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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기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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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랑기뇰은 1897년 파리에 설립된 극장으로, 자연주의 연극을 기반으로 공포, 잔혹극을 주로 공연했다. 오스카 메테니에가 설립했으며, 막스 모레의 지휘 아래 공포를 주제로 한 연극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앙드레 드 로르드는 주요 극작가로 활동하며 "공포의 왕자"라는 별칭을 얻었고, 폴라 막사는 희생자 역할을 주로 맡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살해된 여성"으로 불렸다. 1930년대 이후 인기가 쇠퇴하여 1962년 폐쇄되었으며, 현재는 국제 시각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랑기뇰은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공포 장르의 기원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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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기뇰
극장 정보
위치프랑스 파리 피갈 지구
개장1897년
폐장1962년
특징공포 연극 전문
역사
설립1897년, 오스카 메트니에에 의해 설립
운영초기: 오스카 메트니에
이후: 막스 말리
말기: 샤를 부아예
특징잔혹하고 선정적인 내용으로 유명
"18금" 연극의 원조
연극 스타일
주요 장르공포
그로테스크
심리 드라마
특징실제와 같은 특수 효과 사용
관객의 반응을 측정하는 "구토 지수" 운영
영향
문화적 영향공포 영화 및 연극에 큰 영향
"그랑 기뇰"은 공포, 고어 장르의 대명사로 사용
관련 용어"그랑기뇰레스크(grand-guignolesque)" - 잔혹하고 과장된 묘사를 의미

2. 역사

1897년 극작가 오스카르 무토니에가 그랑기뇰 극장을 설립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극장 이름은 프랑스 인형극의 스톡 캐릭터인 기뇰에서 유래했지만, 인형극이 아닌 배우가 연기하는 연극 극장이었다.[16]

1898년부터 1914년까지 막스 모레 예술 감독은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를 공포 잔혹극으로 만들었다. 부랑자, 거리의 고아, 매춘부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등장했으며, 요괴담, 질투에서 비롯된 살인, 영아 살해, 토막 살인 등 온갖 호러를 테마로 하는 연극을 대량의 특수 효과를 사용하여 연출했다.

1901년부터 1926년까지 "공포의 프린스"(Prince de la Terreur프랑스어)라는 별명을 얻은 극작가 앙드레 드 로르드가 그랑 기뇰 극장의 주요 작가로 활약하며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실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의 협력을 얻어 "광기"를 주제로 한 연극을 다수 만들었다.[17]

1917년부터 1933년까지 간판 여배우 Paula Maxa프랑스어는 희생자 역할을 주로 연기했다. 2018년에는 그녀의 배우 인생을 모델로 한 영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살해된 여자』가 제작되었으며, 안나 무글라리스가 막사 역을 연기했다.[21]

1910년 그랑 기뇰 극장에서 초연된 디디에 골드의 1막 연극 『외투』는 자코모 푸치니오페라 외투로 만들어져 191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후, 오늘날까지 세계의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되고 있다.

1930년 자크 지우뱅이 예술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심리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전략은 빗나가고 극장의 인기는 쇠퇴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인기는 더욱 급격하게 저하되었고, 1945년 예술 감독 에바 베르크손의 레퍼토리 개혁에도 불구하고 관객 감소를 막을 수 없었다.

1951년 막스 모레의 아들인 드니와 마르셀 형제가 경영에 참여, 프레데릭 다르|fr|Frédéric Dard프랑스어나 부알로-나르스자크 같은 인기 추리 작가에게 신작 대본을 의뢰했다. 부알로-나르스자크의 2막 공포극 ''"Meurtre au ralenti"''(1956년)는 호평을 받았지만, 극장 인기 저하를 막지 못했다.

