는 만삭의 몸으로 친정에 있었기에 위사(衛士)를 보내어 집을 지키도록 하였다.
2.1. 왕비 책봉 이전
안순왕후는 1445년에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1461년에 예종의 세자빈이었던 장순왕후가 요절하자, 1463년에 왕세자였던 예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종5품 소훈(昭訓)이 되었다. 당시 안순왕후의 아버지 한백륜은 사옹별좌(司饔別坐)였다. 소훈은 빈의 공상(供上)과 예로 대우받았다.
안순왕후는 2남 2녀를 낳았지만, 1466년에 낳은 제안대군을 포함하여 1남 1녀만이 생존하였다.
1468년, 세조가 병으로 왕세자에게 양위하여 예종이 즉위하였다. 세조는 소훈 한씨를 왕비로 삼도록 하였는데, 당시 한씨는 만삭의 몸으로 친정에 있었기에 위사(衛士)를 보내어 집을 지키도록 하였다.
2.2. 왕비 책봉과 짧은 재위
1463년, 예종의 세자빈이었던 장순왕후가 1461년에 요절하자, 안순왕후는 동궁의 종5품 후궁인 소훈(昭訓)에 간택되었다. 당시 안순왕후의 아버지 한백륜의 벼슬은 사옹별좌(司饔別坐)였다. 후궁의 입장이었으나 빈의 공상(供上)과 예로 대우받았다. 안순왕후는 2남 2녀를 낳았지만 제안대군을 포함하여 1남 1녀만이 생존했다.
1468년 세조가 중병을 이유로 왕세자에게 양위하여 예종이 즉위하였다. 태상왕이 된 세조가 소훈 한씨를 지목하여 왕비로 삼도록 하였는데, 당시 한씨는 만삭의 몸으로 친정에 있었기에 위사(衛士)를 보내어 집을 지키도록 하였다.
1469년 12월 31일 (음력 11월 28일), 예종이 보위에 오른 지 13개월 만에 훙서하자, 원자(元子)인 제안대군의 보령이 어리다는 이유로 왕대비 정희왕후는 한명회와 결탁하여 예종의 형이었던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자 한명회의 사위인 잘산군(乽山君: 성종)을 예종과 안순왕후의 양자로 입적시켜 예종의 뒤를 잇게 하였다. 이후 제안대군은 성종의 정통성에 위해가 된다는 이유로 1474년에 세종의 7번째 아들인 평원대군의 봉사손으로 입양되었다. 같은 날, 한씨는 선왕(先王)의 왕비이자 성종의 법모로서 왕대비로 진봉하여 인혜왕대비(仁惠王大妃)가 되었다.
1470년 2월 22일 (음력 1월 22일), 성종의 생부인 의경세자가 의경왕으로 추숭되었고 그의 생모 수빈 한씨(소혜왕후)도 인수왕비로 진봉되면서 인혜왕대비와 인수왕비의 서열 문제가 발생했다. 1472년, 신숙주의 주장과 자성대왕대비(정희왕후)의 윤허 아래 인수왕비와 인혜왕대비의 위계를 왕실의 법칙이 아닌 사가의 법칙대로 형제 서열로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세조의 맏아들 의경왕의 아내인 인수왕비가, 둘째아들 예종의 아내인 인혜왕대비의 윗동서이니 인수왕비가 인혜왕대비보다 위라는 뜻이다.
1475년, 의경왕이 의경대왕으로 추숭되어(후에 덕종의 묘호를 받음) 인수왕비는 인수왕대비(仁粹王大妃)로 진봉되는데, 이때 인수대비와 인혜대비의 서열 문제가 다시 거론되었으나 역시 인수대비를 웃전으로 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1494년 성종이 사망하자 인혜왕대비로 추존되었다. 안순왕후는 1499년 53세의 나이로 연산군의 재위 시대에 사망하였고, 안순왕후(安順王后)로 추존되었다.