1962년 영화와의 경쟁에서 밀려 폐쇄되었다. 마지막 예술 감독 샤를 노농은 홀로코스트가 사람들에게 준 충격으로 가짜 공포 연극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한 결과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22]

마지막 상연작은 1막 희극 ''"Deux Femmes sur les bras"'', 2막 공포극 『얼굴 없는 눈』, 2막 서스펜스극 ''"Parodie de la mort"''였다.[24] 『얼굴 없는 눈』은 조르주 프랑주 감독의 영화 『얼굴 없는 눈』의 원작을 극화한 것이지만, 원작은 영화와 달리 잔혹한 살인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는 통속적인 누아르 소설이며, 극장 상연도 원작에 가까운 각색이었다.

그랑 기뇰 극장의 상연 영상은 이탈리아 몬도 영화 제목 "지구의 껍질을 벗기다"(1963)에서 볼 수 있다. 이 영상의 진위 여부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출연 배우들과 극장 내부는 그랑 기뇰의 것이 맞다.[25]

극장 건물은 현존하며, 현재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화 연극을 상연하는 국제 시각 극장(International Visual Theatre|fr|International Visual Theatre프랑스어)이 되었다.

2. 1. 설립과 초기 (1897-1914)

오스카 메테니에는 1897년 자연주의 연극 공연을 위해 테아트르 뒤 그랑 기뇰(Théâtre du Grand-Guignol)을 설립했다. 파리에서 가장 작은 규모였던 293석의 이 극장은 원래 예배당이었으며, 고해실처럼 보이는 박스석과 천사 조각 등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1] 이러한 구조는 처음에는 극장 운영에 어려움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기이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관객들에게 단순한 공연 관람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며 마케팅에 도움이 되었다.[4]

1898년 막스 모레가 예술 감독으로 취임하여 1914년까지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를 공포 잔혹극으로 전환하면서 성공을 이끌었다.[16] 부랑자, 고아, 매춘부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요괴담, 살인, 단두대 등 온갖 호러를 주제로 한 연극들은 대량의 특수 효과를 통해 잔혹하게 연출되었다.

많은 관객들이 강렬한 "느낌"과 성적 흥분을 얻기 위해 공연을 찾았다.[4] 발코니 아래 박스석은 원래 수녀들을 위한 자리였지만, 흥분한 관객들이 공연 중 대여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거기 조용히 해!"라고 소리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고 한다.[2] 반대로, 잔혹함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거나 구토하는 관객도 있었다. 막스 모레는 이러한 반응을 마케팅에 활용하여 공연장에 의사를 고용하기도 했다.[2]

극장의 이름은 리옹의 전통 인형극 캐릭터인 기뇰에서 유래되었으며, 펀치 앤 주디 스타일과 정치적 논평을 결합했다.[4]

2. 2. 전성기 (1914-1930)

1901년부터 1926년까지 그랑 기뇰 극장의 주요 작가였던 앙드레 드 로르드는 "공포의 프린스"(Prince de la Terreur프랑스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 시기가 극장의 최전성기였다.[17] 그는 『노부인』, 『궁극의 고통』, 『정신병원의 범죄』, 『밀랍 인형』 등 100편 이상의 연극을 썼다. 알프레드 비네의 협력을 얻어 "광기"를 주제로 한 연극을 다수 만들었다.[17]

앙드레 드 로르드와 함께 극장을 이끈 간판 여배우는 Paula Maxa프랑스어였다. 1917년부터 1933년까지 희생자 역할을 주로 맡았으며, 무대 위에서 10,000회 이상[18] (혹은 30,000회 이상[19]) 살해당하고, 3,000회 고문당했다고 한다.[20] 2018년에는 그녀의 배우 인생을 모델로 한 영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살해된 여자』(''La femme la plus assassinée du monde'')가 제작되었으며, 안나 무글라리스가 막사 역을 연기했다.[21]

2. 3. 쇠퇴와 폐쇄 (1930-1962)

1930년 자크 주뱅(Jacques Jouvin)이 극장의 예술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피칠갑 공포극보다는 심리극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극의 주제를 바꾸었다.[22]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고, 그랑기뇰 극장의 인기는 점차 쇠퇴하였다.[22] 1940년대 초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기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극장의 인기는 더욱 급격하게 떨어졌다.[22] 1945년 예술 감독으로 취임한 에바 베르크손(Eva Bergson)은 레퍼토리를 개혁하고, 1949년에는 당시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 원작의 『미스 브란디시의 난』을 각색하여 상연하는 등 과감한 시도를 했지만, 관객 감소를 막지는 못했다.[22]

1951년 막스 모레의 아들인 드니와 마르셀 형제가 경영에 참여하여, Frédéric Dard|프레데릭 다르|프랑스어와 부알로-나르스자크 등 당대 인기 추리 작가들에게 신작 대본을 의뢰하며 극장의 인기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22] 특히 부알로-나르스자크가 쓴 2막 공포극 ''"Meurtre au ralenti"''(1956년)는 TV에서도 방영될 정도로 호평을 받았지만, 극장의 인기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22] 결국 1962년, 그랑기뇰 극장은 영화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게 되었다.[22] 마지막 예술 감독이었던 샤를 노농(Charles Nonon)은 전후 그랑기뇰 극장의 인기 급락 원인에 대해, 홀로코스트가 사람들에게 준 충격으로 인해 가짜 공포 연극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22] 그는 극장 폐쇄 당시 인터뷰에서 "전쟁 전에는 그랑기뇰 극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모두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극장에서 상연되는 끔찍한 일들보다 더 잔혹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22]

3. 주요 인물

이름설명
오스카 메테니에그랑기뇰의 설립자이자 초대 감독.
앙드레 앙투안자유 극장의 설립자이자 메테니에의 협력자.
막스 모레이1898년부터 1914년까지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극장의 초점을 공포극으로 전환.
앙드레 드 로르드1901년부터 1926년까지 극장의 주요 극작가로 활동.
Paula Maxa|폴라 막사프랑스어그랑기뇰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
카미유 르와지1914년부터 1930년까지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특수 효과와 무대 장치에 대한 전문 지식을 기여.
자크 주뱅1930년부터 1937년까지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극장의 주제를 심리극으로 변화.
샤를르 노농극장의 마지막 감독.


3. 1. 오스카 메테니에 (Oscar Méténier)

오스카 메테니에는 그랑기뇰의 설립자이자 초대 감독이었다. 그의 지휘 아래 극장은 매춘부, 범죄자, 거리의 부랑아 등 파리 사회의 하층민과 같이 다른 장소에서는 다루기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던 사람들에 대한 연극을 제작했다. 자유 극장의 설립자인 앙드레 앙투안은 메테니에의 협력자였으며, 그의 극장은 메테니에에게 그랑기뇰 극장의 기본 모델을 제공했다.

3. 2. 막스 모레 (Max Maurey)

1898년부터 1914년까지 그랑기뇰 극장의 감독을 역임한 막스 모레는 극장의 초점을 공포극으로 전환하여 상업적 성공을 이끌었다. 그는 관객의 기절 횟수를 공연의 성공 척도로 삼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을 활용했는데, 저녁 공연마다 평균 두 명의 관객이 기절했다고 한다.[16]

막스 모레는 앙드레 드 로르드를 발굴하여 그랑기뇰 극장의 주요 작가로 키웠다. 앙드레 드 로르드는 1901년부터 1926년까지 100편 이상의 공포극을 썼으며, 실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와 협력하여 광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17]

3. 3. 앙드레 드 로르드 (André de Lorde)

앙드레 드 로르드(1869-1942)는 1901년부터 1926년까지 그랑기뇰 극장의 주요 작가로 활동했으며, "공포의 왕자"(Prince de la Terreur프랑스어)라는 별명을 얻었다.[17] 그는 『노부인』, 『궁극의 고통』, 『정신병원의 범죄』, 『밀랍 인형』 등 그랑기뇰을 위해 100편 이상의 연극을 썼다.[17] 알프레드 비네와의 협력을 통해 광기 등 심리학적 주제를 다룬 연극을 다수 창작했다.[17]

3. 4. 폴라 막사 (Paula Maxa)