2.3. 왕대비 시절과 서열 문제
1468년 세조가 병으로 왕세자에게 양위하여 예종이 즉위하면서, 세조는 소훈 한씨를 왕비로 삼도록 하였다. 1469년 12월 31일(음력 11월 28일) 예종이 재위 13개월 만에 사망하자, 원자(元子)인 제안대군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왕대비 정희왕후는 한명회와 결탁하여 예종의 형이었던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자 한명회의 사위인 잘산군(乽山君: 성종)을 예종과 안순왕후의 양자로 입적시켜 왕위를 잇게 하였다. 이에 따라 한씨는 선왕(先王)의 왕비이자 성종의 법모로서 왕대비로 진봉되어 인혜왕대비(仁惠王大妃)가 되었다.
1470년 2월 22일(음력 1월 22일) 성종의 생부인 의경세자가 의경왕으로 추숭되고, 그의 생모 수빈 한씨(소혜왕후)도 인수왕비로 진봉되면서 인혜왕대비와 인수왕비 간의 서열 문제가 발생하였다. 1472년, 신숙주의 주장과 자성대왕대비(정희왕후)의 윤허 아래 인수왕비와 인혜왕대비의 위계를 왕실의 법칙이 아닌 사가의 법칙대로 형제 서열로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즉, 세조의 맏아들 의경왕의 아내인 인수왕비가 둘째 아들 예종의 아내인 인혜왕대비의 윗동서이므로 인수왕비가 인혜왕대비보다 서열이 높다는 것이다. 1475년 의경왕이 의경대왕(후에 덕종)으로 추숭되어 인수왕비가 인수왕대비(仁粹王大妃)로 진봉될 때, 이 문제는 다시 거론되었으나 인수대비를 웃전으로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1494년 성종이 사망하자 인혜왕대비는 대왕대비로 진봉되었다.
2.4. 사망
1498년 음력 12월 23일 경복궁에서 승하하였다. 연산군은 그녀의 시호를 안순, 휘호를 소휘제숙으로 하였으며 그 상제(喪制)를 정하는 데 있어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남편인 예종과 같이 기년제(1년간 상복을 입는 것)로 정하였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서오릉 내에 위치한 창릉으로, 남편 예종과 합장되었다. 1499년 2월 3일에 승하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3.
4. 가족 관계
부모
* 아버지 − 한백륜(1427~1474)
* 어머니
계모 − 회덕 황씨(懷德 黃氏; 1425~?)
생모 − 서하부부인 풍천 임씨(1432~1472), 한백륜의 후처
형제
* 형 − 한환(韓懽; 1441~?)
* 여동생 − 천안군부인 청주 한씨(1447~?)
* 남동생 − 한열(韓悅; 1449~?)
* 여동생 − 청주 한씨(1451~?); 남효원의 첫째 부인
* 남동생 − 한항(韓恒; 1451~?)
* 남동생 − 한순(韓恂; 1453~1541)
* 여동생 − 정부인 청주 한씨(貞夫人 淸州 韓氏; 1459~?)
* 여동생 − 청주 한씨(1465~?)
배우자
* 이황, 예종(1450년 1월 14일 ~ 1469년 12월 31일)
자녀
* 딸 − 현숙공주(1464~1502)
* 아들 − 제안대군 이현(1466년 2월 13일 ~ 1525년 12월 14일)
* 딸 − 혜순공주(1468년 9월 ~ 1469년 8월 5일)
* 이름 없는 대군(1468~1472)
4.1. 부모
안순왕후의 아버지는 청천부원군 한백륜(1427년 ~ 1474년)이며, 어머니는 서하부부인 풍천 임씨( ? ~ 1472년)이다. 한백륜은 한창과 서흥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서하부부인 임씨는 임유와 파평 윤씨의 딸이다.
4.2. 형제자매
안순왕후의 아버지는 한백륜(韓伯倫, 1427~1474)이다. 생모는 서하부부인 풍천 임씨(西河府夫人 豊川 任氏, 1432~1472)이다. 형제로는 한환(韓懽, 1441~?)이 있고, 여동생으로는 천안군부인 청주 한씨(1447~?)가 있다. 남동생으로는 한열(韓悅, 1449~?), 한항(韓恒, 1451~?), 한순(韓恂, 1453~1541)이 있다. 그 외에 여동생으로 남효원의 첫째 부인이 된 청주 한씨(1451~?)와 정부인 청주 한씨(貞夫人 淸州 韓氏, 1459~?), 그리고 또 다른 청주 한씨(1465~?)가 있다.
4.4. 자녀
안순왕후는 예종과의 사이에서 2녀 1남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