Paula Maxa프랑스어는 그랑기뇰의 간판 배우 중 한 명이었다. 1917년부터 1930년대까지 주로 피해자 역할을 연기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암살당한 여성"으로 알려졌다.[3] 그랑기뇰에서 활동하는 동안 막사의 캐릭터는 60가지가 넘는 방식으로 10,000번 이상 살해당했고, 최소 3,000번 강간당했다.[3]

3. 5. 카미유 르와지 (Camille Choisy)

카미유 르와지는 1914년부터 1930년까지 그랑기뇰 극장의 감독을 역임했다. 그는 극장의 독특한 스타일에 특수 효과와 무대 장치에 대한 전문 지식을 기여했다.[3]

3. 6. 자크 주뱅 (Jacques Jouvin)

자크 주뱅은 1930년부터 1937년까지 그랑기뇰 극장의 감독을 맡았다. 그는 극장의 주제를 끔찍한 공포에서 벗어나 심리극 중심으로 바꾸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극장의 인기는 점차 떨어졌다. 결국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관객 수가 더욱 줄어들었다.[4]

3. 7. 샤를 노농 (Charles Nonon)

샤를 노농은 그랑기뇰 극장의 마지막 감독이었다.[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관객 수가 줄어들면서 1962년에 극장이 문을 닫았다. 극장 측은 폐쇄 이유 중 하나로 20년 전에 실제로 일어난 홀로코스트로 인해 극장의 가짜 공포가 빛을 잃은 점을 꼽았다. 노농은 "우리는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를 따라갈 수 없었다"라며, "전쟁 전에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불가능하다고 모두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일들과 그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5]

4. 주요 작품

1898년 예술 감독 막스 모레는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를 공포 잔혹극으로 옮겼고, "공포의 프린스" 앙드레 드 로르드는 100편 이상의 연극을 쓰며 최전성기를 이끌었다.[17] 간판 여배우 폴라 막사는 1만 번 이상 살해당하는 희생자 역할을 맡았다.[18]

대표적인 공연은 공포 연극으로, 암울한 세계관과 피가 낭자한 특수 효과가 특징이었다. 공포 연극은 종종 코미디와 번갈아 상연되었으며, 이러한 구성을 "냉온 샤워"라고 불렀다.[6][7]

1930년대 이후 심리극 중심으로 변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홀로코스트의 영향으로 관객의 외면을 받아 1962년 폐관하였다.

4. 1. 앙드레 드 로르드의 작품


  • 앙드레 드 로르드 작 ''환각의 실험실''(Le Laboratoire des Hallucinations): 한 의사가 수술실에서 아내의 애인을 발견하고, 끔찍한 뇌 수술을 수행하여 불륜남을 환각에 시달리는 반 좀비 상태로 만든다. 이제 미쳐버린 애인이자 환자인 그는 정으로 의사의 뇌를 망치로 때린다.[8]
  • 앙드레 드 로르드 작 ''미친 집에서의 범죄''(Un Crime dans une Maison de Fous): 정신병원에 있는 두 명의 마녀가 질투심에 눈이 먼 예쁜 젊은 동료 수감자를 가위로 눈을 멀게 한다.[8]
  • 앙드레 드 로르드 작 ''끔찍한 열정''(L'Horrible Passion): 보모가 돌보는 아이들을 목 졸라 죽인다.[7]

4. 2. 기타 작품


  • 모리스 르벨 작 ''밤의 키스''(Le Baiser dans la Nuit): 산으로 끔찍하게 얼굴을 훼손당한 남자의 복수극이다.[9]
  • 디디에 골드 작 ''외투''(La Houppelande):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외투의 원작으로, 1910년 그랑 기뇰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 장 르동 원작 ''얼굴 없는 눈''(Les yeux sans visage): 조르주 프랑주 감독의 동명 영화의 원작으로, 그랑 기뇰 극장 폐쇄 직전 마지막 상연작 중 하나이다. 잔혹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이상한 범인을 다룬 통속적인 누아르 소설이 원작이다.[24]

5. 특징 및 구성

그랑기뇰 연극은 5~6편의 단편극으로 구성되었으며, 공포 연극과 코미디 연극을 번갈아 상연하는 "냉온 샤워" 방식을 사용했다.[6][7] 공포 연극은 초자연적인 요소보다는 광기, 최면, 공황 등 인간의 변형된 심리 상태를 주로 다루었으며, 잔혹한 특수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6]

대표적인 공포 연극으로는 앙드레 드 로르드의 ''환각의 실험실'', ''미친 집에서의 범죄'', ''끔찍한 열정''과 모리스 레벨의 ''밤의 키스'' 등이 있다.[8][7][9]

과학과 의학의 타락, 부패는 그랑기뇰 연극의 주요 주제 중 하나였으며, "악한 의사" 캐릭터가 자주 등장했다. 앙드레 드 로르드의 ''구드롱 박사와 플룸 교수의 시스템''은 이러한 전형적인 의사 모습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당시 과학과 의학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회의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랑기뇰은 자연주의적 묘사와 잔혹한 특수 효과를 결합하여 현대 공포 장르에 큰 영향을 미쳤다.

6. 주제 및 구조 분석

그랑기뇰 연극은 주로 공포를 주제로 다루었으며, 그중에서도 과학, 특히 의학의 타락과 부패, 광기와 폭력, 그리고 현실적인 공포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 과학의 타락과 부패: 그랑기뇰에서 가장 흔한 주제 중 하나는 과학, 그중에서도 의학의 타락과 부패였다. "악한 의사"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유형이었다.
  • 광기와 폭력: 그랑기뇰은 등장인물들의 광기와 그로 인한 폭력, 그리고 그 끔찍한 결과들을 탐구했다.
  • 현실적인 공포: 초창기 그랑기뇰은 초자연적인 공포 대신 광기, 최면, 질병 등 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관객에게 직접적인 공포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러한 주제들은 당시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반영하는 동시에, 공포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랑기뇰은 공포를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심오한 통찰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찰은 종종 폭력적인 장면으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폭력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6. 1. 자연주의와 멜로드라마의 결합

초창기 그랑기뇰은 자연주의적 공포를 선보이려 했지만, 오늘날의 관객에게는 그 공연이 멜로드라마적이고 과장되게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용어는 과장된 연기, 멜로드라마, 그리고 ''스위니 토드'', ''슬리피 할로우'', ''퀼스''와 같은 연극적 효과를 특징으로 하는 양식화된 영화와 연극, 그리고 그 이전의 해머 호러 영화에 자주 적용된다.[16]

6. 2. 과학(의학)에 대한 불신과 공포

그랑기뇰에서 상연된 가장 흔한 주제 중 하나는 과학의 타락과 부패였다.[16] "악한 의사"는 상연된 공포극에서 반복되는 등장인물이었다.[16] 앙드레 드 로르드의 인기작 ''구드롱 박사와 플룸 교수의 시스템''은 이 극장의 전형적인 의사 모습을 보여준다. 구드롱 박사는 조증, 광기, 신뢰할 수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책상 위에서 뛰어다니며 몸짓을 한다".[16] 이후 로르드는 과학자를 폭력적인 인물로 묘사하며, 구드롱은 눈을 파내려 하고 경비원의 손을 물려고 시도한다.[16] 당시 호기심과 회의론이 과학과 의학을 휩쓸었다. 그랑기뇰의 과학자 묘사는 두려움과 경멸이라는 대중의 태도를 반영했다. 의학은 "공포와 특이한 악명"을 얻었다.[16] 중산층 파리 사회는 과학이 경박함과 거짓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었고, 예술은 정직함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었다.[16]

6. 3. 광기와 폭력의 탐구

1937년 그랑기뇰의 한 장면


그랑기뇰 공연은 대개 다섯 편에서 여섯 편의 단편극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자연주의를 따랐다. 가장 인기 있었던 작품은 공포 연극으로, 암울한 세계관과 피가 낭자한 특수 효과가 특징이었다. 그랑기뇰은 초자연적인 공포보다는 광기, 최면, 공황 등 변형된 심리 상태를 탐구했다. 공포 연극은 종종 코미디와 번갈아 상연되었는데, 이를 "냉온 샤워"라고 불렀다.[6][7]

몇 가지 예시는 다음과 같다.

  • ''환각의 실험실''(Le Laboratoire des Hallucinations): 앙드레 드 로르드 작. 의사가 아내의 애인을 끔찍하게 수술하여 환각에 시달리는 반 좀비 상태로 만들고, 미쳐버린 애인은 정으로 의사의 뇌를 망치로 때린다.[8]
  • ''미친 집에서의 범죄''(Un Crime dans une Maison de Fous): 앙드레 드 로르드 작. 정신병원의 두 마녀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동료 수감자의 눈을 멀게 한다.[8]
  • ''끔찍한 열정''(L'Horrible Passion): 앙드레 드 로르드 작. 보모가 아이들을 목 졸라 죽인다.[7]
  • ''밤의 키스''(Le Baiser dans la Nuit): 모리스 레벨 작. 산으로 끔찍하게 얼굴을 훼손당한 남자가 복수한다.[9]


초기 그랑기뇰은 자연주의적 공포를 추구했지만, 현대 관객에게는 멜로드라마적이고 과장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용어는 과장된 연기, 멜로드라마, 양식화된 영화와 연극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 ''스위니 토드'', ''슬리피 할로우'', ''퀼스'' 등이 있다.

관객들은 공포 연극의 충격적인 주제에 강렬하게 반응했다. 그랑기뇰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과학의 타락과 부패였다. "악한 의사"는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앙드레 드 로르드의 ''구드롱 박사와 플룸 교수의 시스템''은 그 전형을 보여준다. 구드롱 박사는 조증과 광기를 가진 인물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책상 위에서 뛰어다니며 몸짓을 한다". 그는 폭력적으로 묘사되며, 눈을 파내려 하고 경비원의 손을 물려고 시도한다. 당시 과학과 의학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과 경멸이 반영된 것이다. 의학은 "공포와 특이한 악명"을 얻었다.

그랑기뇰은 공포 장르에 자연주의를 도입하여 "현대 문화의 잔혹성을 드러냈다". 이전의 공포가 초자연적이고 현실 도피적이었다면, 그랑기뇰은 현실적인 주제를 도입하여 관객이 더 큰 공포를 느끼게 했다. 공포는 "통찰력이 구경거리로, 구경거리가 폭력과 고어로 이어져 결국 고어밖에 남지 않았다"와 같이 심오한 "통찰력"을 위한 매개체가 되었다. 오늘날 공포 장르는 "낙관과 희망"으로 시작하여 "무작위적이고 혼돈적이며 불가피한 폭력 앞에서 시들어간다".

6. 4. 공포의 현실화

그랑기뇰은 초기에 초자연적인 공포 대신 광기, 최면, 질병 등 현실적인 소재를 통해 관객에게 직접적인 공포를 전달하고자 했다.[5] 이는 이전의 공포극이 주로 초자연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를 다루며 현실 도피적인 성격을 가졌던 것과 대조적이다. 관객들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사건들을 목격하며 더 큰 공포를 느꼈다.

그랑기뇰은 공포에 자연주의를 도입하여 "현대 문화의 잔혹성을 드러냈다".[5] 공포는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 폭력과 유혈 낭자, 그리고 결국에는 유혈 낭자만 남는 심오한 "통찰력"을 위한 매개체가 되었다. 오늘날 공포 장르는 "낙관과 희망"으로 시작하여 "무작위적이고 혼돈적이며 불가피한 폭력 앞에서 시들어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그랑기뇰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5]

6. 5. 통찰과 폭력의 관계

그랑기뇰은 공포에 자연주의를 도입하여 현대 문화의 잔혹성을 드러냈다.[16] 이전의 공포는 초자연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주제를 다루며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여겨졌다.[16] 그러나 그랑기뇰은 현실적인 주제를 도입하여 관객들이 극 중 상황을 실제처럼 느끼게 했고, 이로 인해 더 큰 공포를 경험하게 했다.[16]

이러한 변화는 공포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심오한 통찰을 제공하는 수단이 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찰은 종종 폭력과 유혈 장면으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유혈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향을 보였다.[16] 오늘날 공포 장르는 "낙관과 희망"으로 시작하여 "무작위적이고 혼돈스러우며 피할 수 없는 폭력 앞에서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인다.[16]

7. 영향 및 유산

그랑기뇰은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를 비롯한 다른 예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현대 잔혹극, 스플래터 영화 등 서브컬처 장르의 기원으로 평가받는다.

스위니 토드, 슬리피 할로우, 퀼스 등은 그랑기뇰 스타일을 차용한 대표적인 영화/연극이다. 해머 필름 프로덕션의 공포 영화 역시 그랑기뇰의 영향을 받았으며, ''자, 자매여'', ''허쉬…허쉬, 스위트 샬롯'', ''엘리스 이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헬렌에게 무슨 문제가 있니?'', ''야간 경비''와 ''누가 루 아줌마를 죽였나?''는 센세이셔널한 공포 영화에 나이든 A급 여배우들을 기용한다는 점에서 그랜드 댐 기뇰이라는 하위 장르를 형성한다.

1920년대 초 런던에서는 호세 레비의 지휘 아래 그랑기뇰이 잠시 번성하여 시빌 손다이크, 노엘 코워드 등 유명 배우들이 참여했다.[10] 리처드 휴즈의 단막극 "자매들의 비극"은 코워드의 작품보다 더 뛰어났다고 한다. 프레드 폴이 감독한 일련의 단편 영어 "그랑기뇰" 영화도 제작되었으며, 일부는 BFI 국립 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다. 1945년 프레데릭 위트니의 지휘 아래 런던 그래빌 극장에서 두 시즌 동안 그랑기뇰이 부활하여 공연되었다.[11]

최근에는 리처드 마즈다 등 연출가들이 그랑기뇰을 재조명하고 있다. 마즈다는 뉴욕에서 퀸스 플레이어스라는 배우 단체를 통해 그랑기뇰 연극을 제작하고 있으며, 고전적인 기뇰 스타일의 새로운 연극을 쓰고 있다. 그의 여섯 번째 작품인 "공포의 극장"은 드 로르드의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 시스템"을 포함하여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스위스 극단 콩파니 피에 드 비쉬는 2008년부터 현대적 맥락에서 그랑기뇰 장르를 재조명하고 있다.[13] 런던 기반의 극단 데미지드는 2010년 캠던 프린지에서 첫 작품을 선보였으며, 2011년 런던 호러 페스티벌에서 "그랑기뇰의 복수"를 상연했다.[14],[15] 2014년에는 밀라노에서 "밀라노 그랑기뇰: 뱀파이어의 카바레"가 공연되었다. 2022년부터 요크셔 기반 극단 콘토르티움은 "기괴한 이야기"를 순회 공연하며 그랑기뇰의 현대적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그랑기뇰은 공포 장르에 자연주의를 도입하면서 "현대 문화의 잔혹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전에는 공포가 초자연적인 বিষয়을 다루며 현실 도피의 역할을 했지만, 그랑기뇰은 현실적인 주제를 도입하여 관객들이 극의 내용을 시각화하고 더 큰 공포를 경험하게 했다. 즉, 공포 플롯을 관객이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켰다. 공포는 "통찰력이 구경거리로, 구경거리가 폭력과 고어로 이어져 결국 고어밖에 남지 않았다"와 같은 심오한 "통찰력"을 위한 매개체가 되었다. 오늘날 공포 장르는 "낙관과 희망"으로 시작하여 "무작위적이고 혼돈적이며 불가피한 폭력 앞에서 시들어간다"는 특징을 보인다.

8. 한국에서의 그랑 기뇰

한국에서 그랑기뇰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연구 및 공연이 시도되고 있다.

다음은 한국어로 번역된 그랑기뇰 희곡 작품들이다.

제목저자번역자출판사
그랑기뇰 걸작선 - 벨 에포크의 공포 연극마노 린페이수성사
로르드의 공포 극장앙드레 드 로르드히라오카 아쓰시치쿠마 서방



이 외에도, 아라마타 히로시가 편집한 『괴기 문학 대산맥 (3) (서양 근대 명작선 여러 잡지 범람편)』 (도쿄 소겐샤)에서 그랑기뇰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존 딕슨 카의 소설 그랑기뇰(1929년)도 참고할 만하다.

9. 관련 자료


  • 『Grand-Guignol|그랑기뇰프랑스어 걸작선 - 벨 에포크의 공포 연극』 마노 린페이 역 수성사
  • 『Théâtre d'épouvante de Lorde|로르드의 공포 극장프랑스어』 앙드레 드 로르드 저 히라오카 아쓰시 역 치쿠마 서방
  • 『怪奇文学大山脈 (3) (西洋近代名作選 諸雑誌氾濫篇)|괴기 문학 대산맥 (3) (서양 근대 명작선 여러 잡지 범람편)일본어』 아라마타 히로시 편집 도쿄 소겐샤
  • 존 딕슨 카의 소설 『Grand Guignol|그랑기뇰영어』(1929년)

참조

[1] 뉴스 Paris Writhes Again https://web.archive.[...] 2007-04-10
[2] 서적 Grand-Guignol The French Theatre of Horror University of Exeter Press 2002
[3] 뉴스 Fading Horrors of the Grand Guignol https://www.nytimes.[...] 2007-04-10
[4] 뉴스 History https://web.archive.[...] Grand Guignol Online 2007-04-10
[5] 뉴스 Outdone by Reality https://web.archive.[...] 2007-04-10
[6] 뉴스 What is Grand Guignol? https://web.archive.[...] Grand Guignol Online 2007-04-10
[7] 뉴스 House of Horrors http://www.grandguig[...] 2007-04-10
[8] 뉴스 Murders in the Rue Chaptal http://www.grandguig[...] 2007-04-10
[9] 웹사이트 Violence and Vitriol – Exploring 'Le Baiser dans la nuit' http://theatredamned[...] 2011-02-01
[10] 웹사이트 Dame Sybil Thorndike – London's Queen of Screams http://theatredamned[...] 2011-01-17
[11] 웹사이트 Fredrick Witney – A forgotten legend of the Grand Guignol http://theatredamned[...] 2011-02-01
[12] 뉴스 Excerpt from the film Ecco (1963) http://www.grandguig[...] Grand Guignol Online 2007-04-10
[13] 웹사이트 Frederic Ozier - Compagnie Pied de Biche https://web.archive.[...]
[14] 웹사이트 It's a scream: theatre of the macabre is a runaway hit http://www.thisislon[...] London Evening Standard 2011-01-02
[15] 웹사이트 Revenge of the Grand Guignol – The Courtyard http://www.thecourty[...] 2016-10-17
[16] 뉴스 Paris Writhes Again http://www.grandguig[...] Time 1950-01-16
[17] 웹사이트 The Horror of Alfred Binet | Providentia https://drvitelli.ty[...]
[18] 뉴스 Fading Horrors of the Grand Guignol http://www.grandguig[...] THE NEW YORK TIMES MAGAZINE 1957-03-18
[19] 웹사이트 Franck Ribière • Director "People want to watch the films they want, when they want and for a decent price" https://cineuropa.or[...] Cineuropa
[20] 뉴스 Fading Horrors of the Grand Guignol http://www.grandguig[...] THE NEW YORK TIMES MAGAZINE 1957-03-18
[21] 웹사이트 Franck Ribière • Director "People want to watch the films they want, when they want and for a decent price" https://cineuropa.or[...] Cineuropa
[22] 뉴스 Outdone by Reality http://www.grandguig[...] TIME magazine 1962-11-30
[23] 웹사이트 Parodie à la mort - Peter Randa - Babelio https://www.babelio.[...]
[24] 웹사이트 Grand Guignol Plays 1960 - 1962 http://www.grandguig[...] GrandGuigol.com
[25] 웹사이트 Excerpt from the film "ECCO" (1963) http://www.grandguig[...] GrandGuign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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